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트레킹(EBC)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숲길체험지도자과정의 연수를 대전에 있는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에서 받았다.
교육생들은 다양했다. 계룡대, (사)지리산둘레길, 강릉, 울산, 부산, 대전, 태안, 괴산, 속리산 등 각지의 산악사진작가, 군인, 공무원, 사업가, 교수, 시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32명이 숲, 나무, 식물, 동물, 구조활동, 산행예절과 소양, 크라이밍등의 이론과 실습 등으로 자격에 맞는 요건을 갖추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그 교육생 중 한명인 김대장이 12월에 네팔에 가는데 합류하라는 권유에 마음에 두고 있었던 히말라야를 만날 수 있는 기회에 기꺼이 답했다. 나를 뺀 나머지 팀은 12월 20일 쿰부를 다녀와서 1월 4일경 만나기로 하고 먼저 떠났다.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에 간다는 설레임으로 오후 1시 개양에서 인천공항버스를 탔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준비해오라는 각종 준비물을 챙기니 카고백 23kg 2개, 휴대용배낭, 에코백까지 거의 이민을 가는 짐 수준이다.
공항에서 티케팅을 하고 쿠밍 시안을 거쳐 네팔에 들어가니 눈이 휘둥그레 질 만큼 수많은 설산들의 펴쳐 지고 산 사이를 들어서서 착륙하니 카투만두 국제공항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마야그르츠 사장인 파상(네팔이 좋아서 네팔이름을 가진 한국인)과 김대장이 마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연기가 많이 나는 사원이 보인다. 힌두교의 시바신을 모시는 힌두 최고의 성지인 파슈비나트이다. 20분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이 마야거르츠(사랑해라는 뜻) 게스트하우스이다. 3층으로 되어 있고 16명이 지낼 수 있도록 방이 많고 마당이 있는 큰 집이다. 우선 짐을 방으로 옮기기 전 부탁한 물건들을 건네주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전기밥솥과 네팔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축구공 20개와 작은 선물들과 식품들이 카고백 한 개에 모두 들어 있었다. 이 무거운 물건 짐들로 꼼짝 못했었다. 마야거르츠에서 랑탕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들을 찾으니 고산과 감기로 쿰부히말라야 트레킹을 실패하고 출국하여 버리고 대전에서 온 김대장만 남았다고 한다. 그도 역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오후 비행기로 출국해 버렸다.
졸지에 일정이 없어져 버렸다. 마야거르츠 사장님과 한달의 일정을 의논을 했다. 네팔이 처음이라 의논하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반부는 ABC(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합류한 팀은 지도교수님 정년 퇴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축과를 졸업한 건축사 6분과 현직건축과 교수님인 제자 한분으로 구성된 팀이다. 급작스럽게 팀에 합류하여 온갖 고난을 겪으며 11박12일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ABC 팀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혼자가 된 나는 숙소를 마야거르츠 게스트하우스에서 타멜의 블랙야드호텔로 옮겼다. 게스트하우는 매일 10불이었고 비수기인 세미호텔인 이곳은 1박에 20불이다. 2017년 1월 15일 임자체등반을 시도해 보기 위해 등반을 위한 준비를 했다. 동행할 셀파는 텐바, 포터는 노루와 나 일행은 모두 세명이다. 등반을 위해 피켈 크럼폰, 고산용장갑, 고산용고글, 매트리스, 자일, 하네스, 주마, 카라비너, 우모복상하의, 버너, 코펠, 식량, 간식, 핫팩, 수저, 방수용 카고백, 등반을 위한 팀스카드, 국립공원입장료, 클라이밍 퍼밋, 카투만두에서 루크라 왕복항공권, 셀파비용12일치 포터비용 12일치 가이드 장비 임대비, 텐트임대비, 연료구입비 등 혼자의 등반이지만 준비물들이 많다. 준비를 하며 긴장감과 설레임이 무게감을 더해준다. 카투만두에서 준비할 것과 임자체가 있는 마을에서 준비할 것을 나누어 짐을 꾸렸다.
1일차 (2017년 1월 16일 월요일) 카투만두-루크라-팍딩
새벽6시 카투만두에서 루크라공항으로 가는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거나 임자페 등반 중 어느것을 할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달리 정하기로 하고 쿰부히말라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새벽 6시 블랙야드 호텔에서 날이 춥다고 우모복(극한추위에 견딜수 있는 옷) 자켙과 조끼, 모자, 등 중무장을 하고 택시에 워킹용 배낭과 카고백을 싣고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20분쯤 후 국내선공항에 도착하여 예약된 비행기 티켙을 찾아서 7시40분에 비행장에 들어가 8시 콤마항공을 탔다. 모두 18인승의 작은 비행기에 사람과 짐들이 비행기를 꽉 채운다. 셀파 텐바와 탑승을 했다. 짧은 비행이지만 스튜디어스가 사탕과 소음이 괴로운 사람은 사용하라고 솜 두 뭉치를 건네준다.
요란한 비행이 시작되자 안나푸르나와 반대방향인 에베레스트쪽으로 비행이 시작되었다. 차창 밖으로는 설산들이 한 없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 바다위의 섬들처럼
40분의 비행 후 산과 산 사이를 지나 낭떠러지 위의 언덕 같은 곳에 2017.1월 17일 오전 8시 40분에 우리의 비행기는 루크라 공항에 툭 무사히 착륙 했다. 도착하니 셀파인 텐바의 이모부 노루가 포터로 나와서 마중을 해준다. 자그마한 사람이 표정이 밝고 순한 42세의 가장이라고 한다.
비행장은 진주 공설운동장보다 훨씬 좁고 작았다. 카투만두의 1400m 고지에서 2840m의 루크라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옆에 있는 로지에서 밀크티를 한잔했다. 쿰부히말라야는 티벳 불교권의 영향이 깊은 곳이다. 옴마니반메훔의 묵직한 경전음악이 실내를 채우고 벽에는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힐러리경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고 불교제례에 쓰여지는 집기들이 한쪽에 자리 잡고있다. 작은 불교의 나라에 온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팍딩까지 가는 것이다. 고소적응을 위해 점심때 도착하여 그곳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다. 9시가 넘어가며 햇살이 펴진다. 풍경은 제주도의 화산도시처럼 땅은 검다. 길가에는 이 큰 산군에서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부처님의 가호를 바라는 초르텐과 룽다가 펄럭인다. 팍딩까지 가는 길에는 건기라 땅이 먼지를 날리고 팍팍하지만 낮에는 태양이 강렬하다.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는 지역이라 이곳에 자라는 식물들의 꽃의 색깔은 강렬하고 잎과 줄기에 보온을 위한 작은 털이 보송보송한 식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루크라에서 체플룽(2660m)으로 고도를 조금 낮추며 걸어가는 길은 편안하고 돌로 담을 쌓은 길을 따라 가게가 형성되어 있고 마을 주변은 깨끗하다. 트래커들이 필요한 물품인 장갑과 모자 연료 식품과 주민들이 필요한 생활필수품들이 거리에 펼쳐지기도 하고 걸려 있기도 하다. 점심을 기다리며 길을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 짐을 가득실은 야크가 워낭을 울리고 야크를 이끄는 야크잡이는 가느다란 막대기 하나를 들고 휘적휘적 가고 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나무 사이로 크다란 설산들의 빼어난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아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신들의 산임을 실감한다. 높은 산들은 인간들이 오를 수 있을까도 가름해보나 실제로 여러 등반가들이 그 높은 산을 사투를 벌이며 올랐다 돌아오기도 하고 산과 하나 되어 산이 된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는 있다. 오전 열시쯤 첫 검문소에서 카투만두에서 미리 받은 국립공원입장권 검열을 받으며 아치형의 다리 위에 처음으로 여성 셀파로서 에베레스트에 오른 것을 기념하는 앉은 동상이 있다. 네팔인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성셀파라서 국립공원입구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쿰부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바위에는 아주 큰 글씨로 새겨진 불교경전의 구절들이 적혀 있다. 쿰부의 문화는 불교경전이 새겨진 바위를 지날때는 반드시 왼쪽으로 돌며 지나가는 것이 예의이고 존중의 의미라고 한다.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서 지나지 않게 신경을 쓰고 존중을 담아 바위경전을 지날 때는 두손을 모우고 간단한 목례를 하며 지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때는 나마스떼하고 두손을 모우고 허리를 굽혀 인사 했다. 나마스떼라는 말은 내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한다는 뜻으로 인도와 네팔의 공통인사이다.
