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지향과 한국문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통일 지향의 문학의 흐름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문학의 근원은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에서 출발한다. 6. 25라는 단일민족의 참상은 반세기를 넘도록 민족적인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통한의 현실에서 우리 문학도 다양한 변모를 이루게 되고 지속적으로 우리 시인과 작가들이 추구해야 할 숙명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하면서 분출한 문학적 소재와 주제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와 더불어 통일 염원의 진실로 형상화하는 정서가 하나의 통일관으로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다. 6.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우리는 전쟁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관한 작품을 많이 써서 발표했다. 전쟁 중에도 종군작가단을 결성하여 전쟁 현장을 누비며 시와 소설을 써서 참전 용사들에게 용맹을 북돋았던 당시의 우리 문학은 완전히 전쟁문학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문학의 변모 과정은 전쟁문학의 초기 단계로 이처럼 종군문학에서부터 현재의 통일 지향의 문학까지 형성되면서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장식하게 된다. 전쟁의 페허 속에서도 살아 있는 자들은 재건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생존의 위기를 극복해 가는 와중에서 우리 문학은 그 시대적인 비극의 탄식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의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대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 숲을 이순신(李舜臣)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모윤숙 시인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중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의 전장에서 죽어 있는 ‘국군’의 전설 같은 상황을 적시하고 있어서 우리의 전쟁 문학은 더욱 비참한 현실을 엿볼 수가 있다. 초연(焦烟)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碑木)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탈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1964년 중동부전선 백암산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육군소위 한명희는 잡초 무성한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이끼가 낀채 허물어져 있는 돌무덤 하나를 발견하고 그 옆에 녹슨 철모가 뒹구는 무덤 머리에 꽂힌 썩은 십자 나무기둥의 묘비, 그 주위에 핀 산목련... 한명희 소위는 그 병사의 나이가 자신과 비슷한 것을 생각하면 차마 그 무덤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처절한 상황이 묘사된 시로서 화천의 비목과 같이 젊은 무명용사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헌시를 썼다. 「비목」이다. 그후에 정일남 씨가 곡을 붙여서 지금까지 노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최인훈의 소설「광장」이나 선우 휘의「불꽃」서기원의「이 성숙한 밤의 포옹」한말숙의「신화의 단애」박경리의「시장과 전장」등 전후 문학파들이 인간상실과 실존주의 경향의 작품들로 전쟁문학을 다양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2. 분단문학과 남북문학 교류 지난 2000년 6. 15 남북 정상(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은 한반도의 정치적, 사회적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되고 우리 문학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그동안 저항문학, 참여문학, 민중문학, 민족문학 등의 이름으로 진보성향의 문학이 대체로 분단문학을 독보적으로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지 여기에 따르는 큰 업적은 남북문학 교류를 실행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현실로 다가온 문학 교류는 남북 양측에서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북쪽에서 폭우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계획은 무산되었고 그후에 금강산에서 약식으로 시행하였다. 우리 문학이, 아니 문인들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전초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개최한 교류 현장에서 김남주의 다음과 같은 시「조국은 하나다」를 한 참가자가 읽어서 북측 참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는 우리측 참가자의 말을 듣고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민족이 화해하고 우리 문학이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교류 사업에 이와 같은 편향적이며 그들이 좋아할 작품을 낭독해서 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어쩌면 진정한 교류의 목적에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물론 참가 주최가 민작이니까 그쪽 취향의 문인들이 대거 참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얻어진 성과는 무엇이지 지금도 명백하지가 않다. 