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
당신 삼관왕(三冠王)이네.
뭐!
어어어, 그렇고 보니 그렇네.
어리둥절속에 포복절도(捕腹絶倒)
하하하
크게 웃어 제쳤다.
정성껏 준비와 새로운 직업에 대한 기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기에 웃음으로 그간의 피로를 날려버렸다.
삼관왕 타이틀이란 아내의 고급유머(?),
오랜만에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2022년 12월 27일 오후7시가 조금 넘어서다.
35여년의 첫 직장인 대한민국경찰관 생활을 자랑스럽게 정년퇴직하고 4개월을 전국을 유람했다.
퇴직전에는 1년정도 세계일주여행을 계획 했었는데 아쉽게도 covid-19라고 명명된 호흡기질환인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하여 전세계의 문이 닫히고 국내에서도 전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몇명이상은 모이지도 말고 결혼식도 미루고 회사근무도 마스크에, 재택(在宅)근무에 세상이 어수선한 재난의 시기였다.
이럴진데 어찌 해외로 떠나겠는가!
비행기 항공료는 좀 비싼가!
그것에 더하여 비행편 수도 줄어 값도 엄청 비쌌다.
그리고
갈때 코로나 검사 귀국할때 또 코로나 검사 복잡하고 심지어 어떻국가에서는 입국해서 일 주일간의 격리기간이 있어서 가서도, 와서도 본의 아니게 갇혀 있기까지 해야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내나라 내땅을 돈 적게 들이고 여유롭게 밟아보자"하며 2박3일, 3박4일간 여러번 다녀왔다.
그래도 꿈은 7, 8월 두 달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대청봉까지의 백두대간을 나홀로 배낭을 메고 떠나볼까도 그려보았지만 어제의 그 용기 눈앞에서는 온데간데 없이 진땀범벅에 씻지도 못하고 한베낭 가득 짊어질 장비하며 깊은 산 텐트안에서 잘 생각을 하니 으스스한 청승에 땀에 절은 옷, 양말냄새와 빨래가 눈앞에 아른거려 태백의 황금능선과 굽이치는 백두의 용솟음 그리고 새벽안개 품에서 깨어난 저 일출의 장엄한 기상을 현장에서 감상하는 걸 미래의 젊은 꿈속에 간직하였다.
"건강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젠가 그 길을 걸을 수 있겠지 백두대간이 어디가겠어! 거기 그대로 있겠지" 하며 위로와 궁색한 생색속에 포기하고 이제껫 가보지 못한 숨은 비경들을 찾아보고 잘 꾸며진 강가, 산속 오토캠핑장에서 야영을하고 주변 계곡에서 수영에 등산에 그리고 어느때는 멍때리며 4개월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 사개월 동안은 아내와 산책과 건강의 시간이기도 했다.
여행하지 않는 때에는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이쪽저쪽 등산로는 물론 임도(林道)가 잘 개설된 동네 뒷산을 오전2시간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비록 몇미터 떨어져서 걸었지만 둘이서 걸었다.
뒷동산이라지만 우리부부의 앞으로를 설계한 뜻깊은 길은 그래도 어였한 소문난 길이었다.
팔공산 자락 대암봉, 요령봉길이다.
그 봉우리들이 품은 동네가 옛선비의 전통이 서린 둔산동 옷골마을이다.
산봉우리를 오르고 능선을 걸다보면 대구사과로 유명한 평광사과밭의 검빨강 홍옥향이 유혹하고 팔공산 동봉, 비로봉이 눈앞이다.
그길을 걷고 더 걸으면 산중의 신작로인 거창한 임도가 펼쳐진다.
마사토로 포장된 걷는 맞이 일품인 그길 역시 아름답다.
초례봉밑 아담하고 고즈녁한 매여마을이다.
요새는 등산기점이기도 하지만 이른봄 초벌미나리로도 유명세를 타는 동네를 굽어보며 걷는 굽이치는 아침길이 아내와나의 건강과 감탄의 길이다.
