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소월의 생애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성도(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1902년 8월 6일 평안북도 구성(龜城)에서 출생하였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사립인 남산학교 (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 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문학을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고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1920년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등을 《창조(創造)》지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먼 후일(後日)》 《죽으면》 《허트러진 모래 동으로》 등을 《학생계(學生界)》 제1호(1920.7)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배재고보에 편입한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바람의 봄》 《봄밤》 등을 《개벽(開闢)》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1922년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그 후에도 계속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에는 《영대(靈臺)》지 3호에 인간과 자연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동양적인 사상이 깃들인 영원한 명시 《산유화(山有花)》를 비롯하여 《밭고랑》 《생(生)과 사(死)》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다.
불과 5, 6년 남짓한 짧은 문단생활 동안 그는 154 편의 시와 시론(詩論) 《시혼(詩魂)》을 남겼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 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실의의 나날을 술로 달래는 생활을 하였다.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아편을 먹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 당시 남겨진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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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리---김소월
오오! 내님이여!
당신이 내개 주시려고 간곳마다
이 자리를 깔아 놓아두시지 않으셨어요.
그렇겠지요, 확실히 그러신 줄을 알겠어요.
간 곳마다 저는 당신이 펴놓아주신 이 자리 속에서
항상 살게 되므로 당신이 미리 그러신 줄을 제가 알았어요.
오오 내님이여!
당신이 깔아 놓아주신 이 자리는
맑은 못 밑과 같이 고조곤도 하고 아늑도 했어요.
홈싹홈싹 숨치우는 보드라운 모래바닥과 같은 긴 길이
항상 외롭고 힘없는 저의 발길을 그리운 당신 한태로
인도하여 주겠지요.
그러나 내 님이여!
밤은 어둡고 찬바람도 불겠지요.
닭이 울었어도 여태도록 빛나는 새벽은 오지 않겠지요.
오오 제 몸에 힘 되시는 내 그리운 님이여!
외롭고 힘없는 저를 부둥켜안으시고 영원히 당신의 믿음
성스러운 그 품속으로 저를 잠들게 하여 주셔요.
당신이 깔아 놓아주신 이 자리는 외롭고 쓸쓸합니다마는
제가 이 자리 속에서 잠자고 놀고 당신만을 생각할 그때는
아무러한 두려움도 없고 괴로움도 잊어버리고 마는데요.
그러면 님이여!
저는 이 자리에서 종신토록 살겠어요.
오오 내 님이여!
당신은 하루라도 저를 이 세상에 더 묵게 하시려고
이 자리를 간곳마다 깔아 놓아두셨어요.
집 없고 고단한 제 몸의 종적을 불쌍히 생각하셔서 검소한
이 자리를 간곳마다 제소유로 장만하여주셨어요.
그리고 또 당신은 제 엷은 목숨의 줄을 온전히 붙잡아주시고
외로이 일생을 제가 위험 없는 이 자리 속에 살게 하여 주셨어요.
오오 그러면 내님이여!
끝끝내 저를 이 자리 속에 두어주셔요.
당신이 손수 당신의 그 힘 되고 믿음 성부른 품속에서
고요히 저를 잠들려주시고 저를 또 이 자리 속에
당신이 손수 묻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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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樂 - 김소월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부리만 보지 말고서
때로는 고개 들어 사방산천의
시원한 세상풍경 바라다보시오
먹이의 달고 씀은 입에 달렸고
영욕의 苦와 樂도 맘에 달렸소
보시오 해가져도 달이 뜬다오
그믐밤 날 궂거든 쉬어 가시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숨차다 고갯길을 탄치 말고서
때로는 맘을 눅여 탄탄대로에
이제도 있을 것을 생각하시오
편안히 괴로움의 씨도 되고요
쓰림은 즐거움의 씨가 됩니다.
보시오 火田망정 갈고 심으면
가을에 황금이삭 수북 달리오
칼날 우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물속에 몸을 던진 몹쓸 계집애
어쩌면 그럴 듯도 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줄은 왜 몰랐던고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자기가 칼날 우에 춤을 춘 게지
그 누가 미친 춤을 추라고 했나
얼마나 비꼬이운 계집애던가
야말로 제 고생을 제가 사서는
잡을 데 다시없어 엄나무지요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길가의 청 풀밭에 쉬어가시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부리만 보지 말고서
때로는 춘하추동 사방산천에
뒤 바뀌는 세상도 바라보시오
무겁다 이짐일랑 벗을 겐가요
괴롭다 이길 일랑 아니 걷겠나.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보시오 시내위에 물 한 방울을
한 방울 물이라도 모여 흐르면
흘러가서 바다의 물결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 됩니다.
다시금 땅에 내려와 비가 됩니다.
비 되어 나린 물이 모둥켜 지면
산간엔 폭포 되어 수력 전지요
들에선 관계되어 萬鍾石이요.
메말라 타는 땅엔 기름입니다.
