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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귀한 아들 낳고 지고
마흔 여덟에 첫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다. 띠가 같았다. 아내에게 속마음을 보인다. 아들을 낳으니 마음이 놓이더란다. 죽어도 눈을 감으리라 했다. 아내가 눈을 흘긴다. “아들 딸 다 좋다면서요?”
아들 애비는 얼버무린다. “그야, 낳기 전 이야기지...”
장모가 거든다. “여자들이 저렇게 속이 좁아요. 딸 낳고 실망할까봐 그런 걸 가지고....”
아들 낳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비결이 있다. 첫 번째 비결은 아이를 낳는 것이다. 확률은 절반이니까.
두 번째 비결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속설에 일리가 있다. 돌부처의 코를 갈아 먹어라. 갈아 내느라 땀이 뻘뻘 날 것이다. 삼천 배를 드리다. 노폐물이 땀구멍을 통해 배출되니 임신할 수 있는 체질로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은도끼 놀이개를 차거나 이불 밑에 깔고 자라. 온 몸의 기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은이다. 합환 후에 여자가 왼팔을 밑으로 누으면 아들이란다. 왼쪽 난소에서 수정하면 아들이다...등등이 처방이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런데 왜 그토록 아들 타령을 했을까. 아들을 낳은 사람은 ‘윤회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했다. 살아 자신이 탄생하는 것을 보는 것이 환희라 표현했다. 그것뿐일까. 그것은 불사사상과 연관이 있다.
개체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불사이다. 그 자손이 영원히 뻗어 나가는 것이 불사이다. 불멸이다. 그렇게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다.
포도덩굴이 있다. 쥐가 포도를 포식한다. 쥐는 새끼를 많이 낳는다. 포도는 알이 많다. 그러므로 쥐나 포도 알처럼 많은 아들을 낳아라. 포도 넝쿨처럼 자손이 뻗어 나가라는 기원이 담긴다. 기도로 아들을 낳을 수 없다면 해볼 만한 일이다.
기도를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혼인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앉은뱅이 용쓴다고 혼자서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남아선호사상의 뿌리는 무섭도록 깊다. 젖을 먹일 남자 아이가 있다는 자랑으로 젖통을 덜렁거리며 다니는 한국의 여인을 보라.
중앙일보 1996년 6월 7일자. 세계에서 가장 남아 비율이 높은 나라, 한국....1995년에 태어난 신생아 중에서 남아가 여아보다 15.4%가 많다. 여자를 낳으면 베개로 눌러버리나?
쌍희화조도雙喜花鳥圖는 꽃 사이에 두 마리의 새가 즐기는 그림이다. 까치는 희작이다.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새이다. 꿩은 상서로운 새이다. 화충이라 하여 순임금이 십이장에 넣었다. 꿩은 고천의 새이다. 하늘에 고하는 고제에 진상하는 새이다.
금계는 천상의 새이다. 새벽을 알리고 하계에 내려간 귀신을 재촉하는 새이다. 원앙은 시경에서도 사이좋은 부부로 묘사되었다. 시경은 서주에서 춘추 전국까지의 시가를 모은 책이다. 서주는 상나라의 적통이다. 상나라는 이족夷族이 세운 나라이다.
그렇게 부부가 새로 비유되었다. 신혼부부는 하늘에 고하는 상서로운 새로 비유되었다. 그렇다면 새사람이 아닌가. 새사람을 중국말로 옮기면 동이가 된다.
까치와 꿩은 조류숭배사상을 담고 있다. 금계는 동이신화에 등장한다. 그러므로 화조화라는 것은 동이족에 매우 친근한 소재임을 알 수 있다.
화조화는 대개 수석ㆍ모란ㆍ매화ㆍ복숭아 등과 함께 그려진다.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뜻을 가진 상징물들이 모였다. 수석은 장수ㆍ모란은 부귀ㆍ매화는 절개ㆍ복숭아는 장수 혹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송축을 받은 혼인이기에 예부터 많은 속신이 따랐다.
천생배필이라 했다. 고매 혹은 월하노인에게 천생배필을 점지해 달라는 기원도 있다. 고매가 누군가. 여왜를 가리킨다. 복희와 함께 인류를 생산하다가 너희들끼리 만들라 하고 춘사를 만들어주었다.
청춘남녀의 짝을 맺어준다. 동이 세계의 전설과 신화가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라는 노래로 전해온다.
짝을 짓는다 하지만 옛날에야 어디 언감생심 짝을 찾으려 마음이나 먹을 수 있었나. 부부 싸움도 하리라. 독한 마음도 사렸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고 살다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무뿌리 못 씹어 먹을 만큼 해로하면 그것이 바로 찰떡 궁합이었다.
그 찰떡궁합을 찰떡같이 달라붙게 하는 것이 또 있었다. 아들이었다.
쌍희화조도
책거리를 보자. 이 그림을 보면서 ‘아니, 웬 새가 책에서 걸어 나와?’ 하고 불평하는 독자는 없을테지? 불평해도 할 수 없다. 다시 처음부터 이 책을 읽으십사 내칠 수도 없고....
책가도의 새는 ‘부부화락하고 높은 벼슬 하십시오’ 라는 뜻이다. 전통 혼례에 화조 병풍을 둘러침은 동이, 즉 새사람의 새로 태어남을 뜻한다.
쌍압연자도雙鴨蓮子圖는 오리 한 쌍과 연밥을 그렸다. 두 마리 오리를 그리면 쌍압이다. 오리는 금실 좋은 새로 유명하다.
연밥연자蓮子=연자連子이다. 연달아 아들 낳으라는 뜻으로도 쓴다. 갈대와 기러기는 늙어 편안하게 사시라는 뜻이다. 갈대는 한자로 노蘆가 된다. 기러기는 안雁와 발음이 같다.
대하소설같은 이야기를 연결하면 이러하다. 부부 사이가 좋아 토끼새끼 낳듯 줄줄이 아들들을 낳아 늙을 때까지 해로하고 편안하게 생활한다는 의미이다. 산업사회가 아닌 농경사회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농경사회야 노동력이 세력 아니던가.
석류가 탐스럽게 열린 나무 아래 닭 가족이 산보를 가는 그림이 있다. 누런 닭이 꼬꼬댁 꼬꼬댁 앞장을 선다.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따라간다.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다. 그 상징의 의미는 다자다손의 사상을 반영한다.
석류는 복주머니처럼 생겼다. 그래서 복을 뜻한다. 그 안에는 열매가 가득 차 있다. 유개백자楢開百子라, 남자를 뜻한다. 남자의 남男자는 밭 전田+힘 력力이다. 밭일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이라는 뜻이다.
석류는 열 십十자를 경계로 사각형의 열매가 빼꼭하게 들어선다. 사각형은 입 구口자와 같다. 그렇게 많은 입이 있으니 먹을 것이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먹을 것을 만들자니 남자의 힘이 아니면 안 되겠다. 그래서 석류는 복이 많음과 아들이 많음을 상징한다.
누런 닭은 황계黃鷄라 한다. 누렁이는 황구黃狗라 한다. 모두 보신에 좋다는 속신이 있다. 누렇기 때문에 누런 가을 들판을 연상시킨다. 풍년에 대한 유감類感의 결과이다. 병아리도 노랗다. 또한 자손이 많다는 뜻으로도 그려진다.
그런데 이상한 그림이 하나 있다. 이렇게 상징의 그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 그림이 있다. 아이들이라 해도 몇 몇 그려진 것이 아니라 아예 백 명씩이나 그렸다. 중국 아이들이다.
쌍압연자도
박승규는 확산이미지 XII에서 활기 찬 붓의 물리적 이미지로 환원한 연꽃과 연자를 보여준다. 조형 의지 속에 상징이 녹아 들어간다.
리창만은 련꽃과 물총새를 그렸다. 오늘날 우리는 동이를 잊어버렸다. 새사람은 더욱 잊었다. 조선화에서도 화조연화도는 그린다. 그러나 연자는 어디갔는가.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동자유희도童子遊戱圖는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백동자도百童子圖 또는 백자동도百子童圖라는 그림 중의 하나이다.
주제가 정해져 있다. 바둑 두는 그림ㆍ병 깨는 아이들ㆍ나비를 희롱하는 촌아이ㆍ야왕 군평 등 별명이나 이름이 밝혀진 아이 그림 등이다. 생김새나 이름이 이상하다 했더니 중국에서 건너온 그림들이다.
중국 여인들은 도교 사당인 서왕모 사당인 낭랑묘에 가서 값싼 판화를 사서 집에 치장한다. 남자 아이를 바라는 소박한 기원을 그림에 비는 그림이다. 오늘날 태교와 같다.
백동자도는 중국 뿐 아니라 조선과 일본에서도 그렸다. 중국에서는 호복을 입혔다. 일본에서는 일본 아이로 바꾸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중국식의 백동자도를 그렸다. 이상하지 않은가. 설마 중국 아이를 낳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림을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아이들이 범상하지 않다. 먼저 아이답지 않다. 너무 어른스럽다. 축소시킨 어른 모습이다. 엄마 없이 잘 노는 아이 때려 울리지 말라지만 우는 아이도 없다. 어른들은 없다. 얘판이다.
배경 역시 비상하다. 누각이 있고 상서로운 구름이 흐른다. 선학이 노닌다. 그래서 천상의 그림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럼 그렇지.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틀림없다. 한국에 떨어지면 바지저고리 입고 된장국에 밥 말아 먹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한국인으로 그릴 이유가 있었겠는가. 조선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도교의 사당에서 이 그림을 사가는 중국의 여인들은 중국 아니 그림이라 사가는 것이 아니었다. 도교의 몸을 빌어 보여주는 하늘나라의 아기 씨앗이기에 아무 생각없이 그림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그림에서 본 것은 낭랑, 즉 서왕모였다. 중국의 아이들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아이들이었다. 그 하늘나라는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몽골족이 공유하는 하늘이었다.
동자유희도
다시 묻자. 왜 아들인가. 자손의 뻗어 감이다. 부계 사회에서 혈통이다. 자신의 불사는 제사를 지내주는 아들의 유전자와 기억 속에 있다.
아기 씨앗을 어떻게 그릴까. 대만 아기 씨앗 인형을 보게. 이게 지상의 아이들인가.
그래서 의문이 풀린다. 이 책의 곳곳에 깔아 두었던 포석이 여기서 검증된다. 민화라 불리는 그림은 철저히 민족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상징은 중국에서 비롯한다. 한자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그 배경을 추적하면 거의 대부분 동이족과 연관이 지어진다. 신화ㆍ전설ㆍ고사가 그러하다. 한자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알타이어족이 한자를 이용하는 공통적인 패턴이 만들어진다.
때로 알타이어족의 문화원형도 있다. 호렵도가 있다. 호복은 서역인의 옷이다. 호복을 입은 청나라 사람들이 호랑이ㆍ멧돼지ㆍ사슴 등을 사냥한다. 영락없는 중국 그림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그려졌다.
청나라 사람들이 사냥을 잘했나 보다. 사람을 괴롭히는 호랑이를 속이 후련하게 때려잡아 본때를 보여줬나 보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 사람들을 존경한다는 의미가 그림에 담겼을까.
