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간섭하던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다.
고려는 원나라를 따르던 옛날 귀족(권문세가)과 명나라를 따르는 새로운 세력(신진사대부)의 대립이 이어짐
여진족, 홍건적, 왜구들의 침입에 나라가 어수선함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며 명성과 세력을 얻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개경을 점령함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얻어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며 조선 왕조를 열었음
조선은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고 새롭게 정치를 펼쳐 나감
1. 왕
-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우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세웠다가 원주로 내쫓고
조준, 정도전, 남은, 이방원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름
정도전, 조준의 건의를 받아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유교를 숭상함
- 조선의 기틀을 튼튼히 한 태종(이방원): 이성계의 아들, 조영규를 시켜 정몽주를 살해함,
이성계가 이복동생인 방석을 세자로 삼자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방석을 제거함,
1400년에는 형제인 방간이 박포 등과 함께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는데,
이방원이 난을 진압하고 세제(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아우)에 올라 군사를 총괄하며 실권을 장악함
1400년 형인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제3대 왕에 오름,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고치고, 지방행정과 군사조직을 정비함
종이돈인 저화를 만들어 화폐경제를 유도함, 신문고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들음,
호패법을 실시하여 인구 수를 정확히 파악함, 학문을 장려하여 책을 펴는 주자소를 설치함,
왕권을 강화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의 기틀을 튼튼히 함
- 조선을 크게 부흥시킨 세종대왕: 태종의 세째 아들, 1420년 집현전을 설치함, 훈민정음을 창제함,
농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으로 세금제도의 확립,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의 기틀을 확립함
4군6진을 설치하여 북쪽영토를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확장함
- 조선의 문화 황금시대를 연 세조: 세종의 둘째 아들, 문종의 아우,
1452년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조선의 6대 왕으로 올랐으나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몰아냄,
1458년 호패법을 다시 시행하고, 경국대전(법전)을 편찬함,
모든 관원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던 과전법을 현직 관원들에게만 나누어 주는 직전법으로 바꿈
- 조선의 제도를 완성한 성종: 1474년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함,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동문선, 악학궤범 등을 편찬함
- 실리 외교를 펼친 광해군: 재위 15년동안 많은 서적을 편찬함, 대외적으로 국경방비와 외교에 주력함,
1619년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에서도 명나라의 출병요구를 들어주면서도
후금과의 외교를 펼쳐 후금의 침략을 막음
- 사회 제도를 정비한 숙종: 관리들이 파벌을 이루어 세력을 다투는 당쟁이 매우 심한 시기에 왕위에 오름(1674년),
왕의 권한을 강화하여 임진왜란 이후 흐트러졌던 사회제도를 정비함,
대동법 실시, 상평통보를 만듦, 금위영 개편, 청나라와 협상하여 국경선 확정
- 인재를 고루 등용한 영조: 숙종의 둘째 아들, 건강이 좋지 않은 경종이 죽자 1724년 왕위에 오름,
당파 싸움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써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함,
