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역과 민족의 특성에 따라 의복구조가 천태만상이나 그 중 전통적으로 중국복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치파오와 중산복이 있다.
치파오는 원래 만주족의 전통복장이었는데 청나라 때 전국적으로 유행되기 시작하여 현재 중국 전통복장으로 되어 있다. 원통형으로 다리 옆부분이 갈라지고 앞에는 단추가 달려 있으며, 칼라가 목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실용성이 없어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입고 있는 중국인을 보기가 어려우며, 다만 고급식당의 복무원 쇼장의 안내원들은 많이 착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산복은 손문선생이 현재 생활에 편리하게 고안한 옷으로 지금까지 현대 중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복장이었다. 현재는 농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의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으나 젊은 사람이 입은 모습은 보기가 힘들다.
지금은 젊은 계층을 위주로 서양의복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 예전의 중국 도시, 농촌의 거리 풍경은 회색과 검은색의 연속이었으나 개방 이후 유흥업소 등의 접대부, 대학생 위주로 멋내기 옷을 많이 입게 되어 이젠 중국 어느 도시를 가던 예쁜 옷을 입은 중국인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도시에서는 세계 최신 유행이 바로 수입되는가 하면 현대미와 중국 전통미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2. 식생활
중국에는 '백성이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섬긴다(民以食爲天)'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역대 천자의 최대 과제는 백성을 어떻게 먹이느냐에 있었다. 적어도 먹게만 해주면 태평성대라고 칭송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식구를 거느렸으니 먹이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상 중국 대륙에서 식을 완전히 해결한 적은 없다. 1983년에 발행된 <중국연감>에 의하면 1959년에서 1961년까지 3년간 진행되었던 대약진운동이 실패함으로써 당시 한국의 인구에 해당하는 무려 2천 4백만 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 사람들의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대단히 강하다. 흔히들 한국 사람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의·식·주 세 가지를 든다. 그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 중국인들은 식을 가장 우선적으로 꼽는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먹는 것 외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외관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옷이나 집의 화려함을 가지고 그들의 빈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도 없다.
중국 사람들의 결혼을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진다. 한국처럼 엄숙하고 긴장되는 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예식장은 아예 없고 대신 음식점만 있을 뿐이다. 그런 것쯤이야 공증을 통해 순식간에 해결하고 손님에게는 음식점의 약도와 전화번호가 적힌 청첩장만 보내는 것으로 끝낸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결혼식이 아니라 먹기 위해 모인 구경꾼처럼 느끼어질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요리가 한국처럼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는데 그야말로 세숫대야만한 접시에 요리를 내놓는다. 이것을 탁자 가운데 올려놓으면 탁자의 중앙은 회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앞으로 돌려놓은 다음 적당한 양을 덜어 먹는다. 물론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탕(국)과 과일(디저트)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요리를 너무 많이 먹으면 그 다음의 요리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1) 요리
별로 넓지 않은 한국에도 지방마다 독특한 요리가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 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특성 또한 각양각색이다. 기후가 다르니 재료가 다를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섭생까지 다르게 된 것이다.
중국 요리는 양자강을 기준으로 하여 북방 요리와 남방 요리로 구분되며 또한 일정한 지역을 기준으로 북방(북경·천진)·산동(청도·개봉)·강남(상해·남경·양주·영파·무한)·복건(복주·천주)·광동(광주·홍콩)·사천(성도·중경) 등 6대 권역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 외에 동서남북의 사분법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동은 강남이, 서는 사천, 남은 복건·광동, 북은 북방·산동이 각각 해당된다.
북방에서는 주로 소·돼지·양·말 등 육류에다 콩·고량·옥수수·밀가루를 주식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이 잘 알고 있는 만두나 짜장면, 국수 따위는 모두 북방 요리에 해당한다. 반면 남방은 많은 강과 거기에 따라 발달한 비옥한 평야로 해서 예로부터 쌀과 생선이 풍부하다. 특히 호남성 동정호 일대는 중국 제일의 곡창지대를 형성하여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는 별명을 낳게 했다. 생선과 쌀이 풍부한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남방의 주식은 자연히 쌀이며 생선과 조개 등 해산물도 풍부하고 육류라고 해야 닭고기나 오리고기가 고작이다.
중국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광경은 왁자지껄하다. 워낙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이고 보니 먹는 장소가 가장 즐거운 곳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요리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서 점심시간도 중화민국의 경우는 두 시간이나 되며 저녁시간은 물론 제한이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먹어야 예의인 줄 알지만 그들은 최대한 난장판이 되도록 먹어야 주인에 대한 예의가 된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뒤 탁자를 보면 마치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도 같다.
중국요리의 특징으로는 1) 재료의 선택이 자유롭고 다양하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이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색과 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은 음식의 3대 요소인 색·향·미의 조화를 중시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색과 향신료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중국 요리의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3) 조리의 기구가 비교적 간단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점이다. 4) 조리법과 그 과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5) 기름을 많이 사용하지만 방법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주 먹어도 쉽게 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6) 음식의 수분과 기름기가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녹말을 많이 사용한다.
중국 요리의 특징 중 특히 조리법이 다양한 반면에 조리기구가 간단한 까닭은 현실을 중시하는 실용성과 합리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의 식생활 역시 무조건 겉모양이 아름답고 맛이 섬세한 것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재료에 따라 조리법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가능한 한 칼로리뿐만 아니라 양에서도 실속있는 요리를 선호한다. 이때 조리하는 기구는 서양처럼 화려하거나 다양하지 않고 오직 조리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① 북경요리
북경요리는 일명 징차이(京菜)라고도 하는데, 수도인 북경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산동성, 서쪽으로 태원(太原)까지의 요리를 포괄한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궁중요리 등의 고급요리가 발달한 지역이다.
한랭한 기후로 인해 추위에 견디기 위한 고칼로리의 음식이 발달되어 있는데, 강한 화력을 이용한 튀김과 볶음요리가 일품이다. 요리는 대부분 기름기가 많고 맵고 짠 요리가 많다. 간장을 별로 사용하지 않으므로 색은 연한 편이고, 흔히 사용되는 조리법으로는 지지고, 찌고, 전분을 넣고 끓인 국물을 끼얹는 것이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북경 오리통구이와 양고기를 사용하여 만든 징기스칸구이를 들 수 있다. 또 케찹대하, 해삼조림, 쇠고기 숙주곁들임, 돼지고기 짜장볶음 등이 유명하다. 이밖에도 화북평원에서 생산되는 소맥을 재료로 한 만두, 면, 떡 등 밀가루음식도 그 반죽기술과 함께 매우 다양하고 유명하다.
② 상해요리
중국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요리로써 남경, 상해, 양주, 소주 등지의 요리를 총칭한다. 이들 지방의 요리는 양자강 유역에서 나오는 풍부한 해산물과 미곡, 그리고 따뜻한 기후를 바탕으로 이 지방의 특산물인 장유(奬油)를 사용하여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맛이 비교적 달콤하고 기름기가 많으며 진하다.
또 미국인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 비해 토마토 및 토마토 케첩, 파인애플, 우유 등을 사용하는 것이 많다. 면류요리가 발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요리로는 진주완자, 게볶음, 생선찜, 사자두, 삼선볶음국수 등이 있다.