어여쁜 꽃 한 가지 어울어갈 제
밤에 찬이슬 되어 축여도 주고
외로운 어느 길손 창자주릴 제
길가에 찬 샘되어 눅궈도 주오
시내의 여지없는 물 한 방울도
흐르는 그 만 뜻이 이러하거든
어느 인생 하나이 저만 저라고
기구하다 이 길을 타발켰나요
이짐이 무거움에 뜻이 있고요
이짐이 괴로움에 뜻이 있다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다운 사람이라오.
--------------- 외로운 눈물 그대가자 마음속에 생긴 이 무덤 봄은 와도 꽃 하나 안 피는 무덤 그대간지 십년에 뭐라 못 잊고 제철마다 이다지 생각 새론고. 때 지나면 모두 다 잊는다 하나 어재런 듯 못 잊을 서러운 그 옛날 안타까운 이 심사 둘 곳이 없어 가슴 치며 눈물로 봄을 맞노라 ------------------------- 마음에 눈물 내 마음에 눈물이 난다 뒷산에 푸르른 미루나무 잎들이 알지 내 마음에, 마음에서 눈물 나는 줄을 나 보고 싶은 사람, 나 한 번 보게 하여 주소 우리 작은놈 날 보고 싶어 하지 건넛집 갓난아이도 날 보고 싶을 태지 나도 보고 싶다. 너희 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을 나도 하고 싶은 노릇 나 하게 하여 주소 못 잊혀 그리운 너의 품속이여! 못잊히고, 못잊혀 그립 길래, 내가 그리워하는 조선이여. 마음에서 오늘날 눈물이 난다. 앞뒤 한길 포플라 잎들이 안다. 마음속에 마음의 비가 오는 줄을 갓난이야 갓놈아 나 바라보라 아직도 한 길가에 인기척 있나. 무엇 이고 어머니 오시나 보다 부뚜막 쥐도 이젠 달아난다. ---------------------- 가시나무 산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뻗어 올랐소. 산에는 가려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 가선 혼잣몸이 홑옷자락은 하룻밤에 두 세 번은 젖기도 했소 들에도 가시나무 가시덤불은 덤불덤불 들 끝으로 뻗어나갔소. ---------------- 고향 1.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 하던 것 잠들면 어느 듯 고향입니다. 조상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2 봄이면 곳곳에 산새 소리 진달래 화초 만발 하고 가을이면 골짜구니 물드는 단풍 흐르는 셈물 위에 떠내린다. 바라보면 하늘과 바닷물과 차차차 마주 붙어 가는 곳에 고기잡이배 돛 그림자 어기여차 디여차 소리 들리는 듯 3. 떠도는 몸이거든 고향이 탓이 되어 부모님기억 동생들 생각 꿈에라도 항상 그곳에 뵈옵니다. 고향이 마음속에 있습니까? 마음속에 고향도 있습니다. 제 넋이 고향에 있습니까? 고향에도 제 넋이 있습니다. 마음에 있으니까 꿈에 뵈지요 꿈에 보는 고향이 그립습니다. 그곳에 넋이 있어 꿈에 가지요 꿈에 가는 고향이 그립습니다. 4. 물결에 떠내려간 부평줄기 자리 잡을 새도 없네. 제자리로 돌아갈 날 있으랴마는 괴로운 바다 이 세상에 사람인지라 돌아가리. 고향을 잊었노라 하는 사람들 나를 버린 고향이라 하는 사람들 죽어서만 천애일방 헤매지 말고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으로 네 가거라. ---------------------- 孤獨 설움에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에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시만 늘 저무누나. 매일 붓는 벌불에 터도 나타나 설움에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 줄을 모른 다더라 이즘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져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나 들려나다오 -------------- 삼수갑산(三水甲山)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맑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가자 내 고향을 내 못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가네, 내 못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 가고지고 아하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 난다 아하하. -------------------- 팔베개 노래 첫날의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가장님만 님이랴, 정들면 님 이지 한 평생 고락을 다짐 둔 팔베개 첫닭이 꼬뀌요 목 놓지 마라라. 내 품에 안긴 님 단꿈이 깰리라.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상사의 거문고 베게라 조선의 강산아 네 그리 좁더냐 삼천리 西도를 끝까지 왔노라 집 뒷산 솔 버섯 다투던 동무야 어느 뉘 가문에 시집을 갔느냐 공중에 뜬 새도 의지가 있건만 이 몸은 팔베개 뜬풀로 돌지요. -------------------------- 대수풀 노래 ※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연상하며 노래 가락으로 읊어 보세요. 1 왕금성 꿈에 잔디 돋고 모란봉 아래 물 맑았소. 서도 사람의 제 노래에 북관 각시 우지마소 2 곱지 서발을 해 올라와 봄철 안개는 스러져가 강위에 둥실 뜬 저배는 서도 손님을 모신 배라 3 저 분네 잠깐 내말듣소 이 글자 한 장 전해주소 나사는 집 평양성 중 배다리 골로 찾아보소. 4 장산고지는 열두 고지 못 다닌다는 말도 있지 아하 산 설고 물 설은 데 나 누굴 찾아 여길 왔니 5 산에는 총총 복숭아꽃 산에는 총총 오야지 꽃 구름장 안에 연기가 뜬다, 연기 뜬 데가 나사는 곳 6 가락지 쟁강하거든요 은봉채 쟁강하거든요. 대동강 십리 나룻 길에 물 길러 온줄 자네 아소 7 반달여울의 옅은 물에 어겻차 소리 연잣을 때 금실비단의 돛단배는 백일청천에 어리었네. 8 강물은 맑고 평탄한데 강으로 오는 님의 노래 동에는 해나고 서에는 비, 비 오다 맑고 해가 나네 9 십리장림은 곳곳이 풀 근처 맷집은 집집이 술 오다가다 들려주소. 앉아 보아도 좋은 그늘 10 기자는 솔의 上上가지 뻐꾸기 안자우는 소리 영명사 절에 묵던 손도 밤에 깨어 나무아미 11 보통문루 송객정의 버들가지는 또 자랐디 아하 산 설고 물 설은데 나 누굴 찾아 여기 왔니. --------------------------- 고만두 풀 노래를 가져 월탄(月灘)에게 드립니다. 1. 즌퍼리의 물가에 우거진 고만두 고만두 풀 꺾으며 「고만두라」합니다. 두 손길 맞잡고 우두커니 앉았소 잔지르는 수심가 「고만두라」합니다. 슬그머니 일면서 「고만갑소」하여도 앉은 대로 앉아서 「고만두고 맙시다」고 고만두 풀숲에 풀 버러지 날을 때 둘이 잡고 번갈아 「고만두고 맙시다」 2 「어찌하노 하다니」중얼이는 혼잣말 나도 몰라 왔어라 입버릇이 된 줄을 쉬일 때나 있으랴 생시엔들 꿈엔들 어찌하노 하다니 뒤채이는 생각을 하지마는 「우짜노」중얼이는 혼잣말 바라나니 인간에 봄이 오는 어느날. 돋히어나 주고저 마른나무 새 엄을 두들겨나 주고저 소리 잊은 내 북을 ------------ 상쾌한 아침 무연한 벌 위에 들어다 놓은 뜻한 이 짐 또는 밤새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지 못할 이 비 親開地 에도 봄은 와서 가냘픈 빗줄은 뚝 가에 어슴푸레한 개 버들 어린 엄도 축이고 난 벌에 파릇한 뉘 집 파밭에도 뿌린다. 뒷 가시나무 밭에 깃들인 까치 때 좋아 지껄이고 개울가에서 오리와 닭이 마주앉아 깃을 다듬는다. 