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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은 내게 지독한 악몽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나는 심한 영적 압박으로 인하여 몹시 힘든 밤을 보내야했습니다.
최근 들어 영적 공격이 줄어들었다가 왜 갑자기 이날 밤에 그것이 심각해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대강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각 교구별로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각 교구별로 교회와 기도원 등의 장소를 빌려서 수련회를 했고, 리더들이 있는 본부 멤버들은 센터에서 수련회를 했었습니다.
나는 수련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 날 밤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본부의 모임은 영적으로 많이 열려져 있는 이들이라 잠시 간단한 메시지를 전해도 깊은 주의 임재로 들어가곤 합니다. 그러므로 본부 모임의 인도는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구들은 부분적으로 쉽지 않은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에 오신 분들은 영적인 것에 대해서 약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의 전쟁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빛이 임하는 곳에는 어두움도 같이 역사하게 됩니다. 그것은 간단하지 않은 전쟁입니다.
내게 온 공격은 아마 그러한 과정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무튼 그 공격은 극심했고 나는 그것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나는 대중적인 사역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많은 이들의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불편해합니다. 자격도, 능력도, 체력도 부족합니다.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을 감당하는 사역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상태에 집중했습니다. 주님의 상태가 좋을 때는 나도 좋습니다. 주님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나도 힘들고 슬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임재와 가까우심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개념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 안에서 얼마나 고통을 겪으시는지, 탄식하는지.. 우리의 사소한 것들이 그분에게 얼마나 고통이 되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행이 그분을 얼마나 실제적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못박는 지 잘 모릅니다.
그것을 안다면 신자들은 함부로 말하고 거칠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행동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은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 함부로 말하는 것이 내주하시는 주님의 심장을 칼로 찌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얼마나 주를 해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주를 몹시 사랑하고 있다고, 기쁘게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감각이 마비된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은 무한하고 광대하신 주님이시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은 우리로 인하여 탄식하시고 근심하시고 소멸되시며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내주하시는 주님이 기뻐할 때 기쁨을 느끼며 그분이 괴로워하실 때 같이 괴로워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바깥의 환경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이 어떠하신 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 밤, 주님께 집중했을 때 주님의 옷, 그 모습이 피투성이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의 온 몸이 묶여져서 고통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고통과 슬픔을 이길 수가 없었고, 기도와 탄식에 몰두했습니다. 한참 지나자 주님의 입으신 옷에 묻는 피는 조금 사라졌고, 깨끗한 옷으로 바뀌었습니다.
씨름 중에 잠이 들었고, 아침에 잠이 깨었을 때는 주님이 미소를 지으시면서 산보를 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모습을 느끼거나 그 음성을 들으면서 잠이 깨는 것은 아주 감미롭고 달콤한 일입니다. 나는 마음이 몹시 행복했고, 그래서 어려움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려 해보니 여전히 통증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장의 찢어지는 통증은 완화되었지만, 머리의 통증과 어지러움은 아주 심했습니다.
누워서 전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어지러움이 심해서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휘청거리고 넘어지게 되었고 화장실에 기어가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었지만, 나는 도저히 출발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아내만 교회로 출발하고 집회 인도는 홍강도사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집회 인도의 경험이 많고 그녀의 인도에는 성령의 강력하신 은혜가 임하기에 나는 그다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예고 없이 집회를 맡기게 되어 미안했을 뿐입니다.
아내가 떠나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통증과 어지러움이 조금 완화되었습니다. 주님은 미소를 지으셨고 나의 영혼에도 평화가 가득해서 나는 잘 하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신히 일어나 옷을 걸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뿌옇게 느껴지고 어지러워서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일단 무사히 교회에 도착해서 강단에 올라가면 주님이 힘을 주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걷다가 길에서 쓰러진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간신히 택시에 눕혀져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아내는 항상 이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혼자 어디를 가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내가 추운 겨울 집회를 인도하러가다가 길에서 정신을 잠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를 찾기 위해서 차가 근처를 배회하다가 극적으로 찾아서 나를 데리고 집회장으로 데려왔습니다. 나는 차에 눕혀져서 간신히 교회에 왔지만 일단 강단에 올라가자 몇 시간 동안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내는 나의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가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내가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어..]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 죽어가다가 강단에 서면 멀쩡해져서 여러 시간을 외쳐대고, 강단에서 내려오면 시체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을 아내는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한 것에 익숙해있었습니다.
내게는 설교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주님이 전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전하면 그만이고, 전하시는 것이 없으면 강단을 내려오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영적 상태, 주님과 나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것입니다.
간신히 교회에 도착하자, 집회가 시작된 지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난 상태였습니다. 내가 비틀거리며 들어가자 모두가 다 놀랐습니다.
나는 서 있기가 힘들어서 앉아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숨이 차고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점차 힘을 얻게 되어 두 시간 반 동안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날도 나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얼마나 가까이 거하시는지, 그분이 얼마나 섬세하신 분인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그분을 학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집회장은 통곡으로 가득해졌고,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주님, 내면의 주님에 대해서는 나중에 책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에 대해서 반복하여 메시지를 받으면서 사람들은 점점 주님을 섬세하게 보고 느끼고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내게 몹시 보람된 일입니다.
