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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의 비밀과 이스라엘 회복 원문보기 글쓴이: 광야
성탄절을 과연 지켜야 하는가?
서울 시청앞 광장에는 반짝이는 대형 츄리가 세워지고, 교회들은 화려한 오색 전등과,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대형 현수막들이 걸리고, 교회당 안에서는 헨델의 할렐루야가 현악기 반주에 맞처 부르는 성가대의 합창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짜릿하게, 때론 감동이 진해 소름이 끼쳐 지고, 때론, 흥분하되어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듣는 이들을 황홀한 세계로 이끌어 간다.
이것이 매년 반복해서 열려지는 성탄절이다. 얼마나 멋진 교회들의 잔치날인가, 이날은 불신자들 까지도 흥겹게 즐기는 축제 일이다. 이때를 맞춰 백화점들, 선물가게, 호텔를 비릇 각종 요식업들, 관광지,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도 한몫을 챙기는 기찬 축제의 날이다. 지난 성탄절에는 불교의 조계종 어르신도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고. 일선 장병들에게도 특별 메뉴가 지급 되고, 수용시설에 있는 분들에게도 작은 것일망정 혜택이 선물 된다. 성탄절은 만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멋진 선물이 된 샘이다.
누가 이날을 행여 비판이라도 할까. 하지만,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생각을 해야 한다. 예수 탄생일은 없다, 없는 것을 인간들이 저- 이방인 들이 섬긴 농신(農神)의 날이요, 태양신의 축제일을 로마교회가 되면서 받아드리기 시작(4세기 경부터)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만들어 진 것이 성탄절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어건 인류가 기쁘게 즐길 수 있는 날이면 좋은 것이지 궂이 이것 저것 따지면서 비판(?) 할 것, 없지 않겠는가?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교회는 따져야 한다. 왜냐 하면 예수의 탄생의 날이 지켜 진다면, 성경의 기록된 말씀들이 부정 되기 때문이며, 동시에 예수는 성인 중의 하나이거나, 신들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석가 탄일이 있으니 예수도 날을 만들어서라도 지켜야 한다?) 하나님(예수)은 유일 하신 분이라 하면서, 그것을 믿고 그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버지가 되신 분을 깍가 내려, 성인 중의 하나? 혹은 신들 중의 신이 되게 만들어서야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 하겠는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20을 읽고 대답 해보라!
성탄절을 챙기면, 왜 성경말씀이 부정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차례)를 따라 대제사장 이라 했고(히5:6,10) 그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7:3) 멜기세댁이 시작한 날(생일 날) 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죽음의 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과 방불 하다 한 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생일 날이 중요 했다면 왜 사도들이 그 날을 챙기지 않했으며, 마리아가 기억해 두지 않했을까?
어리석은 사람들아, 생일을 챙긴다는 뜻은 그에게 죽음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주가 그런 분인가? 오늘의 교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 두고, 사람들의 유전(遺傳)만 따르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은 목사들의 밥벌이(?)를 위해 이용만 될 뿐이지 성경을 따르고 믿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교회 현실이기 때문에 교회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지나친 표현인가? 거슬리면 말씀을 생각 하고 다음 부터는 성탄절을 챙기지 말라.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이유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죽이자는 말입니다!
좋게 말하면 그리스도로 희생을 드리자는 말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삼아 잡신 축제를 즐기자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번만 죽으심으로 모든 속죄를 이루셨으며
더 이상 고난 당하시고 죽으셔야 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
분은 더 이상 고통 당하시며 죽으셔서는 안됩니다.
그 큰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시며, 인류 구속의 대역사를 이루셨으며 그날 그분은 " 이루어졌다" 고 외치셨습니다.
그것으로 인류 구속의 영원한 속죄가 완성되었으며
이제는 그분이 다시 오셔서 또다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나무위에 못박히고 매달리사
참혹한 죽음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이제 곧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어찌 그분이 또다시 죽어야 하겠습니까?
왜 하필이면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주장하는 날을 크리스마스라고 불러야 합니까?
웹스터 큰 사전을 찾아보십시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와 매스의 합성어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작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매스란 바로 살육하다, 희생하다, 죽이다는 뜻입니다.
왜 하필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는 날을 그리스도 매스라고 불러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이겠다고 벼르는 자들과 그에 속아
덩달아 들떠 노는 자들을 그냥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 속아서 들떠 놀면서도 하나님이 왜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을까
하고 불평하신 적있으십니까? 이제 바로 잡읍시다.
우리가 회개하면 주님은 언제든지 받아주십니다.
늦기 전에 우리는 그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셨고
이 죄마저도 포함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모두 사함받게 단 한번에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또다시 죽여 달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십자가 희생으로 인류 모두의 죄가 이미 영원토록 사해졌습니다.
이제는 오직 믿는 것만이 남아있으며 이 세상에 죄가 많이 상존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사실과 진리를 안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해주셨는데
또 사해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반역을 행하는 행사가 바로 미사(Mass) 입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이라면서 웬 그리스도를 죽이자 희생시키자 합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이 즐겁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또 죽이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한번 죽으심으로 충분했습니다!
내일은 여호와의 날이라 (출 32:5)
이스라엘은 어떤 날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날이 여호와의 날이라고
선언하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뻐하신바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진노하셨으며 그런 자들을 모두 멸절시키고자 하셨으며 모세가 나서서
하나님의 명을 좇아 칼을 차고 동족을 죽이라고 명하였으며
이에 따라 3천여명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았습니다. (출 32:27-30)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방식의 경배와 찬송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십시오!
이렇게라도 안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보게 하는 날이라고 고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방식의 명절이나 경배나 어떤 행사도 받지 않으십니다!
분은 그런자들을 칼로 쑤셔 죽이라고 명한 것을 보십니까?(출 32:27)
크리스마스 트리들은 이스라엘이 아세라 여신상에게 절하고 경배하던
푸른 나무들을 현대화하고 소형화 해놓은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형벌이 왔습니다.(왕상14:23, 왕하 16:4, 17:10, 역대하 28:4, 겔6:13)
아세라 숭배는 오늘날 마리아 숭배로 둔갑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뜻
크리스마스란, 영한사전에서 그 뜻을 쉽게 찾아볼수 있는데, Christ + Mass 의 합성어로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미싸(라틴어 MIssa=미사)란 뜻이요 미싸란 희생제사를 의미합니다.
이 미싸(Missa)는 라틴어의 Mitto 동사에서보내다, 흘리다),
영어의 Mass 는 라틴어 Macto 동사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Kill(죽이다), Slaughter(도축하다), Sacrifice(희생하다), Punish(형벌하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은 십자가 희생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명절에
크리스마스라는 호칭이 붙어졌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성경에서 아무도 크리스마스나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12월 25일이나 그 무렵에 태어나실 수가 없었음은 목자들이 양들을 들밖에서 돌보던 계절(4-10월)이었기 때문입니다.