무연한 이 벌 심어서 자라는 꽃도 없고 메꽃도 없고 이 비에 장차 이름 모를 들꽃이나 필는지? 장쾌한 바다물결, 또는 구렁의 미묘한 기복도 없이 다만 되는 대로 되고 있는 대로 있는 무연한 벌! 그러나 나는 내 버리지 않는다. 이 땅이 지금 쓸쓸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금, 시원한 빗발이 얼굴에 칠 때 예서뿐 있을 앞날의 많은 변전의 후에 이 땅이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워질 것을 ! 아름다워질 것을 ! ----------------- 機會 강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나는 왜 건너가지 못 했던가요. 「때」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다리를 무너치고 흐릅니다려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 갔던가!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저편에서 때때로 울며 바랄 뿐 입니다려. --------------------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하염없기도 그지없다 연주홍물 엎지른 하늘 위에 바람의 흰 비둘기 나돌며 나뭇가지는 운다.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조마조마 하기도 끝없다. 저의 맘을 제가 스스로 늦구는 이는 복 있나니 아서라, 피곤한 손길은 자리 잡고 쉴 지어다
까마귀 좇닌다. 종소리 비낀다 송아지 엄마하고 부른다 개는 하늘 쳐다보고 짖는다.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처량하기도 짝이 없다 마을 앞 개천가에 체지 큰 느티나무 아래를 그늘진 데라 찾아가서 숨어 울다 울거나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귀엽기도 더 하다 그렇거든 자네도 이리 좀 오시게 검은 가사로 몸을 싸고 염불이나 외우지 않으랴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유난히 다정도 할세라 고요히 서서 물모루 모루모루 치마폭 번쩍 펼쳐들고 반겨오는 저 달을 보시오. ----------------------- 바닷가의 밤 한줌만 가느다란 좋은 허리는 품안에 차츰차츰 졸아 들 때는 지새는 겨울 새벽 춥게 든 잠이 어렴풋 깨일 때가다 둘도 다같이 사랑의 말로 못할 깊은 불안에 또 한끝 호주군한 옅은 몽상에 ]바람은 쌔우친다 때에 바닷가 무서운 물소리는 잦 일어온다. 켱킨 여덟 팔다리 걷어 채우며 산뜩히 서려오는 머리칼이여
사랑은 달콤하지 쓰고도 맵지 햇가는 쓸쓸하고 밤은 어둡지 한밤에 만난 우리 다 마찬가지 너는 꿈의 어머니 나는 아버지 일시일시 만났다 나뉘어가는 곳 없는 몸 되기도 서로 같거든 아아아 허수롭다 살음은 말로 아 이봐 그만 일자 창이 희었다. 슬픈 날은 도적같이 달려들었다. -------------------------------- 돈과 밥과 맘과들 1 얼굴이면 거울에 비추어도 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비추어도 보지만 어쩌랴 그대여 우리들의 뜻 갈은 백을 산들 한번을 비출 곳이 있으랴. 2. 밥 먹다 죽었으면 그만일 것을 가지고 잠자다 죽었으면 그만일 것을 가지고 서로가락 그렇지 어쩌면 우리는 쯕하면 제 몸만을 내세우려 하더냐. 호미잡고 들에 나려서 곡식이나 기르자 3. 순진한 사람은 죽어 하늘나라에 가고 모질던 사람은 죽어 지옥 간다고 하여라. 우리네 사람들아 그뿐 알아둘진댄 아우른 괴로움도 다시없이 살 것을 머리 수그리고 앉았던 그대는 다시 돈하며 건넌 산을 건너다보게 되누나. 4 등잔불 그무러지고 닭소리는 잦은데 여태 자지 않고 있더냐 다심도하지 그대 요밤 새면 내일 날이 또 있지 않우 5. 사람아 나더러 말썽을 마소 거슬러 예는 물을 거스른다고 말하는 사람부터 어리석겠소. 가노라 가노라 나는 가노라 내 성품 끄는 대로 나는 가노라 열 두길 물이라도 나는 가노라 달래어 아니 듣는 어린적 맘이 일러서 아니 듣는 오늘날 맘의 장본이 되는 줄을 몰랐더니 6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오 소라도 움마하고 울지 않소 기면 기라고도 말을 하오 저울추는 한곳에 놓인다오 기라고 한데서 기뻐 뛰고 아니라고 한 대서 눈물 흘리고 단념하고 돌아설 내가 아니오. 7. 금전 반짝, 은전 반짝, 금전과 은전이 반짝반짝 여보오 서방님 그런 말 마오. 넘어가요 넘어를 가요 두 손길마주잡고 넘어나가세 여보오 서방님 저기를 보오 엊저녁에 넘던 산마루에 꽃이 꽃이 피었구려. 그러나 세상은 내집 길도 한길이 아니고 열 갈래라 여보오 서방님 이 세상에 났다가 금전은 내 못 써도 당신위해 천 냥은 쓰오리다. ------------- 옷과 밥과 자유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내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 지나 적유령 넘어 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 어려 듣고 자라 배워 내가 안 것은
이것이 어려운 줄을 내가 알면서도 나는 아득 이었노라. 지금 내 몸이 돌아서 한걸음만 내어놓으면! 그 뒤엔 모든 것이 꿈 되고 말련마는 그도 보면 엎드러진 물은 흘러버리고 산에서 시작한 바람은 벌에 불더라. 타다 남은 촉(燭)불의 지는 불꽃은 오히려 뜨거운 입김으로 불어가면서 비추어 볼일이야 있으랴, 오오 있으랴 차마 그대의 두려움에 떨리는 가슴속을, 때에 자라잡고 있는 낯모를 그 한사람이 나더러 「그만하고 갑시사」하며 말을 하더라. 붉게 익은 댕추 씨도 가득한 그대의 눈은 나를 가르쳐 주었으라, 열 스무 번 가르쳐 주었어라. 어려 듣고 자라 배워 내가 안 것은 무엇이랴 오오 그 무엇이랴? 모든 일은 할대로 하여 보아도 얼마만한 데서 말 것이더라. --------------------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 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 나립니다. 잊혀 지지도 않은 그 사람은 아주 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 맘이 떠나지 못할 운에 떠난 것도 같아서 생각하면 눈물이 수르르 흘러 나립니다. ------------------------- 가는 봄 三月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강남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요, 슬게 이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종일 부는데 슬프게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 길손 얼굴 힐끔한 길손이여 지금 막, 지는 해도 그림자조차 그대의 무거운 발 아래로 여지도 없이 스러지고 마는데 둘러보는 그대의 눈길을 막는 쀼죽쀼죽한 멧봉우리 기어오르는 구름 끝에도 비낀 놀은 붉어라 앞이 밝게 천천히 밤은 외로이 근심스럽게 지쳐 나리 나니, 물소리 처량한 냇 물가에, 잠깐 그대의 발길을 멈추라 길손이여 별빛에 푸르도록 푸른 밤이 고요하고 맑은 바람은 땅을 씻어라 그대의 씨달픈 마음을 가다듬을 지어다. -------------------------- 그리워 봄이 다 가기 전, 이 꽃이 다 흩기 전 그린 님 오실까구 뜨는 해 지기 전에 엷게 흰 안개 새에 바람은 무겁거니, 밤샌 달 지는 양자, 어제와 그리 같이 붙일 길 없는 맘세, 그린 님 언제 뵐련, 우는 새 다음 소린 늘 함께 듣사오면. ------------------ 浪人의 봄 휘둘리 산을 넘고 굽이 진물을 건너 푸른 풀 붉은 꽃에 길 걷기 시름이어 잎 누런 시닥나무 철 이른 푸른 버들 해 벌써 석양인데 불슷는 바람이여 골짜기 이는 연기 메 틈에 잠기는데 산마루 도는 손의 슬지는 그림자여 산길가 외론 주막 어이그, 쓸쓸한데 먼저 든 짐장사의 곤한 말 한 소리여 지는 해 그림자니 오늘은 어디까지 어둔 뒤 아무데나 가다가 묵을 네라 풀숲에 물김 뜨고 달빛에 새 놀래는 고운 봄 야반에도 내 사람 생각이여 ------------------------- 夜의 雨滴 어데로 돌아가랴, 나의 신세는 내 신세 가엽이도 물과 같아라. 