나는 많은 신자들이 주님과 아주 실제적인 교제를 나누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많은 아름다운 것들, 향기롭고 거룩한 천국의 열매를 가득하게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많이 지쳤지만,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는 머리도, 심장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 그분의 가까우심에 대해서,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전하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분은 애절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왜 나를 향하고 있지 않니.. 나는 네 안에 있는데.. 왜.. 나에게 이렇게 쓰레기를 집어넣고 있니.. 나는 그것을 싫어한단다..] 그것은 슬프고도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어느 새 공개적으로 교회 사역을 시작한 것이 5개월이 지났습니다. 이것은 내게 놀라운 일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입니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운영을 하면서도 카페를 닫고 싶은 마음이 자주 일어나는 나에게 교회 사역이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공개적으로 집회를 인도할 지는 모릅니다. 아마 그리 길지는 않을 것입니다.
10년 가까이 공개사역을 하지 않으면서 내게는 나의 집회를 찾는 많은 독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이 항상 있었습니다. 집회를 하지 않는다고 항상 대답해야 하는 사무원들은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5개월이나 집회를 했기 때문에 그러한 부담감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의 집회에 오고 싶은 이들은 거의 다 방문했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사역이 그리 부흥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스타일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며 나의 방향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많은 것,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책을 쓰면서 나는 나의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리리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나의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광고하는 일도 없습니다.
가끔 책이 베스트가 되는 것을 보면 어리둥절하고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안 쓸수는 없습니다. 받은 부분에 대해서 전달하는 것은 맡은 자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급적 책이 널리 알려지지 말고 주님이 인도하셔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나의 책을 소개하거나 우리 교회를 소개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야단을 맞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주님이 원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에 민감하기를 바라며 가급적 인위적인 애씀이 없는 것을 바랍니다. 주님이 인도하시지 않는 사람의 열정에는 흔히 부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꿈은 큰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위대한 것이 아니고 소박한 것입니다.
나의 작은 꿈이 있다면.. 하나도 잘나지 않고, 모나지 않고, 훌륭하지 않은 작은 무리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직 주를 알아가고 싶은, 작은 무리들이 예수마을과 같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며 천국같이 서로 섬기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성취에 관심이 없고 그저 주를 사랑하고 가까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은 비슷한 무리를 만나게 될 때, 마치 고향에 온 것같이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천국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천국을 보여주는 작은 무리들, 작은 공동체, 작은 예수 마을이 여기 저기서 일어나는 것을 나는 꿈꿉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게, 드러나지 않게 숨어서 사랑하고 섬기며 중보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을 경험하고 누리며 충만함을 입어서 세상에 나가서 사역할 수 있도록 준비되고 무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나타나도록 힘쓸 것이며 세상의 많은 문제들, 위기들, 어려움들에 대해서 중보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역사가 왕들에 의해서 쓰여지지 않고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젠가 사역을 내려놓고, 그러한 작은 무리들과 같이 걷고, 모여서 예수 이야기를 하면서 기도하면서, 같이 노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풀밭에서, 개천에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뛰놀면서 예수를 나누고 기도하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여러 해 전, 어느 형제 자매의 야외 결혼식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드렸고, 풀밭에서 춤추고 경배하고 찬양하며 행복한 결혼집회를 마쳤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잔디밭에 앉았는데, 사람들은 집에 가지 않고 모여들기 시작해서 다들 나를 둘러싸고 내 입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예수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은 어느덧 깜깜해져서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자연의 향을 맡으며 그리스도에 대해서 나누고 웃고 기뻐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막 부부가 된 형제 자매도, 신혼여행.. 이런 쪽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같이 울고 웃으며 늦은 시간까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에서, 그들은 이제 헤븐 스쿨의 교장이 되어 천국과 같은 학교를 운영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은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
아직은 좀 더 길을 가야 합니다. 아직은 좀 더 공개적인 사역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는 주님의 가까우심을 경험하는 삶, 천국의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삶에 대하여 방향을 가리키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그리 많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방향을 사모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가까우심, 친절하심, 아름다우심에 대해서.. 사람들이 좀 더 누리고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가까우신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얼마나 우리에게 상처를 입으시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후회와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며, 주님의 아픔을 외면하고 세상과 죄악으로 나아가는 삶이 역겨워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과 가까우십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영적인 사역자나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까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소박하고 순진한 사람들,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다만 그에게 반응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급할 때만 그분을 찾을 뿐, 평소에는 곁에 계신 그분을 항상 무시하며 상처를 주며 지나쳐버립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하여, 가까우심에 대하여 반응하는 사람은 그분의 풍성하심,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누리고 맛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그의 얼굴을 향하여 간절하게 쏟아 부으십시오.
그분의 사랑에 당신도 간절하게 응답하십시오.
급할 때만 그분을 찾지 마십시오.
항상 그를 부르고 의식하며 살아가십시오.
당신이 진정 그분의 가까우심을 의식하게 될 때, 깨닫게 될 때..
당신은 더 깊은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그분의 사랑과 가까우심에 반응하십시오.
그분은 지금 당신 곁에 계십니다.
정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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