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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장 바다와 땅의 두 짐승의 환상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현 우주와 역사의 결정적 종말이 최종 도래하기 직전의 말세에 있을 상당 기간의 범우주적 대환난(大患難)에 대한 일련의 묵시들, 즉 상호 점진적으로 강도를 더해가면서 연속되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등 일련의 삼대 7중 재앙의 묵시를 보도하는 제 4-18장까지의 일련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본장은 좁게는 제 12-14장에 걸쳐 이어지는, 제 4-18장 사이의 말세의 대환난에 대한 묵시 기록 사이에 삽입된 총 7개의 삽경 중 넷째에서 여섯째까지의 삽경을 연속적으로 보도한 일련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이러한 문맥하의 본장은 제 5삽경으로서 전장에 나온 붉은 용 곧 사탄(Satan)과 함께 악령들의 이대 세력을 이루는 각각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이제 붉은 용과 함께 교회를 향하여 최후의 대핍박을 시도하는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의 환상은 전장의 여인과 그 아들에 대한 붉은 용의 핍박의 환상과 상호 연속된 것으로서 앞서 11:1-13에 기록되었던 7년 대환난의 묵시를 보다 심화한 묵시이다. 즉 전장은 교회를 향한 사탄의 무리들의 전 3년반의 핍박을, 그리고 본장은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총동원되어 교회를 후 3년반 동안 더욱 혹독히 핍박하는 양상을 각각 보도하고 있다.
이같은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 1-10절은 하나님에게 칙후 최대의 반역을 시도하는 사탄의 최고 하수인으로 말세에 등장하여 온 세상을 지배하며 교회에게 대핍박을 가할 원흉인 적그리스도(Anti Christ)의 위용과 온 세상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패권 장악, 그리고 심지어는 그가 물리적 힘만으로 볼 때에는 교회에 대해서조차 잠시 승리를 차지할 것 등이 기묘하고 장대한 묵시를 통해 제시된다.
다음 후반부 11-18절은 그 역시 말세에 등장할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특히 종교적 측면에서 적그리스도를 보필할 거짓 선지자(false prophet), 즉 여호와 신앙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에 근거한 기독교 복음이 아닌 거짓 신앙을 조장하여 적그리스도 나아가 사탄 숭배를 각종 이적과 폭력을 행사하여 말세의 군중들이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사탄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근거를 삼으려고 시도하는 특이한 거짓 종교인의 등장과 사역,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이해의 단서인 소위 666의 비밀을 보여 주고 있다. '666'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본장 18절의 주석과 자료노트, '짐승의 수 666'을 참조하라.
이처럼 말세의 대환난에 대한 묵시의 제 5삽경으로서 말세의 대환난을 야기시킬 주역들과 그들이 정치․종교적 패권을 장악하고 교회를 핍박할 양상에 대하여 또한 그 환난의 강도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본장은 말세의 대환난에 대한 일련의 묵시가 전반적으로 가진 여러 구속사적 의의 중에서도 직접적으로는 특히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대한 구속사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첫째, 말세에 이르러 실로 모든 인생은 물론 성도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이 도래할 것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인 바 성도는 늘 깨어 근신해야 한다(살전 5;6; 히 12:26).
둘째, 말세에 이르렀을 때 놀라운 위용과 감복할 만한 이적을 동원하여 지구는 물론 범우주적 패권을 장악할 것이나 기실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시도하는 사탄의 무리들로서 말세의 대환난과 혼란의 원흉이 될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좁게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넓게는 전구속사적 지평에서 그 실체를 올바로 직시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 성도가 그들이 잠시 행할 위력과 핍박에 굴복하지 않고 소극적으로는 인내하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그들과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다 상하거나 심지어는 죽는 것이 오히려 잠시 후 영원한 구원과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을 확신하며 전진하는 구속사적 신념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
11 ○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
본문 & 자료노트
신학용어-13:16-18 짐승의 수 666
본문에 따르면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짐승의 수 666이 그 표로 주어지게 된다. 이 표는 그가 짐승, 곧 적그리스도(the Anti christ)에게, 보다 궁극적으로는 사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과연 666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 견해를 살펴보도록하자.
1. '666'에 대한 두 해석
① 문자적 해석: 각 숫자는 어떤 문자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헬라어 알파벳은 각각 고유의 수를 지니고 있는데 저자는 짐승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않기 위해 그의 이름의 알파벳들에 해당하는 수치의 합인 666을 제시했다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에 따라 666에 해당하는 자로서 '네로 황제'가 가장 유력한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히틀러'나 '로마 카톨릭 교황' 등이 지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계시록 저자가 다른 모든 수는 상징적으로 사용하면서 유독 666만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했을리가 없다는 점에서 약점을 가진다.
