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전라남도 장성군에 소재한 명찰
백양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감상굴재에 04:20분경 도착하였다.
오늘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의 경계 즉 도계를 따라
걷다가 도장봉에 이르러 장성군을 버리고 담양군으로 들어서게 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호남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대각산방향 이정표가 있는 시멘트길따라 올라 간다.
▼조금후 나타나는 인삼밭 옆 임도길을 따라 정맥길로 접어든다.
임도길 버리고 묘지 상단으로 올라 가면 들머리가 있다.
된비알을 오르면서 우선 만나는 것이 장삼주 선생 묘 지난다.
▼가파른 경사길 올라 첫 봉우리에 올라 등로는 우틀한다.
완만하게 이어가면 대각산이 나온다.
▼대각산 정상 도착
3등삼각점(담양304)이 있는 대각산(528.1m)에 도착하였지만..
주변이 깜깜해 다시금 정맥길을 이어간다..
▼왼쪽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이 보이고 좀더 이어가니
무명봉에 올라 다시금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정맥길에
너부러져 있는 곳 지나고..이른 새벽이어서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밭을 지나고..유난히 많은 묘지를 자주 지나고..
칠립재 고개에 내려선다.
▼칠립재고개에서 건너편 시멘트길따라 올라 가면 곧바로
시멘트길 끝지점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안내하지만..
곧바로 임도길 다시 만나게 된다.
그냥 임도길따라 가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우측으로 꺽어져 들어가서 묘지 있는곳을 지나서
다시 임도길 만나서 좌측으로 몇미터 가다 곧바로 우측으로
꺽어져 잠시 과수원을 지나고 작은 묘지에서 농가로 내려서니~~
또하나에 칠립재 이정표가 나오고.. 정맥길은 시멘트길따라
송전탑 옆 농로을 따라 한참을 이어간다..
▼시멘트길따라 농로길 따라 오면 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선답자띠지가 안내하고.. 올라서면 묘지지나
좌측 벌목지대로 올라.. 시계 방향으로 능선길을 이어간다.
▼벌목지대 능선길 돌아서 수렛길따라 가다 갈림길에서 임도길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정맥길이 이어진다.
임도길 만나, 좌측으로 임도길따라 내려간다.
▼얇은 시우대밭이 나오고~~좀더 진행하니~~
엄청나게 큰 느티나무가 서있는 어은재에 도착한다..
▼어은재 이정표...
어은리 어은동과 성암리 명치를 이어주는 어은재이다.
어은재(gps 376 m)/거대한 느티나무와 보호수 안내판/수레길
건너 철조망 속의 대형수조와 안내판/수조 옆으로 진행 한다.
▼어은재 지나서 편안하게 이어지는 넓직한 길을 따라가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니~~ 도장봉이 눈에 들어온다..
▼도장봉 도착
전라남도 장성군과 담양군 그리고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는 도장봉(459m)에 도착한다.
담양군에서 정상석 대신 이렇게 예쁘장하게 이정표를 준비해
두어서 누구나 이곳이 도장봉인 줄 알고 지날 수 있다.
▼다시 진행하는 정맥길 옆으로 또다시 나타나는 태풍에 흔적들
그나마 군청에서 쓰러진 나무에 톱질을 해놔서 진행하기가 수월하다.
잠시.. 떨어졌다 오른 정맥길는 생화산으로 여겨지는 삼거리에 서있는
암릉에 도착한다.
▼생화산 갈림길 도착
생화산은 좌측으로 80m 정도 정상에 갔다 정상에서 빽해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정맥길을 이어가야 한다.
생화산 정상에는 조망도 없고.. 표지판이 정상을 가르킨다.
▼다시 온 생화산갈림길/좌틀 내리막으로..
곧바로 전방으로 저 멀리 무등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생화산 갈림길에서 10분쯤 내리막에 묘지터를 지나고...
대나무숲을 지나.. 낮은 봉우리를 에서 좌측으로 휘어지고..