험구진 산막지면 돌아서 가고 모 지른 바위이면 넘쳐흐르랴 그러나 그러해도 해날 길 없어 가엾은 설움만은 가슴 눌러라. 그 아마 그도 같이 야의 우적, 그 같이 지향 없이 헤매임이라. --------------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 동으로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 동으로 말없이 걸어가면 놀래는 청령(蜻蛉) 들꽃 풀 보드라운 향기 맡으면 어린 적 놀던 동무 새 그리운 맘 길다 란 쑥대 끝은 삼각에 메워 거미줄 감아 들고 청령을 쫓던 늘 함께 이 동 위에 이 풀숲에서 놀던 그 동무들은 어디로 갔노! 어린 적 네 놀이터 이 동마루는 지금 내 흩어진 벗 생각이 나라 먼 바다바라 보면 우둑히 서서 나 지금 청령 따라 왜 가지 않노. ---------------- 맘속의 사람 잊힐 듯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 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인제도 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없이 살뜰할 그 내 사람은 한두 번 아니게 본 듯하여서 나 자 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요.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진작 낯모를 내 그 사람은 다시없이 알뜰한 그 내 사람은 나를 못 잊어하여 못 잊어하여 애타는 그 사랑이 눈물이 되어 한끝 만나리 하는 내 몸을 가져 몹쓸음을 둔 사람. 그 나의 사람. -------------- 공원의 밤 해양가에 우는 전등은 깊은 밤의 못물에 어릿하기도 하며 어득하기도 하여라. 어둡게 또는 소리 없이 가늘게 줄줄의 버드나무에서는 비가 쌓일 때 푸른 그늘은 낮은 듯이 보이는 긴 잎 아래로 마주앉아 고요히 내려깔리던 그 보드라운 눈길 인제 검은 내는 떠돌아 올라 비구름이 되어라 아아 나는 우노라 「그 옛적의 내 사람!」 ------------ 孤寂한 날 당신님의 편지를 받은 그날로 서러운 풍설이 돌았습니다. 물에 던져 달라고 하신 그 뜻은 언제나 꿈꾸며 생각하라는 그 말씀인 줄로 압니다. 흘러 쓰신 글씨마다 언문글자로 눈물이라고 적어 보내셨지요. 물에 던져 달라고 하신 그 뜻은 뜨거운 눈물방울을 흘리며 맘 곱게 읽어 달라는 말씀이지요. -------------- 將別里 연분홍 저고리 빨간불 붙은 평양에도 이름 높은 장별리 금실 은실 가는 비는 비스듬히도 내리네, 뿌리네. 털털한 배암무늬 돋은 양산에 내리는 가는 비는 위에서 아래나 내리네, 뿌리네. 흐르는 대동강 한복판에 울며 돌던 벌새의 떼 무리 당신과 이별하던 한복판에 비는 쉴 틈 없이 내리네, 뿌리네. --------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강촌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흰 물은 솰솰... 금모래 반짝.. 청노새 몰고 가는 낭군 여기는 강촌 강촌에 내 몸은 홀로 사내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이 다 진(盡)토록 백년처권(百年妻眷)을 울고 가네 길세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홀로된 몸 -------------------------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가고오지 못 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지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 희망 날은 저물고 눈이 내려라 낯 설은 물가로 내가 왔을 때 산속에 올빼미 울고 울며 떨어진 잎들은 눈 아래로 깔려라 아아! 숙살 스러운 풍경이여 지혜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 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한갓 아름다운 눈어림의 그림자 뿐인 줄을 이울어 향기 깊은 가을밤에 우무주러진 나무 그림자 바람과 비가 우는 낙엽위에 --------------------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아주 나는 바랄 것이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 띄워서 보낼밖에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좀 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 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면 예전에 지내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을진댄! 물가에 닳아져 널린 굴 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둑어둑 저문 날은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기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방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 ------------ 꿈길 물 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저녁에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거츠는 꿈 ---------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루라도 몇 번씩 내 생각은 내가 무엇 하려고 살려는지? 모르고 살았노라. 그럴 말로 그러나 흐르는 저 냇물이 흘러가서 바다로 든댈진댄. 일로 쫓아 그러면 이내 몸은 애쓴다고는 말부터 잊으리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그러나 다시 내 몸 봄빛에 불붙는 사태흙에 집 짖는 저 개아미 나도 살려 하노라 그와 같이 사는 날 그날까지 ‘살음에 즐거워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뜻이면 오오 그러면 내 몸에는 다시는 애쓸 일도 더 없어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부귀공명 거울 들어 마주 온 내 얼굴을 좀 더 미리부터 알았던들 늙는 날 죽는 날을 사람은 다 모르고 사는 탓에 오오 오직 이것이 참이라면 그러나 내 세상이 어디인지? 지금부터 두여들 좋은 년광(年光) 다시 와서 내개도 있을 말로 전보다 좀 더 전보다 좀 더 살음 즉이 살는지 모르련만 거울 들어 마주 온 내 얼굴을 좀 더 미리부터 알랐던들! ----------- 무신(無信) 그대가 돌이켜 물을 줄도 내가 아노라 무엇이 무신함이 있더냐? 