이처럼 분단문학의 이해를 임헌영 교수는 어떤 통일문학 심포지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분단문학’이란 넓게는 8.15 전후 분단의 잉태부터 앞으로 통일 될 때까지의 모든 문학을 통섭하는 한국 현대사의 시대구분 명칭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 남북한 분단 상태로 인하여 야기된 민족사의 모든 아픔을 그린 문학에 한정시켜 논의하기로 한다. 그렇게 좁혀도 현대 한국문학에 나타난 분단 소재 문학은 엄청나게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도저히 다 다룰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우리 민족사에서 ‘분단’이란 그 원인과 그로 말미암은 각종 파생 작용과 진행 상태, 그리고 전망과 결과 등등은 너무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다만 범박하게 말한다면 이 문제야말로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자세가 절실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민족사에서 분단의 많은 제약을 감내하면서 그 극복을 위한 상호간의 노력이 필요하며 국가의 통일정책이 어떤 방향인가 하는 그 근원이 명백해져야 한다. 역사는 지난 밤 내 꿈 속의 새처럼 어둠을 풀어 선회하는 꼬불꼬불한 강물이었나 민통선 부근, 파르라한 숲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 한 마리 포롱포롱 울음 울며 아직도 아픔이야 아픔이야 날개 찢긴 산하에는 말없이 흘러간 핏빛 세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아 남과 북이 자유로운 구름 한 점 닮을 수 없었느니 응어리 진 가슴이여 砲煙을 묻고 이젠 눈물을 거두며 뜨거운 사랑, 어화 둥둥 凍土에 뿌릴거나. 아직도 삭막하기만 한 어느 전방의 풍경이다. 졸시「민통선 부근」에서 만난 새 한 마리마저 자유롭지 못한 채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오늘의 분단 문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참상의 현장이다. 3. 통일지향 문학의 전망과 과제 우리는 지금까지 전쟁문학에서 분단문학으로 그 형태와 양상을 전환적으로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통일문학을 지향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분단문학을 통일지향 문학으로 바꾸어 지칭하였으며 그 중반기 이후부터는 정치계에서도 ‘통일론’이라는 어휘 대신 ‘남북한 사회통합론’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렇게 성숙된 통일에 대한 논의가 현실적이고 정교한 민족 정서의 통합론이 바로 통일론의 심화 확대이며 체계적인 통일 이후에 실제로 남북 사회의 이질화 현상을 동질성으로 봉합시킬 수 있는 정서의 창출에 대한 절실성이 빚은 결과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제 우리 문학은 남북 통합 준비시대를 맞아 많은 변모를 하고 있으며 북한문학 역시 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남북 주민의 만남을 다룬 소설이나 통일 가상 소설이 난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당분간 절실한 소재로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핏줄이 같고 말과 관습이 같고 음식과 옷차림이 같은데 왜 우리는 담을 쌓고 지내야 하나! 왜 우리는 서로 다른 깃발 아래 살아야 하나! 철책 장벽으로 갈라놓았다고 우리의 강토가 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깃발의 모양이 다르다고 우리가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심장이 같은 피로 뛰고 우리의 입술이 같은 말로 맴도는 한 우리는 영영 남이 될 수 없다! 이 땅이 하나이고 저 하늘이 하나인 것처럼 김종길 시인은 작품「우리는 하나」에서 이와 같이 통합의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철책 장벽’이 우리를 분리시켜 놓고 있지만, ‘핏줄이 같고 / 말과 관습이 같고 / 음식과 옷차림이 같’고 ‘이 땅이 하나이고 / 저 하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는 영영 남이 될 수 없다’ 는 절대절명의 언술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문학의 전망과 과제는 무엇일까. 복거일 소설가도 어느 문학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우리 미래의 핵심적 부분인 통일을 이루는 데서 우리 시민들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정은 통일을 위해서 문학이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자못 크다는 것을 뜻한다. 통일 국가를 지향하는 남북한 주민들의 열망을 보다 구체적인 꿈으로 다듬어내는 일에서 예술의 몫은 결코 작지 않고 가장 사실적인 예술 형태라는 점에서 문학의 기여는 실질적일 수 있을 것이다. 