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덕산-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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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지리산 천왕봉을 남쪽이나 동쪽에서 오르기 위해서는 중산리와 대원사를 거쳐야 한다. 덕산은 중산리나 대원사로 통하는 지리산의 남동쪽 관문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이지만 사람들에게 덕산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덕산에 들어서자 어느새 지리산의 넓고 깊은 품안에 들어온 것 같다. 지리산 천왕봉이 고고한 품세를 드러내고, 서쪽에서는 써리봉에서 뻗어 나온 황금능선과 구곡산이, 동쪽에서는 웅석봉에서 이어온 지리산의 마지막 줄기인 이방산․수양산․백운산이 덕산을 감싸고 있다.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지리산에서 약초며 산나물을 채취한다. 지리산에서 나오는 산야초와 산나물은 주로 덕산에서 거래된다. 그래서 덕산에 약초시장이 선다.
덕산으로 불리는 시천면소재지는 지리산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는 규모도 크고 상가도 발달되어 있다. 예로부터 덕산에는 5일장이 성행하였고, 지금도 4일과 9일이면 장이 선다.
시천면소재지를 벗어나자 덕천강이 덕산을 감싸고 유유하게 흘러가고 있다. 덕천강은 대원사 쪽에서 내려오는 강물과 중산리계곡에서 내려오는 시천천이 덕산에서 합류하여 강폭을 넓힌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내려 보고 지리산의 맑은 물줄기가 만든 덕천강이 감싸고도는 덕산은 지리산의 고고한 기운과 덕천강의 청정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지리산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이 중산리계곡․도장골․거림골을 만들고, 중봉에서 하봉․왕등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대원사계곡을, 중봉에서 써리봉과 황금능선이 마야계곡과 내원골․장당골을 이룬 후 서로 만나 덕천강이 되었다. 덕천강은 덕산을 지나 굽이굽이 흘러 사천시 곤명면에서 진양호에 합류하여 남강이 된다.
시천면소재지에서 원리교를 건너면 시천면 원리다. 덕천서원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원리 또는 원촌이라 불렀다. 덕산중․고등학교 옆 구곡산 자락에는 덕천서원이 있다. 입구에는 남명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400년이 넘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시정문(時靜門)이라 쓰인 외삼문을 들어서니 정면에 덕천서원(德川書院)이 단아하게 앉아있고, 넓은 마당 사이로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다.
덕천서원은 남명이 타계하고 5년 뒤인 선조9년(1576)에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제자들이 세웠으며, 광해군 1년(1609)에 사액을 받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없어져 1920년에 중건되었다. 산천재가 그렇듯이 덕천서원도 청빈하고 기개가 곧은 남명선생의 삶처럼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고 단아하고 소박하다.
덕천서원 앞 덕천강가에는 세심정(洗心亭)라고 하는 사각정자가 혼탁한 마음을 씻어주듯 고요히 앉아 있다. 지금의 정자는 근래에 중건된 것이지만 세심정도 남명 선생 생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덕천서원은 둘레길에서 중산리 가는 길로 200m 쯤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만사제치고 남명선생의 고고한 혼을 느끼고 온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역사를 만나는 일이고, 그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평교를 건너 덕천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뒤로는 구곡산이 우뚝 서 있다. 강 건너로 덕산의 건물들이 바라보인다. 남명선생이 제자를 길렀던 산천재도 덕천강변에서 유구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제8구간 때 걸었던 마근담계곡도 바라보이고, 백운산․수양산 같은 봉우리들도 강 건너에서 손짓을 한다.
천평리는 덕천강으로 둘러싸인 너른 평지에 자리를 잡았다. 천평리는 당산, 송하, 숲말, 음지 등 4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산 숲이 있다 하여 당산마을, 소나무 숲 아래 마을이라고 송하마을이라 했다. 숲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숲말, 음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음지마을이라고 불렀다.
강물은 깔끔한 자갈 위로 흘러가면서 스스로를 정화하고, 강가의 자갈밭은 정갈한 여백을 만들어 강의 품격을 높여준다. 잠시 들판을 적셨던 덕천강은 물줄기가 굽어지면서 협곡으로 흘러간다. 수양산에서 내려오는 지리산 끝줄기와 중태마을을 감싸고 있는 두방산 줄기가 만나려다가 줄기를 잇지 못하고 덕천강으로 빠져든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덕천강과 헤어지기 전에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지리산 연봉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 덕천강을 등지고 중태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중태마을로 통하는 도로는 차량통행이 뜸해 걷는데 불편하지는 않다. 주변의 밭은 온통 감나무 일색이다. 늦가을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릴 이곳 풍경은 상상만 해도 풍요롭다. 산청군 시천면은 경상북도 상주, 충청북도 영동과 함께 우리나라 곶감의 주생산지이다. 시천곶감은 전국 곶감경매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양이 생산된다. 이렇듯 곶감은 시천면 주민의 가장 큰 소득원이다.
시천곶감은 적색보다는 황색이 강하며 당도가 높아 조선시대에는 고종황제에게 진상되었고, 1999년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에게 선물하여 극찬을 받기도 했다. 시천곶감은 지리산의 차가운 공기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일교차를 크게 발생시켜 당도가 뛰어나다. 주변에 오염원이 전혀 없는 청정지역이라서 자연 상태로 건조하기 때문에 곶감의 신선도도 높다.
