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한국 3대 도시의 하나이며, 경상북도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한때는 섬유공업 중심의 공업 도시로 유명했다. 중구(中區)·동구(東區)·서구(西區)·남구(南區)·북구(北區)·수성구(壽成區) 출장소·달서구(達西區)·달성군(達成郡)·안심(安心)·칠곡(漆谷) 출장소 등 7개구 1개군 2개 출장소 1개읍 8개면 153개 행정동 195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중구 동인1가동이다. 면적 885.51㎢, 인구 2,544,811(2003), 인구밀도 2,873.3명/㎢(2003).
삼국시대에 신라의
위화군(喟火郡)과 달구화현(達句火縣:또는 達句伐)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위화군을 수창군(壽昌郡)으로, 달구화현을 대구현(大口縣)으로 개칭하여 양주(良州:양산) 관하에 두었다. 이때 수창군은 대구현·
하빈현(河濱縣)·팔리현(八里縣)·화원현(花園縣)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940년 수창군은 수성군(壽城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경주에 속했다가 1390년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대구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성주)의 속현이 되었으나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둠으로써 그 지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조선초 1394년(태조 3)에는 대구현이 수성현과 해안현(解顔縣)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419년(세종 1)에 군으로, 1466년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구의 군사적·지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1601년(선조 34) 경상도 관찰사영이 설치됨으로써 경상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현종 때에는 풍각현(豊角縣)을, 숙종 때에는 화원현을 다시 합병하여 면적을 확대함은 물론 교통의 요지를 확보했다. 별호는 달성(達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대구군, 1896년에 경상북도 대구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斗入地)인 각북면·각현내면·각초동면·각이동면이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911년 동상면과 서상면을 합하여 대구면을 신설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시가지 부분인 대구면은 대구부가 설치되어 독립되고, 옛 대구부의 30개면이 12개면으로, 현풍군의 15개면이 4개면으로 통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대구의 성장에 따라 1938년에 달성군의 수성면 일원과 성북면·달성면 일부가 대구부로 편입되었으며, 1949년에 대구시로 개칭되었다. 1958년에 달성군의 동촌·공산·성서·월배·가창의 5개면이 대구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동촌면을 제외한 4개면이 다시 달성군에 환속되었다. 1962년에 구제(區制)가 실시되고 1980년에 수성구가 신설되었다. 1981년에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산군의 안심읍·고산면, 달성군의 월배읍·성서읍·공산면, 칠곡군의 칠곡읍이 편입되었으며,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다. 1990년 7개구 141개동의 행정구역에서 1992년 서구 평리동·산격동, 수성구 만촌동·지산동·황금동, 달서구 월배동이 분동함으로써 7개구 147개동으로 행정구역이 늘어났다. 1994년 시의 명칭이 광역시로 변경되었으며,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달성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화원현,
해안현,
현풍현).
■ 지질·지형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을 기반으로, 그 위에 후기 중생대 때 주로 얕은 바다에서 생성된
경상누층군(慶尙累層群)이 두껍게 존재한다. 이 누층은 서부에서 나타나 거의 북동 주향으로 달리면서 남동방향으로 경사져 있다. 시가지 북서측에서부터 낙동층(洛東層)·하산동층(霞山洞層)·진주층(晋州層)·칠곡층(漆谷層)·신라역암층(新羅礫岩層)·함안층(咸安層)이 차례로 나타난다. 국지적으로 백악기에 형성된 불국사통의 화강암이 관입되어 있으며, 이 화강암이 접촉된 부분은 접촉변질경화대(接觸變質硬化帶)를 이루어 험준한 산지가 발달해 있다. 하안(河岸)에는 충적층인 제4기층이 있다.
대구시는 침식분지인
대구분지에 발달해 있다. 대구분지는 동서 약 26km, 남북 약 33km의 규모로서 북부와 남부산지가 병풍처럼 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금호강이 흐르는 동·서부는 남·북부에 비해 고도가 낮다. 분지상(盆地床)에는 고도 200~300m의 구릉지와 대규모의 범람원이 발달해 있다. 대구분지의 북쪽은
팔공산괴(八公山塊)를 주체로 하는 산지가 발달해 있다. 이 팔공산괴는 불국사관입암으로서 초례봉(醮禮峰:636m)·환성산(環城山:809m)·인봉(印峰:891m)·팔공산(八公山:1,192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팔공산괴 내에는 하천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소규모 분지가 곳곳에 산재하며, 그 주변산록에는 도덕산(道德山:660m)·응해산(鷹蟹山:526m)·문암산(門巖山:431m)·응봉(鷹峰:456m)·용암산(龍巖山:368m) 등이
환상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 환상산맥은 팔공산괴를 구성하는 화강암이 관입될 때 경상누층군의 암석들이 경화되어 만들어진 접촉변질경화대에 해당되는 곳이다. 남부에는 신천(新川) 서쪽에 청룡산(靑龍山:794m)·산성산(山城山:653m)·앞산(660m)·삼필봉(三筆峰:468m)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용지봉(龍池峰:629m)·대덕산(大德山:600m)·병풍산(屛風山:571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에는 팔조령(八助嶺:373m)·비내현(飛內峴:426m)·통점령(通店嶺:703m) 등의 고개가 있다.