12월 25일은 오히려 로마제국의 새턴 축제일, 북유럽의 율 태양신 축제일,
이집트의 신 호러스의 생일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잡신교 풍속을 기독교화 한것입니다.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 올리버 크롬웰, 스펄젼등은 크리스마스에 반대하였으며, 미국에서도 남북전쟁시까지는 크리스마스가 수시로 금지되거나 별로 행사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크게 번창하는 행사가 된 것은 남북전쟁이후 상업주의의 발달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Charles Spurgeon’s Sermon against Christmas: 챨스 스펄전의 설교- Mass (미사)는 가증스러운 것
http://christmascondemned.blogspot.com/2006/01/ch-spurgeon-on-christmas.html
10 reasons why I don’t celebrate Christmas. 내가 크리스마스를 행사하지 않는 열가지 이유
http://www.ucg.org/holidays-and-holy-days/top-10-reasons-why-i-dont-celebrate-christmas/
Celebration of Christmas was subject to the fine of 5 Shillings. 미국의 초기 크리스마스 행사자는 벌금 5실링에 처함
http://newton.dep.anl.gov/natbltn/300-399/nb326.htm
(3) 성경에 나타난 생일잔치
제가 아는 바로는 두 차례의 생일잔치가 성경에 있었습니다.
1) 하나는 이집트왕 파라오의 생일잔치로서 창세기 40:20-22에 나오는 날이며, 떡맡은 관원장이 교수형에 처해진 날이었습니다.
2) 다른 하나는 헤롯왕 시대에 침례요한이 목베임을 당한 날이 바로 파로의 생일잔치 날이었습니다.(마 14:6-12, 마가 6:21-25)
제가 아는 한 그외의 생일잔치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날들은 사람잡는 날이 되어서 사람들이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오리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지만 그는 오직 죄인들만이 생일잔치를 벌인다 그 예가 파라오와 헤롯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Christmas)
(4) 크리스마스의 기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기원후 200년 경 이집트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5월20일경 예수 탄생을 기념했다고 전하는데
http://en.wikipedia.org/wiki/Christmas
그 이전에 누가 성탄을 기념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터툴리안은 220년 경 로마 기독교 사회의 명절들을 말하면서 성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21년 기독교 역사가며 여행가였던 섹스투스 줄리우스 아프리카누스가 예수는 춘분때 잉태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고
로마제국에서는 춘분이 3월25일이었던 점에서 9개월 후인 12월 25일 설을 내놓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 이론이었고 실제로 크리스마스 행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350-400년 사이로 보입니다.
An early reference to the date of the nativity as December 25 is found in the Chronography of 354, an illuminated manuscript compiled in Rome in 354.[61] In the East, early Christians celebrated the birth of Christ as part of Epiphany (January 6), although this festival emphasized celebration of the baptism of Jesus.[62]
Christmas was promoted in the Christian East as part of the revival of Catholicism following the death of the pro-Arian Emperor Valens at the Battle of Adrianople in 378. The feast was introduced to Constantinople in 379, and to Antioch in about 380. The feast disappeared after Gregory of Nazianzus resigned as bishop in 381, although it was reintroduced by John Chrysostom in about 400.[6
http://en.wikipedia.org/wiki/Christmas
따라서 이 모든 기원들을 살펴보면 크리스마스가 성경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초대교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행사를 거행한 적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수많은 문헌들과 기록들은 크리스마스가 로마의 농경신 새턴의 축제인 새터날리아 날을 기독교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말이 가장 유력하고 북유럽의 태양신 숭배 축제인 율을 기독교로 포장해놓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집트의 신 호러스의 생일날이 12월25일 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쉽게 찾은 근거들입니다만 아래보다 훨씬 많은 문헌들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A winter festival was the most popular festival of the year in many cultures. Reasons included the fact that less agricultural work needs to be done during the winter, as well as an expectation of better weather as spring approached.[51] Modern Christmas customs include: gift-giving and merrymaking from Roman Saturnalia; greenery, lights, and charity from the Roman New Year; and Yule logs and various foods from Germanic feasts.[52] Pagan Scandinavia celebrated a winter festival called Yule, held in the late December to early January period. As Northern Europe was the last part to Christianize, its pagan traditions had a major influence on Christmas. Scandinavians still call Christmas Jul. In English, the word Yule is synonymous with Christmas,[53] a usage first recorded in 900.
http://en.wikipedia.org/wiki/Christmas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명절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5) 크리스마스 츄리(Christmas Tree)
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기던 우상숭배 행사를 현대화 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왕상 14:23, 왕하 16:4, 17:10 대하 28:4 예레미야 2:20, 3:6, 3:13 등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푸른나무아래서 아세라 목상에게 절하던 풍습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마리아 우상을 놓고 절하는 풍습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단 곁에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라(신명기16장 21절)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이렇게 아세라 를 위하여 푸른나무 아래서 우상숭배 하던 그 관습을 현대화 하여 교회안에 들여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 무슨 나무로든지> 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Deuteronomy 16:21 "You shall not plant for yourself an Asherah (Christmas) of any kind of tree beside the altar of the LORD your God, which you shall make
크리스마스 트리는 바로 아세라 우상을 위한 푸른나무였습니다.
(6) 광란의 파티-레이브 (Rave)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수많은 사고와 범죄들, 청소년들의 광란의 파티 ( Rave)의 소식을 듣거나 읽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그 날을 성적 순결을 버리는 날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성탄절이라 하여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며 그분이 태어난 날을 축하 한다고 기념한다는 말을 찾기는 쉽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이 못되는 것은 원래 그 시작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셔서 기념하도록 한 명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개 여신 아세라를 섬기는데 쓰였습니다. 오늘날 이 여신 아세라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상업주의에 의해 이끌립니다.
당신이 백화점에 근무하면서 크리스마스는 비성경적이며 잡신숭배입니다.
하고 외칠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백화점 회사에 근무하지 않는다면 참 다행일 것입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거창하게 행사하도록 부추시는 주체들은
바로 백화점이나 방송사 등 상업적 기관들, 사업가들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여 행사하고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헤롯왕이 차라리 예수께 진정으로 경배하러 가려 했다고
믿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마 2:8)
(7)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제가 만난 사람들이 제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나도 너에게 동일한 것을(Same to you, Merry Christmas!) 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 발언이 마음에 아주 걸리는 대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뜻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단어의 유래를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이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이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Christ + Mass 의 합성어로 보이며 이 단어에서 마스는 원래 라틴어의 Missa ( 희생, 영어의 Sacrifice 에 해당)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매주일, 혹은 매일 카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행사를 거행합니다!
그들은 그래야만 다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매주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종교가 바로 카톨릭입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리심으로 온전한 희생제사를 드리신 사실은 과거의 일부로 인정하는 한편,
날마다 짓는 죄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다시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한편,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모형으로 다시 사제가 실행하는 행사, 그것이 바로 미싸입니다.
이 미싸를 한국 천주교에서는 미사라고 발음합니다.
그런데 이 미사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죽이는 행사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매번 날마다 희생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그 미사를 가만히 들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죄를 대속하셨으며, 인류의 모든 죄가,
우리가 현재 죄사함을 간구하는 죄마저도 포함하여, 이미 사해진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도 않으며, 예수께서 모든 온전한 희생을 이루신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지난 주에 죄사해달라고 간구했던 죄도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진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사해졌다고 선포하면 다음주에나 다음날 미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미사는 하나님께 대한 가장 강력한 반역행위입니다. 이 미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못박아 죽이는 행위입니다.
당신은 메리 크리스마스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뜻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다시 죽이는 것이 즐거운 일입니까?
물론 즐거운 성탄절이라는 말은 문제가 훨씬 적다 하겠습니다. 비록 원수(이집트신 호러스)의 생일날에 예수님 탄생을 기념한다 해서 크게 나쁘지 않다 말하겠지요.
