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09

[알찬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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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NTER

w.알찬10

09.

marguerite -1

모든 문명이 멈춘 세계. TV도, 인터넷도, 통신도. 모든 게 단절되었다. 동떨어졌다. 암울하고 초라한 세상에 나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는데.

지금 내 앞에는 그가 있었다. 그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모순적이다. 그는 내게, 두려움과 위안을 함께 품게 했다.

"밥 먹어."

"... 생각 없어요."

이틀째 굶고 있는 내게 그가 찾아왔다. 

"먹어."

명령조의 목소리가 싫어 눈을 떴다. 여전히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그와 눈을 맞췄다.

또박또박 말했다.

"싫어."

화가 난 그가 내 손목을 멋대로 잡아 일으켰다. 어젯밤부터 지독하게 나를 옭아매는 몸살에 아무런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끌렸다. 

다리가 풀렸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내 모습을 보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좋을 수가 없었다. 

"...너."

"..."

"아파?"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시체손보다 더 차가운 그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난데없는 찬기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기다려."

닿았던 손이 떨어졌다. 다시금 정적. 아롱져 떨어지는 개념과 사고능력. 나는 왜 그에게 가지 말라 외치고 싶을까.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일전에 내가 사용했던 얼음주머니가 똑같이 들려 있었다.

"너 열 높아."

제정신이 아닌 정신으로 그의 지침을 따랐다. 따라주는 해열제를 들이키고, 침대에 누웠다. 춥다. 머리에 닿은 얼음주머니를 몇 번이나 쳐냈다.

"해야 돼."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려는 나와, 그런 내게서 이불을 뺏어내는 그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추워. 내 반복되는 한마디에 남자는 불안한 듯 입술만 축였다.

"아픈 너한테 나쁜 짓 할 생각 없어."

머뭇거리던 그의 손이 내 윗옷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렸다. 수치심도, 당혹감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만 몹시 추웠다. 싫다고, 춥다고 하지 말라고 화를 내도 그는 기어코 내 아래까지 뺏었다. 추워. 추워. 내 가는 외침은 묵살당했다.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이불을 향해 손을 뻗지만 남자는 그마저도 걷어내버렸다.

정신이 맹했다. 피부가 아리도록 차가운 것들이 자꾸 내 몸을 훑었다.

"네가 이렇게 해줘서"

"..."

"...나는 나았는데."

귀찮고 고통스러운 것들과 상생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차라리 정신을 잃어버리는 게 나았다. 춥다. 너무 추웠다.

THE HUNTER

추위와 오래 사투했던 것 같다. 꿈을 꾸었다.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내게 꽤 큰 충격을 던졌던 꿈. 

감당할 수 없을만한 충격에,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꿈을 꾸었다. 조심스레 눈을 떴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배경에 나는 풀려있던 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도경수, 그의 존재.

얼마나 오래 내 옆에 머물렀나. 창틀 가득 스며든 빛을 머금은 그가 있었다. 내 손을 꼭 잡고, 풀어줄 생각은 절대 없다는 듯. 침대에 얼굴만 기댄 채 새우잠이 든.

내 작은 인기척에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비비고 나를 바라본다. 차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손이 내 이마로 향한다.

애처롭게, 입을 연다.

"...아프지마."

"..."

"힘들어."

"..."

"...마음이."

내게 투정이라 볼 수 없는 투정을 부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가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리지도 않은 채 그 자리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눈이 뜨였다. 지극히 본능적으로. 

공기에는 고소한 깨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남자가 요리를 하나보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서야 내가 속옷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 아래 잘 개어있던 옷을 찾아 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천천히 힘겹게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나 이제 괜찮아요."

왜 내려왔냐는 타박 대신, 그는 앉아있는 내 앞으로 깨죽 그릇을 내밀었다. 물, 그리고 숟가락까지 부수적으로 챙겨준 후, 건조대에서 마른 담요 하나를 꺼내 내 어깨 위로 덮었다. 

