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마 修女
王修女님이라고 해야 한다
수도회 원장직도 몇 번 역임한 탓에
은근히 쇠골과 등뼈가 굵어져 있는
그래서 원장직도 술술 잘 풀어
식구들이 골고루 갈자리에 있고
올 자리가 있으면
손수 걸레질을 해서 닦아 놓는 분
식구들을 앞에서 끌려니
팔다리뿐만 아니라
쇠골 등뼈도 굵어진 수녀님,
부리부리한 음성에
군인의 발걸음이지만
뒤돌아 뒤통수를 보면
요즘은 봄이라 진달래가
솔숲으로 몰래 핀 것처럼
제비꽃 냉이꽃 민들레가 한창이다
왕수녀님이라 소나무 전나무를
키울 줄 알았는데, 성모님처럼
순종의 꽃을 키우시는 분,
역시 성모님의 딸 王修女님입니다.
베드로 修士
베드로 수사님은 생토生土다
있으나 빈 것처럼 있는 물처럼
높은 산 어깨에 얹힌 암자이거나
비바람 눈보라만 쉬었다가는
산과 산이 숨긴 호수 같다
아는 것도 한 줄로 서서 있는
수도 규칙서가 전부이고
대못처럼 말씀만 등뼈를 이루어
구름 흐르다 그의 머리로
소나기 한 줄금 할 것 같고
웃거나 말할 때에는
말씀이 눈매에서 달랑 거린다
이마저 그마저 이냥 그냥
필요 없을 때에는 기도할 때
직각으로 선 전나무처럼
우박 쏟아 질것 같지만
말씀으로 응답할 것 같지만
그러면서 잘 떠오르지 않는
아무렇게나 아무런 곳
산 굽이굽이 접힌 산길에서
문득 만나는 풀과 같다
슬쩍 발목을 잡는 꽃과 같다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을까?
하느님의 솜씨렸다.
안젤라 修女
수녀님은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넉넉한 허리 가슴 얼굴로
결혼 했으면 자식을 열쯤 두었을법하다
한가위 보름달 같은 얼굴은
수녀라기보다는 어머니
대들보 같은 듬직한 허리는
수녀라기보다는 여장군
젊은 녀석 둘쯤 품에 안아도
밭둑처럼 남는 가슴,
그러면서 산속의 주목처럼
붉을대는 너무 붉어 있어
마를대는 너무 말라 있어
기도할 때는 제사향이 난다
팔뚝 같은 나무도 남자처럼
척척 분지르는 안젤라 수녀지만
성모님께 대한 신호등은
늘 켜 있어, 든든하신 성모님
아니 성모님의
튼튼한 딸이 적당한 별명이겠다.
로무알도 수사修士
수도원에 산지 오십년이 넘어
아빠스님에게 아니 하느님에게
금장 지팡이를 선물 받은
수도원의 맏형 아버지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시작했으니
북한 바람도 들어 있는 수사님
평생 밭고랑만 다녀
얼굴에 밭고랑만 생겨
개망초들이 얼굴에 마구 피어 있다
민들레 쑥부쟁이 달맞이도
허락 없이 살고 있다
얼굴에서 학이 나올 것 같은
나비도 날 것 같은 얼굴
하늘로부터 생겨난 천수답이
등짝으로 새겨져 있는 수사님
연세가 팔십이 되셨어도
배나무 밭 고추밭 상추밭을
자식처럼 기르시는 분,
하느님께서 잘 기르신 분이다.
마리아 수녀
사십년 전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 적
우리 동네에 관상 수녀원이 생겼다
수녀원 창설하느라 온 그 분을 처음엔
스무 살 갓 넘은 얼굴로 봤는데
벌써 마흔이라는 말에
내가 좀 실망했었던 고소한 추억을
나이테에 감아 주었던 수녀님,
말과 행동이 이슬로 맺혔다가
적당한 바람에 떨어졌던 수녀
양지바른 언덕에 들어선
수녀원보다 내겐 더 컸던 수녀님도
할미꽃처럼 몸이 굽어지더니
온몸에 암癌꽃이 피자
하느님 초대장이라며 일손을 놓고 가셨다
요즘은 봄이 와서 고추 모종을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꽃이 피는 봄날인데
천국에서도 하우스에 토마토를
심을 법한 마리아 수녀님
개울 건너 진달래꽃에 오늘따라
유난히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수녀님이 거기서 날 보시는 성 싶다.
마태오 修士
이 분은 수도생활 육십년인데
청맹과니도 십년 넘으면
비바람 눈보라를
눈감고 읽듯이 이분은
악보 없이 나를 읽으시고
문자 없이 나를 부르신다
바람 구름인들 할까마는
정말 하는 수사님이다
빛과 어둠이
넙죽넙죽 왔다가 가지만
이 분은 마냥 없으시다가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는
귀신보다 턱하니
룰루랄라 하시는 것이다
하여, 하느님께서는
없는 것을 캐내시는 분이
아님을 수사님에게서 배우는데
아무것도 없으면서
알고 보면 다 지니신 수사님,
부럽습니다!