호복은 진시황의 군대도 입었다. 천하통일을 가능케한 배경에 호복이 있었다. 명성이 자자했을 것이다. 진시황이 동이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조상의 그림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조선에서도 호복과 비슷한 사냥복을 입었다. 호복은 청나라 혹은 중국의 옷이 아니라 기마 수렵 종족의 전투복 혹은 사냥복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민화라 부르는 그림은 우리 조상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린 우리의 그림이었다.
일본인들은 일본 옷을 입혀 일본의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외면이 어떠했건 관계하지 않았다. 어떤 옷을 입었건 어디에 있건 우리의 전통을 담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 전통과 의식을 지켜 온 백성은 두 가지를 위해 산다. 하나는 나요, 내 것이다. 또 하나는 목숨이다. 백성을 이 둘을 묶어 산다. 일러 ‘내 목숨’이다.
민화라 부르는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소재와 상징은 우리의 것이다. 가까이는 민중의 정서와 연결된다. 멀리는 동이의 신화, 신시베리아 문화권의 상징이 잇대어 있다. 우리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은 많은 경우 사대주의와 연관이 있다.
사대주의는 민중의 것이 아니다. 통과지대성으로서의 조선에 국기를 보존하기 위한 위정자들의 목줄이었다. 역시 큰 의미에서는 내 목숨이었다.
호렵도는 한국인에게 친근한 그림이다. 기마 수렵민족의 향수, 조류숭배사상의 잔영이다. 고구려 벽화수렵도의 전통이 민화에 이어졌다.
조선 시대만 해도 동이의 전통은 생생히 살아 있었다. 조선의 무인들은 호렵도에 나옴직한 옷을 입었다.
31. 개똥밭에 굴러도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가 살았다. 원래 이름은 엉기였다. 팔대독자 외아들이라 오래 살라고 사람마다 이름을 늘렸다. 부모는 행여 명 짧아질라 다른 아이들이 이름을 줄여 부르면 숨이 넘어가도록 패주었다. 그러니 아이는 자연 외톨이가 되었다.
어느날 동네 아이가 헐레벌떡 어머니에게 고한다. “엉기 어머니, 엉기가요...” 그래서 죽도록 맞았다. 까무러쳤다가 일어나면서 한대 더 맞고 정신을 차렸다.
“엉엉,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가 물에 빠졌어요.”
어머니는 기절초풍을 한다. 8대독자 외아들이 물에 빠졌단다. 남편을 부른다.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 아버지,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가 물에 빠졌대요.”
아버지는 눈알이 튀어나온다. “엉, 우리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가 물에 빠져?” “아이고오, 우리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야아....”
그들이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를 부르며 물가에 도착하자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는 꼬로록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것이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의 짧고도 슬픈 인생이었다.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이름이 길다고 오래 살랴. 오히려 떠돌이 환쟁이라도 불러 소나무다 학이다 그림을 그려 붙였더라면 엉기조차 벙기조차 벙기조차 엉기조차 엉기벙기 버벙기는 마르고 닳도록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이 땅에는 죽은 자, 죽기 싫은 자들이 주문하여 그려진 그림들이 오늘날 민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삶이라는 것, 내 목숨이라는 민중의 기본적인 욕구 패턴을 결정했던 동기는 그림으로 그려져 오늘도 전해져 온다.
식당에 걸린 족자에는 목숨 수자를 거룩하게 써넣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우리 식당 전골 드시라우요... 대충 그런 뜻 같다.
구자승은 표주박을 사진처럼 그렸다. 대상과의 ‘행복한 친화관계’를 표상한다. 상징이 있다. 넝쿨 식물은 오래 살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는 백개의 목숨 수壽자와 복 복福자를 쓴 그림이다. 목숨 수자만 백 개 써놓아도 백수백복도라 한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는 뜻일 게다. 오복 중에서 으뜸인 것이 오래 사는 것이었다.
서경書經에서 기자箕子는 무왕에게 오복五福를 논한다. 기자는 단군조선을 이어받았다는 왕이다.
기자의 오복에서 첫 번째는 오래 사는 것이다. 이어 부자 되는 것, 건강하고 마음 편한 것, 덕을 즐겁게 닦는 것, 늙어 죽는 것壽富康寧脩好德考從命이 뒤따른다.
얼마를 살면 오래 살았다고 할 까. 옛날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30-40세였다. 유아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70을 넘겨 사는 것은 예로부터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백 살은 사셔야지요’ 하고 덕담을 하는데 ‘어, 이 고연놈’ 하고 볼기를 칠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날 건강식품 선물하듯 옛 사람들은 백수백복도를 선물하고 진상했다.
백수백복도는 이렇게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그런데 글씨가 너무 어렵다. 도저히 무슨 글씨인지 알 수 없는 글자 투성이다. 왜 그럴까. 사람의 목숨을 내리는 것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빌어 목숨을 비는 것이니 하늘이 아는 문자면 족했다. 일종의 암호통신이다. 불교의 다라니 같은 것이리라. 하늘이 읽는 것은 문자가 아니라 사람의 정성이니 글자를 쓰다가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다 느끼면 수繡를 놓기도 했다.
일리가 있다. 오래 살아야겠다고 되뇌는 사람이라면 과음ㆍ과식ㆍ과로를 피하지 않겠는가. 한 자에 한 살씩만 산다고 하면 백자면 백년은 살겠다. 백수를 백번을 쓰면 일만 년은 살겠구나. 그렇게 정성을 들여 백수백복도를 만들었다.
하룻밤에 성불한 스님의 이야기가 있다. 막 머리를 깎은 젊은 스님이 큰 스님에게 물었다. “왜 스님들이 나무아미타불을 봉송합니까?” 큰 스님이 대답했다. “염불공덕이 많으면 성불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새벽에 큰 스님은 젊은 스님이 든 지붕 위로 뻗히는 서기를 보았다. 당장 젊은 스님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여쭌다.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성불하셨습니까?”
젊은 스님이 대답한다. “큰 스님이 일러준 대로 했을 따름입니다. 단지 나무아미타 만 타불, 나무아미 백만 타불을 외었지요.”
참 오래 살기 쉽다. 백수만 욀 것이 아니라 만수ㆍ백만 수를 외면 불사불멸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입이 아프다. 그럼 방법이 있다. 그림을 그려 붙이면 되지 않겠는가.
백수백복도
역시 백수백복도이다. 너무 솔직하면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은유가 있다. 아예 읽을 수 없는 비유도 있다. 누구더러 읽으라는 말인가.
김상유는 장수문을 그렸다. 아예 장수란 놈이 문으로 들어오라고 기다린다. 회화에서 이런 직설법은 오히려 신선한 조형 문법을 유도한다.
수거모질도壽居耄耋圖는 수석과 국화,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이다. 고양이가 졸고 있는 바위에 국화가 피고 그 위에 나비가 앉아 있다... 그런 그림인가. 사실 이 그림은 오래 살라는 송축의 암호 그림이다.
무슨 뜻일까. 일단 뜻을 알아보자.
수는 수석이다. 수壽 Shou=수석壽石이다. 바위를 그린다. 동물 모양 바위도 있다. 거Ju는 국菊 Ju로 중국 발음이 같다. 국화를 그린다. 모耄 Mao=묘猫 Mao가 된다. 고양이를 그린다. 질耋 Die=접蝶 Die이다. 나비를 그린다.
그러니까 수거모질은 중국어의 서우주마오디에Shou ju mao die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다.
수석은 장수를 의미한다. 목숨 수壽 자 수석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수석水石라 물 수자를 쓴다. 한국에서는 노태수석老苔壽石ㆍ수석노불壽石老佛ㆍ석수만년石壽萬年 등의 기록에 수석壽石라 칭한다.
서경의 「우공편禹貢編」이나 시경에 처음 기록이 나온다면 동이족이 중원을 장학했던 시기에 이미 수석 취미가 성행했다는 이야기이다.
국화는 불로장생을 의미한다. 포박자에 신선방술이 나온다. 여산의 국화를 쪄서 증류한 물을 마시라 했다. 포박자는 신선사상의 각론이라 할만하다. 그 원형은 연제해빈에서 성행했던 동이의 신선사상이다.
국화는 장공예의 구세동거와도 연관이 있다. 아홉 세대가 한 집에 산다니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그러데 고양이와 나비는 장수나 신선과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장수의 상징이 된다. 한자와 발음이 같은 사물을 글자대신 치환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마오는 일흔 살을 의미하는 마오 즉 모와 발음이 같아 장수의 상징이 되었다. 나비는 호접이다. 나비의 디에는 여든 살을 의미하는 질과 같아 역시 장수를 상징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치환에 의한 상징도상은 청나라에서 유행했었다. 청나라는 몽골족이다 문자 역시 한족의 한자와는 다르다. 알타이어족이 교착어인 한어족을 다스리면서 사용한 편법이다. 알타이어족, 그리고 신시베리아 문화권의 상징체계가 한자를 빌어 나타난 것이다.
민화의 상징은 언뜻 한자투성이다. 중국인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 진상이 가려져 왔다. 사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인은 중국의 상징체계와 언어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되어 있다.
그렇게 한민족이 호락호락했을까.
수거모질도
중국 전지화 백합꽃에 나비가 앉았다. 백합=백합이라 하여 백사여의를 뜻한다. 단명하는 나비가 중국의 상징이다. 참 엉성한 상징도 있다.
추순도이다. 메추리가 장수의 상징이란다. 국화와 함께 그린다. 오래 산다는 사실보다 언어적인 유추에서 채택된 상징이다.
장생화락도長生和樂圖는 십장생의 장생물들이 서로 즐기는 그림이다. 십장생은 일월운수日月雲水ㆍ산석송죽山石松竹ㆍ학록구지鶴鹿龜芝를 꼽는다. 아니, 열 두 개가 아닌가.
그리고 해와 달은 운행한다. 구름과 물은 유전한다. 이들은 생명이라는 개념과는 무관하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다.
그뿐인가. 산과 돌은 생명체가 아니다. 살고 죽지 않는다. 열 두 개 중에서 여섯은 생물이 아니다. 송죽이라. 소나무와 대나무는 인간의 삶과 비교될 수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학록이라, 학과 사슴은 인간보다 오래 살지 않는다. 거북이 오래 산다고 하지만 백년이 고작이다.
그런데 왜 장생일까. 첫 번째 힌트를 드린다. 장생화락도에는 장생동물들이 쌍쌍이 노닌다. 수사슴이 앞발을 암사슴에 걸친 그림이 압권이다. 이 그림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이다. 아마도 신방에 붙였을 것이다.
실제 민화에서는 그 이상의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다. 춘화라는 장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힌트이다. 십장생은 한국에만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다. 한국어로 읽어야만 뜻이 통한다. 십장생의 십은 구멍과 관계가 있다. 남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어 구공九孔라 한다.
여자는 열번째 구멍이 있다. 그것이 십十이다. 경음화하면 씹이 된다. 여자와 성교를 뜻한다. 고대에서는 알ㆍ굴窟ㆍ혈穴로 연결되어 다산사상을 담고 있다.