그의 빤한 시선이 익숙해졌다. 부드럽게 녹아드는 쌀알을 삼켜넘기고 그와 눈을 맞췄다.

"어제는..."

"..."

"태어나 세 번째로 죽을 뻔했어요."

"..."

"지난 두 번은 약을 먹어도 소용없었어요. 뭘 먹어야 할지도 몰랐고."

"..."

"고마워요. 살려줘서."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행동반경을 따라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에서 초조함이 묻어났다. 쉬어야겠다는 한 마디와 함께 뒤를 돌았다. 그리고 얼마 못가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잡았다.

"지켜줄게."

"..."

"계속 보듬어줄게."

내 최고의 진심을 담아, 미소 지었다. 그리고 뒤돌았다. 걷힌 미소 뒤로 씁쓸함이 묻어났다. 

진정으로 날 지키는 게 뭔 줄 알아? 내게서 떨어져 주는 거. 내 가족 목숨을 담보로 겁박하지 않는 거. 그게 지켜주는 거다. 재판대에 올라 사형선고받고, 내 앞에서 영영 꺼져주는 게, 그게 보듬어 주는 거다.

THE HUNTER

내가 아픈 것을 핑계로 그는 수시로 내 방을 들락였다. 한동안 나를 응시하다가, 나가고. 또 돌아와서 나를 바라보고. 꽤 오랫동안 그 행동을 반복했다. 

"오늘 며칠이에요?"

내가 그 질문을 건넸을 때는 또 다른 해가 떠오른 후였다. 내 맞은편에 앉아 빵을 녹이던 그의 손끝이 멈췄다. 불편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입이 열렸다.

"29일."

동면 해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내 입가가 웃었다. 녹은 빵을 썰던 손도 멈추고 나를 응시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지마."

"..."

"나는 그거 싫으니까."

옷걸이에 걸려 있던 코트를 신경질적으로 어깨 위에 두른 남자가 집을 나갔다. 통유리 밖으로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점점 아물어 가고 있었다. 내 마음도, 몸도. 샤워할 때마다 시큼했던 다리의 유리 상처도, 살살 긁으면 썩어 떨어지는 손바닥 위의 피딱지도. 이 겨울도. 모두 다.

"이리 와봐."

불러보지만, 오지 않는다. 와서 저번처럼 내 다리에 털도 비비고 해봐. 상체를 낮추고 고양이와 눈을 맞췄다. 하품을 하고 눈을 감는다. 내 말은 들은 체도 않은 채.

시간만 가길 기다렸다. 어서 빨리 해제 경보음이 울리길, 간절히 바랐다. 책상 앞, 빼곡한 글씨에서 떨어진 내 눈이 곧장 창밖으로 향했다. 남자가 돌아오고 있었다. 손도 차던데, 장갑이라도 끼고 다니지. 검은 코트 소매 아래로 흘러나온 두 손을 보며 생각했다.

그의 걸음이 멈췄다. 시선을 올린다. 눈이 마주쳤다. 뿌연 입김, 또렷한 눈빛, 찬 바람에 제멋대로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안 들어오고. 왜 서있어요.

서있게 돼서.

들어와요. 추우니까.

좋아해.

다 들렸다. 그의 마음이. 그래서 내가 먼저 외면했다. 

돌연변이 연구학. 마지막 페이지가 매끄럽게 넘어갔다. '만물의 모든 객체는 돌연변이로부터 시작되고, 끝맺는다.'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나는 책을 덮었다. 동면기가 끝나기 전에 결국 완독했다. 

낮잠을 자는 동안 꿈속에서는 몇 번이나 해제 경보음이 울렸다. 창밖으로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엄마는 일찌감치 나가 시설 점검 순번표를 뽑고, 수돗물을 틀었다. 30분 동안 틀었는데 아직도 빨간 물이 나오네. 하며 찝찝해하다가, 아직까지도 관 속에 틀어박혀 더 자겠다 우기는 오빠의 관을 툭툭 치며 일어나라고 타박했다.

그러나 감겼던 눈을 뜨면 엄마 대신 살인자가 있었다. 애정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살인자 헌터가.

