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문제점 분석과 해법모색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줄여서 국영평)에 대해 말이 많다. 영어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 개인적 입장을 밝혀 사회적으로 이 시험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글의 순서 • 이 시점 국영평은 굳이 필요한 시험인가? • 국영평은 도입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 국영평 도입을 일정대로 강행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인가? 1. 실현가능성(feasibility) 2. 영어학습부진아나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 3. 영어 격차의 확대 4. ‘실용영어중심 영어교육’의 오해와 부작용 5. 채점부실 6. 수업의 파행 7. 교단의 분위기 8. 변별력 부족 9. 교육과정 내용, 국영평 도입취지와 국영평의 평가기준의 불일치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
Q1. 이 시점 국영평은 굳이 필요한 시험인가?
관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영어 사교육비 증가 걱정을 많이 하는데 타당한 우려다.
그러나 사회적 관련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적 판단으로만 보면 필요하다.
첫째, 국가 영어교육과정이 있고 그에 따라 교과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교육이란 성취목표에
도달을 확인하기 위해서, 또 학습자의 성장을 위한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도 평가는 필요하다.
그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고 평가를 하면 될 것이지 왜 굳이 사교육을 증가시키고 또 다른
우려가 많은 국영평을 도입하는가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는 교과서의
영어 말하기/쓰기나 별도의 수행평가가 학생들의 장래 진학문제와 연계되는 순간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는데 있다. 우선 말하기/쓰기 평가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또 교사의
이런 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신 말하기/쓰기에서
기본점수를 많이 주는 이유는 변별력을 많이 내면 항의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라고 한다. 이런
상황만 봐도 내신으로 말하기/쓰기를 제대로 평가하기는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 평가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어느 나라나 교육을 소홀히 한다. 그러니 수능에서 영어 말하기/쓰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우리 사회에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는 ‘영어공부=듣기/읽기 중심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 향상’의 등식이 성립한다.
이러다 보니 ‘영어 성적=영어사용능력’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영어 1등급
맞아도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말하기, 쓰기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영평의
도입은 이런 상황을 타파해보자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다.
셋째,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단독이든 공동이든 자국이 개발한 말하기/쓰기 시험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도 있고, 일본도 있다. 유럽은 유럽공통참조기준(CEFR)을 오래 전 개발해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의 꽤 많은 나라들이 외국어 평가에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 대만 등에서도
이의 활용 시도가 활발하다. 그러나 한국은 객관식 시험의 기술은 잘 축적되어 있지만 말하기/쓰기와
같은 표현기능 평가 기술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는 TOEIC/TOEFL 등의 국제
공인시험을 많이 이용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도 말하기/쓰기 공인평가 도입의 필요성은
이해할 수 있다.
Q2. 국영평은 도입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달성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국영평 도입 목적은 이주호 장관이 5월 26일 공개토론회를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실용영어 중심 학교 영어교육 추진을 위해 ①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영어 교육
② 학생들의 수준과 진로에 맞는 맞춤형 영어교육 ③ 학교가 중심이 되는 영어교육 이상 3가지이다.
현재로선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달성하기 어려운 장애요인들이 있다.