고대인은 성교와 다산을 일체시했다. 밭에서 성교하거나 벌거벗은 남자가 밭을 기면 수확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다. 구멍은 굴이다. 굴은 모태를 뜻한다. 알은 우주의 근본이다. 한국어에서 해독되는 신화의 열쇠라 할만하다.
한국의 남자도 알이 있다. 여자에게도 알이 있다. 불알과 공알이라, 세계에서 알을 차고 사는 민족은 한국인 밖에 없을 것이다.
알 중의 알은 큰알이다. 알이다. 태양이자 우주알이다. 알에서 시작하여 알로 회귀하는 것이 십장생의 사상이다.
상고시대 동이족의 태양신화, 알신화, 풍요와 다산사상을 한국어에 담아 오늘까지 이어오는 것이 십장생이다. 일월곤륜의 사상이다.
장생화락도
장생화락도. 어렵쇼. 거북이 싸우는구나. 뒤집어진 거북은 눈이 해롱해롱하구나. 아니, 오래 살라고 그린 십장생 그림 안에 싸우는 거북은 왜 그려?
십장생도 부분이다. 오래 못사는 학이나 사슴이 장생물로 등장하는 어설픈 상징체계야 흠이 안 되겠지. 그러나 장생물이 왜 쌍쌍일까. 그럼 이십 장생, 사십 장생이 되야 하지 않나?
백수백복도는 읽을 수 있는 글씨가 아니다. 십장생도는 장생 상징이 열 셋이다. 영지=불로초로 해석해도 열둘이다. 무생물이나 자연 현상도 장생물로 취급된다. 인간보다 장수하지 않는 장생물이 등장한다. 궁금하지 않은가.
백수백복도는 인간이 읽으라는 글이 아니다. 한자를 빌렸다. 비비 꼬았다. 하늘에 정성을 바치는 주문이나 방언과 같다. 그러니 그렇게 어려워졌다. 오래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 무슨 창피람.
그래서 인간이 읽기 힘든 암호통신이 행해졌다.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게지.
십장생 그림도 하늘에 기원하는 그림인가. 그렇다. 십장생도의 장생물은 주역이 아니다. 조역이면서 배경이다.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자. 종이 위에 산과 물을 그린다. 산 위에는 해와 달이 뜬다.
소나무ㆍ대나무가 자라는 바위 틈으로 자란 영지를 사슴이 뜯어먹는다. 학과 거북은 신선의 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굴까. 신선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신선은 어디갔누?
해답을 드린다. 그 신선은 여러분이다. 십장생은 신선을 주역으로 하는 배경이자 조역들이었다. 신선 대신 그 안에서 장생을 누리리라 하는 생각이 십장생도를 만들었다. 할머니ㆍ할아버지 노래 오래 사십사 하고 십장생 병풍을 둘러쳐 드렸다.
그럼 왜 십장생도 안에 신선 대신 할머니ㆍ할아버지를 그리지 않았을까? 당연하다. 병풍 앞에 앉으면 누구든 저절로 그림의 주역이 되는 게 아닌가. 그것이 동이의 정신이었다.
하늘에서 보면 안에 그려진 것처럼 보일 텐데 꼭 그려야만 하겠어....그렇게 겸손한 것이 우리 조상 네였다.
그 원형이 되는 그림이 있다. 요지연회도이다. 동이족의 신모라 할 만한 서왕모가 곤륜산 요지에서 주나라 목왕을 맞아 연회를 벌이는 그림이다. 요지연도에서 등장인물들을 지우고 보면 배경이 십장생도가 된다.
요지연회도는 또 다른 그림의 원형이 된다. 일월곤륜도이다. 곤륜에 해와 달이 뜬다. 천하제일의 산에 천하에 둘도 없는 해와 달이 뜬다. 지상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왕좌의 뒤에 그려진다.
용상에 앉음은 만인지상의 절대적 배경을 가짐을 뜻한다. 같은 그림이 민가나 무당의 신당에서는 오봉산일월도가 된다. 십장생도와 일월곤륜도ㆍ오봉산일월도는 같은 뿌리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생각해보라. 부끄럼 많은 한국인이 십장생 병풍을 두르고 그 안에 신선인 양 노닐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임금이라도 천하의 일월곤륜도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다.
하물며 낮은 것들이 어이 참람하랴. 천하를 양보했던 요순의 동이정신이 분명 배어 있을 터이다. 동이정신에는 또한 신선사상이 깃들이어 있다.
오늘날 아무도 거북의 정사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십장생은 상품포장에까지 파고든다.
그것이 상징이다. 전통이다. 박이선은 십장생을 그린다. 마음으로 그린다. 아, 거북뒤집기 쌈박질도 그리는데 마음으로 그리지 못할 이유가 없지 그래.
32. 신선으로 가는 길
신선이 되는 길이 있다. 산으로 가는 것이다. 신선의 선자는 뫼산山 +사람 인人이다. 산사람이 된다. 오늘날 전해진 신선의 개념은 산악설에서 비롯한다.
정말 신선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계룡산에 있을 때였다.
바야흐로 보름날이더라 했다. 툇마루에 쿵 소리가 났다. 선잠을 자다가 놀라 바깥을 내다보려는데 소리가 들렸다. 응얼거리거나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았다. “내다보지 마라. 내가 네 5대조 할아버지다”라는 소리로 들리더란다.
텔레파시가 그런 것이리라. ‘승천하기 전에 들렀느니라’라는 뜻처럼도 들렸다. 호기심에 못 견뎌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내다보려니까 지독한 노린내가 화악 풍겼다. 털복숭이 사람이 휙 한걸음에 내닫는데 빠르기가 짐승 같았다.
순식간에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지그재그로 날아가 버렸다. 수소문을 했더니 성년 이전에 산으로 들어간 5대조 할아버지가 있었더란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150세는 되었을까.
그 동안 소금을 못 먹었으니 털이 짐승처럼 자랐을 것이다. 숨어 살았으니 씻기나 했을까. 노린내에 쩔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한국인의 산사람이요, 신선이었다.
현실적인 중국인에게 신선은 현실에 뿌리를 둔 초월적인 존재였다. 포박자의 갈홍은 이렇게 썼다. ‘신선이 되고자 하는 자는 충성ㆍ효도ㆍ화합ㆍ순응ㆍ어짐ㆍ믿음의 덕행을 쌓으라. 그렇지 못하면 장생을 엊지 못할 것이다’ 했다.
‘만약 처자를 버리고 산 속에서 목석과 같이 쓸쓸한 존재가 된다면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라고도 했다. 신선이 인간적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중국인의 신선관이었다.
그 인간적인 신선의 첫 걸음이 탈속이었다. 세상의 가치기준을 벗어나는 것이 탈속이었다. 이태백은 주선酒仙라 한다. 신선처럼 술을 마시거나 신선처럼 취한다는 뜻이리라. 우리말로 번역하면 ‘술 귀신’이다.
주선 이백... 영화 속의 신선은 중국인이 만든 허상이다. 흰 도포ㆍ허연 수염에 꼬부랑 지팡이를 짚었다. 술 귀신 이태백도 신선이 되었다. 중국인의 허풍이다.
심사성이 그린 하마선인도이다. 세발두꺼비가 등장한다. 해를 상징하는 세발까마귀와 달 두꺼비를 합체한 괴물인가 부다.
설중심매도雪中尋梅圖는 눈 속에서 매화를 찾는다는 화제의 그림이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 그윽한 향기를 멀리까지 보낸다. 하여 절개가 있는 꽃이라 불렀다. 매화를 찾는 것도 절개로 해석했다. 매화를 찾는 사람 역시 절개가 높은 선비로 칭송했다.
민화에서 그려지는 심매도는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지칭하지 않는다. 그러나 맹호연孟浩然의 고사일 수는 있을 것이다. 당나라의 맹호연은 왕유에 버금가는 문사였다. 절의節義를 즐겼다. 어린 시절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한 일이 있었다.
그 맹호연이 눈 속에서 매화를 찾아 헤맨다. 당나귀를 타고 시종이 고삐를 잡았다. 일산을 받친 그림도 있다. 종일을 다녀도 매화를 찾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 울타리에 매화꽃이 피었더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탈속의 경지라 한다. 세속적인 가치기준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맹호연처럼 절의가 높은 선비가 당나귀를 타는 그림이 고사기려도高士騎驢圖이다. 이태백李太白ㆍ소동파蘇東坡ㆍ두보杜甫ㆍ왕형공王荊公 등이 주인공이다.
달마도해도達磨渡海圖 역시 탈속의 화제이다. 달마가 양나라 무제를 만난다. 무제가 물었다. “나를 대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달마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달마불식의 공안이 만들어졌다.
무제와의 기연이 맞지 않음을 깨달은 달마가 갈대밭을 헤치며 양자강을 건넌다. 이 장면을 신비화한 것이 절로도해도絶蘆渡海圖이다. 갈대를 꺾어 타고 양자각을 건너는 달마로 신성화한 것이다.
음중팔선도飮中八仙圖는 두보의 시를 그렸다. 팔선이라 하지장賀知章ㆍ여양왕汝陽王 진璡ㆍ이적지李適之ㆍ최종지崔宗之ㆍ소진蘇晋ㆍ이백李白ㆍ장욱張旭ㆍ초수焦遂를 일컫는다. 주선이라, 어지간히 술을 퍼마셨나부다.
보통 사람은 죽기 전에 한 말쯤 술을 남긴단다. 친구들이 문상 와서 먹을 술이다. 팔선이라면 그 친구들이 남긴 술까지 다 먹어치웠을 것이다.
탈속이란 현실사회를 바탕으로 한다. 가끔씩 가치 기준을 벗어나거나 탈속의 경지를 동경하는 것을 말한다. 생활인의 입장에서 보아 약간 맛이 간 사람들이다. 그보다 신 맛이 심해지면 아마 세상을 등지게 될 것이다.
설중심매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는 행위의 주체와 동기가 빠져있다. 초를 좀 칠까. 혹시 명퇴한 공무원인가... 그렇게 쳐다보니 맛이 싹 가시는구만...
신화=신비+행위x∞ 이다. 신비=행위x∞-시간이다. 즉 신화=행위-시간+행위x∞이다. 시간이 배제된 행위가 무한대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이다.
한산사도寒山寺圖는 한산사를 그린 그림이다. 한산사가 뭔가. 그냥 절이다. 한산寒山가 살았다 해서 한산사다.
한산사를 그린 그림으로는 수묵이 제격이다. 낙관도 없다. 민화라 부르니 민화이지만 채묵과는 다르게 그려졌다. 산이 있고 물이 있다. 물에는 배가 떠 있고 산 위에는 학이 노닌다. 산과 나무 사이에 절과 탑이 보인다.
왼쪽의 화제를 보아 한산사인 줄 안다. 문기가 흐르는 문인화풍으로 그리자니 한산사의 풍모가 살아난다.
한산은 당나라의 고승이다. 이름은 모른다. 미친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 그러나 불도佛道를 위해 옳은 말을 많이 했다 하여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했다. 한산이 산 곳이 강소성 소주의 한암이다. 강소성은 반도에서 보아 황해 건너 산동성 아래쪽에 있다.