② 상징적 해석 성경에서 '6'이란 숫자는 '7'이 '완성'과 '거룩'을 의미하는데 반해, 그에 가장 근접했으면서도 그 역시 불완전한 '미완성'과 '부정' 나아가 완전에 도전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수이다.
더욱이 이런 '6'이 세 번 반복된 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모방하여 결국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나타낸 것을 암시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짐승의 수 666'은 그가 불완전한 자로서 완전자인 하나님의 지위를 노리고 도전하는 세력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견해가 보다 더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견해이다.
2. 교훈
'666'의 수를 지닌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계시록의 분명한 예언은 말세지말에 살고 있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보다 철저하게 신앙으로 무장하여 적그리스도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숙한 신앙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이는 적그리스도가 극심하게 성도들을 핍박할지라도 '777'에 비해 항시 부족하고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짐승의 수 '666'이 보여주듯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임도 강력히 암시해 준다. 그리하여 결국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였을 때에도 그 잠시의 외양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과 교회의 최후 승리를 확신하며 소망 중에 인내하여야 할 것이다.
도표-13:2,7,10,17 적그리스도의 탁월함
계 17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13:11-14 두 번패 짐승(거짓 선지자)의 특성과 활동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두 번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이다. 이는 주로 거짓 사설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교회를 분열케 하는 책동을 하는 자로서 본문은 그의 특성과 활동에 대해 보여 주고 있다.
1. 새끼양과 같은 두 뿔 가짐(11절): 하나님의 어린양인 그리스도로 위장함
2. 용처럼 말함(11절): 말의 권세로 사람들을 미혹함
3. 큰 이적을 행함(12,13절): 이적을 통해 사탄 세력을 추종케 함
4. 첫 번째 짐승을 우상화함(14-18절): 세속 정권과 야합, 이를 숭배하게 함
5. 우상에 경배치 않는 자를 죽임(15절): 사탄에 속하지 않은 성도들을 핍박함
원어연구-13:18 총명 있는 자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호 에콘 눈'( )이다. 여기서 '호'( )는 정관사이고 '에콘'은 '가지다', '소유하다'라는 뜻의 '에코'( )의 분사형으로 '가진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눈'은 '마음', '지성'이라는 뜻의 '누스'( )의 목적격이다. 따라서 이 원문을 직역하면 '지성을 가지고 있는 자'가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누스'인데 이는 히브리어의 '레브'( )의 역어이나 뜻하는 바는 조금 다르다. 즉 '레브'는 '심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히브리인들은 이를 생명력의 원천이며 의지', '지성',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생각하였다. 즉 히브리어 '레브'가 이렇게 정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육체를 포함하는 인간의 전인격적인 삶의 중심을 가리키는 반면 헬라어 '누스'는 주로 정신적인 면, 또는 이성적인 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성', '지각', '판단력', '이해력'(빌 4:7) 등의 영적 진리를 수용할 수 있으며 선 ․
악을 분별하며 판단하는 기관을 뜻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 '총명있는 자'는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단지 지성을 소유한 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헬, 소피아)를 자신의 지각 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자라는 뜻이 된다. 즉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소유한 자는 말세에 짐승에게 속한 자들이 누구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13:1-10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도래할 현우주와 역사의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는 '삼대 칠중 재앙'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두번째 칠중 재앙 중 마지막 나팔 재앙인 일곱째 나팔 재앙이 기록된 11:14-19과 세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이 기록되는 15:1-16:21 사이에는 ① 전 삼년 반 동안 교회가 받을 환난(12:1-17). ② 후 삼년반 동안 교회가 받을 환난(13:1-17), ③ 하나님의 교회의 승리와 악인이 받을 심판(14:1-20)이라는 내용을 가진 세 개의 삽경(橋景)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삽경 중 맨앞의 삽경은 12장에서 언급되었고 가운데 삽경인 제13장이 바로 본문이 속해 있는 삽경이다. 그리고 본서에서 이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 13장은 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10절), ② 땅에서 올라온 짐승(11-18절)이라는 두 단락으로 나누이며, 본문은 그 두 단락 중 앞의 단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미 앞단락에서 살펴본 바대로 사탄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자기가 의도한 뜻을 이루지 못하여 그가 가진 입지(立地)를 상실하였고, 그로 인해 분을 발하여 교회를 핍박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그 일에도 실패하였다. 그래서 결국 사탄은 최후의 수단으로 성도 개개인들을 공격하고자 준비하였다. 본문은 그러한 준비를 끝낸 사탄이 그가 서있던 바다로부터(12:17) 특출한 자기의 하수인인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보내어 세상을 지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내용을 설명해 준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본단락은 전단락의 흐름을 잇는, 전단락과 연결된 단락이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사탄은 자기의 권세를 환전히 부여한 큰 권세가진 자를 세운다(1,2절). 그 권세 가진 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흥내내어 거의 죽었다가 살아남으로써 세상의 이목을 한몸에 받는 동시에, 사탄으로부터 받은 권세를 이용해 후삼년 반 동안 세상을 완전히 장악한다(3-5절). 그리하여 그는 세상에 속한 자들로부터는 경배를 받고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는 핍박을 가하며 하나님께 불경을 저지른다(6-8절). 한마디로 후삼년 반 동안 세상은 악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적절하게 적그리스도가 세상 권세를 잡는 그것이 참된 것도 아니요 영원한 것도 아니니 성도들은 믿음으로 인내하여 승리하라고 권면하는 말로 본문을 매듭짓는다(9,10절).
