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베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28-30)
온유함은 크리스천들이 애써 닮으려고 하는 예수님의 여러 성품 중에 하나이다.
한편 많은 크리스천들이 가장 애로를 느끼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다.
타고난 성격이 직선적이거나 불같이 달아오르기 쉽고 활동적인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화를 내지 않으실 듯한 온유한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면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성경은 또한 모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수기 12:3)
모세가 가장 온유하다고요?
모세는 강력하고 단호한 리더십으로 수 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이끌고 나온 역사상 가장 강한 지도자가 아닌가요? 그 앞길을 가로막던 아모리와 바산의 두 왕들을 인정사정 없이 멸망시키고, 계명을 어긴 자들을 추상같은 명령으로 처벌한 모세가 가장 온유한 자라고 칭함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이란 과연 무슨 뜻일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항상 번역상의 제약 때문에 원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이 본래 기록된 원어인 히브리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온유함은 히브리어 ‘아나브’를 번역한 것이다. ‘아나브’는 온유함, 겸손함, 가난함 또는 약함 등의 뜻으로 번역되었다. 히브리어가 가진 재미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추상적인 명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과 이에 상응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동일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완고한 사람은 ‘목이 뻣뻣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또 하나님께서 불의를 너무나 싫어하시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자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시는 가를 표현하기 위하여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무엘하 22장). 추상적인 개념인 말(단어)을 뜻하는 히브리어 명사는 동시에 물리적인 실체인 사물을 지칭하기 위하여 쓰인다는 사실을 보면 히브리어가 얼마나 구체적인 언어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온유하다고 할 때 그것은 물리적으로 가난함이나 약함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한편 그러한 사람이 갖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기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아나브’는 바로 잘 나갈 때 항상 그럴 것처럼 자만심으로 가슴이 꽉 찬 그런 상태가 아니고, 가난하고 약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애타게 찾듯이 그런 겸손한 마음 상태를 항상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거나 약하신 분이 절대로 아니셨지만,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는 가난한 자와 같은 겸손한 마음을 지키셨던 것이다. 모세가 가장 온유한 것은 가난하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 마치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의지하듯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낮은 자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온유함으로 번역된 ‘아나브’에는 약하고 낮은 뜻 뿐만 아니라 그 어원에서 더 깊은 성경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아나브’의 어원은 ‘아나’라고 하는 동사인데 이는 ‘듣고 응답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가 가장 온유한 자라고 한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모세는 제사장이었던 아론이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유일하게 항상 장막에서 거하며 항상 하나님과 대면한 자였다. 모세만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응답할 수 있는 위치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십 년을 하루 이십사시간 지킨 사람이었다. 모세는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듣고 행할 준비된 마음으로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듣고 응답할 수 있는 마음 자세, 그것이 바로 ‘아나브’, 온유함이다. 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이를 너무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그의 모든 말씀과 행사를 자의로 하지 않으셨고, 항상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내가 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을 온유하게 한 길이었다.
하나님의 성소에 조금이라도 부정한 상태로 사람이 들어가면 죽게 되어있었다. 어떤 부정함도 하나님의 성소에 허용이 될 수 없었다. 레위기 10장을 보면 부정한 불을 가지고 분향하였던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 앞에서 죽음을 당하였던 사건을 알 수 있다 (레위기 10:2).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듣고 응답할 수 있기 위하여 그 자신을 모든 부정함으로부터 지켰던 것이다. 사십 년 간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모든 순간을 온전히 깨끗하게 몸과 마음을 지켰다. 그가 가장 지면에서 온유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기 위하여 항상 자신을 부정함으로부터 지키셨고, 모든 계명을 지키셨다.
온유한 자는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자이며, 모든 계명을 따라 부정함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지키는 자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길 것이며 (시편 37:11), 저희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 즉,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자들은 그 마음이 소생케 될 것이며 (시편 69:32), 여호와께서 그를 기뻐하시어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실 것이다 (시편 149:4). 여호와께서는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시고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실 것이며 (시편 25:9),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그 마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시편 22:2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서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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