한산은 절강성에 있는 천태산 국청사의 습득拾得와 잘 어울렸다.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이라 했다. 절강성은 역시 황하 건너 강소성 아래쪽에 있다. 한산은 국청사에서 중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곤 했다. 둘 다 세상의 가치기준을 등진 사람들이다.
한산 습득과 함께 행각승인 풍간豊干이 있다. 이들은 삼은三隱이라, 세 사람의 은자라 하여 추앙한다. 세 사람의 성인이라 하여 삼성三聖라고도 한다. 한산자가 지은 한산시, 세 사람이 지은 삼은시집은 선정이나 계율을 찬양한 것이 많다.
오늘날 풍간을 뺀 한산과 습득이 화제가 된다. 한산과 습득을 그리고선 화합이선和合二仙라 부르기도 한다. 연꽃과 합을 그리기도 한다. 연꽃 하荷=화和와 발음이 같다. 뚜껑이 있는 합盒=합合로 그려진다. 한산과 습득이 죽이 잘 맞았다는 뜻으로 쓴다.
선종의 발달과 함께 한산시도 유명해졌다. 파격이 예찬되면서 종교를 위해 세속적 가치를 버린 사람들이 찬미되기도 한다. 원효는 하늘을 버틸 기둥을 깎을 테니 도끼를 빌려 달라했다. 요석공주를 도끼삼아 자루를 박고 기둥을 깎으니 그 기둥 이름이 설총薛聰이었다.
그렇게 세속의 가치관을 버리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신선으로 나가는 길이 마련된다.
한산사도
역시 한산사도이다. 한산사는 한산 때문에 덩달아 이름이 났다. 한산은 한산시 때문에 명사가 되었다. 한산사는 선종의 발달로 유명해졌다. 순환논리인가. 먹이사슬인가.
화합이선은 죽이 잘 맞았다. 한산은 제 절 두고 습득의 국청사에서 먹다 남은 식은 밥을 얻어먹었다. 그것을 탓하지 않았으니 화합이렷다.
목동요지행화촌도牧童搖指杏花村圖는 세속의 때를 벗은 자연인의 경개景槪를 동경하여 그려졌다. 원래의 글은 두목杜牧의 청명시淸明詩에서 나왔다.
시절이 청명인데 비는 흩뿌리고
길 떠난 나그네 고향 생각 떨치러
술집이 어디냐 목동에 묻나니
손가락 까닥까닥 복사꽃 마을을 가리킨다.
‘목동이 손가락으로 행화촌을 가리킨다’라는 말에서 행화촌도 혹은 목동요지행화촌도가 나왔다. 모두 무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연의 품에 안겨 사는 사람들의 삶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동양적 사고방식에서는 자연 속에 사는 것이 세상에서 배척당한다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세속을 멀리한다거나 자신의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쓴다. 은일이라는 말은 때로 야심가들이 자연 속에서 세상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것을 뜻할 때도 있다.
자연은 인간의 본고향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만물을 만들고 천지를 운행한다. 바로 무위자연이다. 그것을 본뜨는 첫 단계가 은일이다. 세속에서 도망가 숨는 것이다.
그러고서 자연과 일체가 된다. 궁상맞은 홀아비도 산속에 살면 신선취급을 받는다. 임화정방학도는 임표가 학을 놓아주는 그림이다. 매처학자라 매화를 아내로 삼고 평생을 살았던 임표의 고사에 근거한다. 임표는 송나라의 은일 거사이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 나아가 자연과 일체가 된다. 그것이 어떤 삶일까. 자급자족일까. 신선놀음인가. 그렇게 보는 것은 사실 외부인의 시각일 따름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선의 모습은 중국인들에 의해 정형화했다. 중국인의 신선은 보통 사람보다 더 보통 사람의 모습과 자격요건을 갖춘다. 신선이라 하니 신선인가 할 정도로 범속하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신선서상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목동요지행화촌도
중국전지화이다. 사람들은 선입관과 입력된 정보에 따라 통념적으로 움직인다. 동자의 입장이 아니라 선비가 되어 그림을 본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신선이 사는 곳으로 만든다.
신선경이다. 이재관의 오수도는 학이 노는 숲 속 초당의 낮잠이다. 동자는 매운 연기를 피하며 찻물을 끓인다.
신선은 초월적인 존재이다. 구름이나 학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렇다면 몸무게는 얼마나 될까. 시해선尸骸仙이라, 시체를 남기고 신선이 되어 날아간다는 뜻일 게다. 죽음과 동시에 영혼이 빠져 나간다.
혹시 몸무게가 3분의 1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을까. 그렇더라도 학을 탈 수 있을 만큼 가볍지는 않다. 글쎄, 영혼이 학을 탄다면 모르지. 실험에 의하면 영혼의 무게는 35그램이라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 차력借力를 떠올린다. 정신적인 응집체로서의 신선을 태우고 다닌다는 말이다. 우화등선羽化登仙라는 것이 있다. 몸이 깃털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는 말이다.
그럴까. 영혼이라면 혹시 모르겠으되 나머지 몸무게는 결코 깃털처럼 가벼울 수 없다. 그러니까 학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란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신선의 본거지를 하늘나라로 보는 것은 동이족의 신선관이다. 선仙는 본래 선僊이다. 높이 오른다는 뜻이다. 하늘로 오른다는 뜻으로 쓴다. 도가에서는 오래 살아 선이 된다 했다.
늙기는 하되 죽지 않는다는 인간형이다. 선이 된 후에 승천하여 신과 하나가 된다.
신선사상의 원전은 산해경과 초사이다. 산해경은 동이계의 경전이라는 이야기가 이제 귀에 못이 박혔을 것이다. 초사는 산해경의 시적 도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신선관에 의하면 신선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어 신선이 된다. 당연히 하늘로 되돌아간다.
신선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아무나 신선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초기 신선사상은 회남자ㆍ포박자ㆍ열자 등에서 바뀐다. 아무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선 될 팔자가 아니더라도 연단練丹를 취하면 신선이 된다. 인간적인 도리를 다해도 신선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중국형 맞춤 신선이다.
산해경과 초사의 원시 신선 취미는 전국의 연나라 제나라에서 신선사상으로 발전한다. 산동반도와 한반도를 사이에 둔 바닷가의 연ㆍ제는 동이족의 동이문화를 계승하여 꽃을 피운 나라들이다. 연제해빈燕齊海濱의 신선사상은 해상설海上說이라 한다.
진시황이 받아들였던 것은 해상설이다. 발해 바다 한가운데 삼신산三神山가 있다 했다. 봉래ㆍ방장ㆍ영주가 그러하다. 서복은 삼신산을 찾아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넜다. 서복을 보낸 진시황이 동이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선사상은 동이사상에 근거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텔레비전에는 오늘도 패턴화한 신선을 뱉어낸다. 중국인들이 만든 신선의 원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김병종는 생명의 노래에서 우화등선이라 썼다. 그림에서 글자는 의미 한정체 이되 조형 확장체이기도 하다. 생명을 새가 날라준다면 분명 동이적인 발상일 것이다.
심사정의 지두선인화이다. 손가락으로 먹을 찍어 그렸다. “엄마, 나 신선 맞아? 그런데 왜 이렇게 거지발싸개 같지?”
중국 조롱박에 새긴 신선이다. 우리는 중국인이 만든 신선에 익숙해져 왔다. 중국인은 동이의 신선을 빌렸다. 동이의 후손은 중국의 신선을 빌렸다. 부메랑 효과라, 고향표 농산물을 서울서 사먹는 셈 칠까?
33. 한국인의 고향
우리는 민화의 타임머쉰을 타고 종점을 향하고 있다. 그 종점은 고향이다. 옛 고故자를 써서 고향故鄕라 하면 옛 고을이라는 뜻이다. 주한周漢 때는 12,500호, 수당隋唐 때는 500호를 향이라 했다.
주나라 때 쓰인 말이라면 그 이전에도 향이라는 집단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쓰는 고향은 서주 이전의 개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옛 마을로 돌아간다는 말이 된다.
한국인은 모두 하나의 고향을 지니고 산다. 하늘이다. 귀천이라는 말도 귀청이 얼얼하도록 들었을 것이다. 한국인은 죽어 하늘로 돌아간다. 중국인도 귀천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 즉 죽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강하다.
왜 한국인만 하늘로 돌아갈까. 하늘민족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산으로 간다. 살아 신선이 되기 위해서다.
한국인에게 ‘바다로 산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산으로 바다로’가 맞다. 산이 원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죽어 산에 묻힌다. 산이 하늘 사다리인 까닭이다. 태양신 환인의 서자인 환웅, 즉 햇빛이 땅으로 내려온 사다리가 산이었다. 산이었다. 백산이었다. 오늘날의 백두산이었다.
한국인의 산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불고기도 산에서 먹어야 맛이다. 화투도 산간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쳐야 신명이 난다. 그 맛에 산에 오른다.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이라, 하루를 청한하게 보내면 그 하루만은 신선이라 했다. 역시 신선의 풍류이다. 한국인이기에 응석부릴 수 있는 곳이 한국의 산이다.
죽어 산에 묻히기를 바라는 민족이라면 한국인이 세계에서 꼽힐 것이다. 살아 산에 살고 죽어 산에 묻힌다. 그것이 고향 가는 길이다.
봉황호토도이다. 한국인의 고향, 그것은 태평성대의 요순시절이었다. 오동나무에 봉황이 내려앉던 시절이었다. 봉황은 태양, 호랑이와 토끼는 달의 상징이었다.
영수의 발아래 한국인의 고향이 있다. 왜 한국인의 고향이 산일까. 한국은 산국이기 때문이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 산이 있어 하늘에 오른다.
상산사호도商山四皓圖는 상산의 허연 네 늙은이 그림이다. 산에 도착한 선두주자들이다. 상산이 어딘가. 여러 곳 중에서 중국 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 남 20리에 있는 산이 눈을 끈다. 산동성이라 동이의 무대 아니던가.
상산사호는 진시황 때 국난을 피해 상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河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가 그들이다. 언제나 바둑을 두고 있다. 세상의 인연을 끊고 고상한 기품을 지켰다.
사기에 의하면 사호는 한나라 고조가 불러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고조는 정실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태자 영盈을 폐하려했다. 사호는 폐위에 반대하여 태자를 모시니 고조도 태자를 페하지 못했다. 의리의 사나이들인 셈이다.
어쩐지 백이숙제를 닮았다. 그러나 더 인간적이요, 현실 참여적이다. 그런데 신선처럼 그려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선이란 대부분 인간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음중팔선, 즉 여덟 술 귀신은 아마 독하디 독한 고량주에 절어 주위 사람들 코를 쥐게 했을 것이다.
또 팔선이 있다. 이철괴李鐵拐ㆍ종리권鐘離權ㆍ여동빈呂洞賓ㆍ장과로張果老ㆍ한상자韓湘子ㆍ조국구曹國舅는 남자이다. 하선고何仙姑ㆍ남채화藍采和는 여자이다.
이들은 모두 보통 사람에서 신선이 된다. 술법을 배우거나 연금술을 터득하기도 한다. 운모를 먹거나 수도를 하여 신선이 되기도 한다.
술 먹고 노래하고 노새도 타고 다니는 것은 보통사람과 같다. 유체이탈을 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니 신선이라는 모양이다.