금호강이 분지 중앙부를 동에서 서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데, 신천이 분지 남쪽에서 유입되어 시내 중심부를 관류하다 침산교(砧山橋)를 지나고, 달서천은 시내 중심부를 가로질러 달서교를 지나 모두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은 유로 변동이 심하고 홍수의 피해가 잦아 제방을 축조했으며, 그 양안과 주변 일대에 형성된 범람원과 구릉지에는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분지 북동쪽에서는 동화천(桐華川)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금호제1교 근처에서 금호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북서쪽에서는 팔거천이 남류하다가 경부고속도로 서대구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역시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기타 금호강의 작은 지류들이 분지의 남북사면에서 발원하여 금호강으로 유입된다(→
달성군).
■ 기후
해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내륙분지지역으로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3.2℃ 내외, 1월평균기온 -0.7℃ 내외, 8월평균기온 26.3℃ 내외로 연교차는 27.9℃에 달한다. 특히 연중 일최고기온 30℃ 이상인 날이 55.5일로 전국에서 가장 많으며, 1942년 8월 1일에는 40.0℃로서 이례적인 고온일을 기록했다. 연평균강수량은 1,030.6㎜로 소우지이며, 연간 일조시간은 2,337시간, 무상일수는 263일이다.
■ 인구
대구광역시의 인구변동은 행정구역의 변천, 8·15해방 및 6·25전쟁과 같은 사회적 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930년 인구는 약 10만 1,000명이었으나, 1938년에 시역이 9.25㎢에서 115.64㎢로 확장되면서 약 17만 2,000명으로 55.17%나 증가했다. 1944년에는 20만 7,000명이 되었고 1946년에는 해방과 함께 해외동포가 귀국하는 등의 사회적 변동으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26만 9,000명, 1949년에는 31만 4,000명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에는 6·25전쟁으로 인하여 26만 9,000명으로 다시 감소했고 1951년에는 피난민의 유입으로 36만 8,796명, 1952년에는 40만 6,966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다가 1953년 휴전협정으로 피난민이 귀향함으로써 다시 인구는 39만 3,852명으로 감소했다. 1958년 시역이 463.19㎢로 확장되면서 인구는 61만 4,290명으로 대폭 증가했으며, 1969년에는 103만 4,234명이 되었다. 그뒤 연평균 5.96%의 증가율을 유지하면서 계속 인구가 증가하여 1979년에는 157만 2,824명이 되었고, 1981년 직할시가 되면서 시역이 확장되어 183만 8,037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그뒤 1985년에는 202만 9,853명, 1990년 222만 8,834명, 달성군과 통합 이후 시역이 확장되면서 광역시 인구는 247만 6,983명으로 1985년을 기준해 22%의 인구 증가율을 나타냈다. 인구증가와 함께 가구수도 1951년 7만 1,431가구에서 1960년 12만 1,275가구, 1970년 21만 7,666가구, 1980년 36만 2,627가구, 1990년 59만 1,138가구, 1996년 75만 1,502가구로 증가했다. 그러나 가구당 인구수는 1955년 5.7명, 1965년 5.3명, 1975년 4.6명, 1985년 4.0명, 1996년 3.3명으로 감소했다. 성별로 보면 1990년 이후 남자의 인구가 여자의 인구보다 약간 더 많다. 1996년 현재 인구가 많은 구는 달서구(48만 2,005명), 수성구(45만 6,183명),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11만 4,717명)이다. 달성군의 인구(11만 9,871명)는 광역시 전체 인구의 약 5%에 지나지 않는다.