37년간 얘기하고 함께한 시간보다 이기간의 시간들이 더 함께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런시간이 한편의 영화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겹고 무료한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TV시청과 뒷산아래 손자오면 따줄려고 심어둔 과수나무와 고추, 오이가 심어진 남새밭 관리가 일과(日課)다.
그러던 그어느날 오후
매일 반복되는 일상속에 함께 근무했던 형님뻘인 동기가 요새 어떻게 지내는냐?고 전화가 왔다.
"부르는 사람도 오라는 곳도 없어 잘 놀고 있습니다"
"김대장은 말도 잘하고 경찰내부강사도 해서 학교나 어디 강의할때 없더나!"
"아니고 감사합니다. 저 알아주는 사람은 박형(兄)밖에 없습니다."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속에
"내가 근무 하는데 와서 일해볼래?
2달 기간제 자리가 비었는데 힘도 별로 안들고 참 편하다" 라고 한다.
그곳에서 공무직(公務職)으로 제2의 인생길을 잘 달리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서 아는데 기간제가 뭐고 공무직이 뭔지도 몰라서 이것 저것 질문을 했다.
공무직은 만65세까지 근무인데 서류심사, 체력검정, 면접등 제반 시험에 통과해야 되고, 기간제는 빈자리를 메워서 정해진 몇달동안 임시로 일하는 제도란다.
즉 공무직은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인 셈이고 기간제는 임시직이다.
즉 정규직이 퇴직이나 휴직으로 인하여 빈자리가 생기면 속칭 말해서 땜방으로 일하는 자리지만,
월급은 공무직과 똑 같고 공무직 시험칠때 경력상으로 유리하단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한번 응시해 볼테니 거기 소장님 한테 말씀 잘 좀 해주십시요" 했더니
이야기해서 되는게 아니고 임시직(臨時職)도 자기소개서인 서류를 제출하여 통과되어야 하고 대전본사에 가서 면접보고 최종선발을 한단다.
드디어 제2의 인생출발점에 섯다.
시작이 반이다.
젊은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시험 면접후 거의37년만이다.
떨리지만 흥분의 아침, 첫출근이자 제2의 도약의 날이다.
넥타이의 정장은 아니었지만 노타이의 단정한 콤비에 평소 바르지 않던 스킨에다 크림까지 얼굴에 바르고 임시직 최종관문의 통과를 위해 대전발 KTR열차에 몸을 실고 면접장으로 달렸다.
현재 다니고 있는 선배의 조언에 바탕을 둔 준비를 착실하게 했지만 내 나름의 방식으로 답을하고 면접관도 웃게 만들어 보리라 생각하며 면접에 임했다.
사실 좀 긴장은 했지만 즐거운 대면이었다.
평소 주관(主觀)대로
후회없이 솔직하게 대답하고 떨어져도 만족한다는 당당한 자세로 답변을 했다.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마도 네분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였는데
"건강은 어떠한가요?"
왜 지원했나요?
"청소나 환경업무에 종사하신적은 있나요? "
"동료들과 갈등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하겠나요?"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간략하게?"
이정도의 질문으로 기억하는데 무난하게 답변을하고 웃게만든 질문으로는 갈등에 대한 대처요령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자면
"직장생활속에 갈등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이 화합을 해치고 동료간 불신과 불협화음을 만들어 회사성과와 개인발전에도 백해무익하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갈등속에서 소통과 화합이 있고 해결과정을 통하여 더 두터운 인간관계와 상호 신뢰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회사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창한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고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을 하겠다기보다
솔선수범 하는 자세로 책임성있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동료들이나 주변인을 자신의 눈(目)으로 재단하는 입은 닫고 지갑을 열면 갈등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합께 일하면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잘하느니 못하느니 뒷말하지 않고, 서로서로 격려속에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사고 겨울에는 뜨뜻한 오댕 한사발, 퇴근길에 소주 한 잔 사면 갈등은 잘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로 끝을 맺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문자가 면접시험 며칠후에 휴대폰 톡으로 도달 했다.