죄인이더라도 가혹한 형벌을 금지시켜 인권을 소중히 여김,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킴, 농업을 장려하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킴
- 규장각을 설치한 정조: 규장각을 설치한 정조는 재능있고 젊은 인물을 선발함(왕권 강화),
당파가 아닌 능력과 학문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여 중인들도 조정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함, 정약용을 시켜 화성을 건설함
2. 정치
- 조선의 실정에 맞는 새 법전, 경국대전
- 최고의 통치기구 의정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3정승을 중심으로 구성,
의정부 아래 행정 실무 기관 6조(이,호,예,병,형,공), 그리고 그 장관 판서
- 왕의 권한을 강화시킨 승정원(국왕의 비서기관)과 의금부(국왕직속 사법기관)
- 비리를 감찰하고 왕의 잘못을 지적한 삼사: 사헌부(관리들의 비리 감찰), 사간원(왕의 잘못 비판),
홍문관(왕의 자문기관)
- 전국의 행정 구역 8도, 각 도를 다스리던 관찰사: 관찰사는 지방의 행정, 군사 및 사법권을 가지 다스림,
8도 아래에는 부, 목, 군, 현을 두었는데 전국을 나라가 직접 다스리기 위해 이곳에 수령을 파견함
백성을 직접 다스린다고 하여 목민관이라고도 불렀음
- 조선 후기 최고 회의 기구 비변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의 지배체제는 크게 흔들림,
군사 행정 담당 기구였던 비변사의 기능과 권력을 강화하여 조선 후기에는 최고 회의 기구가 됨
- 조선 초기의 학문 연구와 왕의 자문 기관 집현전: 세종대왕이 설치,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발전시키며
왕의 자문 역할을 함,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함
- 정조가 세운 국립 도서관 규장각: 창덕궁 후원에 만든 도서관, 정조는 규장각을 홍문관을 대신하는 학문의 상징적
존재로 부각시켜 홍문관, 승정원, 춘추관, 종부시 등의 기능을 점진적으로
부여하면서 본격적인 문화정치를 추진하고 인재를 양성함
- 고려와는 다른 과거제도: 무과를 무시하여 무과 시험이 없었던 고려와 달리 조선에는 무과를 과거시험에 포함시킴,
문무양반체제를 이룸, 기술과를 뽑는 잡과도 있었음
- 특별 채용 시험 취재: 재주가 부족하거나 나이가 많아 과거 응시가 어려운 사람을 특별채용
- 추천을 통해 인재를 등용한 음서와 천거: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의 자식들 중 1명에게 특혜를 줌(음서),
높은 관리의 추천을 받아 간단한 시험을 치른 후 관직에 나오게 함(천거)
- 16세 이상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 태종 이후 개인의 군사인 사병을 모두 폐지하고 16~60세의 모든 평민 남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는 양인개병제를 실시함
3. 사회와 경제
- 조선 초기의 신분 양인과 천인: 초기의 신분은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었음,
양인에는 직업의 종류와 귀천에 따라 사(양반), 농(농사꾼), 공(수공업자), 상(상인)의
구별이 있었으나, 왕권이 확고해지고 관료 조직이 정비되어 가면서 관료들은 지배층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굳혀 마침내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향리나 농민과 뚜렷이 구별됨,
하급 관리나 지방행정 실무자, 기술관 등은 별도로 중인 신분을 이루었고,
농업, 상업,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민이 되었음,
천민신분으로는 노비, 광대, 무당, 창기, 백정 등이 있었고
노비는 관청이나 개인에 소속되어 매매, 증여, 상속의 대상이 되었음
- 조선 상업의 중심이 된 시전과 시전 상인: 궁궐이나 관아에 필요한 물품들을 시전을 통해 공급 받음,
태종 때 한양의 종루(종로)를 중심으로 시전 건물을 지어 물품을 팔게 함
- 지방의 시장 장문, 전문 상인 보부상
- 물건을 만드는 수공업자 공장
- 특산물 대신 쌀로 공납을 내게 한 대동법: 1608년 선조 때 실시, 가난한 백성들은 공납의 부담을 줄일수 있었음
- 여섯 가지 중요한 물품을 팔던 육의전: 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어물
- 조선 시대에 널리 쓰인 화폐 상평통보
- 조선 전기의 무역은 조공 무역: 작은 나라가 큰나라에게 때마다 공물을 바치면 큰나라가 하사품을 보내는 형태
- 국경에서 열린 시장 개시(나라에서 인정한 공식적 시장)와 후시(상인들 사이에 사사로이 열린 시장)
- 가난한 백성을 도와주던 환곡: 흉년이나 춘궁기에 곡식을 꾸어주고 추수기에 갚는 제도,
삼국 시대부터 시행 되었는데 고구려시대에는 진대법, 고려에서는 흑창, 의창, 상평창을 둠
- 조선의 의료기관과 의료 시설: 혜민서(서민들 무료 치료), 동서활인원(가난한 사람 치료), 제생원(빈민치료)
4. 생활과 풍습
- 조선의 가족 제도는 가부장 제도
