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3

2 등반의 황금시대 개막 알프스 초등정 시대 알프스 몽블랑 등정으로 시작된 근대 등반은 사람들의 정복 심리를 자극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알프스의 여러 고봉에 시선을 돌리면서 미답봉들이 하나둘씩 등정된다. 이 무렵의 등반 방식은 비교적 등반하기가 수월한 산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산행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형식의 피크 헌팅peak hunting이나 등정주의 산행 방식은 1865년 알프스 4000미터 급의 마지막 산인 마터호른의 초등정에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를 편의상 등산사에서는 등반의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몽블랑이 등정되면서 알프스에서 주목을 받게 된 산은 당연히 알프스 제2의 고봉인 몬테 로사였다. 이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푼타 조르다니(Punta Jordani, 4055m)가 1801년 조르다니에 의해 초등된다. 1811년에는 베르네 알프스의 융프라우(Jungfrau, 4158m)가 마이어 형제에 의해 초등되었으며 1850년에는 동부 알프스에서 유일하게 4000미터가 넘는 피츠 베르니나(Piz Bernina, 4049m)가 장 코아즈J. Coaz에 의해 등정된다. 1854년 난공불락으로 여겨 왔던 베터호른(Wetterhorn, 3703m)의 등정으로 시작된 알프스의 황금시대는 1865년 4000미터 봉우리 가운데 최후의 난봉이던 마터호른의 등정으로 일단 그 막을 내리지만 10년 동안에 무려 100여 개의 처녀봉이 등정된다. 이 기간이 이른바 알프스 등반의 황금시대이다. 이 시기에 활동한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윔퍼를 비롯한 영국의 지식층으로, 그들의 활동이 왕성했으므로 당시 알프스를 영국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알프스에서 이루어진 초등정은 아주 풍성하다. 1854년 영국의 앨프리드 윌스Alfred Wills가 베터호른을 초등하면서 황금 시대가 열린다. 이어 1855년 몬테 로사의 최고봉 뒤푸르 슈피체(Dufour Spitze, 4634m)가 찰스 허드슨Charles Hudson과 스마이드Francis Sydney Smythe에 의해 등정되었으며 1857년에는 묀히(Monch, 4099m), 1858년에는 아이거(Eiger, 3970m), 1859년에는 알레치호른(Aletschhorn, 4192m), 1860년에는 그랑 파라디소(Gran Paradiso, 4061m), 1861년에는 바이스호른(4505m), 1865년 6월에는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 4208m) 서봉, 에귀유 베르트(Aiguille Verte, 4122m)가 윔퍼와 가이드 미셸 크로Michel Croz와 크리스티안 알머Christian Almer 등에 의해 차례로 초등된다. 또한 마터호른(4477m)이 1865년 7월 14일에 에드워드 윔퍼, 찰스 허드슨, 프랜시스 더글러스Francis Douglas, 더글러스 해도우Douglas Hadow와 가이드 미셸 크로, 페터 타우크발더Peter Taugwalder 부자 등에 의해 초등된다. 당시 윔퍼는 5년 동안 8번의 집요한 시도 끝에 정상에 서서 "세계는 나의 발아래에 있다"고 기쁨의 함성을 보냈으니 이 등정은 황금시대의 최후를 장식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윔퍼 일행은 하산 도중 등산 사상 가장 충격적인 조난 사고를 당한다. 7명을 연결했던 로프가 낙석에 맞아 끊어져 일행 중 4명이 1200미터 아래의 마터호른 빙하로 추락한다. 이 사고로 당시 세상 사람들은 인명 사고를 내는 등반에 대하여 비난의 소리를 높였으며 등반 금지론까지 대두하였다. 한편 윔퍼의 등정 이틀 뒤인 7월 16일에는 장 앙투안 카렐Jean Antoine Carrel 일행이 이탈리아 등반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능선을 통해 마터호른에 두 번째로 올라 안타깝게도 초등정의 영예를 놓친다. 마터호른의 등정으로 알프스 등산의 황금시대는 막을 내리고 등산의 은시대Silver Age가 열린다. 윔퍼가 1871년에 펴낸 <알프스 등반기Scrambles amongst the Alps in the years: 1860~69>는 그가 활동한 알프스 등반을 기록한 역저이다. 정교한 산악 목판화를 삽화로 쓴 이 책은 산악 문학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는 걸작이다. "사람이 산에 오르는 한 계속 읽어야 할 책"이라는 아널드 런Arnold Lunn의 말처럼 이 책은 그저 시대적 유물이 아닌 불멸의 문화적 유산이 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황금시대를 연 베터호른Wetterhorn 초등정의 진실 황금시대의 막을 연 베터호른 초등자는 영국의 변호사이자 알파인 클럽의 회장을 지낸 앨프레드 윌스Alfred Wills로 알려져 있다. 그거 1854년에 최초로 이 산을 오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나, 이 산은 이미 10년 전인 1844년 8월 28일에 두 사람의 안내인에 의해 초등정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초등도 아닌 윌스의 베터호른 등정이 알프스 등반사에서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베터호른 등정으로 알프스에서 스포츠 등반의 효시를 이룩한 데다가 영어로 기록된 최초의 알프스 등정기인 <Wanderings among the High Alps>와 그 밖의 알프스 안내서와 계몽서 등 많은 저술을 펴내면서 알파인 클럽 창립에 영향을 미치며 알프스 등반의 황금시대를 연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가 영어로 쓴 최초의 알프스 등정기는 모험과 발견에 대한 인간의 열정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을 새로운 탐험의 영역으로 인도했다. 