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은 굳은 표정으로 동트는 새벽을 바라보았다. 새벽은 차고 축축했으며 적막했다. 나눌 체온 없이 서늘한 상체를 문 밖으로 내밀었으나 공기의 질감은 눅눅했다. 아주 잠깐 서있었는데도 쌀자루를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무거워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L은 어머니의 흔적이 배어 있는 거실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옷차림과 치운 적 없는 이부자리를 보면서 밤과 낮의 경계를 허물은 고독한 자신이 흉해 보여 몸서리를 쳤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견딜만했다. 상처를 견딜 만 하다는 것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L은 마늘과 고춧가루, 참기름과 감자를 박스에 넣고 단단하게 포장했다. 쉽게 지쳐 자주 잠이 들어서인지 밤잠이 길지 않았다. 오랜 시간 혼자 밥을 먹어온 탓에 식욕이 떨어졌는데도 새벽부터 일어나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 포장하다보니 배가 고팠다. 그가 아침 일곱 시를 확인하고서 마트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몸은 와해되고 기억은 흐릿해서 마치 허공에 부유한 듯했다. 매일 보아온 익숙했던 사물들이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밑창이 닳은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느릿느릿 밖으로 나갔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길이 아닌 것 같았고, 때때로 길이 없는 듯 했으며, 끝내는 길을 잃어버려 누군가의 손에 끌려가듯이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단조로운 일상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인적은 드물고 모래바람만 인다. 걷다가 퉁퉁 부은 발을 내려다보았다. 아침인데도 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침 댓바람부터 아래 찜통이니, 오늘도 여럿 데어 죽겠구먼."
파리를 쫓던 마트 주인이 아는 체를 했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L은 마트 주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는 호남 출신이지만 이곳에 산지 이십년이 넘어서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마트 주인은 L에게 몸이 많이 불편하냐고 물었다. L은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하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트 주인은 L을 위로하려다 말고 "우리 집사람은 유방암 말기요." 그는 당연한 일을 말하듯 표정이 담담했다. 그의 아내는 외관상 건강해 보였으며 영화배우 이미숙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의 말이 울림처럼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L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아주머니는 어디 물놀이라도 가셨습니까? 요사이 며치 보이지 않던데."
마트 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L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혔다.
L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이 마냥 죄스럽기만 했다. 부모의 가장 큰 가랑거리던 그가 건강악화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수치와 걱정거리가 되었다. 칠순이 넘은 노모는 L의 병원비를 대느라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지난 오년동안 오피스텔에서 동생 집으로, 동생 집에서 그의 집으로, 그의 집에서 고향집으로 옮겨졌다. L의 아내는 아이 셋을 부양하며 빚을 갚느라 밤낮없이, 쉬는 날 없이 일했다.
L은 하려던 말을 끝내 찾지 못해서 소보로빵과 우유를 사들고 나왔다. 주인은 말없이 돌아서는 L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L은 습관처럼 정육점을 하는 친구에게 들렀다. 친구도 L에게 몸이 더 불편해졌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L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L은 도로 확장으로 인한 보상금이 언제쯤 나올 것인지를 물어보았지만, 그는 친구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만 원도 안 되는 돈 받아서 니 병원비로 다 썼다고 니가 말 안했나?"
L은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고 화를 냈다. 잠시 후, L은 자신이 왜 화를 냈는지 친구에게 물었다.
"밥은 묵었나? 거 손에 뭐나? 빵 이가? 어무이가 니는 빵 묵으면 죽는다 카던데?"
L은 또 다시 머리가 '띵' 했다. 소리는 뭉개진 것처럼 선명하지가 않았다.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한줄기 땀이 푸석해진 얼굴 위로 흘러 내렸다.
"내 나이 쉰이다."
그는 신트림을 내뱉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다."
친구는 리모컨을 들어 켠 줄 몰랐던 TV를 끄면서 말했다.
"사는 것처럼 살아야 사는 것이지."
엉성하게 맞물린 대화는 하다만 고백처럼 의미를 잃었다.
"니 수술은 받았나? 한 달 전부터 수술 한다 안했나?"
불현듯 L은 몸속에서 부풀고 있을 암세포가 떠올랐다. L은 하려는 말이 생각났지만 배를 쓸며 겁에 질린 것처럼 몸을 떨면서 일어섰다. 뜨거운 태양빛이 그의 숱 없는 암회색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친구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기가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었다. L은 택배기사를 부르기 위해 걸음을 빨리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어머니가 전화로 "방금 전 흰죽을 끓여 놓고 왔다. 좀, 챙겨 묵우라."고 말했다. 작은 어머니는 물기 없는 싱크대와 텅 비어 있던 냉장고를 떠올리며 울먹였다. L이 흰죽을 떠서 입에 넣으려는데 배가 부글부글 끓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바지를 벗자마자 봇물 터지듯 혈변이 쏟아져 나왔다.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지만 부풀어 오른 배는 가라앉지 않았다. 고요 속에 파묻힌 한 낮의 적막 속에서 변기통에 앉은 L은 치밀어 오르는 통증으로 온 몸을 뒤틀며 몸부림쳤다.
문을 열어 놓아도 들어오는 바람한 점 없다. 택배기사가 다녀가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땀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흐릿한 안개에 잠기듯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낮인데도 커튼을 쳤더니 거실은 암흑 그 자체였다.