- 결혼할 수 있는 나이는 남자 15세, 여자 14세: 일부일처제, 그러나 첩을 둠, 첩의 자식인 서얼은 문과에 응시할 수
없고 제사난 재산 상속에도 차별을 받음
- 결혼한 딸은 출가외인: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교식 혼례(친영)
- 조선의 기본 윤리 효와 정절: 과부의 재혼을 금지하고 효자나 열녀를 크게 표창함
- 유교의 영향으로 우대받던 장남: 조선 초에는 아들과 딸이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17세기 이후 제사는
반드시 큰아들이 지내야 한다는 의식이 퍼지면서 상속도 큰아들이 우대받게 됨
- 중요 의례 관(성년식), 혼(결혼), 상(장례), 제(제사)
- 4대 명절은 설날(음력 정월 초하루), 한식(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단오(음력5월5일), 추석(음력8월 15일)
5. 예술과 문화
- 우리 민족의 글자 한글
- 조선왕조실록 편찬
-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펴낸 지리책과 지도: 태종 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세종 때 팔도도, 세조 때 동국지도,
조선 후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세종 때 지리책 신찬팔도지리지,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됨
- 유교적 사회 질서를 위해 편찬된 의례 서적과 법전: 세종 때 삼강행실도, 성종 때 국조오례의,
건국초기 정도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편찬, 조준은 경제육전을 편찬,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은 후기까지 법률 체계의 골격을 이룸
- 후기 사회를 변화시킨 학문 실학: 청나라의 고증학과 서양의 과학적 사고 방식을 받아들임,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국가 정책에 크게 반영되지 못함
- 실학의 발달과 함께 발달한 국학: 우리 민족의 역사, 지리, 국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함,
역사서(동사강목, 연려실기술, 해동역사, 동사, 발해고),
지리서(택리지), 지도(대동여지도), 백과사전(지봉유설, 성호사설, 임원경제지)
- 상공업의 발달을 주장한 북학파: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
- 조선 건축을 대표하는 궁궐 건축: 사찰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려와 달리 궁궐을 중심으로 발달함
- 사림의 발달로 활발해진 서원 건축: 16세기 사림의 진출과 함께 발달한 사설교육기관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이 대표적), 성균관도 서원 건축물이라 할 수 있음
- 검소하고 소박한 분청사기와 세련된 백자: 고려시대와 달리 사치품보다 생활 필수품에서 그 특색을 보임,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 다시 구워낸 분청사기, 16세기부터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됨
- 궁중 음악으로 발전한 아악: 세종은 박연에게 악곡과 악보를 정리하여 아악이 궁중음악으로 발전하게 함
- 후기 서민 문학의 중심 판소리: 숙종말에서 영조 초에 걸쳐 충청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발전함,
판소리 열두마당 중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만 전해내려 옴
- 지배층의 위선을 풍자한 탈춤: 향촌 마을 굿의 탈놀이, 산대라는 무대에서 열린 가면극인 산대놀이가 유행하게 됨
- 인기를 끈 한글 소설: 최초의 한글 소설로 서얼의 차별을 이야기한 허균의 홍길동전,
신분차별의 비합리성을 이야기한 춘향전, 불합리한 가족관계에서 희생된 이야기 장화홍련전 등
권선징악적이라는 주제로 백성을 계몽함
- 크게 발전한 회화: 건국초 세워진 화가 양성소 도화원을 중심으로 발전함
- 조선 초기 최고의 작품, 몽유도원도: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 본 바를 안견에 명하여 그리게 한 그림
- 조선 후기 미술을 이끈 진경산수화: 18세기 정선(인왕제색도, 금강 전도),
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 회화의 토착화를 이룸
-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일반 대중이 그린 소박한 그림 민화
6. 전쟁
- 김종서의 여진 정벌과 4군6진: 세종 때, 조선의 국경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됨
-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세종 때, 왜구의 본거지를 공격하여 정벌함