본문은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는 악으로 멸망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선으로 생명을 보존받을 것이라고 못박음으로써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떠한 환난에 처하게 되더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인내함으로 구원에 이르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실로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은 하나님을 믿고(히 11:6) 그에게 순종하며(삼상 15:22) 마지막까지 인내하면서(눅 8:15; 21:19; 롬 5:4; 히 10:36; 약 1:4; 계 14:12). 주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의 그날까지 그리스도를 굳세게 믿고 그에게 순종하며 인내하는 가운데 사랑을 실천하자.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 본장은 붉은 용, 즉 사탄(12:3,9)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되는 두 짐승이 하나는 바다에서(1-10절) 다른 하나는 땅에서(11-18절) 올라오는 두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절의 짐승은 그 첫 번째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 본서에서 '바다'는 대개 '열방'을 의미한다(17:15). 그러므로 이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다는 것은 세계 열강의 권세를 지니고 나타날 것을 뜻한다.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이 짐승을 본서 저자 요한 당시 가장 힘세고 거대했던 로마 제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Bede, Bengel, Barclay, Hendriksen, Moffatt, Charles). 그러나 본장의 환상은 엄연히 종말의 대환난기에 있을 사건에 대한 환상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다 짐승은 로마 제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이 세계의 권력을 하나로 모아 일어날 어떤 특정한 적그리스도 또는 그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Ladd).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적그리스도'(Anti-Christ)는 예수의 그리스도됨을 부인할 뿐 아니라(요일 2:22) 그리스도께 대적하여 그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을 가리킨다. 또한 스스로를 그리스도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마 24:24)도 '적그리스도'라는 개념에 포함된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이 적그리스도라는 짐승은 그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말세에 특별히 일어나 모든 적그리스도적 세력을 장악하여 하나님께 대적할 특정한 자 또는 그 세력을 지칭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계 12장 자료노트, '적 그리스도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 용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다(12:3). 이는 이 짐승이 사탄에게 속한 자임을 시사해 준다. 여기서 완전수 또는 만수인 '열'과 '일곱'으로 표현된 열 뿔과 일곱 머리는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세상의 많은 나라들 및 그 세력들을 의미한다(17:10,12). 그리고 '머리'와 '뿔', '면류관'은 통치권과 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바다의 짐승은 열강의 세력을 업고 세상을 통치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사탄의 하수인인 적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통치력을 가지고 잠시 동안 세상을 통치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의 열 면류관은 성도가 쓰는 승리의 면류관(12:1)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빼앗길 거짓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계 12:3 주석 참조.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참람된 이름들'이란 '하나님께 모독이 되는 이름'(공동번역)을 가리킨다. 이는 곧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 세력들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스스로에게 신적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일례로 과거 로마 제국 시대에 황제들이 스스로를 신격화하여 '주'(Dominus) 또는 '신'(Deus)으로 자칭한 사실을 들 수 있으며 그러한 일이 말세에 정치 세력의 권좌에서 일어날 것임을 본문은 예언하고 있다(Johnson).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 단 7:3-8의 반영으로 거기에 보면네 짐승이 나오는데 첫째는 사자요, 둘째는 곰이며, 셋째는 표범이고, 넷째는 열 뿔을 가진 짐승이다. 이들 짐승들은 모두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맹수들로 표범은 날쌤을, 곰은 우직한 힘과 끈기를, 사자는 용맹성과 지배력을 나타낸다(Plummer). 이때 '사자'는 바벨론을, '곰'은 메대·바사를, '표범은 헬라 제국을 각각 상징하며, '열'뿔 가진 짐승'은 이상의 짐승들의 특징을 종합한 매우 크고 무서운 권력을 가진 로마를 상징한다. 