하고 그러나 무엇 하랴 오늘은 야속히도 당장에 우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을 물과 같이 흘러가서 없어진 맘이라고 하면 검은 구름은 멧기슭에서 어정거리며 애처롭게도 우는 산의 사슴이 내 품에 속속들이 붙안기는 듯 그러나 밀물도 쎄이고 밤은 어두워 닻주었던 자리는 알 길이 없어라 시정에 흥정일은 외상으로 주고 받기도하건마는. ------------------ 집 생각 산에나 올라서서 바다를 보라 사면 백 여리 창파 중에 객선만 중중 떠나간다. 명산대찰이 그 어느 메냐 香案, 香榻(향탑) 대그릇에 석양이 산 머리 넘어가고 사면에 백 여리 물소리라 젊어서 꽃 같은 오늘날도 금의로 환고향 하옵소서. 객선만 중중 떠나간다. 사면에 백 여리 나 어찌 갈까? 까투리도 산속에 새끼치고 타관만리에 와 있노라고 산중만 바라보며 목메 인다 눈물이 앞을 가리 운다. 들에서 내려오면 치어다보아라. 햇님과 달님이 넘나든 고개 구름만 첩첩 떠돌아간다. ---------------- 춘향과 이도령 평양에 대동강은 우리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 가다가다 한 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과 이도령도 살았다지요.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는 담양 꿈에는 가끔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 찾아 가기도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 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 산유화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에 진두강 가람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자는 밤이 되면 이산저산 옮아가며 슬피 우옵니다. ------------------ 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에 영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 팔 십리 돌아서서 육 십리는 가기도 했소. 不歸,不歸 다시不歸 삼각산에 다시 不歸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 오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널 성촌의 아가씨는 널 뛰노나 초파일날이라고 널을 뛰지요. 바람 불어요 바람이 분다고 담 안에는 수양버들 채색 줄 층층 그네 메지를 말아요. 담밖에는 수양의 늘어진 가지 늘어진 가지는 오오 누나! 휘젓이 늘어져서 그늘이 깊소 좋다 봄은 몸에 겹지 널뛰는 성촌의 아가씨네 들 널은 사랑의 버릇이라오. ------------------ 朔州龜城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구성은 산을 넘은 육 천리요 물 맞아 함 빡히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 천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물이 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 길래 곳이 그리워 못보앗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뜰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 천리. ------------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 깁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 려. ----------------- 왕십리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막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에 비가 오네. 웬 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에 가서 울어나 다오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 졌다네. 비가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길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서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못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가고 배가는 곳이 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 여수(旅愁) 1 유월 어스름때의 빗줄기는 암황색의 시골(屍骨)을 묶어 세운듯 뜨며 흐르며 잠기는 손의 널 쪽은 지향도 없어라. 단청(丹靑)의 홍문(紅門)! 2.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 다 보자니 눈물겨워라! 조그마한 보드라운 그 옛적 심정의 분결같은 그대의 손 사시나무 보다도 더한 아픔이 내몸을 에워싸고 휘떨며 찔러라 나서 자란 고향의 해돋는 바다요 ------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 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 합니다. 가도 아주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부서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렀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러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무덤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불그스름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노래 서러워 엉겨라 옛 조상들의 기록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 없는 노래 흘러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구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 찬 저녁 푸르스릿한 달은, 성황당의 군데군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뚝이 걸려있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엉기한 무덤은 들먹 그리며, 눈 녹아 황토 드러난 멧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 나와, 집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여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도 더 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여, 모닥불 피어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 저녁때 마소무리와 사람들은 돌아들고 적적히 빈들에 엉머구리 소리 우거져라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추 먼 산 비탈길 어둔데 우뚝우뚝 더 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여라. 