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 14차 산행기
일시; 2015.4.12 10:25--17:05
구간;까치고개--홍동산-수덕고개-덕숭산
--나분들고개--뒷산--한티고개--411m봉
--한서대학 (접속)
봄은 꽃과 함께 찾아 온다고 하였다.
하얀 목련화가 꽃 망울을 터트리고 개나리 진달래가 산과 들에 봄을 싣고 온다.
모진 눈 보라를 견디고 여린 가지에도 꽃이 피어나는 걸 보노라면
걸핏하면 감기를 달고 사는 우리네 인간들이 한없이 나약해 보인다.
출발을 하면서 운영요원이 하얀 찰떡을 나눠주고
물새님은 박카스와 우루사를 준비해 와서 허허한 뱃속이 호강을 한다.
용인에서 참여한 줌마님이 호박 엿을 한 봉지씩이나 안겨주는 바람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려가니
삼화 목장에도 파란 들풀이 능선을 뒤덮고 있고 해미읍 방향의 들판도 연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가야산 정상을 바라 보면서 해미 IC 로 빠져나와서 한서대학 앞에서 2명을 태우고 시골길을 달린다.
당진에 거주하는 화투님이
사전 답사도 하고 식당도 예약을 하여 고마운 정성이 가득하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논밭 사이 도로를 따라 가다가 넓다란 공터, 까치고개에서 버스가 멈춘다.
예전 같으면 고개 마루라고 불렸을지 몰라도
도로가 개통되고 차량이 빈번한 요즈음에는 고개라고 하기보다 삼거리 정도라고 불릴 만한 지형이다.
오랜만에 단체 사진을 찍고산행 준비를 하는 사이
선두는 훌쩍 달아나서 숲으로 사라진다.
출발지점 까치 고개
오늘 산행은 홍성군과 예산군 덕산면 경계를 따라 진행 하다가
홍동산을 지나서 부터는 좌우 모두 예산군 덕산면을 지나고
나분들고개 뒷산에서 부터 좌측은 서산시 해미읍으로 들어선다.
육괴정으로 산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수덕고개를 지나고
일엽 스님과 이응로 화백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수덕사를 품은 덕숭산을 지나서
대원군 부친의 묘를 이장 할 때 마지막 상여를 메고 운구해준 나분들 마을과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길로 조성된 한티고개를 지나는 길목이 기억에 남을 만한 구간이다.
후미 그룹과 함께 2차선 도로 끝, 홍성군 생활쓰레기 처리장을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다소 흐린 날씨 이지만 바람도 시원하여 산행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앞서가던 일행이 숲으로 들어가서 나무 가지에 메달린다.
아기 손가락 만한 엄나무 잎이 가시 사이사이로 움트고 있고
조금 더 지나니 두릅 나무에도 땅콩만한 잎이 가지 끝에 올라와 있다. .
평탄한 등로를 지나서 완만한 경사면 소나무 숲으로 올라서서 이어 가다가
마사토가 뒤 덮힌 등로를 지나고 낮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눈이 즐겁다.
뒤 돌아 본 홍성 일월산 모습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홍성읍이 내려다 보이던 일월산이 따라오고
오른쪽 으로는 용봉산의 암봉이우리와 함께 나란히 한다.
발 아래는 사찰같이 보이는 건물, 한국 고 건축 박물관이 숲 속에 자리하고
주변은 논과 밭이 가지런하다.
한국 고건축 박물관 원경
조금 더 오르니 아뿔사,
좌측 능선과 사면은 온통 산불의 잔재로 볼쌍 사납게 그을려져 있다.
2년 전에 이곳을 지날때는 오른쪽 사면이 산불 후유증으로 서서히 복구 중이었는데
이번에는 왼쪽 덕산면 사면이 흉물스럽게 변해 있다
군데 군데 서있는 흰 바위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조금더 진행을 하니 홍동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 마져 산불에 그을려 가슴 아프게 한다. .
그리 높지 않은 산 이지만그래도 주변의 조망은 아주 뻬어나다.
