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자료실 시계학 개론 / HS 코드분류 / 시계 기술 소개
시계학 개론
시계의 이해
5세기경부터 아테네 사람들이 썼다는 물시계나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시켜만든 해시계 같은 것 말고, 요즈음에 쓰이는 태엽식 벽걸이 시계나 자명종시계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 1870년대라는 기록이 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이전인 1856년 철종 7년 블란서배가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 변산반도 고부땅에 이르러 주민들의 친철에 대한 보답으로 블란서제 자명종 탁상시계를 준 것이 한국에 최초로 들어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국내 시계제조업은 1945년 이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반입되어 1955년까지는 수리보수 등의 수준이었으며 이후 경인지방에서 목공업 및 부품공업이 태동하여 1960년에 기업적 성격을 띤 벽시계제조업이 등장하였다.
1. 시계의 역사 연표
2. 시계 역사
3. 시계산업 변천
4. 국가별 생산형태 변천
5. 연도별 시계 변천사
6. 시계의 종류
7. 시계 구조 및 용어
8. 한국의 고대시계
9. 국내시계업체 현황
10. 국내시계산업의 변천 현황
11. 3년간 해외시계박람회 참가실적 현황
12. 년도별 시계 수출현황
13. 국내시계시장 현황
14. 국내 시계 소재별 현황
15. 시계제작 공정도
16.국내시계산업의 향후 방향
1. 시계의 역사 연표
BC4000
BC3000
BC1500
BC1000
1 3 6 4
1 3 9 0
1 5 1 0
1 6 5 6
1 7 2 8
1 9 0 4
1 9 4 9
1 9 5 5
1 9 6 0
1 9 6 7
1 9 6 9
1 9 7 3
바빌로니아의 해시계
영국의 해시계 (스톤헨지)
이집트 물시계 (클레프시드라)
중국 주나라 (해시계)
기계식 시계 (최초의 기계식 시계 -- 프랑스의 앙리드윅)
유럽의 대성당 탑시계 (기계식--영국, 프랑스, 독일)
회중시계 (최초의 휴대용 시계--독일 뉴렌베르그 '피터 핸라인')
흔들이 시계 (네덜란드 호이렌스)
크로노미터 (최초의 기계식 크로노미터 -- 영국의 해리슨)
손목시계 (최초의 기계식 손목시계 -- 까르띠에 '산토스')
암모니아 원자시계 (미국)
세시움 원자시계 (영국)
음차시게 (스위스 막스헷젤)
쿼츠 무브먼트 (스위스 뉴사텔 /수정 진동자 이용 --상업화 되지않음)
쿼츠 아날로그 손목시계 (일본 세이코사)
쿼츠 디지털 시계 (미국 헤밀턴사)
2. 시계 역사
고대 사람들은 낮과 밤의 반복에 의해 날을 세고 달력을 만들었으며,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의 경과를 알았다.
최초의 시계는 1개의 막대를 땅 위에 세웠던 그노몬(gnomon)이다.
고대이집트에서는 오벨리스크가 그노몬으로 쓰였고, 지침(指針)은 지축에 평행하게 기울어지도록 하여 1년 동안 그림자 길이는 변화해도 방향은 변하지 않도록 개량되었는데 이것이 해시계(sun dial)이다.
해시계는 처음에 바빌로니아·이집트에서 만들어져 차츰 동·서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해시계는 밤 동안이나 날씨가 궂은 때에는 사용할 수 없고 시간을 세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점을 보완하여 물방울을 이용한 물시계 클렙시드라(clepsydra; 물항아리)가 고안되었다.
고대이집트에서는 이미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고, BC 1550년 무렵에는 이러한 종류의 시계를 이용하여 낮과 밤을 각각 12등분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 뒤 물을 모래로 바꾼 모래시계, 불시계(양초·램프·香時計)등이 고안되었으며, 각각의 특징에 따라 근세까지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계는 정밀도도 떨어지고 늘 해시계와 비교하면서 어떤 시간을 등분하는 보조적인 장치였다.
한국에서는 어떤 시계가 먼저 발달하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물시계 사용에 관한 기록이 있고, 신라 때의 해시계 파편으로 보이는 유물이 경주박물관에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시각을 알리는 큰 종이 충목왕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34년 장영실(藏英實)이 세종의 명으로 물시계의 일종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또한 시계 이상의 정교한 천문장치를 겸한 장영실의 옥루(玉漏)가 있었다.
이 밖에도 세종 때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계가 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행루(行漏) 라는 휴대용 물시계도 있었다.
또 해시계로는 앙부일구·형주일구·천평일구·정남일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앙부일구는 중국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세종 때에 조선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여 그 뒤 널리 보급되었고 일본에까지 그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이전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뒤의 것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앙부일구가 남아 있다.