간단한 네팔어 동생-바이(남) 버히니(여), 언니 -디딜, 아들-초라, 딸-초리, 아버지-부바, 어머니-아마 단네밧드 : 감사 합니다 를 배우기는 하나 잘 되지 않는다. 여자를 보면 어리거나 어른이거나 디딜하면 웃는다 나보다 어린데 언니라고 했으니
로지에 도착하여 메뉴판을 보고 점심을 주문하면 그때부터 나를 위한 점심을 준비해 준다.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은 보통 한시간에서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 한 접시 나온다. 그 시간동안 셀파와 포터는 로지에서 주는 차를 마시며 서로 얘기하며 쉬는 시간을 갖고 나는 가지고 다니는 책을 읽거나 일기장에 주변의 산을 그리거나 생각나거나 본 것을 쓰기도 하고 주변의 경치에 빠지는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길을 보면 반팔에 큰 배낭을 맨 사람, 긴팔 긴바지를 입은 사람, 두명, 여러 명들이 셀파와 다니는 모습, 짐을 가득실은 좁비오, 야크, 젊은 포터들이 어마한 짐들을 메고 지나간다. 간단한 점심을 현지식 같지만 네팔식의 식사를 하고 또 에베레스트가 있고 에베레스트가 거느린 여러 산군들 속으로 한발한발 들여놓는다. 쿰부에 오기 전 여러 수속과 셀파와 포터 섭외 준비물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감으로 이곳까지 왔다. 팍딩에서 묵은 로지는 잘생긴 탐세르쿠의 6608m 설산이 앞에 버티고 있다. 쿰부의 로지는 모든 물자가 카투만두의 비행기나 야크로 운반되기에 비싸다. 와이파이500루피, 샤워300루피 휴대폰 밧데리 충전 200루피 점심500루피 방값 500루피로 되어 있다. 1루피는 우리돈으로 16원정도이다.
12시쯤 팍딩( 2610m)에 왔는데 이곳은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기 위해 불문율처럼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간다. 나도 고소적응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1박을 해야 매고 온 배낭과 노루가 짊어지고 온 배낭을 방에서 풀었다. 걷지 않고 쉬는 로지에서는 두꺼운 우모복 바지와 잠바를 입고 쉰다. 식당의 거실에서 잠시 쉬는 동안 졸다가 점심 달밧을 먹고 차를 한잔하고 방에 들어왔다. 햇살이 창문으로 따뜻하게 들어온다. 빛이 있어 좋다. 피곤으로 잠시만 쉰다는 것이 깊은 잠에 빠져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만 잤다. 해가 지고 어둠이 오자 방은 영하 10도로 뚝 떨어진다. 아침까지 잠을 푹 잤다. 허리가 아플정도로 셀파 텐바는 낮에 잠을 자면 고소가 올지 모르니까 낮부터 잠자는 것은 하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팍딩에서 1박 2식을 하고 숙식비를 지불했다. 같이 동행하는 셀파와 포터의 숙식은 로지에서 제공해 주는대로 따른다. 숙식비와 차와 따뜻한 물을 주는데 이들에게는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네팔의 문화라고 한다.
쿰부 2일차(2017.1.17화)팍딩-몬조-조르살레-남체바자르
아침 달밧(녹두콩으로 만든 국과 밥 야채반찬을 곁들인 음식으로 로지마다 맛이다르고 부족하면 리필이된다.)을 먹고 8시에 팍딩을 출발하여 남체바자르에 가는 날이다. 날씨는 맑고 따뜻하다. 오늘도 국립공원입장권 검사를 받고 걸으며 폴랜드에서 온 8명의 트래커 함께 걸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다. 잘 걷는 사람도 있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구름이 눈앞에 있다. 오르고 내리며 다리를 건널때면 불교경전을 새긴 천들이 바람을 따라 잘 흔드릴 강을 지나는 다리위에서 펄럭인다. 바람에 그 경전이 흩날릴 때마다 한 번씩 염원하는 내세에 대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는 롱다와 타르초라고 불리우는 5색(힌색: 구름, 파랑: 하늘, 노랑: 태양, 초록: 대지, 빨강: 불을 의미)의 깃발들이 하늘 높이 펄럭인다. 룽다는 긴 장대에 매단 한 폭의 긴 깃발을 말하고 타르초는 긴 줄에 정사각형의 깃발을 줄줄이 매달아 만국기 형태가 된 것을 말한다. 룽다와 타르초는 옴마니반메흠과 같은 만트라와 불교 경정이 쓰여 있는데 이것이 바람에 흔들히는 것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믿음에 의한 것으로 글을 모르는 사람도 이것을 언덕 위에 설치하여 바람에 흔들리게 하는 이유라고 한다. 우유빛의 강이라 불리는 드코시강을 따라 천천히 오르며 조르살레(2740m)에서 점심을 먹었다. 볶음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처음은 맛이 괜찮았으나 식어지며 뻣뻣해진다. 식당에 준비되어 있는 스파이시와 토마토소스를 뿌려먹어 보나 별 맛이 없다. 다음에는 바꾸지 말고 달밧으로 식사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라자도반의 출렁다리와 먼지가 퍽퍽나는 산길을 2시간 정도 오르니 드디어 남체바자르(3440m)에 도착했다. 능선에서 남체바자를 바라보는 경관과 설레임은 말할 수 없이 뭉클하다. 많은 원정대들의 이야기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유명한 명소이다. 로지는 텐바의 단골인 이층 로지에서 일박을 하기로 했다. 남체바자르는 쿰부히말라야의 가장 큰 시장이다. 등반과 트레킹에 필요한 온갖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루크라에서 비행기로 실려온 것을 이곳의 포터들에 의해 모두 발품으로 올라온 물건들이다. 건축자재도 로지의 식재료와 식기류 이부자리 생필품 모든 것이 사람의 머리끈과 야크와 야크와 비슷한 좁키오의 무리에 의해 옮겨진다. 높은 고도에 있는 로지일수록 포터가 더 많이 와야하기에 물가는 비싸진다. 일찍 도착한 남체에서 고소도 적응하고 많은 산악인들로부터 들었던 유명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화려하고 집들이 세련된 유럽풍이 많은 특이하고 신기하고 다양한 곳이다. 텐바는 남체의 로지주인은 엄청부자라 비수기에는 여기 살지 않고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나 외국에 집이 있고 그곳에서 비수기를 보낸단다. 월 수입이 우리나라 돈으로 기천만원인지라 풍요로운 생활을 한다고 한다. 남체의 등반길 오른쪽에는 히말라야등반에 관한 박물관이 왼쪽에는 사원이 마을 가운데는 물이 흘러가는 인공 물수로가 마니차를 돌리는 과 사원들이 있고 잘 갖춰진 고급스러운 리조트도 있다. 히말라야는 3,4,5월, 9,10,11월이 기후 조건이 좋기에 등반과 트레킹의 적기이기에 성수기이고 1월인 지금은 비수기에 해당된다. 비수기는 로지 관리인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네팔사람들은 부지런하고 깨끗하고 친절하다. 로지의 식탁과 바닥을 닦고 닦으며 손을 잠시도 쉬지 않고 웃으며 일한다. 박물관에 들려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명단과 사진도 보며 등반사의 사진들과 전시된 장비들도 살펴보았다. 여기서도 에드워드경에 대한 경외심은 여러 등반가들 중에서 돋보인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에드워드 힐러리경과 셀파 텐진 노르게는 히말라야의 전설이다. 남체에서 동편으로는 템세르쿠(6608m), 서편으로는 콩데(6186m), 북편으로는 쿤데(3480m)가 하얀 설산으로 멋지다. 산 마루를 따라 하늘이 맞닿고 그 마루금따라 하얀 눈 바람이 휘날린다. 그 마루금따라 등반루트와 베이스캠프를 어디쯤 설치되었고 설치한다면 어디가 좋을지도 눈으로 그려보는 즐거움과 그곳에 닥칠 추위와 위험의 긴장감을 느껴본다.