③ 광동요리
광동요리는 일명 난차이(南菜)라고도 한다. 중국 남부지방의 요리를 대표하는 이 요리는 광주를 중심으로 복건성, 조주, 강동요리를 총칭한다. 이 지방은 16세기 이래 외국 선교사와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기 때문에 전통요리에 서양요리법이 결합,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기후가 덥기 때문에 비교적 담백한 맛을 내는 요리가 발달하였고 서유럽의 요리법인 쇠고기, 서양채소, 토마토케찹, 굴소스 등을 사용한 요리가 발달하였다.
중국에서도 가장 종류가 많은 것이 이 요리로, 재료는 4발 달린 짐승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할 정도이다. 특히 뱀이나 고양이 등 한국인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요리의 재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조건도 바다, 산, 강, 들판 등 다양하므로 곳곳에서 얻을 수 있는 다채로운 재료를 쓴다.
광주요리는 조미료를 중시하며 향기롭고, 개운하고,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특징이 있다. 조주요리는 해산물요리에 능하며, 맛이 담백한 편이다. 동강요리는 기름을 많이 사용하며 맛이 진하고, 소박한 향토색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은 중국에서 식문화가 가장 발달된 지역으로 모든 생물을 요리의 원료로 사용한다. 유명한 요리로는 레몬닭고기조림, 새우속 찐만두, 동강부두, 돼지갈비케찹조림, 닭살모듬볶음 등이 있다.
④ 사천요리
중국 서부지역의 요리를 대표하는 것으로 양자강 상류의 산악지대인 사천, 운남, 귀주 지방의 요리이다.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악천후를 이겨내기 위한 향신료가 발달했다. 따라서 각종 향신료와 마늘, 고추를 사용한 매운 맛이 특징이어서 한국 사람들의 식성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이다.
조리방법에는 살짝 볶거나 부치고, 단술로 맛을 내면서 그 국물이 없어질 때까지 약한 불로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명한 요리로는 삼겹살야채볶음, 마파두부, 두반어, 삼선누릉지탕 등이 있다.
⑤ 정진요리
수도하는 불교도들이 살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류나 육류를 이용하지 않고 채소만을 이용하여 만든 요리이다. 육류를 이용하지 않고 버섯이나 기타 다른 채소를 이용하여 고기맛이 나도록 한 것이 특색이다.
정진요리는 다른 어떤 요리보다 요리사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가 많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맛은 대체로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사찰내에 음식점이 있으며,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다.
⑥ 진귀한 요리
중국의 요리를 보면 진귀한 재료를 사용할수록 특미로 삼는다. 개·고양이·뱀 정도는 특미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곰 발바닥·제비집 요리·상어 지느러미·원숭이 뇌·코끼리의 코쯤은 되어야 특미 대접을 받는다.
중국인들은 개고기를 한국보다 더 좋아한다. 중국 사람들에 의하면 갓 태어난 개는 정력에 좋고, 어린놈은 보혈에 좋으며, 늙은 놈은 신경통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오뉴월 삼복 더위에 즐겨 개고기를 찾는데 비해 중국 사람들은 찬 겨울에 보신탕을 먹는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개고기는 열을 북돋아주는 작용이 있으므로 반드시 추운 겨울에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뱀고기도 개고기 못지 않게 즐긴다. 오히려 더 진미로 취급한다. 지금도 대만의 중심부 화서가(華西街)라는 곳에 가면 사람 키보다 더 큰 코브라가 집게에 입이 물린 채 고드름처럼 늘어져 있다. 손님이 원하면 즉석에서 장만해주므로 속을 염려는 없다. 그것도 원하는 부위별로 말이다. 그래서 피를 원하면 즉시 배를 갈라 잔에 받아 건네주며, 쓸개를 원하면 가위로 잘라 술과 함께 한잔 준다. 물론 남은 뱀고기는 푹 삶아 한 접시 내놓는다.
중국들이 즐겨 찾는 뱀요리 중에서는 코브라 같은 독사를 제일로 친다. 그래서 전문적인 땅꾼도 많다. 매년 가을이 되면 수많은 땅꾼이 산에 오른다. 그들에게는 불문율도 많다. 독 를 취급해야 하므로 늘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전날 밤 꿈자리가 어지러웠던 사람은 아예 오르지 않는다.
곰 발바닥 요리는 보면, 곰은 동면을 하는데 그 동안 먹을 양식을 앞발에 저장해주었다가 배가 고프면 혀로 핥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곰의 앞발은 영양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타액까지 묻어 있어 최고의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제비집 요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비는 보통 제비가 아니라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바다제비이다. 이놈은 해안의 깎아지른 절벽에다 각종 해초를 물어와 침을 반죽하여 집을 짓는다. 이것 역시 타액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어 지느러미 요리도 유명하다. 한국인들에게는 샥스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상어의 힘과 용맹성에서 보신을 착안했다고 하는데 이 요리는 청나라 말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원숭이 뇌도 별미로 취급한다. 그런데 장만하는 방법이 너무 잔인하다. 우선 원숭이의 머리를 나무로 만든 틀에다 넣고 양쪽에서 조인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놓고 회초리로 머리를 때려 잔뜩 약을 올린다. 그러면 피가 머리로 몰린다고 한다. 이때 순간적으로 칼로 두개골을 쳐낸 다음 날것으로 파먹는다.
⑦ 중국에서의 요리 선택
중국 음식점에서 중국 음식을 시키려면 여러 사람이 같이 가는 것이 좋다. 만약 혼자서 먹는다면 요리를 접시별로 팔기 때문에 2가지 요리를 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어울려 가면 다양한 요리를 비교적 경제적으로 즐길 수 있다.
중국에서 점심시간은 간식을 말한다. 주로 면류나 만두류 등이 이에 포함되는데, 만두의 종류만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 이런 점심류는 가격도 쌀 뿐만 아니라 맛과 모양이 갖가지여서 자신의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다.
중국 음식점에서 요리를 주문할 경우에는 대개는 불요향채(不要香菜)라고 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향채를 넣지 말라는 주문으로 향채는 중국 음식의 독특한 향을 내는 향신료 중의 하나이다. 대개는 이 냄새 때문에 중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것을 넣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중국요리들이 많다.
중국식당의 영업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등의 식사시간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 그 시간이 아니면 음식을 팔지 않는 곳이 많다. 이것은 대형 음식점이나 호텔음식점도 적용되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간 적용이 엄격한 지역에서는 시간을 놓치면 식사를 못할 수도 있다. 이 시간을 넘어섰다면 패스트 푸드점이나 슈퍼의 부식 등을 이용해야 한다.
2) 차(茶)
중국인은 하루도 차 없이는 못 사는 민족이다. 벌써 4천 년의 역사를 가지며, 어느 공공장소에 가더라도 차잎만 있으면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끊는 물이 준비되어 있다. 중국인의 가정집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차다. 그것도 차에 관한 일체를 아예 세트로 마련하고 있는 집도 많다. 나무로 만든 수레에 바퀴를 달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차와 다기는 물론 소형 프로판 가스통까지 완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왜 중국에서는 이처럼 차를 중시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물이 좋아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중국에는 명산·명천(名泉)이 수도 없이 많다. 이 점은 그들이 물을 구분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산에서 나는 물이 제일 좋고 다음은 강물이며 그 다음은 우물물이다. 단지 마실 물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런 구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차를 즐긴 까닭은 생활의 여유를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즉 차를 마심으로써 개인의 수양은 물론 인생을 논했던 것이다.