■ 도시
대구시의 도시화 과정은 크게 도시발생기(1910 이전)·도시성장기(1910~45)·도시혼란기(1945~60)·도시팽창기(1960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대구가 도시로서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인구 규모나 사회적 배경으로 보아 대체로 1736년(영조 12) 석성(石城)이 축조되기 이전으로 생각된다. 도시성장기는 일제강점기로서, 전기(1910~30)에는 구성벽의 철거 등 전통적 도시구조가 붕괴되고 거주지역의 민족적 분화에 의한 2중적 도시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거지·상업지구·공업지구 등 도시기능분화가 미약한 혼합도시의 성격이 강했다. 후기(1930~45)에 들어와서는 대구역과 일본인 상가를 중심으로 도시핵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도시혼란기에는 기존 도시핵을 중심으로 상업·업무 기능의 확대와 함께 점적(點的)인 도심에서 면적(面的)인 도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여, 도심 주변에는 주거지와 공업기능이 혼재하게 되었다. 도시팽창기의 전기(1960~70)에는 이촌향도에 의한 농촌인구가 대폭 유입되면서 도심이 상업업무지구로 발달하여 완전한 도심을 형성하게 되었고, 도시 변두리에는 교외 주거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도심의 고층화·고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도시팽창기 후기(1970 이후)에는 농촌인구의 계속적인 유입과 함께 도시 내 인구의 교외화현상(郊外化現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교외 신흥주택지구가 형성됨에 따라 도심의 공동화현상(空洞化現象)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도심은 확산되고 도심축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대구역을 기점으로 남북방향의 발전축이 형성되었으나, 남쪽에는 비슬산에서 산성산을 연결하는 산지가 지형적인 제약이 되어 현재는 남북방향의 발전이 정체되고 동서방향의 축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대도시가 그렇듯이 대구시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로 성장하여 도시기능은 시 행정범위를 넘어 반경 50km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1995년 대구시와 면적이 거의 비슷한 달성군이 통합되어 면적상으로는 인천광역시에 뒤이어 서울시 보다 면적이 큰 광역시가 되었다. 현재 철도·국도·고속도로를 따라 확장된 이 대도시권은 앞으로 경부고속전철이 개통되면 그 연변을 따라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 농업
상공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농업의 비중이 극히 미약했으나, 1995년 달성군과의 도농 통합으로 농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1995년 현재 총 경지면적 140.24㎢ 가운데 논 81.13㎢, 밭 44.16㎢ 과수원 14.95㎢이다. 낙동강과 금호강을 끼고 있는 달성군 지역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근교농업과 낙농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한때 전통적인
사과 산지로 유명했으나 도시공해, 수령(樹齡)의 노령화, 인건비와 지가 상승 등으로 1970년대 이후 점차 감소 추세에 있으며, 대구사과의 중심지는 의성군·군위군 등의 주변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 공업
대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공업도시 중 하나로
섬유공업이 대구경제의 기반을 이루어왔다. 대구에 근대적인 섬유공업이 발달한 것은 1906년 대구잠업전습소가 설립되면서부터이며, 그뒤 1918년 일본자본에 의해 대공장이 설립되어 전국 제일의 생사견직공업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군수공업의 확대로 성장을 계속했으며, 1950년대에는 전국 섬유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에는 전국 경제의 규모가 확대되고 수출이 증대됨에 따라 더욱 성장했다. 이같이 대구가 섬유공업의 중심지로 발달하게 된 요인으로는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원료, 편리한 교통, 축적된 지방자본 및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6·25전쟁으로 경인공업지대의 섬유공장이 가동되지 못하여 전국의 섬유 수요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 섬유공업은 낙후된 기술과 수출부진 등으로 인하여 그 생산성이 저하됨에 따라 대구지역의 경제가 침체되기도 했다. 즉 섬유공업 위주의 공업구조는 지역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지녀왔던 것이다. 따라서 섬유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약 10.98㎢ 규모의 성서공단을 조성, 첨단산업기지와 연구단지를 만들고 있다. 이 단지에는 기계·금속 등 132개 업체와 첨단유망업종인 로봇·전자·통신·반도체·자동차부품·정밀화학 등의 산업을 유치하여 고도산업기지로 만들 계획이다. 1996년말 완공될 성서 2, 3차공단에는 모두 1,320개의 첨단산업체가 입주하여, 5만여 명의 고용효과와 함께 대구경제를 획기적으로 바꿔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 달성군의 현풍공업단지와 논공 공업단지에도 섬유공장을 주축으로 한 많은 공장들이 가동중에 있다. 1994년 현재 6,080개소의 공장에서 15만 1,459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섬유공장(2,007개소)이며, 다음으로는 기계(1,051개소) 및 조립금속(569개소) 공장의 비중이 크다.