이러한 해시계와 물시계 외에도 세종 때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하게 만든 시계였다. 서양식 해시계로는 1636년 (인조 14) 이천경(李天經)이 만든 대리석제의 지평일구의 유물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러한 초창기의 시간 측정방법들은 대개 땅 위에 세운 막대기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고 이튿날 다시 똑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의 시간이 진태양일(眞太陽日)인데, 이 진태양일 하루의 길이는 1년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다.
따라서 이 불편을 없애기 위해, 유럽에서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에 걸쳐 1년마다 평균을 내어 평균 태양일을 정하고 이것을 24등분한 것을 시(hour), 시를 60등분하여 분(minute), 분을 60등분하여 초(second)로 하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1927년 수정시계가 출현하여 차츰 정밀도가 향상되자, 그때까지 최고의 정밀도를 지닌 시계였던 지구자전 속도(정밀도 ±1억분의 5)의 불규칙성이 발견되어 이것이 정확한 시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리하여 60년 국제도량형회의 총회는 1초를 1900년 초시점에서 측정한 1태양년의 3155만 6925.9747분의 1이라고 정의하고 이것을 시간의 단위로 하였다(曆表時). 또한 67년 이 총회는 그 1초에 맞추어 국제단위계(SI)의 시간 단위 <초>를 세슘 133의 바닥상태에서 2개의 초미세구조 사이의 전이(轉移)에 대한 방사 주기의 91억 9263만 1770배로 했다.
이리하여 초의 단위는 천문학적 정의에서 독립하였다.
현재 우리는 시를 시각으로서 파악하는 천체관측에서 유래하는 시계(時系; 세계시·역표시)와 원자시계의 초, 즉 1958년 1월 1일 0시를 원점으로 하여 시간단위를 계속 더하여 가는 원자시(原子時)라는 2개의 시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3. 시계산업 변천
1).기계시계의 발전
기계시계가 발명된 것은 1300년 전후로 본다.
14세기가 되자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주요 도시는 시간을 알리는 장치가 있는 공공 시계탑을 다투어 설치하였다.
파리의 대법원에 있는 시계는 1370년 독일인 H.비크가 프랑스의 샤를 5세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시계로서 유명하다.
또 이탈리아의 G.돈디가 제작한 천문시계, 높이 1.4m의 시계는 현존하지는 않으나 1364년에 씌여진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60년 그것의 정확한 복제품이 만들어져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의 시계구조는 무거운 추의 힘으로 기어를 회전시켜 관형탈진기에 관성이 큰 막대템포를 물려 축의 회전을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막대템포 자체는 오늘날의 진자나 템포처럼 등시성을 가진 진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계의 오차는 하루에 30분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시계는 시계바늘이 1개뿐이었고,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시각을 알리는 것이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시계에는 글자판이 없었다.
clock의 어원이 종(鍾)이듯이 일반시민은 종소리에 맞추어 생활하게 되었고, 그때까지의 부정시법 대신 하루를 24등분하여 시를 구분하는 정시법이 생겼다. 이러한 공공시계가 그대로 실내에 맞는 크기로 소형화된 것은 14세기 말이었으며, 일반의 부유한 가정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16세기가 되면서부터이다.
태엽 발명에 의해 탁상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전반이었으며 역시 이탈리아에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시계 제조의 중심은 15세기 말, 남독일에서 조금 뒤 프랑스 블루아로 옮겨갔다. 뉘른베르크의 자물쇠공 P.헨라인이 1510년 무렵 회중시계의 전신인 휴대시계를 만들 일은 유명하다. 태엽시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긴 상태에 따라 태엽의 힘이 크게 변동하여 시간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발명자는 분명하지 않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기록에 보이는 균력차(均力車; fusee)와 스택프리드(stack freed) 장치가 고안되었고, 16∼17세기의 휴대시계에 이 중 어느 하나가 사용되었다.
초기의 휴대시계는 두꺼워, 목 또는 가슴에 걸었으며 시간을 알리는 장치를 갖춘 것이 많아 클록워치라 하였다.
1600년 전후에는 십자가·두개골·동물·과일·별·꽃 등 진기한 모양을 한 시계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그 후 오늘날과 같은 동그란 모양으로 정착되었다. 케이스는 귀금속이나 에나멜이 사용되었는데,아름다운 에나멜그림 때문에 시계는 미술공예품·보석장식품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1583년 G.갈릴레이에 의해 진자의 등시성이 발견되자 네덜란드의 과학자 C.호이겐스는 이것을 시계에 이용하여 1657년 최초의 진자시계를 완성하였고, 75년 템포와 소용돌이 모양의 유사(遊絲)를 조합시킨 조속기(調速機)를 발명하였다.