나와 아내는 중태마을을 품고 있는 두방산(494m) 골짜기로 깊숙이 빠져든다. 중태리는 하동군 옥종면에 속하였으나,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청군 시천면에 편입되었다. 중태마을에는 길 가운데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가 있다. 오가는 탐방객들이 스스로 책임여행과 공정여행을 다짐하는 기록을 남기는 장소다. 이 안내소에는 둘레꾼들에 의한 농가의 피해를 줄이면서 마을이 자율적으로 지리산둘레길 안내를 담당하겠다는 소망이 담겨있다.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를 지나자 트럭 1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시멘트길이다. 길옆의 작은 계곡에서는 티없이 맑은 물이 흘러간다. 산비탈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작은 밭에도 감나무 일색이다. 이런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살까 싶지만 가끔 민가도 나타나고, 작은 마을도 있다. 골짜기는 점점 깊어지고 물줄기는 가늘어져 실개천으로 바뀐다. 아내와 함께 길을 걷다가 땀이 나면 물가에 앉아 세수도 하고 탁족도 하는 여유를 즐긴다.
깊은 골짜기가 끝나갈 무렵, 또 하나의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유점마을이다. 유점마을이라는 이름은 골짜기 이름인 놋점골에서 비롯되었다. 유점마을에서는 이름 그대로 옛날에 놋그릇(유기)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점마을은 덕천강가에서 좁은 골짜기를 통하여 6km 이상 들어와야 만날 수 있는 마을이라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별천지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난다.
“할머니, 이 마을에는 몇 가구나 사세요?”
“일곱 가구야. 토박이는 하나도 없고 전부 외지에서 좋은 자연 찾아온 사람들이야.”
도시에서 귀농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모든 집이 근래에 지은 현대식 가옥들이다. 골짜기가 워낙 깊고 좁아 열려 있는 곳이라곤 하늘밖에 없다. 문득 나희덕 시인의 ‘소리들’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승부역에 가면 /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 구름 옮겨가는 소리 /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 모녀가 손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 발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 고요도 세 평’
우리는 세 평짜리 하늘을 바라보며 때 묻지 않은 원초적 심성으로 걸어 들어간다. 구불구불한 길과 운치 있는 대숲도 자연이 준 심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대숲길을 지나자 아름드리 네 그루 서어나무가 고요를 즐기고 있다. 유점마을 당산이다. 서어나무 당산 아래에 앉아서 고요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즐긴다. 깊은 골짜기가 끝나자 임도를 벗어나 호젓한 산길로 이어진다.
잠시 후 갈치재에 닿는다. 갈치재는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옥종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중태재라고도 불린다. 갈치재는 예전 등짐장수들이 소금·미역·김·건어물 등을 짊어지고 산청과 하동을 넘어 다니던 장삿길이었다. 갈치재 오른쪽으로는 주산을 거쳐 지리산 삼신봉․영신봉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두방산으로 뻗어나간다.
갈치재에서 호젓한 숲길을 내려오니 하늘 높이 솟은 대나무 숲이 장관이다. 왕대 사이를 걷고 있으니 댓잎이 사각거리면서 세속의 떼를 벗겨준다.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나니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진다. 아름다운 대숲길을 내려오니 조그마한 소류지 너머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뻗어 나와 김해까지 이어가는 낙남정맥 줄기가 다가온다. 모내기를 기다리는 무논에서는 개구리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온다. 이윽고 위태마을이다.
(2013. 5. 26)
*여행쪽지
-지리산둘레길 덕산-위태 구간은 10.3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진주에서 원지를 거쳐 대원사나 중산리 가는 버스를 타고 덕산에서 내린다. 원지터미널에서 덕산행 버스가 첫차 06:35, 매시간 25분, 막차 21:35에 있고 30분 정도 걸린다.
(원지시외버스터미널:055-973-0547,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
-위태마을에서는 옥종-진주행 버스가 08:10, 12:55, 18:50에 있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옥종택시 055-882-8094)
-위태리에는 식당이 없다. 근처 옥종면소재지에 있는 영화식당(055-882-4210)은 주인의 손맛과 인심이 좋아 백반 등으로 간단하게 요기할 때 좋다. 미리 주문하면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서 특별식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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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은 중산리나 대원사로 통하는 지리산의 남동쪽 관문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이지만 사람들에게 덕산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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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은 남명이 타계하고 5년 뒤인 선조9년(1576)에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제자들이 세웠으며,
광해군 1년(1609)에 사액을 받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없어져 1920년에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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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 앞 덕천강가에는 세심정(洗心亭)라고 하는 사각정자가 혼탁한 마음을 씻어주듯 고요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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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강은 대원사 쪽에서 내려오는 강물과 중산리계곡에서 내려오는 시천천이 덕산에서 합류하여 강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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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평교를 건너 덕천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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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선생이 제자를 길렀던 산천재도 덕천강변에서 유구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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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들판을 적셨던 덕천강은 물줄기가 굽어지면서 협곡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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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태마을에는 길 가운데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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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를 지나자 트럭 1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시멘트길이다.
길옆의 작은 계곡에서는 티없이 맑은 물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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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살까 싶지만 가끔 민가도 나타나고, 작은 마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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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는 점점 깊어지고 물줄기는 가늘어져 실개천으로 바뀐다.
아내와 함께 길을 걷다가 땀이 나면 물가에 앉아 세수도 하고 탁족도 하는 여유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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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길과 운치 있는 대숲도 자연이 준 심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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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점마을-"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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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짜기가 끝나자 임도를 벗어나 호젓한 산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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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재는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옥종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중태재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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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재에서 호젓한 숲길을 내려오니 하늘 높이 솟은 대나무 숲이 장관이다.
왕대 사이를 걷고 있으니 댓잎이 사각거리면서 세속의 떼를 벗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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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소류지 너머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뻗어 나와 김해까지 이어가는 낙남정맥 줄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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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산줄기를 바라보며 시멘트길을 내려오면 위태마을(상촌)에 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