■ 상업
대구는 상업과 섬유공업이 서로 보완의 관계를 유지하는 상공업도시로 성장해왔다. 조선시대에 이미 전국 3대시장의 하나인
서문시장(西門市場)과
약령시(藥令市)가 이름을 떨쳤다. 대구는 특히 도매업의 특화가 현저한데 이는 전국을 상권으로 한
서문시장의 섬유제품 거래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대구섬유공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도로망의 확충으로 서울에 경제력이 집중됨에 따라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한 대구의 상업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약령시는 봄과 가을의 약재 수확기에 2차례 열렸던 전국 규모의 정기시장으로, 거의 300년간 전국적인 상권을 형성하면서 객주를 중심으로 한 여관업·창고업·중개업·금융업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양약의 등장과 일제의 규제로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한약재 도매시장으로 개장되어 현재는 그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서문시장 이외에 상설시장으로는 교동시장·칠성시장·동문시장·남문시장 등이 있다.
교동시장은 6·25전쟁 이후 피난민 상인들이 모인 곳으로서 미군 군수물자의 밀반출지로 이용되었다. 현재도 주거래상품은 의류 및 전자제품이지만 다른 시장에 비해 수입상품이 많이 거래된다. 다른 시장에서는 거의 거래되지 않는 수입상품이 교동시장 전체 거래량의 약 20~3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의 칠성시장인 북문시장은 1946년 개설되어 주로 농산물이 거래되었고, 현재도 농산물 및 축산물이 주로 거래된다.
1996년 현재 대구 시내에는 5개의 대형 백화점과 3,630개의 슈퍼마켓, 106개의 상설시장이 있고, 정기시장으로는 칠곡·화원·옥포·논공·현풍·구지·하빈 등의 5일장이 있다.
■ 교통
대구는 철도·자동차·항공 교통이 모두 발달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철도는 경부선이 시내 중심부를 동·서로 지나고 있으며, 대구선이 동대구역에서 분기하여 영천을 지나 중앙선에 연결된다. 대구시가지 북쪽 금호강변을 따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며, 서대구 인터체인지와 동대구 인터체인지를 통해 대구 시내로 진입할 수 있어 그 이용이 편리하다. 시가지 서쪽에서는 금호 인터체인지에서 구마고속도로가 분기하여 마산까지 연결되며, 성서 인터체인지를 통해 역시 대구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옥포 인터체인지에서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분기하여 광주까지 연결되어 있다. 또한 대구를 중심으로 하여 국도와 지방도가 각각 경주·포항·안동·김천·상주·고령·밀양·영천·구미·군위 등지로 방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촌에 비행장이 있으며, 서울·부산·광주·포항·진주 간에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도심에는 3개의 순환도로와 7개의 방사상도로가 분포한다. 현재 시내교통은 버스가 주 교통수단이나,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2006년까지 지하철 1·2·3호선을 연차적으로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1990년 12월 기공식을 가지고 현재 건설중에 있다. 도로총길이 1,378.9km, 도로포장률 92.2%이다(1994).
■ 교육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에 세워진 대구향교, 1563년에 세워진 연경서원, 그리고 1824년에 세워진 서산서원 등이 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899년 세워진 사립
달성학교로서 초기에는 대구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으나 뒤에는 일본인 거류민의 자녀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최초의 초등 교육기관으로는 1900년에 세워진 대구희도심상학교라는 사립학교이며, 공립초등학교로는 1905년에 대구공립심상소학교가 세워졌다. 1906년에는 최초의 중등학교인 계성중학교가 세워졌으며, 1907년에는 신명여자중학교가 건립되었다. 1996년 현재 유치원 210개소, 초등학교 185개교, 중학교 111개교, 고등학교 70개교가 있으며, 영남공업전문대학·영진전문대학·계명전문대학·신일전문대학·대구전문대학·대구공업전문대학·대구보건전문대학 등의 7개 전문대학을 비롯하여 경북대학교·계명대학교·대구교육대학·경북산업대학·대구가톨릭대학 등의 13개 대학이 있다. 그밖에 대구중앙도서관·대구학생도서관·두류도서관·북부도서관·효목도서관 등 5개의 도서관이 있다.
■ 문화
파계사 /파계사목조관음보살좌상(1447), 보물 제992호, 높이 ...
