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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ㅣ 서론(1) ㅣ
어리니 추천 0 조회 32 24.06.28 21:11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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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7.01 15:17

    첫댓글

    무심 24.02.19 08:10

    < 저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식으로
    하느님을 크게 신뢰하며 삽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다수의 복잡한 사람들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을 원해야 할 것입니다. >

    < 물론 이 일에 대한 걱정거리들은 대체로 제가 좋아하는 침묵이나
    고독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저를 도와 주셨고, 이 모든 일거리에 매이지 않는
    은총을 저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일하고 있지요. >


    < ■ 내맡김 영성 ■
    5. '내맡긴다'는 말의 의미는? (1)

    지도사제 09.12.20 16:37


    "맡긴다" 는 것은 맡겼다가도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맡겼다가 찾을 수 있고 다시 맡겼다가 다시 찾을 수 있다. 얼마든지 말이다.

    그러나 "내맡긴다" 는 것은 사전에 나온 대로 "아주 맡겨 버리는 것이다",
    아주 영원히 말이다.

    한 번 내맡겼으면 다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주 영원히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내맡겼으면 그 맡긴 것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리고 내 눈 앞에서 막말로 삶아 먹든 구워 먹든

  • 작성자 24.07.01 15:17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한다.

    "내" 라는 접두어가 붙은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많이 듣고 사용하는 단어들은 내던지다, 내버리다, 내쫒다,
    내딛다, 내닫다, 내갈기다 등이 있다.

    그냥 적당히 던지고, 버리고, 쫒고, 딛고, 닫고, 갈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매우 힘차게 밖으로 멀리" 던지고, 버리고, 쫒고, 딛고, 닫고, 갈긴다는 말이다.

    모두 "절대 돌이킬 수 없다" 는 매우 강한 뜻을 갖고 있다.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 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 번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렸으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주시든지

    우리는 그저 물 위에 떠있는 낙엽처럼, 부는 바람처럼
    그저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하느님 뜻에 그냥 내맡겨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맡긴다" 는 말의 본 뜻이며,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의 시작이며 끝이다. >

  • 작성자 24.07.01 15:18


    < ■ 내맡긴 영혼은 ■
    물 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지도사제 10.11.06 10:00


    내맡긴 영혼의 삶은 "물 위에 떠 있는 낙엽"과 같은 삶이어야 합니다.
    물 위의 낙엽은 자신이 스스로 물 위를 오가지 않습니다.

    낙엽은 물과 바람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물과 바람이 자신을 오가게 합니다.

    그 흐름도 방향도 모두 물과 바람과 계곡에 다 내맡깁니다.
    천천히 흐르다 가도 어느새 빠른 흐름을 탑니다.
    빠른 흐름을 타다 가도 어느새 멈추어 버립니다.

    멈추어 버린 자신을 물과 바람이 또다시 흐르게 합니다.
    때로는 물이 계곡을 요동치며 흐른다 하여도
    그 요동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그 흐름을 타고 그저 유유히 흘러만 갑니다.

    계곡의 갈림 길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습니다.
    낙엽의 모든 것이 자연에 내맡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겨진 영혼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의 이끄심"에 내맡깁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김이
    곧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삶"임을 확신합니다. >

  • 작성자 24.07.01 15:18


    < ★거룩한위탁
    116 pp.578-582 제 4 편 제2장 제4절 평화와 희열 ①

    무화.보조 21.09.08 13:12


    제 2 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 4 절 평화(平和)와 희열(喜悅) ①


    거룩한 위탁은 단지 인생의 무상(無常)함,
    인생의 각가지 사건 안에 있어 귀중한 천주의 자녀의 자유,
    유쾌한 정신의 평온을 얻게 할 뿐 아니라,

    지상에 있어서의 참된 행복, 즉 깊은 평화와 내적 희열(內的喜悅)도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온전히 적합시킴으로써,
    우리는 지상에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장 완결한 휴식을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은 지상을 낙원으로 바꾸는 수단이다.

    어떤 사람이 전에『아라곤』및 『나뽈리』의 왕인 총명하고 박학한
    대『알퐁소』에 묻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는 누구냐고 말을 던졌다.

    왕은 이에,
    천주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이,

    행복 불행의 구별 없이 모든 일을 천주의 손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받아 들이는 이야말로, 그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샹.쥬르「예수.그리스도에서의 인식과 사랑」3편 8.5)

  • 작성자 24.07.01 15:19


    그렇다.
    위탁은 평화를, 깊고 완전한,
    말하자면 산란되지 않는 평화를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선덕」중「위탁」3)

    실제 이 거룩한 위탁의 길을 걷는 영혼은,
    변함 없는 정온(靜穩)을 즐기며, 그들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지상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평화 안에 세상을 보낸다.