그러나 본서에서의 열 뿔 달린 짐승은 단순히 로마를 지칭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이름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규합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할 대종말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특별히 본문의 짐승이 세 종류의 맹수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무서운 권력과 그 광포성을 시사해 준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 하늘의 전쟁에서 미가엘에게패하여 하늘에서 자신이 있던 곳을 빼앗기고 땅으로내어 쫓긴 사단은(12:7-9) 이제 지체없이 집행될 하나님의 최후 심판날이 이르면 결국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는 사단은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려 드는데 이를 위해 그는 세상 권력을 쥐고 있는 적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모든 전권을 양도한다. 따라서 사단과 적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는 하나가된 것이며, 사단은 적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들을 공개적이고도 조직적으로 박해하게 될 것이다.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상처가 나으매. - 이 바다 짐승을 과거의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은 그 짐승의 '머리 하나가 상하게 된 것'을 왕 중의 하나가 피살 당하거나 죽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여 로마의 황제들에게 적용시키리 하였다. 그리하여 궁켈(Gunkel)은 이 왕을 쥴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 B.C. 102-44)로 보았고, 스피타(Spitta)는 칼리라(Caligula, A.D. 37-41)로 보았으며, 일단의 학자들은 네로(Nero, A.D. 54-68)로 보았다(Rist, Charles. Weiss). 이중 '네로'로 보는 건해는 네로 재출현설(Nero redevivus)이라는 신화 때문에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신화의 내용은 네로는 A.D. 68년 원로원으로부터 쫓거나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죽지 않고 동방으로 피신해 있다가 상차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와서 다시 집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설에 영향 받은 '시빌리안 신탁'이라는 묵시서에는 그 네로가 세상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되어 되돌아올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Ladd). 그러나 본문의 '머리'는 로마 제국의 어느 왕을 지칭하는 것같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로마의 그 어떤 황제 중에서도 말세에 재기할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본문의 예언은 분명히 최종적인 대종말 이전에 있을 소위 말세의 대환난기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예언을 과거에 국한시키지 말고 미래의 사건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짐승이 미래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본문을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승리하시고 모든 것을 성취하신 것을 보고 사단의 하수인인 짐승이 그것을 모방하여 미래에 일으킬 어떤 술수라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본절의 짐승은 세상 권력을 잡은 자이므로(1절) 그는 세력을 거의 잃을 뻔하다가 기적적으로 세력을 되찾는 것처럼 연극을 꾸며 사람들의 지지를 얻도록 술수를 부리는 따위의 어떤 일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이다.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 하늘에서 쫓겨나 땅에 내려와서 땅에서라도 자신의 세력을 결집하려 한 용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모방한 사단의 술수에 온 땅이 미혹되어(3절) 이제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바쳐야 할 찬양과 경배를 사단과 적그리스도에게 바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불신자들의 찬양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전쟁에 능하심을 찬미한 찬양(출 15:10-18; 시 89:6,7)을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우두머리나 추종자들이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모방할 뿐 그들 나름대로의 것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마디로 악의 세력은 참된 것은 가지고 있지 않고 거짓된 것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거짓에 미혹되어 멸망할 거짓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하고 참된 하나님의 거룩과 의만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 단 7:8,20,25; 11:36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구절이다. 여기서 '큰 말'은 사람을 미혹하는 호언장담과 속이는 거짓말을 뜻하며 '참람된 말'은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을 모독하는 말을 뜻한다. 1절 주석 참조.