혹은 로마제국의 농경신 새턴의 축제일을 예수님 탄생일이라고 둔갑시켜 기념해도 문제가 덜하다고 주장하겠지요.
혹은 북유럽의 동지후 태양신 부활 축제일을 예수님 탄생일이라 포장하여 잡신 관습의 축제행사를 계속해도 문제가 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란 단어는 문제가 많은 단어입니다. 그것을 즐겁게 맞이하다니, 잡신교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못박는 행사가 즐거운 일입니까?
만일 제가 해석하는 것이 틀렸다면 제게 그 어원을 설명해주십시오. 제가 배우겠습니다!
(8) 미국에서 금지되었던 크리스마스
초기 식민지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나, 그 행사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되었습니다.
요지:
청교도들은 12월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믿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는 자는 5 실링의 벌금형이 1659년부터 실시되었고,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주고 받기 행사가 시작된 것은 1850년대 이후부터이다.
(9) 옛 크리스마스 ( Old Christmas)
러시아에서는 이상하게도 1월6일을 성탄절로 기념한다. 그것은 1752년 영국 천문대에서 날짜 조정을 행한 때에 러시아만 참여하지 않은 까닭이다.
날짜 조정의 이유는 오늘날 4년마다 윤년을 갖는데, 매 100년마다, 4년만에 돌아오는 윤년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를 윤년으로 두지 않는 까닭이다.
1752년 당시에 깨달은 것은 매 4년마다 윤년을 지켜오다 보니까, 원래의 크리스마스가 1월6일이 되는 것이었다. 이대로 나가면 몇 백년 지나면 전혀 다른 계절이 될 것이었다.
따라서 이때 동지 후에 크리스마스를 지키고자 하는 뜻에서( 태양신 기념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농경신 새턴 기념시기를 지키려고!) 날짜를 11일 수정하여 동일한 절기로 복구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1752년 9월3일이 9월 14일로 선포되었다.
그대로 두었다면 그 해 12월 25일은 다음해 1월 6일이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었다. 이후로 100년마다 윤년이 없어지고, 매 400년마다 한번은 다시 윤년을 살린다.
(10) 부끄러워하여야 할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
성경 어디에도 크리스마스를 언급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반하여 내가 만난 어느 노인 형제는 여러면에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을 갖고 살아갔는데,
하는 말이 “예수님의 탄생일이 어느 날이면 어떠하냐? 초대교회가 기념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문제냐? 우리는 그래도 주님의 탄생을 기념한다! 우리가 하던대로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하고 기념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크리스마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심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낳았다는 이유로 마리아가 존귀히 되기도 할 뿐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세라 여신 우상을 그 아래서 섬기던 푸른 나무의 축소판임을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푸른 나무아래서 섬기던 아세라 우상을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습니다. 그 행사를 계속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행사라면 초대 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됩니까? 성경에 기록된 많은 명령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벧전 1:16) 하신 명령은 잊혀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대신 인간들이 만든 갖가지 행사들로 하나님의 명령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44:17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입에서 나간 모든 말들을 행하고 행하리니(반드시 행하리니) 하늘의 여황에게 향을 태울 것이며,
마심의 전제 희생을 그녀에게 부을 것이니, 우리가 행해왔던 대로이며, 우리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 왕들과 우리 족장들이 예후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행해왔던 바라,
왜냐하면 그때에는 우리가 음식에 만족하였으며, 우리가 재앙을 보지 아니하였음이라.
크리스마스가 마치 풍성하게하는 명절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은 것은 바로 예레미야가 말한 상황과 흡사함을 말해줍니다.
(11) 갈라디아서 4장
10 너희가 날들과 달들과 시기들과 연도들을 꼼꼼히 지키도다.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헛되이 수고했지 않았을까 너희를 두려워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시기들을 한글 개역등에서는 절기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은 카이로스의 번역인데 이것을 에오르테와 혼동하여
마치 여호와의 7명절들을 바울이 반대한 것처럼 오해하게 한 다음, 한국기독교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등의 잡신 숭배절기를 들여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카이로스는 < 때> < 시점> < 시기>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며, 그것은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인간적 명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월절이나, 금식절( 속죄일. 행 27:9) 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무교절(행 20:6) 과 다른 명절들을 기억하였습니다(행 18:21- 킹제임스)
이와같은 크리스마스가 들어올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7명절들이 폐기된 이후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7명절들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크리스마스는 이름은 그리스도와 상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모두 잡신 숭배를 향하게 하며 방탕하게 하며
각종 범죄를 쏟아놓는 날들로 남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7명절들중,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오순절은 과거 역사에서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있을
호령나팔을 예고하는 나팔절과 대속죄일과 초막절은 그 실현을 남겨놓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 땅에 천년왕국을 이루실 때에는 크리스마스가 결코 행사되지도 않을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대신 그날에는 초막절이 행사될 것이며 그것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스카랴 14:16-19)
스카랴 14장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개역개정)
천년왕국에서의 최대 명절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초막절입니다!
(12) 사도행전 18장 21절
21 저희에게 작별하며 이르기를, “반드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는 명절(초막절?)을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하리니,
그러나 하나님이 뜻하시면, 다시 내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그가 에페소로부터 출항하니라.
사도 바울은 무슨 명절을 그토록 지켜야 한다고 하였을까요? 초막절로 분별됩니다만,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7명절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들이 지켜지고 있는 동안에는 교회안에 크리스마스, 사순절, 부활절, 성모승천일, 성모수태고지일, 동방박사 방문일, 추수감사절,
발렌타인데이, 할로윈 등이 교회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는 바로 이러한 크리스마스가 행사되기 시작한 시기는 구약의 여호와의 명절들이 폐기된 이후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7명절을 지킨다는 것은 특별히 무슨 행사를 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면 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유월절, 무교절, 초막절, 오순절의 행사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허구에 더 이상 속지않으시기 바랍니다.
출처 :쉐카이나 코리아 원문보기▶ 글쓴이 : 하토브
크리스마스 전통, 왜 비성경적인가?(출처 :맹꽁이의 찬양 원문보기▶ 글쓴이 : 오소운 맹꽁이)
중세 '성화'를 현대화한 합성그림. 아기 예수는 산타로 바뀌었다. 성탄 '성화'는 거의 다 요?을 중노년인 양 묘사했다. 단지 구유였을 뿐 마굿간/외양간 설은 근거가 없다.
바로 잡는 잘못된 성경 성탄상식
요?: 중세 카톨?의 주장과는 달리 중늙은이, 홀아비가 아닌 청년, 숫총각이었음
마리아: '영원한 정녀'가 아니라 아기 예수를 낳은 뒤 부인으로서 최소 7명(아들 4, 딸 2이상)을 더 낳음 (마르코스복음서=맑 6:3).
천군천사 하늘 찬양: 카드 그림과는 달리 한 천사가 땅에 내려와 목자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 곁에서 천군천사 무리가 땅에서 찬양한 뒤 하늘로 올라감 (루카복음=? 2:9,13,15)
외양간/마굿간 설: 근거가 없다. 성경엔 동물 기록이 없음. 있었다면 혹 한 두 마리의 양들일까(? 2:15,16).
말구유: (나무나 돌로 된) 양구유일 가능성이 더 큼 (? 2:7,12,16).
