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문화원 어등의 脈]
빛뫼고을 老巨樹, 마을숲
환경부 환경교육프로그램 인증지원단
(사)광주생명의숲 운영위원
광산문화누리봉사단
김 세진
E-mail : kseijin@hanmail.net
1.들어가는 말
2.광산의 老巨樹, 마을숲
1)광산의 老巨樹
2)광산의 마을숲
3)광산구 보호수 현황
4)광산구 老巨樹 설명
5)광산구 老巨樹, 마을숲 생육현황 조사
3.나가는 말
1.들어가는 말
광주광역시의 5개 자치구중에서 생육상태가 양호하고 민속문화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어 마을주민들의 휴식처 역할과 생활을 같이하는 保護樹와 老巨樹 그리고 마을숲의 原形 이 보전되어 있는 자치구는 단연 빛뫼고을이다.
이에 광산문화원 문화누리단에서는 2014년 11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빛뫼고을에 분포하는 保護樹(24그루)와 노거수의 분포 및 마을숲의 생육현황의 기초조사를 실시하였다.
광주광역시에 분포하는 보호수는 9종 68개체로 광산구에는 18개체, 노거수는 10종 155개체이다(2010년 조사)
2.광산의 老巨樹, 마을숲
1)광산의 老巨樹
광산구 관내에는 24그루의 보호수(2010년 7월 26일 기준)와 75그루가 넘는 老巨樹가 자라고 있다.
보호수(保護樹)란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서 명목, 보목, 당산목, 정자목, 호안목, 기형목 및 풍치목 등 보존할 가치가 있는 수목으로 고사 및 전설이 담긴 수목이나 특별히 보호 또는 증식 가치가 있는 수종을 지자체 장이 지정 관리한다.
노거수(老巨樹)는 일반적으로 수령(樹齡)이 오래 된 큰 나무로서 마을 공동체의 문화유산인 당산나무나 전통마을나무를 말한다. 노거수는 수령이 오래된 생태적 지표식물일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의 커뮤니케이션 장이자 쉼터이며 전설을 지닌 수호목으로서 문화적인 가치 또한 매우 큰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지역별 노거수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노거수의 생육실태 및 보호관리 분야에 관한 연구로서 노거수의 생육현황 및 수목생장상태를 각각의 기준에 따라 조사하고 관리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연구는 모두 노거수의 생물학적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노거수 감소원인으로 도시화를 들고 있다.
광주광역시 전역에 분포하는 보호수는 10종 70개체로 이중 광산구가 19개체로 가장 많고, 다음은 서구 17개체, 북구 13개체 그리고 동구와 남구는 각 11개체 순이다.
보호수는 전체 보호수의 절반이상이 농촌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마을입구와 측면에 위치한다.
또한 보호수 주변에는 대부분 모정이 있었으며, 모정과 더불어 주택과 마을길이 보호수와 가까이 있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인해 생육공간이 부족하여 노거수 생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주변 공사로 인한 뿌리에 많은 손상을 입은 노거수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개체들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아 고사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보호수는 고사와 전설을 지니고 있으며, 당산나무로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보호수가 생장하는 지역의 최저 해발고도는 15m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반촌마을의 느티나무이고, 최고 해발고도는 송학동 불교사의 팽나무가 위치한 곳으로 병풍산 해발 265m이며, 나머지 보호수들은 18~86m 사이의 해발고도에서 생육하고 있다.
보호수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명도동 명곡마을의 팽나무와 원임곡 죽산박씨 대종가의 회화나무가 단순 수령계산법과 주민들의 구술을 종합하면 500년~600년 수령이고, 지산동 산음마을의 느티나무와 송대동 대촌마을 은행나무는 400년~500년, 고봉 기대승선생이 심었다는 두정동 은행나무도 수령450년~500년으로 조사 되었다.
2)광산의 마을숲
빛뫼고을은 도시화가 진행상태가 늦어지는 현상으로 지금도 농촌 마을 마을숲의 原形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 마을숲이 존재한다.
나주오씨들의 집성촌이며 광산구 3대 洞天중 한 장소인 대명동촌(大明洞天)이 자리한 명곡마을이다.
우리민족의 전통취락 구조인 배산임수 지형을 보완하기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구맥이 기능을 겸한 전통 마을숲으로 소나무 띠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국의 알려진 유명 마을숲에 뒤지지 않는 명품 마을숲이다.
동림동 작림(鵲林)마을 마을숲은 느티나무 줄나무로 조성된 마을숲이다.
休 = 人+木(사람이 나무와 어울린다).
사람은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휴식과 휴양의 장소로 숲을 이용하여 왔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의 맛을 평생 잊지 못하고 늘 동경하는 것처럼 마을 숲은 유년시절의 가장 멋들어진 놀이터였고 친구들과 함께 매미와 사슴벌레잡고 술래잡기하면서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의 타임머신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닿고 싶은 장소이고, 그 숲의 나뭇잎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명절날에 고향을 찾아가는 길들이 다소 막히거나 힘든 일상의 일들에 지친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위안과 마음의 평안함을 제공하는 공간인 주변의 마을 숲에 들려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 볼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귀중한 장소인 이곳에서 행복한 삶의 원천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마을 숲이 있는 곳의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높고 주민들의 자아실현 수준 또한 높아서 사소한 시비 거리조차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을 숲은 분명한 우리와 후손들의 공공자산입니다.
그렇기에 마을 숲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만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숲이 존재하는 한 영원무궁하게 숲의 가치가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전해질수 있습니다.
숲은 우리마음속에 평안함을 주기에 마을 숲의 파괴는 우리 모두의 고향을 잃어버리는 샘입니다.
일상에서의 일들이 피로하다고 느낄 때,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이 괴로울 때 이 마을 숲을 찾아가시면 나약해진 자신들의 건강을 재충전하고 진정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해결되는 행복감을 맛보실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 숲은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적 혹은 간접적 영향과 수많은 심리적인 안정감, 편안함을 주고 있고 우리 모두가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있을 때의 편안함에서 느끼는 것처럼 자신이 태어난 마을 숲에서도 이와 같은 심리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을 숲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마을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형성된 문화적 상징물로 마을의 특정한 장소에 조성되어 특별한 목적아래 보호되거나 특별한 용도로 활용되어 오고 있는 온 마을 문화의 요체이고 마을의 문화가 녹아있는 마을 문화의 구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장입니다.