마흔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이는 짐승이 가진 권세가 한시적인 것임을 나타내 준다. 즉 짐승은 사단에게서 영원한 권세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권세를 부여받은 것이다. 영원한 권세를 가진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단 자신도 그러한 권세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석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사단에게 미혹당해 사단과 적그리스도를 숭배한다. 한편 '마흔두 달'은 7년 환난기 중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인데 여기서는 후 3년반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계 12:14 주석 참조.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 '훼방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메오'( )는 '중상하다', '모략하다', '헐뜯다', '악담하다', '비방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로, 이 낱말에 의해 '신성모독'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blasphemy'가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은 짐승(5절)이 그 입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비방하기를 서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는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고(출 20:7), 그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였다(레 24:16). 즉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것은 그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중죄였다. 따라서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하는 짐승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 여기서 '하늘에 거하는 자들'은 일차적으로는 이미 죽어 하늘에 가 있는 성도들을 지칭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 땅에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의미한다. 계 12:12 주석 참조. 즉 사단의 대리자인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모독하며 비방하고 조롱한 것이다. 이처럼 악의 세력은 선에 속한 모든 세력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모독하고 비방한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선에 대하여 훼방할 줄 밖에 모르는 악의 세력이 우리를 비방할 때에 우리는 거기에 과민 반응을 보이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우리가 해야할 거룩과 의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자.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 단 7:21-23을 배경으로 하는 구절로 알렉산드리아(A), 에브라임(C), 풀피리안(P) 사본에는 본문이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성도는 사단에게 질 수 없다는 관념에서 고의적으로 생략된 듯하다.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성도의 패배는 일시적인 것이며 또한 육신이 순교당하는 것을 지칭할 뿐이므로 생략할 이유가 없다. 한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러한 시련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그 믿음을 정금같이 연단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작정하신 때가 되면 사단을 멸하시고 모든 성도들에게 영생을 베푸실 것이다. 그러므로 최후의 승리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들이지 결코 사단과 그 추종 세력들이 아닌 것이다(20:7-15).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 - 이는 세상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본서 저자가 즐겨 쓰는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다(5:9; 7:9). 세상 종말의 대환난기 중에 일시적으로 권세를 회복한 사단은 적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라도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으니(8절; 12:14) 사단이 성도들의 구원을 앗아가지 못한다(Plummer).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녹명되지 못하고…사는 자들.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에 대해서는 계 5:6 주석을, '생명책'에 대해서는 계 3:5 주석을, 각기 참조하라. 여기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자신의 피로써 속량하셨는데 그 속량의 은혜를 받도록 선택됨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킨다(롬 3:23-26). 한편 생명책에 녹명되는 것이 창세 이후로 되었다 함은 무슨 의미인가? '창세 이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로 이것을 직역하면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부터'이다. 따라서 이 말은 아직 세상이 진행되거나 그 결과가 발생되기 이전인 세상이 시작되는 시점에 벌써 그리스도의 속량의 은혜를 받을 자가 생명책에 녹명되었음을 의미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에 구원할 자들을 택정해 놓으셨으며, 하나님의 작정한 때를 좇아이 땅에 성육신(成肉身)하신 그리스도는 구속 사역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죽음에서 생명의 자리에로 옮겨 놓으셨고, 이제 성령께서는 성도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므로 그 누구도 성도에게 주어진 구원을 앗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문은 '창세 후에 녹명되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본절을 통해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나 그렇지 못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사단을 추종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땅에 사는 자들'은 6절의 '하늘에 거하는 자들'과 대조되는 말로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할 자들을 가리킨다.
13: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 계 2:7의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곧 이어 언급될 엄숙한 선언에 대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표현이다.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 여기서 '사로잡는 자는…칼에 죽으리니'은 렘 15:2; 43:11의 반영으로, 한글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고, '잡혀간 사람은 잡혀갈 것이며, 칼에 맞아 죽을 사람은 칼에 맞아 죽을 것이다'(공동번역)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전자를 취하면 본절은 성도들의 당할 핍박과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예고한 것이 되며,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는 말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있을 것이므로 성도들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인내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후자를 취하면 장차 성도들이 당한 꽜박의 양상을 예고한 것이 되며, '성도들의 인내…있느니라'는 말은 답답한 심정으로 최후의 환난을 받으며 순교도 감수하라는 권민이 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자의 해석을 취하나(Charles, Plummer, Moffatt) 전자의 해석을 취해도 무방하다.
13:11-18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도래할 현우주와 역사의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는 '삼대 칠중 재앙'이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두 번째 칠중 재앙 중 마지막 나팔 재앙인 일곱째 나팔 재앙이 기록된 11:14-19과 세 번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이 기록되는 15:1-16:21 사이에는 ① 전 삼년 반 동안 교회가 받을 환난(12:1-17), ② 후 삼년 반 동안 교회가 받을 환난(13:1-18), ③ 하나님의 교회의 승리와 악인이 받을 심판(14:1-20)이라는 내용을 가진 세 개의 삽경(揷景)이 그려져 있다.그리고 이 세 개의 삽경 중 후 삼년 반 동안 교회가 겪을 핍박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의 삽경인 제 13장은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에 관한 내용에 따라 구분된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문은 그 두 개의 단락 중 둘째 짐승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단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제 13장의 첫번째 단락인 앞단락은 열강을 지배하는 권좌(權座)를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와 사단의 권세를 가지고 세계를 다스리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첫째 짐승인 적그리스도(Antichrist)에 관해 설명하였고, 둘째 단락인 본문은 그 첫째 짐승 다음으로 사단에 의해 거짓 선지자로 세워진 둘째 짐승이 첫째 짐승과 함께 후 삼년 동안 세상을 다스리고 미혹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에 관해 언급한다.
