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다
송선주
매일 집 주위를 걷다가 오늘은 조금 벗어나서 걸어 보았다. 머잖은 곳에 오렌지밭과 정원 사이로 황토 흙이 깔린 길이다. 그곳에는 각종 예쁜 꽃이 만발했다. 하얀 장미, 부겐베리아, 보라 Orchid Rock Rose, 파이브 스타 재스민이 풍기는 향기에 취해 걷는다. 난의 수술대궁이 무지개 색 아이스크림 같다, 발아래 작은 풀잎에서 보라색 앙증스러운 꽃이 피었다. 수없이 밟혀 납작 했지만 저렇게 완벽한 꽃을 피워 내다니 경이롭다. 새로운 땅으로 옮겨져 낮선 풍토와 환경을 잘 극복하고 자라 사회 곳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이민자녀들을 보는듯하다. 모퉁이를 지나면 넓은 잔디밭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어린이 놀이터와 그룹 운동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걷는 사이사이 운동기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허리 돌리기, 팔 회전 기구, 철봉, 무거운 기구를 어깨에 메고 스쾃 운동하는 기구 등 다양하다. 주말이면 풍선들이 여기저기 장식되어 파티 장소가 되기도 한다.
위험한 나무나 유리 조각이 있나 흙바닥을 유심히 살펴보니 깨끗하다. 맨발 걷기에 안전할 것 같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화단 가에 두고 걸었다. 약간 굵은 모래가 있어 지압 효과도 됐다. 처음에 조심스레 조금씩 걷다가 이제는 좀 더 먼 거리 왕복 한 시간을 걷는다. 걷기도 하고 운동기구도 애용한다. 친구 두 명도 같이 걷고 있다. 발이 까마귀발같이 그을려 시커멓다.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같이 걷는 친구 한 명은 매일 당뇨 첵크를 하는데 수치가 120에서 90으로 내렸단다. 나도 보드라인인데 다음 피검사에서 효력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파상풍 예방접종도 했다. 종종 걷다 보니 지나가는 이들이 "Barefoot’" 하며 엄지 척을 한다. 자기들도 하고 싶다며 아프지 않으냐고 묻기도 한다.
지인이 맨발 걷기 소식과 효능을 종종 보내주어 관심 있게 보던 중이다. 고국에서 최근 맨발 걷기가 인기를 얻고 있다. 각 지자체가 곳곳에 황톳길과 둘레 길을 만들어 시니어들이 즐기고 있다. 맨발걷기를 하면 혈압과 심장에 좋고 체중 감소와 당뇨에 효과적이란다. 또한 염증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수면의 질을 높인다고 한다. 접지 효과로 발과 발가락의 힘을 키워 하체근육을 튼튼하게 한다고 오늘 아침 한국 TV방송에 나왔다. 대한민국맨발학교도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
지난해 한국방문 때다. 동생이 사는 고향집에 들렀다. 집 앞에 있는 선산을 찾아 부모님과 웃어른들께 인사드리고 내려오는데 많은 이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산길 주위 소나무 사이로 띄엄띄엄 철쭉이 보인다. 황강물이 유유히 산을 휘감아 흐르는 은빛 모래사장과 함께 어릴 때 더없이 높아만 보이던 갈마봉이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리는 등산코스로 변해있다. 그들을 따라 오르다 맨발로 걷는 사람이 있어 나도 내려오며 신발을 벗어들고 조심스레 내려왔다. 산길은 나무 계단 사이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새 산을 오른 지 3시간이 지났다. 동생이 걱정이 되었는지 전화를 했다. 왕복 3시간의 산행이 너무 무리였는지 그날부터 감기가 찾아와 일주일 동안 약을 먹으며 다녔다.
요즈음은 종종 친구들이랑 산행을 간다. 차를 타고 오 분 거리다. 지난겨울 비가 많이 내려 군데군데 길이 파이고 갈라졌었다. 한동안 못가 본 사이 불도저가 산길을 넓게 잘 정리하였다고 친구가 얘기했다. 그곳에는 개미굴과 말똥이 많았다. 누군가 키우던 조랑말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들이 스스로 번식하고 먹이를 찾아 인적이 드문 새벽녘에 떼를 지어 다닌다. 걷다 보면 토끼 다람쥐 뱀도 자주 만난다. 주말이면 혼잡하여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다.
새로 닦은 산길. 부드러운 흙이 포근히 발을 감싼다. 길섶에 주황색 파피꽃이 벙긋하다. 산비탈을 숨 가쁘게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을 거두어간다. 우리 동네도 교회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저기 오렌지 밭과 아보카도 농장,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개발 중인 단지도 보이고 물이 줄어 바닥을 보이는 저수지도 있다. 어느 날 친구랑 얘기를 나누며 내려오는데 길 가운데 새끼 뱀이 내 발 앞에 있어 기겁을 했다. 그 후론 그곳에서 맨발로 걷는 것을 중단했다. 뱀 가족도 따스한 햇볕이 그리웠나 보다. 이곳은 그들의 지역이니까.
너나없이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이들을 보니 우리도 덩달아 가파른 산등성도 오른다. 지인이 준 등산용 지팡이가 유용하다. 앉으면 죽고 일어서면 산 다란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