▼은행나무 단지가 있는 안부를 지나..항목탕재에 도착한다.
◈ 향목탕재의 당산나무(堂山나무)
당산은 마을 수호신이 계시는 산이다.
당산제는 마을 수호신을 숭배하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항목탕재에서 곧바로 묘지 앞을 지나자, 봉우리
우회 사면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촛대석이 있는 묘지 앞을 지나며... 정맥길이 짧은 지그재그
길로 이어지다가 임도길 만나 임도길을 잠시 따라가다 우측으로
올라서고.. 잠시 후 임도길 만나 묘지까지 올라 간다.
▼안부에서 소나무와 잡풀이 무성한 묘지터를 만난다.
정맥길은 묘지 아래쪽에서 오른쪽으로 꺽인다.
묘지터에서 잠시 오르막에 병풍지맥 분기점에 도착...
<
▼병풍지맥갈림길(gps 447 m)/정맥 좌틀 진행/병풍지맥은 우측
◈ 병풍지맥(屛風枝脈)이란?
병풍지맥(屛風枝脈)은 호남정맥상의 도장봉(459 m) 남동쪽 3.8 km,
밀재 서쪽 1.6 km 지점의 분기봉(약 440 m)에서 남서진 하며,
도마산(陶馬山.446 m), 용구산(龍龜山.726 m), 병풍산(屛風山.826 m),
병봉산(屛鳳山.685.2 m),불태산(佛台山.636 m), 이척산성(535 m),
철마봉(283 m),판사등산(342.9 m),팔랑산(八郞山.122 m),어등산
(魚登山.293 m), 동자봉(154.1 m)등을 세우고,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리시내를 지나 황룡동의 황룡강과 영산강의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53.6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병풍지맥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 와 작은 봉우리 넘어
넓은 임도 안부에 도착하여 전방 생여봉 방향으로 임도따라 가다
우측 숲으로 들어가 된비알 올라 가다 암릉 앞에서 좌측으로
우회해서 암릉 위쪽 생여봉에 올라 선다.
▼생여봉 도착
520 m봉/삼각점과 준희님의 아크릴정상표지/묘지 옆
바위에서 본 지나온 정맥길 능선이 장쾌하다
▼생여봉에서 밀재로 내려간다.
조망처에서 왼편 멀리 추월산 정상도 보인다.
조망처에서 바라본, 광주 무등산 방향 풍경...
▼묘지터 옆을 지나 밀재에 도착
산악회 버스가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아침겸 식사를 하고, 정맥길은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다, 호남정맥 안내도 뒷편으로 이어간다
밀재(gps 386 m)/49번 지방도로/이정표와 호남정맥 안내판
▼정상 방향으로..480봉의 넓은 공터를 지나서..
추월산 이정표 지난다.
▼밀재에서 10분쯤 오르막에 작은 바위지대를 지나고...
추월산 정상으로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망처에서 주변 배경 바라보고..
▼705m 잔봉(추월바위봉)을 넘는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암릉 오르막이 시작되고...
▼추월산 정상 직전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무등산 방향 풍경...
100대 명산의 하나이자, 호남정맥길에 있는 저 광주 무등산도
지나야 하는 마루금이다.
멀리 내장산과 지나온 정먁길 방향 풍경...
오른쪽에 가야할 수리봉도 살짝 보인다.
▼추월산 정상목에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잠시 휴식을 하고 정맥길을 이어간다.
◈ 추월산[秋月山]
정상은 동서에 두 봉이 있는데 동쪽은 전망봉이고,
서쪽이 정상이다.
전라남도 담양군의 용면 월계리와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731m).
호남정맥의 내장산에서 백암산을 거쳐 남동쪽으로 뻗어온 능선이
밀재를 지나 북동쪽 용추봉으로 향하면서 이어진 줄기에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나 197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진산은 추월이며, 부의 북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추월산은 부 동북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석벽(石壁)이 깎아 세운 듯 사방으로 둘러 마치 성과 같으니
둘레가 9,018자요,
서북방으로만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 시내가 둘러
흐르고, 샘이 13곳이 있다."고 기록되었다.