우선 도입목적 ①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영어 교육’을 보자. 이런 영어교육의 목표가 현재의 한국적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이유는 첫째, 듣기/읽기를 제외한 말하기/쓰기의 경우는
사용의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일상적으로 영어를 말하고/쓸
기회가 거의 없다. 우리 사회는(교육계 포함) ‘가르치면 배울 것이다; 배워두면 사회에 나가 나중에
라도 쓸 것이다’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말하기/쓰기는 배워두면 그릇에 물건 넣어 두듯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잊혀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공교육 상황에서 말하기/쓰기 교육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주당 3-4 시간의 수업시수와 교수학습방법으로는
현 교육과정의 4기능의 목표 달성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세계적인 영어 교육전문가의 한 사람인 제레미 하머(Jeremy Harmer)도 학교 교육만으로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자신의 저서에서 공공연히 하고 있고, 이미 한국의 영어
교육 학자들도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북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방문해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과 외국어
습득이론에 비추어 유추해보면 핀란드는 ‘사용을 통해서 배운다; 영어교사가 거의 다 핀란드인이고
영어구사력이 거의 완벽하다; 모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과제를 많이 수행해서 간접적으로 사용의
기회를 확보한다; 숙제가 적고 한국처럼 밤늦게까지 학원 갈 일도 없어 가정에서 자막 처리한 재미
있는 영어 프로그램을 자주 볼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처럼 정확성 중심의 평가를 지양한다;
쓰기에서는 특히 초급에서는 질보다 양을 중시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자 특징으로 보였다.
한국에서 이게 가능하려면 현재와 같이 초등 고학년부터 입시준비에 돌입하는 사회 환경과 영어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크게 완화되어야하며 입력 중심이 아니라 출력(말하기, 쓰기, 영어를
모국어로 번역하기, 프로젝트 수업 등) 중심의 활동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핀란드 영어 교과서
에는 핀란드어를 영어로 번역하라는 것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도 말하기/쓰기에 매우
유익한 모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던 좋은 교수방법 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 을 도입한 적이
있었지만, 무분별한 CLT(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의 시행 속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면 지금이라도 적극 다시 살려야 한다.
그 다음으로 국영평 도입목적 ② ‘학생들의 수준과 진로에 맞는 맞춤형 영어교육’을 보자. 언뜻
들으면 매우 바람직하게 들릴 수 있다. 이는 대학 전공별로 요구하는 영어의 수준과 성격이 다르다고
보고, 대학은 이에 적합한 영어능력을 요구하고, 고교서도 자기 전공을 일찍 정해 전공에 필요한
성격의 영어를 배우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영어의 과수요를 줄여 사교육비를 줄여보자는
기대도 깔려 있다. 이런 가정 자체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국처럼 전공적합성보다 일류 대학에
가는 것이 유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는 ‘전공적합성에 맞는 대학진학’이란 것이 이뤄지기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객관적 근거도 없다. 21세기 사회는 직업의 소멸, 기술의 융합,
온오프라인의 통합, 학문과 산업간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현상, 직업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심화
등으로 자신의 전공적합성(이를 상당한 기간 동안 열심히 그 분야 일을 해보기 전에는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어려움)에 맞추어 대학에 가는 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현명하지도
않다. 만약 전공적합성을 제대로 알 수만 있다면 상위 20-30%에 속하는 아이들에게는 전공적합성에
따른 진학이 부분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왜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의미가 있을까?
미래 사회의 직업별 수요와 공급을 예측한 믿을 만한 자료도 없고, 연구를 한다 해도 신뢰도도 낮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20년의 기술의 80%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2020년 직업의 7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학생들이 전공 적합성보다는 취업 가능성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진학을 하려는 노력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다. 전공적합성은 진로나 적성관련 검사 몇 가지를
해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2급과 3급으로 나누어 향후 실용영어가
필요할지 혹은 학술적인 영어도 필요할지를 판단하란 것은 현실성이 매우 적다.