① 차의 종류
중국의 차의 종류는 수천 가지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차에 대한 명칭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차의 이름은 차를 채취하는 시기나 방법·색깔·형태·지명 등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이를테면 사전차는 경칩 전에, 우전차는 곡우 전에, 명전차는 청명 전에 채취하는 차를 말하며, 홍차·녹차·백차는 색깔로 구분한 이름이다. 차의 형태에 따라서 직설차와 말차로 구분되며, 이외에 차의 맛은 토질과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차의 이름에 지명을 딴 것이 많다.
차의 종류는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는데, 일반적으로 역사가 가장 길며, 생산량이 가장 많으며, 품종이 다양한 것이 녹차이다. 녹차 중의 명차는 용정차, 벽라춘차, 우화차 등 90여 종이 있다. 용정차는 중국 차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차로, 청나라 건륭제 때에는 황실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고급품이었다. 특산지는 항주에 있는 룽징이라는 차밭이다. 홍차는 국내총생산이 1/4를 차지하며, 수출량은 총수출량의 1/2를 차지한다. 홍차중의 명차는 기(祁)홍차, 기(淇)홍차, 영(英)홍차이다. 오룡차는 홍차처럼 향기가 짙으며 녹차처럼 맛이 산뜻하다. 종류에는 무이암영, 안계철관음, 봉황단총은 오룡차의 우등품으로 간주된다. 백차는 은빛 찬물색이 우아하고 담백하며 쓸개와 위에 좋다. 백호은침과 백호단은 백차의 진풍이다. 화차는 중국의 독특한 차로서 향편차라고도 한다. 생화를 가지고 찻 잎을 훈제한 것이 화차다. 복주의 다리공정은 화차 중의 상등품이다. 북방지역에서 즐겨 마신다. 긴압차는 보통 큰 차 잎이나 차나무 가지로 먼저 흑차, 홍차 또는 화차를 만든 다음, 그것을 원료로 하여 다시 만든다. 보이(普耳), 육보(六堡)가 긴압차 중의 명품이다.
② 차 예절
중국의 차문화는 식사시, 회의시,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 한국인들이 물 마시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차를 마시는 것은 하나의 풍속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습속으로는 친구나 친척 등 각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집을 방문하지 않으며 설사 방문했다 하더라도 집안에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낯선 사람간의 대화나 사업을 위한 장소로는 차를 마시는 다관이 제일 자주 이용된다. 이 점은 실질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국민성과도 관계가 있다. 즉 차 한잔 마시면서 간단한 식사를 하므로 비용이 저렴할 수밖에 없다.
별도의 예의를 요하지 않으나 상대방의 잔에 물이 빌 경우 계속 따라주는 것이 예의이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중에는 정치를 논하지 말라야 한다. 다관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니 자연히 정치 이야기도 나오게 되어 전에는 조정에서 몰래 정탐꾼을 보내 불순분자를 색출하는 장소로 다관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3) 주류
중국에는 지방마다 한두 개 정도의 특산주가 있을 정도로 술의 종류가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알코올 도수가 보통 40∼60도로 매우 독한 것이 유명하다. 그래서 술에 관한 고사도 많이 있으며, 술을 노래한 시인들도 많은 편이다. 이태백(李太白)같은 주선(酒仙)은 술을 먹다가 삶을 마감했고, 한국인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은 헌주사(獻酒詞) 25편을 남겼다. 그들은 술을 인생의 좋은 반려이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짝으로 보았다.
중국의 술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증류수인 백주, 양조주인 황주, 한방약을 이용한 노주, 과일 등을 이용한 과실주, 그리고 맥주 등이 있다.
① 백주(白酒)
백주란 한국의 청주처럼 백색 투명한 술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곡류나 잡곡류를 원료로 해서 만드는 증류주로서, 알콜 도수가 보통 40도 이상으로 매우 독하다. 중국에서 백주를 빚은 것은 아마도 송나라 때가 아닌가 한다. 지금부터 약 9백 년 전쯤 되는 셈이다. 이때부터 백주는 중국 술의 주종을 이루게 되는데 지금 한국인들이 일컫는 중국술은 거의가 여기에 속한다. <수호전>의 주인공 무송이 마셨던 술을 경양춘 또는 무송주라고 하는데 역시 백주의 일종이다.
백주로 유명한 것으로는 귀주성에서 생산되는 마오타이주, 산서성에서 생산되는 분주, 그리고 수수, 밀, 옥수수, 찹쌀, 멥쌀 등 5종의 곡물을 재료로 해서 빚은 오곡액(五穀液), 그리고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고량주(배갈) 등이 있다.
마오타이주는 알콜도수 53도이며 마오타이촌의 물로 생산된 것이라 하여 마오타이주로 불린다. 이 술은 고원지대의 질좋은 고량과 소맥을 주원료로 7번의 증류를 거쳐 밀봉항아리의 3년이상 숙성과정을 거친다. 숙성 후 혼배합과 포장을 한 뒤 엄격한 검사를 거쳐 합격품만 출고된다. 현재 중국인들은 마오타이주를 중국술의 상징으로 여겨 매우 진귀한 선물로 이용한다.
1천 5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분주는 알콜도수 61도의 고도주로 술빛이 맑고 빛나며 청향형(淸香型)에 속한다. 산동성 분양현 행화촌에 생산되며, 자료에 의하면 행화촌 분주의 양조는 남북조시대(420∼589년)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져 1,50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곡액은 당나라 시대에 처음 양조된 술로서 고량·쌀·옥수수·찹쌀·소맥 등의 5가지 곡물로 양조하여 성공한 것으로 향기가 그윽하고 술맛이 순수하며 마신 후 깨끗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백주로서 중국 8대 명주에 들어가는 것으로는 대국주가 있다. 국(麴)이란 누룩을 말하며 대국은 밀이나 보리·오나두 등을 이용하여 만든 누룩이다. 먼저 누룩을 사용하여 발효시킨 다음 이때 나온 주정을 다시 증류하여 얻는다. 그러므로 매우 독하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대국주로는 사천 성도의 전흥(全興)대국주가 있다.
② 황주(黃酒)
황주는 일종의 저알콜술(일반적으로 15∼20도)로 황색이며 윤기가 있다 해서 그 이름이 붙어졌다. 황주는 한국의 탁주에 해당하지만 탁주만큼 흐리지는 않다. 황주의 특징은 백주와 정반대이다. 즉 황주는 한국의 막걸리처럼 발효주로서 그다지 독하지는 않다. 황주는 곡물을 원료로 해서 전용 주룩과 주약(약초랑 그 즙 등을 넣어 배합을 하고 곰팡이를 채운 것)을 첨가하여 당화, 발효, 숙성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압축해서 만들어진다.