본문에 의하면 이 둘째 짐승인 거짓 선지자는 땅에서 올라오는데(11절)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모습인 어린양(5:6)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나타나나 가르치는 것은 사단의 가르침을 말한다(11b절). 게다가 이 둘째 짐승은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첫째 짐승에게 아부하며, 첫째 짐승이 가진 권세를 부여받아 첫째 짐승과 같은 권세를 휘두른다(12절). 뿐만 아니라 둘째 짐승은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하여 세상 사람들을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며(13,14절) 첫째 짐승을 위한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하되(15절) 경배하는 자에게는 표를 주어 경제 활동을 가능케하고(16절), 하나님만을 믿어 표를 얻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경제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여 육체적 고통에 빠지도록한다(16절). 다시 말하면 둘째 짐승은 선을 가장한 악마(惡魔)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와 인간의 영혼을 휘어잡는 능력 및 경제권을 한 손아귀에 쥐고 사단을 경배하는 자와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여 사단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세상의 것들을 미끼로 불신앙을 강요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모든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핍박을 가하는 존재이다. 한편 마지막으로 이 짐승의 특징은 '육백육십 육'이라는 숫자로 드러난다고 본문은 밝혀 주고 있다(18절).이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말세에 사단은 대단히 교묘하고도 철저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며, 또 믿는 자들을 핍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단은 그 자체로도 악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말세에는 궁지에 몰리기 때문에(12:12)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악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마지막 발악을 한다(11:7-9). 그러므로 소위 말세 지말이라 불리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후 세상의 권세로나, 초자연적 이적이나, 경제적인 이권(利權)으로 아이 우리를 미혹하고 협박할지라도 주께서 광야에서 받은 사단의 시험 다 이기신 것처럼(마 4:1-11) 그리스도를 따라 거기에 넘어가거나 굴복하지 말고 오직하나님의 나라와 의만을 사모하며 그것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마 6:33).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 '땅'은 '하늘'과 대조되는 말로 죄악 세상을 뜻한다. 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1절의 짐승과는 또 다른 짐승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짐승이 1절의 첫째 짐승이 가진 모든 권세를 첫째 짐승을 대신하여 행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에게 절하도록 하며 첫째 짐승을 대신해 행하도록 허락받은 이적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점이다(12-14절).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두 번째 짐승은 첫째 짐승에 속한 자로서 충직한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거짓 선지자(16:13; 19:20; 20:10)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Hendriksen). 몇몇 학자들은 이 짐승을 로마 황제나(Charles),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하였다(Luther, Calvin).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종교 개혁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나온 것으로서 전 시대적인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이것은 종말의 때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며 교회를 혼란케 하는 기독교의 이단 세력이나 거짓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막 13:22). 한편 12:12에서 예언한 바대로 이제 사단은 땅과 바다에서 그의 세력을 확보하였으니 온 세상을 마흔두달 동안(5절) 지배할 것이다.
새끼 양같이 두 뿔이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 거짓 선지자로 나타난 둘째 짐승은 그 역할에 걸맞게 자신을 죽임을 당한 어린양 곧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분장하고서 나타난다. 그는 첫째 짐승처럼 파괴의 능력(7,10절)을 행사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위장된 모습을 취한다. 그리고 그는 위장된 모습 뿐만 아니라 거짓의 아비인(요 8:44) 용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 그는 철저하게 위장된 모습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즉 첫째 짐승은 세상 권력을 가지고 교회를 밖에서 박해하는 반면, 둘째 짐승은 거짓 교훈으로 교회를 내적으로 부패 타락시키는 자인 것이다.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 둘째 짐승의 권세와 영향력은 첫째 짐승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둘째 짐승의 권세는 첫째 짐승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 앞에서 행한다'는 것은 '첫째 짐승이 보는 가운데 그 앞에서 행한다'는 의미로 이는 둘째 짐승의 권세가 첫째 짐승의 허락하에서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 본문은 둘째 짐승이 첫째 짐승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다 더 명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에게 받은 권세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함으로써 첫째 짐승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나타내고 있다.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큰 이적을 행하되. - 둘째 짐승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큰 수단의 하나는 '기만적인 이적을 행하는 것'이다(마 24:24).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복음 증거자들에게 이적의 능력을 베푸신 목적은 '그들이 행하는 이적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확신하고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이적의 능력을 오히려 인간을 파멸로 빠뜨리는 데 사용한다. 즉 거짓 선지자들도 사단에게서 능력을 받아 이적을 행할 수 있는데(마 24:24; 막 13:22; 살후 2:9), 그들은 사람들을 참된 생명의 길에로 인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꾀어 영원한 사망의 길에로 끌고가기 위해 이적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러한 거짓 선지자의 술수에 미혹당하지 않도록 신령한 일을 능히 분별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상태,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항상 힘써야 할 것이다(고전 2:13; 엡 4:13).