국영평을 도입하는 이유 ‘③ 학교가 중심이 되는 영어교육’을 살펴보자. 이것 역시 실현 전망은 매우
어둡다. 우선 제라미 하머의 주장처럼 현재의 학교 수업시수만으로는 영어를 잘 할 수 있기에는
영어에 노출되는 양이 너무 적다. 중2 정도 되는 학생이 영어권 사회로 유학을 가서 영어의 4가지
영역에 어느 정도 유창해 지는 데는 빠른 학생이 2년, 보통은 3-4년이 걸린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학교가 중심이 되는 진정한 영어교육이 가능해지려면 사회구조와 의식의 변화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미래에 먹고 사는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한 경쟁은 불가피하고 이런 상황이
입시중심의 교육을 계속 강화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속에서는 진정한 영어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이 외에도 학교 중심의 영어교육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영어가 유창한 영어 교사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또,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더 줄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가 능력차이가 큰 아이들이 섞여 있는 교실의 수업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국어 활용의 이점(예: 모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적극 살려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학교가 중심이 되는 진정한 영어교육도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Q3. 국영평 도입을 일정대로 강행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주호 장관이 5월 26일 관련 공개토론회에서 국영평 시험의 수능대체 여부는 학생들이 학교교육
만으로 이 시험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만일 정부가
이 약속을 지킨다면 이 시험은 실행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약속과 상관없이
이 시험을 강행한다면 어떤 점이 문제가 될까?
그 우려사항을 살펴보자.
첫째, 실현가능성(feasibility)이 우려된다.
연간 80~90만 명의 주관식 시험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교과부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꼭 도입하기로 한다면 평가자의 평가역량을 키우고, 충분한
평가능력과 시설 등에 대해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치고 본격 도입하는 것이 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둘째, 영어학습부진아나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키울 수 있는 점이 우려된다.
이들은 무엇을 해도 잘 안 되는 아이들이란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다. 듣기/읽기도 안되는 아이들이
현재와 같은 국영평의 말하기/쓰기 시험을 접하면 어떤 기분일까? 부정적 자아의식, 학습된
무기력을 더 강화하지는 않을지? 시행하려면 말하기/쓰기 시험의 문항수를 늘려 아주 기초적인
문제도 포함시켜 이들도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란 자신감을 줄 수 있도록 보완해야 교육적이고
합리적이다. 현재 국영평의 말하기는 2.3급 모두 4문항이고, 쓰기는 2급은 2문항, 3급은 4문항이다.
이 정도의 문항이라면 영어의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은 3급의 말하기/쓰기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셋째, 영어 격차의 확대가 크게 우려된다.
이해기능(듣기, 읽기)도 안 되는 아이들이 어떻게 말하기/쓰기를 할 의욕을 갖겠는가? 이번에
공개한 기능별 문항수를 보면 말하기는 2.3급 모두 4문항이고 쓰기는 2급이 4문항, 3급이 4문항이다.
모두 매우 소수다. 공개한 예시문항을 보면 영어의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은 거의 다 포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듣기/읽기뿐일 때는 그나마 희망을 가지던 아이들과 교사와 함께
파닉스도 배우고, 기초 단어도 익히고 하던 아이들이 새로 추가되는 말하기/쓰기의 목표 앞에서는
더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평소에도 ‘이 아이들에게 영어/수학을 배우게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가능한 일인가?’란
좌절감을 느껴오던 터인데 이 아이들에게 말하기/쓰기까지 지도하려 할 때 교사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교육의 책무성 논리로 말하기/쓰기 성적 향상을 요구하면 이런 아이들에게는
더 큰 피해가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이는 얼마나 비교육적인가? 학교 현장에는 우스개 같지 않은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정의 부유함 정도를 알고 싶으면 영어로 질문을 해보면 안다.” 그 정도로 영어실력은
가정의 경제적 환경과 직결된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에 대한 근본 대책이 없이
이런 시험도입은 매우 우려스럽다. 영어격차 해소를 부르짖던 정부정책과는 정반대로 영여격차의
확대를 가속화하게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넷째, ‘실용영어중심 영어교육’의 오해와 부작용이 우려된다.