그들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먼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 특이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인간적인 것이 무엇일까. 인간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이자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상산사호도
상산사호는 중국 한국 일본의 단골메뉴이다. 동이는 중국 한족을 이루는 큰 뿌리중의 하나였다. 일본인의 조상은 반도에서 건너가 동이족 아니던가.
팔선경배도이다. 누구에게 경배를 하는가. 신선사상의 원조인 노자이다. 그런데 노자老子는 동이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중국사상보다는 오히려 한국사상에 가깝다. 사실인가.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는 바다 물결 위에 학이 날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대로라면 해석이 이상해진다. 갈매기대신 학이 바다를 지배하는가. 학은 복숭아 위를 나른다. 그럼 학이 복숭아를 먹고 사는가.
이러한 의문은 초심자에게나 통할만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지금까지 읽어온 사람이라면 쉽게 해독이 될 수 있는 상징 언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바다물결은 조수潮水이다. 조潮는 조朝와 발음이 같다. 바다 물결은 조정을 의미한다. 벼슬에 대한 동경이나 조정을 암시한다. 학은 신선의 탈 것이다. 신선은 늙되 오래 오래 죽지 않는 존재이다.
학은 세속을 벗어난 고상한 풍모를 의미한다. 반도는 불사의 존재인 선도복숭아이다. 굽이굽이 서린 복숭아 가지는 장수나 다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림의 뜻은 자명하다. 높은 벼슬하십시오. 혹은 만조백관이 평안하십시오. 신선처럼 청아한 기품을 유지하십시오. 마르고 닳도록 오래 사십시오.. 등의 송축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다.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이라 했다. 한 그림을 보자.
선동헌수도仙童獻壽圖는 선동이 목숨을 헌정하는 그림이다. 신선풍의 동자가 학을 타고 있다. 서운을 헤집고 내려온다. 또는 배배 꼬인 복숭아나무를 들고 간다.
꼬인 나무는 목숨 수壽자를 닮았다. 그러니 학이나 복숭아가 모두 장수의 상징이라는 암시인 모양이다. 아니, 복숭아는 고향이다.
복숭아가 고향인 이유는 서왕모와 관련이 있다. 곤륜산 요지연도는 우리 고향의 잔치요, 고향에 가서 지내는 명절 그림이다. 요지연도에서 일월곤륜도가 나왔듯 해학반도도는 요지연도에서 학과 복숭아만을 그린 것이다.
해학반도도
선동헌수도에는 복숭아를 받쳐 든 남자 아이가 등장한다. 왜 남자일까. 서왕모가 산신이 되어 할아버지로 바뀌듯 삼청조가 시녀로, 이윽고 남자 아이로 바뀐 것은 아닐까.
요지연회도瑤池宴會圖는 곤륜산 요지의 서왕모가 주목왕을 맞아 연회를 벌이는 그림이다. 요지연도라 부른다. 연회장면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신선들이 모여든다.
이 그림에서 신선그림을 떼어내면 군선도群仙圖가 된다.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을 그리면 군선과해도群仙過海圖이다. 신선들은 모두 조연이다. 물론 주영는 연회장에 앉아 있는 서왕모와 목왕이다.
조연들도 낱장 그림에서는 주연이다.
복숭아를 받들고 있는 마고를 그린 것은 마고헌도도麻姑獻桃圖이다.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는 정수리가 튀어나온 수노인을 그린다. 소를 타고 있는 노자를 그린 것은 노자기우도老子騎牛圖이다.
세상의 어느 곳에나 데려다준다는 세발두꺼비를 유해가 동전으로 희롱하는 그림은 유해쇄전도劉海灑錢圖이다. 봉을 타고 소를 부는 소사를 그린 그림이 소사무봉도簫史舞鳳圖이다.
또 동방삭東方朔은 사슴을 타고 있다. 황안黃安는 거북 위에 앉아 있다. 금고琴高는 잉어를 탄다. 그 외에도 많은 신선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요지연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무얼하러 가는가. 서왕모와 주 목왕의 만수무강을 빌러 간다. 이상하지 않은가. 주 목왕은 서왕모에게서 반도蟠桃를 얻어먹었다. 불사의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신선들이 연회장에 모일까. 신선들 역시 불사의 존재들이니 반도가 필요하지도 않다. 세속의 가치관을 초월한 사람들이니 풍악과 음주ㆍ가무가 즐거울 일도 없을 것이다.
십장생의 해설을 떠올려 보자. 십장생도는 곤륜일월에 산수송죽을 그린다. 구름과 학과 거북, 영지 먹는 사슴을 그린다. 연회장면에서 인물들만 빼버린 그림이다.
병풍으로 만들어 둘러치고 그 앞에 앉으면 서왕모의 초청을 받은 목왕처럼 으쓱해질 수 있을 것이다. 딴은 요지연의 불사약을 누리고 싶다는 동경이 깃들이어 있지 아니한가.
요지연도에서 분가한 그림들이 있다. 해학반도도는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을 빼고 신선의 상징인 학과 장수의 상징인 복숭아를 그렸다. 일월곤륜도는 병풍처럼 둘러친 천하 제일산을 배경으로 앞에 앉은 사람의 위엄이 강조될 것으로 믿었다.
그렇다면 요지연도는 왜 그렸을까. 답이 나올 것이다. 요지연의 불사약을 누리고 싶다는 동경이 오래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원으로 바뀌어 그림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요지연회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군선도이다. 화제로서 제화로서 이렇게 따로 그려지는 원전이 있다. 그게 우리의 고향이다.
영상 기법에 ‘크로마키’는 인물을 가상의 배경에 결합시킨다. 요지연회도 중에서도 곤륜산을 배경으로 앉은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
고향 이야기라 했다. 그런데 곤륜산 요지와 서왕모 이야기를 했다. 신선이 되어 하늘의 축수를 받으며 하늘로 돌아가는 곳, 그곳이 한국인의 고향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한국인의 고향은 백두산이다. 환웅이 환인의 명을 따라 내려온 산이 큰 백산이다. 한반도의 척추가 되는 백두대간이다. 백두의 정상에는 천지가 있다. 하늘의 신선ㆍ선녀가 내려오는 곳이다. 이 지명들을 신화상의 지명으로 대입해 보자.
곤륜은 상제의 하도 즉 지상도시이다. 요지는 상제의 구중궁궐에서 현포라는 문을 통해 하계로 내려오는 곳이다. 마치 백두산 천지를 일컫는 것 같다.
한반도는 신선의 땅이다. 개국주 단군 왕검이 신선으로 화한 땅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사람들은 신선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불사약이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우황청심환이나 소합환은 이 땅에서 빚어야만 영험을 발휘하는 불사약이 된다.
이 땅의 산삼은 세계 제일의 영약이다. 진시황이 갈구했던 것이 산삼일지 모를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죽으면서 죽을 고생을 한 것이 산삼을 무 뿌리 먹듯 했기 때문이란다.
장독瘴毒이 많은 일본의 지하수를 해독하는 데 고려 인삼 말고 약이 없었다. 송나라 때 쓴 「개보본초開寶本草」라는 책에는 신라의 잣이 신선도를 닦는 사람이 먹는 것이라 했다.
그 신선사상의 원형은 동이가 신모로 모시는 서왕모였다. 호랑이신=산신=신선=삼신=삼신할매로 한국인을 점지하고 낳아주고 길러준다. 곤륜이 백두라면 서왕모는 백두산 호랑이다. 한국인이요, 한국인의 정기이다.
호랑이가 하늘에 애교를 떠는 그림이 희보작호도였다. 호랑이를 민족정기라 믿는 하늘 민족에게 당연히 하늘의 가호가 있겠지. 그러니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 하지 않았겠는가.
그 하늘사상을 담은 것이 민화이다. 하늘사상을 찍는 도장이다. 하여 천인화라 이름붙였다. 이제 민화의 시간여행의 끝, 그 고향에 돌아와서 하늘의 도장을 정의한다.
도화원 화원은 중국의 원체화를 베꼈다. 그러나 원체화의 원형은 동이의 정신이다. 신화와 사상과 철학이다. ‘내 목숨’을 위한 집단 무의식적 동경의 원형이다. 민화는 5천년 역사 위에 신화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자랑스런 우리 선조의 유산이다.
봉래산향로의 악사들이다. 백제 미술의 정화이자 신선사상의 정수이다. 왜 백제인가. 혹시 백제가 동이의 신선사상을 주도한 것이 아니었을까.
34. 오늘에 되살리는 민화
민화라는 그림이 종착역을 고향이라 했다. 고향은 한결같은 곳이다. 거기에는 두레와 이웃이 있다. 신화와 전설의 원형이 있다. 그리고 오늘에 전해져 오는 조상의 끈끈한 체취가 피의 약속으로 전해져 온다.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그 전통의 오늘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경조가사 있으면 온갖 잡인이 들끓었던 것이 우리네 살림살이였다. 관혼상제에 환갑ㆍ진갑에 동네방네 아들ㆍ손자ㆍ며느리 다아 모여 잔치를 벌였다. 그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민화를 그리는 환쟁이였다.
민화라 부르는 그림은 17-18세기에 성행했다. 명과 청나라를 통해 서구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안목이 높아졌던 시기였다. 대동법 등으로 서민 경제가 발달했고 그림의 수요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호란과 당쟁이 세상을 뒤숭숭하게 했다. 그래서 생긴 인사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였다.
평안ㆍ장수ㆍ부귀는 난세를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갈망이었다. 부적처럼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 붙였다. 그런데 왜 그림이었을까. 호지불이나 부적도 있다. 십장생 필통도 있고 봉황 노리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폭발적으로 그려졌던 이유가 뭘까. 가볍고 편리하기 때문일까. 싸고 나무나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민화는 반드시 싼 그림이 아니었다. 열 두 폭 비단병풍쯤 되면 웬만한 부자라도 선뜻 들이기 어려운 거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민화가 그려지는 이유를 알기는 쉽지 않다. 상징적 의미나 송축의 염원 대신 전통을 아끼는 장식취미나 골동취미에서 그림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옛 그림을 오늘에 재현한는 작가들이 있다. 물론 옛 환쟁의의 세계는 아니다.
그림은 옛 그림이로되 옛 사람 솜씨가 아니로다. 우리 고향의 풋풋한 냄새가 오늘을 거쳐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인사동을 특징짓는 골동품상점의 쇼윈도에서 우리는 반만년 한국의 원형을 읽는다. 자그만치 5천년이다.
서경식의 희보작호도이다. 까치와 호랑이 그림이다. 오늘날 그려지는 이런 그림은 대담한 선묘와 디자인적인 깔끔함이 돋보인다. 대중적인 선호도에 따라 패턴화하는 오늘날의 미술시장과 그 생리를 표방한다. 옛 그림은 내용이 우선이었다.
까치는 호랑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까치는 작은 까마귀이다. 새는 해나 달처럼 하늘을 난다. 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새 숭배와 태양 숭배가 겹쳐 있다. 솟대나 꿩깃은 새 숭배의 흔적이다. 새는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자였다.