동방박사들: 박사들은 탄생 당시가 아니라 아기 예수의 나이 (최다) 두 살 때쯤 왔다(마태복음 2:16). 멜키오르/발타자르/카스파르 등 세(3) 왕이란 설은 세 가지 선물에 근거한 카톨?의 추정/전설일 뿐. '점성술사'이기보다 고대 동방의 현인 욥의 후손들(욥 1:1, 3b) 또는 고대 동방 국가 왕실의 (다니엘 친구들 같은) 현인들의 후손일 가능성도 있음.
큰 별: 탄생 당시 나타난 게 아니라 박사들이 오기 전, 아기 예수가 (최다) 약 두 살 때쯤이었다(마태 2:16 참조). 고대로부터 주변국가에 별에 대한 예언이 있어 왔음 (예: 민수기 24:17 중간)
잉태예보('수태고지'): 가브리엘은 'Hail, Mary', '아베 마리아' 식으로 마리아를 경배/찬양하지 않았다. 다만 '샬롬, 은총을 입은 여인님' 정도로 인사했을 뿐이다(? 1:26-28). 마리아를 여신처럼 몰아가는 카톨? 종교는 바빌론이나 기타 고대국가의 여신숭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는 글
예수 크리스토님이 탄생하신 날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역사적 진실을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켜지는 까닭이 뭘까? 신도이든 아니든 이 날은 최대의 명절이 돼 있다. '성탄절' 전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예수님의 탄생-성육신 사건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또 율법적으로 금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참고 발언일 뿐이다.
여기엔 개인적(personal)/집단(집합)적(corporate), 사회적, 상업적, 종교적, 내적/외적 요인 등이 있다. 또 긍정성/부정성 - 양면이 있다.
개인적 요인으로는..신앙과 신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다는 성육신을 믿는 신앙과 12월 25일이 그날이라는 막연하고 잠재적인 신념이 결속돼 있다. 또 무드와 정서, 추억에 좌우된다. 예: 크리스마스 캐럴 등 계절음악, 대강절 색깔, 크리스마스 칼라(빨강/초록/금빛..) 등은 심리적으로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개인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매년 '성탄절'을 지키다 보니 집적(集積)돼 온 추억거리가 많다. 특히 어린이/청소년들에겐 '성탄절' 분위기와 관습들이 중요한 추억거리로 자리잡힌다.
(반작용도 있다. 매년 연말 휴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특히 장기 경기침체를 맞은 올해는 더 그렇다.)
사회적으로는,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 식구/친척들이 만나고 한데 어울릴 기회가 된다. 크리스마스 추리를 만들고 파티를 하고 카드와 선물을 주고 받는다. 또 연말과 맞물려 일년간 고마웠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잊지 못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사고가 빈발하는 등 난잡한 결과도 일어난다.
또 문화예술적으로,'성탄절'은 수많은 행사들과 연계돼 있다. 음악회/연주회가 그 대표적인 예.
독일 뉘렘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대목철
상업적으로는, 세계 각국에서 공히 가장 큰 대목철의 하나다. 그래서 '성탄절'은 최대급 ‘상업명절’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가 '성탄절'을 전후해 좌우되기도 한다. 소/도매점/백화점 경기가 그렇다. 크리스마스추리감 나무와 장식품, 선물 등은 매우 중요한 상품이다. 뉴욕시는 2007년 성탄절을 전후해 1,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독일은 뉘렘베르크의 마?을 비롯, 전국의 2,500개 성탄절 마?을 통해 자그마치 1억6천만명을 끈다. 프랑크푸르트 시는 지난해 성탄시즌에 220만명을 유치, 1억700만 유로를 벌어 들였다. 올해는 30만이 불어난 250만이 몰려 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최대급 상업명절이므로 자연히 경제계/재계를 배후에서 좌우하는 숨은 세력도 있다. 큰 먹이 주변엔 큰 물고기들이 있기 마련.
교회적으로는, '성탄절' 시즌에 중요한 행사들이 연이어진다. 자선행사, 축하음악예배, 칸타타/오라토리오 연주회 등. 성탄축하헌금은 중요한 예산 수입원이다. 연말과 맞물려 자연히 중요시즌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성육신 사건을 최대화 하여 비신자들이 복음에 접근하는 한 계기도 된다. '성탄절'을 최대 자선사역 기회로 삼는 교파/교단이나 단체도 있다.
'성탄절'의 뿌리
중요한 것은 바로 '성탄절'이 어떤 뿌리와 근거를 갖느냐는 점. 종교적으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명절이 아닌 카톨? 명절이다! 개혁가들 대다수가 '성탄절'과 그 전통을 배척했다. 청교도들도 그랬다. 미 건국 초기 필그림들도 지키지 않았지만, 율법적으로 막진 않았다.
고대 초기로부터 현대까지 '성탄절'에 얽힌 중요한 의도적/비의도적인 어젠다가 있어 왔다.
크리스마스=크리스토 + 마스(mass 미사). 따라서 명칭 자체가 카톨?적이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란 명칭을 부를 때마다 카톨?의 종교와 제도를 부분적/간접적 시인해 주는 셈이 된다. 또 매년 꼬박꼬박 '성탄절'을 지킴으로써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합심/합력/합세해 주는 셈이 된다.
성탄절의 카톨?적 배경
1. 이교 관습을 배제하기보다 흡수/통일. 예: 12월 25일은 다양한 이교신화에서 옴
2. 이교 태양신 대신 (은근히) 예수 크리스토를 태양신 화(化)
3. '성탄절' 축하를 통한 마리아 흠숭사상 조장/강화
4. 간접적인 성체성사(면병 속의 '작은예수') 프러모션.
5. 간접적/결과적으로 '여신' 숭배사상 조장. '4위일체' 같은 형국
6. 카톨?을 통한 세계종교 단일화 추구
7. 모든 그늘집단 배후 세력과의 협력체제 구축에도 도움
전형적인 카톨? 성탄 성화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작)
마리아 숭배
흔히들 '첫번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첫번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언어상으로는 마리아와 아기 앞에서 여럿이 미사를 드렸다는 암시가 된다. 즉 마리아, 요?과 동물들, 목자들, 박사들(!)이 미사를 드렸다는 말이다.
미사=성체성사를 포함한다. 제대 앞 '감실'에 모셨던 아기예수 또는 작은 예수를 빵 안에 "넣어 모신다". 먹어서 속에 모신다. - 그래서 베틀레헴이다- 이렇게 풀이가 되기도 한다. 카톨?에서 알고 보면, 예수는 빵 내지 과자로 “먹는” 대상이다. 어찌 보면 마리아만큼 중시되지 않는다. 일부 카톨? 인사들이 ‘작은 예수’를 강조하는 이유가 그것.
소위 '성화'라고 불리는 중세 종교화들을 보면 거의 언제나 마리아는 사이즈가 크고(극대화) 아기예수는 상대적으로 작다(극소화). 오히려 마치 아기 예수가 마리아를 들러리 선 느낌이다. 마리아는 카톨?의 본산지인 이탈리아에서 마돈나(여주/女主님. 원래는 '나의 부인'이란 뜻이지만 현재는 주로 마리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로 불린다. 영어권에선 'Our Lady'(우리 여주님)라고 불리기도 한다. 즉 카톨?에선 마리아가 "나의 여주인님"이다. 또 정교회에선 ‘테오토코스’(신모, 하나님의 어머니)로 불린다. 이런 성향은 고대의 여신숭배 사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성경은 성탄절 축하를 장려하나?