- 조선 최대의 전쟁 임진왜란: 조선 건국후 200년간 평화로운 시기로 국방을 소홀히 함,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100년간의 전국시대를 통일함,
그는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조선을 침략함(1592년),
부산을 상륙한지 20일만에 서울을 점령함, 선조는 의주로 달아나고 민중들은 의병을 일으킴,
선조의 요청으로 명나라에서 지원군이 오고, 해전에서 이순신이 거둔 승리를 발판으로
진주성 싸움, 행주대첩 등에서 큰 승리를 거둠,
이에 일본이 교섭을 제안하였고, 이 교섭은 3년을 끌다가 깨지고 말았음,
1597년 정유년에 일본이 다시 침략함(정유재란), 왜군은 노량해전에서 크게 패하고,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죽자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함(7년간의 전쟁이 끝남)
- 임진왜란의 결과: 조선은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은 비참해짐,
일본은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의 기술자를 잡아가 도자기와 활자기술을 발전시킴,
명나라는 대군을 조선에 파병하여 국력이 소모되어 만주에 있던 여진족의 세력이 커졌고,
중국에는 청나라가 세워짐
- 한산도 대첩: 1592년 이순신, 학인진법으로 왜군을 무찌름, 세계 해전사의 으뜸
- 진주 대첩: 곡창 지대인 전라도 진입의 관문인 진주성, 1592년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800명의 군사가 막아냄
- 행주 대첩: 전라 순찰사 권율, 1593년 행주산성에서 3만 왜군을 막아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
- 청나라의 침입 병자호란: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 세력이 커진 만주의 여진족은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공격함,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함,
인조는 후금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중립 외교를 폈던 광해군과 달리
후금을 멀리하고 명나라와 가까이 지냄,
이에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이 병자호란을 일으킴,
인조는 남한 산성에서 청나라에 대항하다가 항복함,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바치는 조공이 늘어나면서 조선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짐
7. 문화재
- 조선의 대표 궁궐 경복궁: 이성계가 새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후 새로 만든 왕궁,
경복궁 안에는 200여 동의 전각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현재는 10여개 동만 남음
- 고종 황제가 머물렀던 덕수궁: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음,
임진왜란 초 선조가 다른 궁이 화재로 소실되어 행궁(임시로 머무는 궁전)으로 삼았었음,
광해군이 경운궁으로 이름지었음,
고종이 경운궁으로 옮겨와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바꾸고 스스로 황제의 지위에 올랐으나
힘이 약한 대한제국은 미,영,프,러에 의해 외교관계를 맺으면 경운궁 부지를 내어주었고,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다시 별궁이 되었음
- 자연과의 조화로 아름다운 창덕궁: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별궁으로 지은 궁궐,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이웃한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고 불렀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광해군이 다시지어 정궁으로 썼음,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동안 정궁역할을 함,
- 왕후를 위해 세운 창경궁: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건립한 수강궁이었는데,
성종이 중건하여 창경궁으로 이름을 바꿈, 성종은 세조의 비, 생모가 되는 소혜왕후,
예종의 비를 모시기 위한 수강궁을 중건한 것임
- 독특한 건축 양식 종묘: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의 사당,
종묘 제도의 발생지인 중국과는 다른 건축양식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건축물임
- 세계 무형 유산 걸작 종묘 제례악: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때 연주하는 음악