관풍루 /관풍루, 대구 중구 달성동
이 시에는 국가지정문화재 25점(보물 19, 천연기념물 1, 사적 3, 중요민속자료 2), 시지정문화재 74점(유형문화재 30, 기념물 10, 민속자료 2, 무형문화재 8, 문화재자료 24) 등이 있다. 선사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 이후의 것이 많이 발견되었다. 침산동·산격동·검산동 등지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와 각종 마제석기가 발견되었고, 대봉동·상동·율암동·동내동·월성동·진천동 등지에는 지석묘군이 분포한다. 불로동고분군(사적 제262호)을 비롯하여 비산동·내당동·대명동·복현동 등지에는 대규모의 삼국시대 고분군이 남아 있다. 주요 사찰로는 동화사(桐華寺)·파계사(把溪寺)·북지장사(北地藏寺) 등이 있다. 동화사에는 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동화사당간지주(보물 제254호)·동화사대웅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파계사에는 파계사원통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파계사설선당(把溪寺說禪堂: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파계사기영각(把溪寺祈永閣: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경북대학교 구내에는 2기의 석조부도(보물 제135호, 보물 제258호)·석조여래좌상(보물 제335호)·법장사3층석탑(法藏寺三層石塔: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 등의 유물·유적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정자로는 봉무정(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관풍루(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첨백당(瞻柏堂: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등이 있으며, 고건물로는 대구향교대성전(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독암서당(獨巖書堂: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2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도동의 측백나무(천연기념물 제1호)가 있고, 무형문화재로는 고산농악(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날뫼북춤(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이 유명하다. 민속놀이로는 세시풍속인 지신밟기·줄다리기·횃불싸움 등이 행해지며, 계절과 관계없이 행해지는 것으로는 투계·투우가 있다. 설화로는 왕건과 견훤에 관한 것이 많으며 기타 효자설화·지명유래담·자연물관련설화, 유운룡(柳雲龍)·이황(李滉) 등에 관한 역사적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달성군:유물·유적).
■ 관광
태고정 /태고정(1614경 재건), 보물 제554호, ...
달성공원 /달성공원, 대구 중구 달성동
외부인들이 즐겨 찾는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는 팔공산·동화사·파계사, 그리고 대구시내 약전골목 등이 있다. 특히
팔공산은 대구의 진산(鎭山)으로서 경치가 아름답고 산 기슭에 유명한 사찰들이 많아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달성공원·두류공원·망우공원·앞산공원 등의 공원과 수성유원지·동촌유원지 등의 유원지는 외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것은 물론 대구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대구를 찾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팔공산-동화사-파계사-망우공원-동촌유원지-금호강변 선사유적지 등 도시외곽 코스와, 달성공원-중앙공원-약전골목-대구향교, 구암서원-오천서원, 모명재-앞산공원-두류공원 등을 돌아보는 도심 코스가 있다.
달성공원은 중구 달성동에 달구벌의 토성인 달성(達城)자리에 조성된 것이다. 달성은 자연적인 구릉 위에 쌓은 토성으로서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에는 수림이 울창할 뿐만 아니라 종합문화관이 있어 시민들의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공원 내에는 동물원이 개장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인터체인지 진입로에 있는
망우공원에는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의 동상과 망우당기념비가 있다. 달서구 두류동에는 대구시민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인
두류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축구장·수영장·야구장 등 체육시설과 종합문화예술관이 있으며, 두류산에 세워진 대구 타워는 대구의 상징으로서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705개소, 천주교 교회 64개소, 불교 사찰 239개소, 천도교 교당 2개소, 원불교 교당 9개소, 기타 48개소의 종교기관이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경북대학교부속병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가톨릭의과대학부속병원, 대구의료원, 대구파티마병원, 곽병원, 갸야기독병원 등의 종합병원이 있으며, 병·의원 846개소, 치과의원 486개소, 한의원 483개소, 부설의원 18개소, 조산소 10개소, 보건소 7개소의 의료기관이 있다.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개발사업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도시형 산업구조로의 개편, 도시교통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하철 건설, 오염된 금호강 및 신천의 하천개발 등이다. 섬유공업의 침체로 인한 경제적 타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섬유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해 현재 성서공단을 조성하여 첨단산업기지와 첨단산업연구단지를 연계시켜 집중적으로 육성해나갈 계획이다.
1994년 현재 대구시내의 등록차량은 약 43만 대로, 10년 뒤인 2000년에는 교통인구가 57.6% 증가하고 등록차량은 58만 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연평균 23%로 교통량이 증가하는 셈이다. 대구시에서는 이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시내 지하철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06년까지 지하철 1호(號)선(월배-안심 간 27km), 2호(號)선(성서-고산 간 23.6km), 3호선(칠곡-범물 간 21.5km)을 건설할 계획으로 1990년 12월 기공식을 가졌다.