홍동弘東산(309m)
동쪽의 넓은 산이라는 이름이 무색 할 만큼 그리 높지도 넓지도 않은 산이다.
가까이는 용봉산과 덕숭산,
그리고 멀리 홍성의 일월산과 가야산에 둘러 쌓여 있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다. .
정상에서 조금 더 옆으로 내려서니
가야 할 방향으로 검 푸른 숲에 쌓인 덕숭산과 수덕사가 안온하고
그 뒤로 가야산 정상의 봉우리도 우뚝하다.
출발 지점을 뒤돌아 보면 홍성 일월산과 그 뒤로 오서산 능선이 우뚝하고
그 사이에 들어선 산과 들이 넉넉해 보인다.
덕숭산(앞)과 가야산(뒤)
예산, 덕산, 수덕사라는 이름은 고향에 온 듯 포근하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예산에서 덕산까지 와서
벛꽃과 개나리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수덕고개를 넘어서서 수덕사 일주문을 지났고
대웅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던 풍광에 이끌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사찰이다.
이러한 분위기도 잠시, 뒤 따라 올라 온 여성 회원들의 함성에 정신을 차릴 수 가 없다.
암봉에서, 연 분홍 진달래 꽃에 묻혀서 내 뱉는 함성과 몸짓이 폭발하듯 터진다
한 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나서
봄 냄새를 흠뻑 마시고 진달래 꽃에 취한 모습들이 아름답다.
뭉클님, 동구리님과 셋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보지만
현란하게 취하는 포즈를 따라 잡기에는 느린 셔터가 야속하다.
산불은 능선을 넘어서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태우고
화마에 쓰러진 나무 등걸이 등로를 어지럽힌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평탄한 등로가 이어지면서
곳곳에 피어있는 연 분홍 진달래가 수시로 발길을 잡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산행 초반에는 힘들어서 쓰러질것 같이 오르지만
몸이 풀리면(?) 흥에 겨워 숨은 재주를 쏟아내는 명랑소녀, 물새님이 멋지게 뽑아낸다.
완만한 비탈길을 내려 서면서 용봉산 악귀봉 가는 갈림길을 지날 무렵
선두 그룹의 무전을 받고 걸음을 빨리 한다.
잠시 후에 등로 옆에 있는 묘지에서 미리 도착한 선두 그룹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다.
도토리 묵, 달래 무침, 씀바귀 뿌리 무침이 입맛을 돗우고
산행중에 채취한 엄 나무 순으로 쌈을 싸서 입에 넣으니 봄 향기가 가득하다.
맛있다는 감탄사와 함께 왁자지껄 시끌벅적,
이렇게 많은 인원이 야외에서 하는 식사, 그 자체가 건강 밥상이자 웰빙이 아닐까..?
봄 향기에 마음도 푸근하고 화려한 식단에 배도 부르다.
식사를 마치고 오롯한 소나무 숲 길을 지나 수덕고개로 내려서는 길목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검 붉은 꽃을 가득 메달고 반겨준다.
수덕고개와 남아 있는 회화나무
국도 40번이 지나는 이 고개의 정식 이름은 수덕고개이다.
예산군 덕산면에서 수덕사 입구를 지나 광천, 해미 방향으로 연결되는 큰 길이다.
과거에 괴수나무(회화나무) 여섯 그루가 있었으며 정자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덕고개라는 지명 대신에 육괴정六槐亭 이라고 만 표기된 자료가 더 많다.
지금은 정자는 없어지고 나무 3그루만 남아있다.
한 여름에 이곳을 지날때는 상가 앞 마당에 있는 수도가 큰 도움이 주었던 곳이며.
특히, 덕산 방향에서 수덕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벗 꽃과 개나리가 아주 아름다운 길이다.
덕산에서 수덕고개로 이어지는 꽃 길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을 피해 도로를 건낸다.
돌 축대를 지나 능선으로 바로 오르던 등로는
새로 설치한 철망 담장으로 인하여 덕산 방향으로 200M 여 미터를 지나서 되돌아 오게 되어있다.