인간이란 원래 숲속에서 살아왔고, 문화 역시 숲과 함께 했기에 숲을 떠나서는 인간은 살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마을 숲은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토착적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대상이고, 마을의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 원동력이 전달되는 장소 역시 마을숲 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에 예전부터 자연의 힘에 의존하고 자연을 신으로 간주하였기에 마을 숲에 있는 나무들은 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숲안에서 자라는 나무를 신목으로 정한 것은 신목(神木)은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우주나무로 마을사람들의 신성한 숭배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마을 숲 주변이나 개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을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우리 생활과 같이해온 나무들이 대부분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매운탕에 넣어 먹는 산초나무, 초피나무 열매는 디스토마 구충제로, 잎에서 누린 냄새가 나는 누리장나무의 잎은 근육통을 치료하는 파스대용으로 가을철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물봉선의 꽃과 줄기는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즙이나 우린 물을 몸에 바르거나 목욕을 시켜주면 잠시나마 가려움에서 벗어 날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마을 숲의 성쇠는 한마을의 흥망을 좌우했습니다.
마을 숲의 현재와 미래는 현대 도시환경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더불어 미래 도시환경의 모습도 예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당산나무로 대표되는 마을의 노거수들은 하늘과 지상을 이어주는 마을의 영목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을의 애환을 함께 나누면서 개인이나 공동체를 권선징악 하는 수호목으로, 허약한 마을의 기를 살려주는 풍수목으로, 풍수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방재목으로, 아들딸을 점지해주고 벼슬길을 열어주는 기원 목으로 존재해왔습니다.
마을의 노거수는 시원한 그늘로 대화의 장을 제공해주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공동체를 사는 지혜와 안락한 휴식을 얻었습니다. 또, 전설과 민담의 소재가 되어 사람들의 정서를 살찌게 했고, 장엄하고 변화무쌍한 자태로 풍광을 아름답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마을사람들의 정신적 영목인 마을의 노거수를 위해 해마다 정성을 들여 술과 음식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주었습니다. 때때로는 밑둥치를 씻겨주고 금줄로 감싸 보호해주었으며, 종종 막걸리와 오줌을 부어 무병장수를 기원해주었습니다.
마을 노거수의 기능은 지표수와 지하수의 흐름을 느리게 하여 마을우물에는 항상 좋은 물이 넘처나고, 마을에는 수리상승작용(밤 동안 나무들이 많은 양의 지하수를 흡수한 후 다음날 낮 동안 수분을 증발시켜 공기 중의 수분 함량을 높이고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산소를 담은 공기를 마을로 공급하는 역할)도 해줍니다.
70년대 초까지 마을숲이 잘 조성된 동네의 사람들은 마을바깥으로 출타할 때 “숲 밖에 간다”란 말들을 하셨다고 합니다.
(1). 명곡마을 숲
광산구 명도동에는 나주 오씨 집성촌인 명곡(明谷)마을이 있다. 멀리서 보면 드문드문 색깔조각이 보일 뿐, 그곳에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짙푸른 소나무숲 때문이다.
긴 소나무숲 ‘띠’가 보이는 명곡(明谷)마을!
“동네를 가려놔야 좋다고 조상들이 마을 입구에 심었다고 그래. 언젠가는 동네 훤하라고 나무 몇 그루를 베었는데 남자들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도 들었어. 또 그 옆 팽나무가 비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하면 동네에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마을 어르신들의 한결같이 이야기 하신다. 그렇기에 마을숲은 수구막이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논과 논 사이에 둔덕을 마련하여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은 것을 보면, 아마도 비보 수림의 용도였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나무가 무성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경운기 이동에 걸릴 적 거린다는 이유로, 혹은 거센 비바람에 쓰러져 듬성듬성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소나무(소나무과:Pinus densiflora Sieb. et Zucc)의 수령은 대게 100~150년 정도로 여겨진다. 소나무란 이름은 나무중에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을미사변의 주동자이자 매국노인 조중응의 지시에 따라 일본이름인 [赤松(Akamatsu):융희4년(1910년)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의「농상공부고시9호-和韓韓名대조표」에서 「소나무」란 이름은 쓰지 말고「赤松」이라고 써라] 적송을 자랑스럽게 부르고 있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명곡마을의 자랑인 팽나무가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관련단체들의 노력으로 ‘2010-12’라는 표식을 달고 지금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명곡마을숲 입구에 있는 버드나무(흉고:390cm, 수고:20cm)와 맞은편의 거대한 팽나무(흉고:400cm)역시 태풍 볼라벤 피해를 입어 뿌리째 뽑혀 고사했다.
광산구 본량동(명도동) 87 명곡(明谷)마을 진입로변에 자라고 있는 200년생 팽나무와 60년생 팽나무 외에도 명곡(明谷)마을 주변에 소나무들이 많이 식생하고 있어서 솔숲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팽나무는 나주 오씨(羅州吳氏)들이 조선시대 중엽에 이곳에 정착하시면서 팽나무를 심었다.
팽나무는 산기슭이나 계곡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명곡(明谷)마을 진입로 주위에 뒷산이 북산천 기점(계곡)이 위치하고 있고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자라던 것으로 보인다.