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와 그 큰 고산들 보다 나는 내가 올라야 할 아이랜드피크인 임자체에 대한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으로 불안하고 신경이 날카롭다. 여기 남체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트레킹(EBC)의 길과 임차체(6189m)등반의 길이 갈라지므로 이곳에서 필요 없는 것은 보관하고 필요한 것은 챙기기로 했다. 남체바자르에서 구입한 개스 3개와 코펠 버너, 피켈, 크럼폰(빙벽용아이젠) 수저 핫팩 우모복상하 벙어리장갑 스키안경과 같은 큰 고글과 우모신발 식량 간식 비스킷 등을 챙기고 읽을 책자, 세면도구 중 일부와 여벌 옷가지등을 남겼다. 쿰부에 들어와서는 머리감기와 샤워는 못하고 물티슈로 얼굴과 손발을 닦고 견뎌야 한다. 이틀째 물티슈로 세수를 한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머리를 감거나 샤워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금기시하는 일을 하면 바로 고소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에 따라야 한다. 남체를 벗어나면 와이파이도 충전도 어렵다고 한다. 생각을 모았다. 내가 선택한 오로지 임자체 등반이 잘 되길 바란다.
3일차(2017.1.18.) 남체(3440m)-푼키텡가(3250m)-텡보체(3860m)- 디부제
아침 짜파티와 밀크티를 먹고 8시반 일기장과 렌튼 책 한권 세면도구 로지에서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햇살이 비치는 걸 보고 남체를 지나 팅보체로 길을 나섰다. 남체에서 텡보체로 가는 산길은 사라르타국립공원 관리를 받아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에베레스트를 네팔사람들은 사가르마타, 티벳은 초마롱마라고 부른다. 깊은 산과 계곡의 가름할 수 없는 경사로 높게 솟은 산자락을 따라 가는 길에는 마치 남미의 안데스 산맥의 한 자락같기도 한 높고 깊은 산에 작은 폭포들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네팔은 물 부족국가가 아닌가 했더니 셀파는 발끈한다. 카투만두가 물이 없어서 그렇지 큰 산을 가진 네팔은 물이 풍요롭다고 한다. 하긴 쿰부에서 드루코시강과 각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들이 만만찮다. 좁고 높은 길따라 오르내리는 길에서 눈이 즐겁고 발걸음이 가볍다. 경사가 급한 길이 있어도 지리산의 경사보다는 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냥그냥 오른다. 가고 있는 길에는 야크나 가축, 좁키오도 먹지 않는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꽃은 지고 잎은 푸르게 매달려 있다. 삼월이면 이곳에도 봄은 시작된다. 네팔에서 산길을 걷다 보면 언덕위나 마을 입구에는 흰색의 불탑인 초르텐을 많이 볼 수 있다. 탑 모양의 조형물로 인도의 스투파가 변형된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남체에서 팅보체로 가면서 초르텐에 타르초가 바람에 흩날리며 여인의 목걸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아마다블람을 지키고 있다. 1월은 쿰부에서 건기이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아 길은 먼지가 풀풀날린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고도를 높인다.10시 반이 지나자 사람들도 많이 다니지 않는 길에 장신구를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의 가게도 만나고 나무숲길도 지나며 12시에 흔들다리를 따라 도착한 로지에서 따뜻한 물과 달밧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한국에서 온 원대장을 만났다. 보자마자 신발에 눈이 가며 신발이 좋다는 인사를 하자 자신의 트레킹 사업이야기를 텐바에게 한다. 방향이 같은 방향이라 같이 걷게 될 것 같다. 로지 앞에 있는 계곡에는 까맣고 많은 자그만 새들이 끊임없이 날아다니고 있어 잠시 넋을 잃고 잠시 쉬어본다. 점심을 먹고 길을 가다가 보니 공사장 옆에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돌을 망치로 깨고 있다. 맑은 눈빛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이런 일은 하지 않는데 이곳은 우리와 형편이 다르니 다른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길가에는 큰 바위에 경전을 새기기 위해 한 승려가 사다리에 올라서서 열심히 경전의 글귀를 파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참 열심이다. 어디서 나와서 저렇게 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푼기텡가의 두드코시강과 임자콜라보의 강줄기를 따라 길이 있다. 천천히 나무숲길을 따라 오르면 티벳식 불탑인 하얀 초르텐을 지나게 되고 티벳 불교사원 텡보체에 오른다. 템보체의 콤바는 넓은 들판 같은 곳에 있는 쿰부히말라야에 있는 가장 큰 사원이며 아름다운 사원이다 텡보체에서 탐세르쿠와 캉테가, 아마다블람(6856m)이 옆에 있다. 조금 더 안 쪽으로는 눕체와 로체, 에베레스트도 보여진다. 콤바에 들러 부처님전에 삼배를 올리고 나오는 길에 승려를 만났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가지고 간 간식 중 생강편을 드렸드니 신기해 하며 받아준다. 2시 반경 올라오면서 큰 바위에 경전을 새기던 그 승려가 사다리를 들고 이곳 콤바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이 콤바의 승려임을 알게 되었다. 템보체에서 약간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간 디부제에 세시즘 도착하여 로지에 들어갔다. 큰 산에서 특히 겨울에는 세시가 되기 전 로지에 들어가야 안전하다. 무리하다 어두워지거나 로지를 못 만나면 영하의 추위에 위험해 질 수 있다. 로지에서 임자체 등반을 위한 장비 점검을 또 다시 해본다. 신발이 문제이다. 괜찮을 것 같았던 신발이 아무래도 영하의 추위에 얼어 동상이 걸릴 것 같다. 다섯 시가 넘자 산은 황금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모복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니 산들은 이미 햇빛을 버리고 석양으로 달라지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사진으로는 눕체 로체 에베레스트부터 물들다가 아마다블람까지 물들며 어둠으로 덮혀 버린다. 로지에는 셀파와 유럽인이 저쪽 너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난 로띠 두장과 야채볶음 밥 감자볶음 짜이를 마시며 쿰부 깊이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건너편의 트래커는 뭔가 분위기가 무겁다. 힘이 들어서 인가보다 생각했다. 나와 합류하기로 했던 앞 팀이 이곳까지 오지 못하고 고산으로 헬기를 불러 카투만두로 돌아왔으니 비슷한 현상이 여기서도 생기나 보다. 네팔은 몸이 좋지 않아 헬기를 부르면 7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그에 맞게 유럽인들은 몸 상태가 안 좋으면 헬기를 불러 안전을 생각하며 하산한다. 일층의 작은 롯지와 목초지를 갖춘 로지는 식당에는 쿰부의 사진들이 있다. 한국원정대가 남기고 간 사진도 보인다. 오늘은 따뜻한 물로 간단히 발은 닦았다.