10여분 후에 등로 중턱에 있는 넓직한 마당 바위에 도착한다.
지나온 홍동산 능선과 수덕고개 주변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당바위에서 조망--수덕고개, 홍동산
서서히 경사를 높이면서 소나무 숲 길을 오른다.
좌우로 흩어진 바위를 지나 평탄한 능선에 오르니
좌측으로 난 계단 길이 우리가 오르는 정맥 등로와 합류한다.
계단길은 수덕사로 내려서는 중턱에 있는 전월사로 이어져서 수덕사로 내려가거나
수덕고개로 바로 내려 갈수도 있는 호젖한 길이다.
바위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니
기와 지붕과 담장 끝에 소슬 대문 같은 조그만 문이 연결되어있다.
수덕사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 능선과 계곡에 산재한 암자와 요사체는
대 부분 담장이 둘러쳐진 구조로 되어있다.
담장이 왜 필요 할까…?
비구니 사찰이라서 일까…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는 걸까 ..?
숭덕산 오르는 중턱, 좌측 에 있는 전월사
전월사轉月舍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늘의 달을 굴리는 집이라고나 할까....
만공 스님이 말년에 이 곳에 초암을 짓고 지내다가 1946 년 가을에 입적 하엿다고 한다.
입적 전날, 세수를 하다가 "이제는 자네하고 헤어져야 할 때가 왔군...." 이라고 하고서
다음날 덕숭산 정상 아래 정혜사에서 입적 하였다고 한다.
일제 치하 에서도 간월사를 크게 중창 하시고 많은 일화와 설법을 남기신 분으로 기억하는 분이다.
간식을 나눠 먹고 나서 능선을 따라 올라서니 등로 좌측으로 큼지막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바위에 기대서 바라보는 조망은
지나온 홍동산과 그 뒤로 일월산, 오서산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오서산을 지날때가 12차, 일월산은 13차 산행을 하면서 지났는데
오늘 산행을 마치면 남은 정맥 구간은 100여km 정도가 될 것이다.
언제 다시 이곳에 서서 저 능선을 가 볼 수 있을까..?
흰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생각해 본다.
앞에서 부터 홍동산, 일월산(백월산), 오서산
큼직한 바위는 서구인들이 로데오 경기를 할 때
앞 뒤로 심하게 흔들리는 말 잔등 같은 인상을 풍기는 모습이다.
조심 조심 바위에 올라서니 수덕사 대웅전 지붕과 앞 마당이 드러난다.
누군가가 수덕사의 최대 조망은 대웅전 앞 마당에서 정면으로 내려다 보는 조망이라고 하였다.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 좌우로 3-400미터 정도의 산이 넓은 들을 감싸고 도는 풍광은
저절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고즈녁 함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이 바위도 그러한 느낌으로 바라 보는 조망이 뻬어난 곳이다.
수덕사 경내와 그 앞으로 사하촌과 외라리 마을 원경
뒤따라 올라선 뭉클님의 장난기가 발동한다.
동구리와 여성회원 둘, 4명이 함께 바위 날등에 올라가서 무등을 태우는 듯 즐겁다.
가칭, 로데오 바위에서 즐거운 4인조
한 동안 즐기다가 내려와서 곧 정상에 도착한다.
까만 오석에 새겨진 정상석에는 덕숭산(수덕산) 495m 라고 새겨져 있고.
수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닿아서 인지 소나무 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난 곳이 많다.
덕숭산(수덕산) 정상석
정상의 북쪽과 동쪽은 뻬어난 전망을 안겨준다.
북쪽 방향은 다음 구간의 가야산 정상과 그 옆 원효봉이 코 앞에 다가선 듯한 모습이고
동쪽으로는 덕산면과 그 뒤로 예산읍으로 연결되는 넓은 들이 홍성 방향으로 연결되어
이른바 내포평야라고 불리는 드넓은 지역이 펼쳐진다.