볼수록 넓은 벌의 물빛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고개 수그리고 박은 듯이 홀로서서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온 것을 아주 잊었어랴, 깊은 밤 예서함께 몸이 생각이 가볍고 맘이 더 높이 떠오를 때 문덕 멀지않은 갈 숲새로 별빛이 솟구어라. ------- 열락(悅樂) 어둡게 깊게 목 메인 하늘 꿈의 품속으로 굴러 나오는 애닯이 잠 안 오는 유령의 눈길 그림자 검은 개 버드나무에 쏟아져 내리는 비의 줄기는 흐느껴 비끼는 주문의 소리 시커먼 머리채 풀어 헤치고 아우성하면서 가시는 따님 헐벗은 벌레들은 꿈틀릴 때 흑 혈의 바다 고목동굴 탁목조(啄木鳥)의 쪼아리는 소리, 쪼아리는 소리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야 내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이 아득함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걸음 또 한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동무들 저저 혼자.......산경을 김 메이는. ---- 밭고랑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필하고 쉬이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은 내리쪼이며 새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여 살아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였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었어,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 새로운 환희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위에서 다시 한 번 활기 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지런히, 가지런히 걸어 나가는 기쁨이여, 오오 생명의 향상이여. ---------- 물마름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하여 놀 지는 골짜기에 목이 메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득이는 외로운 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 곳이 어디더냐 남이장군이 말 먹여 물 끼얹던 푸른 강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둑을 넘치는 천 백리 두만강이 예서 백 십리 무산에 큰 고기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예서부터 의를 위하여 싸우다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에 차마 받지 다 못할 한과 모욕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의 다함에도 스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 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다독된 삼천리에 북을 울리며 정의의 기를 들던 그 사람이여. 그 누가 기억하랴 다북 동에서 피 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끊긴 그 가슴이 숫기 된 줄을 물위에 뜬마음에 아침 이슬을 불붙는 산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薄한 이름을. ------ 바리운 몸 꿈에 울고 일어나 들에 나와라. 들에는 소슬비 머구리는 울어라 풀 그늘 어두운데 뒷짐 지고 땅 보며 머뭇거릴 때. 누가 반딧불 꾀어드는 수풀 속에서 간다, 잘살아라! 하며 노래 불러라. ------------ 여름의 달밤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밤이여 그지없이 그룩한 하늘로서는 젊음의 북은 이슬 젖어 내려라. 행복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 받았어라 뻗어뻗어 오르는 가시덩굴도 희미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에 멱을 감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 들어라 우긋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銀 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자추는 향기를 두고 가는데 인가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 종일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들도 편안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둑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의 우는 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밭 가운데의 우물가에서 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의 넘는 곡조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에 목 맺히는 우리 청춘은 서느러운 여름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에서 지내는 여름밤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에 이세상이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 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 기울이며 흰달의 금물결에 노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하여라. 