3)광산구 보호수 현황
보호수 현황
구분 | 계 | 느티 나무 | 버드 나무 | 은행 | 팽나무 | 소나무 | 테다송 | 떡갈 나무 | 이팝 나무 | 굴참 나무 | 회화 나무 | 측백 나무 |
광산구 | 24 | 14 | 2 | 2 | 3 | 1 |
| 1 |
|
| 1 |
|
일련 번호 | 지 정 연월일 | 지 정 번 호 | 소 재 지(번지) | 수 종 | 유 형 | 본수 | 지정당시수령 (년) | 지정당시수고 (m) | 지정 당시 흉고 (m) |
1 | 1982년 12월 3일 | 1982-33 | 광산 송대동 542 | 은행나무 | 풍치목 | 1 | 500 | 15 | 4.8 |
2 | 1982-34 | 광산 운남동 392-1 | 갈참나무 | 풍치목 | 1 | 320 | 13 | 2.7 | |
3 | 1982-35 | 광산 두정동 산82 | 은행나무 | 풍치목 | 1 | 450 | 12 | 4.2 | |
4 | 1982-36 | 광산 장록동 364-2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300 | 15 | 4.4 | |
5 | 1982-37 | 광산 신창동 1102-6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220 | 15 | 3.3 | |
6 | 1982-38 | 광산 쌍암동 653-1 | 버드나무 | 풍치목 | 1 | 230 | 6 | 4.5 | |
7 | 1982-39 | 광산 월계동 760-1 | 팽나무 | 풍치목 | 1 | 220 | 10 | 4.0 | |
8 | 1982-40 | 광산 임곡동 629-3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250 | 17 | 4.4 | |
9 | 1982-41 | 광산 송산동 864-1 | 느티나무 | 정자목 | 1 | 250 | 20 | 4.4 | |
10 | 1982-42 | 광산 내산동 754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150 | 15 | 4.3 | |
11 | 1982-43 | 광산 북산동 149-3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150 | 15 | 3.0 | |
12 | 1982-44 | 광산 양산동 316-1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170 | 16 | 4.8 | |
13 | 1999년 7월1일 | 1999-3 | 광산 동림동 422-1 | 느티나무 | 풍치목 | 1 | 300 | 20 | 3.7 |
14 | 1999-4 | 광산 동림동 422-1 | 느티나무 | 풍치목 | 1 | 300 | 20 | 3.7 | |
15 | 1199-5 | 광산 동림동 422-1 | 느티나무 | 풍치목 | 1 | 300 | 20 | 3.7 | |
16 | 2000년 6월21일 | 2000-1 | 광산 지산동 359-1 | 느티나무 | 풍치목 | 1 | 500 | 14 | 4.3 |
17 | 2000-2 | 광산 지산동 359-1 | 느티나무 | 풍치목 | 1 | 500 | 14 | 4.3 | |
18 | 2000-3 | 광산 지산동 359-1 | 느티나무 | 풍치목 | 1 | 500 | 14 | 4.2 | |
19 | 2007년 6월15일 | 2007-1 | 광산 송학동 999 | 팽나무 | 정자목 | 1 | 300 | 20 | 1.5 |
20 | 2010년 7월26일 | 2010-10 | 광산 서봉동 432-2 | 느티나무 | 당산목 | 1 | 250 | 12 | 3.5 |
21 | 2010-11 | 광산 박호동 627-8 | 버드나무 | 정자목 | 1 | 350 | 12 | 2.5 | |
22 | 2010-12 | 광산 명도동 524 | 팽나무 | 당산목 | 1 | 500 | 20 | 4.5 | |
23 | 2010-13 | 광산 임곡동 919 | 회화나무 | 풍치목 | 1 | 500 | 18 | 2.0 | |
24 | 2010-14 | 광산 산막동 846 | 소나무 | 풍치목 | 1 | 300 | 18 | 1.5 |
4)광산구 老巨樹 설명
老巨樹는 偉人을 만들고! 숲은 마을의 文化를 키운다는 격언처럼 오래된 노거수(老柜樹)는 언어(言語)이고, 나무속 결(나이테)에는 나무가 살아온 삶의 무늬인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라는 말처럼 노거수가 자라는 마을숲은 마을사람들의 삶이 축적돼 형성된 문화적 상징물로 마을의 특정한 장소에 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자연의 힘에 의존하고 자연을 신으로 간주하였기에 특별한 장소에 조성된 마을숲에 있는 나무들은 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어왔기에 광산구 관내에 보호수로서의 위치를 넘어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 가치가 충분한 명목(名木)과 보목(寶木)은 기념물로, 老巨樹는 보호수로 지정하고자 광산문화원 문화누리단에서 추진하고 있다.
(1) 두정동 고봉(高峯) 은행나무(1982-35호. 두정동 산82번지)
○ 생육현황 - 수령:483년, 수고:13m, 흉고:420cm
오래된 노거수(老柜樹)는 언어(言語)이고, 나무속 결(나이테)에는 나무가 살아온 삶의 무늬인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라는 말처럼 광주광역시 광산구 관내에는 광산구 보호수로서의 위치를 넘어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 가치가 충분한 명목(名木)과 보목(寶木)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빛뫼고을 광산을 대표하는 학자인 조선 중기 유학의 큰 별 고봉(高峯)기대승(奇大升).
두정동 두동마을에는 고봉이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
선비인 고봉이 정신적인 중심인물인 공자(孔子)를 숭상하였기에 항상 제자들과 은행나무 아래에서 글을 읽고 학문을 가르친 행단(杏壇)인 은행나무와 공자를 동일시하였기에 은행나무를 반드시 심고 길렀을 것이다.
두동(두말)마을은 고봉이 신접살이를 시작한 마을로 마을 뒷편 언덕위쪽에 아름드리 노거수(老巨樹)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30m 간격을 두고 자라고 있다.
은행나무는 광산구 보호수(지정번호:1982-35, 흉고:420cm, 수고:13m, 수령:약483년. 광산구 두정동 산82번지)로 지난해 겨울 광산구청에 광산문화원 누리단원들과 필자의 거듭된 요청으로 올봄 보호수임을 알리는 안내판은 설치되었으나 고봉과 관계된다는 설명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올해로 고봉선생이 태어나신지(1527년) 488년이고, 서거하신지(1572년) 443년이다.
두동마을에 신접살림을 차린 후 장자인 효증이 태어난 해에(1550년 8월)기념식수를 하셨다고 가정하면 465년이기에 활엽수의 단순 연령계산법으로도 수령 483년 적용은 무리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수 있는 고봉문집 내용 중에 은행나무에 관한 기록을 찾아내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은 광주시민들의 역할인 것 같다.
더불어 광산구 보호수인 고봉 은행나무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승격시켜 두동마을과 월봉서원을 연계하는 문화상품 개발과 고봉과 은행나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발굴하는 역할을 광산구청이 나서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지자체와 사찰중에서 나무를 문화관광 상품으로 가장 잘 활용하는 지자체는 대구광역시이고, 사찰은 부석사이다.
대구지역의 역사 속 인물들을 나무들과 연결한 ‘역사속의 인물과 나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역사 속 인물 24분과 인연이 있는 노거수와 연관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대구의 역사속 인물과 나무’ 24그루를 지정해서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상품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정착한 대구 동산의료원에는 1899년 존슨박사가 자신의 고향에서 72그루의 서양사과나무를 가져다 심고 신자들에게 보급하면서 대구를 사과나무의 대표과일로 만들었다.
이때 가져온 서양사과나무 1세대 나무가 고사하자 대구광역시의 주도로 2세목을 찾아내 동산의료원 구내에 식재하고 2000년 10월 대구시보호수(수령:71년, 흉고:0,9m, 수고:7m)로 지정하고 더불어 3세목도 식재해서 관리하면서 이를 청라언덕과 동산의료원 문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에는 5점의 국보와 4점의 보물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선비화가 자라고 있다.
조사당 건물 추녀밑에는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꽃아 놓은 지팡이에서 싹이나 자라고 있는 선비화(仙扉花=신선 집 꽃)가 있다.
식물명이 골담초(콩과:Caragana sinica Rehder)라는 잎떨어지는 작은키 나무로 수령이 500년을 넘었다는 말에 스토리텔링의 위력을 실감해 본다.
골담초(骨擔草)는 뼈를 책임지는 풀이란 의미가 있어 관광객들이 약으로 가져가기에 철망을 치고 보호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대구광역시와 부석사를 광산구청이 벤치마킹을 했으면 한다.
지난 5월초 고봉(高峯) 은행나무를 조사하던 필자는 은행나무 근원부 수피부분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흉고:10cm. 수령:약5년)를 발견했다.