홍성 방향은 용봉산의 마지막 산 자락이 내려앉는 지점 능선 너머로
새로 옮긴 충남 도청의 건물도 드러난다.
덕숭산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산(좌)과 원효봉(우)
홍성읍과 새로 옮긴 충남 도청 원경
뭉클님과 함께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저곳이 예산, 덕산면 소재지 입니다.
중간에 섬 처럼 생긴 저곳이 윤 봉길 의사가 태어난 곳입니다.
예산과 홍성을 중심으로 10여개의 고을을 내포라고 불렀습니다.
예전에는 한양의 선비, 관리들이 별서別墅라고 불렀던 별장 같은 집을 한채씩 두었다고 합니다.
한양이 가깝고 풍요하고 인심 좋은 이곳에서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 지역은 풍수지리상 명당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아들 2명이 왕이 된 대원군의 선친 묘가 있고,
근래에는 대통령을 꿈 꾸던 정치들이 줄 지어 선친의 묘를 이장을 한 지역 이기도 합니다.
내포 지역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포교와 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인구 대비 천주교 신자가 다른 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곳 입니다.
덕산면과 예산 읍 원경
잠시 둘러 보다가 후미 그룹 다섯만 늦은 것 같아 서둘러 내려선다.
이동 통신탑이 세워진 오른쪽 뒤로 내려 서다가 느낌이 이상하여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낡은 철조망 시설물이 보이고
흙 바닥에는 기분죤이라고 산악회 이름을 써 놓았다.
동구리님이 무전을 하더니 이 고문님 일행이 이동 통신탑 능선으로 갔다고 한다.
건너 편 암봉을 보니 울굿불굿한 등산복 일행이 뒤 돌아 오는 모습이 보인다.
정상에서 정맥 능선으로 들어가는 철조망
철조망을 건너서 능선에 접어들면 또 한번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정맥 꾼들이 가끔씩 알바를 하는 Y 자형 갈림길로서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가야 하는데 좌측으로 가다가 지형을 보고 되돌아 오는 곳이다.
덕숭산 정상에서 발생하는 이런 착각은
등산 경험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기다리던 능선에서 조우한 알바팀은 예상보다 많아 9명이나 된다.
함께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가야 할 방향을 가름해 보고 가파른 등로를 내려선다.
합류한 알바 팀과 함께....
잡목이 가로 막는 구간을 지나고 절개지 사면 시멘트 옹벽 위를 내려서서
해미에서 덕산 읍으로 가는 지름길 도로, 45번 국도로 내려선다.
좌측에 있는 지하 통로가 가깝지만 비닐 하우스와 밭이라서 포기하고
우측 방향으로 차량이 U TURN 할수있는 차도를 통해서 이어간다.
도로 옆에는 급 경사 철제 사다리가 설치 되어 있으나
낡은 시설물과 가파른 경사도로 인하여 사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도로 건너편나분들 마을에 도착하니
은행나무 가지에는 선답자의 꼬리표가 빼곡히 메달려 있다.
그 옆에 있는 낡은 뷔페 식당과 모텔은 새로 난 국도로 인하여 폐업한지 오래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은 금북 정맥 꾼들이 한 구간을 마감하고
다음 구간으로 이어가는 분기점으로 활용을 하기 때문에 꼬리표가 많이 메달린 것이다.
나분들 마을과 뒷산
대원군이 경기도 연천에 있는 선친,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 자락 상가리로 이장을 결심한다.
상여를 메고 시신을 옮기는 일은 한 지방을 지날 때 마다 지방민들이 일꾼으로 동원 되어서
500여 리를 옮겼으며 나분들은 지근 거리에 있는 상가리 까지 마지막 상여를 옮겨 준 마을이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상여를 이곳 마을에 기증하였으나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나분들은 충청도 사투리로 “남은 들” 이라는 말이 음변 되었다고 하며
안흥진까지 이어지는 정맥 구간에서 같은 이름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나무 뒤 언덕을 올라서 밭을 가로 지르고 묘지 있는 곳에서 대나무 숲 사이로 들어선다.