L은 밥을 먹는 것도, 혼자 먹기 위해 밥을 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두 달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다. 건강에 별 이상이 없다고 해서 L은 안심했다. 가끔씩 어지럽다고 했지만 토하지도 않고 안색도 괜찮았다. 먹는 것도 소화시키는 것도 L보다 우월했다.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아서 병원에 미리 가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서서히 인지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말투도 어눌해졌다. 보름 전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해도 어찌된 일인지 L은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지 않았다. L이 몇 번의 시술과 뇌혈전증으로 인해 판단력이 둔화된 탓이라기도 했다. L은 뒤늦게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나서 매일매일 눈물을 흘렸다. 사실, 어머니보다도 그의 병이 더 위중했다. 특별히 믿는 신은 없었지만, 제발 어머니가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의사는 L에게 말기 간암환자라서 혼자 있지 말라고 당부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기능을 상실한 간과 콩팥 옆에는 다섯 개의 종양이 생겨났다. 마침 금요일에 진료를 예약해 두었으니, 택배를 받아 두고 나서 병원에 가야겠다며 자신에게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두 개를 제거한 후에 주치의는 병원을 옮겨보자고 했다. 어머니가 최근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L은 어머니의 경과를 지켜 보고나서 서울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개의 종양은 부풀대로 부풀고 있었다.
복통은 더해졌다. 발과 종아리가 퉁퉁 붓고 가스가 찼는지 복부가 팽팽하게 부어올랐다.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인생은 혼자 죽어가는 거야.
L은 세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운동화를 사준 적이 언제인지 떠올려 보았다. 다음번에 만나면 운동화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기저귀 갈아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 자라서 아빠보다 발도, 키도 커졌어.' 하고 중얼거렸다.
L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았던 지난 오년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택배를 보냈다. 매년 여름에는 세 아들의 신발을 사서 보냈고, 백화점 세일기간에 옷을 사두었다가 함께 포장했으며,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와 참고서를 사서 보내기도 했다. 소설은 주로 블루픽션 시리즈였으며, 영화로 제작된 요리만화와 챔프코믹스에서 출판한 일본만화도 있었다. 물론 살아남기 시리즈물이나 역사와 신화를 다룬 학습만화와 판타지 소설도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건강보조식품을 보냈다. 세 아들의 발은 일 년에 십 밀리미터씩 자랐다. 작년부터는 막내의 키가 L을 훌쩍 넘어섰다. L은 택배가 도착할 때까지 늘 긴장했다. 잘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안심했다. 물건을 준비하고 포장한 뒤에 택배를 보내고 나서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그가 실패자가 아닌, 세 아들의 아버지와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살아있는 가치를 느끼게 했다. 그가 첫 택배를 보내고 나서 막내아들 준의 전화를 받았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이 솟아났다. "아빠, 택배를 기다릴 때는, 아빠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대가 되고, 택배가 도착하면 아빠한테 선물을 받는 기분이야." 그는 아주 잠시, 그게 그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행복의 기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첫아들 현과는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L은 현이 초등학교에 입하하던 날, "첫째가 스무 살이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할 거야."라고 딸만 둘을 두었던 치눅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현은 첫아들답게 듬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기적으로 표창장을 받았고, 반장을 했다. L의 세 아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성별에 집착하거나 둘째나 셋째가 아들인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며 뿌듯해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도 휴일에는 함께 마트를 가거나 외출했다. 둘째 견은 살가움으로 자칫 무관심할 뻔했던 존재감을 스스로 찾는 아이였다. 견은 자라면서 사막에 버려져도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L은 "그 녀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아."라는 말을 자주했다. 셋째 준은 걸음마를 하기 전부터 계곡캠프에 잘 적응했다. 타고난 체질이었을까. 구명조끼를 입혀놓으면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은 수영선수가 되었다가 올해 그만 두었다.
금세 하루가 저물었다. L의 하루는 망각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거나 침몰 한 배처럼 한 없이 심해로 가라앉았다. L은 해거름 무렵에 누운 채로 토하고 설사를 하며 설핏, 잠에서 깨는 것 같았다. 그는 희미한 의식으로 아련한 통증을 느꼈지만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준과의 통화는 거르지 않았다. 아내는 밤늦도록 일하느라 준의 저녁을 챙겨 주지 못했다. 엄마가 없어서인지 준은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서둘러 시골로 내려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준의 저녁을 챙겨주고 있었을 텐데 하며 며칠 더 머물다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뭐든 맛있게 먹는 준을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음식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토마토를 넣지 않은 미트볼 스파게티였다.
평일에는 산책을 하고, 마트를 가고, 저녁을 준비하고,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는 계곡에 텐트를 치고, 낚시를 했다. '자식이 옆에 있으면 없던 힘도 생기는구나.' 불과 일주일전의 일이다.
"이번에 올라가면 강아지도 분양받고 아빠랑 노래방도 가자."
집안 형편 탓에 좋아하던 수영을 그만 두더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몸이 많이 불었다. "아빠, 강아지 키우게 해주면 살 뺄게요." 준이 자주하던 말이 떠올랐다. 준은 낯가림이 심해서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막내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궁금했다. 준이 어찌나 좋아서 소리를 질러대는지 L은 노래방에 가자는 그 다음 말을 되풀이 하지 못했다.
전등을 켜지 않은 실내는 이미 낮보다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