대구시내를 관통하는 신천 주변은 예로부터 매년 홍수피해를 입어왔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초부터 신천 주변에 공장이 들어선 뒤 산업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신천은 물론 그 본류인 금호강까지도 심하게 오염되었고 수량이 줄어 죽은 강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에 대구시에서는 한강종합개발사업을 본보기로 하여, 1985년부터 금호강과 신천을 되살리기 위한 대규모 하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01년에는 하수처리율 100%, 상수도보급률 99%, 주택보급률 75% 등을 목표로 종합적인 대구시 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시의 남부에 있는 구. 구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남고북저(南高北低)형의 지형을 이룬다. 남구는 6·25전쟁 이후 대구시의 주거·교육 기능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대명동·봉덕동 일대는 도시 외곽 주택지구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말에는 주택밀집지역이 되었고 최근에는 고층 아파트 지구로 개발되고 있다. 이 일대는 앞산공원과 가깝고 시장과 학교가 인접되어 있으며, 도심지와의 교통이 편리하여 주거지역으로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1970년대말까지만 해도 당시 대구시 19개 대학 중 9개교가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많은 대학이 시외곽으로 이전했다.
남구는 주택지역으로 개발된 곳이기 때문에 다른 구에 비해 공업기능이 약하다. 신공업지역인 월배지역이 있었으나 1988년 달서구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대명동·봉덕동 일대에 소규모 공장이 산재하는 정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19개소, 초등학교 12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2개소, 병원 2개소, 의원 69개소, 치과의원 43개소, 한의원 61개소, 보건소 1개소가 있다. 봉덕(鳳德)·이천(梨泉)·대명(大明) 등 3개동 369개통 2,232개반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봉덕동이다. 7개구 중 관할 동수가 가장 적은 구이다. 면적 17.46㎢, 인구 229,358, 인구밀도 13,136명/㎢(1996).
시의 서남부에 있는 구. 북부는 저산성 구릉지, 남부는 산지를 이루며, 시가지는 구릉지와 산지 사이의 평지에 발달했다. 1969년 성당동에 아파트가 건립된 것을 계기로 성당동은 물론 송현동·두류동·본리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1980년대에 와서는 신흥주거지역으로 변모했다. 대구시 신도시계획의 일환으로 1965년 월배공업단지와 성서공업단지가 조성되어 공업생산비중이 높은 편이다.
두류동에 두류공원이 있으며, 이곳에 대구의 상징이 된 대구 타워가 있다. 구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구마고속도로와 88올림픽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경상남도 및 호남지방과의 교통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48개소, 초등학교 29개교, 중학교 22개교, 고등학교 15개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3개소, 의원 128개소, 치과의원 86개소, 한의원 73개소, 부설의원 5개소 등이 있다. 성당(聖堂)·두류(頭流)·장(壯)·장기(長基)·용산(龍山)·이곡(梨谷)·파산(巴山)·호림(弧林)·파호(巴湖)·갈산(葛山)·신당(新唐)·감삼(甘三)·본리(本里)·월성(月城)·대천(大泉)·월암(月巖)·진천(辰泉)·대곡(大谷)·유천(流川)·송현(松峴)·본(本)·죽전(竹田)·본리(本里)·상인(上仁) 등 24개동 491개통 2,456개반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성당동이다. 면적 62.27㎢, 인구 482,005, 인구밀도 7,741명/㎢(1996).
시의 남서부에 있는 군. 경상북도 청도군·고령군, 경상남도 창녕군과 접해 있다. 1995년 대구광역시에 통합되었다. 지형은 크게 비술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저지로 나누어진다. 하천을 따라 넓은 충적지가 발달해 주요 곡창지대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근교농업과 낙농업이 크게 증가했다. 현풍공업단지와 논공공업단지를 중심으로 섬유공업이 군의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88올림픽 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 및 여러 국도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급속한 지역성장을 보이고 있다(→
달성군).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2개소,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화원읍(花園邑)과 가창(嘉昌)·다사(多斯)·하빈(河濱)·옥포(玉浦)·논공(論工)·현풍(玄風)·유가(瑜伽)·구지(求智)면, 공단(工團) 출장소 등 1개읍 8개면 1개 출장소가 있다. 면적 426.91㎢, 인구 119,871, 인구밀도 281명/㎢(1996).
시의 동부에 있는 구. 지형은 크게 남부의 저지대와 북부의 산지로 구분된다. 남부 저지대는 금호강의 범람원으로서 시가지와 농업지역으로 이용되고 있다. 농업의 비중이 크며 쌀 외에 채소·과일류가 주로 생산된다. 과거 사과가 많이 재배되었으나 근래 근교농업형태의 채소류 재배가 활발하다.