동면 해제일 전날은 항상 날씨가 포근했다. 발 닿지 않은 눈은 녹아 짓뭉개지며 눈 위로 내가 남겼던 모든 흔적을 지워냈다. 창문 밖 풍경. 그 풍경을 배경으로 그와 마주 보고 앉았다.

"스팸 잘 먹길래 구웠어."

"..."

"케찹도 다 먹어서 새로 가져왔어."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내일이면, 역사 속으로, 그리고 내 기억 잔재에도 남아있지 않을 그와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스팸 위에 뿌려진 케찹이 문득, 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잡상스러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포크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남자의 시선이 불안했다. 더 먹어.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대화를 시도했다. 

동족 대 동족으로, 순수하게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결정적으로,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생명공학도로.

"죽었어요?"

"..."

"가족 말이에요. 죽었어요?"

정적. 내게 머무르던 그 시선이 아래로 깔렸다. 음울했다. 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도, 동요 없이 아래로 곧게 깔린 그의 눈도, 창밖으로 빛을 잃어가는 하늘도.

"동면기 때, 죽은 거죠?"

"...응."

내가 했던 생각이 맞았다. 남자는 지금 제 부모가 수면 중 사망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어미와 함께 깨어있었다. 동정보다는 진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엄마가요? 아빠가요?"

"아빠는 없어."

"엄마가요? 엄마만?"

내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욕심 하나로, 그의 상처를 건드렸다. 

무덤덤하잖아. 무덤덤해질 때, 됐잖아. 

"엄마만."

"몇 살 때요. 외할머니는요. 외가 쪽은요. 엄마 말고, 또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있었어요?"

지독한 후유증은, 때때로 공격적인 인격을 탄생시킨다. 나는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질문들을 쏟아내렸다. 엄마를 따라 잠을 자지 않는다라? 우발적 발생 외에도, 사립체처럼 모계로만 유전되는 모계유전성 질병들이 있다. 그럼, 혹시. 약으로 치료할 수는 없을까.

"...그만해."

남자는 더 이상 증폭된 내 호기심 충족을 거부했다. 그러나 나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들어야 했다. 도망치듯 일어나 멀어지는 남자 뒤로 꾹꾹 눌러 담아왔던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어떻게 죽었어요. 언제 죽었어요."

"..."

"왜 죽었어요!"

여전히 절뚝이던 남자의 걸음이 멈췄다. 화가 난 얼굴이다. 원망으로 가득 찬 얼굴이다. 내가 미워 죽겠다는 얼굴이다. 상관없었다. 대답만 해준다면.

"그만 하랬잖아."

"자살인 거죠?"

"화내고 싶지 않아. 너에게."

분명한 긍정이었다. 화를 꾹 눌러 담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입가가 말아올라갔다. 알 수 없는 쾌감에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저명한 학자보다도, 더 먼저 깨달았다. 수면욕 결핍은 모계유전, 그리고 어쩌면 질병으로 분류해놓을 수도 있다는 것.

유리에 내 모습이 비쳤다. 흰 이가 다 드러날 만큼 위로 치솟은 입꼬리가, 흥분으로 크게 뜨인 내 눈이, 낯설지 않았다.

09.

marguerite
 

어둠 너머, 누군가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칼을 들고, 찌르고, 또 웃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 인기척을 느낀 헌터가 나를 돌아보지만, 나는 이미.

"깨있는걸."

2월 1일. 대낮의 악몽이었다. 

동면해제 경보음이 비어있던 세상을 가득 울렸다. 전파 같은 것들이 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들처럼 나 또한 기상했다. 가방 가득 내 물건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그래 봤자 책이 전부지만. 엉클어진 침대 시트를 정돈해놓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남자가 있었다. 이별을 직감하고 있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당장이라도 떠나겠다는 내 복장에, 세상을 다 잃어버린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그의 앞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말이에요."

"..."