성경엔 '성탄절' 전통의 근거가 전혀 없다! 모두 후대에 만들어졌을 뿐 초기교회는 그런 유의 명절을 지키지 않았다.
[ 성경에서 '생일축하'라는 것은 욥의 아들들(욥 1:4), 고대 에집트의 파라오(창 40:20), 헤로드 안티파스 왕(마 14:6, 맑 6:21)의 예 뿐이다. 이 세 가지가 대체로 다 부정적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살라고 생명을 주신 소중한 날이지만, 개인의 생일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축하하고 개인을 기린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별 근거가 없다. ]
특히 예수님 탄신일을 지킨다거나 연년이 축하한다는 것..성경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다. 강의 의도를 오해 말아 달라.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성경에 알려지지도 않은 특정일을 택하여 "왕이 오늘 나셨다!", "아기 예수 자장!"이라고 축하하기 때문이다.
초기교회는 성육신과 크리스토의 수난/부활을 중시했으나 탄생을 기리거나 기념하지 않았다. 성경에도 그런 기록이 전혀 없고 초기교회들 당시 절기 지키기 전통은 점차 약화되고 사라져 간다. 사도 파울은 절기 준수에 힘쓰는 관습을 사실상 경고했다. 초기교회는 오로지 "..내 몸을 기념하라"신 주님의 애찬을 통하여 주님의 성육신/고난/부활을 함께 기념했을 뿐이다.
한 마디로 기독교 초기역사 2세기 동안 예수 크리스토의 탄신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또한 서기 336년까지는 ‘성탄 축하’ 사례도 없었다.
아무튼..고대로부터 성탄에 관한 세 가지 이슈가 논란거리가 돼 왔다:
1. 성탄 연대
2. 성탄 날짜
3. 성탄 축하
12월 25일 탄생설에 대한 성경의 반증
12월 25일일 리가 없는 몇 가지 이유: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10월 말부터는 추워져서 목자가 더구나 밤에 양떼를 들에 내 놓고 돌보는 관행이 없으며..12-2월은 매우 춥다(루카복음서 2:8, 참조: 노래들의노래=아가 2:11, 아모스 3:15, 예렘 36:22, 맑 13:18).
2.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구태여 그런 추운 겨울철에 로마제국 전역에서 센서스 조사를 할 리가 없다(루카복음서 2:1).
3. 그런 계절에 강보에다 아기를 싸서 구유에다 눕히면 얼마나 춥겠는가!
4. 예수님이 요단 강변에 침례 받으러 가셨을 때-광야 금식기도 직전-가 서른살 될(생일) 무렵이었다(? 3:23. 3:22과 4:1절 사이 기간). 그러므로 침례/광야 등이 겨울철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결론: 아무튼 겨울은 결코 아니다!
1. 성탄 연대
3세기초부터 크리스토의 탄생연도에 관한 추정이 있어 왔다. ‘성탄절’(나탈리스 도미니)이 본격적으로 중시된 것은 서기 525년 로마교황 요한 1세가 바티칸 학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게 교회를 위한 절기/축제 달력을 만들라고 했을 때부터다. 이것이 발전해서 훗날 '아노 도미니'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우스력(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이 된다.
디오니시우스는 먼저 크리스토의 탄생연도를 추산해 봤는데 그는 로마제국 건국으로부터 제753년 되는 해로 잡았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예수님의 탄생은 대 헤로드의 통치 당시여서, 로마 건국보다 750년 이후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헤로드 대왕의 죽음은 대강 기원전 4년 정도로 본다(일설 2-7년). 그러므로 크리스토의 탄생은 최소로 잡아서도 4년 전이어야 한다. 동방박사의 방문은 아기의 나이 (최다) 약 2세 때였다. 아기 예수가 이집트에 피난 간 동안 헤로드가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몇 살 때 나자?에 돌아 왔는지도 잘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기원전으로 더 올라 가야 맞다.
탄생연도 산정은 매우 복잡하고 지금 여기 '성탄절' 논란에 있어 당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2 .‘성탄 날짜’
12월 25일은 오랜 세기 동안 실제 '성탄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한창이던 18세기에 와서 만유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 뉴턴이 '성탄일' 날짜가 동지(winter solstice, 고대엔 25일)와 일치하도록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레고리우스 달력 이전에 율리우스 카이자르가 소개한 율리우스 달력(서기 45년)은 12월 25일이 동짓날이었다. 1743년 독일의 신교도인 파울 에른스트 야블론스키는 로마 태양신의 휴일 '디에스 나탈리스 솔리스 인?티'(Dies natalis solis invicti)와 일치하는 날인 12월 25일에 맞춰졌다고 논술했다. '솔 인?투스'(정복되지 않는 태양)는 서기 274년 로마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만들어낸 태양신으로 기독교를 강조한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이교를 폐지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밖에 여러 이교신화가 이 날짜에 연루돼 있다.
로마황제 숭상을 겸한 사투르날리아 축제
학자들의 반증
길(Gill)은 루카복음 주해서에서 12세기 중세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모쉐 벤 마이몬)의 '미쉬나 베츠바'를 인용했는데, 마을 목장에 있는 가축은 추우나 더우나 밖에서 지내다가 비가 올 때 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첫 비 즉 이른비는 (마르) 헤쉬반 월/月(고대의 '예? 불'월. 왕들A 6:38)에 오는데(고대의 가을인 9-10월, 신명기 11:14 참조) 양력으로 10월 후반부터 11월 초까지 사이다. 그래서 크리스토의 탄생을 10월 중순 전으로 본다.
역사적 흐름
2세기 '최초' 기록: 역사상 '성탄절'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일각에서 추정되는 것은 마그데부르크의 세기분할사가(世紀分割史家/centuriator)들이 라틴어로 보관한 안티? 대주교 테오필루스(서기 171-183년 재임)의 것이라는 문서의 한 문구다. 고대 로마의 가울 족이, 부활절이 떨어지는 3월 25일에 파스카(유월절 잔치)를 즐길 수 있기 위해 9개월 후의 이 날짜를 택했다는 주장. 그러나 카톨?에 유리하게 만든, 믿기 어려운 '조작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위키피디어 필자의 견해: "spurious").
3세기 최초 기록: 서기 200년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에집트의 어떤 무리가 '파숀월' 25일에 탄생을 축하했다고 썼다. 즉 고대 에집트 기독교인들이 에집트 달력의 파숀 월(9번째 달, 5월9일-6월7일 사이) 25일(그레고리력 5월20일이란 설이 있음) 또는 파르무티 월(8번째 달 4월9일-5월8일 사이) 24 또는 25일로 탄생일을 짚었단다. (고대 에집트 신화에서는 '하늘황후'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가 동지에 태어났다고 함.)
히폴리투스(202년경)는 그의 다니엘서 주석(4:23)에서 예수님이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기 제42년 12월 25일 수요일에 태어나셨다고 주장했다고들 한다. 이 역시 가필/변조했음이 거의 틀림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3세기 초 기독교 여행가 겸 역사가 섹스투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크로노그라파이'라는 책(221년)에서 예수님은 춘분(로마력 3월25일)에 태어났다는 주장을 했다.
