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김 기도문 사랑을 통한 내맡김
2009.12.17. 17:24
< 사랑을 통한 내맡김 >
사랑하는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당신(뜻)께 저의 모든 것을 기어이 내어 맡기고 그럼으로써, 제가 오로지 당신(뜻)만을 따르게 하소서.
"사랑"과 "맡김"은 하나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무에게나 내맡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것을, 자신의 소중한 것을 맡깁니다.
그래서 "사랑"과 "맡김"은 하나이며, 그것은 또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그러한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맡김"은 "사랑"이며 동시에 "믿음"입니다.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를 맡기며 "영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서로가 영원하기를 갈망하는 것, 그것은 "희망(소망)" 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뜻)께 맡기는 사람은 신덕과 망덕과 애덕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삼덕을 소유하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기꺼이 내어드리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화살 제1부 22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2010. 01. 19.
거룩한 내맡김은 굳은 신뢰다. ‘믿음’이다. 아무에게나 내맡길 수 없다. 굳게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만 내맡길 수 있다.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 내맡기면 행복할 수 있다.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 ‘희망’이 샘솟는다.
‘내맡김’은 하느님을 향한 세 가지 덕 향주 삼덕인 믿음, 사랑, 희망의 표출이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창화살 제2부 18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왜 탁월한 영성인가? 2010. 04. 16.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사람은, 그 사랑을 닮은 ‘작은 사랑’이다. 하느님은 ‘큰 사랑’이시다.
작은 사랑은 큰 사랑을 본받아 점점 커져야 한다. 작은 사랑이 큰 사랑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큰 사랑에 내맡겨야 하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서로의 사랑을 믿고 내맡길 줄 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랑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샘솟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지 못하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며, 그러한 사랑에는 ‘걱정과 두려움 더 나아가 절망’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참사랑’이시다. 하느님은 우리의 ‘참주인’이시다.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어야 한다. 그분께 내맡기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분께 내맡기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신다.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오직 하느님께만 ‘희망’을 둔다.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하느님께 다 내맡길 수 있다.
[강의록] 강의록(5)
지도사제 10.09.07 11:55
내맡기는 행위에는 3가지의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없다.
첫째로 "사랑"해야 한다. 둘째로 "믿음"이 가야 한다. 셋째로 "희망"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자신의 일생을 내맡기실 때 그냥 내맡겼는가?
여러분의 배우자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세상 끝까지 서로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이 사람을 신뢰하기에 자신의 일생을 서로 내맡기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하느님에 대한 내맡김도 똑같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기에, 그분의 사랑을 굳게 믿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든 희망을 그분께 다 내걸 수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향한 "향주 3덕"인 믿음,사랑, 희망이 강한 사람만이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 내맡김 영성 ■ Spirituality of Abandonment 질문에 대한 답변의 답변
지도사제 11.01.29 11:18
더 나아가 진실한 사랑은 "내어줄 뿐"만 아니라, 아예 "내어 맡깁니다." 상대를 진실로 "사랑하고", "믿고", "간절히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3가지 덕(향주 삼덕)을 갖춘 사람은 하느님께서 청하시지 않아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기 위해 안달복달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면 하느님과 완전히 하나됩니다. 하나는 둘이 아닙니다. 구별이 없어집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죄스러움이 남아 있어도 완전히 하나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함도 죄"도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목.정 샤를르 드 푸코의 의탁의 기도
유연순(글라라) 10.11.24 10:13
<댓글> 지도사제 10.11.24. 10:23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고, 바라는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위탁(내맡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맡김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거룩한 위탁 제 1 편 제 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努力) ①
거룩한 위탁에 있어 활동하는 것은 애덕이며, 이 애덕은 또한 다른 모든 덕을 활동케 한다.
「거룩한 위탁은 가장 완 전한 신덕과 가장 전체적이며 또한 완 전히 맡겨 버린 망덕과 가장 순수하고 충실한 애덕과의
행위의 총화이며, 합성이다」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제3장 - 03 내맡김이란 본질적으로 순수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합친 상태이다.
이 내맡김의 상태는 하느님과 그분의 모든 활동에 우리를 일치 시키는 단일한 행위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합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덕이 일치될 때, 결국 이들은 하나의 덕이 되고 즉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올리는 단일한 행위가 되며 그분께 단순한 내어맡겨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생활과 애덕(정무웅 신부님) ★영 성 지도사제 13.11.05 17:43
영혼을 정화한다는 것은 이 기능들로 하여금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관심을 돌려 이제는 온통 하느님께 집중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정화는 신덕․망덕․애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성은 신덕을 통해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고, 기억은 망덕을 통해 하느님만을 원하게 되며, 의지는 애덕을 통해 하느님만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혼의 정화는 신망애 3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71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관하여,
1-45,1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각각 다른 덕행이지만, 그 가운데서 사랑은 가장 빼어난 덕행이고, 이것이 믿음과 희망과 결합하여 오직 하나의 덕행과 같이 된다.
8 내 신부야, 믿음이 영혼의 시력인 빛이라면
희망은 믿음이 보는 저 선들을 얻도록 영혼에게 힘과 열망을 주는 믿음의 양식이다.
9 사랑은 믿음의 빛과 양식이 솟아나는 본체이다. 이것이 없으면 믿음이나 희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불이 없으면 빛이나 열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 5:04~ 여기에서 빛, 불, 열 이걸로 비유했는데 불이 사랑이라면 빛은 믿음이고 열은 희망이 됩니다. )
4-171 (1903년 1월 9일)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안에는.....
2 "딸아, 하나의 주제를 잘 이해하려면 믿을 필요가 있다.
믿음이 없으면 인간의 지성 안에서 모든 것이 어둠이 되지만, 다만 믿기만 해도 정신 안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빛에 의해서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고,
은총이 역사하고 있는 경우와 인간 본성이나 악마가 작용하는 경우가 어느 것인지도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3 보아라. 모든 사람이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내 말의 의미와 그것이 담고 있는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
이를 마음에 간직하면서 영원한 나라를 얻기 위한 보화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오로지 믿는 이들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어떠하겠느냐?
그들은 내 말의 첫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뿐더러, 지극히 거룩한 것을 비웃으며 놀림감으로 삼기 위하여 이를 사용하기도 한다.
4 그러므로,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안에는 모든 것이 적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의 마음 안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이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은 사태를 분명히 보면서 진리를 찾아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아주 당혹해하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6-69,2 그러니 용기를, 용기를 되찾아라.
실망이 영혼을 죽인다면 용기는 되살리는 것이다.
3 (용기를 되찾는 것은) 따라서 영혼이 할 수 있는 가장 기특한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실망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로 그 실망으로부터 용기를 돋구어 자기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며 희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원상을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자기가 이미 하느님 안에 회복되어 있음을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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