    왜냐 하면,
    이렇게 하여 그는 확실히 행복을 간직하고,
    완전한 영혼의 휴식을 찾아냈으며,
    모든 번잡함, 모든 폭풍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사람은, 영혼이 어린이와 같이 사랑에 충만한,
    전능하신 섭리의 팔에 안겨, 안식하는 상태보다도
    복된 상태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섭리에 몸을 맡기고,
    그것에 자기 일엽편주의 조종을 맡긴 영혼은

    모든 고난의 한 가운데서도, 완전한 평화를 즐기며,
    인생의 큰 강을 조용히 항해한다. >

  • 작성자 24.07.01 15:19


    < 내맡김의 삶(영성)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시작이자 마침입니다.
    "내맡김의 삶" 을 살면 누구나 다 쉽고 재미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맡김의 삶(영성)은 참으로 "自由人의 삶" 입니다.
    물 흐르듯 물을 타고 바람 불듯 바람을 타고,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의 뜻을 타고 하느님의 뜻에 이끌려 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삶" 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함께 한 번 그 뜻을 타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지도사제 11.05.31)

  • 작성자 24.07.01 15:21



    무화 24.02.19 09:35

    [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 (Jean-Pierre de Caussade)

    - 그는 1675년 3월 6일에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프랑스 남쪽의 켈시 지방의 어느 곳이었으리라 추측이 되고

    - 1693년 툴루즈에서 예수회의 수련자가 되었으며,
    - 170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 4년이 지난 다음 종신서원을 하였다.(1708)

    - 1720년까지
    코사드는 여러 도시에서 교수 생활을 계속하다가

    그 해를 끝으로 교수직을 접고,
    프랑스 남부와 중부 지방의 여러 곳에서
    설교사와 고백 신부로 일하였다.

    - 1729년 낭시(Nancy)
    방문회 수녀들(Visitation nuns)의 영적 지도자

    일년 동안 그곳에 머문 다음
    툴루즈에 돌아와 알비로 갔다.

    - 1733년 말, 낭시에 돌아온 그는
    거의 6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 다음
    페르피냥에 있는 예수회 대학과
    알비에 있는 대학의 학장으로 일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 중 마지막 5년을
    툴루즈에 있는 예수회 신학원 학생들의 책임자로 지내다가

    - 1751년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 작성자 24.07.01 15:21


    [ 그녀들은
    그의 <편지들을 보관>했고 <강의내용도 적어 놓았다.>

    <샤를롯-엘리사벳 부쉬에 드 몽뒤레
    마리-앙뚜아넷 드 마위에드 립쿠르
    안나-말가리따 부데 드 라 벨리에르 수녀들>

    <마리-안나 데레사 드 로산
    루이스-프랑소와 드 로산 수녀들>

    <로뎀부르크의 마리아-안나-소피아 수녀>


    지난 세월동안
    수녀들과 장상들에게 보내진 코사드의 편지들과
    피정 동안 그들에게 강의한 기록들은

    박학한 프랑스 예수회원인
    <앙리 라미에르(Henri Ramiere) 신부>에게 넘겨졌다.

    그가 그것들을 모아 작은 책으로 편집하여
    1861년에 발행한 이 책은
    즉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독되었다.

    그 후 새롭게 편집된 책들이 선보였고,
    마침내 라미에르 신부는
    오늘날 우리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신선한 자료들을 가미시켰다.

    이렇게 새롭게 편집된 책들은 계속해서 발행되었고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었다. ]

  • 작성자 24.07.01 15:22


    [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새번역-서문(1)텍스트의 역사

    지혜(무비) 20.11.09 08:59


    < 서문 - 텍스트의 역사 >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은,
    성모 방문회 창설자인
    프랑수아 드 살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데다,

    특히 그루 신부에게 영감을 주고,
    19세기에는 게 주교와 리지유의 소화 데레사로 대변되는
    소위 내맡김 또는 어린이 영성을 불어넣어주게 될,
    귀용주의적 전통의 놀라운 후예처럼 보인다.

    쟈끄 가죄가 강조하듯,
    이 텍스트는 일직선으로 곧게 나아가며,
    완벽하게 일관성을 지니고 있고,
    그 안에서 사고는 잇따른 물결에 의해 발전해 나간다.

    이 작품은 무종교가 판을 치기 시작하고,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19세기와 20세기에 기독교가 헤치고 나아가야 할
    엄청난 시련들이 준비되어지고 있던 시기에 쓰여졌다.

  • 작성자 24.07.01 15:23


    계몽주의 시대에,
    뭔가 예감과도 같은 것이 하느님 섭리의 내맡김을,
    특히 그 책의 마지막 장들을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19세기 말 이 책이 출현했을 때,
    프랑스 가톨릭 신자들이 이 책에 갈채를 보낸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교리의 개요를 통해
    우리는 이 책 속에서 역경의 시대에 필요한 영성을
    찾아볼 수 있음을 보게 된다. ]

  • 24.07.06 04:49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수녀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만족감을 저에게
    가져다주는 그 멋을 저는 찾아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만족감을 항상 주십니다.
    저는 거저 받으면 됩니다.

    사랑으로,
    남을 배려하여
    고통을 인내하며
    순간에 성실하고
    아버지와 함께 깨어서
    아버지의 뜻으로 삽니다.

    사랑의 표현이 삶의 목적입니다.
    아버지의 섭리는 나와 남을 하나로 봅니다.
    고통은 사랑의 배경입니다.
    기쁨은 땀에서만 나옵니다.
    현실은 아버지의 꿈입니다.
    지금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모든 일은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남이 나에게 주는 고통, 굴욕, 치욕, 무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제가 저에게 주는 나태, 후회, 불안, 갈망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제가 이 순간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은 오직 아버지의 기쁨에 접속하는 일입니다.
    저는 고개를 돌리면 아버지를 봅니다.
    결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다만 제가 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저의 자유 의지를 사랑과 인내 정진에 모아야 합니다.

    아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4.07.06 05:22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를 여기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직 아버지의 사랑으로 삽니다.
    과정을 사랑하고 결과에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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