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서씨 시조묘와 고려 명장 강 민첨 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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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가면 고려 초 시대의 장법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두 번 있다. 흔히 예산에서의 답사길은 남연군 묘와 이 회창씨 선산을 찾게 되는 데, 좋은 기회를 두고 그냥 가게 된다.
고려시대의 장법은 전북에 있는 황희 정승 조부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용은 대부분 강룡에 속한다. 따라서 호종사는 뚜렷하지 않아도 용이 강하고 주산의 성봉이 강하면 용호사가 약간 비주해도 무방하다. 또한 행룡에 있어 기복이 대둔하여 과협처가 멀리서 질단하면 또 한 번의 기의 묶음인 속기처를 요구하지 않는다. 수구 또한 용호가 강룡의 내룡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워 벌어져 있거나 약간의 직수이어도 개의치 않는다. 물론 이것이 장법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 용을 제일 우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의 터잡기가 바로 고려의 역사를 말한다는 분도 있으나 증험은 모르겠으니 확언할 수 없다.
이런 장법으로 터잡기를 한 것이 바로 대흥 탄방에 있는 달성 서씨 시조 묘와 대술 이티리에 있는 진주 강씨 은열공파 중시조인 강 민첨 공의 묘를 볼 수 있다. 두 묘는 달성 서씨 시조묘의 좌룡이 비주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다.
이 강장군의 묘는 원래 실전했었는 데 그 후손들이 이쯤에 묻힌 것을 기록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자리를 몰랐었기 때문에 선대의 묘를 찾기위해 이곳에서 머슴을 살다가 주인이 강장군 묘에서 소를 끌고 오라는 소리를 듣고 찾았다는 설화가 있고, 달성서씨묘는 한 겨울에 죽은 아버지를 묻을 곳이 없어 눈이 녹은 불개미집에 깊이 파고 돌을 깔고 장사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돌을 깔고 1000명이 지내야 하는 자리인지라 우연이지만 장법이 맞아 그 후 번성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횡룡입수한 강 민첨 장군 묘는 借主한 주산이 멀리서 보아도 특이하고 수려하다. 약간의 수고로움만 아끼지 않는 다면 전북 쌍치의 전의 이씨 묘와 함께 행룡과 절목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