추월(秋月)은 가을 산으로 '갓(邊)'을 의미한다.
담양 고을의 가장자리에 우람하게 위치한 진산(鎭山)이다.
보리암(보조국사가 나무로 세 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 보낸 뒤
그 매가 앉은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절이 바로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그리고 추월산의 보리암이라고도 전해진다)은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사철 석간수와
무쇠솥이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김덕령(金德齡, 1567~1596)의 부인 흥양 이씨가 왜군에
쫓겨 투신, 순절한 터이기도 하다.
암벽에 1840년 담양부사 조철영이 새겨놓은 명문이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지명유래집 -
▼추월산 정상에서 보리암정상 방향으로 50m정도 내려 가면
이정표 보리암 갈림길에서 이정표의 월계리 방향으로
좌측으로 정맥길을 이어지고..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월계삼거리 안부/이정표(추월산정상 0.35 km)와
가인연수원 이정표 방향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 담양군 용면 월계리 하산길
담양은 장성과 함께 전라남도의 북부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남정맥을 경계로 전라북도 순창군과 맞닿아 있고, 곡성·장성·
화순·광주에 감싸여 있다.
담양은 우리나라 대밭 면적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대(竹)의 고장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죽세공업이 발달하였다.
▼수리봉 가는길에 담양호가 보이고...
담양은 호남정맥이 지나는 북쪽과 동쪽 지역에는
산지를 이루고, 여기에서 흘러나온 물길들이
모여 기름진 들판을 형성하였다.
넓은 들판이 가꾸어준 경제력을 기반으로 담양에서는 많은
선비들이 배출되었다.
그들이 만든 것이 담양 일대의 정자와 원림이다.
소쇄원과 식영정·명옥헌·독수정·송강정·면앙정 같은 정자와
원림이 담양의 정자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담양의 정자들은 중앙정가로 나갔던 담양의 선비들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땅에 돌아와 자연을 벗 삼아 지냈던 흔적이다.
여름을 붉게 물들이는 배롱나무와 함께 어울린 정자들의 풍경은
담양에서만 볼 수 있는 격조 넘치는 모습이다.
▼가야할 수리봉과 심적산 방향 풍경...
▼암릉도 올라 가고..
▼수리봉 암릉을 오르다 뒤돌아본 풍경...
▼수리봉(728 m)/이정표(추월산 1.7 km)와 다 지워진
철판 정상 표지판이.. 사법연수원 방향으로 이어간다.
▼잠시후 조망바위에 바라본 이어지는 정맥길 풍경...
전방에 심적산이과 우측아래 가야 할 사법연수원도 보인다.
▼수리봉을 내려가는 가파른 암릉 내리막...
곧바로 복리암 갈림길을 지난다.
암릉에 한그루 소나무가 비바람에.. 태풍이 불어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아닐까?
▼무능기재(gps 620 m)/이정표(추월산3.3 km.천치재4.3km)
견양저수지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으며, 테마산행에서
많이 이용하는 하산길이다.
심적산 오름길이 이어진다.
▼심적산 오름길에..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보이고..
▼견양동정상?
견양저수지로 내려가는 두번째 하산길 지점을 통과한다.
▼심적산(깃대봉; 710m)도착
全北 淳昌군 福興면 沓洞리에 있으며, 높이는 710m이다.
심적산 아래에는 사법연수원이 있으며, 암봉으로 이루어진
심적산 정상에서 흘러나오는 광천수는 암반이 단단한 화산암층에서
흘러나오는 지하 석간수는 물맛이 좋고 부드러워 '북청약수'라는
명칭으로 인근 도시에 공급돼 오고 있다.
심적산 정상은 우측의 봉우리로 희미한 길을 10 m를 올라가니
삼각점과 표시판이 표기되어 있다.
지치고 힘들어 무시하고, 우회길로 지나치기 쉽겠다.
▼심적산(깃대봉)지나 이정표 가인연수원 방향으로 내려 간다.