실용영어란 말 그대로 실용적인 듣기/읽기/말하기/쓰기/문법/어휘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분위기로는 그동안의 듣기/읽기 중심의 교육은 마치 실용영어가 아닌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 뿌리는 ‘10년 영어공부하고도 벙어리; 편지 한 장 못 쓴다’란 비판과 관련이 깊다. 이것을
가능하지 않게 만든 주범은 입시와 문제풀이 중심의 학교 교육이다. 이런 환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실용영어=말하기 강조’가 과연 바람직할까? 언뜻 들으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면 우려되는 면이 많다. 강조하더라도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면 현 한국적
상황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또, 읽기의 상대적 소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사실 정확성만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고, 사용의 기회만 주면 누구나 유창한 콩글리쉬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영미모국어에 가까운 발음과 정확성을 목표로 달려왔다는 데 있다.
스웨덴처럼 명사 다음에 괄호치고 알맞은 전치사 넣기 등을 시험에 내지 못하게 하였더라면
중고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이면 떠듬거리면서라도 콩글리쉬로 서바이벌 수준의 영어구사는
누구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 기간 중에는 생활 속에서 영어 말하기/쓰기의
사용기회가 거의 없고, 사회 구성원들(특히 교사와 학부모) 간에 신뢰가 적어 객관성과 신뢰성을
유난히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지금까지의 객관식 문제 풀이 교육이 불가피했던 면은 있다.
실용영어 강조가 읽기(reading)의 소홀을 불러와서도 안 되며 ‘한국적 상황에서는 실용영어 강조가
읽기의 강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을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시아적 상황에서 읽기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주장해온 세계적인 학자 Stephen Krashen을 들먹이지 않고도 왜 한국적 상황에서는 실용영어의 중심은 읽기가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읽기는 한국적 상황에서 마음만 먹으면 항상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입시중심의 한국적 영어교육 상황에서도 영어 읽기는 절대적인 영어 노출시간을 늘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영어몰입교육 도입 논란이 뜨거웠었는데 몰입교육 이전에
영어 노출량을 늘기기 위해 다독(extensive reading)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더라면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어 읽기의 또 다른 장점은 영어공부와 독서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독서의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감성, 인성, 긍정적 자아개념, 창의성, 사고력
신장 등 학교 교육으로 제대로 해줄 수 없는 것을 영어 독서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지금의 수능
시험에서 영어지문을 좀 더 긴 것을 내고 요약이나 주관식 문제를 내면 독서를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면 듣기/말하기 실력의 기초도 잘 갖춰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독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음의 개입이 필요하다. 우리의 뇌는
단어(문자언어)를 보고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소인식(phonological awareness)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테면 ‘d-o-g’란 단어를 보고 ‘개’란 의미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도그]라는 발음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뇌과학이 밝혀낸 내용이다.
그래서 읽기를 위해 음철법(phonics)의 선행 학습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읽기는 소리로 읽든
녹음을 동원하든 듣기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권장될 읽기 책에는 구어체 표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상황과 함께
주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구어 표현을 어떤 상황에 쓰는지도 동시에 배울 수 있다. 읽기와
말하기/쓰기는 매우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Krashen의 주장처럼 영어를 모국어나
제2외국어가 아닌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는 많은 읽기로 영어란 외국어
시스템을 익히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고교 혹은 대학에 가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말하기/쓰기를 잘하고 싶으면 그때부터
하면 된다는 것이다.그리고 말하기/쓰기를 할 때 읽기를 통해 내용지식을 충분히 쌓지 않으면
서바이벌 수준 말고는 할 말이 제한적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어떻게 말할까(how to say)
와 무엇을 말할까(what to say)가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 영어 읽기는 말하기에서 무엇을 말할까를
담당해준다. 읽기가 영어 말하기/쓰기와 매우 다르고, 지금까지의 읽기/듣기 중심의 교육이
잘 못된 것처럼 여겨온 것은 큰 오해다. 영어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그 내용에 대해 요약하고
간단한 토론이라도 이뤄지는 수업을 했더라면 읽기와 말하기/쓰기가 완전 분리된 것이란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리하면 실용영어중심의 영어교육이 지금까지의 듣기/읽기보다 말하기/쓰기에 더 비중을
둔다면 이는 큰 우(遇)를 범하는 것이며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말하고 쓰고, 읽은 내용에 관해 말하고 쓰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 풍부한
제대로 된 듣기/읽기 교육을 하는 것은 국영평 도입과 상관없이 영어교육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다섯째, 채점 부실이 우려된다.
