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87 ㅡ 그릇 놀이 (사소)
그릇이란 글자를 그려보면 둘 다 ‘ㅡ’가 있는 모양이, 굽이 없는 접시와 굽이 있는 접시 위에 뭔가 올려놓은 모양이다. ‘릇’ 글자는 아래 모양이 신라 때 그릇이나 제기랑도 닮았다. 입말이 먼저 생겨났을 터인데 신기하다. 남매를 위해 매일 아침 음식을 정성스럽게 내면서, 왜 테이블웨어라고 부르는지 알게되었다. 상대를 만날 때 옷매무새 부터 단장하는 게 기본 자세아닌가? 이제야 신혼 때 기억이 났다.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 가서 나무아래서 까먹었던 일...용도마다 그릇을 챙겼던 일들... 여름이 되면서 오래된 그릇을 정리하고 00도자기의 얄팍하고 가벼운 느낌을 좋아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쉬는 날 00도자기 청주 공장으로 운전을 했다.
예전엔 그릇을 세트로 사거나 동대문에서 ㅋ렐을 주문하곤 했다. 몇 년 전 홍대 앞 편집숍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프랑스산 듀0락. 밥, 국그릇은 좋아하는 투명한 블루인데 공기가 조막만 해 가뿐하게 잘 쓰고 있어서 굳이 더 살 필요가 없다. 결국 남매를 위해 특이하고 신기한 접시나, 그라탕기, 파스타 볼, 생선 접시, 소스 볼 등 흔하지 않은 것을 골랐다. 그런데 그곳에서 덤으로 우연히 발견한 손보다 작은 핫 케이크기를 보면서 ‘어마나!’ 하면서 큐티한 매력에 빠졌다. 이렇게 불이 붙은 나의 그릇과 요리 도구에 대한 애정은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인터넷 쇼핑몰 ㅋ팡의 와 0열성 회원으로 십분 활용됐다.
외식이나 주문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 대신이라 생각하니 소비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릇의 세계에서 놀다 보니 인터넷에서 영국, 독일, 포르투갈산 그릇들과 TV에 나오는 유명한 요리장인들이 쓰는 듯한 핀셋. 집게들로 집이 작은 전시장이 된듯하다. 메이드 인 외쿡이지만, 싸고 이쁜 것도 많고 무엇보다 보는 순간 작은 감동을 줄 신기한 것들도 많다. 소꿉놀이 같은 디저트 스푼이랑 포크. 스웨덴이나 핀란드 풍의 유리컵들.... 게다가 예전엔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핀란드 알바 알토나 핀율 느낌의 안개를 담은 듯한 그릇도 국내 기업이 창조적으로 베껴서 저렴히 팔고 있으니 아무튼 우리나라는 천재들이 사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신기한 그릇들을 숨겨놓고 매일 아이들을 놀래키려는 일상의 꿈. 물론 아침이라 주먹밥이 대부분이지만 엄지만한 전등이 음식에 비추고, 유치하고 귀여운 컵이 식탁에 놓인다. 딸내미가 매년 스스로 캐릭터 콘셉트를 정하듯 ( 딸은 올 해는 다소 비관적이고 사회에 무관심한 지식인이라 했다 ) , 나도 '앙증맞기'라는 콘셉을 정해 남은 한 해를 살아보자!
요리에 진심인 아들은 현무암 느낌의 흑색 플레이트를 사 달라 했다. 그런데 중국산은 너무 싼 것이 몸에 해로운 성분이 있을 것 같아 이내 고개를 돌렸다. 대신 독일산으로 흑색 플레이트를 몇 개 주문했다. 한꺼번에 보이면 즐거움이 사라지니 숨겨놓고 하루하루 즉흥적으로 초이스 해서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 할 때 설렘을 잠시 느낀다. 염세에 살짝 발을 담근 딸은 왠지 모를 미소를 반쯤 짓고, 아들은 소꼽놀이하는 나를 지그시 본다.
“ 그러니 행복해요? ” 한다.
나는 “ 응. 무지 해피해”라고 답하니,
“ 그럼 됐어요.” 하는 아들의 얼굴에 무심하고 옅은 평화가 잠시 지나간다.
첫댓글 그릇이 의태어였네요. 정성스런 모습..
그릇의 의미를 알게 되는 시절입니다요. ^^
오, 아드님의 멋진 플레이팅은 검은 접시에서 이루어지는군요. ^^
넵. 피부관리도 혼자 잘 하시고 옷 입는 것도 간지작렬남입니다. ㅎ
소꿉놀이 할 때는 사금파리나 동백나무 잎이 그릇이었습니다.
ㅎㅎ 저도 빠꿈살이를 동네 어귀에서 했던 기억이 있어요. ^^
정말 그릇으로 하는 놀이군요. 가족들의 재미있고 행복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들 딸 표정을 찾아내려고 조금은 긴장되기도 한답니다.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그리운지요. ^^
무지 해피하디니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