▼심적산 삼거리에 도착
이정표 방향 표시가 없는 능선 오른쪽 내림길에 선답자
표지기가 많이 달린 사법연수원 방향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고...
▼사법연수원 방향으로 내려 가면서 뒤 돌아 보며..
▼도중에 커다란 바위를 넘으면서, 본격적인 암릉 내리막이다.
밧줄구간 암릉내리막이 이어진다.
급경사 암릉길이 이어지고...
암릉길에 내려다본, 산행종점인 사법연수원 방향 풍경...
▼사법연수원 도착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고.. 휴식도 하고 ..
◈ 가인(街人) 연수원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가인(街人) 김 병로(金炳魯)님의
호를 따서 만든 사법 종사자들의 연수원이다
조선시대 고종때 사간원 간관으로 있었던 가인은 1919년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하여 법정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일제의 탄압과 6.25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가인은 거리의 사람, 즉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8세 때
사서삼경을 뗐고 서양학문까지 익힌 천재였습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한때 공부와 담을 쌓기도 했지만 김성수, 송진우,
백관수 등과 교류하면서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조선인 변호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10여 년 동안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무료변론을 자청한다.
그는 보성전문학교가 재정난에 빠지자 친구 인촌(仁村) 김성수에게
인수를 알선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폐교 직전의 학교가 고려대학교로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가인은 신간회의 간부로 활동하다가 변론의 제한을 받자 경기 양주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13년 동안 그야말로 범부로 지내기도 한다.
가인은 해방 후 인공과 미 군정청의 사법부장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의
초대 대법원장으로 취임, 민주주의의 법 전통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1957년 66세로 정년퇴임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임사를 남깁니다.
"그동안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 것은 전국의 법원 직원들에게
지나치도록 무리한 요구를 한 일이다.
인권옹호를 위해 사건처리의 신속을 강조했던 점과 또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보수를 갖고 법만을 위해 살라고 했던 점이다.
나는 전(全) 사법종사자들이 정의를 위하다가 굶어죽으면, 그것을 곧
영광으로 알라고 했다.
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는 수 만 배 명예롭기 때문이다.”
정맥길을 이어간다.
사법연수원 풍경...
정맥길은 연수원 오른쪽 임도로 이어진다.
▼사법(가인)연수원 이정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평지 갓길을 따라 올라가며...
▼이 지점에서 우측 산길로 선답자띠지가 안내를 한다.
그러나 곧바로 임도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냥 임도따라 가는 것이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낮은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밭 지나 다시 만나 임도길따라
조금 가다 곧바로 우측 희미한 산길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완만하게 오름길 올라 가면 북추원산 정상에 도착 한다.
▼북추월산(520 m)/박 건석님의 낡은 ‘북추월산’ 간이코팅표지
정맥길은 산행지도처럼 왼쪽으로 꺽여 내려간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그리고 다시 오르막...
▼북추월산에서 10분쯤에 전망바위(?)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
능선 우측 아래로 U자 형태로 지나는 29번 국도가 멋지게 보인다.
▼봉우리에서 가야 할 정맥길이 우측 아래 송전탑 방향이 보이고..
▼가파른 내리막을 만나고...
좌측편으로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다시 내리막...
다시 송전탑과 철망 울타리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내리막에 안부(큰부래기재)를 건너고...
▼곧바로 임도를 만나,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임도 오르막 능선지점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곧바로 산신산(390 m)/참산꾼들의 정상 표찰이 있다.
이어 정맥길은 잡목과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이어가면 묘지를 지나 천치재가 나온다.
▼천치재 도로가 보이고.. 민가옆 지나 천치재 도착한다.
▼천치재에 도착... 오른쪽 건너편에 표지석이 있고...
다음구간 정맥길 들머리는 버스가 있는 곳 건너편으로
시작된다.
이번 8차 호남정맥도 무사히 마무리 한다.
뒷풀이 삼겹살+소주 한잔 회포를 풀고 귀경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