미국 주요 말하기 시험의 경우(예: ACTFL) 피 평가자의 사례를 놓고 복수 평가자들이 준 점수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많은 논의를 하면서 평가자의 평가능력을 계속 향상시킨다. 말하기/쓰기의
평가능력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어렵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평가기준의 정교화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영어를 영미 모국어로 평가해오고 가르쳐 오던 교사들이 세계어로서의 영어를 정확성
위주가 아니라 의사소통 가능성 위주로 평가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방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전환까지 뒤따라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한국 영어교육의 비효율성의 주범 중 하나가
미국영어 중심의 지나친 정확성 위주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영평을 도입하려면 소기의
목적을 달 성할 수 있도록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
여섯째, 수업의 파행이 우려된다.
특히 영어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국영평 ‘우수’를 획득했을 때 그 학생은 영어 수업에 소홀해질
수 있다. 교과부 의도대로 수능 시험을 대신할 국영평의 난이도는 2급이 ‘읽기 영역의 예상정답률이
현 수능보다 5~10% 높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상위권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읽기 수업에
종전보다 더 소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난감해질 수 있다. 또, 중학교 영어
수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학교간, 지역간 성적을 통한 책무성을 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육과정에 충실한 교육보다는 국영평 준비에 충실한 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곱째, 교단의 분위기가 우려된다.
영어 말하기/쓰기를 가르칠 영어교사의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국영평이 도입되면 영어 교사들은
표현능력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와 없는 교사로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교사에 대한 학생의
존경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어 선생님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그냥 가중치가 낮은 내신일 때는
그럭저럭 넘어 갈 수 있었지만 이제 말하기/쓰기가 대입시에 중요한 역할을 할 때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영어 교사의 역량에 대해 더 높은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교사에게도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할 것이다.
여덟째, 변별력 부족이 우려된다.
대입시에 변별력 부족으로 대학은 또 다른 보완 시험을 보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영평의
도입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능 대체와 본격 시행을 결정하기 전에 대학과의 사전
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아홉째, 교육과정 내용, 국영평 도입취지와 국영평의 평가기준의 불일치가 우려된다.
교육과정에서는 한국 공교육이 목표로 하는 영어는 영미모국어가 아니고 세계 공용어로서의 영어
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 국영평 평가 기준을 보면 말하기 평가에서 발음의 정확성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이해가능성에 비중을 두겠다는 조치, 그리고 읽기 시험에서 문법을 뺀 것은 늦었지만
크게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말하기 평가의 발음뿐만 아니라 쓰기의 경우에도 이해가능성에
무게를 둔다는 선언과 해당 평가기준에 이를 반영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말하기는 이해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쓰기는 여전히 세계어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미국영어 중심의 정확성에 비중을 두어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교육과정에서는 이문화자 간의
영어 사용능력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국영평에는 이의 반영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미국영어로만
녹음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영평 외에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교과서에는 듣기/말하기/읽기/쓰기
외에 제 5 스킬이라고도 부르는 이문화자간의 의사소통(cross-cultural communication) 스킬을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세계어로서의 영어 평가기준은 지금까지의 전통적 미국영어 중심의 영어평가 기준과 다르고 이를
사회적 공감확산과 함께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영어를 세계 공용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세계의 어떤 영어를 규준(norm)으로
볼 것인가와 유창성(fluency)의 정의, 평가까지 달라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Q4.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1. 특히 평가와 시설 측면에서 실행가능성을 재점검해서 부족한 점을 더 충실히 보완한 후 수능
대체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2. 국영평의 도입의 부작용이 감내해야 할 만큼 장점이 큰가를 다시 한 번 면밀히 분석해본다.
