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봉전망대에서의 조망은 무엇보다도 남쪽에서 다가오는 여섬의 모습이 압권이다.
커다란 고막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여섬은 물이 빠지면 하루에 두 번 씩 육지와 연결이 된다.
여섬 뒤로는 멀리 태안군 원북면에 있는 태안화력발전소가 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다가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광명을 찾아가는 발걸음 같다.
숲길을 걷다가 조망이 트일 때면 여섬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파도소리가 율동적으로 들려온다.
길 아래의 해안 바위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마치 거북이가 바다를 향하여 기어가는 것 같다.
여섬 앞 해변으로 내려선다. 육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여섬에 물이 빠지면서 바닷길이 열렸다.
열린 바닷길을 따라 여섬으로 들어간다.
여섬은 옛날 선인들이 이름을 지을 때 나머지 섬이라 해서 남을 여(餘)자를 써서 여섬이라 불렀다.
여섬은 오늘날을 예견한 것처럼 이원방조제 간척지 공사로 섬이 다 없어지고 서해 쪽에
유일하게 하나만 남아 있는 섬이 되었다. 여섬은 일몰풍경이 아름다워 낙조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섬으로 가는 바닷길 바위에는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바위에 붙어 있는 굴의 모양이 꽃과 같다 해서 석화(石花)라고도 부른다.
물이 빠지자 주변의 주민들이 바위에 붙어있는 굴을 채취한다. 채취한 굴을 사서 먹어보니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다.
여섬 해변에는 굴 껍질들이 백사장을 이루고 있는데, 바닷물에 씻기고 씻겨 하얗고 반질반질해졌다.
여섬 위로 올라가니 가마봉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뻗어오는 해안절벽과 푸른 바다가 다가오고,
서쪽의 망망대해를 달려온 파도는 바위에 부딪쳐 춤을 춘다.
여섬을 다녀오고 나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반듯하게 솟은 해송(海松)들이 길안내를 한다.
길을 걷다가도 뒤돌아보면 해안의 기암절경과 함께 여섬이 자꾸만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펜션들이 자리를 잡았다. 펜션 앞에는 작은 백사장과 바위들이 바닷물을 맞아들인다.
중막골에서 용난굴로 가기 위해 해변 바위를 넘고 넘는다.
바윗길을 걷다보니 부처모양을 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사모관대를 쓴 선비 같기도 한다.
부처바위 앞에서 왼쪽을 바라보니 옛날에 용이 나와 승천한 곳이라는 용난굴이 있다.
입구부분 높이 3m, 아랫부분의 폭 2m 정도 되는 용난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높이도 낮아지고 폭도 좁아진다.
용난굴은 18m 쯤 들어가면 양쪽으로 두 개의 굴로 나뉜다.
두 개의 굴에서 두 마리의 용이 한 굴씩 자리를 잡고 하늘로 오르기 위해 도를 닦았는데,
우측의 용이 먼저 승천하니 좌측의 용은 승천길이 막혀버렸다.
이때 승천한 용은 굴 입구 위에 비늘자국을 남겼지만, 갈 곳이 없는 좌측의 용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어 입구에서
용난굴을 지키고 있다. 용난굴을 앞에서 보면 바위의 모양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하고,
굴 입구 위쪽 바위가 떨어져 나간 부분은 하얗게 비늘자국처럼 보인다.
굴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고개를 치켜든 고래 같다. 굴 밖으로는 바닷물이 출렁인다.
밀물 때가 되면 용난굴은 굴 안쪽까지 바닷물이 채워져 사람이 출입할 수가 없는데,
우리는 물때를 잘 맞추어 굴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해변길은 변화가 무쌍하다. 거친 바윗길을 걷다가 자갈길을 만나기도 하고 모래사장을 걷기도 한다.
게발처럼 뻗어 나온 리아스식 해안과 어울린 바다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여섬이 함께 하여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었다.
걷기 좋은 흙길이 계속되지만 오르내림이 계속되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다.
길손의 피로가 쌓일 무렵 가건물로 된 작은어리골 쉼터가 나타난다. 만대항을 출발한 이후 마을이나 가게 하나도 만나지 못했는데,
막걸리와 맥주·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쉼터를 발견하니 그지없이 반갑다.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신다. 파도와 함께 마시는 막걸리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큰어리골의 고요한 해변에도 운치있는 펜션이 자리를 잡았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정하다.
자드락펜션에서 솔숲 울창한 둔덕을 넘으니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가 200m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울창한 소나무가 감싸고 있어 안온하다.
아담하고 정겨운 꾸지나무골해수욕장 앞으로는 태안군 원북면의 낮은 야산과 태안화력발전소가 수평선 위에 떠 있다.
한적한 봄철 해수욕장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여백이 느껴진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꾸지뽕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용한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걷는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 생기지만,
바닷물이 들어와 금방 없어져버리고 만다. 바다는 나에게 무엇을 남기려 하지 말라고 한다.
(2015. 3. 14)
*여행쪽지
-태안 솔향기길은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반도의 아름다운 해안 38.5km를 따라 난 길이다. 총 5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1코스는 솔향기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구간으로 만대항-당봉전망대-여섬-중막골-용난굴-꾸지나무골해수욕장까지다. 총거리 10.2km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서산→태안→원북→이원면 소재지→만대항
-태안에서 만대항 가는 군내버스가 하루 7회 운행된다. 40분 소요. (태안→만대항 06:30, 07:50, 09:50, 11:40, 14:10, 16:30, 18:50 / 만대항→태안 07:10, 08:45, 11:20, 12:55, 15:20, 17:40, 19:30)
-만대포구와 꾸지나무골해수욕장에는 횟집이 여럿 있다. 만대회수산(041-675-0108), 운영수산(041-675-3048), 꾸지나무골회수산(041-674-7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