4일차(2017.1.19.) 디부제(3710m)-팡보체(3985m)-수마리-딩부체(4410m)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니 해가 산을 밝히고 구름이 산위에 떠 있다. 눕체와 로체 그 너머로 시커먼 에베레스트가 눈바람을 일으키며 빛나고 있다. 여덟시 50분 헬기가 왔다. 어제 무거운 분위기의 외국인과 셀파가 떠났다. 또 다른 한 팀은 셀파가 고산이 와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로지에서 쉬고 트레커는 트레킹을 한다. 아마다블람이 잘 보이는 팡보체의 초르텐에서 EBC트레킹과 임자체로 나눠지는 곳에서 임자 콜라를 따라 딩보체로 방향을 잡아 강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늘은 고도를 높여4000m를 넘어야 한다. 걸어가는 길은 물기를 잃은 지 오래라 흙이 퍼석거린다. 좁은 산길을 따라 걷다가 마을의 돌담길도 돌았다. 팡보체의 히말라야로지를 지나 수마리로 오르는데 야크가 빙하물을 먹는다. 텐바는 빙하가 녹은 물은 먹지 말라고 한다. 현지인은 괜찮지만 물 때문에 배탈이 날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점점 에베레스트가 가까워진다.
열한시 아마다블람이 잘보이는 팡보체를 지나니 엄홍길휴먼스쿨의 입구가 보인다. 학교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엄홍길 대장은 최근 상영된 히말라야의 인물로 히말라야(눈의 지붕이란 뜻)의 8000m이상의 14좌 등반을 모두 마친 유명한 산악인이다. 경남 고성이 고향이라 고성에도 엄홍길박물관이 있다. 네팔의 교육부분에 많은 봉사를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학교를 들려보는 것은 다시 이길로 내려오면서 가기로 하고 아마다블람을 보며 오름짓을 계속했다. 웅장한 설산을 향해 걸으며 고도를 높인다. 어제 점심 때 만난 원대장과 오늘도 앞서거니하며 같이 길을 가며 영웅담도 듣고 친절도 받으며 길을 올랐다. 지나온 길을 보며 점심으로 달밧을 주문했다. 나는 녹두로 만든 달밧이 입에 맞아서 달밧은 리필도하고 야채도 리필을 하며 식사를 한다. 밥은 항상 남는다. 점심을 먹고 노루는 먼저 추쿵으로 떠났다. 걸음도 빠르지만 먼저가서 그곳 상황을 살펴보고 베이스캠프를 설치를 위해 먼저 떠났다. 가까운 눈산에는 눈바람이 날린다. 별일 없길 바란다. 가면서 눈은 계속 임자체를 더듬는다. 얼마나 높을까 얼마나 위험할까 얼마나 추울까를 상상하며 한시 반이 지나며 페리체와 딩보체가 길위에서 나눠진다. 나는 딩보체방향이다. 오후 두시가 되자 날이 추워지는 것 같아 비니를 꺼집어 내어 쓰고 그 위에 챙모자도 쓰고 삭막한 고지대로 오른다. 길가에는 모두 바짝 마른 풀들과 작은 나무들이 바람에 더 자라지 않고 나지막하게 있다. 짙은 녹색에 붉은 꽃을 피웠던 나무를 텐바는 네팔의 향신료라고 하는데 가는 길에 많이 있다. 산을 오를수록 풀은 없고 언덕위에 오솔길들이 아스라이 보여 그 길을 따라 올라간다. 언덕과 계곡사이에 흐르는 물들이 하얗게 빛나 얼음인가 했더니 우유빛 강물이다.
텡보체에서 팡보체 방향으로 오르다보면 마니차가 물레방아간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물의 힘에 의해 마니차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경전을 읽어가고 있는 것 같다. 티벳 식이다. 산을 오를수록 오래된 석판위에 불경이 새겨진 판들이 길 위에 쭉 세워져 있다. 그 앞을 지나며 무탈하게 이길로 이대로 내려올 수 있도록 염원하고 그 경전의 보호를 받으면 무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시 반에 추쿵의 문 나이트 로지에 도착했다. 내가 배정 받은 방은 탐스쿠르호다 날씨가 좋을 때 임자체를 오르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빨리해도 적당한 로지에서 멈추어 고소적응을 한다. 4일차 보냈다. 다섯시가 넘자 눕체 로체 에베레스트가 물들고 아마다블람도 황금빛에서 붉은 색으로 검은색으로 시시때때로 바뀐다. 다섯시 30분이 되자 산들은 마지막용광로의 불빛으로 빛을 뿜고는 뚝 사라져버린다.
밤새 내일의 등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한모금 마신 커피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리저리 부치지 않을 편지도 썼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든다. 동상으로 손이나 발을 잃으면, 크레파스를 지나다 혹시 떨어지면 등등으로 선배와 후배들의 등반에 대한 사고들로 밤을 새우며 온갖 각본의 상황을 상상한다. 문라이트 탐스쿠르에서 촐라체가 바로 뒤에 있고 임자체 바룬체가 지척에 있다. 4040m에서 점심을 먹었고 4400m에서 저녁을 먹으며 셀파티를 마셨다. 앞으로의 일정이 계획대로 된다면 침쿵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음 다음날 베이스캠프 그 다음날 정상 오른 후 철수 그 다음날 딩부체 남체 루크라 룸비니 출국이리라. 로지에서 오르고자 하는 의지는 있으나 내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어제부터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 가족들이 생각난다. 꿈을 꾸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이고 생각이 복잡해 진다. 머리도 좀 아픈 것 같다. 다민족인 네팔에서 노루는 셀파족 텐바는 림부족이다. 셀파족은 다른 족보다 자부심이 세다. 날씨가 좋고 몸의 컨디션이 좋아 등반이 잘되길 기도해본다. 이번 등반을 마치고 다음 여행을 하면 문화여건이 좋은 편안한 여행을 해보리라 마음먹으면서 또 등반 장비를 챙기며 저녁을 맞이했다.
