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의 산실-광주문인협회에 바란다-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서연정(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KOSIS(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인구는 2023년 1월 현재 1,429,816명이다. 광주문인협회의 회원이 현재 1천여 명에 육박하니 0.07%에 가까운 인구가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한 수치 계산으로 광주 시민의 문학 사랑을 계량컵에 담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올해 새로운 수장이 집행부를 구성한 광주문인협회가 K콘텐츠의 세계화 물결에 발맞추어 광주문인협회를 ‘K문학의 산실’이라 표방하고 나선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로 보인다.
‘K문학’이라는 청탁 원고의 제목을 보니 시조가 응당 K문학, 즉 한국문학의 본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향가, 고려가요의 맥을 이으며 현대에 오천년 겨레의 숨결을 전하고 있으니 시조야말로 천년 시가의 으뜸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광주는 한국 시조문학의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시조단에 씨를 뿌린 곳이다. 시조전문 문예지인 《한국동시조》, 《겨레시조》, 《열린시조》가 광주를 터전으로 잉태되었다. 《한국동시조》의 발행인 박석순 시인은 광주에서 재정을 홀로 부담하며 소박한 책자이지만 꾸준하게 동시조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전원범, 김종 시인을 주축으로 발간된 《겨레시조》는 시조시인들이 창작 의지를 불태우게 하였으며, 《열린시조》는 전국 각지를 발로 뛴 이지엽 시인의 열정에 힘입어 광주에서 전국으로 고고성(呱呱聲)을 널리 퍼뜨렸다. 이들 시조전문지는 광주에 신선한 시조의 열풍을 불게 했고 나아가 한국시조단에 또렷한 자취를 남겼으니 광주야말로 ‘K문학’의 산실에 부족함이 없다. 광주문협의 발전과 함께 ‘K문학’의 뿌리인 시조의 융성을 기대하면서 몇 가지 바람을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문인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문학이 언어예술이라는 점을 잊은 듯한 작품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러던 차에 광주문협 평생교육원에서 시창작, 시낭송, 인문학 강좌를 연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좋은 이와 어울리는 친목도 좋지만 그 모임이 자신 안에 잠재된 문인으로서의 자질을 끌어올리는 사색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문협의 나이가 젊어졌으면 좋겠다. 국제연합(UN)의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자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2018년에 고령 사회로 진입했는데 고령화 속도가 빨라 2024년이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거라고 한다. 첨단 과학 기술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고 글이나 그림도 척척 그려내는 챗봇을 성큼 우리 곁으로 불러올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데 반해 사회는 점점 고령화 되어간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삶에 대해 도전하고 어떠한 상황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응전하려는 상상력은 쇠퇴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경험에서 우러난 사상을 미래 그림에 활용해야 하는데 뒷심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작품은 치열함을 점점 잃고 온건함을 지향해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노력이 약해진다. 사람이 젊어지려고 영양제를 먹고 피부미용에 공을 들이듯 문협도 젊어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대형마트의 ‘통큰’ 치킨 판매가 치킨뿐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수요를 창출했던 것을 우리는 보았다. 광주문협도 10대와 20대의 문사를 키우기 위한 통 큰 정책으로 작품 공모전이나 백일장을 열어야 한다. 가깝게는 싱싱하고 건강한 청소년의 의지를 발굴하고 멀리는 한국문학 세계화 꿈을 꽃피우는 텃밭의 역할을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원로문인의 생생한 육성을 영상기록과 구술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수명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1950년대 등단한 작가들은 이미 하늘의 별이 된 분이 많다. 다행히도 몇 분이 광주문협에 작품을 쓰고 계시니 이 분들의 모습과 말씀을 담아 남겼으면 좋겠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요즘 활발한 영상 매체에 올린다면 광주문협의 위상이 진일보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작품 낭송 위주 동영상 제작은 이미 상당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것이 시민들의 문화 향수를 채워주는 감성적인 부분이라면 원로 문인을 기록하는 일은 한국 문학사의 귀중한 자료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法古而知變(법고이지변) 創新而能典(창신이능전), 옛것을 본받더라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하라는 박지원(朴趾源)의 말이 떠오른다. 문학 청소년을 육성하여 새롭게 변화하되 원로 문인을 기록하여 문학의 근본을 소중히 간직하는 일도 동시에 문협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라떼는 말이야, 문학의 염결성을 따라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었어.” 시를 쓰는 챗봇 앞에서 이런 말이 몹시 그리운 시절이 돌아올 것이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시인, 작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등단 이전의 삶과 등단 이후의 삶은 그 궤적이 마땅히 달라야 했는데 그때 왜 그렇게밖에 안 살았을까 후회하게 된다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그러니 이름 석 자 문단에 올려놓고 정작 진정한 문학의 맛은 잃어버린 ‘문학미각상실자’들이 문학의 맛을 되찾을 수 있도록 광주문협이 힘써 주기를 바란다. 새 집행부 출범의 이 기세가 꺾이지 않고 더욱 당당하고 양양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광주광역시문인협회 《광주문학》 제106호(2023년 봄호) 특집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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