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는 이적은 과거에 엘리야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왕상 18:38).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함께 하심을 증거해 준 표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권능을 짐승도 행할 수있음은 그 짐승의 권세가 사람들을 충분히 미혹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란 순전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그들에게만 그럴 듯하게 보이려 드는 사이비성(似而非性)을 시사해준다(Lenski). 거짓 선지자들은 외모로부터 시작하여 그 행하는 권능에 있어서 조차 하나님의 종들을 모방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나아오나 실상 그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이니(마 7:15) 누구든 그들에게 미혹당한다면 결국엔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겉보기에는 동일할지라도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 어떤 것이 신령한 것인지를 능히 분별하는 참되고도 신령한 능력을 배양하여 그 술수를 가려내고, 가려낸 거짓을 물리치는 능력의 종들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사단의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을 미혹할 뿐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 준다. 이러한 사실은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살후 2:9,10)라고 한 바울의 말에서도 입증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다면 악은 우리를 결코 멸망시키지 못할 것이다.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은 첫째 짐승을 가리킨다(3절). 그 의미에 관해서는 3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둘째 짐승에게 미혹된 자들은 한번 미혹된 이상 그 짐승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짐승은 일단 거짓으로 꾸민 외모와 화술(話術), 그리고 이적 등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 다음, 사람들이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오면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것이다. 즉 둘째 짐승은 처음에는 첫째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대행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하더니(12절) 이제는 완전히 사람들을 자기 수하에 사로잡고선 더욱 대담하게 첫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만일 복종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이 추종한 자에 의해 도리어 죽임을 당하게 된다(15절). 이같은 사실만 보더라도 거짓 선지자가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은 그들에게 참된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끌고가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교훈에 미혹되면 그로부터 헤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애초부터 위장된 악의 세력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말하게 하고. - '생기'란 헬라어로 '프뉴마'( )인데 이 말은 '영혼'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생명'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의미에 따르면 짐승은 우상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절정에 달한 이적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짐승이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짐승에게 권능을 준 사단 자신이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짐승 역시 그런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짐승은 단지 기만적인 술수와 하나님의 권능을 모방한 이적을 행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짐승은 실제로 생명을 창조해 내는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다만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사술을 부린다는 의미이다(Plummer, Moffatt, Charles, Alford, Bruce). 한편 이러한 견지에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짐승의우상에게 생기를 주는 행위'를 어떤 사람을 내세워 절대적인 존재로 우상시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이것을 인조 인간 따위를 사용한 술수로 보기도 한다(Walvoord). 아무튼 어떠한 형태를 띠는 본절은 둘째 짐승이 사술을 이용해 기만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의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말세에 이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 우리에게 닥쳐 올지 모를 이러한 일에 대처하여 거짓을 능히 구별하여 물리치는 능력을 길러 두어야 하겠다.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다 죽이게 하더라. -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비록 자신을 대적하는 죄인이 있을지라도 회개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섬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인내하며 기다리고 계신다(겔 33:11; 벧후 3:9). 그러나 사단은 자비할 줄도 모르고, 사랑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인내할 줄도 모르며 오직 자신과 같이 모든 존재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자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기다림의 사랑을 베풀지 않고 자기를 반대하는 자는 가차없이 제거한다. 본문은 사단의 그러한 무자비함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13: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사단을 경배하여 목숨을 부지한 결과는 오른손이나 이마에 집승의 표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오른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 함은 짐승의 통제 아래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마'는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 함은 전인격적으로 짐승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표'란 헬라어로 '카라그마'( )인데 이 낱말은 본래 무엇에 '긁힌 자국'을 가리켰다. 