발표예정일에 연락이 오지않았다면 "에이 잘되었네 계속 놀라는 팔자네! 하며 놀았을텐데, 잘 하겠고 잘 할수 있다고 큰소리 탕탕 쳐놓은게 있어 오도가도 못하고 주간이틀에 야간이틀은 두달간 해야할 운명이 되었다.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큰 기대와 야간(夜間)근무의 두려움으로 출근예정 며칠전에 일터를 사전답사를 하고 대망의 2021. 11.1일에 첫 출근이었다.
당연히 현장청소등 환경업무라 작업복에 운동화를 신어야겠지만 첫날이라 빛나게 구두를 닦고 콤비차림으로 출근을 했다.
신상소개서와 근로계약서를 썼다.
2달간의 근로계약서지만 할수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미지의 업무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했다.
평생의 업무가 현장에서 범인잡고 사무실에서 사건조사,처리하고, 관리자일때는 상황지시와 회의, 지역사회 분들과 교류, 주민안전 업무협의등을 하다가 3D업종이라고 말하는 청소를 잘 할 수있고 계약기간까지라도 무사히 끝마칠수 있을까!의 고민속에 육체노동은 시작되었다.
동지 섯달 긴긴밤을 쉼없이 달리다가 정비에, 급수(給水)에, 잠시 우리들의 일터인 정비창으로 들어오면 얼른 뛰어 올라가서 쓸고, 딱고, 줍고, 뽑고 이생각 저생각 할 겨을없이 후다닥 하다보면 열차 한 대의 청소가 끝이난다,
이기차가 마무리되면 서울발 기차, 부산에서 포항에서 계속들어온다.
깨끝하게 마포걸레 즉 밀대를 깨끝이 빨고 행여 승객들이 넘어지거나 겨울이라 걸레질로 인하여 바닥이 얼어서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안전성에 물기가 최대한 없도록 꼭꼭 빨아서 짜고
다시 기차에 뛰어 오른다.
참, 이마의 땀은 아직도 줄줄 흐른다.
다음열차에 오르기전 현장의 약2인치 고무호스에서 꽐꽐 품어나오는 대포같은 물을 이마를 향해 그대로 쏜다.
엄동설한이라도 한여름 밤의 얼음욕(浴)이다.
흐르는 땀과 냉수의 뒤벅벅을 한파(寒波)에 말리며 저 하늘을 본다.
이일을 정녕 계속 해야만하는가?
계약서대로 마무리는 할수 있을까?
라는 회의감속에 이순간 함께 땀흘리는 동료들은 본다.
평생을 이일에 메달려왔고 그래도 보람되게 일하며 가족 먹여 살리고 자기집, 자기차에, 보통가장의 행복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누구에게는 주어지지도, 하고 싶어도 할 수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 내가 원해서 찾은 업무를 즐거이 격고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제까지 살아온 자리에서 잘난체 나는 할수있다(I can do), 가르친답시고, 완장찻다는 이유로
떠들고 큰소리쳤던 말들이 모두 가증스러운 허세(虛勢)이자 언어도단이요 겉다르고 속다른 행위가 아니었던가!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일을 하는 현장의 삶이야 말로 진정 아름답고 필요하기에 그런 일을 할 수있는 자세야 말로 더 큰일을 할수있는 역량을 기르고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아는 진리를 찾는 길이요 숭고한 인내(忍耐)의 길이다. 어느곳 어느시(時)에 어떻일도 두려워 하거나 미천(微賤)하다하지 말고 정성껏 잘 할 수있는 것이야 말로 존경받는 일이고 직업을 통하여 자아실현과 함께 건강한 가정과 미래의 행복을 가꾸는 일이다.