통일에 기여하는 문학은 통일 국가로 구체화될 미래에 비추어 현대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살피고 생생한 모습으로 담아내서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살피면, 지금까지 우리 문학의 공헌은 작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나온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북한 정권과 남한의 좌익의 역할을 터무니 없이 긍정적으로 그렸다. 그런 작품들의 부족과 잘못을 지금 북한의 참상이 무엇보다도 유창하게 지적한다. 앞으로는 개항 뒤 한반도의 역사를 편견에서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핀 문학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 특히 분단 뒤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살핀 문학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긴요하다. 바로 그런 작품들이 우리가 열망하는 미래를 떠받치는 과거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능력이 통일을 이루는 물질적 바탕이고 대한민국의 번영과 자유를 가능하게 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통일 국가의 이념과 체제가 될 터이므로, 더욱 그렇다. 이러한 전망은 어쩌면 탁상공론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인 이념의 형태로 남아서 성행하고 있는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혼돈 속에서 진정한 대한민국의 애국이 무엇이며 통일의 성취 기본개념이 흔들리는 현실에서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자못 의심스럽기도 하다. 왜냐하면, 구태에서 탈피하지 못한 문단의 분파의식, 순수냐 민족이냐 양분된 이념적 성취 개념이 아직도 모호하다는 점이다. 과거 민중문학이나 민족문학을 표방한 일련의 편향된 국가 정책과 더불어 지난 10년간 여기에서 득세하거나 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린 일부 문인들의 양상은 지금도 그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거나 우리 문학과 문단에서는 통일 지향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실현해야 한다. 휴전 협상 때 쓴 구 상 시인의 「초토의 시 10」을 읽어보면서 통일의 의지를 다시 확인하여야 한다. 초토의 시 10 -휴전협상 때 祖國아, 沈淸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 詩人이 너의 이름을 부를 양이면 목이 멘다. 저기 모두 世紀의 白丁들, 도마 위에 오른 고기모양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만 하다더냐. 祖國아, 거리엔 희망도 절망도 못하는 백성들이 나날이 환장해만 가고 너의 원수와 그 원수를 기르는 벗들은 너를 또다시 두 동강을 내려는데 너는 오직 생각하며 쓰러져 가는 갈대더냐. 冤魂의 나라 祖國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 온 것은 悲鳴뿐이었지. 여기 또다시 너의 마지막 맥박이듯 어리고 헐벗은 형제들만이 北으로 발을 구르는데 먼저 간 넋을 풀어 줄 노래 하나 없구나. 祖國아, 沈淸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祖國아 통일에 대비한 우리 문학은 대단히 예민한 예고가 필요하다고 채수영 교수는 말한다. 우리 민족성의 과거와 현재, 한국 사회 구성 원리의 복잡한 결말에서 이 예고한 단서는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통일이 이루졌다고 해서 우리 문학의 문제가 무난하게, 매듭없이, 통합되리라는 생각은 무모한 예견이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현상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괴리되어 있던 생활방식이나 사유의 지향점 등등이 동화를 하여 단일민족이라는 융합을 성취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상호간에 이의 성취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강에서 全鳳健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을 보았습니다. 발돋움하고 보았습니다. 그러기를 30년 이제는 나이 들어 흐린 눈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 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으로 부는 바람의 허연 뒷덜미나 보고 앉았습니다. 시퍼렇게 살갗 튼 발뒤꿈치나 보고 앉았습니다 비무장지대 김 송 배 바람아, 북녘에서 남으로 떠돌다가 지뢰밭 어디쯤에서 혹시 버려진 녹슨 철모를 보았는가 민들레 꽃 한 송이 삭아버린 역사를 뚫고, 저혼자 핏빛으로 흔들린다 어느 병사가 죽음으로 외친 함성 산중턱 어디메서 옹옹대는 바람아 통일, 평화, 자유…… 그냥 녹이 슨 우리들의 꿈과 잠들 수 없는 영혼은, 함께 핏빛 한으로 얼룩진 저 민들레. 우리의 통일 염원은 이렇게 작품으로 얼룩지고 있다. 4. 나가면서 이 발표문은 통일문학에 대해서 초고를 집필하던 중 한맥문학가협회의 청탁으로 그 일부만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미완성의 원고이므로 기승전결 구조뿐만 아니라, 문맥이나 문장의 구성이 미흡한 점에 깊이 사과하며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2012. 8.4~5. 강원도 양구, 화천일대에서 개최하는 한맥문학가협회 세메나에서 주제발표 원고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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