황주의 역사는 중국 술의 역사와 같다. 벌써 4천 년이 넘는다. 황주의 명칭은 색깔이나(紅酒·黑酒) 산지(紹興酒·蘭陵美酒), 맛(三冬蜜酒), 양조법(加飯酒)에 따라 무척 다양하다. 현재 중국의 대표적인 황주는 소홍주를 꼽을 수 있다. 소홍주는 중국의 황주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명주로서 절강성 소홍에서 생산한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 소홍주는 그 해에 수확된 상질의 찹쌀을 원료로 해서 수질이 좋고 경수연수가 적당하게 섞인 가운데에 미량의 미네랄을 포함한 감호의 물을 양조용수로 사용하고, 특제의 주약과 보리누룩을 배합해서 정성을 들여 양조한 것이다. 소홍주는 품종이 많은데 주요한 것으로는 원홍주, 가반주, 선양주, 향설주 등이 있다.
③ 노주(露酒)
노주는 미주라고도 하는데 한국말로 하면 약주(藥酒)라고 할 수 있다. 술에다 각종 식물이나 약재를 넣고 함께 증류시켜 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개 한 술이다. 노(露)는 이슬을 말하며 이런 새벽의 영롱한 건강을 상징하기도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중국에서 대표적인 노주라면 죽엽청주와 오가피주가 있다.
오가피주는 오갈피나무의 껍질 등 10여 종의 약초를 고량에 넣어 만든 것이고, 죽엽청주는 펀주에 대나무 잎 등의 약초를 넣어 만든 것이다. 죽엽청주는 음주 후 나타나는 두통 등의 부작용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기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혈액을 순화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④ 과실주
과실주의 대표는 역시 포도주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중국의 서북지방에서 포도를 재배하여 술을 담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포도주의 역사는 최소한 2천 2백 년이 넘는다. 현재 중국의 최상급 포도주로는 산동 연대의 홍포도주와 청도의 백포도주가 유명하다.
연대포도주로 유명한 연대는 국제 포도주 도시로서, 지부는 연대의 북쪽 9㎞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지부라고 하면 프랑스의 보르도나 포르투칼의 오포르토와 같이 연대 포도주의 대명사로 되어 있다. 1892년 창업한 장유공사산의 연대적포도주, 연대미미사. 금장백란지 등을 중국의 명주로 손꼽을 수 있다.
⑤ 맥주
맥주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종류를 자랑하는 술로, 각 지방마다 고유 브랜드를 가진 것이 많다. 그 중에서 청도 맥주가 가장 유명한데 독일과 기술을 제휴하여 만든 것이다. 그 외에 북경, 상해, 서안 등지에 각각의 브랜드를 가진 맥주들이 있다.
청도맥주는 중국의 8대 명주 중 하나로 좀 특이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중국 근대사의 비극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19세기에 들어와 영국을 위시한 서구의 열강이 다투어 중국을 침략해왔다. 그래서 각지에 이른바 조차지가 생기게 되었는데 당시 청도는 독일의 조차지이다. 그런데 이 곳의 수질이 좋아 자연히 독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기술로 1903년에 맥주공장이 세워지게 되었다. 중국 최초의 근대적인 맥주공장인 셈이다. 그 뒤 각지에 공장이 설립되었지만 청도의 맥주는 아직도 제일의 명성을 지니고 있다.
⑥ 음주예절
중국인은 술에 취해 실수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다. 중국의 술 중에는 특히 독한 술이 많기 때문에 한국의 소주 마시듯이 마시면 술이 취하기 쉽다. 그들은 작은 술잔임에도 단숨에 들이켜는 법은 없다. 항음주례에는 여덟번을 나눠 마시라 했는데, 한국인들 술 먹는 습관으로는 도시 어린애 소꿉장난만 같다. 그러나 술은 그들에게 목적이 아니다. 말을 끌어내고 말을 열게 하며, 생의 애환을 흥겨움 속에 삭이고자 하는 도구다.
중국인은 술잔이 다 비기 전에 술을 첨잔하므로 한국의 습관과 다르다. 그리고 잔을 돌리는 습관이 없다. 중국인이 건배를 외치며 술을 권해 올 때는 한 번에 다 들이켜는 건배의 의미로 중도에 내려 놓으면 실례가 되며 술이 약한 사람의 경우 음주 전 양해를 구해놓는 것이 좋다.
3. 주생활
대도시에 사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침대에서 생활하며, 신분과 지역에 따라 규모와 모양이 다르나 거의 아파트 건물 위주이다. 직장에서 근무경력, 직위, 근무성적 등에 따라 무료로 배분되므로 주택확보 및 유지에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주택사정이 매우 심각해 방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기도 하고, 또는 먼저 혼인신고를 한 다음에 직장에서 아파트를 배분해주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현재 도시의 아파트식 중국집은 평수에 비해 많은 방을 만들어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중국의 주택은 자기의 지위나 근무경력이 많아지면 더 넓은 집을 분배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을 깨끗하게 보수, 유지하지 않는다. 또 주택은 권력과 밀착되어 있으며, 고급 간부들은 넓은 주택이 무조건 보장될 뿐만 아니라, 무료이거나 아주 낮은 집세로 아들·손자에게 권리를 물려주기도 한다. 상해에서는 이런 특권을 박탈하기 위해 91년부터 주택채권제도와 적립금제도를 강제로 실시했으며, 전국적으로도 주택 무상 분배제도가 폐지되었다.
1) 주택 수급 현황
1991년 6월 중국 국무원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 450개 대·중·소도시에 대해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주택제도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토록 촉구한 바 있다. 개혁의 골자는 기존의 저소득·고축적을 통한 공공주택 공급방식을 이익자부담 원칙하에 주택을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주택건설상황을 보면 1979년에서 1990년까지 12년간 전국도시지역에 건설된 주택은 15억 ㎡로서 총 2,8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되었다. 이처럼 대량의 신규주택이 건설, 공급됨에 따라 도시주민 1인당 주거면적은 1979년 3.6㎡에서 1992년에는 7.1㎡로 늘어나 타 국가의 경험에 비추어서 기록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중국의 도시지역 주택수급 사정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으며, 주택제도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아직도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1991년 현재 전체 도시가구의 25%에 해당하는 800만 가구가 집이 없거나 주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1인당 주거면적이 2㎡ 이하인 가구만도 50만 가구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날림으로 지은 아파트여서 붕괴위기를 안고 있는 주택이 5,000만 ㎡, 낡은 간이주택이 6억 ㎡에 달하고 있어 시급히 개축되어야 할 실정이다.
2) 주택개량계획
중국은 8차 5개년계획의 최종년도인 1995년까지 1인당 주거면적을 현재의 7.1㎡에서 7.5㎡. 2000년까지는 8.0㎡로 개선한다는 목표 아래 향후 10년간 매년 1.6억 ㎡(약 660만 호)의 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은 총 5,000억 원으로 추산되며, 이중 3,000억 원 가량을 정부재정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주택개혁제도가 주택의 상품화·사유화 방향으로 진전될 경우 기본계획이 달성될 2000년까지는 정부와 단위, 개인간의 주택자금 부담률을 60 : 20 : 20을 유지할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20 : 20 : 60의 비율로 수익자 부담률을 점진적으로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주택제도의 개혁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으나 기본방향은 주택임대료 인상과 이에 따른 주택보조금 지급 주택적금제 보장기금제 공공주택과 신축주택의 불하 및 판매 주택조합에 의한 주택건설 촉진 등 다섯 가지로 집약되며, 지역에 따라 한 가지 혹은 두세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게 된다.