호랑이는 한민족을 상징한다. 백두산 호랑이는 민족정기이다. 서왕모와 단군신화의 호랑이ㆍ신선호랑이 등이 백두산 호랑의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까치와 호랑이의 그림, 즉 작호도는 중국의 작표도에서 비롯한다.
알타이어족인 청나라가 한자를 빌어 희보를 그린다. 말 잘 들으면 하늘이 기쁜 소식을 내려준다고 중국인을 구슬리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언어체계에 까치와 표범은 기쁜 소식과 상관이 없다.
하늘의 기쁜 소식은 한국에서 까치와 호랑이로 바뀐다. 한국인에게 까치는 작은설을 가져다주는 새이다. 까마귀는 한국인이다. 태음력 때문에 까마귀는 흉조가 되었다.
호랑이 또한 한국인이다. 하늘의 태양이 호랑이이다. 구중궁궐을 지키면서 귀신을 씹어 먹는 것이 호랑이였다. 지상에서 호랑이신 서왕모는 불로장생의 반도를 지킨다.
반도 자체가 호랑이가 되어 중국을 향해 포효하는 지도도 있었다. 호랑이 나라의 호랑이 국민이 아닐 수 없다.
희보작호도는 하늘사상을 담는다. 한국인이야 워낙 하늘백성이 아닌가. 개국주인 단군 왕검의 할아버지가 환인, 즉 태양신이고 상제, 즉 하느님이다. 환인을 통해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렸듯이 하느님이 그 자손을 보우하사 복을 내리지 않겠는가.
작호도는 오늘날 한국인에게 뿌리 깊은 신앙이다. 화공도 고객의 어느 누구도 호랑이대신 표범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통은 이어져 내린다.
희보작호도
‘옛 것은 소중한 것이여. 그러나 고이면 썩는 것이여’ 고광준은 고랭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옛 것을 한 문화권에 던진다.
호랑모란도. 모란은 중국적이다. 호랑이는 한국적이다. 작호도는 알타이적이고 중국적이다. 쇄국적인 세 문명이 하나의 화면에 자리한다.
권오규의 쌍안연화도雙雁蓮花圖는 기러기 두 마리와 연꽃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뭐라 하는가. 그야 신방에 둘러치는 그림이다. 금슬 좋고 아들 잘 낳고 잘 살아라 하는 그림 아닌가.
그것 말고 먹 선으로 그리는 그림을 뭐라 한다구? 백묘白描라, 절반은 맞다. 왜냐하면 동시에 민화의 대본이기 때문이다.
민화가 그려지던 17-8세기에는 기계 복제가 불가능했다. 그러면서도 수요에 따른 그림을 반복해서 그려야 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탑본榻本과 분본粉本이다.
탑본은 대본 위에 반투명 장지를 놓고 먹으로 베끼는 방법이다. 베끼는 붓이 대본의 선을 가려선 안 된다. 먹이 배어 대본을 더럽혀서도 안 된다. 자연 갈필이 된다.
분본은 그릴 종이 위에 대본을 놓는다. 대본의 선을 따라 뚫어진 구멍으로 가루를 밀어 넣는다. 그 가루의 선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같은 크기와 구도의 많은 그림이 그렇게 그려졌다.
탑본과 분본 대신 조선 말기에는 연필로 눌러 자국을 내는 방법이 성행했다. 기계 복제의 방법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보편적인 복제 수단의 하나였다.
이런 대본에는 글씨가 쓰여 있게 마련이다. ‘몸체는 백’ ‘먹에 약간 지’ 라 쓰여 있다. 기러기 몸은 하얗게 칠하라는 뜻이다. 먹에 지를 섞으라니, 연지 곤지 하는 식으로 붉은 안료를 섞으라는 뜻인가 부다.
대단한 필력이다. 한 획도 어긋남이 없다. 아마 도화원 화원의 솜씨일 것이다. 어쩌면 화원 지망생을 위한 화본일 수는 있다. 그러나 화원의 제작을 위한 대본은 아니다. 화원의 대본은 머리속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화공 역시 이런 대본을 쓰지 않는다. 복사기로 축소 확대하여 구성할 수 있다. 대량 복제가 필요하면 석판으로 선을 인쇄하고 그 위에 채색만 할 수도 있다.
아예 다색 석판화로 그림 이상 섬세한 판화를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림의 정신이 희석된다. 왜 그림인가. 왜 탑본인가.
탑본은 민화의 정신을 살려준다. 천의무봉의 천진한 붓놀림이다. 흉내 낼 수 없는 일회적 완결성이다. 그보다 하늘 도장의 정신이 여기에 있다.
환장이는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펴는 전도사였다. 맑은 물 떠놓고 비손 하듯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본떴다. 종이를 땅에 깔았다. 하늘에서 본 시각으로 화본을 베꼈다.
화본은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거울이다. 인간이 그 뜻을 베낀다. 종이에 비치는 하늘을 그리는 것이 되지 않은가.
판본노송도版本老松圖는 판화로 찍은 노송 그림이다. 목판은 도장처럼 새긴 판에 물감을 묻혀 찍는다. 볼록 나온 부분이 찍힌다. 이렇게 찍은 판화를 민화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색감이나 느낌에서 민화가 연상된다. 재현 민화 중에서 형상을 빌어 현대화하는 작업이 오늘날의 작가의 손에서 시도되고 있다.
판화는 그림보다 제작이 힘 든다. 그러나 많은 그림을 찍어낼 수 있다. 그림에서 폭발적인 수요가 보일 때 판화 역시 폭발적으로 제작되었다. 판화는 물론 여러 장을 찍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목판화는 반드시 복수 제작을 위한 과정은 아니다. 목판화의 느낌에서 오는 한국적 정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민화의 한국적 소재를 더욱 한국적인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판본 민화는 민화의 폭발적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을 현대화한다. 실크스크린과 석판화다.
실크스크린은 틀에 낀 비단 천에 감광유제를 바른다. 감광 스크린을 현상한다. 종이 위에 스퀴지로 유동액 상태의 물감을 밀어 넣는다. 색상에 따라 다색판화가 만들어진다.
석판화는 석판 혹은 아연판에 감광유제를 바른다. 현상한다. 물에 적신 판화지를 방수 처리가 된 석판 위에 덮는다. 프레스로 굴려 찍어낸다. 섬세한 색상을 만들기 위해 20여개의 판이 사용된다.
이러한 판화의 대본은 대부분 이조李朝의 민화民畵 민화民畵 등에 책에 수록된 도판이다. 그것을 현대화한다. 색감에서 규격에서 오늘날의 주거 환경이나 감수성에 맞도록 재조정되었다.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21세기 문화상품시대를 대비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한국인의 뛰어난 판화 재능을 이어가는 중요한 전통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판화가 한국인에게 그토록 소중할까. 그것은 찍는다는 작업의 성격 때문이다.
목판은 찍을 부분을 볼록하게 남긴다. 강조의 의미가 있다. 찍히지 않아야 할 부분은 파내 버린다. 생략의 의미가 있다. 바닥에 놓는다. 하늘을 반사하는 거울 이미지가 된다. 위에 종이를 덮는다.
목을 베일망정 자를 수 없다는 머리카락을 뭉쳐 문질러 낸다. 찍힌 형상은 거울 이미지의 거울 이미지이다. 즉 하늘 이미지이다. 하늘에서 하늘 민족에게 기쁜 소식만 주시고 삿된 것은 물리쳐 주십사 하는 기원과 목판은 많이 닮았다.
민화야 원래 하늘의 기쁜 소식을 도장처럼 찍는 그림 아니던가.
까치와 호랑이 그림은 하늘 백성인 한민족에게 하늘이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쌍안연화도는 하늘의 시각을 그림으로 옮긴다. 땅위에 화본을 놓고 환장이는 하늘이 비치는 장지를 덮는다. 천지인이 그림 안에 들어 있다.
판본노송도와 판본 민화는 하늘의 거울이미지를 다시 하늘의 뜻으로 환원하여 보여준다는 의미를 가진다. 어쩐지 모든 그림들이 하늘이라는 틀 속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 그래서 새삼 억울한 생각이 든다. 왜 민화인가.
민화民畵는 백성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민예품에 붙이기 힘든 한국의 그림을 일컫는다. 야나기 소에쓰 혹은 무네요시가 기차간에서 친구들과 잡담 끝에 만들어 낸 이름이다. 물론 조선과 조선의 예술을 일본과 일본 예술보다 사랑했던 야나기였다.
떠돌이 환장이의 여기나 생계 수단 이상의 초월적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늘 민족의 하늘사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화天畵라 부른 화가도 있다. 하늘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치 파란 하늘을 그렸거나 하늘나라 구중궁궐을 그린 그림처럼 들린다. 그래서 천인天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희보작호도에 담긴 하늘사상을 쌍안연화도처럼 비쳐 판본노송도처럼 찍어내는 그림, 그래서 하늘 도장의 그림이라 했다. 생각건대, 이름을 천인화라 바꾸면 민화의 오류는 대부분 고쳐질 수 있다.
물론 하나의 의견이다. 한 번 굳어진 언어 습관이 쉽게 고쳐지겠는가. 그토록 고지식한 백성이기에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민족이지 않은가. 5천 년 전의 동이문화의 속살을 그대로 오늘에 간직하여 전해 오고 있지 아니한가.
그토록 내우외환이다, 문화의 동점이다 핑계하여 우리 것 버린 세월이었다. 일제에서 해방을 거쳐 일세기를 지나면서 서구 문물에 동질화 한 듯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인사동 장안평에는 옛 그림과 함께 전업 민화가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그래서 문화란 끈질긴 것이다. 더욱이 동이족의 저력은 무서운 것이다.
생활 속의 민화
민화가 생활 속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그 불신의 고랑을 짐작하게 된다. 텔레비전 오디오 등 전자 제품ㆍ현대적 디자인의 가구ㆍ심미적 기능성이 강조된 생활용품 등 어디에도 민화는 없다.
더욱이 핵가족 시대의 아파트 구조 속에서 민화라는 존재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그럼 어떤가. 입은 옷과 머리 스타일ㆍ매너에 이르기까지 현대화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다. 개인은 국제화 사단의 일개 병사에 불과하다. 정장이건 평상복이건, 운동복이건 제복이건 모든 것이 획일화한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즘은 획일화에 따른 무개성 시대의 이름이다. 어느 나른한 일요일 오후, 공간을 이동하여 아시아의 어느 지역을 간다고 치자.
북경에서는 느릿느릿 등신스럽게, 도쿄에서는 평범하면서 영악하게, 대만에서는 촌스럽고 바지런히 움직이면 현지인들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서울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심퉁맞고 지쳐빠진 표정으로 지하철을 타면 몽골족끼리 구분하기 힘 든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뭔가. 민족정기는 어디로 갔는가. 민족주체성이 이토록 침해되어서 되겠는가. 민족주의자가 피를 토할 만한 시대이다.
민화 역시 민족주의자들의 우려가 집중될 만한 사건이다. 전래 민화는 그나마 몇 권의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일본의 고단샤講談社, 한국의 웅진출판사 등에서 비롯하여 민화라는 이름의 책들이 쏟아진다.