고봉의 정신적 스승인 공자(孔子)를 상징하는 은행나무와, 학자(scholar)의 기개(氣槪)를 상징하는 학자수(學者樹)인 회회나무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자연스런 모습이다.
이런 이유는 늦가을부터 추운 겨울을 보내야하는 어치의 열매저장 습관 때문일 것 같다. 어치(까마귀과:Garrulus glandarius)는 텃새이면서 본능적으로 열매들을 나무들의 수피사이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
이때 저장된 회화나무 씨앗이 발아를 해서 수피사이에서 자라나 은행나무의 근원부 부패로 동공상태인 심재부분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 같다.
고봉의 학문사상 중 유학을 상징하는 은행나무와,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회화나무의 동거를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까?
고봉 은행나무를 보면서 늘 아쉬운 것은 광산구 보호수 임에도 주변 환경은 은행나무 생육에 지장을 주는 대나무가 주변을 점령하고 있어 주변 환경 개선이 시급하고 지난 볼라벤 태풍에 부러진 가지와 근원부 밑둥에 나있는 구멍(약30cm)을 메우는 외과수술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2) 죽산박씨 대종가 회화나무(2010-13호. 임곡동 919번지)
○ 생육현황-수령:약 500년, 수고: 8m, 흉고:660cm
“문화의 모태는 숲이고 노거수는 언어다”라는 말처럼 회화나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을 살려내고자 시민들의 의지가 대단하다.
광주시내에서 자라는 3그루의 회화나무 노거수중 단연 으뜸은 광산구 원임곡 죽산박씨 대종가 우물옆에서 자라는 수령 500년을 넘긴 회화나무(흉고:430cm)이고, 그 다음이 광주공원 회화나무(흉고:204cm)로 수령은 약 100년~150년 사이로 추정되기에 앞으로 잘 가꾸어야 할 나무이다.
또 다른 한그루는 2012년 8월 말 태풍 볼라벤에 의해 고사된 구 전남도의회 회화나무(흉고:약220cm)로 뿌리째 뽑혀나가 고사된체 그 자리에 서 있다.
회화나무(콩과: Sophora japonica L.)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행복 부르는 나무이다.
광주시 5대 가로수 중 하나인 회화나무는 영어로 Schola Tree라고 합니다. 학자나무라는 뜻이지요. 옛날 과거시험에 합격을 하면 기념으로 회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선조들은 회화나무를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아 집안에 심어놓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여겼습니다. 또 이 나무에는 벌레나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기에 좋은 기운만이 모여든다고 믿어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선조들은 이 나무를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게 하고 덕망 있는 선비의 집이나 서원, 사찰, 대궐 같은 곳에만 심었습니다. 그래서 장성 필암서원 입구 도로의 가로수가 회화나무인 것입니다.
회화나무 꽃이나 열매로 염색한 종이를 괴황지(槐黃紙)라고 부르는데 옛날에는 부적을 쓸 때 반드시 이 괴황지에 쓴 부적이라야 매우 영험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과거 할머니들은 갓난아이를 목욕시킬 때 회화나무 가지나 꽃을 우려낸 물로 반드시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치질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안을 화목하고 건강하게 하려면 집안에 한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어보십시요.
(3)명도동(明道洞) 대명동천(大明洞天) 명곡마을 팽나무(2010-12호. 명도동 524번지)
○ 생육현황-수령:약 500년, 수고:20m, 흉고:720cm.
팽총을 만들었던 팽나무는 마을의 당산신목으로 많이 심고 길렀다.
하늘과 땅으로 열린 빛의 숲을 거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 아름드리 팽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의 모태(母胎)가 숲이고, 그 문화를 유지하고 융성하게 만드는 화수분 역할을 하는 당산나무(노거수) 기능을 팽나무에게 맡긴 것이다.
노거수가 자라는 마을에는 우리민족의 토착신앙과 풍수, 유교 등 우리의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눈감아도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경관이기도 하다.
당산나무의 일차적인 기능은 마을의 구심점을 지탱해주는 구실을 하고, 동신이 깃들어 있는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의 마을숲이 생성되고 마을의 민속과 문화가 하나둘씩 생겨나듯이 마을의 개촌 시기부터 오늘까지 이 광경을 고스란히 지금까지 지켜보아온 유일한 생명체이다.
더불어 땅위에서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신들의 세계인 하늘의 초월 공간을 이어주는 신성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당산나무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 살아왔고 마을의 미래까지 같이 갈 미래의 마을지킴이인 동시에, 하늘 세상과 땅의 세계를 이어주는 우주목이자 세계수이면서 동신이 깃들어 있는 당산나무이자 신목으로서 신성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당산나무의 존재여부에 따라 마을문화가 결정된다. 당산이 곧 동신신앙의 여부와 동제 또는 마을굿 문화의 전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거수(老巨樹)에는 마을의 文化가 잠자고 있고, 光州의 미래문화(未來文化)가 싹트고 있다. 이 노거수에서 광주의 미래(未來)를 찾아내는 일은 광산구주민들의 눈(目)과 귀(耳)다.
팽나무(느릅나무과:Celtis sinensis Pers)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라는 잎 떨어지는 큰키나무로 열매는 달고, 내염성이 강해 바다가에서 잘 자라고, 옛날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른 비보림을 구성하는 마을숲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당산나무로, 하천재방에 많이 심어왔던 나무로 오랜세월동안 우리민족의 삶의 정서와 흐름을 같이 하고 마을 주민 공동체 의식을 상징화하는 문화성과 함께 나무를 사람처럼 생각했기에 매년 세금을 내는 팽나무도 있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번지 토지(12,232㎡)를 소유한 황목근(黃木根)은 천연기념물 제400호(수령:500년, 수고:15m, 흉고:3.2m)로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과 칠월 백중날 제사를 지내고 휴식을 취한다. 이때의 비용 일체는 황목근이 부담한다.
팽나무 종류에는 왕팽나무, 풍게나무, 검팽나무, 산팽나무, 노랑팽나무, 폭나무, 장수팽나무, 등이 있고, 잘자라 수관폭이 좋아 여름 그늘을 만든다.
팽나무란 이름은 열매를 이용한 팽총에서 비롯되었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어린시절 장난감은 자연이였기에 팽나무 열매를 이용한 팽총은 자연을 이용한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장난감이였다.
가을철 열매는 녹색에서 점차 노랗다가 붉어지며 다 익으면 붉은 갈색이 된다. 과육은 단맛이 있기에 씹어 먹은 후 작은 콩알처럼 남은 핵과를 이용하여 직경이 작은 이대(신이대는 잘못된 이름)구멍에 한 알씩 밀어 넣고 젓은 종이나 천으로 막은 다음 꼬질대를 꽂아 오른손으로 탁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팽나무 열매가 “팽”소리를 내면서 멀리 날아가는 소리가 '팽~'하므로 팽나무로 불렀다고 한다.