5일차(2017.1.20) 맑음 딩부체(410m)- 추쿵(4730m)
선라이즈 로지 103호의 난로가 있는 곳에 앉아 햇빛을 쪼이며 쉬면서 이중화를 랜트했다. 어제 저녁 원대장은 신발을 빌려주며 등반에 도움을 준다더니 아침 신발을 달라고 햇다. 섭섭하지만 내 신발이 아닌데 할 수 없이 신발을 랜트했다. 밖에 나가서 자일을 설치하고 등반을 위한 주마링 연습도 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날씨도 좋고 하여 등반을 하려했으나 현지사정이 엉망이다. 정부에서 설치해둔 크레파스(얼음과 얼음사이의 깊은 구멍)위의 사다리가 철수 되어 카투만두에 있는 사다리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사다리를 렌트해야하고 픽서되어 있는 로프도 철거되어 다시 설치하면서 로프를 더 구입해야하고 겨울시즌이라 크레파스이 폭이 넓어져 더 위험하다는 것과 헬멧, 더 보충되어야하는 셀파에 대한 협조와 경비 보험 등 여러 번의 협의를 했지만 셀파가 위험하다고 갈 수 없고 간다면 많은 돈을 요구했지만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날 한국청년 두명이 임자체 등반을 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오돌오돌 떠는데 혈색이 자주빛으로 지금은 겨울철이라 등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단다. 자기들은 추위와 바람으로 산을 오르지 못하게 하는 자연의 힘에 대한 공포감과 지금은 로지의 방에 있음에 대한 안도감을 보인다. 두 젊은이는 의학과 생물학을 전공하는 친구지간으로 부산과 서울 지역도 다르지만 킬리만자로를 비롯하여 오지여행으로 우정을 키우고 있다고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같이 다닌다며 자기 삶에 충실함이 보여주어 예뻐보인다.
1리터 홍차와 생강차를 마시고 생각을 비워 보려고 하나 가슴이 답답하다. 춥기도하고 머리도 아프고 고산증 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기분이 좋지 않고 컨디션이 다운된다.
결국 긴 고민 끝에 임자체 등반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콩므라패스를 넘어 EBC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준비해온 쌀과 반찬을 로지의 식당을 빌려 텐바가 저녁을하기로 하고 비용은 원대장과 두 명의 친구들과 합하여 네 명이 분담하는 것으로 하고 모 처름 한국음식을 먹었다. 다음날 임자체등반이 아니라면 포터 노루와는 같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노루에게 나와 텐바의 등반장비와 충전기 카메라 침낭 등을 가지고 먼저 루크라로 하산하라고 하고 다음날 콩마르패스를 넘을 때 먹을 음식과 간식을 챙기고 노루가 짊어졌던 필요한 물건들을 내 배낭과 텐바 배낭에 넣었다. 많은 갈등으로 힘든 밤을 보냈다.
6일차(2017.1.21)추쿰-콩마르패스(5590m)-로부체
날씨는 맑으나 두통이 약간 있다.아침 6시 30분 기분이 좋지 않고 갈 길이 멀어 아침을 먹지 않고 로지를 나섰다. 콩마르패스를 넘어 로부체로 가야하는데 길을 찾는다고 잠시 주춤거리다 패스길에 올랐다. 오르막길은 숨이 가쁘다. 두세발짝가다가 쉬고 또 가다가 쉬고 마음과 달리 올라가는 길이 너무 어렵다. 최고의 어려운 길이다. 나는 숨이 가파 쌕쌕거리는 데 텐바를 멀찍이 올라가서 아래를 처다보고 있다. 나쁜놈 지가 먼저 올라갔으면 자기 배낭을 내려놓고 내 배낭 좀 받아가지 노루를 돌려 보내서 내 배낭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길을 오른다. 길을 오르니 해가 뜨고 눕체 로체 마칼루 임자체 아마다블람 바룬체가 빛을 내며 모습을 화려하게 실루엣을 들어내었다. 발 밑에는 에델바이스가 매섭게 부는 바람을 피해 바위 아래 옹기종기 피었던 흔적으로 반긴다. 고도가 높은데 워낭소리가 들려 고개들어보면 야크가 바짝 마른 바닥의 풀을 뜯고 있다. 야크가 움직이는 한계가 어디까진지 세삼 놀랍다. 산의 높이를 더하여 오르는 길에 야크 똥이 군데 군데 있다. 야크똥은 최고의 겨울 땔감인지라 망태를 메고 야크 똥을 주워 로지 주변에서 말리는 광경도 목격되곤 했다. 또 힘들게 오르면 작은 평원과 만년 빙하지대를 지나기도 하는데 너무 숨이 가쁘고 발걸음이 힘이 든다. 처음은 세 발짝도 채 못가 숨이 차서 멈추다 쉬다를 하며 올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물 발짝을 가기도 했다. 12시쯤 콩마프패스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하고 얼음을 깨뜨려 코펠에 녹인물로 점심을 먹었다. 길이 힘들었음인지 라면 맛은 꿀맛이다. 차도 한잔했다. 점심을 먹었던 곳은 산 속의 빙하가 있는 평원이고 이 평원을 둘러싼 시커먼 산과 빛나는 미봉들이 숨이 막히게 하는 기막힌 풍경을 가진 곳이다. 봄이라면 파란 풀잎과 야생화로 아름다움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울 곳이다. 최고의 높은 곳에서 5000m가 넘는 곳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다. 모자를 쓰고 고어텍스 자켙으로 보온을 해도 두통이 온다. 입술색깔과 손톱색깔이 검붉게 변했다. 산소가 부족한 것 같다. 다시 힘을 내어 올르니 언덕위에 타르초가 펄럭이고 있다. 저 곳이 정상이리라 생각하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니 오후1시쯤 콩마르패스 정상을 지나게 되었다. 하늘은 파랗고 푸모리산은 아름답다 이제 하산이다. 너덜지대를 따라 바위들 밟고 내려가야하는데 길을 안내해주는 돌들이 작은 탑 처름 쌓여 길을 표시해준다. 이 길에 선 사람들을 배려하는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다. 조심조심 하산하면서 아래에 보이는 로지로 가야한다. 너덜지대가 지나고 빙하가 흙바람에 덮혀 있으나 날카롭게 빛난다. 가는 길목에 깊은 크레파스가 있어 셀파의 도움을 받아 건넜다. 끝까지 긴장과 조심을 해야할 길이다. 빙하지대에서 다시 올르막길을 올랐다. 건너편 산자락에는 청빙으로 빛나는 얼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오르막길이지만 어렵지 않게 올랐지만 오랜 시간의 산행으로 로지로 가니 기진맥진이다. 오후 세시가 넘어 세시 반경 셀파 로지에 도착했다. 난로는 야크똥으로 열기를 내 품고 있다. 냄새가 약간 나지만 석유나 가스난로의 냄새보다는 견딜만 하다. 셀파 로지에는 텐바의 사촌형이 역시 셀파를 하는데 한국인 부부의 가이드겸 포트로 이곳에 먼저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서로 트레킹 길의 셀파로 서면 서로 어디 있는지 알아서 숙소를 같은 곳으로 잡는다고 했다.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난로가에 앉았지만 머리가 아프다. 걱정이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길 바라며 일 리터의 따뚯한 물을 주문했다. 이 셀파 로지는 유명한지 중국인 일본인이 모여들었다. 중국인들의 큰소리의 대화와 웃음이 과하게 시끄럽다. 그렇지만 저녁을 먹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둠에 따라 하늘의 별들은 무수히 많은 별들이 커다랗게 빛이 난다. 잠자는 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리에 들었다. 이번 로지도 이불은 많으나 냄새가 너무 심하다. 괴로운 밤으로 악몽의 시간을 보내야한다.