- 동서양 건축술의 조화 수원 화성
- 백성을 가르치는 과학적인 글자 훈민정음: 정인지,성삼문,신숙주,최항,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훈민정음,
1913년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한민족의 글, 큰글이란 뜻의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음
- 종합 역사책 조선왕조실록: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 기록한 책
- 민족의 정서를 표현한 음악 판소리
- 조선의 성문을 대표하는 남대문: 숭례문의 현판은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지봉유설에 기록되어 있음,
다른 대문들과 달리 세로로 쓰여진 이유는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함임,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북쪽 숙정문,
동북쪽 혜화문, 서북쪽 창의문-자하문, 동남쪽 광희문-수구문, 서남쪽 소의문이 있음
- 우수한 과학 기술로 설계된 판옥선과 거북선
- 세계 최초로 만든 측우기
8. 옷, 음식, 집
- 유교의 영향으로 신분에 따라 구별된 옷: 고려시대를 그대로 계승,
다른 점은 조선시대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엄격하게 구별되었음
- 여자들의 평상복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조선시대부터 치마 속에 속바지를 입음
- 조선시대 사람들이 신던 신발: 왕족과 양반은 가죽 신, 일반 백성들은 짚신과 나막신, 삼으로 만든 구(미투리)
- 조선 여자들의 머리 장식: 대수머리, 어여머리, 첩지머리, 새앙머리, 얹은머리, 쪽진머리, 댕기머리 등
- 계층에 따라 궁중 음식, 반가음식(양반), 서민음식
- 전국의 특산물을 재료로 만든 궁중 음식 - 왕의 밥상은 수라상
- 궁중 음식이 민간에 전래된 계기 진연(나라의 경사)과 진찬(왕족의 경사)
- 궁중 음식과 닮은 반가(양반집) 음식
- 궁중은 12첩, 반가는 7첩, 서민은 3첩
- 계절과 절기에 따라 시식과 절식: 조선시대에는 상차림과 식사예법이 전국적으로 통일되었음
- 조선시대에 수입된 고추(일본), 호박, 고구마, 감자: 17세기 초 전래되었음
- 요리 백과사전 음식디미방: 1670년경, 안동에 살던 정부인 장씨가 쓴 한글 요리책
- 조선 시대의 상류 주택: 안채(여자), 사랑채(남자)로 나눔,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치함
- 일반 서민들의 민가: 초가 지붕에 방과 대청, 부엌으로 된 단순한 구조
- 한옥: 안채, 사랑채, 사당채, 행랑채, 별당채, 곳간채, 대청, 사랑방, 부엌, 장독대, 우물, 뒷간이 있음
9. 과학과 기술
- 농사기술을 발전시킨 책 [농사직설]-우리풍토에 맞는 농사 기술, [금양잡록]-직접 경험하고 들은 농경법
-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을 이끈 천문학: 성리학에서는 천재지변을 국왕의 부덕과 연관지어 생각했으며,
기상의 변화가 농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천문 기상 관측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음
- 조선만의 역법서와 수학교재: 칠정산내외편, 산학계몽, 상명산법
- [동의보감]등 우수한 의학, 약학 서적 출간: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마과회통, 동의수세보원(이제마)
- 조선의 뛰어난 무기 제조 기술: 화차, 신기전
- 활발한 편찬 사업으로 활자 개발, 인쇄술 발달: 계미자, 갑인자
- 정약용이 고안해 낸 거중기: 수원화성 축조 시 사용
10. 인물
- 조선의 발명왕 장영실: 혼천의, 아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 도산서당을 지어 인재를 길러 낸 이황: 유학의 개요를 그림과 함께 정리하여 설명한(성학십도)
- 나라 개혁을 위해 힘쓴 이이: 왕도정치를 회복할 수 있는 내용(동호문답),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격몽요결)
- 한국의 어머니상 신사임당: 율곡 이이의 어머님
- 바다를 지켜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
- 동의보감을 써 의학을 발전시킨 허준
-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 김홍도
-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목민심서), 관제 개혁과 부국강병을 논한(경세유표),
형벌일을 맡은 벼슬아치들이 유희할 점(흠흠심서)
-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목판에 조각하여 만든 목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