금호강 서부의 신천동·신암동 일대가 주거밀집지역이었으나 최근에는 대구선을 따라 동촌·반야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신암동과 신천동에는 방송국(KBS)·측후소·전화국·청소년회관·소방서 등의 공공기관이 있다.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고속 버스 터미널과 동부 시외 버스 터미널 그리고 동촌에 비행장이 있어 대구의 교통요지가 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6개소, 초등학교 25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의원 111개소, 치과의원 58개소, 한의원 56개소, 부설의원 3개소, 조산소 2개소, 보건소 1개소 등이 있다. 신암(新巖)·신천(新川)·효목(孝睦)·평광(坪廣)·불로(不老)·봉무(鳳舞)·도(道)·검사(檢沙)·유(溜)·지저(枝底)·입석(立石)·방촌(芳村)·둔산(屯山)·부(釜)·신평(新坪)·능성(能城)·진인(眞仁)·도학(道鶴)·백안(百安)·미곡(米谷)·용수(龍水)·신무(新武)·미대(美垈)·내동(內洞)·지묘(智妙)·덕곡(德谷)·송정(松亭)·신룡(新龍)·중대(中大)·율하(栗下)·신기(新基)·용계(龍溪)·율암(栗巖)·상매(上梅)·매여(梅餘)·동내(東內)·괴전(槐田)·금강(琴江)·대림(大林)·사복(司福)·숙천(淑泉)·내곡(內谷)·동호(東湖)·서호(西湖)·각산(角山)·신서(新西)와 안심출장소 등 46개동 601개통 3,211개반 1개 출장소가 있다. 구청소재지는 신암동이다. 면적 182.31㎢, 인구 353,550, 인구밀도 1,939명/㎢(1996).
시의 북부에 있는 구. 구의 중심부를 동에서 서로 흐르는 금호강을 경계로 남부는 대부분 저평한 범람원지역이고 북부는 도덕산을 중심으로 하는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북구는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공업지역으로서 많은 공단이 들어서 있다. 제1공단·제3공단·검단공단·태전지역이 있으며 대구섬유공업의 핵심지이다. 193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칠성동·고성동·노원동·침산동·비산동(지금의 서구)·평리동(지금의 서구)·조야동·노곡동 일대 6.38㎢가 공업지역으로 조성되면서 이 지역이 공업지역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6·25전쟁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공단 주변을 중심으로 북구의 남부지역에 주택이 밀집되어 있으며, 점차 신천 동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구의 중앙을 동에서 서로 관통하며 서대구 인터체인지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33개소,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의원 103개소, 치과의원 66개소, 한의원 61개소, 부설의원 3개소, 조산소 1개소, 보건소 1개소가 있다. 침산(砧山)·고성1가(古城一街)·고성2가·고성3가·칠성1가(七星一街)·칠성2가·노원1가(魯院一街)·노원2가·노원3가·산격(山格)·대현(大賢)·복현(伏賢)·검단(檢丹)·동변(東邊)·서변(西邊)·연경(硏經)·조야(助也)·노곡(魯谷)·태전(太田)·구암(鳩巖)·관음(觀音)·사수(泗水)·금호(琴湖)·팔달(八達)·매천(梅川)·동천(東川)·읍내(邑內)·학정(鶴亭)·동호(東湖)·국우(國優)·도남(道南)과 칠곡출장소 등 31개동 583개통 3,231개반 1개 출장소가 있다. 구청소재지는 침산동이다. 면적 95.46㎢, 인구 379,507, 인구밀도 3,976명/㎢(1996).
시의 서부에 있는 구. 면적이 중구 다음으로 적고 7개구 중 인구가 최대여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구이다. 지형은 서쪽 와룡산(臥龍山:299m)이 있는 상리동 일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평하다. 주거지역은 주로 동쪽에 발달했으며 서쪽 일대는 공업지역이다. 원래 동쪽의 내당동·비산동·평리동 일대는 6·25전쟁 이후 섬유공업지역으로 발달한 곳이었으나 공장부지 확보문제, 공해문제 등으로 많은 업체들이 외곽지역으로 이전했다. 상리동과 중리동에 서대구공단(이현공단), 비산동에 비산염색공단이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평리동·중리동·내당동 일대가 대단위 아파트 지구로 지정되어 주거지역으로의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급속한 신흥주거지의 성장으로 서대구 일대가 서구의 생활중심권이자 대구시의 부심지로 성장했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16개소, 초등학교 40개교, 중학교 22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평리(坪里)·내당(內唐)·비산(飛山)·상리(上里)·중리(中里)·원대1가(院垈一街)·원대2가·원대3가·이현(梨峴) 등 9개동 612개통 3,211개반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평리동이다. 면적 17.51㎢, 인구 341,792, 인구밀도 19,520명/㎢(1996).