3. 사교육 의존도 증가로 소득에 따라 날 수 있는 사교육 기회 격차를 줄일 방안을 마련한다.
학습부진아나 기초학력 미달자도 노력하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일부 포함시키는 쪽으로 국영평
시험 구조를 개선한다.
우선 한 가지만 지적 하면, 지시문이 너무 길다. 게다가 이것이 영어로 되어 있다. 이는 기초학력
미달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약점인 작업기억(working memory) 용량이 작아 지시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평가도 지시문을 영어와 모국어로
주기도 하는데 영여 격차를 줄이겠다면서 이렇게 긴 지시어를 영어로 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이 평가의 주목적은 줄 세우기가 아니라 학습자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4. 영어능력 평가시험의 평가기준을 영어과 개정 교육과정 실현이 가능하도록 개선한다.
발표된 국영평의 평가기준은 여전히 정확성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확성 보다
이해가능성에 더 중점을 두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서 세계어로서의 영어(EIL: English as an International Language) 패러다임
도입을 선언하였다면 발음뿐만 아니라 쓰기의 경우에도 이해가능성에 무게를 둔다는 선언과 해당
평가기준에 이를 반영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가자들은 3인칭 단수에 s를 붙이지 않은 경우, ‘논의하다’를 discuss about으로
말하고 짐가방을 셀 때 two baggages라고 말했을 때 과연 감점을 주지 않을지 궁금하다. 문법의
정확성을 낮은 수준이라도 반영해야 하겠지만 이 때 그 기준은 틀린 항목이 의사소통에 지장을
주는 오류냐 아니냐를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어로서의 영어란 언어 적합성을 잘 갖춘
경우이면 영미의 문법과 달라도 틀린 것으로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가령 인도영어나 싱가포르 영어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 부가의문문에서 주절의 조종사나
시제와 상관없이 isn't it?를 사용하는 것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또 Aren't you coming? 이란
대답으로 No, I am coming.으로 대답하는 것을 세계어로서의 영어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어교육이 미국영어 중심의 정확성 중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영어
교육 성과에서 놀라운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교육만으로도 영어 표현기능 교육이 가능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한편, 정확한 영어에 대한 기준이 영미 원어민이 사용하는 영어가 아니라 유창한 한국인
교사의 발음과 영어란 의식을 우리 사회가 갖게 될 때 영어 미국영어 일변도의 시대착오적인
상황도 개선하고, 한국인 영어 교사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을 것이다.
정리를 하면, 국영평의 도입은 더 많은 준비와 검증이 필요하다. 또, 시범운영을 통해
실현가능성과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요인을 충분히 확인 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어
격차 심화와 사교육 증가 정도 등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 마련과 함께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실용영어 강화가 말하기/쓰기의 강화를 의미한다면 교실 밖에서 사용할 기회도
없는 한국적 상황에서 실현도 어려울 것이고 올바른 접근도 아니란 점을 국가는 물론 우리 사회가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한다. 세월이 지나 이 거시적 판단 잘못으로 또 한번 한국 영어교육의 방향이
잘 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교과부와 평가원이 유럽의 학자 4명을 초빙해서 한국의 영어교육 방향에 대해 워크샵을
개최한 적이 있다. 그 때 세계적인 영어 연구학자 David Graddol은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한국
실정에 맞는 영어교육 방식’을 권했다. 이 때 한국의 실정이란 ‘교사의 영어 구사 역량, 학급의
학생 수, 한국에 맞는 교수학습법’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국가나 한국의 영어
교육계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우리가 정말 ‘Think globally(세계화된 세상에 영어의 필요성은
크게 강조하되), Act locally(한국실정에 맞게)’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한다
첫댓글 잘 읽고 .. 여러가지 생각도 해보구.. / 도움이 되는 글 이었어요.. 고맙습니다.. ^)^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시,, 터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