재현민화는 오늘날도 민화 화가들에 의해 상품으로 제작되고 있다. 판본 민화 등은 대통령 해외 순방 시 선물 등으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생활민화이다. 민화가 소재가 되는 공예품이나 기념품 등 문화상품이다.
생활주변의 민화 관련 상품을 뒤진다. 생각보다는 많고 예상보다는 적다. 캐릭터 상품ㆍ팬시상품이라면 헐리웃이나 도쿄가 압도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백화점의 토종 농산물처럼 수줍게 민화 상품이 숨어 있다.
민화에서 파생되었거나 소재만 빌린 것, 동양화나 자수와 공유하는 것 등이 보인다.
장신구로는 줄 타이ㆍ허리띠 장식ㆍ열쇠 고리ㆍ타이 핀 등이 있다. 공공용품으로는 우표 전철표 선전 책자 등이 있다.
생활용품으로는 술잔 오디오 테입 CD-Rom 등 표지가 있다. 문양에서 보면 고구려 벽화 문양ㆍ까치와 호랑이ㆍ강륜문자도 등이 보이지만 십장생이 압도적이다. 그나마 한민족에 흐르는 민중적 원형을 확인한 셈이다.
군작군호도群鵲群虎圖라ㆍ떼거지로 몰려 있는 까치와 호랑이를 그렸다. 모양이 각각 다른 작호도를 여러 개 잇대어 그렸다. 건물의 벽화이다. 어딘가. 세운상가 종로 쪽의 벽화이다.
“한국의 호랑이와 까치는 행복을 날라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다. 이삿짐 나르는 회사의 광고이다.
대개 이사란 보다 낳은 곳으로 옮겨간다는 뜻을 가진다. 그 반대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사 갈 때 빈다. 살기 좋은 곳으로 가야 할 텐데...
이사 갈 때 어떤 사람은 공기 맑은 곳으로 간다. 그린벨트라도 좋으니 뒷산이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는 곳이 좋겠다 한다. 말이야 쉽지만 사실 그게 명당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짜증나는 장사치들 확성기 소리 싫다고 아파트로 이사 간다. 이런 이사는 비교적 인간적이다.
때로 운수 대통ㆍ승진 등을 기원하여 이사 가는 경우도 있다. 동북방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다 라는 점쟁이 말을 믿는 사람이 그러하다.
난 안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용기가 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한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한국인이라면 가능성보다는 ‘자리’ 를 챙긴다. 자리가 곧 가능성이니까 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다. 기적적으로 구조된 신세대가 있었다. 다른 유가족들의 선망은 대단했다. 그 선망을 어떻게 표현했던가.
야구 선수들처럼 손바닥을 마주쳤을까. 살아나온 처녀 아이가 덥다고 벗어 던졌던 속옷을 서로 가지겠다고 아우성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왜란 호란 동란 등에서 ‘나쁜 피’가 섞였을지 모른다.
한국인은 그 ‘자리’에 앉으려 한다. 유가족이 구조된 사람들의 가족이 앉았던 자리에 앉고자 줄을 섰다. 그 행운을 자신에게도 나누어 주십사 하는 기원이 자리 타령으로 나타났다.
그 배경에서 명당 타령이 나온다. 대통령도 대법원장도 자리에서 나온다. 감투가 큰 자리이니 비쌀 테고 좋은 자리겠지. 그러나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의 자리가 아니라 죽은 아비나 어미의 자리이다.
죽은 부모의 음덕이 그 자리를 주려니 하는 신념이 있다면 적어도 그런 신념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행동반경이나 결단력이 넓고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한국인의 마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의 핏속에 혈통이나 전통의 이름으로 흐르고 있는 원형적인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주변에 우리의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투각장생원透刻長生垣는 장생 상징물을 투각으로 파낸 그림이다. 돈화문 입구에 있다. 투각이란 건너편이 보이도록 파 들어갔다는 뜻이다. 원은 울타리이다. 장생상징물이 새겨진 투각울타리가 된다.
요즘 투각은 반드시 파 들어가지는 않는다. 대량생산되어 주물로 성형된다.
사슴 소나무 영지버섯 등이 새겨져 있다. 십장생의 장수상징물이다. 십장생은 장수상징물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다. 한국적 원형을 담고 있다. 불로장수와 신선사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오천년 이상 민족의 신화적 배경이 자리한다.
중국은 한족漢族의 나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한족의 주류는 동이족이다. 동이족의 문화는 중국의 신화 문화 사상 예술의 바탕을 만든다. 오늘날 동양 정신이라 부르는 문물이 동이족의 원형에서 비롯한다.
그러한 자존심을 담고 있는 것이 십장생도이다. 요지연도 해학반도도 군선과해도 일월곤륜도가 바로 신선사상과 산악 사상의 도해이다.
그 십장생이 돈화문 옆쪽의 울타리에 새겨졌다. 그뿐이랴. 알루미늄 합금으로 대량생산되어 고급 주택의 울타리나 문짝에 장식된다. 수더분하고 엉성한 것까지 민화의 십장생을 연상시킨다.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이런 전통 무늬는 정겨울 수 있다. 더욱이 그 뜻을 설명하여 세계 무대에 내놓으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살라는 덕담을 싫어할 사람이 없을 터이니 말이다.
최근 디자인의 홍수 속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아예 서구화와 동일시되고 있는 느낌이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외래 문물에 노출되어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현대인들은 전통이란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것이 전통의 속성이거니 한다. 하여 이국정서가 전통 미감을 제어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전통이란 이름은 오랜 세월 하나의 문화권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편하게 느껴지는 집단무의식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날 도시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현대적인 디자인이란 결국 이 땅에 5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전통문양에 익숙한 사람들의 감각의 위에서 성립한다.
그렇다면 분명 오늘의 도시와 사회에 전통이 그대로 도입되어 광채 있는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스팔트의 정글, 도시의 역사는 한국에서 불과 50년이다.
십장생 굴뚝은 십장생이 장식된 경복궁 자경전 굴뚝이다. 자경전은 조건 말기 고종의 양모인 신정왕후가 거처하던 내전이다. 고종 4년 1867년 준공했다. 두 번 불에 탄 후 고종 23년에 완성되었다. 십장생 굴뚝은 자경전의 뒤쪽에 있다.
십장생의 장생물이 등장하기에 십장생이다. 그러나 일월산수 산석송죽 학록구지만 하더라도 열둘이다. 더하여 국화 연꽃 포도가 그려진다. 주변에는 복의 상징인 박쥐, 벽사의 상징인 나티와 해태와 불가사리가 그려진다.
그런데도 십장생이다. 십장생이야 한국어로만 해독이 가능한 우리 것이다. 오천년을 지켜 온 우리의 소박한 상징 체계와 원형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민화와 연관된 것을 찾으라 한다면 십장생과 연관된 것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십장생이 한국인에게 그만큼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다. 십장생은 한국인이 것이다. 한국에만 있다. 일본도 중국도 물론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없다.
되풀이하건대, 십장생의 「십」은 경음화 현상에 따라 「씹」이 된다. 성숙한 여자의 성기요, 성교를 뜻한다. 자손 중에서도 아들을 낳아 대를 잇고 제사를 모시련다는 기원이 십장생이 담겨 있다.
천하제일산 곤륜을 무대로 중국의 상고 시대 신화와 전설의 무대를 장악했던 동이족의 원형이 어려 있다. 동양사상의 큰 줄기인 신선사상이 원류가 배어 있다. 서왕모의 신화이다. 일월곤륜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하늘사상이 서려 있다.
그러니 한국인이 십장생과 연관된 하늘사상을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십장생 굴뚝은 간결한 도안과 정감 어린 자연적 구성이 뛰어나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그 조형미와 자연미는 상찬할 만하다. 오히려 현대적인 건물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한국미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화라는 것이다. 민화는 민족적 원형을 간직한 민족정신이고 민족정기이다.
때로 민족적 원형과 정신과 정기라는 개념은 국수주의ㆍ문화적 쇄국주의라는 개념과 혼동되기도 한다. 오랜 세월 우리를 폄하했던 내외적인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그 불신의 벽을 걷어 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 첫 단계는 우리의 것을 아는 것이다. 민화에 그 단서가 있다.
소재와 상징에서 민화를 보면 한심한 현상이 발견된다. 함정이다. 민화의 소재는 중국에서 온다. 한자의 상징 체계를 따른다. 많은 민화 수집가와 현장 조사자들이 이 함정에 빠졌다.
결국 무지렁이 환쟁이들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림이 민화라는 상식적인 추론에서 맴돌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한족과 중국은 한 번도 이 나라를 정복한 일이 없었다. 한자를 강요한 일도 없었다.
훈민정음을 발표할 때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민화가 중국 그림을 그렸다 한다.
사대 정책은 위정자의 전략이었다. 민중은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대국이건 되국이건 상관이 없었다. 민화는 우리의 그림이다. 먼저 민화에 대한 견해들을 다시 정리해 보자.
호렵도는 중국 무인들이 사냥하는 장면이다. 백동자도는 변발을 한 중국 아이들이다. 작호도는 중국에서 성행한 문자그림이다. 이렇게 민화책들은 풀이를 했다. 한자 풀이와 중국 고사ㆍ한시 화제 해설로 일관한다.
그래서 민화학은 없다. 민화 수집가와 현장 조사가들의 한계일 것이다.
호렵도는 청나라 무인들의 사냥 그림이다. 청나라는 알타이어족의 기마민족이다. 우리와는 문화적 교린 관계이다. 문화적 공감대와 친밀감일 것이다. 조선의 무인들이 겨울 사냥 때 입는 옷은 호복과 흡사하다.
그 전통은 고구려 수렵 벽화와 상고 시대 암각화에 잘 나타난다. 진시황 병마총의 병사들은 기마민족의 호복을 입었다. 그 기마민족이 알타이어족이다. 청나라와 동이족을 잇는 고리이다.
백동자도는 알타이어족의 하느님이 사는 하늘궁궐이 배경이다. 하늘나라 아기씨앗을 그린다. 구중궁궐에 사는 하느님은 동이족의 알님이다. 큰 알님이니 태양신이고 상제이다.
청나라 사람들이 간직한 알타이 문화이기에 우리가 거부 반응없이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호도는 중국에서 까치와 표범이었다. 까치는 동이족의 문화원형인 신시베리아 문화권의 조류 신앙의 표상이다. 표범은 한국인의 정기인 호랑이로 바뀐다. 호랑이는 신선사상 도교 사상 벽사 사상 등의 한국적 원형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이라는 거품 사이로 한국이 보인다. 한국인은 중국의 상징을 의식 없이 채용한 일이 없다. 우리 것이기에 당연히 사용했다. 중국에서 가공한 것을 가져오더라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고 만다. 그
것이 오천년 이상 이 나라를 지탱해 왔던 동이문화의 자존심이다.
민화를 다시 보자. 일본인이 잡담 끝에 붙인 이름도 바꾸고 중국 기원의 모든 소재 상징을 동이문화와 한국 정신으로 재해석하자. 그것이 세계화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는 탄탄한 큰길이다.
세계 언어로서의 민화
우리는 민화행 타임머쉰의 종착역에서 고향을 만났다. 오늘 도착한 고향에는 세 개의 원형이 있었다. 민화의 이름과 개념, 소재와 상징을 바탕으로 전통민화 재현민화 실용민화를 훑어보았다.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들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야 전통이 그런 것이겠지. 그 속에 오늘과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전통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다.