7일차(2017.1.22) 로부체4910m)-고락셀(5140m)-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5364m)-칼라파트라(5550m)-로부체
아침 6시반에 어제 저녁에 주문한 토스트에 잼을 발라서 짜이와 함께 먹고 레이어 시스템에 따라 여러 겹 껴입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따뜻한 모자와 직사광선이 심하기에 고글을 쓰고 양말을 껴 신고 아침 7시 고락셀로 향했다.
가는 길은 온통바위들이고 아래에는 만년 빙하가 숨어 있어 흙 덮힌 빙하의 모습은 아름답기보다 위협적이었다. 어제의 콤므라패스를 오를땐 힘이 들었는데 오늘은 적응을 했음인지 어제보다 쉽게 고락셀로 가는 것 같다. 우려했던 고산은 오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가면서 틈틈히 텐바가 뜨거운 물을 준다. 고락셀은 비수기인지라 로지가 거의 문을 닫았다. 황량하다. 직진하면 에베레스트베이스 캠프이고 오르막길을 두시간 오르면 칼라파트
라다 검은 산이라는 의미인 칼라파트라까지 오르막길은 정말 힘이 든다. 고도가 높고 바람이 사람을 뒤흔든다. 고도가 오를 수록 에베레스트의 중턱을 지나고 그와 가까이하게 된다. 항상 눈을 휘날리는 최고의 산이다. 칼라파트라로 오르는 길에는 에델바이스와 이름을 모르는 야생화가 피고지고를 반복하며 말랐지만 그 꽃들의 흔들림이 강한 바람에 움직인다. 예쁘다. 오르는 길 내내 바람과 돌 무더기로 씨름을 하며 정상에 오르니 돌탑과 타르초가 세차게 흔들린다. 에베레스트와 로체 눕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바라도 보며 그 영험함에 경이로움이 묻어난다. 푸모리산은 오르면 더 많이 올라야하고 돌무더기길인 칼라파트라길은 세워진 돌로 표시하여 안내해줌은 이곳에서도 보게 된다. 에베레스트의 무던함과 눕체의 건강미 넘치는 근육은 눈과 바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마차푸차레의 바위결과 함께 가슴을 먹먹하게 하며 울컥하게 만드는 신비가 있다.
꿈에 그리던 이곳에 서 있다는 것에 가슴 뭉클함의 큰 감동을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이곳 칼라파트라에서 주변산과 협곡에서 내뿜는 히말라야 바람을 받아들이며 하산길로 내려서서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적응중인 스웨덴 원정팀의 화려한 텐트행렬에게 정상에 우뚝 서는 성공을 기원해 본다. 고락셀을 거쳐 다시 디부제로 오는 길은 한 없이 힘이 들고 지치기도 한다. 고락셀에서 점심을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간단한 비스킷 두 조각과 물한잔으로 로부체로 돌아오니 오후 한시 반이다. 세시에 이곳 로지에서 블릭티와 베지터블 달밧을 먹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서 책을 보며 휴식의 시간을 즐겼다. 내 생애 이렇게 큰 휴식을 취해 본적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니 이번 쿰부히말라야에서 제대로 된 휴식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히말라야가 주는 큰 선물이고 위로이다. 큰 산, 파란하늘, 하얀구름이 주는 희열에 감사하고 감사하다. 낮에 홍차를 많이 마셨는지 밤에 한 숨도 잠자지 못한 밤을 보냈다. 잠이 오지 않는밤 창문으로 바라보는 하늘의 별들은 전체가 일렁이는 움직임으로 빛나고 난 이산을 하산하면 이태리 타올로 몸을 박박 문질러 개운함을 느끼리라. 그때까지는 물티슈로 얼굴과 손, 발을 닥고 머리감는 대신 빗질로 버티고 있음을 보상하리라 내가 속해있는 학교의 학생들의 예쁨을 보리라 집이 그립다 일상이 그립다. 이곳에서 저녁에 잘 때는 담요 두개를 덥고 두꺼운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우모잠바를 덮고 있으면 숨이 막혀 잠바를 열고 닫고를 하며 숨을 쉰다. 숨쉬기도 힘 이듬을 견디며 내일은 고도를 낮추어 하산하리라.
8일차(2017.1.23) 로부체4910m)-페리체(4280m)-소마레-팡보체(3900m)-포르체(3860m)-포르체탱가(3670m)-몽라(3970m)-쿰중-상보체(3720m)-남체(3440m)
하산길은 속도와 거리 제한 없이 그날 컨디션에 따라 갈 수가 있다. 고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몸에 미치는 위험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5시에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니 호주에서 온 팀이 칼라파트라로 출발하기 위해 부산하다. 그 중 한 아가씨는 눈물을 흘리며 죽을 먹으며 몸이 좋지 않아 같이 온 일행과 동행하지 못하고 로지에 남아서 고소적응을 하는 시간을 갖는가 보다. 어제 오후에는 걸을 수 없는 여성 트래커를 현지인이 등에 업고 로지에 올라 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다. 멀리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까지 오르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을 텐데 회복이 잘 되어 트레킹길에 서길 바라며 아침을 베지터블 누들을 주문했는데 밤새 잠을 못 잤음인지 입맛이 없다. 국물만 먹고 7시에 길을 나섰다. 잘생긴 촐라채와 아마다블람을 보며 걸어오는데 촐라패스길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가고 직진의 길은 페리체로 향하는 길이다. 촐라체(6440m)는 진주에 있는 산악인인 최강식과 박정헌이 올랐다가 하산길에 크레파스에 빠지며 서로 구출되어 오면서 손발이 짤린 아픔을 주지만 치명적인 매력으로 큰 산이 아님에도 산악인들은 도전하는 산이다. 내려오는 길을 따라 군데군데 도전으로 산화한 산악인을 추모하는 기념탑과 타르초가 발길을 멈추게한다. 촐라체 주변에는 유독 기념탑들이 많다. 9시가 되자 아마다블람 권의 페리체를 문명의 혜택으로 전기불도 가꿔진 길과 집들이 편하게 자리잡은 곳을 지나며 잠시 멈추며 아름다운 곳임을 본다. 아침햇살로 룽다가 바람에 휘날리며 빛을 받아 신비스럽다. 계속 고도를 낮추며 루크라로 가는 길을 찾아 내려간다. 오전 열시가 되자 오르소에 왔다. 황량한 겨울의 쿰부는 눈과 파란하늘로 고혹적이기도 하다. 오늘은 일주일에 걸쳐서 올랐던 남체까지 가리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내리막길 따라 오는 길은 평원이라 물이 흐르고 작은 식물들이 많아 주변에는 농장들이 있다. 병원이 있는 페리체 뒤에는 아마다블람이 있는 잘 가꿔진 길을 따라 소박하고 정겨운 지난번 점심을 먹으며 손 발을 닦은 물이 흐르는 소마레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10시 17분 돌담으로 잘 꾸며진 소박한 소마레는 히말라야에 핀 야생화처름 고운 곳이다.