팽나무의 목재는 비교적 단단하고 변재(邊材)와 심재는 갈라지는 일이 없기에 가구재나 운동기구재로 많이 쓰이고 있고 조금만 풀기가 있어도 검푸른 곰팡이가 끼고 곧 썩기 시작하는 재질의 특성 때문에 청결을 제일로 하는 도마의 재료로도 쓰이고 있다.
팽나무 잎은 나비 애벌레가 좋아하는 먹이이기에 팽나무 주변에서는 나비관찰을 일년내내 할 수가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왕오색나비, 홍점알락나비, 수노랑나비, 흑백알락나비, 뿔나비 등의 애벌레를 관찰할 수가 있고, 겨울철에는 뿔나비는 성충으로, 다른 나비는 애벌레로 팽나무 주변에 쌓인 낙엽 아래에서 동면을 하기에 관찰을 할 수가 있다.
전남지역에는 팽나무가 마을숲을 구성하는 줄나무로 자라고 있는 무안 청천리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숲:천연기념물 제82호,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08호, 보성 전일리 팽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80호 세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광산의 3대 동천 중 하나로 마을의 유래는 이마을 입향조인 오희도공의 아호를 따서 ‘명곡’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며 일명 ‘대명골’ 또는 ‘대명동’ 이라고도 부른다.
장사제(長思齊)는 나주오씨 3세 오영달(참의공) 10세 오이구(도림공)를 제향하는 사당이다. 여기서 산길을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영사제가 나온다.
영사재(永思齋)는 대명동의 명곡, 골짜기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골짜기가 길어 장탄(長灘)이라 한다. 영사재(永思齋)는 난와(難窩)의 8대조 생로당 오효석의 재실(齋室)이다.
동구(洞口)에는 '대명동천(大明洞天)'과 '나주 오씨 세거지지(羅州 吳氏 世居之地)'라는 큰 비석이 서있다.
영사재(永思齋)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으며 부지 430㎡, 제각 54.23㎡ 규모이다. 영사(永思)의 뜻은 숭명의리(崇明義理)를 길이 잊지 않겠다는 춘추대의의 표현(공자는 결국 세상의 올바른 도를 세우기 위해 역사서를 썼다. 도가 없이는 세상이 혼탁해 졌고, 그래서 공자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그것의 선악을 분명히 밝혀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문제는 선악을 판가름하는 객관적 잣대가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객관적 기준이 없다면 설득력이 엇고, 그러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의 기준이 「춘추」의 큰 주제가 된다. 공자는 「춘추」에서 그 척도를 제시했고, 이를 춘추대의라 한다. 춘추대의에는 공자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인·예·천명 등이 포함된다. 공자는 춘추대의에 따라 사건의 선악을 가려 좋은 것은 높이고, 나쁜 것은 낮췄다. 이를 줄여서 포폄(褒貶)이라 불렀다. 이렇게 포상과 폄하를 기준을 삼는 역사 기술 방식을 춘추필법이라고 한다)이다.
영사재의 서쪽 뒤에 대명사(大明祠)를 건립하여 배청(排淸) 숭명(崇明) 의리의 종주(宗主)인 우암을 주벽에 모시고 생로당을 종향(從享)하고 있다.
'숭정일월 대명별구(崇禎日月 大明別區)'는 명나라 천하의 세계질서를 정통으로 삼고 청도 왜도 인정하지 않는 정신적 독립구역을 선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906년에 의병을 일으킨 죽봉(竹峰) 김태원(金泰元)장군의 진중에 무기를 공급하던 오상열(吳相烈)등이 광산(光山)지구 전략본거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오상렬(吳相烈, 1879~1907)의 이명은 오인섭(吳寅燮)이다. 광산구 본량동 대명동 출신이다. 1907년 후반부터 의병장 김준(金準)과 김율(金聿) 휘하에서 활동하였으며, 대명동 영사재에서 무기를 제작하였다. 그는 어등산과 석문산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07년 음력 12월에 용진산 사호치(沙湖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4) 느티나무(느릅나무과:Zelkova serrata Makino(漢)櫷木.
느티나무는 전국에서 잘자라는 잎떨어지는 큰키나무로 가을에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단풍이 매우 아름답다.
정자목으로 가장 많이 심는 나무로 괴목(槐木)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한자명의 괴(槐)자는 원래 회화나무 괴자로 회화나무의 중국 이름이 괴화(槐花)인데 ‘괴’의 중국 발음이 ‘홰/회’이므로 회화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 글자를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에 같이 쓰는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회화나무는 콩과에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해 그 출생 성분이 다른데도 말이다.
궁금증이 들어 대자전과 몇 가지 문헌을 추적해본 결과 놀랍게도 우리 선조들은 중국 한자에는 없는 나무‘목(木)’변에 10장생 중의 하나인 거북 ‘구(龜)’자를 합쳐 느티나무‘귀(櫷)’ 자를 따로 만들어 명명함으로써 그 이름값에 부응하도록 배려했다는 사실이다.
느티나무라는 이름은 노랗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노랗다, 누렇다(黃)의 눌이 눋으로 변한 다음 여기에 나모가 더해져 눋티나모가 되었고, 이것이 누튀나모 →느틔나모 →느티나무로 변한 것이다.
이제마는 사람의 체질을 4가지로 분류한 이른바 사상의학을 주창하였는데 일부 수목을 다루는 사람들 역시 나무의 습성을 4가지로 구분하여 사람과의 적절한 궁합을 꾀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무의 습성을 나누었을 때 나무들 중에서 양기(陽氣)를 띠고 있는 대표적인 나무가 느티나무이다. 충북 괴산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소백산 그늘의 음습함이 서려 매우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간간이 산간 가옥들이 들어있는 마당 가운데는 느티나무가 유난히 많이 심어져 있는데 특히 고목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선조들은 마을의 음(陰)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양기가 강한 느티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느티나무는 기운이 매우 센 나무이다.
우리나라 마을치고 정자목이든 당산목이든 향리목이든 동리목이든 간에 느티나무 한 그루쯤 마을 입구에 두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것은 마을을 보호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실려 있다.