'데 파스카 콤푸투스'(De Pascha computus)란 축제일 달력(243년/아프리카)의 저자는 자신이 받은 신적인 계시(ab ipso deo inspirati)라며 3월 28일을 성탄일로 잡았다. 그 근거는 온 세상이 완전히 창조됐고, 창조 당시 꽃들은 만개했고 나무는 잎이 피고 해와 달은 완전히 둥글게(만월), 수요일날 창조됐다며 따라서 봄 가운데 춘분인 3월 28일이 의의 태양이신 크리스토께 가장 적당하다는 식이다.
3. 성탄축하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나 기독교 작가 아르노비우스는 생일축하를 비웃었다.
오리게네스(185-254)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엔 아무도 그분의 탄신일을 축일로 지키거나 잔치를 하라는 법이 없다. 오직 죄인들만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기뻐하고 축하할 뿐이다."(카톨? 대사전). 그는 레?서(레위기) 강의 제8강(254년경)에서 파라오왕처럼(창40:20) 크리스토의 생일을 지키겠다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중세초기 교회지도자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는 230년경에 이미 많은 신자들이 이교와 사투르날리아(사투르나의 농신제 12월 17-24일), 브루말리아(그리스신 디오니소스 즉 로마의 바쿠스의 축제, 12월 25일), 마트로날리아(여신/여성 출산축제) 등 절기/축제를 따르는 모습을 통탄했다. 고대 로마엔 30여개의 종교축제일이 있었다.
태양신 솔 인?투스/미트라스의 다양한 고대 조각들. 일부는 바티칸박물관(!) 소장품이다.
4세기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킨 최초의 흔적은 필로칼리아 달력(일명 필로칼루스력, '354년 달력', 또는 '354년 연대기', '354년 코덱스-캘린더'로도 불린다. 로마의 카톨? 발렌티우스가 만들었다). 즉 서기 1년에 카이사르/파울루스 통치령에서 주 예수 크리스토께서 초승달(new moon)로부터 제15일째인 12월 25일 금요일에 태어나셨다는 것. 그러나 AD 1년 12월25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서기336년에 최초로 성탄축하를 했다고 썼다. 12월 25일이란 날짜를 택한 이유는 '의의 태양'의 탄생으로써 '나탈리스 솔리스 인?티'(Natalis solis invicti 불패의 태양의 탄생)의 축제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로마로부터 서구에 번져갔다. (이 역시 카톨?에 아부하는 듯한 내용이다.)
크리스마스는 그후 카톨?교 강화정책의 일부로서 장려됐다. 발렌스 황제가 죽고 난(378년) 이듬해인 379년 콘스탄티노플에, 이듬해인 380년엔 안티?에도 '성탄절'이 소개됐다. 그랬다가 381년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가 콘스탄티누스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나자 잠시 사라졌다가 400년쯤 요한 크리소스톰에 의해 다시 소개됐다.
로마인들은 12월 25일을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로 축하했다. 그래서 솔 인?투스라는 태양신 모습이 새겨진 은전도 발견됐다. 후대엔 '솔 인?투스'란 명칭이 고대 도시 에메사(현재 시리아의 홈스)의 수호신인 엘라가발루스 신(로마황제가 판테온 신전의 주신이 되려고 이 이름을 땄으나 무위에 그쳤다. 그후 약 1세기 동안 동전에 새겨진 황제 초상의 머리에 태양관이 씌워졌다)이나 미트라스 신, 마르스(군신)/사투르누스(농신=로마의 크로누스. 유피테르의 아버지. 토요일을 뜻하는 Saturday가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또는 태양 자체에게도 붙여졌다.
사투르누스의 축제 사투르날리아(농신제)는 동지쯤에 지켜졌다. 본래는 12월17일인데 1주동안 계속됐다. 그후 로마부족 아우렐리아 족이 태양숭배교와 연계돼 있었고,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동방에서 승리한 뒤 솔 인?투스 교를 공식 국교로 소개한다. 그래서 자신이 광선이 발산되는 듯한 관을 썼다. 또 사제들(pontifex, 복수 pontifices, 'pontiff' 즉 카톨? 고위 성직자란 명칭의 어원)의 전문기관을 창설하고 274년엔 솔 인?투스에게 신전을 헌당했다. '디에스 나탈리스 솔 인?티'(DNSI) 축제가 그렇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DNSI의 날짜가 12월 25일로 된 가장 초기의 기록이 서기 354년의 '354년 연대기'(로마 기독교인 '발렌티우스'가 기록했다는 설이 있음)였다. 이 종교는 4세기에 주요 공식 컬트로 대두됐다.
솔리 인?토 코미티(='나의 불패의 수호신 태양')라는 문장은 프로부스와 막시무스 다자, 크리푸스 등등 황제들의 동전에 나타난다. 우리가 잘 아는 콘스탄티누스(서기 313년에 카톨?교 ‘공인’)까지 여러 황제들이 공식 화폐인 로마 동전에다 솔리 인?토 코미티의 전설을 상징으로 새겼다.
태양신이 황제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주는 장면이다. 이 태양신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엔 지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나타난다. 콘스탄티누스의 두 메달에도 나타나는 이 태양신의 머리에선 광선이 비친다. 다른 메달은 태양신이 왼손에는 지구를 들고, 콘스탄티누스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안수’하는 모습으로 새겨졌다. 이 태양신 형상은 로마 콜로세움과 팔라티네 언덕 사이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도 새겨져 있다.
이 동전은 323년까지 계속 통용됐다. 콘스탄티누스는 '디에스 솔리스'(태양의 날) 즉 지금의 일요일을 로마 휴일로 정해서 발표했다(서기 321년 3월7일이었다). 이 날엔 모든 법관과 사람들이 하루를 쉬고 상점들은 문닫되 시골 농사일은 계속할 수 있게 했다. 이 태양신 숭상교는 서기 390년 2월27일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모든 이교를 폐지하기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현 교황 베네딕토는 솔 인?투스 축제가 성탄절의 기원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품고 단지 예수의 잉태일인 3월 25일(수태고지일/고난일)로부터 9개월 후로 계산한 것 뿐이라고 말한다. 1889년 프랑스 사제/문헌학자 루이 뒤세스네가 이미 주장한 말이다. 일부 학자들도 태양신 축제 이전인 서기 243년에도 12월25일로 된 초기기록이 있다고 주장한다.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나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때다. 태양의 ‘부활’을 뜻한다고 이날을 택했는지 모른다. 현 교황청이 부정하려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5세기의 교황 레오1세는 그의 22, 26번째 설교에서 성탄축제를 겨울의 햇빛 내지 태양신 축제와 병행시켜 말했다. 지금도 교황청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안의 다양한 조각상들은 머리에 태양광선이 비친다.
그래서 로마에서 솔 인?투스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채택돼 성 페트로 성당 아래서 발견된 서기 250년 경의 무덤에서는 크리스토가 아폴로-헬리오스 태양신처럼 묘사됐다. 3세기초에는 정의의 태양이 크리스토의 타이틀로 등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타이틀이 말라키 4:2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광선을 머리에 씌운 상은 크리스토가 아니다.