이 길에 있는 4040m 에베레스트 키친 로지가 있다. 젊은 부부와 아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음식도 깔끔하고 여기서 탐스크루와 아마다블람을 예쁘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강을 따라 뒤를 남기고 11시 내려오면서 들리기로 한 엄홍길휴먼스쿨로 갔다. 아직 미완이다. 네팔의 오지에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으날 수 있도록 학교를 세운 건 14좌의 위엄 못지않게 존경받아 마땅하다. 길에는 2007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등반하다 산화한 산우를 그리는 메모리얼이 타초르와 함께 흩날리고 있다. 옛날 텡보체 마을길을 따라 가면 돌판에 새겨진 경전들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마냥 띠를 이루며 길게 뻣은 길이 있다. 신심이 길 위에 각인 된 것 같다. 마을은 조용한 참선을 하는 동네같이 심오하고 신선하다. 오래된 초르타를 뒤로 아마다블람이 파란하늘과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척박한 이곳에도 농사를 지은 논 밭이 캔퍼스를 펼친 것 처름 아름답다. 이곳은 농사도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아름답게 짓는 것 같다. 드루코시강을 따라 12시에 디부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는 2009년 로체남벽등반대들의 일정과 대원들의 팜플렛이 붙어져 있다. 한시까지 차와 음식이 나오기 전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산들의 영상을 담았다. 봐도봐도 설레임을 주는 산들이다. 한시 오십분쯤 텡보체에 올라 그 아름다운 꼼빠를 지난다. 이제 내리막길을 따라 남체로 오늘 도착해야 한다. 욕심에 바로 루크라까지 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단다. 예약된 비행기표의 날짜가 오늘 밤에 내려가도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것을 알고 마음이 상한다. 여기에서 카투만두로 가서 룸비니를 다녀오리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벌고 싶은 마음으로 갑자기 일상이 시큰둥해진다. 사람마음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다섯시가 지나자 아름다운 사가르타국립공원은 어둠으로 조금씩 조금씩 주위가 닫힌다. 힘이 빠지고 지친다. 피곤하다. 욕심이었음을 계곡위의 좋은 길을 걸으면서도 기분과 몸의 한계에 생기를 잃었다. 텐바는 앞서간다. 일부러 늦게 가고 게으름을 피우는 유치한 행동도 속이 편하지 않다. 괜히 텐바의 일거수 일투족도 밉게 보인다.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텐바의 입장에서도 불편할 것 같아 말을 걸며 남체로 내려간다. 초르텐과 룽다 마니차들을 보며 마음도 다스려 본다. 어둠이 주변을 삼킬때 쯤 남체바라르에 도착했다. 방갈로식의 로지는 많은 트래커들이 모여 앉아 담소와 식사를 즐기는 중이다. 이곳에서 또 다시 로부제에 만났던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호텔리어였고 아내는 영어강사를 했다고 한다. 남편의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사표를 내고 삼개월간 네팔인도를 여행하려고 왔단다. 남편은 까맣게 탄 모습이 흡사 이곳 셀파 같아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인이 운영하다는 캠프 더 베이스에서 야크스테이크와 달달한 끓인 오렌지 쥬스와 따두바니(따뜻한 물)를 주문하여 먹고 마셨다. 옆의 테이블은 야채샐러드를 주문했는데 나눠 먹으니 한 맛 더 난다. 이때까지 먹었던 음식 중 최고였다. 텐바도 야크스테이크를 줬더니 맛있다고 엄지척 한다. 다음에 누군가가 남체에 간다면 꼭 이곳에서 야크스테이크를 먹으라고 권하고 싶다. 노루를 찾았으나 노루는 루크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있다고 한다. 안락한 잠자리에서 편안히 쉬었다. 내일이면 카투만두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내일의 산행을 챙기며 하루를 보낸다. 어디서든 석양빛에 발갛게 물드는 산을 보고 설레임과 두근그림과 아쉬움을 함께 느끼리라.
9일차(2017.1.24) 남체(3440m)-몬조(2835m)-팍딩(2610m)-루크라(2860m)
남체에서 이른 아침 골목을 따라 바자를 벗어난다. ATM이 있는 은행과 물이 흐르는 수로와 일찍부터 등산용품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고 초르텐과 타초르 마니차가 어느 곳 보다 고급지고 새것이다. 바자르(네팔의 시장)을 둘러 남체를 벗어나는 지점에 사가르타국립공원 입장허가증을 확인한다. 검문소옆에 사람을 찾는 전단지가 붙어 있다. 찾아주는 사람에게 사례하겠다고. 실종된 사람은 38살의 프랑스인다. 혼자 트레킹을 하다가 강위의 다리를 걷다가 떨어졌다는데 아직 찾지 못했나보다. 10시경 조르살레에왔다. 흔들다리위에서 마을에서 초르텐과 룽다가 휘날린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햇빛이 잘드는 바깥에 앉아 오고가는 트래커들을 바라보며 헤맑게 웃고 있다. 날씨가 좋다. 열시 반쯤 셀파족의 로드덴드론 장미로지에 들어갔다. 식사를 하는 곳에는 코코넛열매를 써는 아가씨와 9살 자기이름은 소남 도르반 셀파라고 영어로 소개를 하는 여자아이와 두 아주머니가 뭔가를 포장하고 있었다. 소남은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며 셀파족인 가족들을 소개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일년전 돌아가셔서 며칠후면 제사인데 그때 동네사람들과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고 있었다. 짜른 코코넛열매와 사탕 과자 과일들이 봉지에 채워지고 있다. 잠시 쉬었다가 팍딩에 12시 반쯤 도착했다. 지난번 점심식사후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을 잤던 곳에서 다시 점심을 먹고 루크라까지 빨리가면 오늘 중으로 카투만두에 갈수 있으려나 하는 욕심으로 쉬다않고 내 달려 내려왔다. 지난 밤 또 다시 홍차로 잠을 자지 못하고 에베레스트 앞 평원을 거쳐 내려온 길이 제법 멀어졌다. 넓은 평원에 작은 나무들이 있고 물이 흐르고 돌담으로 둘러진 마을을 지나는데 날씨는 춥지도 않고 햇빛으로 따끔거리기도 한다. 학생같은 두 여자아이와 아빠는 정말 쉬지도 않고 잘 걷는다. 쫌바는 텐바의 사촌형이다. 셀파로 한국말을 잘하고 잘 웃고 농담도 제법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팍딩에서 점심을 먹었다. 쿰부에 들어와 루크라에서 팍딩으로 와서 고소적응을 위해 점심먹고 머물며 하루를 잔 곳이다. 처음 이곳 로지의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을때 느껴지는 썰렁함과 창문에 맺히는 서리와 머리맡에 둔 찻잔이 얼음으로 바뀌는 밤의 냉기는 무서웠었다. 몬조를 거쳐 팍딩에서루크라까지 쉬지 않고 도착한 루크라는 여지껏 다녔던 곳보다 문명의 마을이다. 오후 세시를 넘어 도착했지만 카투만두행 비행기는 내일 새벽이다. 숙소는 전기도 잘 들어오고 따뜻한 샤워물이 나온다. 처음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개운하다. 한국으로 돌아가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
노루는 가지고 떠났던 카고백을 가지고 돌아와 확인후 건네준다. 남체바자르에서 샀던 개스는 여기 시장에서 팔아보려 했지만 팔지 못해 노루가 가지는 것으로 했다.