3) 건축물의 특징
중국은 긴 역사만큼이나 건축물에 있어서도 독특한 양식을 유지해 왔다. 여기에서는 중국 고전 건축물을 중심으로 건축물에 서려있는 중국인의 특성을 알아보도록 한다.
중국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나라의 건축이 종교건축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반면에, 중국건축은 궁전건축을 중심과제로 발달해왔다. 북경의 자금성으로 대표되는 궁전건축은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개개의 건축형식에서나 전체의 배치상태에서나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며 가장 완벽하다. 각종건축을 비롯한 그 밖의 건축물은 대부분 궁전건축을 모방·생략·축소한 것들이다.
두번째는 목조 본위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만리장성이나 도시와 촌락을 둘러싼 성벽도 건축물에 포함되는데 이런 건축물은 흙이나 벽이나 석재를 주요 건축자재로 이용했다. 그러나 이런 이질적인 재료로 지은 건축물도 대부분 목조 건축양식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건축은 목조 본위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로 중국건축은 평면 구성에 있어 매우 단순한 편인데, 대부분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이고, 그 밖의 복잡한 형태를 갖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기둥을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세운다. 기둥의 간격은 정면과 측면을 통일하는 것이 구조상으로도 편리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지는 않다.
네번째로는 건물들의 배치방식이다. 우선 남쪽에서 북쪽까지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중심축을 설정하고, 주요 건축물은 모두 이 중심축 위에 남향으로 세운다. 주요 건축물과 관련된 부차적 건축물은 각각 주요한 건축물의 앞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대칭으로 세운다. 이것을 배전(配殿) 또는 상방(廂房)이라 부르며,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관련을 가진 건축물들은 모두 복도로 연결된다. 개개의 건축물이 각각 좌우대칭으로 지어진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체의 배치도 역시 좌우대칭을 원칙으로 한다.
다섯째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구조형식으로, 중국건축은 지반 위에 기단을 높이 쌓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으며,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는 구조형식을 취했다. 기단은 흙으로 쌓지만 주위는 대개 벽돌이나 돌로 둘러싼다. 자금성의 태화전에서 변두리의 초라한 민가도 반드시 밑에 기단을 쌓는다.
여섯째로 지붕형태에 있어서 중국건축은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의 단순한 평면 건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개의 단위 건축물에는 각각 독립된 지붕을 씌우는 것이 원칙이다. 이 지붕의 형태는 맞배·우진각·팔작 지붕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중국 건축에서는 이 3종류의 지붕 밑에 따로 차양을 이어달아 2층 또는 3층 건물로 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일곱째는 중국건축의 커다란 특징은 세부의 가시적 수법이 이상할 만큼 발달했다는 것인데, 세부 가운데 건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처마를 떠받치는 두공이다. 두공은 돌보다 도리에 걸리는 상부의 하중을 집중하여 기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특수 구조물로서, 그리이스·로마 건축이나 그밖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둥머리 장식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채색장식을 들 수 있는데, 중국건축은 목조 본위이기 때문에 목재가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 많지만, 이런 노출 부위에 대개 색칠을 한다. 게다가 채색에는 빨강이나 파랑같은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다.
4. 가족
전통 중국사회에서는 가족이 사회의 중심축이었는데, 세대간에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가족간의 존경과 사랑을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서 가족의 크기와 구조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졌는데, 농촌의 대토지 소유자와 정부관리는 대가족을 구성하고 있었던 반면에 가난한 농부들은 소가족을 구성했다. 대개 가정은 세 세대 - 할아버지, 그들의 자식, 그리고 손자들 - 로 확대된 가족을 구성했다.
그러나 현대에 특히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가족의 전통적인 형태가 급격하게 변했다. 첫째는 국가가 인정한 조직체가 가족 구성원들의 강한 유대감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조직체로는 아이들을 위한 젊은 선구 집단과 십대·노동단체·47백만 명의 공산당 당원을 위한 공산당 청년연맹 등이 있다. 두번째는 가족은 더이상 가족 구성원에 대해 경제적 보장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는 공장이나 노동일선, 주식회사에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그들이 가족이 없을 경우에 각종 혜택과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세 세대가 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점차적으로 핵가족화되어 부모와 지식은 한 가정에서 살고 할아버지는 다른 곳에 사는 형태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가족이 노동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기 때문에 법으로 1979년까지 법으로 농부들은 노인과 아이들을 돌보도록 규정했다. 1979년에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그들의 수입은 그들의 산출과 연결했다. 이 변화는 정부의 30년간 대가족 제도로의 노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7년 현재 전형적인 중국의 가족의 형태는 다섯 명 내지 여섯 명인데 이것은 전통적인 중국에서의 부유한 가족형태와 유사하다. 이 수치는 도시지역이 농촌지역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1) 가족계획
중국은 전 세계 경작가능면적의 7%에 불과한 땅 이 위에 세계인구의 20%가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 '인민이 가장 귀중한 자원' 이라고 한 모택동주석의 인구정책 실패의 후유증으로 가성(可姓) 여성수가 급속히 증가하므로써 중국정부가 시행중인 1자녀 갖기 운동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경우 오는 2000년의 인구억제목표인 12억명은 상향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같이 가성여성수가 요즘들어 급증하는 이유는 모주석통치당시인 50년대초부터 76년 그의 사망때까지 무분별한 인구증가정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인구증가가 중국의 경제발전의 혜택을 나눠먹어야 할 입만 늘려놓은 셈이라는 판단 아래 산아제한을 주장한 것은 모의 사후에나 가능했다. 모주석 재임 당시 출생한 여아들이 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사이에 가성여성으로 진압하게 되기 때문에 또 한차례의 베이비 붐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에따라 중국정부는 교육과 선전 및 상벌을 통해 1자녀갖기 운동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나 도시지역을 제외한 농촌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정부당국은 1자녀만 갖겠다고 맹세하는 신혼부부에게는 돈과 토지를 주고 있으며 불임수술을 할 경우 추가로 현금을 지급한다. 2명 이상 자녀를 낳을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0년동안 임금의 10%를 깎는다.
민주화요구로 갈등을 겪고 있는 티베트를 제외한 중국 전역에서 이같이 1자녀갖기 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출생률은 계획목표를 40%나 초과하고 있고 시골 지역에서는 가구당 평균자녀수가 2.8명에 이른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사람들의 무지를 들 수 있으며, 두번째는 대를 이을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지방관리들에게 가족계획에 대한 상벌집행을 강력히 시행하도록 하고, 1자녀 가정의 이점에 대해 집중교육을 하는 한편 두번째 아이부터는 유산시키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중국은 많은 인구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연자원 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결국 자원환경의 훼손이라는 반대급부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삼림의 파손, 초원의 사막화, 수분과 토양의 유실 및 환경오염 등은 모두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에 중국이 가족계획을 기본 국가정책으로 삼게 된 것은 바로 이같은 사정에서 비롯됐다.
