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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멀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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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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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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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원각 시절 금실,, 은실,, 로불리우던 건물.
대웅전이라고 불리우는 극락전 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따.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왼편엔 관세음보살, 오른쪽엔 지장보살을 두고 아미타 부처님이 극락전 중앙에..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씨의 작품인 관세음보살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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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명상 등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도 개방이 되어 있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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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구석 에서 나를 반기며....
금년엔 늦었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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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들의 처소 라는 데....
무신 방가로.같기두..?
빌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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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집' 맞은 편 다리를 건너면..
길상사의 전신 대원각의 주인이였던 김영한 할머니의 공덕비가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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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쉬면서...리..
..
버리고 떠나기.......법정스님.
버리고 비우는 일 은 결코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선택이다 .
버리고 비우지않고는 새것이 들어설수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냥 비어있는것이 아니라 그공간과 여백 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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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기서잠시 ...
한편의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김영한 할머니의 이야기. 가 빠지면 안된다..
갑자기 몰락한 집,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스스로 한성 기생 "진향"이가 되어야했던
열 여섯살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가곡과 궁중무를 배워 권번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잡지에 수필을 발표하며 미모에
시와 글, 글씨, 그림, 춤, 노래 등...다재다능한 기생으로서 명성이 자자...
그녀의 이름은 김영한.
스물 세살의 영한은 흥사단과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던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도쿄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지만
스승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 함흥 감옥을 찾았다가 면회를 거절당한다.
함흥 기생이 되면 지역 유지의 도움으로 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신지식의 여성에서 다시 기생의 길을 택하게 된다.
이 때,
시인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김영한 보다 네 살 연상이였던 시인 백석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함흥 영생여고 영어 교사로 있다가
우연히 만난 기생 김영한과의 첫 만남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지만
백석 집안에서 기생에 빠져있는 아들을 가만 둘리 없고
서둘러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버린다.
결혼식 날 밤, 백석은 집을 빠져나와 그녀에게 달려와 함께 만주로 달아나자고 설득하지만
영한의 단호한 거절로 결국 백석은 홀로 만주로 떠나버리고
이것이 두 연인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백석은 만주를 떠돌다 해방을 맞아 다시 고향 함흥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이미 서울로 떠나고 난 뒤였고
그 후 백석은 북한의 체제 속에서 핍박을 받으며 기구한 삶을 살게 되었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한 여인 김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대의 요정인 대원각을 운영하면서
1996년 2억원을 출연하여 자신의 연인을 기리는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7000여평의 대원각의 대지와 건물 40여동 등 1천억원 대의 부동산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여
길상사라는 절이 설립되었다.
처음 법정 스님께 대원각을 시주하려는 뜻을 밝혔을 때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화두삼아 번번히 정중하게 사양하였다고 한다.
결국, 대원각은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분원으로 등록되어 길상사가 되었으니
법정 스님과는 무관한 사찰이다.
법정스님은 김영한 할머니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고
108 염주 한벌을 손수 할머니 목에 걸어주었다고 한다.
김영한 할머니는 1999년 11월 13일 오후 길상사 경내를 산책하면서
"나 죽으면 화장해서 길상사에 눈이 많이 내리는 날 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이튿날 11월 14일 108 염주 한 벌을 목에 건채 83세의 나이로
그녀의 평생 연인이였던 '백석'의 곁으로 떠났다.
그 해 12월 14일, 길상사에 흰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스님들이 길상사 경내에 그녀의 유언대로 재를 뿌려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육신은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한 여인의 애닮은 사랑과 무소유를 실천한 그녀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으리라...
그가 한말중..
저는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절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안으로 수행하고 밖으로 교화하는 청정도량.
진정한 수행과 교화는 호사스러움과 흥청거림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음은 줏어온글..
이왕가는길에 꽃무릇 에얽힌 이야기도..
옛날, 세속의 한 여인이 스님을 사랑했었다.
여인은 날마다 스님을 그리워했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스님을 만날 수는 없었겠지...
여인은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꽃을 절 앞마당에 심었는데
이 대목은 여인이 상사병으로 죽은 후 무덤가에 이 꽃이 피어있다.....
라고 하여야 더욱 드라마틱하지 않았을까..싶다..
잎이 다 진 다음에 꽃이 피고, 꽃이 진 다음에 잎이 나기 때문에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운명이
여인의 심정을 나타내는 꽃이라고 해서 상사화라고 불렀다고...
실제 꽃무릇은 사찰 주변에서 많이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이러한 전설이 생겨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저승길에 피는 꽃으로 여겨지는데
귀신을 쫓기 위해 집 주변에 심기도 하지만
곷꽃잎의 생김이 마치 불꽃같아 집안에 키우면 화재가 발생한다고 하여
절대 안에 들여서는 안된다는 미신도 있었다고..... ^^;
뭐든 전설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래도 이렇게 나름대로 애절한 사연 한가지씩 부여해주는 것도
운치 있어 좋기만 하다....
첫댓글 덕분에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길상사 차방에서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면 마시는 차 맛이 아직도 그리운 시간이네요. 길상사에서의 바루 공양..시간내어 몇일 묵언 참선이나 신청해야겠어요~ 수종사에서 마시던 차 맛, 청량사에서 마시던 차 맛이 제 각각인것은 내 마음이 제 각각이어서 그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