농작물이 한참 자라는 계절에는 밭 주인과 실랑이를 자주 벌리는 곳이다.
마을과 밭을 지나고 뒷 산으로.....
완만한 경사는 중턱에 있는 묘지에서 잠시 쉬었다가 급경사로 바뀐다.
바위가 이리 저리 흩어진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모두들 힘 겹다.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산 이름이야 나분들 마을의 뒤에 있어서 뒷산이라고 한 것으로 추측 되지만
덕숭산이 495m로 더 높으나 449m뒷 산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주변의 조망이 없는 이 구간은 체력이 고갈된 산행 후반부 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이 가까워 오니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이 강하다. .
능선 갈림길에 오르니 나무 기둥에 큼지막하게 뒷 산이라고 이정표를 써서 붙여 놓았다.
정맥 능선에서 살짝 벗어난 뒷 산 정상
뒷산 정상은 이곳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이고
그곳에서 또 20여 미터를 더 나가면 전망 바위가 멋진 조망을 안겨주는 곳이다,
서쪽 방향으로는 천수만을 끼고 태안 반도의 산 줄기가 아스라히 지난다.
능선 너머로 천수만과 태안반도 줄기
약간 우측으로는 해미읍과 그 뒤로 서산시 지역이 드러나고
멀리 오봉산 자락과 태안 백화산 자락도 시야에 들어온다.
저 아래 도로 중턱이 한티고개이더만요….
이 지역 출신답게 이리 저리 자세히 설명하는 화투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해미읍과 서산 방향 원경
다시 분기점으로 되돌아 와서 짧은 시간에 한티 고개로 내려선다.
넓직한 공터, 고개마루에는
큰 십자가 앞에 야외용 예배를 위한 강단이 설치되어 있고 한쪽으로는 정자와 화장실도 있다.
길은 좌측에서 올라와서 뒷 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길 옆에는 성경 말씀을 새겨 놓은 조그만 돌 비석들이 군데군데 놓여있다.
해미성지와 천주교 박해 사건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사건이자 생생한 역사이다.
조선시대 후반,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해미읍성,
충남 도청이 발간 한 자료에 의하면
충남에는 현재 14곳을 선정하여 천주교 성지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온 3차 구간, 성거산 성지를 비롯하여 당진 합덕읍 신리성지,
그리고 이곳 해미 성지는 순교자들의 삶과 처형 당시의 기록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그 길을 따라 순례자의 길을 조성한 여러 구간 중에서도
이곳 한티고개를 지나는 길은 해미순교 성지를 기점으로 해미읍성, 한서대 앞, 한티고개를 넘어
대치리까지(나분들 마을 덕산 방향 옆 동내) 이어지는 11km이다.
아라메(솔 바람) 길 –도보 순례(한서대 방향)
---한티고개에 설치 된 아라메길 지도에서---
마지막으로 앞에 있는 봉우리를 올라가서 하산하면 끝 입니다.
시간상 약 30 여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중턱에 이르니 이 고문님의 소개로 처음오신 여성 두 분 중 한 분이 주저 앉는다.
뭉클님이 성큼 베낭을 받아 둘러 메고 앞장을 선다.
다왔다고 하더니만..갈수록 힘드네요…
힘들다고 하면서도 조곤조곤 산행을 잘도 하시네요.
그렇게 걸어 다니시면 등산화 10년은 사용 하겠습니다요…….
목이 짧은 트래킹 화를 신고 온 여성 한 분이 힘들어 하면서 내 뱉는 말이다.
채석장을 좌측으로 바라 보면서 가파른 능선을 10여 분 오르니
억새 숲으로 뒤 덮힌 정상에는 조그만 삼각점(411m 봉우리)이 설치 되어있다.
10여 미터를 더 진행하니
내리막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한서대 갈림길”이라고 쓴 이정표가 나무 가지에 메달려 있다.
앞서가던 화투님을 불러 세운다.