시의 남동부에 있는 구. 수성구 일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신거주지로 개발되어온 곳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만촌동을 선두로 하여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범물동과 지산동 일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특히 풍치지구에 인접되어 환경이 쾌적하고 교통망도 잘 정비되어 주거지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심기능의 분산정책으로 이전된 법원·검찰청·대구은행본점·대구문화방송국 등이 범어 로터리 주변에 위치하여 대구의 부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면적의 61%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다른 구에 비해 녹지공간이 많다. 구의 남북방향으로 달리는 동대구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로공원으로서 중앙분리대가 꽃과 나무로 잘 조성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33개소, 초등학교 25개교, 중학교 21개교, 고등학교 14개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1개소, 의원 111개소, 치과의원 83개소, 한의원 70개소, 부설의원 2개소, 조산소 1개소, 보건소 1개소, 기타 5개소의 의료기관이 있다. 범어(泛魚)·만촌(晩村)·수성1가(壽城一街)·수성2가·수성3가·수성4가·황금(黃金)·중(中)·상(上)·파(巴)·두산(斗山)·지산(池山)·범물(凡勿)·성동(城洞)·매호(梅湖)·사월(沙月)·신매(新梅)·노변(蘆邊)·욱수(旭水)·시지(時至)·내곶(內串)·삼덕(三德)·연호(蓮湖)·이천(梨川)·가천(佳川)·고모(顧母) 등 26개동 602개통 3,551개반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범어동이다. 면적 76.47㎢, 인구 456,183, 인구밀도 5,966명/㎢(1996).
시의 중앙에 있는 구. 7개구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아 인구는 많지 않지만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중구는 대구시의 중심업무지구로서 각종 관공서·금융기관·문화시설·유흥가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상업적 특화가 이루어져 공평동·향촌동·삼덕1가동·삼덕2가동·동성로1가동·동성로2가동 일대는 유흥오락가, 동성로동 일대는 백화점 및 양품점가, 남성로동은 한약재상가, 북성로동 일대는 철물점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상설시장으로는 주로 전자·전기 제품을 거래하는 교동시장과 생활필수품을 거래하는 서문시장이 있다. 서문시장 근처에는 오토바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오토바이 골목이 있으며, 벽산시장(염맥시장) 안에는 떡전골목이 있다. 1965년 이후 추진된 도심기능분화정책에 따라 금융기관 및 방송국 등이 외곽으로 이전되었으며, 도심에는 주거환경의 악화로 상주인구가 감소했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13개소, 초등학교 11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계산동에는 1902년에 건설된 영남지역 최초의 고딕식 건물인 계산동성당이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3개소, 병원 2개소, 의원 183개소, 치과의원 90개소, 한의원 91개소, 부설의원 3개소, 조산소 2개소, 보건소 1개소, 기타 38개소의 의료기관이 있다. 동인1가(東仁一街)·동인2가·동인3가·동인4가·삼덕1가(三德一街)·삼덕2가·삼덕3가·봉산(鳳山)·공평(公平)·문화(文化)·동문(東門)·동성로1가(東城路一街)·동성로2가·동성로3가·교(校)·완전(莞田)·용덕(龍德)·상덕(尙德)·태평로1가(太平路一街)·동일(東一)·남일(南一)·사일(射一)·서성로1가(西城路一街)·서성로2가·인교(仁橋)·서야(西也)·수창(壽昌)·시장북로(市場北路)·도원(桃園)·태평로3가·서문로1가(西門路一街)·서문로2가·남성로(南城路)·계산1가(桂山一街)·계산2가·하서(下西)·동산(東山)·종로1가(鍾路一街)·종로2가·장관(壯灌)·수(壽)·덕산(德山)·화전(華田)·향촌(香村)·북성로1가(北城路一街)·북성로2가·포정(布政)·대안(大安)·서내(西內)·북내(北內)·태평로2가·전(前)·상서(上西)·달성(達城)·대신(大新)·남산(南山)·대봉(大鳳) 등 57개동 302개통 1,541개반이 있다. 구청소재지는 동인2가동이다. 면적 7.09㎢, 인구 114,717, 인구밀도 16,180명/㎢(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