중국정부에 의해 의욕적으로 추진된 가족계획은 진부한 구식관념에 부딪쳤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가정 및 가치관 등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도시의 경우, 모든 인구억제조치가 순조롭게 실시됐는데 이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 도덕관 및 인생관이 나날이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어려움을 참아가면서 후대자손을 위해 살 가던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기 개인의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여유를 희생하면서까지 대를 잇는 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2) 결혼
중국에서 가족을 통한 영속에 대한 믿음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결혼이라는 제도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결혼은 부모와 어른들에 의해 결정됐으며 지식들은 이런 부모나 어른들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만 했다. 1950년에 결혼법으로 모든 사람들은 결혼 상대방을 자신의 의지대로 고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됐다. 그러나 많은 자식들은 특히 시골에서는 장차 결혼할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으며, 구혼에 대한 개인이 권리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부모의 소개나 전문적인 중매인의 역할이 결혼 상대방을 고르는데 중요한 결정이 됐다. 대개의 경우 젊은 사람들은 정해진 결혼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있다.
농촌과는 달리 도시의 가족들은 결혼을 정하는데 있어 상대적으로 제한된 권리를 사용한다. 이것은 장기간 그들의 가족에 대한 안전과 이익을 제공하는데 있어 도시 가족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에서 거주하는 젊은이들은 부모나 친척에 의한 상대방 소개가 없어지면서 보통 그들의 일터나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고른다.
도시의 결혼식이 시골보다는 보통 작고 검소한 편이다. 그리고 참석하는 하객들도 부모와 친척과 연관있는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결혼당사자들의 직장 동료나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결혼의 초점도 가족 구성원보다는 당사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결혼식 후에 떠나는 신혼여행은 보통 3일 정도로 되어 있다.
① 전통적 결혼풍속
한국 전통적 혼인습관과 같은 것으로 남자 집에서 중매인을 여자집에 보내어 혼담을 꺼낸다. 여자 집에서 마음에 들면 사주팔자를 적어주고 중매인이 남자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맞추어 본다. 남녀의 사주팔자, 궁합을 본 뒤 상극되는 점이 없으면 남자 집에서 중매인을 여자 집에 보내어 약혼조건을 상의한다.
중매인을 통해서 약혼 예물을 교환하며 신랑집에서 길일을 택하여 신부집에 알린 후 신랑이 악대, 의장대, 가마를 가지고 가서 신부를 맞아온다. 이같은 전통적 결혼 풍속은 농촌지역에 남아 있을 뿐이다.
② 현대적 결혼풍습
1980년대 들어서 개혁·개방 이후 부모가 정하는 결혼은 애정 위주의 혼인관으로 발전했다. 연애가 자유로운 도시에서는 직장에서 혼례식을 치러주며, 간략한 주례의식을 거친 다음 신랑 신부 맞절, 양가부모, 손님들에게 인사, 그리고 모두 술만을 들고 축배를 올리는 경주가 있은 다음, 신랑신부가 각 식탁마다 다니면서 경주로 인사한다.
신랑은 양복을 입으며, 신부는 치파오(旗袍) 혹은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신랑측에서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신부측에서 약간의 살림자금을 보태주어 한국과는 반대이다. 결혼 후 거의 신혼여행 없이 며칠 휴가 동안 신방을 꾸미며 결혼휴가 후 직장으로 돌아올 때 사탕을 직장동료들에게 돌린다.
③ 결혼비용
최근 중국에서 급증하는 결혼비용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결혼비용의 대부분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전제품 등 혼수비, 실내장식비와 연회비용이 차지한다. 10만원(한화 1천만원)의 결혼비용을 쓴 신혼부부의 경우 가전제품구입에 3만 1천 5백원, 실내장식에 2만원, 가구구입에 8천원, 연회비 3만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상해에서 발행되는 해방일보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소비의 관념·형태·습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결혼소비로 나타났다. 조사에 의하면 중국의 결혼비용 증가는 3단계로 구분된다. 제 1단계는 85년 이전으로 당시 결혼비용은 몇 백에서 몇 천원에 불과했다. 제 2단계는 86∼93년으로 '결혼비용 10만원' 가정이 나타났으며 평균적으로는 2만∼5만원을 지출했다. 94년 이후를 3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5만∼10만원으로 씀씀이가 커졌고 10만원 이상되는 가정도 흔하게 됐다.
94년 통계에 따르면 5만∼8만원 가정이 48%, 8만∼10만원이 28%를 차지했다. 95년 들어서는 5만∼8만원이 35.7%, 8만∼10만원이 28.5%로 급증했으며 10만원 이상을 쓴 가정도 19%나 됐다. 이에 반해 중국의 결혼적령기 남녀의 월수입 합계는 절반정도가 1천∼2천 수준인데 구체적으로는 1천원 미만이 4.8%, 1천원 이상 2천원 미만이 48.7%, 2천원 이상이 24.8%로 나타났다.
결혼비용을 자력으로 장만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93년까지만도 60% 이상이 제 힘으로 결혼을 했으나 94년에는 48%, 올들어서는 31.7%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의 부담이 늘었고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혼남녀의 20% 정도가 평균 1만∼2만원의 혼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국의 일부 청춘남녀들은 감히 연애할 생각을 못하고, 몇년씩 연애해 온 사이라도 결혼을 결행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3) 장례식
중국은 민족에 따라 장례식의 형태도 다양 하나 일반적으로 토장이 성행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대도시부터 화장을 권장하여 간소화했다. 최근 농촌·도시의 돈이 많은 계층에서 옛장례 풍속이 되살아나고 있다.
전통적인 중국의 장례식에는 사람들의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관념이 있어서 장례식을 특히 중히 여겼다. 민간에서는 천수를 다하고 대청에서 죽는다는 수종정침(壽終正寢)을 중시하여 병세가 위급하면 속히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대청으로 옮겨 식구들이 보는 가운데 운명하게 된다. 그외의 장례절차는 한국과 동일하다.
그러나 현대의 장례식은 1950년대 이후 국가의 장례로 토장보다는 화장을 권하고 있으며, 대도시의 경우 90% 이상이 화장을 하고 있으나, 농촌지역에서는 화장률이 상당히 낮다. 장례절차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직장이나 친족이, 죽은 이의 동료와 친척, 친구들에게 부교를 보내고, 유해를 화장터로 옮긴 화장시킨 다음, 아주 간단하게 유해 고별의식을 행한다.
4) 여성
전통적인 중국사회에서는 여자는 아버지와 남편, 아들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은 그녀의 결혼 상대자에 대한 결정권이 거의 없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는 그녀의 가족과 더불어 살던 집과 마을을 떠나 남편에게 복종하며 살 가정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의 교육정도가 낮은 편이다.
오늘날, 여자의 위치는 상당히 많이 변했다. 1950년에 제정된 결혼법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여자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면 남편과 이혼할 수 있으며, 실제적으로 많은 여자들이 이혼을 감행했다. 현재 여자들은 대학에 다니고, 인민해방군에 복무하며, 공산당에 참여하는 등 남자와 동등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여자의 위치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노동력의 변화이다. 대부분의 도시 여자들과 많은 농촌 여자들은 가사노동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일을 주로 한다. 이런 변화의 영향으로 도시와 농촌에서는 탁아소가 건립되어 어린아이들을 돌본다. 일반적으로 탁아소는 늙은 여자들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하고 젊은 여자들은 일터로 가거나 학교로 나간다.