전통 미의식을 담은 그림, 그러면서도 만국공통어로서의 예술 언어를 재창조해 나가는 그림이 있다. 민화를 소재로 하거나 민화의 의미를 빌리거나 상징언어를 재해석하여 이들 그림은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어려워진다. 또 하나의 언어, 즉 조형 언어의 관점에서 재창조되는 민화는 쉽게 풀이될 수도 있다.
조형언어는 일상언어를 포함한다. 즉 조형언어=원초언어+일상언어+초월언어이다. 일상언어는 명칭언어ㆍ의미언어ㆍ개념언어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조형언어=원초언어+일상언어+명칭언어+의미언어+개념언어+초월언어가 된다.
원초언어의 위에 일상언어, 그 위에 초월언어가 삼단으로 포개져 있는 것이 조형언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밑에서부터 동물적 인간적 신적 언어라 부르면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다. 엘리아데가 신화를 분류했던 기준을 빌렸다.
원초언어란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울고 웃는 소리, 비명 혹은 감탄사이다. 경험언어이다. 정서적 정감적 언어를 포함한다. 십장생 그림을 보고 포근한 느낌을 가졌다면 원초언어를 이해한 것이 된다. 그 원초언어의 위에 일상언어가 있다.
일상언어에서 명칭언어를 십장생이라 하자. 의미언어는 열 개의 장생상징물이다. 개념언어는 장수와 신선사상의 한국적 시각화로 정의될 수 있다. 학습의 언어이다.
원초언어와 일상언어의 위에 초월언어가 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언어이다. 텔레파시 비슷한 언어이다. 직관의 언어이다. 사밀언어Private Language를 포함한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으되 감관에서 감관으로 소통될 수 있는 언어이다.
미술에서 초월언어는 문맥Context이나 기호Sign로 나타난다. 문맥 혹은 맥락은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조형적 논리이다. 기호는 숫자ㆍ문자ㆍ상징도상을 포함한다. 하나의 문화권ㆍ언어권에서 통용되는 언어이다.
한국 사람이 그린 그림은 한국인이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만국공통어라 한다.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란 뜻이다.
우리의 젊은 화가들은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춘월화조도春月花鳥圖는 작가 김용철이 이름 붙인 그림이다. 때는 바야흐로 봄ㆍ달밤의 꽃과 새라는 뜻이리라. 산과 달 모란 새 포도 등이 그려졌다. 민화 풀이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란은 부귀이다.
새 두 마리는 부부금슬이다. 당초나 포도는 자손이 많음을 기원한다. 산과 달은 십장생의 장생물일 수 있다. 봄의 달밤이라, 사랑하기 좋은 날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다. 작가는 산사山寺의 해, 좋은 날로 풀이한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조형언어의 탈바꿈을 보게 된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원형적인 색채와 도상을 통해 작가는 원초언어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언어는 전통 상징을 빌려 오되 작가가 재해석한 언어로 탈바꿈한다.
작가는 이 그림의 소재를 선운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원통전 투각 문살 그림을 번안했다고 했다. 투각이란 안쪽이 들여다보이도록 파 들어갔다는 말이다. 절에서 민화의 소재를 얻어 왔다니 이상한 생각이 듬직도 하다.
원시불교는 알타이 문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알타이어족의 세계 진출과 연관이 있다. 알타이어족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 중동 아시아 미주 대륙으로 벋어나갔다. 인도에도 물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불교의 전래란 이 땅에서 불교와 공유할 수 있는 공통문화소의 발견이다. 부머랭 효과라 할 수 있다. 불교의 정착은 옛것과 오늘의 공통소가 융화하는 것이다.
절의 민화는 그러므로 불교에서 받아들인 알타이 신앙의 한 형태일 것이다. 원체 불교는 민중문화를 수용함으로써 민중과 가까워진다.
김용철은 70년대 체재 비판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80년대에 화합을 상징하는 하트형의 그림으로 전환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국적 확인의 그림으로 돌아선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민화다.
‘미숙하고 촌스럽더라도 우리의 모델을 만들자’ 는 목표 아래 자생적 문화에 접근했다. 그것이 민화를 이용한 그림이다. 그는 우리의 고유 모델을 세계무대로 가져가 보여줄 생각이다.
민화를 자생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서 울어나는 것이다. 민화의 화려한 색채, 우리 원초문화의 신바람을 미술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우리의 것이면서 바로 세계언어, 혹은 만국공통어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용철의 언어는 그러므로 신명나는 원초문화의 세계이다. 들으면 어깨짓이 들썩들썩하고 보면 가슴이 설레는 신명과 신바람의 문화이다.
십장생도十長生圖를 오늘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이 박이선의 세계이다. 민화를 소재가 아니라 정신에서 접근한다.
박이선의 십장생도는 제목이 십장생도이다. 언뜻 보아 십장생도 같지 않다. 소재에서 알아볼 수 있는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조형언어에서 본다면 초월언어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박이선은 줄곧 십장생을 소재로 다루었다. 알아볼 수 있는 십장생의 요소를 그렸더라는 이야기이다. 3회전에서 그 소재성을 벗어난다. 그래서 십장생을 찾을 수 없는 십장생이 되었다. 이 과정은 원초언어에서 초월언어로의 이행으로 설명된다.
원초언어는 기본적으로 원색적인 언어 체계이다. 원색적인 감동, 원색적인 전달이 그 바탕이다. 그림에서 반드시 원색을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논리나 비판 이전에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라는 의미이다. 자연 형상이 바탕이 되었다.
원초언어를 유발하던 중요한 요소이던 형상을 버리고 작가는 초월언어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십장생이라는 일상언어를 개념화한다. 단순화한다. 장수 평안의 염원인 십장생의 개념을 조형화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수직선과 수평선의 조화로, 돌 나무 구름 등의 형태를 기하적 형태로 바꾼다. 초월언어를 향한 기호화이다.
제목은 또 하나의 초월언어가 된다. 일반적으로 제목은 작품과의 대수적 함수 관계에 있다. 유기적인 연관이 맺어진다. 그런데 박이선의 제목은 작품의 설화적 해명Narratives가 아니다.
작품의 조형언어라는 일상의 언어 체계에서 연상될 수 있는 유기적 연결부분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초월언어의 세계가 된다.
원초언어와 초월언어는 조형언어 상에서 대등한 언어이다. 그것은 조형언어가 만국 공통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젖먹이의 옹아리 같은 원초언어와 선승의 화두 같은 초월언어가 모두 하나의 조형언어로 대접받는 것이 그림의 세계이다.
이 언어는 하나의 문화권에서는 소통이 된다. 문화권 자체가 언어권을 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문화권에서는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된다. 그렇다면 그 문화권을 벗어난 이질적 문화권에서 이러한 언어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박이선은 그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원초적인 요소와 일상적인 요소를 화면에서 제거하는 시각을 도입했다. 어떻게 그 언어가 세계언어가 될 수 있을까.
첩첩산중疊疊山中는 이희중의 작품이다. 한국의 산이란 원래 첩첩산중이다. 그것을 서구적 원근법이 아니라 평면으로 처리했다. 그래서 마치 모든 산들이 같은 거리에 놓인 것처럼 그려진다. 이를테면 민화의 시각 중에서 병치의 기법이다.
민화의 기법은 병치와 조감과 중첩이다. 조감은 하늘을 오르내리는 사다리에서 그린 것처럼 그려진다. 중첩은 서로 다른 원근법이 하나의 화면에 겹쳐 그려진다.
소재 역시 민화에서 따왔다. 꼬부랑길이나 황토 마루 같은 소재의 느낌과 정감을 담았다. 형태 뿐 아니라 정감 감동을 빌려 온다. 여기까지는 원초언어의 영역이다.
그 다음이 기호화 과정이다. 십장생을 도입했던 박이선은 개념화를 거처 기호를 만들었다. 이희중은 원초언어에서 바로 기호를 만든다. 산에서 접하는 새ㆍ나비ㆍ절 등이 민화의 십장생 모란도 연자도 등과 함께 해설 없이 나열된다.
그래서 민화의 소재는 객관화한다. 이윽고는 그 자체가 기호가 된다.
그 다음에 하늘과 땅과 인간, 즉 천지인의 사상으로 이 그림은 구조화한다. 하늘에 해가 떠 있다. 산 속에 인간이 온갖 염원과 동경을 담고 살아간다. 그렇게 읽어질 수 있는 설화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은 원초언어와 초월언어를 통합한다.
정서와 감동의 색면 구성과 기호화한 상징언어가 하나의 화면에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조화와 공존의 화면에서 우리는 국제언어화의 강렬한 동기와 의지를 읽는다.
소재는 객관적으로 선택 해석된다. 동양적인 윤곽선이 부드럽게 그려진다. 그 안에 민화의 한국적인 원색을 누그러뜨린 중간색이 들어간다. 외국인들도 먹을 수 있도록 맵지 않게 담근 김치 같은 그림이 되었다. 그것이 국제화 혹은 세계화의 기틀이다.
이희중은 서구적인 교육에 의한 서구적 방법론이 국제 언어의 기본틀이라 본다. 그 위에 우리의 정감을 얹었을 때 충분히 국제언어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초언어를 서구적인 방법론으로 초월언어화한다.
마치 식혜를 캔으로 저장하여 수출하자는 전략처럼 들린다. 물론 그것이 최선의 것은 아니다. 얼음이 둥둥 뜬 항아리의 식혜를 세계인이 더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 작가의 작품을 원초언어 초월언어 국제 언어의 예로 설명했다. 그러나 순차적인 우열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모두 우리의 소중한 저력이다.
우리는 다국적 정보화사회, 국적 없는 경제전쟁 혹은 문화전쟁의 와중에 서 있다. 국적도 국민 국어도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는 시대가 21세기이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민족적 주체성이다.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세계화에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상실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고향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가다듬는다. 동양문화와 정신의 원형인 동이정신에서부터 우리의 민화를 재조명한다.
동이의 고향인 하늘의 율법과 이치를 도장찍듯 새겨 따르는 그림, 하늘 민족의 하늘을 향한 어릿광을 담고 있는 그림이라, 천인화天印畵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하늘 민족의 하늘정신을 담고 오늘도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만국공통어의 가능성을 그림에 담아 나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민족의 저력일 것이다. 동이의 정신에 대한 신념은 단지 지난 옛 동이문화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 아니다.
바로 어제를 오늘에 받아들여 내일을 여는 한국의 저력이다. 21세기를 이끄는 한국인의 의지다.
동양문명이 탈 근대 사회의 보편적 사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설문이 있었다. 중국인은 16%가 ‘예’ 라 대답했다. 일본인은 38%였다. 한국인은 90%를 넘었다.
뿐인가. 21세기가 동양정신에 의한 르네상스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도대체 무슨 똥뱃장인가.
이 책을 처음부터 읽은 사람은 그것이 똥뱃장이 아니라 은근과 끈기임을 안다. 5천년 한국문화의 원형인 동이정신에서 오는 옹골찬 확신임을 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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