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유형문화재 제191호(경주시) 경주향교(慶州鄕校)
소재지 경북 경주시 교동 17-1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국가교육기관이다.
향교(鄕校)는 고려(高麗)·조선시대(朝鮮時代)에 지방(地方)의 국립(國立) 교육기관(敎育機關)이다. 성현(聖賢)을 배향(配享)하고 학생(學生)들에게 강학(講學)을 하는 두 공간(空間)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은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聖賢)들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동·서무에는 공자의 제자(弟子)나 현인(賢人)들을 모신다. 강당(講堂)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서재(東·西齋)는 강학공간(講學空間)이다. 이 향교는 신라 신문왕(神文王) 2년 (682)에 국학(國學)을 창설(創設)한 곳이며, 고려시대에는 향학(鄕學)으로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져온 유서(由緖) 깊은 장소이다. 이 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成宗) 23년 (1492)에 경주부윤(慶州府尹) 최응현(崔應賢)이 중수(重修)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燒失)된 것을 선조(宣祖) 33년 (1600)에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대성전과 전사청(典祀廳)을 중건(重建)하고, 선조 37년 (1604)에 부윤 윤성이 동·서무를, 광해군(光海君) 6년 (1614년)에 부윤 이안눌(李安訥)이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이 향교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내에서 가장 크며, 건물 배치는 나주향교(羅州鄕校)와 함께 향교의 표본(標本)이다. <해설: 문화재청>
동문으로 들어가니 우물윗돌(石井上石)이 먼저 보인다.
명륜당 뜨락에서 한 컷~~
경주향교 정문이 잠겨 있어 동문으로 돌아 한참을 걸어서 대성전 정문을 찍었다. 대성전 정문도 잠겨 있기에 담 넘으로 '대성전'을 담았다.
경주향교 배치도에 나타난 땅의 모양이 세로로 조금 길기는 하지만, 그 모양이 가상학(家相學)적으로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출처: 산들산들 바람따라 원문보기 글쓴이: 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