크리스마스가 태양숭배와 관계 있다는 것은 12세기 야콥 바르살리비(시리아 주교)의 글에 나타난다. 즉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축하하면서 빛의 축제를 즐겼는데 기독교인들도 거기 흥미를 느끼고 매료되자 아예 성탄일을 그날로 정해 버렸다고 기록했다. 이 이교축제는 전술한 '354년 연대기'에 성탄
절과 함께 나타난다
이교적 울티드 전통의 다양한 부분이 크리스마스 전통에 흡수 통일됐다
겨울 축제
겨울축제는 대다수 나라에서 농한기이므로 여러 나라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작은설’ 대접을 받았다. 동지팥죽, 동지두죽을 쑤어 먹었다. 로마 의사투르날리아 축제 때는 흥겨운 풍월놀이도 하고 선물도 나눠주곤 했다. 이어서 신년 축제 때는 상록수, 등불빛, 자선 등으로 축하했다.
영국/아일랜드/스코틀란드 등 고대 켈? 국가에서는 겨울이 11월1일에 시작됐다. 즉 바로 소윈(='삼헤인'), 할로윈(10월 31일) 다음 날이다. 겨울이 끝난 것은 이듬해 2월1/2일(훗날의 캔들마스/촛불제)에 끝났다. 독일/게르만 전통 이교에서는 한겨울(Midwinter)에 축하용 통나무 장작을 베어 와 때곤 했다. 그 축제를 ‘율티드’/Jultid(영어 율/율타이드 Yule/Yule-tide), 나무를 율 장작(yule-log)이라고 불렀다. 율타이드는 이미 4세기에도 지켜졌던 흔적이 있다. 율티드는 고대의 태양신, '빛의 신'인 미트라스가 겨울에 짧아지니까 소생하길 기다리면서 갖던 관습이다. 그 기념으로 통나무를 태워 불살랐다.
'율'은 북구 신화에서 나온 말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주변 북국어 '횰'(바퀴/wheel의 원어)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삶의 바퀴 즉 태양신의 죽음과 부활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이교와 신이교에서 바퀴는 태양을 상징한다. (참조: 히슬?에 따르면, 율이 고대어 '에올'('어린아기'란 뜻)에서 왔다는 설도 있음).
고대 게르만족들은 독일 음력에 따라 이 한겨울 축제를 12월 하순부터 1월초까지 지켰는데 이 율타이드가 성탄절 전통에 그대로 흡수통일됐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율로그 말고도 율 염소, 율 산돼지, 율 노래 등 관습이 남아 있다. 지금도 이 전통은 유럽계 기독교와 신이교(neo-paganism)에서 지켜진다. 원래 율티드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였다. 그래서 온갖 동물의 피를 흘렸고 그 피를 '흘라우트'(hlaut)라고 불렀다. 율타이드의 풍습으로는 장작때기, 잔치, 노래(캐럴) 부르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등이었다.
에집트 신화 속 이시스 여신과 호루스. 오른쪽은 카톨?이 강조하는 마리아와 아기예수
여신 숭배적 요소
요?과 함께 있기보다 마리아 혼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은 중세 카톨? 그림에서 늘 강조됐다.
이는 고대 여신과 아들 신화를 연상시킨다. 카톨?교는 실제로 '영원한 정녀' 마리아를 신적 존재로 여기고 숭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한다. 심지어 일각에선 공동구속자(코레뎀트릭스), 공동중재자(코메데아트릭스)로 여기기도 한다. 특히 마리아는 ‘하늘황후’로 흔히 비쳐진다. 이것은 에집트의 이시스 신화를 연상시킨다(왕들B 23:13, 예렘 7:18).
에집트에서 태양은 여신의 아들로 대표된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태양(바알)이 incarnate한 신으로 숭배됐다. 마르두크 신의 아들 탐무즈도 역시 incarnate 됐다고 믿었다. 힌두교의 수리야(태양신)도 그렇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테? 월(오늘날의 12월)에 닷새 동안 (후대 로마의)'브루말리아' 비슷한 술과 광란의 축제를 했다. 고대에도 촛불 비슷한 것으로 제단을 장식했다. 고대 아라비아인들은 달신(月主)의 생일(12월 24일)을 축하했다. 앵글로 색슨 족도 아랍인들처럼 달을 남성, 해를 여성으로 봤고 12월 25일에 달신(Lord Moon)의 생일을 축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크리스마스의 12일 (Twelve Days of Christmas) : 로마 카톨?이 지킨다. 제12일은 1월 5/6일이다. '크리스마스타이드'라고도 불린다. 중세 때는 마지막 날이 크리스마스 축제의 절정이었고 풍자적인 놀이를 하곤 했다. 여기서 12일째 밤은 쉐?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극 '열두째 날'로 두 유명해졌다.
카톨?은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리아를 은연중 '여신'화, 아기 예수를 '태양신'화 해 왔다.
'성 스테판'의 날은 12월26일이다(동방정교회는 27일) 선물 박스를 전달하는 영국과 카나다 기타 영국령의 '박싱데이'는 보통 크리스마스 후 첫날이다. 이 역시 고대의 사투르날리아 축제에서 왔다. 찰즈 디킨즈(프리메이슨)의 저 유명한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엔 이 축제와 연결된 내용들이 나온다.
중세 초기엔 '성탄절'이 동방박사 방문 기념일이라는 소위 '현현절'(Epiphany)에 가려졌다가 중세 중기때 되살아났다. 11월 11일부터 시작되는 '성탄절' 전 40일은 성 마르틴(생 마르탱, 상투스 마르티누스 투르넨시스 ) 축제일로 지켜지다가 훗날 대강절(Advent)이 됐다.
로마의 본산이었던 이탈리아에선 대강절에 사투르날리아 축제 전통이 결부됐다. 12세기에 와서는 이 전통이 크리스마스의 12일로 바뀐다.
서기 800년 서로마제국(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샬레멩) 대제가 크리스마스 날 황제 대관식을 하자 더욱 붐을 일으켰다.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의 '순교자 에드문드' 왕은 855년 '성탄절'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윌리엄1세 왕도 1066년 크리스마스에 즉위했다. 11-12-13세기 고중세(High Middle Ages) 때는 크리스마스 풍습이 크게 유행해 군주들이 저마다 지켰다. 영국의 리처드 1세 왕은 1377년 이날 잔치를 벌여 28마리의 황소와 300마리의 양을 잡아 먹었다. 산돼지는 이 당시의 주된 특식이었다.
율 나무 장식. 본래 기독교와 전혀 무관한 이교적 전통에서 왔다.
또 캐럴링이 유행했다. 리드 싱어가 노래를 하고 댄서들이 합창을 했다. 당대의 문필가들은 캐럴링이 사투르날리아와 율 풍속을 지속시킨다고 저속하게 봤다. 당대인들은 이날 술을 퍼 마시고 도박을 하고 난잡을 떨었다. 영국에는 크리스마스용 맥주가 있었다. 중세 때는 또 담쟁이넝쿨(ivy), 호랑가시나무(holly) 등과 상록수가 이 명절과 연계됐다.
개혁시대에 개혁가들은 크리스마스 축하를 '카톨릭교의 올가미', '짐승의 누더기'라고 부르며 금지했다. 그러자 로마 카톨?은 좀 더 종교화 포장을 해서 보급시켰다. 영국왕 찰스1세 당시 의회가 승리하자 청교도 통치자들은 1647년 크리스마스를 금지했다. 그러나 여러 도시에서 여러 주간 크리스마스 지지자들이 왕정 복고를 외치고 캔터베리를 좌우하고 집을 상록수로 장식했다. 찰스2세가 왕정복권한 뒤인 1660년에 크리스마스도 부활했지만 성직자들은 여전히 반대했다.