그러나 모든 점에서 아직까지는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사회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그들이 다니는 직장은 남자들에 비해 임금이 적은 편이며, 대우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농촌지역에서는 남성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보다 우월적인 대우를 받으며, 전문적인 기술도 대부분 남자 노동자가 가지고 있다. 현재 어디에 사는 중국 여성이든간에 그들은 밖에서는 하루종일 일에 얽매이고 가정에서는 허드렛일에 고생을 하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의 교육 기회는 동년의 남성들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며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의 비율은 남학생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은 편이다.
중국 여성들 중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여성들은 주로 문화혁명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도시여성들이다. 문화혁명기간중 성은 극도로 금기시됐으며 보통의 정상적인 성행위도 반동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그 결과 많은 여성들은 성이란 더러운 것이며 성에 대한 욕구는 억눌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결혼후 3개월동안이나 남편이 자기를 만나지 못하게 해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강요당한 한 여성의 이야기도 있다.
북경의 젊은 여성들은 다른 종류의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시내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3분의 1이 혼전 성관계에 찬성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자신의 결혼상대자는 혼전 성경험이 없기를 바란다. 연애결혼이 성행하는 도시지역의 여성과는 달리 농촌지역 중국여성들은 연애결혼과 중매결혼 사이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문제는 남편의 학대이다. 북경 결혼가족 연구소가 2천명의 중국여성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 여성중 1%가 남편으로부터 매일 매를 맞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0%가 1주일에 2∼3번 구타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한 농부가 자기부인을 전등불도 없는 조그만 방에 무려 78일 동안이나 감금한 사실이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구타를 개인의 집안일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전통적인 폐습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조사결과보다 실상은 더욱 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5) 결혼관과 이혼문제
주로 연애결혼이 주이나 중매에 의한 결혼도 있어 한국과 흡사하다. 남녀를 연결시켜주는 TV,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이 있어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중매 전문회사도 성업중이고 신문광고도 나온다.
특이한 것은 한국 1960년대나 1970년대에 성행했던 국제결혼이 성행해 젊은층과 해외여행을 동경하는 중국 여성들의 새로운 희망이 된 점이다. 대학교 다닐 때 서로 연애를 하더라도 국가에서 분배한 직장이 같은 도시에 있지 않으면 결혼할 수가 없다. 이유는 직장을 옮기기가 상당히 힘들고 주택문제가 있어 결혼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젊은 여성들은 물론 경제적인 면을 결혼관의 첫째로 삼으며, 다음으로 성격, 비전을 고려하는 등 한국과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도 여성이 결혼대상을 찾을 때 남성의 외모를 상당히 중시한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결혼한 중국인 가정 80% 이상은 행복과 관계없는 생활을 하며, 그 중 상당한 부분은 이혼을 하고 싶으나 체면 깎이는 것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 는 말이 있는데 이는 중국의 가정생활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인지를 알 수 있는 한 예이다. 중국도 한국과 같은 문화권이어서 만약에 체면문제만 없다면 여자 혼자의 경제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혼율은 급격히 증가 할 수 있다.
합의이혼은 상당히 간단하다. 쌍방이 재산합의를 하고 이혼신청서를 작성해서 근무기관의 증명서를 첨부하여 혼인등기소에 가서 수속하면 이혼증이 발급된다. 이혼증 발급까지 최소한 1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사건을 보면 최근 여성원고가 남성보다 많다고 한다. 북경, 산서, 강서, 흑룡강 등지의 통계를 보면 여성이 이혼을 제기한 경우가 70%이고, 어떤 지방에서는 84%에 달하는 등 남편과 헤어지기로 원하는 여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국의 1994년 5월 12일 발표에 의하면 1993년 한해동안 중국 전역에서 90만 9천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숫자는 92년보다 5만 9천쌍이 많은 것이며 91년에 비해서는 무려 3배나 많은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의 이혼율은 92년의 1천쌍당 1.47쌍에서 93년에는 1.54쌍으로 늘어나게 됐다.
1993년 이혼 신청 건수는 1백 50여만건으로 전국 3억여쌍 부부의 1천쌍당 5쌍이 이혼을 신청한 셈이다. 중국의 이혼 건수는 지난 89년 28만 7천건이었던 것이 90년에 30만건으로 다소 늘어난 후 91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추세를 보였다. 그것이 92년에 갑자기 85만건으로 늘어나면서 급증 경향을 보인 것이다.
중국정부는 부의 문제가 이혼에 이르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가정이 부유해지면서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또 부부중 한쪽이 부유한 상대를 만나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중국에서는 결혼하기는 쉬워도 법적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이혼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근래 법정에 호소하지 않는 합의 이혼 풍조가 늘어나면서 이혼 건수가 급증하게 됐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79년만해도 19만건에 불과하던 합의 이혼 건수가 92년에는 31만건으로 늘어나 전체 이혼 건수의 36%를 차지한 것으로 공식통계는 밝히고 있다.
5. 관습 및 예절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한번 좋은 관계를 갖으면 끝까지 믿고 도와주지만, 반대로 한번 원한을 사게 되면 좀처럼 잊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무뚝뚝하다. 그러나 친구라든가 사업상 알게 된 사람, 다시 말해 계속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특히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았을 경우에는 무척 호의적이며 상당히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중국인들도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빚을 지기도 한다. 초대를 받아 방문할 때는 혼자 가는 것이 좋다. 사전 양해 없이 상대방이 잘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가면 실례가 될 뿐 아니라 터놓고 이야기하려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친해지기 전까지는 상대방에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나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놓지 않는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부담스러운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다.
1) 식사예절
중국의 음식은 단순한 생명유지를 위한 방편만이라면, 이를 문화체계의 편입, '음식문화'로 지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요리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도 단순히 중국요리 자체 때문만은 아니고 음식이 삶의 기초인 만큼 중국요리는 요리 안에 많은 문화전통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식사하는데 많은 예절들이 있다. 초대받을 경우에는 선물은 짝수로 준비하며, 가급적 벽시계나 탁상시계는 삼가는 것이 좋다. 시계를 뜻하는 종(鍾)의 발음이 끝을 나타내는 종(終)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에서는 탁상용 시계나 괘종시계가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선물은 되도록 가벼운 것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을 주는 것이 좋으며, 외국화폐나 기념주화도 선물해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은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며 초대를 받은 경우는 고급 과일이나 쵸코렛 또는 쿠키 등을 부인에게 선물하면 된다. 음식은 통상 12가지 이상 나오므로 되도록 자신의 식욕을 조절해서 먹어야 하며 식사중 정치이야기는 금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손님을 초대할 경우 손님에게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권하며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접대한다. 중국인은 손님이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기는 것을 자신이 음식을 충분히 준비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굳이 음식을 비울 필요는 없다.
음식점에서 식사 초대를 받을 경우 중국인이 지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왜냐하면 음식값을 지불하는 호스트가 좌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호스트가 착석후 앉으며 호스트가 건배를 청하기 이전에는 건배 제의를 삼가해야 한다.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며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함이 좋다. 준비된 음식에는 적어도 한 번씩 손을 대는 것이 예의이며,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 상관습
개인보다는 집단과의 조화를 중시하여 상호 협동적인 삶의 철학을 가진 중국인들은 물건을 팔고 사는 것이 생활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통해서 삶의 기쁨을 찾는 여유를 가진 국민이다. 이들은 주인의식이 강해서 빈손으로 자립하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상술에 익숙한 국민들이다. 이들이 얼마나 현금주의사상이 강한지 알 수 있는 한 예가 있는데 문병을 갈 때에도 과일이나 꽃을 사가지고 가는 대신 현금을 전할 정도이다.