저녁은 어제 저녁 남체로지에서 먹었던 야크스테이크를 주문했지만 함박스테이크와 같이 퍼석한 맛으로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그래도 온수로 기분이 좋아 어제 못 잔 잠을 보충하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힘든 쿰부 등반은 실패했지만 칼라파트라까지 트래킹은 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담은 자연스럽고 한적하고 위엄을 갖춘 산군으로 새로운 세계에서의 전율을 느껴보는 기간이었다.
10일차(2017.1.25)루크라(2860m)-카투만두-룸비니
준비되어 있는 어제의 달밧으로 아침을 먹었다. 루크라공항이 바로 눈 앞인 로지라 오분이지면 공항에 도착이지만 일찍 나서서 비행기표를 점검하며 비행기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루크라 공항에서 햇빛으로 어둠의 재색 산이 검붉다가 붉다가 황금빛에서 하얗게 빛나는 설산으로 바뀌는 광경은 새벽과 저녁에 보아 왔지만 매번 볼 때 마다 심쿵거린다. 이런 산들을 사람들은 자기 만의 방식으로 요리하고 싶어서 몰려드나 보다. 산에 오르고 싶어서 바라보며 울고 싶어서 압도되고 싶어서... 7시30분 비행기를 탔다. 카투만두로 돌아갈때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자들을 비행기로 실어 보내다. 루크라의 활주로는 쭉 도로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아니다. 거의 3000m 고지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오르는 공항이다. 비행기는 커다란 산 들 사이의 계곡을 향하여 질주하면 낭떠러지로 뚝 떨어지다가 굉음을 내며 다시 하늘로 치솟아 활공을 한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비행기는 떠지 못한다. 운이 좋게 비행기는 날았다. 40분의 설산 바다를 항해한 작은 비행기는 쿰부에서 많은 사람과 차들로 소란스럽고 북적거리는 매연으로 숨이 막히는 매력적인 도시 카투만두에 돌아왔다. 우선 마야거르츠에 들러 빌린 각종 등반 장비를 반납했다.
예정보다 일찍 일정이 끝나 귀국할 때 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에 가보고 싶었다. 룸비니가 이곳에서 멀리 인도 접경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밤 버스를 탔다. 버스는 요란한 크락션 소리를 내며 카투만두를 벗어났다. 그러다 잠시 졸다가 눈을 떠 보면 밖은 깜깜하고 차가 멈췄다. 무슨 일인가 했으나 승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다. 도로가 공사 중이라 한 차선의 차량이 지나가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니 8시간 9시간 걸린다는 룸비니가 편도 20시간 걸린다. 중간 휴게소에 잠시 쉬고는 어느 도시를 지날 때 기사가 바뀐다. 차 안은 먼지가 마구 들어오고 사람들은 담요를 들고 다니며 덮고 자며 긴 여행을 견딘다. 이 차는 완행인지 자주 멈췄다 가다를 한다. 15시간을 화장실도 못갔다. 학교생활에서 바쁘면 출근부터 점심시간까지 참았던 실력을 이곳에서 제대로 견디는데 쓰였다. 룸비니의 마야템플은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들어가는 존중의 사원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신선시하는 곳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다. 마야부인의 유골이 아직 남아 있는 곳에 절을 하고 바깥의 보리수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부처님이 득도할 때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하였다고 네팔에는 가로수가 보리수이다. 네팔 사람들은 보리수나무를 부처님의 나무라며 좋아한다고 한다. 보리수나무 주위에는 타초르가 펄럭이고 있고 그 나무그늘 주변에는 승려들이 염주를 돌리며 몇 시간이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다. 비가 내려도 승려들은 움직이지 않고 방문객도 줄어들지 않는다. 룸비니에는 각국의 절들이 물이 흐르는 강을 따라 빼곡이 들어서 있다. 강위는 배를 타고 유람을 즐기는 사람들과 산책을 하는 사람 견학 나온 학생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닌다. 나는 물어서 코리아템플 대성석가사를 찾았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주변에 있는 절들을 찾았다. 한국의 절 앞에는 일본, 중국 절이 있고 다음 블록에는 티벳 미얀마 태국....여러나라 절들이 있다. 주변 절을 다니다가 비가 오기에 다시 대성석가사에 들려 큰 법당에서 108배를 하고 옆에서 기도하는 한국인 아주머니 한분이 계시기에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더니 카투만두라고 한다. 혹시 정원식당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그 집 주인이란다. 네팔에 들어올 때 카투만두에서 식당을 하는 원정 들어오는 대원들에게 극진하게 음식 대접과 격려를 하는 선배산악인이 있는데 얼마 전 큰 병으로 돌아가신 그분의 부인을 만나고 오라고 부탁을 했었다. 타멜거리에서 그 정원이라는 식당을 물어 찾으려 몇 번을 시도했으나 그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분을 이곳 대성석가사 법당에서 만났다. 남편 기도도 하고 절에 시주를 하기 위해 가끔 찾는다고 했다.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나구나 하는 오싹함을 느꼈다.
밤차로 자면서 도착한 카투만두에서 시내버스로 박타푸르에 들렸다. 르왈 건축물은 신의 걸작이라 할 만큼 멋지다. 나무공예의 건물들과 도자기 왕의 요거트등 오랜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박타푸르까지 둘러보며 나만의 여행으로 즐겼다. 네팔리안 처럼은 되지 못했지만 네팔인들처럼 거리를 다니고 현지인의 식당에서 현지인의 음식을 먹고 그 맑은 눈빛과 웃음과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네팔은 한번도 안와 본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파상이 생각난다 겸손과 미소의 나라 흰눈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에서 신이 사는 히말라야자락에서 겸손과 고마움을 간소한 행복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다. 삶에 충격과 충전을 준 아름다운 겨울 날로 오랫동안 나의 일부가 되어 히말라야자락은 내 안에서 큰 산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