각 전통의 특징
선물: 고대 에집트나 로마에선 등 다양한 종교 축일에 선물을 주고 받았다. 그런 관습을 동방박사의 예물에 억지 연결.
크리스마스 추리: 추리 관습은 특히 히슬?의 '두 바빌론'에서 깊이 파헤쳐졌다. 고대로부터 상록수 장식 관습이 이교와 연계돼 있었다. 나무는 옛날부터 생명을 상징했다. 고대 미쯔라임(에집트) 사람들은 상록수를 소중히 여기고 숭배했다. 동지 때는 푸른 대추야자 나뭇잎을 잘라 집안을 장식했다.
고대 로마 사투르날리아 축제 때는 농신 사투르나를 높이는 뜻으로 집을 전나무와 그 가지 등 상록수와 등불로 장식하고 동전/구운빵/램프 등으로 선물교환을 했다. 고대 켈트족 무당인 드루이드 사제들도 동짓날 호랑가시나무와 겨우살이 등 상록수를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대문 앞에다 장식,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중세 때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맘으로 집안팎을 상록수로 장식했다. 크리스마스추리는 고대 독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강하다. 즉 일년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 때 전나무(Tannenbaum)에다 등불로 장식해서 빛의 제전(리히트페스트 Lightfest)으로 즐겼다. 그래서 독일 전통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독일의 유명한 캐롤 하나가 'O Tannenbaum!, o Tannenbaum!'이란 노래다.
훗날 16세기에 크리스마스추리가 라인강 주변 마을에 세워지기 시작했고 불빛도 장식의 일부로 유행해 나갔다. 전설에 따르면, 독일의 이 추리 관습을 최초로 기독교로 끌어들인 사람이 마르틴 루터로 알려져 있다(미확인).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이는 다양한 식물: 포인세티아, 호랑가시나무, 담쟁이, 겨우살이. 대부분 중세 이교/자연신교 전통이 뒤섞였다. 근대에 포인세티아를 개발한 포인세트 대사는 프리메이슨 명사였다.
1539년 스트라스부르그 대성당에 한 그루의 추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17세기엔 일반 가정으로 침투했다. 스트라스부르그의 요한 콘라드 다너스투아르트 신부는 "하느님 말씀에 벗어난다"고 단죄했다. 19세기초엔 유? 전역에 번져서 각 나라 왕궁에까지 유행했다.
영국의 청교도 통치자 올리버 크롬웰은 설교에서 캐럴과 나무장식을 이교도 관습이라며 적대시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영국왕 조지3세에게 시집온 독일 (미로브)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샬? 왕후에 의해 도입됐다. 당시는 궁중 안에 국한돼 있었으나 훗날 ?토리아 여왕과 남편 알버트 공에 의해 이후 급속히 퍼졌다.
호랑가시나무 열매는 중세 북국 이교에서 '신의 음식'으로 알려져 왔다. 겨우살이(misletoe) 가지 아래서 하는 키스 관습은 고대 켈? 무당 드루이드교에서 비롯된 성적/출산학적인 의식과 상징이었다. 지금도 신이교도(neopagan)들은 상록수에다 흰종이 같은 걸 늘어 뜨린다. 비슷한 관습이 일본 등 동양에서도 발견된다.
미국과 성탄절
1620년 미 대륙에 상륙한 건국 초기 필그림들인분리주의자(Separatists)들은 성탄절 전통을 지키지 않았으나 율법적으로 금하진 않았다. 그러나 훗날 청교도들은 엄금했다. 1651-1681년 보스톤에서는 성탄축하를 불법화했다. 동시에 버지니아와 뉴?의 기독교인들은 자유롭게 지켰다. 펜실베니아의 독일 정착민들 주로 (펜주의) 베틀레헴, 내저?, 리티츠, 노스캐럴라이나 와코비의 모라비안 교도들은 '성탄절'을 열렬히 축하했다. 특히 베틀레헴의 모라비아 신도들은 미국 최초의 크리스마스추리를 세우고 첫 성탄 신(scene)을 설치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인 1776년. 미 식민지 연합군과 싸우던 영국군이 고용한 독일 헤시안 용병대가 당시 뉴저지 트렌턴에 진주해 있다가 고국이 너무 그리워서 상록수에다 촛불을 켜놓고 파수대를 이탈해 먹고 술 마시고 놀다가 그 밤에 기습한 조지 워싱턴 군대에 의해 패배했다. 추리는 한동안 영국의 상징물로 꺼려졌다. 1851년 클리블랜드의 헨리 슈원 목사가 교회 안에 추리를 세웠다가 거의 면직당할 뻔 했다. 교인들이 이교적 관습으로 봤기 때문. 보스턴에서는 1870년대까지 성탄절에도 학교를 열었고 집에서 지낸 학생들은 퇴학 당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추리 마?은 1851년 뉴욕주 ?스킬의 농부 마크 카(Mark Carr) 씨가 두 마리의 황소가 끄는 수레에다 상록수를 실어 뉴욕시에 판 것이 시초였다. 1900년에 이르러서는 5 가정당 1그루 꼴로 추리를 장식했고 20년이 지나자 전국에 보편화 됐다.
캐럴 부르기는 본래 중세의 세속전통이었다.
캐럴
여기서 잠시 캐럴에 관해 얘기하면: 캐럴은 본래 가수를 곁들인 원무(circle dance)를 뜻했다. 캐럴이란 단어가 라틴어 '코롤라'에서 왔다. 캐럴은 1150-1350년에 댄스노래로서 크게 유행했다. 그러다가 축제행렬 때 노래로 확대됐고 코벤트리 캐럴처럼 종교신비극의 노래로 활용됐다. 개혁기 당시 칼뱅주의자들에 의해 캐럴은 무용지물로 취급되다가 윌리엄 버드가 성탄절을 위한 모테트를 작곡한 것이 캐럴로 불리면서 다시 시골에서 민속캐럴이 유행했다. 그러다 19세기에 와서 크게 부활했다. 요즘은 세속캐럴조차도 크리스마스와 연결돼 불린다.
13세기의 북국 역사채 '하임스크링을라'를 보면 노르웨이 왕 하콘1세가 노르웨이를 기독교화 하면서 율티드를 성탄절과 짬뽕했다.
중세 것이든 현대 것이든 기독교적인 캐럴도 있지만 세속적이기도 하다. (징글벨, 화이트크리스마스, 종들의 캐럴, 실버 벨, 북 치는 소년 등) 일부는 기독교적 요소, 이교적 요소가 '짬뽕'돼 있다. 기독교적 캐럴 대다수는 카톨?이나 성공회에서 왔다.
나무 주위를 맴도는 캐롤링 댄스.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교적 뿌리가 있다
결론
이처럼 '성탄절' 전통과 그 주변의 대다수 요소들은 성경의 탄생 스토리가 고대 로마와 그 정복지의 온갖 이교적 개념 및 관습들과 혼합돼 이뤄진 것이다. 여기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카톨?의 흡수통일적 어젠다가 숨어 있다.
이런 요소들은 우리의 영적인 분별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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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의 비밀과 이스라엘 회복 원문보기 글쓴이: 광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