마을 입구는 별의별 기운(氣運)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사람의 기운으로 치자면 큰 소리만으로도 혼을 빼놓을 만큼 센 기운이다. 노기에 찬 사람의 기운, 원망에 찬 사람의 기운, 아이들의 장난 기운, 실의에 찬 사람의 기운, 흥분에 찬 사람의 기운, 이런 저런 기운들이 다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오랜 세월을 견디는 나무이고 보면 느티나무는 가장 센 기운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풍수조경에서 소양인(少陽人)은 느티나무로 기운을 보충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재질이 강하고 질겨서 뒤틀리지 않고 무거우며 무늬와 광택이 아름다워 예의 귀목나무 가구는 예로부터 알아주는 고급 가구다. 또한 이른 봄에 어린잎을 채취하여 떡에 섞어 쪄서 먹기도 하며, 민간요법으로 고혈압 치료에도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실제로 전국의 1000년 이상된 노거수 60여 그루중 느티나무가 가장 많은 25그루에 이른다. 짧은 인생살이에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고 더 거대한 나무 앞에 인간은 의지하고 싶었으며, 뭔가 나무의 위력으로 복을 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느티나무에는 장수와 거대한 몸짓 이상의 정서가 있다. 사실 장수와 거대함으로 치라면 다른 나무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넉넉하다. 그 품은 소나무나 은행나무처럼 고고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느티나무의 넉넉한 품성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주고 기운을 북돋워 준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느티나무는 한국인 정서에 가장 알맞은 나무로 우리나라 새 천년의 상징 나무로 지정된 소이도 바로 이런데 있다 할 것이다.
(5) 동곡초등학교 內 주엽나무
○ 생육현황-수령:약 150년~200년, 수고:15m, 흉고:330cm.
동곡초등학교(1932년에 개교) 후문 옆에는 20cm가 넘는, 가시를 잔뜩 달고 있는 험상궂지만 달콤한 열매가 일품인 아름드리 주엽나무(콩과:Gleditsia japonica Miq) 한 그루 자라고 있다.
수령은 약 150년 정도(흉고 330m, 수고 15m)로 일부 지방에서는 쥐엄나무라고도 한다. 쥐엄이란 쥐엄떡(인절미를 송편처럼 빚고 팥소를 넣어 콩가루를 묻힌 떡)에서 유래된 말인데, 열매가 완전히 익은 내피 속에는 끈끈한 쨈 같은 것이 있어서 먹으면 달콤한 맛이 나므로 쥐엄떡과 비교돼 이런 이름이 생긴 것 같다.
주엽나무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라는 잎 떨어지는 큰키나무로 줄기와 가지에 예리한 가시가 있다. 이 가시는 한약재로 쓰고 있으며, 섬유질이 많아 손으로는 꺽을 수가 없어 전정가위로 잘라야만 한다.
나무는 주변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더 많은 가시가 나오지만, 생육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가시의 흔적만 나타난다.
잎은 아카시나무잎 모양이며, 꽃은 6월에 황록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길이 20cm 이상, 너비 2∼3cm의 비틀어진 큰 꼬투리 모양의 열매를 맺고, 약재로도 쓰인다.
주엽나무의 씨앗 하나의 무게는 0.2g으로 일정해서 예전에는 무게를 다는 저울추로 사용되기도 했다. 출애굽기 30:13에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하였는데, 1게라는 0.2g으로 쥐엄나무 열매 속에 있는 씨앗 한 알의 무게다. 그뿐 아니라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의 무게 단위가 캐럿(Carat)이고, 1캐럿의 무게가 0.2g인 것은 이 씨앗이 무게 기준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6) 등임동 불환정 무환자나무
○ 생육현황-수령:약 약100년, 수고:15m, 흉고:130cm.
어등산 산등성이가 있다는 데서 유래한 등임동(登任洞)을 배경으로 황룡강의 수채화 같은 전경이 사계절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기에 이 아름다운 자연을 삼공(고대 조정에서 가장 높은 세 개의 관직으로, 이들은 최고의 국무(國務)를 공동으로 책임졌다.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과 바꿀 수 없다는 의미에서 선비 임덕원(林德遠)지은 불환정(不換亭).
어등산의 울창한 수림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 한국의 전통정원과 조경이 멋들어진 불환정(不換亭).
한국의 전통정원에는 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꽃과 신록이 움트는 것을 보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는 봄.
짙은 녹음 밑에서 시원한 계곡물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유를 즐기는 여름.
붉은 바람이 불어오는 오색단풍(丹楓)나무와 풍성한 결실을 맛보는 가을.
긴긴 추위에 겨우겨우 살아가는 고독을 느끼는 겨울.
이러한 사계절의 변화를 눈과 마음, 그리고 몸으로 느끼면서 햇빛과 달빛, 비와 눈, 바람소리와 온갖 곤충들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자연의 시각적인 조형원리와 五感을 활용하는 정원을 구성하였다.
한국의 전통정원에는 자연숭배사상, 신선사상, 불교사상, 유교사상,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직선형 방지는 한국정원의 특징 중 하나로 이는 음양의 원리를 연못의 형태로 상징한 것으로 네모난 형태의 연못의 윤곽은 땅 즉, 음(陰)을 상징하고 연못 속의 둥근 섬은 하늘을 나타내는 것으로 즉, 양(陽)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쌓아올린 것은 음양이 결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는 음양오행설의 원리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못내의 둥근 섬은 신선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신선이 산다는 삼신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가 있기에 우리 전통 정원에는 서상(瑞祥)나무를 심고 길렀다.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나무들을 즐겨 심으셨기에 불환정(不換亭)에도 그대로 심으셨다. 불환정(不換亭)에서 자라는 서상(瑞祥)나무는 무환자(無患子)나무(무환자나무과:Sapindus mukoross Gaertner, 흉고:130cm)이다.
이 나무를 집안에 심어놓으면 상서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믿음을 갖고 계신다. 무환자나무는 한자로 무환자(無患子) 혹은 무환수(無患樹)라고 한다.
이 나무는 본래 중국에서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즐겨 심던 나무인데 그 열매가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되어 이런 이름이 생겼다 한다.
또 새까만 종자는 단단하고 반질반질하여 염주의 대용으로 쓰라는 석가모니의 불설목환자경(佛說木患子經)에서 잠념을 없애는 기도에 쓰는 염주는 반드시 무환자나무 열매로 만들어서 사용하라했고, 이름도 염주(念珠)나무라고도 불렀다.
학명속의 이름 sapindus는 인도의 비누(sapo indic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이고 영어이름은 아예 비누열매나무이다.
열매껍질과 줄기나 가지의 속껍질에 사포닌이라는 일종의 표면활성제가 들어 있어서 인도에서는 빨래를 할 때 우리 나라의 잿물처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열매껍질은 머리를 감는 데도 쓸 수 있다하니 머릿털을 건강하게 하고 환경보존을 위하여도 무환자나무의 열매를 이용해 봄직도 하다.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알려져있고 무환자의 옛 이름인 환(桓)은 산해경(山海經)에서도 볼 수 있다.
열매로 담근 술은 감기치료제로, 열매껍질은 죽은깨를 없애는 등 한약제로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의 무환자나무는 인도 원산으로서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남부 지방에 심은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높이가 20m, 지름 60cm에 달한다.