그 노동이야 말로 입(口)으로 하는 위대함이 아니라 땀과 피속에 이루어진 진정한 행동의 위대한 일이요, 그것이 우리사회와 나라를 아름답게하고 발전시키는 애국심의 기본이다" 라고 떠들었던 말들을 이제 진정 가슴과 실천속이 뛰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깊이 되내이며 다시 힘을 낸다.
"이중인격의 가벼운 입이 아닌 행동으로 '가슴깊은 열정속의 격정(激情)이었다'는 걸 보여 줄 때다" 라며,
두 눈 크게 뜨고, 두 주먹 불끈 쥐고"난 해야한다 잘 할수 있다라고 이 연사(演士) 소리높이 크게 크게 외치는 바입니다"를 미소로서 되씹으며 수많은 별을 세며 밤을 밝히고 새아침을 맞았다.
밤잠 설친몸을 숙소옆 목욕탕에서 푼다.
밤샘이지만 새벽2시경에 마무리다
현장숙소에서 모두가 열 평정도의 방에 밤새워 일한 동료 모두가 이리저리 각자의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긴긴밤을 순간으로 때운다.
어른10명정도가 한방에서 밤을세우니 여기저기 화장실 가고오고, 이구석 저구석 빵귀소리가 이 한겨울 바늘구멍에 황소바람을 날려버리고 고약한 냄새는 화통기차 매연도 잠들게 한다.
이 모든 독한냄새, 소음, 냉기(冷氣)의 3D가 머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단잠이 블랙홀되어 피로를 순간에 먹어 버린다.
법정보호를 받는 공무직이 아니고 두달간 한시적으로 일하는 기간제근로자라서 감방 수감시에 신참이 들어오면 변기 바로옆, 아니면 출입구에 잠자리가 정해지듯이 여기도 똑 같다.
밤새 들락날락을 혼란과 찬바람의 불편보다는 이런일도 참고 견디면서 수 십년간 근무한 일터 선배동료들의 인내와 삶의 애환을 몸소 느끼게 됨을 귀중한 기회로 삼고 문틈사이로 들어오는 북극한파를 맞고, 동력기차의 엔진 매연이 코를 찔러도 모든게 순간이요 감사의시간이라고 여기며 밤을 즐겼다.
태양은 또다시 뜨고 퇴근길을 그리며 샤워가 한층 말끔하게 어젯밤의 한바탕 악몽을 가져갔다.
이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오는 공평한 찬스 내일을 본다. 또 다시 내일이 온다.
그로부터 만 일 년후
그런 나의 역사가 경험되고 용기되어 코레일테크 동대구역환경사업소 공무직 환경미화원모집에 응시했다.
합격이 되면 만65세까지 근무에다 퇴직금에 성과급에, 명절휴가비에 복지포인트로 취미생활비도 나온단다.
여기는 60세이상의 실버직채용이 아니라 20세이상 남여노소 누구라도 응시 할수있는 공개채용이다.
경력과 자기소개를 통한 3배수 서류심사에다 체력검정, 그리고 면접이었다.
본사에서 면접이 있어 넥타이의 흰색 와이셔쓰의 정장은 하지 않고 단정한 콤비차림으로 대전발KTX에 부푼꿈을 실고 달렸다
12월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때마침 첫 눈이 내렸다
참말로 나에게는 꿈의 서설(瑞雪)이었다.
기분좋게 출입구에서 첫눈을 배경삼아 축복사진 한 컷 후 설레임과 떨림으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관은 네분이었는데
첫질문은 1분이내로 자기소개를 하란다.
어느시험이나 거의다가 간략한 자기소개다.
그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다양하게 떠도는 인터넸상의 자기소개서도 있었지만 나는 나만의 특화된 소개를 준비했다.
요즘 대세가 블라인드(Blind) 면접방식이라 이름, 출신지, 학교등 자신을 직접 나타낼수 있는 고유명사는 언급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意志)나 소신(所信)등을 중심으로 답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태어난곳은 농촌이지만 학교와 가정, 직장생활은 도시에서 했으며, 평소 "누군가 해야한다면 지금하고 언젠가 해야한다면 지금하자" 라는 좌우명으로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인 자세로 분위기를 아름답게 돋우며 준법(遵法)과 긍휼(矜恤) 정신으로 솔선수범하는 대한민국의 모범시민입니다 저는, 이라고 답을 했다.