이곳으로 하산 하는 것 아닌가요 ?
아니요, 제가 답사 할 때는 저 건너편 능선에서 내려 갔습니다
그쪽까지 얼마나 되지요 ?
10-15분이면 될 것 같은데요….
능선의 높이는 고만고만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 되지 않을까요 ?
411m 지나서 있는 표지판
예전의 기억으로는(이곳부터 가야산 정상까지 사이에) 갈림길 이정표가 두 곳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정표는 저 건너 능선 끝 밋밋한 봉우리 입니다.
이 곳도, 그 곳도 내려가 보지 않았지만 어느 지점이든 하산 시간은 비슷할 것 같은데요..
선두는 어디로 내려 갔을까요 ?
다음 구간 출발점도 동일한 지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화투, 뭉클님과 의견을 나누다가 주변을 둘러 본다.
답사를 한 화투님이 없는 선두그룹이 어느 지점에서 내려 갔을까 ?
또 다른 갈림길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선두가 알았을까…?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처음 만나는 이곳에서 내려갔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등로가 있는지 확인을 해 본다.
갈림길 암봉 끝에 가서 내려다 보니 낭떠러지 이고 한서대학과 목장이 발치 끝에 가까이 보인다.
되돌아 오면서 살펴 보니 오래 된 꼬리표가 암봉 옆 가파른 경사에 붙어 있고 족적도 보인다.
이리로 가자고 권하고 앞장서서 내려선다.
한서대학, 대곡목장 원경
암봉 구간을 우회하고 능선에 도착하여 희미한 흔적을 보니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된다.
능선을 따라 이어가니 흔적은 점점 더 또렷해 진다.
쌓인 낙옆과 가시 덤불 구간을 지나고 15분 정도를 진행하니
묘3기 옆으로 땅 바닥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선두가 지나간 길로 잘 내려선 것이다.
앞장 선 콩새 총무와 한동안 기다렸다가 후미 그룹과 함께 내려선다.
차단봉이 설치 된 임도를 지나고 S 자 형태로 휘어진 길을 따라 목장으로 내려선다.
그 사이 동구리님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다른 일행 3명이 뒤 따라 온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을 한 결과,
우리가 하산 한 길로 내려서서 차단봉 지점에서 누군가 에게 확인을 하니
그런것이 없었다고 하여서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바람에 많이 늦엇다고 한다.
선두가 갈림길에서 표시만 하였으면 이런 해프닝이 없었을 터인데...무척 아쉽다.
산 비탈을 차지한 목장을 지나 대학 Campus 로 들어서는 차단봉 앞에서
콘센트 건물에서 나오신 할머니가 나와서 불평을 하신다.
이곳은 개인 농장이라 이 길로는 산에 안 댕겨요.
오늘은 무슨 일 이래요 ?
다음에는 오지 마셔유…..
할머니는 목장과 대학은 소유주가 다르다고 언성을 높힌다.
이 고문 님과 함께 사과를 하고 대학 구내로 들어선다.
다음 구간 저 길로 올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머니가 그때 주무시거나…손자를 보러 출타 하면 수월 할텐데......
메모
수덕사
백제 말기에 창건 되었다고 하나 기록은 없으며
고려 공민왕때 나옹이 중수 하였다고 전해진다.
일엽 스님, 경허스님, 만공 스님이 불교에 정진 하면서 수덕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역사적 가치를 제외하고 수덕사의 백미는 두가지 이다.
하나는 대웅전의 고색 창연한 모습과 함께 고려시대 건축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 다음은 대웅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이다.
대웅전은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한 근래의 사찰보다는
벗겨진 단청에 측면의 기둥과 벽이 어우러져 마음에 쏙드는 절 집이다.
한 마디로 절 다운 절이다.
산 중턱의 탁 트인 지점에 자리잡은 대웅전은 여느 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영주 부석사가 대웅전 아래로 겹겹이 펼쳐진 능선을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조망이 있지만
막힘 없이 몇 십리가 내려다 보이고 조븟한 공간을 제공하는 곳은 수덕사를 따를 만한 사찰은 드물다.