가지는 녹갈색이고 잎은 어긋나기하며 기수우상복엽으로 소엽은 9∼13개이다.
잎은 긴 달걀모양이거나 피침형으로 점첨두, 예저이며 길이 10cm, 너비 3∼4cm 정도로 뒷면에 주름살이 많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원추화서는 가지 끝에 달리며 길이 20∼30cm로 짧은 털이 있고 암수 한 나무이나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어 5월에 피며 지름 4∼5mm이고 적갈색으로 핀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 2cm 정도로서 10월에 익으며 황갈색으로 흑색 종자가 1개 들어 있다.
(7) 용강동 용강마을 은단풍나무
○ 생육현황-수령:약80년~95년, 수고:19m, 흉고:429cm.
양림(楊林)동산에서 선교사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은단풍나무
문화수도 빛고을을 대표하는 세 동산중에 호남신학대학교와 선교사 묘역이 자리한 양림동산에는 1899년부터 선교사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기위해 자신들의 고향에서 가져다 심은 은단풍, 페칸, 흑호도 세 종류의 나무들이 시나브로 우람한 노거수로 자라 양림동의 마을 문화를 키우고 위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세 종류의 나무들을 삶의 동반자로 인식한 마을주민들은 문화적 상징물로 마을의 문화가 녹아있는 마을 문화의 구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장인 것이다.
양림숲은 사유지이지만, 도심에 자리한 도심숲은 분명한 공공자산이다. 공공자산이라 함은 그 소유가 누구든지 그 가치나 편익이 소유자 혹은 특정한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공동체나 사회에 널리 향유될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아름드리 은단풍나무가 자라는 양림숲은 빛고을 도시숲을 대표하는 이미지숲이다. 근대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남아 지금도 살아 숨쉬는 그 내면에는 도시 정체성을 살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 긍지가 높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왜 그곳에 사는지 잘 알게 되며 따라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도시의 환경과 삶의 질을 개선키 위한 활동에 적극 협조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의 참여가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숲을 통한 도시정체성의 제고는 시민의 긍지를 높임으로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1899년 미국 남장로교 배유지(裵裕祉)선교사와. 오원(吳元)선교사 일행이 양림동산에 자리잡기 시작한 이후에 1907년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를 설립했고 1911년에는 제중병원(기독병원)을 세웠다. 선교사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목포에서 광주까지 오는 뱃길의 나루가 양림동산 앞 광주천에 있었기에 왕래가 편리했고 또한 이역만리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의 건강을 고려한 장소선택이 맞아 떨어진 결과인 것 같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이곳에 수령이 약400년(?)을 넘긴 호랑가시나무가(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7호) 자라고 있었기 때문 일거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오면서 고향에 있는 나무들도 가져와 수피아여학교 교정과 양림동산에 자리한 우월순(일순)(R.M.Wilson) 선교사가 사택(광주시기념물 제15호)주변에 심고 가꾸었다. 원예전문가인 우월순(일순)(R.M.Wilson)선교사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또 보리고개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페칸과 흑호도를 심었고, 단풍이 아름다운 은단풍 나무도 심었다.
이곳 양림동산은 국내에 심어진 페칸, 흑호도, 은단풍나무의 시원지기도 한다.
단풍나무과로 잎 뒷면이 은색이기에 은단풍나무(Acer saccharinum L.(영)Silver Maple. 단풍나무과)라는 이름이 붙었고 눈 내리는 2월 초순에 꽃을 피워 5월이면 프로펠러가 달린 열매가 바람을 타고 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때 발아된 씨앗은 1m이상 자라는 속성수 이기에 1930년대 씨앗 한가마니의 가격이 피아노 한 대의 값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귀한 대접을 받은 나무였다고 생각한다.
최근까지 선교사들의 혼을 담고 자라고 있었던 이들 나무들이 어느 순간 한그루씩 베어지고 있다.
호랑가시나무 앞 수피아여고 테니스 코트옆에서 자라고 있던 아름드리 은단풍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흉고:443cm, 360cm)는 지난 2012년 8월 볼라벤 태풍으로 넘어져 베어졌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그루(흉고:385,8cm)도 2014년 2월 중순 베어졌다.
은단풍나무 중 가장 크게 자랐던 우일선선교사 사택 주변 은단풍나무(흉고: 423cm-2007년 여름 베어냄)는 우일선선교사의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놀았던 추억의 장소였기에 몇년전 이제는 노인이 되어 이곳을 찾은 자녀들이 죽은 고사목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가져가 보관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전달했으나 노회측은 방부처리를 해서 현장에서 보존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자녀들은 큰 실망감을 안고 미국으로 돌아갔었다.
보존하겠다던 노회측은 2014년 9월 말 안전을 이유로 고사목을 인근 이대밭에 버렸다.
선교사 묘역 주변의 은단풍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흉고:328cm)도 볼라벤에 넘어져 베어졌고 마지막 남은 한 그루(흉고:309cm)만이 멀리 이국땅에서 선교의 사명을 띠고서 고단한 의료와 교육봉사를 하셨던 선교사 와 가족분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110년 동안의 땀과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수피가 뒤틀려 갈라지고 생육상태도 나빠 조속한 외과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8) 무양서원 곰솔(소나무과:Pinus thunbergii Parl)海松(해송)
○ 생육현황-수령:약250년~290년. 수고:15m, 흉고:288cm.
주로 바닷가에서 자란다고 海松이라고도 부르고, 소나무보다 잎이 크고 억새 검솔이라 하다가 곰솔이 되었다.
곰솔은 어릴 때 생장이 대단히 빨라서 소나무를 능가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 추월 당하고 만다. 또 나무의 성질은 소나무 보다 못하나 곧게 자라는 경향이 있어서 남부지방의 바닷가에서 방풍림으로 많이 심는다.
늘푸른 바늘잎나무로 암, 수 한그루 나무로 꽃은 5월에 피며 열매인 솔방울은 이듬 해 9월에 익는다.
소나무와 비슷하나 수피가 검고 겨울눈이 회백색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곰솔은 제주시 아라동의 천연기념물 160호이며, 그 외 익산 신작리의 188호, 부산 수영동의 353호, 전주 삼천동의 355호 곰솔 등이 역시 보호받고 있다.
(9)꽃개오동(능소화과: Catalpa specieosa Warder (영) Western Cat)
○ 생육현황-수령:약70년. 수고:5m, 흉고:310cm.
북미가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1905년 평북 선천의 선교사가 처음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껍질을 회갈색이고 세로로 얕게 갈라진다. 잎은 어른 손바닥을 펼친 것 보다 더 크고 마주나기하나 때로는 돌려나기도 한다.