"9년째 겨울을 혼자 보내왔어요.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어느 순간, 눈이 뜨여서 일어나보니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

"시계는 멈춰있고, 엄마는 일 분에 숨을 겨우 세 번 쉬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누워있고.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배고파서, 울면서 선반 위에 유통기간 지난 딸기잼을 막 퍼먹었어요."

"..."

"그러다 배탈 나고, 편의점, 음식점 다 돌아다니는데, 문이 다 잠겨있는 거예요. 길거리에는 생전 보지도 못 했던 동물 사체들이 널려있고. 춥고, 배고프고, 눈물만 나오고."

"..."

"그 무엇보다 나를 처절하게 옭아맸던 건 외로움이었어요."

"..."

"누구나 한 번쯤 해보잖아요. 고요한 도시에 혼자 깨어있는 상상, 그런 거 영화로도 나왔잖아요."

"..."

"좋을 줄 알았는데. 지옥 같더라고요."

"..."

"그리고 그 지옥 속에서 나는 무려 9년이나 살았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

"그 지옥도 끝났으니까."

남자의 시선이 가만히 내게 닿았다. 피하지 않았다. 헌터. 그는 살인마이기 전에, 내 외로움을 누구보다 더 깊게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신적 공생관계. 나는 이 시간을 기점으로 그 관계를 끊어놓을 생각이다.

"이제, 약속대로 내 가족 돌려줘요."

그의 입술이 머뭇거렸다. 다시 한 번 강단 있게 말했다.

"돌려줘요."

"그 자리에 있어."

"뭐라고요?"

"... 깨어났을 거야. 둘 다."

공기를 타고 내 귓속을 간들이던 경보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도, 내 감정도. 모든게 멈췄다.

"다시..."

"다시 안 와요."

"..."

"나 안 와요."

가방을 들어맸다.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갈구하는 그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축축하게 물기 진 땅을 밟을 때마다, 발밑에서 그의 눈물이 배어 나오는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국 멈춰 섰다. 이미 죽은 나무 사이로 가려져버린 그의 저택을 돌아봤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09.

marguerite
 

죽은 다람쥐의 회금빛 털이 겨울바람에 흩날렸다. 새가 쪼아먹은 듯, 살이 갈라지고 장기는 흘러 있었다. 저것들을 보며 9년 전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었더라. 표정을 짓기도 전에 그냥 울어버렸었지.

왔던 길을 따라 걸었다. 고가 도로변을 걸으며 활기를 되찾은 도시를 마주했다. 시끌시끌, 시설 점검 대기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대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대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그 반가운 기계음에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김여주. 잘 잤어?"

"아, 아주머니. 네. 잘 주무셨어요?"

"잘 잤지. 왜 나온 거야? 표 받지 않았어? 아까 엄마가 대기표 받아 가던데."

"그냥요. 인사하려고."

모두가 깨어난 이 시점에서, 내 의식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난간을 잡고 힘겹게, 아주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살짝 열린 문틈새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추슬렀다. 살아있다. 엄마.

"김여주. 잘 잤어? 계집애가 일어나자마자 어딜 뛰쳐나간 거야. 날도 흉흉한데."

"잠깐..."

"잠깐 뭐."

"잠깐 바람 좀 쐤어."

잘 잤어, 엄마? 잘 잤어 오빠? 

김여주, 어디갔다와? 난 순번표 뽑으러 간 줄 알았네. 일어나자마자 달려서 순번표 빨리 뽑았다. 번호 182번이야. 올해는 땅에 얼음이 하나도 없어서 순번 대기표 뽑으러 가다가 미끄러지는 사람도 없더라.

세 개의 묵직한 철관은 어느새 겹쳐 누워있었다. 빗자루로 그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던 오빠가 철관에 웬 흠집이 나있느냐면서, 이거 불량 아니냐며, 환불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난데없는 진상을 부렸다.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야. 그게 연초부터 오빠한테 할 소리냐?"

"공부할 거야."

