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으며 유난히 내 눈을 사로잡는 남편의 손. 언제 잔 주름이 저리도 많이 자리잡았나 . 슬쩍 잡아보니 남편은 수줌은듯 슬그머니 손을 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함깨 살아가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편의 존재.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시간도 있지만 오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오래 전 일이다. 한강 다리에서 버스가 추락하여 34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 있었다. 그 일로 사촌 오빠가 떠났다. 오빠는 결벽증이 심하여
어쩌다 만나 악수를 하면 바로 수돗가로 가 손을 빡빡 씻었다. 어린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오빠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아이가 7살이 되도록 가족 여행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그 해 처음으로 캠핑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하며 오빠는 좋아했단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날. 동생이 이사를 한다는 소식에 새언니는 잠시 들리자 했으나 오빠는 캠핑을 다녀와 가자며 짐을 싸고 들은 척도 안했단다. 허나 시동생의 이사를 못 본척 하기에 편치 않은 언니는 조르다시피 하여 한강다리 건너 이사한 집을 찾아간 것이 오후 2시쯤. 여행 준비에 마음이 바쁜 오빠는 어서 가자며 재촉하여 앞서가며 막 떠나려는 버스를 뛰어가 꽁무니를 두드려 세워 타고. 두 정거장이 지나 자리가 났단다. 오빠는 언니에게 앉으라 했지만 남편을 앉히고 언니는 서서 손잡이를 잡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중 중심을 잃은 버스는 난간을 들이받고 강으로 추락했다. 죽을 힘을 다해 손잡이를 잡은 언니는 살고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오빠는 이리 저리 부딪쳐 머리를 심히 다쳤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니 잠수부가 언니를 지붕만 보아는 버스안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손에는 핸드백을 꼭 움켜진 채 의식이 없었다. 끝내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눈을 뜬 언니는 오빠부터 찾았다. 우리는 다른 병실에 있다고 속여아 했다. 오빠의 장례식 날. 나와 남편은 큰 임무를 맡았다. 절대 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집으로 퇴원시키라며 모두 장지로 갔다. 그때 우리는 결혼 전이었고 남편이 차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힘든 일을 해야 했다. 눈치빠른 언니는 차를 타며 집에 안가겠다 했다. 잠시 후 언니는 소리를 지르며 남편의 뒷 자락을 잡으며 방향을 틀라 했다. 말려도 점점 더 억죄이는 언니의 힘을 당할 수 없어 차를 돌려 장지로 갔다.
언니는 가기 싫다는 오빠를 억지로 끌고 가 저 세상으로 갔다며 울다 정신을 잃곤 했다. 지금도 숨이 멈추는듯 아프다. 결혼후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저 세상으로 떠난 오빠. 그 이별로 남편과 아빠를 잃은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야하는 길이 얼마나 고달팠을끼. 나는 결혼 후 아무리 가고 싶어도 남편이 가기 싫다면 멈춘다.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가 떠나보냈다는 언니의 말이 귀에 맴돌아 조르지 않는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무너진 건물에 묻혀 생을 마감했다. 기막힌 사연들이 보는 이들을 아프게 한다. 어제 화면에는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수색을 접는다는 말에 아직 저 밑에 내 남편이 있다며 조금만 더 찾아달라고 한다. 런던에서 사는 남편은 코로나로 고향을 방문할 수 없어 2년 만에 부모가 있는 고향집을 지진 전 날 도착했단다. 부모의 시신은 찾았지만 아직 남편은 못 찾았으니 분명 저 안에 갇혀 있다며 애걸한다. 두 아이가 아빠를 기다려 꼭 찾아야 한다며 작은 희망도 놓지 않는다. 다음 날 남편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발견된 전화기 속에 찍힌 가족 사진. 남편은 부모 형제와 만난 기쁨에 활짝 웃고 있었다.
살면서 주위에 남편을 일찍 보내고 혼자 남는 이에게 나는 친구가 되려고 손을 먼저 내민다. 남편의 자리를 대신 하지는 못해도 조금은 허전한 마음을 덮어주고 싶어서다. 한 남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하는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라온 환경과 생각과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인데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부딪치는게 당연하다. 그래도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든든하고 전부인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가끔 남편이 살쩍 삐지면 속상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달래는 말 "오늘 당신은 문지기야,덕분에 내가 무섭자 않고 편히 잘 수 있잖아 그거면 되." 만약 남편이 없으면 혼자 무서울 것 같은 나는 한 집에 함께 있는 자체로 만족하며 상한 마음을 달랜다. 효과가 있다. 내 마음의 매듭이 스르르 풀리며 평안해진다.
첫댓글 새 언니의 후회의 강도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됩니다.
지진과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도 얼마나 클까요.
새삼 가족이 이 땅에서 함께 숨쉬고 있음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