다미아노 修士
이 수사님은 수도원에 들어 온지
삽 십 년이 다 되었는데도
꼬리 길어선지 꼬리를 기른 탓인지
수도원 담장 너머 세상에도
양다리가 항상 걸쳐 있다
강아지풀마냥 몸 가늘어
간간히 골절상도 잘 나면서
호박손이 나뭇가지 잡듯
하느님과 세상을 양손에 움켜쥐려니
팔다리가 늘 아프고 병나서
드러눕기 다반사다
그래도 숨결은 비단결이라서
배꽃이 핀 배 밭에 서면
배꽃이 얼굴과 구분 없이
저녁기도에 들곤 하는데
때로 세상으로 난 다리를
가위로 잘라주고 싶다가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 분지르거나
안팎으로 묶어 주시겠지 하며
장난인 듯 그리움인 듯
다미아노 수사님 머리위의
배나무 가지를 몰래 흔들어 본다.
가브리엘 神父
신부는 잘나가던 대학 졸업하고
세상 수레바퀴에 돌고 돌다가
문득 그것을 발로 차버리고
수도원에 들어와 신부가 되었다
너무 열심히 사는
그의 곁에 서면 불붙는 것이다
오 척 조금 넘는 키에
수수깡처럼 가는 몸이지만
독수리처럼 부리부리한 눈
송곳처럼 빈틈없다가 문득
옹달샘 물을 끼얹기도 한다
꽃가지로 등뼈를 훑다가
툭툭 먼지 털기도 한다
양손엔 너무 무섭거나
시퍼렇게 날선 검도 있어
가끔은 규칙서보다는
사랑의 온도를 높이라고
사람의 체온을 유지하라고
몰래 그의 그림자를 잡지만,
하느님의 군사에게 있는
하느님께서 주신 검이겠다.
트라피스트 수도원
나의 죄가 드러나는 곳으로 가볼까
죄를 피하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 죄 속에서 나를 맞이하는 분
나는 정녕코 죄를 여는 나무
그 분은 그 열매를 속아주시는
당신 닮은 하나만 달려 있게 하시는 분
올해도 염치불구 또 가고마는
죄가 덕지덕지 하더라도 반겨 주시는
세상에 있는 천국으로 휴가를 가볼까
언제나 잎사귀만 무성한 가지에
맞갖은 한 열매 몰래 달아 주시는
하느님의 속잎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요셉 修士
수도원에서 산지 이십년 넘는다
세상의 깃발을 잡고 있던
펄펄 끓는 손을 놓고
새가 둥지를 찾아오듯
수도원에서 꽃망울이 터진 뒤
한 번도 꽃이 진적 없는
하느님 사람 하느님의 종이다
그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
햇빛도 그의 말을 들으려는 듯
책상에 찾아 들고
바람도 없는데 장미 넝쿨
소나무가지에 몸을 기댄다
오십에도 중학생 같은 머리에
이십년 같이 견딘 낡은 수단
여울목 물소리 같은 목소리
그가 걸어가면 그의 그림자도
은총의 감사함이 묻어나고
솔바람 부는 것 같은 발소리
달빛처럼 가슴을 다녀간다.
하느님이 시를 쓰는 법
아침에 나가면 조금씩 자라났다
저녁이면 멀어져 있는 종장
밤이면 달빛에 마디마디 젖다
시제와 명사 형용사 조사가
푸른 방점을 함께 물기도 한다
십년 백년 나이테를 두르지만
해마다 이파리를
각운脚韻 두우頭韻 맘대로 푼다
냇가로 잘 번지는 낱말
쉽게 읽으라고
울타리에 얹어 키우기도 한다
가랑잎에 숨겨 심마니들의
애를 태우기도 하지만
하느님이 써 논 시는
언제 읽어도 뼈가 튼튼해진다
다시 읽어도 처음처럼 읽힌다
하느님처럼 쓰고 싶다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이 되는
하느님의 시詩,
고드름 자라는 추녀에 냉이꽃
피우는 것은 하늘만 가능한 솜씨
조사 형용사 하나 없이 명사로
진달래 개나리 목련은 환하다
벚꽃이 봄을 독차지 할 때에도
제비꽃을 소홀이 하지 않고
다만 기도하게 하는 시작법,
소나기 지난 길로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이었다가
봄에 숨겨둔 불火씨
지금은 나비가 결구를 접었다 폈다 한다.
길가의 시 읽기
논두렁 걸으면 독사풀 강아지풀 쑥 돼지풀
밭두렁 걸으면 애기똥풀 쇠뜨기 돌나물
산길 걸으면 칡넝쿨 억새 진달래 싸리나무
바닷가를 걸으면 소라 조개 망둑어 낙지
하느님이 쓴 시詩들이 길마다 즐비하다
가령 산돼지가 죽으면 그 시를 먹으려
쇠파리 똥파리가 밟다가 알까지 까놓고
참나무 쓰러지면 애벌레들이 구멍을 내곤
살았을 적 나무의 시들을 먹어 치운다
그리곤 자신도 시가 되어 날아다닌다
개울을 걸으면 송사리 피라미 미꾸라지
공동묘지 걸으면 할미꽃 찔레꽃
산등성이 걸으면 까치 꿩 비들기
어디든 써 놓지 않는 데가 없어
비 오면 오는데로 눈 오면 오는데로
하느님의 시는 종장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이 마지막인듯 한 하느님의 시
서서 읽기보다
저녁 무렵 고개 숙여 읽으면 더 좋다
차라리 눕거나 엎드려 읽으면
해안가 구석구석 차오르는 밀물이다
홀로 숲으로 돌아간 오솔길처럼
구름 바람에 익어가는 머루 다래 으름
하느님 시는 눈으로 읽다 날것으로 먹어도 좋다
야호, 소리 절로 튀어 나오는 하느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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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마 修女
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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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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