좋은 한 때를 흘러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을 여름의 어스레한 달밤 속에서 꿈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 나의 집 들 가에 떨어져 나가앉은 멧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 길을 앞에 다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작기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얀 여울 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세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늘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은 눈여겨보며 그대 인가고 그대 인가고 -------- 새벽 낙엽이 발이 숨는 못 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프러이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녘하늘은 어두운가 천인에도 사랑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질러 와라 하늘 밝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에 지 새일 때 -------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저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 --------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어며 세상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이 꾸밈은 닳아진 이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할까보냐 두세 번 생각하라, 우선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 일진덴. 사는 법이 근심은 못 가른다고 남의 설움 남은 몰라라. 말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에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 그를 네길 거리에 새워놓아라, 장승도 마치 한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 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각기 제비위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기자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섧거나 괴롭거나 ------------------ 황촉(黃燭)불 황촉 불 그저도 까맣게 스러져 가는 푸른 창을 기대고 소리조차 없는 흰 밤에 나는 혼자 거울에 얼굴을 묻고 뜻 없이 생각 없이 들여다보노라 나는 이르노라 우리 사람들 첫날밤은 꿈속으로 보내고 죽음은 조는 동안에 와서 별 좋은 일도 없이 스러지고 말아라. ------ 어인(漁人) 헛된 줄 모르고나 살면 좋아도 오늘도 저 너머 엣편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척이 길 떠났다고 작년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 생(生)과 사(死)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 그럴 듯한 일을 하필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마루에 올라서서 우노라. --------- 남의 나라 땅 돌아다 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뛰어 건너서서 숨 그르고 발 놓는 남의 나라 땅. ----------- 천리만리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볼까 한줄기 쏜살같이 뻗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불붙는 산의, 불붙는 산의 연기는 한 두 줄기 피어올라라. ------- 낙천(樂天)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 눈 새하얀 희 눈 가비얍게 밟은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 옛날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오고 그리움의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아라, 이후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 꿈 꿈? 영의 해적임, 설움의 고향. 울자, 내 사랑, 꽃 지고 저무는 봄. --------- 가을 아침에 아득한 퍼스레한 하늘 아래서 회색의 지붕들은 번쩍 거리며 성깃한 섶나무의 드문 수풀은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 말락 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 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 붙누나 눈물에 샇여 오는 모든 기억은 피흘린 상처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비얍던 날 그리운그 한때는 언제 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 보담도 구름은 붉구나, 해 보담도 서럽다 높아가는 긴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 서울 밤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널따란 그리면 푸른 전등 막다른 골목이면 붉은 전등 전등은 반짝입니다. 전등은 그물입니다. 전등은 또다시 어스렷합니다. 전등은 죽은 듯이 긴 밤을 지킵니다. 나의 가슴의 속모를 곳의 어둡고 밝은 그 속에서도 붉은 전등이 흐득여 웁니다. 푸른 전등이 흐득여 웁니다.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머나먼 밤하늘은 새카맙니다. 머나먼 밤하늘은 새카맙니다. 서울거리가 좋다고 해요 서울 밤이 좋다고 해요.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나의 가슴의 속모를 곳의 푸른 전등은 고적합니다. 붉은 전등은 고적합니다. --------- 그를 꿈꾼 밤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들리는 듯 마는 듯 발자국 소리 스러져가는 발자국 소리 아무리 혼자 누워 몸을 뒤쳐도 잃어버린 잠은 다시 안와라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 여자의 냄새 푸른 구름에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에 옷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 냄새 때 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 어즈리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靈 어우러져 빗기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 지나간 숲속의 냄새 유령 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두덩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 비단안개 눈들이 비단안개 둘리 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요. 그리워 미친 날들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때 그때는 홀 목숨은 못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마 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 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 서랴 아직 못할 무엇에 취할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 울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 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요.