잎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은 얕은 심장저이며 가장자라가 밋밋하다. 열매는 가늘고 납작하며, 명주실 같은 가느다란 실을 달고 있는 씨가 안에 잔뜩 들어있다.
개오동과 매우 비슷하며 꽃개오동은 잎이 달걀모양, 점첨두 이다. 꽃은 연노랑 빛이고 꽃잎의 안쪽에 노란 선과 자주색 반점이 있다.
개오동은 잎이 3∼5개로 얕게 갈라지고 얕은 심장저이다. 꽃은 흰빛이고 꽃잎 안쪽에 약간 붉은색을 띄는 반점이 있다.
(10)개비자나무(개비자나무과:Cephalotaxus harringtonia K. Koch)
○ 생육현황-수령:약100년~150년. 수고:7m, 흉고:149cm.
개비자나무는 비자나무와 매우 닮았으나 비자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비자나무의 생장한계선은 내장사 이남지역이지만 개비자나무는 전국적으로 자라는 늘 푸른 암, 수 딴그루 큰키나무로 비자나무 잎처럼 바늘잎이나 잎뒷면에 하얀 두줄의 기공선이 있고, 잎이 부드럽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꽃은 4월에 초록빛으로 피고, 열매는 핵과이고 새끼손가락 첫마디 크기에 둥글며 붉은빛으로 다음 해 8∼9월에 익는다.
광산구 보호수 지정 추진 老巨樹
연번 | 노거수 현황 | 생육상태 및 민속 | 비 고 | ||||||
소재지 (위치) | 수 종 | 수량 (주) | 수령 (년) | 수고 (m) | 둘레 (m) | 흉고 (m) | |||
1 | 송천동(원등) 1-108번지 | 팽나무 | 1 | 300~ 350 (약) | 18 |
| 407 | -황룡강변 원등(원님이 쉬어간 장소)마을나무. -생육상태가 양호하고, 수형도 아름답다. -마을에서 콘크리트로 쌓은 석축은 뿌리호흡을 위해 콘크리트 제거 요함. -이 나무 앞이 비행장 활주로였고(플로펠러기). -강변에서 송정비행장 건설시 사용된 골재를 체취해 강이 깊어 졌고. -나무의 심재부분이 썩어 마을에서 콘크리트로 발라놓았으나. -고사된 줄기와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외과처방을 요함. -어린시절 이 나무열매로 팽총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았다. -원등주민 김영옥(1954년生 : 010-5620-8900)氏 구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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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장녹동 420번지 | 팽나무 | 1 | 200~ 250 (약) | 18 |
| 336 | - 보호수(1982-26)와 당산제를 같이 지내고 있고, 주변 잡목 제거 요함. 생육상태가 대단히 양호하고 수형도 아름다움(수관폭 : 247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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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동곡초등학교 후문 옆 | 주엽 나무 | 1 | 150~ 200 (약) | 15 |
| 330 | -광주광역시에서 자라는 주엽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 -뿌리주변 배수불량으로 가지고사. -섬유질이 풍부한 가시는 한약재로 이용. -열매 꼬투리부분이 물렁해서 쥐엄떡맛이 나 쥐엄나무라고도 함. -씨앗의 무게가 일정해서 무게를 측정할 때 사용되었고. -다이아몬드 케럿의 기준이 된 열매로. -광주광역시 보호수로 지정요청을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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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무양서원 (월계동 510) | 곰솔 |
| 약 250년~290 | 15 |
| 288 | 무양서원 내 성지재 뒷편에서 자라고, 생육상태 양호. 광주지역에서 자생하는 곰솔 중 흉고 직경 및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로 보호수지정 가치가 있음. 무양서원과 곰솔의 연관성 조사 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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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용강마을 | 은단풍 | 1 | 약 80년~95년 | 19 |
| 429 | -마을입구 모정(1957년 3월 준공) 옆에서 자라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광주지역에서 자라는 은단풍나무 중 흉고직경 및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다. -마을에서 은단풍 묘목을 직접 심으신 분은 서울로 이사감. -은단풍 나무의 시원지인 양림동 수피아여고, 호남신학대, 양림동산 선교사묘역 주변에서 생장하는 은단풍나무보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로. -은단풍 나무의 특성상 하늘소 애벌레의 피해를 예방해야 생육에 지장이 없으나 지금 밑둥부분은 하늘소 애벌레들의 피해를 받고 있고, -고사한 줄기는 제거한 후 소독을 요하고 하늘소 애벌레를 제거하는 소독이 시급한 상태임. -고사줄기 제게 및 하늘소애벌레를 제거해야 생육에 지장이 없을 듯 하다. -보호수 지정이 시급하고 보다 체게적인 관리를 해야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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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임곡동성당내임곡동 799-1번지
| 꽃개오동 | 1 | 70 (약) | 5 |
| 310 | - 임곡동성당 내에서 자라고 있고 - 아일랜드 신부님이 직접 심으셨다. - 남부지방에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나무. - 심재부분이 썩어 외과수술 요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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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빙설당(氷雪堂) 광산구 본동로 158 | 개비자나무 | 1 | 100 ~ 150 (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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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 - 석문동천(石門洞天) 빙설당(氷雪堂) 앞에서 생육상태가 양호하게 자라고 있고. - 광산구 보호수 지정요건에 해당되어 보호수 지정을 추진하고. - 광주지역에서는 가장 큰 개비자나무다. - 강학 장소였기에 학문에 도움을 주는 개비자나무(열매:구충제, 기름)를 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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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가는 말
24그루의 보호수(2010년 7월 26일 기준)와 75그루가 넘는 老巨樹, 그리고 마을숲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광산지역은 노거수와 연관된 관광자원과 민속문화, 생태학습장의 보고이다.
또한 광주광역시에서 유일하게 노거수의 기품과 품격을 갖춘 팽나무(명곡마을), 회화나무(원임곡), 은행나무(두정동)를 시기념물로 지정해서 향후 도시생태관광의 교두보로 삼았으면 한다.
더불어 도시화가 더딘 광산의 특성을 살려 미처 조사하지 못한 노거수와 마을숲에 깃든 민속문화와 생태를 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전면 조사가 절실한 현실이다.
※참고문헌※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5(5)736~746. 2011년』임동옥․제갈은기(호남대학교 대학원 생물학과)
『한국문화상징사전 1, 2』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동아출판사, 1992.
『산림:문화속의 숲, 숲속의 문화-신원섭』산림조합중앙회, 2003,1~2005,3.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1~3, 이상희, 넥세스, 1998.
『우리나무백가지』이유미, 현암사, 1999.
『숲과 녹색문화』전영우, 수문출판사, 2002.
『우리숲 산책』차윤정, 웅진닷컴, 2002.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박상진, 김영사, 2004.
『나무열전』강판권, 글항아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