불만 섞인 얼굴로 중얼이던 오빠를 뒤로 방문을 꼭 닫았다. 쟤는 일어나자마자 공부야. 투덜이는 오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꼭 잠갔다. 꽉 닫힌 창틈 새로 지난 2개월 간 들어보지 못했던, 그러나 아주 익숙한 소음이 새어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꼭 감았다. 뜨고 싶지 않았다.

오후 2시. 문명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집에, 어른들은 집 밖으로 나와 동물 사체와 배설물을 치웠다. 오후 3시. 물과 전기가 들어왔다. 오후 4시. 대부분의 구역의 시설 점검이 완료되었다. 5시. 전화 개통. 소집된 공무원들은 피비린내를 따라 헌터가 죽인 시신을 수습했다. 6시. 새해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ABS뉴스 김정안입니다.

이변 없이 아나운서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현재 시각까지 수습된 시신 52구, 비통한 울음소리가 카메라 가득 담기고, 열린 창밖으로 헬리콥터가 떠다녔다. 우리 동네였다.

화면 아래 사망자 명단에 민지의 이름이 보였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라. 비탄에 잠긴 도시, 수심과 공포에 그을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랬을 수밖에 없더라.

'네, 다음 소식입니다. 과학수사대가, 피해 인근지역의 발자국 찍힌 배설물을 채집하고 있습니다. 채집된 배설물은, 국과수로 이송되어, 찍힌 발자국의 연식을 세부적으로 조사해...'

그가 실수로라도 밟은 발자국의 동태를 살핀다고 한다. 그렇게 헌터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머리카락 한올, 조그마한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던 그를, 잡을 수 있어?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뉴스가 끝났다. TV를 꺼트렸다.

"아, 왜 꺼!"

오빠의 짜증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여유가 내겐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자꾸 아른거려서, 속이 답답해져와서.

그러나 나는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일생일대의 제보가 될 그 이야기를.

네 경찰서입니다.

"살인자와의 공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네. 저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고사항이 아니라면 다음에 전화해 주시겠어요. 저희가 업무가 바빠서.

"신고사항입니다."

네, 네. 신고요. 네. 말씀하세요.

"세 시간 일찍 일어났어요. 제가 그 살인마를."

"... 보았어요."

수화기 저편 너머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보세요. 연초부터 장난전화 거시면 안됩니다. 벌금 200만 원 물으셔야 하거든요? 예?

"봤다고. 내가. 다 봤다고."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읊조렸다. 고여 드는 눈물과 함께 내 세상을 뱉어냈다.

09.

marguerite -1

 

[아콩린콩]

헐..왜에

[dnjgn]

안돼 그러지말자 베풀어줬는데 뭘로갚는거냐

[오필리아]

그만해ㅠㅠㅠㅠ

[kzhzx]

그러면안도ㅐ지.....

[멩예림]

여주야그러지마...ㅠㅠ

[김준면엑젤웃]

여주야 오ㅑ그래

[박승희]

경수는 나가서 눈 치웠던거 아닐까?

[순에리]

헐... 확실하지 않을수도 있는데ㅠㅠ

[슈도전]

아여주야 하지마 ㅠㅠ

[꼬마오리]

여주야ㅠㅜㅜㅠ안돼ㅠㅠㅜㅠㅠㅜ

[백현병]

아 진짜 그러지마 여주야

[콕콕이]

이러면 아니되오...

[징검다리]

하지마ㅠㅠ

[서울로흘러]

왜..아..뭐야...뭐죠... 여주야 왜그래..

[우루릉]

여주가그동안 많이 힘들었나봐요오..

[조응대]

아..제발 그러지말아라 여주야..그래도 너한테 피해갔던건 크게 있지않았잖아...ㅜㅜ

[이엘]

여주야 그러지마ㅠㅜㅜㅜ

[니니꽃]

아 안돼!!!!!!여주야!!!!!!!!!그러지마ㅠㅠ

[옥상으로따라와]

아뭐지

[꽃설린]

여주야 너 왜그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지중지]

헐 발자국을 그러면 경수가 일부러 그 발자국 위에 자기 발자국을 찍은건가 ㅓㄴ터를 위해서...?

[빠삐코]

아 이게뭐야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