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2. 01
세계 자동차업계의 연료소비효율(연비) 높이기 경쟁이 뜨겁다. 소형차, 중대형차 할 것 없이 전 차종에서 연비가 향상된 모델을 줄지어 선보이고 있다. ‘연비 대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연비 경쟁에 불을 댕긴 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그는 작년 7월, 2016년까지 전 차종의 평균 연비 기준을 휘발유 갤런당 35.5마일(1L당 15.1㎞)로 해야 한다는 자동차 연비 향상 대책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 또한 2015년부터 연료소비효율을 전 차종 평균 휘발유 1L당 17㎞로 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동력전달장치를 직분사 방식으로
자동차 연비란 1L의 연료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연비가 10㎞/L라면 연료 1L로 10㎞를 주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엔진과 변속기 같은 주요 부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법, 둘째는 가벼운 재료를 써서 차량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자동차 외형을 공기역학적으로 만들어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다.
휘발유나 디젤차는 엔진과 변속기(트랜스미션)로 구성된 동력전달장치(파워 트레인)가 차를 움직인다. 이 경우 엔진의 효율은 자동차의 주행 상태에 따라 많이 변한다. 저속으로 시내를 주행할 때는 효율이 낮고, 신호 대기 중이거나 차가 막혀 서 있을 때는 효율이 거의 0이다. 차는 정지하고 있어도 엔진은 계속 돌아 연료를 그냥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료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18~23%만 실제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사용되고 나머지는 버린다고 보면 된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동차업계는 엔진에 연료 직분사(DI·Direct Injection)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000기압이 넘는 엄청난 압력으로 연료를 연소실 안에 직접 뿌려 주는 방식을 적용한 엔진으로, 같은 양의 연료로 엔진 효율을 극대화한 방법이다. 높은 압력으로 연료를 분사하기 때문에 기존 엔진의 경우보다 연소실의 공기와 연료의 혼합이 잘 되면서 발화가 잘 돼 연비 효율이 좋아진다.
기존 방식의 연료 분사는 공기와 연료가 섞여 연소실로 들어간다. 반면 직분사는 공기와 연료가 각각 연소실에서 직접 만난다. 현대자동차의 그랜저(2.4·자동변속기 기준)의 경우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장착하면서 종전보다 연비가 13.3% 높아졌다. 직분사 연료 시스템은 주로 디젤 엔진에 사용됐지만, 휘발유 엔진에도 쓰여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디젤 엔진의 경우 실린더 내부의 피스톤 상하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고압에 의해 연료와 공기가 압축착화되는 구조라서 직분사 방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휘발유 엔진은 액체 연료를 실린더 외부에서 공기와 섞어 기체로 만들기 때문에 실린더 안에 들여와 점화 플러그에 의해 폭발시키는 간접 분사 방식이 주류다. 그런데 최근엔 휘발유 엔진도 직분사로 바꾸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직분사 방식은 연비와 파워는 좋지만 압축비가 높아진 만큼 폭발할 때 소음이 크고, 또 엔진 내구성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더 강한 소재로 개발해야 하므로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결점이다.
/ 현대·기아차의 연료직분사 엔진
소재 경량화로 무게 줄이기
또 하나의 연료소비효율 경쟁은 ‘차체 무게와의 싸움’이다. 지금 자동차업계는 차량용 신소재 찾기에 한창이다. 일반 승용차의 무게는 철·고무가 65%, 플라스틱 혼합물이 15∼18%, 경합금이 4∼8% 정도다. 전문가들은 차량 중량을 1% 줄일 때마다 연료소비효율이 1% 높아진다고 본다. 따라서 무거운 철을 대체할 가벼운 소재를 얼마나 더 많은 부품에 사용하느냐가 자동차업체들의 최대 관심사다.
탄소나노섬유나 강화플라스틱 등 가볍고 단단한 신소재는 자동차 경량화의 일등공신이다.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도 차체의 무게를 줄이는 데 한몫한다. 탄소섬유는 강하고 무게가 가벼워 쏜살처럼 달리는 차량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탄소섬유를 사용할 경우 자동차 외장재의 무게를 6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GM은 차체의 골격이나 보닛 등 주요 부분에 탄소섬유를 적용해 차량의 무게를 80% 이하로 가볍게 할 계획이다.
기존 알루미늄 엔진은 강도가 약하다. 하지만 열처리, 제조 기술의 발달로 무거운 주철 엔진을 대체하고 있다. 주철 엔진을 알루미늄으로 바꾸면 약 10㎏을 줄일 수 있다. 폭스바겐, 아우디 등 유럽의 업체들은 큰 힘을 받는 디젤 엔진에도 알루미늄을 적용 중이다.
BMW는 엔진 일부 부품에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마그네슘을 적용해 10㎏ 더 감량했다. 마그네슘은 철강보다 78%, 알루미늄보다 35% 가벼워 경량화를 위한 신소재로 사용된다. 하지만 단순히 무게를 줄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1㎏을 줄인다는 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공기저항 덜 받는 디자인을 개발하라
바람의 저항을 덜 받도록 한 공기역학적 디자인도 연료소비효율을 높인다. 자동차가 주행할 때 받는 각종 저항 중에서 연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구름저항과 공기저항이다. 구름저항은 바퀴가 수평으로 굴러갈 때 발생되는 저항이고, 공기저항은 자동차가 주행할 때 진행하는 방향과 반대로 작용하는 공기의 저항력이다. 저속에서는 구름저항이 크지만 속도가 올라갈수록 공기저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상자처럼 각진 자동차가 유선형 자동차보다 공기저항을 더 받는다. 범퍼 모양을 유선형으로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연료소비효율이 좋은 하이브리드차 개발도 눈에 띈다. 하이브리드차의 연비 향상 요인 중 하나는 회생제동(Regenerative Braking)이다. 간단히 말해 제동 시 나오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해서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배터리의 충전된 에너지는 나중에 모터를 구동하는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최근 국내 판매를 시작한 뉴 캠리 하이브리드 XLE의 공인연비는 23.6㎞/L. 지금까지 나온 중형 세단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
볼보는 올해 안에 L당 52㎞를 가는 ‘V60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다. 52㎞/L의 자동차도 등장하는데 ‘꿈의 연비’로 불리는 100㎞/L의 자동차도 실현 가능할까? 공기역학적 디자인과 신소재를 개발해 차량의 무게를 계속 줄여 나간다면 머지않아 꿈 같은 자동차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