영국은 아직도 베터호른 등정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그 등정일인 9월 17일을 '근대 등산의 창립일'로 정해 기념할 만큼 그의 베터호른 등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베터호른은 3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린델발트에서 바로 보이는 당당한 모습의 봉우리는 보통 베터호른이라고 부르는 하슬리 융프라우(3703m)를 말하며 가운데에 있는 봉은 미텔호른(3708m), 그리고 가장 낮은 봉은 로젠호른(3691m)이다. 로젠호른은 1844년 스위스의 데소르가 2명의 안내인과 함께 초등정했고, 하슬리 융프라우는 3일 후인 1844년 8월 28일 안내인 반홀처M. Bannholzer와 요한 야운J. Jaun 두 사람에 의해 초등정됐다. 3개의 봉중 최고봉인 미텔호른은 1845년 스코틀랜드의 스피어 일행에 의해 초등정됐다. 윌스가 베터호른에 오른 것은 안내인 반홀처와 야운이 등정한 후 10년이 지난 1854년 9월 17일이다. 그는 원래 융프라우(4158m)나 슈레크호른(4078m)을 등정하려 했으나, 추위로 인해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안내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등반을 포기하고 그 대신 베터호른을 택했다. 그는 샤모니 안내인 발마와 시몽, 스위스 안내인 울리히 라우에너Ulrich Lauener와 피터 보런Peter Bouren, 그리고 포터 1명을 고용했다. 이들 가이드 4명 중에 보런은 이미 베터호른을 3차례나 오른 적이 있지만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윌스로 하여금 베터호른을 처녀봉으로 믿게 했다. 당시의 관례는 초등의 실적을 올렸을 경우 고용된 안내인에게 더 많은 보수가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윌스는 글린델발트에 아내를 남겨놓고 등반길에 나섰다. 그들은 그레크슈타인 동굴에서 1박을 하고 새벽 4시에 출발하여 빙하 상부 지류를 횡단하고 연이어 가파른 암벽을 오르고 칼날 암릉을 통과한 다음 설원으로 올랐다. 스위스 안내인들은 크램폰을 사용하고 나무 자루가 달린 피켈을 휴대했고 윌스와 샤모니 안내인들은 쇠 징이 박힌 등산화와 알파인 스틱을 지참했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길고 가파른 암릉의 얼음 사면에 스텝을 파내며 지그재그로 300여 미터를 올라 마지막 암벽 지대에 도착했다. 그때 사냥복 차림의 두 사람이 그들 뒤를 쫓아왔는데 한 사람은 삼나무 묘목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글린델발트 사람들인 알머와 카우프만A. Kauffman으로, 윌스 일행이 베터호른을 등반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쟁심에 뒤쫓아 온 것이었다. 그들은 경쟁을 피하고 함께 등반하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로프를 함께 묶은 상태로 45도에서 70도로 가파르게 변하는 빙벽의 경사를 올랐다. 라우레너가 오버행으로 이루어진 눈처마의 얼음에 구멍을 뚫고 통로를 낸 후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칼날 능선에 걸터앉아 정상에 철제 깃대와 깃발을 설치하고 사냥꾼들이 가져온 삼나무 묘목을 심고 무사히 하산했다. 마터호른Matterhorn의 비극과 여론 1865년에 마터호른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후 사회 여론은 목숨을 앗아가는 무모한 등반 행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궁내장관을 불러 등반을 금지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을 검토해 보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세상은 등반의 성공이 아니라 비극적인 결과를 평가했다. 등반 사상 조난 사고 치고 이 사건처럼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킨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들이 추락할 때 로프를 칼로 끊었다는 풍문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The Times>는 사설에서 등반을 비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사설의 요지는 이러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산봉우리에 오르느라 고귀한 생명을 바친단 말인가. 용기란 것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모험을 계속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기사도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스위스에 건너가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계속하려는 충동을 느낄 것이다. 영국 산악회는 이번 사태에 대하여 개혁 운동을 하고 현명하게 처리해야 헐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산악회나 등반은 사회에 폐를 끼치는 골칫거리라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 당시 등반은 소수의 괴짜들만이 즐기는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었다. 영국 사회에서는 장애물 경마나 들판에서 여우 사냥을 하다가 넘어져 목이 부러져 입는 부상은 당연한 것처럼 용납했지만, 산에 오르다 목이 부러지는 일은 당치도 않은 일로 여겼다. 유독 등반 중의 사고에 대해서는 몹시 비판적이고 악의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