중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숫자개념의 철저함과 돈의 중요성을 배우며, 절약하는 습성과 물건을 살 때에 흠을 잡아서까지 가격을 깎는데 익숙해지도록 교육을 받는다. 중국인들의 또다른 특성은 현실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실에 처한대로 일을 풀어 나아간다.
중국인들은 체면을 소중히 여긴다. 체면을 생명보다 더 중시하는 이들은 남을 속인 사실이 밝혀지면 죽기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 상대방을 너무 질책하면 거래가 끊길 우려가 있으므로 간접적인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이 무거운 이들은 상담시 본심을 타인에게 노출하지 않도록 필요한 정보도 상대방보다 먼저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소인취급을 받으며 경시당한다.
중국인들은 여유가 있는 국민이다. 중국요리 순서에 마지막으로 생선요리가 나온다. 비록 상에 오른 요리는 끝났지만 유어(有魚)란 것이 여유이니 아직도 대접할 수 있다는 여유를 은연중에 자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래시 중국인들에게서 늘 볼 수 있는 수단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이 여유를 중국인 특유의 상술의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협상시 이들은 상대의 요구사항을 듣고 하나 하나 답변해 나간다.
중국인들은 상담시 히든카드를 내놓지 않는다. 히든카드는 마지막 단계에서 자기가 불리할 때 내 놓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계약이 유리하게 되어가면 히든카드는 다음번 기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유보해 둔다. 그러므로 이 히든카드 작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밀리기 마련이다. 특히 가격상담에서 많은 히든카드가 보여지는데 이 히든카드는 마지막 한장이 아니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들과의 협상시에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인내하며 이들의 거래관습에 적응토록 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사람을 믿거나 돈버는 단위를 10년으로 한다. 이들은 상대를 믿는데는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고 일단 믿은 상대에게는 손해가 있더라도 우정을 갖고 계속 거래를 하는 대 적인 기질도 갖고 있는 국민이다. 그래서 이들과의 약속은 손해를 보더라도 꼭 지켜야 한다. 이들은 믿기전에는 비개방적이고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며 간접적인 모호한 언어를 즐겨 쓴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공식적인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서양인들의 협정은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명시적이어야 하며 계약은 각 당사자의 상호 책임을 세부적으로 명시해야 하고 법적으로 효력이 있어야 한다는데 반해 중국인들의 협정은 상호 이해에 기초해야 하며 서면에 의한 표현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쟁은 법이 아닌 협상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다. 거래관계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 거래관계를 설정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중국인들과의 협상에 성공하려면 우선 앞에서 언급한대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인내하며 신뢰감을 쌓고 구두로 약속한 것도 성실히 수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3) 음주예절
중국술은 제조방법 및 원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사람이 좋아하는 술은 죽엽청주와 마오타주이다. 술은 종류에 따라 황주(黃酒), 백주(白酒), 포도주와 과실주로 나누어 진다.
중국인은 술에 취해 실수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다. 중국의 술 중에는 50도 이상의 술이 많으므로 한국의 소주 마시듯이 마시면 술이 취하기 쉽다. 술고래라는 뜻으로 하이량(海量 : 좋은 의미의 술고래)과 지우꾸이(酒鬼 : 나쁜 의미의 술고래)가 있다.
중국인의 음주예절은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편이다. 중국에서는 술잔이 다 비기 전에 첨잔하므로 한국의 습관과 틀리며, 잔을 돌리는 습관도 없다. 중국인이 건배를 외치며 술을 권해 올 때는 다 들이키는 건배의 의미로 중간에 내려놓으면 실례가 되며 술이 약한 사람의 경우 음주 전 양해를 구해놓는 것이 좋다. 중국인 집을 방문했을 때 일반적으로 차를 대접하나 만약 술을 대접하면 주객의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의미한다.
4) 차 예절
중국은 차 역사는 4천년 이상을 가지며, 어느 공공장소를 가더라도 차잎만 있으면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끊는 물이 준비되어 있다. 차의 종류에는 녹차, 홍차, 오룡차, 백차, 화차, 긴압차 등이 있으며 각 지방마다 고유한 차가 있어 지방 특산물로서 즐길 수 있다.
중국의 차문화는 식사시, 회의시를 막론하고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 한국인들의 물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택시기사들도 보온통 혹은 유리병에 차를 타서 마셔가며 운전할 정도로 차는 중국인에게 하루도 없이는 안돼는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특별히 예의를 요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잔에 물이 빌 경우 계속 따라주는 것이 예의이다.
5) 담배 예절
한국과 같은 담배 예절이 없어 아들이 아버지와 맞담배를 할 수 있으며, 처음 사람을 만날 때, 담배를 권하며 피우지 않더라도 응해주는 것이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들인다는 의사표시이다. 자기가 피기 전에 계속 다른 사람에게 담배를 권한다. 보통 다른 사람에게 담배를 권할 때에는 중상급 이상의 담배를 권한다.
6) 사업상의 관습
중국기업은 중앙정부 또는 지방 각급 정부 산하, 대외경제무역부 또는 기타 경제부서 산하, 군관계 산하, 중외합작, 각종 사회단체 산하 기업 등 그 설립 형태에 따라 상이하므로 상대기업의 성격파악이 중요하다. 상담시 중국인은 특정사안에 대하여 민감한 문제는 확실한 답변을 유보하거나 긍정 또는 부정이 모호한 표현이 심한바, 이때는 중국어 및 중국인 일반특성, 주변여건, 상대방의 태도 등으로 종합하여 가능성 여부를 판단한다.
항상 신중하고 예의를 갖춘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의 모든 카드가 제시되도록 끈질기게 기다리며, 상대방의 시간적·심리적 초조한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일단 유리하다고 판단될 시에는 상대방을 재촉, 적극 추진해야 한다. 추진과정중 축적된 인간관계를 중시, 일단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 협조, 평생동안의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직까지 많은 중국경제무역인사는 대외교역, 합작 등에 대한 경험이 미축적되어 있는바, 그 구체적인 추진 시에는 각 과정별로 확인, 추진방법제시 등으로 인내력있게 이끌어감이 필요하다.
상담 또는 비즈니스 추진시 상대방측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발언 또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반사회적인 행동, 즉 매춘·외화암거래·술주정·고성방가를 금하고 서구적인 제스처 또는 표현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7) 접대시의 예절
중국방문시에는 일반적으로 식사향응을 받게 되는 바 비슷한 수준으로 접대가 필요하다. 접대받을 때, 참가한 중국인사들은 추진중인 상담과 대체로 종적·횡적 관계가 있음을 주의하여 접대시 모두 초청토록 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상호 체면중시를 감안하여 상대측의 인간관계를 면밀히 파악, 관계되는 자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선물을 주거나, 기념조로 참가자 중 형식적인 최고직위자 1명에게 간단한 기념품 등을 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선물은 자연스런 자리에서 주도록 해야 한다.
이 내용은 경향신문 지구촌 국가정보의 자료를 인용, 편집한 자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 홈페이지 관련사이트 지구촌국가정보(http://www.khan.co.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