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1-2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이는]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성도는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갔다(눅 23:43). 또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는 다 변화를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인들 중에 낙오자가 없도록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3절] [이는]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들어감이니라].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이미 믿는 우리는 죽은 후에 하나님의 안식, 즉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또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의 안식과 평안을 맛보며 누린다(마 11:28; 요 14:27).
[4-6절] 제7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안식이 있고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다. 복음은 죄로 인해 저주받은 세상에서 수고로이 사는 인생들에게 안식의 소식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셔서 부르실 자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았으나 순종치 아니함으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했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다. 사람은 자신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7-9절]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여호수아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은 천국의 영원한 안식의 모형이었다. 영원한 안식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수고로운 삶은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왔다(창 3:17-19).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수고에서 구원을 얻고 평안과 안식을 정신적으로 이미 누리고 있고(마 11:28) 또 장차 천국에서 그것을 영육으로 풍성하게 그리고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이다.
[10-11절]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예수님 믿고 죽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눅 16:22, 25; 23:43) 지금 천국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다(계 14:13).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라고 권면한다. 신앙생활과 성화(聖化)는 우리의 성실한 노력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그러한 노력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믿고 순종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옛날 이스라엘 선조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본에 떨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믿음과 순종의 삶을 힘써야 한다.
[12-13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드러남이니라].
본문은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이유를 보인다. 즉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숨은 불신앙과 불순종을 남김 없이 다 들추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마땅한 의무에 대해 깨달음이 부족하여 게으르고 부족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람을 구원시키기에 유능하다. 이 말씀은 사람의 마음의 숨은 생각과 뜻을 꿰뚫어 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
[14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저자는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심을 다시 한번 더 언급하면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구약시대에 에녹과 엘리야를 통하여 예표되었고 신약시대에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서 증거되었다(행 1:9-11). 승천하신 그는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계심을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승천하신 신적 구주이신 큰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다.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할 때 큰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말한다. ‘믿는 도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의 내용을 말한다. 그것의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속죄사역을 이루셨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것을 굳게 믿고 확신해야 한다.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하다’는 원어(쉼파데사이)는 ‘동감하다, 동정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곤을 경험하셨고 미움, 비난, 욕, 배신, 매맞음, 또한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목마름과 고통까지 경험하셨다. 또 그는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는 죄가 없으셨다. 그는 참 사람이시며 또한 참 하나님이셨으므로, 그의 인성(人性)은 그의 신성(神性)의 도우심과 보호 속에서 무죄 상태를 유지하였을 것이다. 실상, 그는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죄인들을 위한 대속(代贖)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죄인은 자신의 죗값을 받아야 하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께서는 대속 제물이 되기에 합당하셨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 제물이 되시기에 합당하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크신 대제사장, 하나님의 아들, 승천하신 자, 우리의 연약을 동정하실 수 있는 자, 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자가 계시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우리가 부족하거나 연약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신적 구주를 주셨던 것이다. ‘때를 따라 돕는’이라는 원어(에이스 유카이론 보에데이안)는 ‘때를 따라 적절한(timely) 도움을 위해’라는 뜻이다. ‘담대히’라는 원어(메타 팔레시아스)는 ‘담대히, 확신을 가지고’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한 때마다 그의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그의 이름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기를 원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거울 삼아 불신앙과 불순종을 버리고 믿고 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이시다. 그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 시시때때로 도우시는 중보자이시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말씀을 통해 그를 더욱 알고 믿고 확신하고 따르자.
셋째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그는 우리의 부족과 연약을 잘 아시는 자이시므로 우리를 더욱 동정하시고 도우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적절한 도움을 얻기 위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