그리고
기억의 또다른 질문은
어떻게 이일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저는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야단과 지적만 받아오고 살았는데 칭찬받는 것중 한가지가 집안 청소하고 정리정돈 잘하는겁니다." 라고 답했더니 면접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미소를 머금은 또다른 질문으로는 "다른 잘하시는 것은 무었입니까?
학교 다닐때 우등상은 못 타도 개근상은 꼭 탓고 직장생활 할때도 결근 해본적은 없습니다." 웃으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 질문은 모집기관의 특성에 따라,
지원동기, 경험, 잘하고 못하는 장단점, 상사 동료간 갈등의 해결방안, 꼭 합격해야하는 이유, 건강도 등을 공통사항으로 질문을 하는데 당황하지 않고 꾸미려고 하지도 않고 아는많큼 솔직하게 대답으로 대망의 면접을 마무리했다.
그런 가운데 다른 두 곳도 솔직하고 유머있게 즐겁이 응시를 하고 나름 거기서는 어떻게 근무를, 어떻게 출근을 할까? 김칫국물 먼저 맛나게 마시며 희희낙낙 하며 모두다 합격하면 어디로 갈까 행복한 고민속에 희소식을 기다렸다.
결과는 세 기관(企館) 모두 공(公)기업으로 두곳은 정년까지, 다른 한곳은 8개월근무의 기간제였는데 모두 합격이었다.
즉 삼관왕이 되었다.
나자신을 시험 하기 위해서 세곳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본 것이 아니라 거의다가 12월중에 집중되어 있어 응시를 했다. 지원기업 합격자 발표날 또 다른곳은 면접날이다.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신바람나게 달려가기도 하였고 오전에 면접을 보고 오후에는 발표날도 있었다.
세군데 면접의 마지막날 오후2시경에 면접을 보고 집에오니 며칠전 본 면접기관 즉 지금 다니는 기업에서 오후7경에 합격통보가 왔다.
우아! 삼관왕
이나이에 심신이 건강하고 호기심 발동의 동심으로 돌아가서 즐거울때 웃고 하고 싶을때 할수 있다는게 그 얼마나 축복인가를 신과 조상님들께 그리고 가족에게도 감사를 했다.
의욕적 도전속에 "환경을 아름답게 현장의 삶에 감사하자" 라는 진정 뿌듯한 삼관왕의 자부심과 신바람 난 발걸음으로 오늘도 환경미화원의 직분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영어 한문장을 떠올린다.
One man's trash is another man's treasure.
'누군가의 쓰레기는 또 다른사람의 보물이다' 라는 경구를 믿으며 오늘도 광산에서 열심히 보물을 캔다.
어느날 평생직장을 함께 했던 친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요새 어떻노? 할~만하나 똥, 오줌치우고 고생이 많체" 라며 위로의 말을 던진다.
" 어느 大 철학자가 하신
'자신 뱃속에는 한바가지 똥을 처넣고 다니면서 길위에 눈꼽 세상을큼 떨어진 똥을 보고 더럽다고 피한다네' 라는 큰 가르침의 말씀 못 들어봤어?" 라며
심중(心中)을 시로서 답한다.
이제사
흥(興)
신바람 놀이
한바탕 춤밭
이제사
봣다네
참말로 맛깔나는 세상을
버물러 깔끔
쓸고 딱고
차면 비우고
막히면 뻥
돌(石)을 옥(玉)으로
흑(黑)을 백(白)으로
이제사
반세기에 강산하나 지고
일터로
집으로
꽃빛 나들이
별빛 품으로
이제사 흥. 終
김만원 2020 (시인부락) 등단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卒 자서전 痛恨과報恩, 실학근사록 출간. 코레일테크(공무직)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