이것이 발전하여 점차 '인' 또는 '조각'을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낱말은 노예나 동물에게 찍는 낙인을 의미하는 7:2,3의 '스프라기스'( )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본절에서 이 단어는 실제로 사람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찍은 표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사단에게 종속된 자임을 알게 해주는 사람의 행동 성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여기서 말하는 '표'란 유대인들의 관습을 배경 삼고 있는 것으로 실제적인 표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Plummer). 신 6:8에 보면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라고 되어 있다. 이 때 '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임을 깨닫고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양피지를 작은 상자에 넣어 이마와 팔에 매고 다녔던 경문(phylectery)을 가리킨다. 신 6장 자료노트, '경문' 참조. 만일 이 '표'가 그와 같은 문자적인 '표'를 의미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모방하는 사단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그와 비슷한 표식을 하고 다니게 할지도 모른다. 한편 그 의미는 비슷하지만 저자가 본서에서 하나님의 '인'은 '스프라기스'로 표기하고 짐승의 '표'는 '카라그마'로 표기한 것은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인 듯하다.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매매를 못하게 하니. - 이 말은 세상 권세를 잡은 짐승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 경제적 제재를 받을 것을 시사해 준다. 사실 지금까지의 기독교 2,000여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크고 작은 형태로 각종 제재와 박해를 받아 왔다. 당시 로마의 핍박을 피해 카타콤(catacomb)으로 숨어든 성도들이 그랬고, 그 이후로 각지에서 각양의 성도들이 또한 그런 상황 속에 처해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그러한 상황은 경제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성향이 훨씬 강했으며 그 범위 역시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본절은 본절이 말하는 때가 되면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의 강력한 사회적 · 경제적 제재 조처가 가해질 것임을 시사해 준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부분적이지도 않고 은밀히 시행되지도 않고 공개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발생할 것임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즉 소위 말세의 대환난기에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삶의 영역에 걸쳐 각종 제재와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A.D. 10세기경에 아라비아 숫자가 발명되기 전까지 로마 사람들은 문자로 수를 표시하였다. 예를 들면 헬라어에서 α(알파)는 1이라는 수로, β(베타)는 2라는 수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이들 문자는 모아져서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숫자로 병용되기도 하였다(Jorhnson). 그 후 아라비아 숫자가 사용된 뒤에도 헬라인들이나 로마인들은 숫자를 문자로 표시하고 나서 그것을 해석하는 숫자풀이 놀이를 즐기곤 하였다. 이 놀이를 헬라인들은 '이솝세피아' (Aesopsepia)라고 불렀다. 또 이와는 반대로 어떤 인격체의 이름을 숫자로 바꾸어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보통 그 이름을 가진 대상을 두려워하거나 그 인격의 신비성을 높이기 위해 암시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 였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저자는 짐승의 표를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로 언급했을 것이다. 아니면 짐승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기 위해 상징적 의미를 가진 숫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 짐승의 정체를 밝혀 내는 것과 그 짐승을 이기는 방법은 바로 '지혜'에 있다. 이 지혜는 인간의 지혜도 아니며 사단의 지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믿음으로 얻어지는 신령한 지혜이다. 이 지혜를 받은 자가 총명한 자이며 그가 짐승의 정체를 밝혀내고 거짓과 기만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짐승과 대항하여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수는 사람의 수니. - 여기서 '사람의 수'가 어느 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수인지(Bousset, Moffatt) 아니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상징적인 수를 지칭하는지(Plummer, Gunkel, Holtzmann)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 지금까지는 대체적으로 이 수가 어떤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 수가 사람의 계산법에 따라 계산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상징적인 수로 이해되는 것이 학자들 간의 추세이다(Lenski).
육백육십육이니라. -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이수를 어느 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수로 이해하여 왔다. 때문에 이것을 숫자 놀이에 의해 이름을 풀이하는 방법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 이름들에는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오르내렸는데 그 중 가장 유력하다고 지목되었던 인물은 네로였다. 즉 '네로 황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네론 카사르'( )인데 이것을 로마자로 표기하면 'NRON KSR'이다. 이 문자를 숫자로 옮기면 '50+200+6+50+100+60+200' 이며 이것을 합한 수가 666이라는 주장이다(Smith, Charles). 이 해석은 '스미스'(Smith)가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네로 재출현설이 본장을 이해하는데 부적합하였듯이(3절 주석 참조) 육백육십육이 네로라는 설 역시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만일 이 짐승이 네로였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어야 했고, 네로에 의해 세계의 종말이 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에 사람의 이름을 대조시키자면 수도 없는 많은 인물이 회자(贈災)될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로마 황제 티투스, 칼리굴라. 베스파시아누스, 트라야누스, 이단자 줄리안, 겐세릭, 로마 교황 베네딕트 9세, 바오로 5세,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 종교 개혁자 루터, 칼빈, 신학자 베자, 낙스, 그리고 나폴레옹, 히틀러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거론됐으나 그것들은 다 글자 그대로 숫자 놀이에 불과했다. 따라서 본문의 666은 구체적인 인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면 666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짐승의 수 666'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니 그 곳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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