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때러라. ----- 기억 달 아래 싀멋없이 섰던 그 여자 서있던 그 여자의 해쓱한 얼굴 해쓱한 그 얼굴 적이 파릇함 다시금 실벗듯한 가지 아래서 시커먼 머리 길은 번쩍거리며 다시금 하룻밤의 식는 강물을 평양의 긴단장은 슻고 가던 때 오오 그 싀멋없이 섰던 여자여! 그립다. 그 한 밤을 내게 가깝던 그대여 꿈이 깊던 그 한동안을 슬픔에 귀여움에 다시 사랑의 눈물에 우리 몸이 맡기었던 때 다시금 고즈녁한 성 밖 골목의 시월의 늦어가는 뜬눈의 밤을 한 두 개의 등불 빛은 울어 새던 때 오오 그 싀멋없이 섰던 여자여! ------------ 잊었던 맘 집을 떠나 먼 저곳에 외로이도 다니던 내 심사를! 바람 불어 봄꽃이 필 때에는 어찌타 그대는 또 왔는가? 저도 잊고 나니 저 모르던 그대 어찌하여 옛날의 꿈조차 함께 오는가? 쓸데도 없이 서럽게만 오가는 맘. ----------- 봄비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닯이 고운 비는 그어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 실제(失題) 이 가람과 저 가람이 모두 쳐 흘러 그 무엇을 뜻 하는고?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죽은 듯이 어두운 깊은 골의 꺼림칙한 괴로운 몹쓸 꿈의 퍼르죽죽한 불길은 흐르지만 더듬기에 지치운 두 손길은 불어가는 바람에 식히셔요. 밝고 호젖한 보름달이 새벽의 흔들리는 풀 노래로 수줍음에 추움에 숨을 듯이 떨고 있는 물밑은 여기외다.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저산과 이 산이 마주서서 그 무엇을 뜻 하는고? ------------------ 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 만리성(萬里城)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룻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 담배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 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위에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으라 어물어물 눈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불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을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자. ---------- 꿈 닭 개 짐승 조차도 꿈이 있다고 이르는 말이야 있지 않은가 그허하다 봄날은 꿈 꿀때 내 몸이야 꿈이나 있으랴 아아 내세상의 끝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 ---------- 제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섧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 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을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 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찌면 생각이 떠지나요.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나이차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있던 한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속의 꿈속으로 와라 볼그레한 얼굴에 가늣한 손까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도 전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젖이 나의 팔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의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 눈 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 노, 같은 저녁 금년은 꿈이라도 꾸 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 때 흰 눈은 퍼부어라. ------------------- 봄밤 실 버드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릿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라 아무른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 꿈꾼 그 옛날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 나의 배개는 눈물로 함빡히 젖었어라 그만 그 여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틈을 엿보아라. -----------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있어요. 긴날을 문밖에서 서서들어도 그리운 우리님의 고운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라.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누워도 내 잠은 포소근히 깊이들어요. 그러나 자도 깨면 님의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어면 듣는대로 님의노래는 하나도 님김없이 잊고말아요. --------- 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낮모를 딴 세상의 네 길거리에 애닯이 날 저무는 갓 므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 풀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님은 어디 계신고, 가엽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에나 맘해보아요. ----------- 옛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이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설움 모르고 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랐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어 두었던 옛 이야기 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 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줍니다. ----------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