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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
<단락 1> 1. 레 23: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6.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예슈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유월절 절기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교절 절기에 장사하셨으며,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슈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불완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능력과 생각을 절제하고,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성경에서 누룩은 죄와 타락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누룩은 아주 조금만 들어가도 빠르게 부풀어 올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온 교인을 죄에 빠뜨립니다. 이것이 죄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남겨둔 죄들을 정리하길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갈 5:9). 그래서 우리의 작은 죄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죽게 만듭니다. 아가서 2장 15절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포도원은 은유적 표현으로 신랑 예슈아와 교제하는 마음 중심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다가올 가을 추수의 때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작은 여우가 들어와 포도원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 여우의 크기는 어떠합니까? 매우 작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을 방해는 걸림돌이 있는데, 그것은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 (작은 타협)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작은 타협은 무엇일까요? 사람을 미워하고 판단하는 생각들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말, 시간과 물질을 헛되게 사용하는 것과 성급한 말과 행동이며 이러한 작은 타협들이 신부가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 예가 사무엘상 1장에 나옵니다.
(1) 삼상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사무엘 선지자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는 결혼을 하였는데 한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아내 브닌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을 말로 괴롭혔습니다. ‘내게는 기업이 있지만, 한나 너에게는 없어, 지금은 너가 엘가나에게 관심을 좀 더 받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절대로 엄마가 될 수 없어!’ 비수 같은 브닌나의 말 한마디, 말 한마디에 한나는 좌절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주님께 기도해 보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반드시 내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 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응답이 더디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기도해 봤자 시간 낭비야! 아들을 달라고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 거야. 하나님은 나에게 등을 돌리셨어. 이제 하나님의 뜻을 그만 포기하고 싶다’ 한나의 감정이 격해지고, 육신이 약해진 상태에서 이 음성은 더 자주 들렸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그때 제사장 엘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2)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 (daughter of Belial : 벨리알의 딸)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 제사장은 화를 내면서 언제까지 취한 상태로 기도를 할 것인지 물어봅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한 것이지, 취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자신은 벨리알의 딸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벨리알은 히브리어로 ‘악함과 파괴’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벨리알은 사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벨리알의 영은 한나를 통하여 낳게 될 사무엘 선지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도둑질합니다. 그래서 한나는 말로 자신을 괴롭게 한 브닌나, 엘리 제사장의 뒤에 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나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선포를 통하여 벨리알의 영을 쫓아버렸습니다. 우리 또한 한나처럼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기 위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영적전쟁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지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주변에서 합니다. ‘너는 아무 쓸모가 없어, 너는 악해, 너는 백해무익한 존재야, 하나님은 네 기도에 절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거야, 너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너는 차라리 죽는게 나아’. 이처럼 벨리알의 음성은 우리에게 수치심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자는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이웃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거룩한 자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웃의 모습 안에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의 모습, 거룩한 자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존귀한 자녀와 거룩한 자가 된 것처럼, 자신의 이웃을 하나님의 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 받았기에, 그들은 우리로부터 사랑받기에 합당한 자들입니다.
이처럼 누룩의 팽창과 증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부정적인 말로 나타납니다. 사단은 교회에서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성도가 서로 소문과 비방을 퍼뜨리게 만들어서 마귀가 일할 자리가 생기면 증식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만들 듯이 소문도 부풀어 올라 이내 그리스도의 몸 안에 갈등과 분열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 또한 번식되어지는 것을 표현합니다.
(3)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기하급수적인 증가입니다. ‘주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고,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영혼들에게 준다면, 하나님은 다시 우리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해서 우리에게 안겨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심을 수 있습니까?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자입니다. 심는 것은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이만큼 심으면 상대방도 나에게 어느 정도 심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Give and Take). 그러나 우리의 상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성공한 자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심는 자입니다. 즉,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된 삶입니다. 반대로 겸손하게 받는 것도 알아야 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웃들에게 심는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의 모습입니다.
2)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무교병으로 하자
무교절은 7일 동안 누룩없는 빵인 무교병을 먹으면서 육적인 누룩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누룩인 교만을 제거하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무교병을 먹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즉, 무교절은 옛 사람과 자아에 의해 살아왔던 우리의 삶을 예슈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예슈아의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살기로 결단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무교절 절기에 무교병을 먹으면서 어떠한 누룩도 들어가지 않은 순전하고 진실한 예슈아를 먹고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요 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리고 바울은 8절에 봄의 절기를 지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절기를 대하는 자세와 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와 계명을 지키며 종교적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장 24절에 (새 번역) ‘2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말씀합니다. 예슈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유월절 포도주 잔을 마시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예슈아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묵은 누룩의 삶 (내가 주인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사도 바울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섞일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 또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매일마다 술을 먹는 친구라면, 우리는 술에 노출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매일마다 음란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음란에 노출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를 짓게 하는 시스템에서 나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분리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죄와 부정함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분리되어 그분이 계시는 새 예루샬라임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졌다면, 무교절 7일간의 시간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누룩을 찾아내 예슈아의 십자가 보혈을 씻는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