규모나 조망면 에서는 못 하지만 대웅전 측면의 모습은 영암 무위사가 이와 비슷하다.
일주문을 지나고 사찰 중간에 자리한 이응로 화백이 남긴 문자추상은
수덕사 여관과 함께 역사가 깊게 베인 곳이다.
그러나 절 입구 사하촌은 어지간한 도회의 중심 같이 번화하고 어수선 하다.
주차장을 지나고 사하촌을 지나서 지근 거리에 있는 일주문까지 가는 동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대웅전 앞 마당 아래까지 시멘트로 포장을 하여
예전의 고즈녁한 맛이 사라진 것은 너무도 아쉽다.
(사찰에 대한 것은 사견 입니다.)
주요 Post 별 시간
10:25 까치고개 출발
10:40 수리고개
11:05 홍동산**
12:00---12:30 중식
13:30 덕숭산 **
15:00 나분들 고개
15:45 뒷 산
17:05 한서대학
** 사진 촬영 등으로 지체 되어서 산행 시간은 실제 소요 시간과 많이 차이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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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작정 산이라 오르고 한구간의 산행을 생각없이 끝내고 다음날이면 어제는 어디를 다녀왔나 싶을 만큼 맨붕이었는데 ㅡ
고문님의 산행기를 읽고 또 읽어 내려가다보면
아 ㅡㅡ여기구나 하고 새록 새록 다녀온곳이 생각 나곤 하네요 ㅡ~~~^^^^^
이렇게 재밋고 정감어린 소설을 읽게해주신 고문님 감사드려요
먼 훗날에 책으로 편찬 하심 꼭 구독 하겠습니다 ~~~^^^^^
늘 감사 드립니다
산악회와 카페를 위해서 쓰고 계신 마음 깊이 새깁니다.
오늘도 한권의 책은 읽었네요
내려와서 온누리님과 할머니대화가 그거였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안녕하세요"큰소리로 인사했는데
어쩐지 얼굴 표정이 일그러 졌다했네요~
무식하고 모르면 용감~ㅋ ㅎ
온고문님의 후기를 읽을 때마다 감탄과 경의를 표합니다. 세상에 이런일이.....^^
잔득 찌푸린 날씨 탓인지~~
내맘두 우울한데~~~
맘 가다듬어 후기를 읽으니까~
지나쳐온 곳두 하나 하나 기억이 나네요~~~마지막 하산할때~~
커뮤니케이션 이 좀만 잘 이루어졌더라면~에휴~!!!
한편의 소설 잘 읽었슴다~~~
늘~~기다려지네요~산행 후기가 ㅋㅋ
따듯한 산행후기 언제나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건강 조심하셔요
역쉬~~ ^^
뒤를 따르노라면 잔잔히 들려주시는 지리 역사 이야기속에 저는 어느새 그순간만큼은!
다소곳 경청하는 학생이되어 온고무님의 존재성에 감사함과 존경심이 우러남니다
돌아서면 알사탕까먹듯 흡^.~
메모리 양이 적은 관계로 무지 창피
늦은밤 02시에 아니 너무 이른 아침 다시금찬찬히 잘읽었습니다
와...이제서 읽어 보면서..감탄에 감탄도 하고 경희 불러서 우리 얘기 있다고 한참 웃고 했어요...어느분이신가 했는데 꼬리말 읽고서 확실하게 알았어요.죄송...잘 읽었읍니다.수고하셧어요...지나쳐 온곳 미쳐 보지 못한 곳을 고문님 덕에 자세히 보게 되네요...감사 드려요..잊어 버리게 되지만 듣는동안은 열심히 듣는 학생으로..유홍종학자 부럽지 않네요..고문님 계시니...
벌써우리 옆동네까지 지나갔네요
산맥 진짜 몰랐는데
정맥이란 줄기를 조금씩 알아가는게 감사할뿐입니다
고문님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