이 등시성을 가진 조속기의 발명은 시계의 정밀도를 높여, 고정밀도화의 길을 열었다.
한국에 기계시계가 처음 전래된 때는 1631년 (인조 9)인데, 정두원(鄭斗源)이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자명종을 가지고 들어온 데서 유래한다.
당시의 자명종은 지금의 자명종과는 달리 정해진 시각에 종이 규정된 대로 울리는 그런 시계를 말하였다.
이 기계시계는 한국 시계역사에 두 갈래의 영향을 주며 시계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한 가지는 서양식 자명종을 그대로 만들려는 노력이 활발해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자명종의 기계장치를 전통적인 자동 물시계 장치와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전통적인 수력을 이용한 자동장치 대신 자명종의 기계장치를 채용한 천문시계로는 혼천시계(渾天時計)를 들 수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시계는 길이 약 120㎝, 높이 98㎝, 나비 52㎝의 나무상자 속에 설치되어 있다. 시계부분과 혼천의부분의 둘로 구성되었는데, 시계부분은 2개의 추를 운동시켜 움직이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혼천의가 움직이게 된다. 시각에 따라 시패가 창문에 나타나고 종이 시각 수만큼 울리게 된다.
이 천문시계는 1669년(현종 10) 관상감의 천문학자 송이영(宋以穎)이 만든 것이다.
같은 해에 함께 천문학자로 있던 이민철(李敏哲)도 혼천시계를 만들었는데 이민철의 것은 자동수력장치를 사용한 것이었다.
서양식 자명종을 그대로 만들려는 노력으로는 1723년(경종 3) 왕명으로 만든 문신종(問辰鐘)을 들 수 있다. 낮과 밤 어느 때나 시간을 알 수 있는 이 시계는 청(淸)나라에서 진하사(陳賀使)가 가져온 것으로, 임금이 관상감에 보내 그대로 복제품을 만들도록 명한 것이었다.
17세기 전반 네덜란드의 번영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영국으로 옮겨짐에 따라 시계에 관한 발명도 영국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16세기 이래 에스파냐·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의 해운국이 <경도(經度)의 발견>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 최고의 정밀도를 지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시계 머린크로노 미터의 제작을 장려한 일도 있으며, 1704년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던 스위스인 n.파티오가 루비에 구멍뚫는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보석베어링의 채용, 17세기의 R.훅·W.클레망·T.톰피온·G.그레이엄·T.머지 등의 탈진기에 관한 발명, 그레이엄의 수은보정진자 등 18세기에는 주요한 발명이 뒤를 이어 시계의 구조는 크게 개량되었다. 또한 기계는 소형화되고 얇게 만들어 졌으며 많은 기능이 부가되었다.
19세기가 되자 차츰 공장이 설립되었고 개인에 의한 제작은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까지 세계 제일의 시계 산업국이었던 영국은 1840년 무렵부터 쇠퇴했으며 대신 스위스가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 출현한 손목시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크게 유행하였고, 1924년에는 영국의 J.하우드에 의해 자동태엽손목시계가 시판되었다.
시계의 정밀도 향상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스위스의 C.E.기욤이다. 기욤은 니켈철 합금, 온도변화에 대하여 신축이 적은 인바(invar)와 탄성변화가 적은 옐린바의 발명으로 19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인바는 진자의 대(臺)등에, 엘린바는 템포의 유사에 사용되어 시계의 실용정밀도를 크게 높였다.
18세기는 시계의 구조·기능에 대한 개량시대, 19세기는 제조법의 개혁·진보의 시대, 20세기는 시계산업에서 기계시계의 완성기, 그리고 혁명적인 전기·전자시계로의 전환시대가 되었다.
2).전기.전자시계의 발달
전기를 시계에 응용한 사람은 1830년 이탈리아 사람 참보니이고, 전기시계 발전의 길을 연 사람은 영국의 A.베인이다. 베인은 40년 전기신호로 자시계(子時計)를 움직이게 할 것을 제창하였고, 이듬해 기계시계의 진자를 이용하여 접점에 의해 한번 진동할 때마다 임펄스를 일으켜 자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히프·르무안이 전자식 진자 구동의 단독시계를, 56년에는 스위스의 A.L.브레게가 전기태엽시계를, 1918년 무렵 미국의 H.워런이 교류동기(交流同期)모터를 사용한 시계를, 27년에는 W.A.마리슨이 수정시계, 49년에는 H.라이온스가 암모니아 분자의 진동을 이용한 원자시계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8년에 벨 연구소의 W.H.브래튼·W.쇼플리·J.바딘 등 3명에 의해 개발된 트랜지스터는 전기접점으로서도 뛰어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54년 무렵부터 시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대형시계와 병행하여 전지손목시계 연구도 계속되어 1952년 미국의 엘진사와 프랑스의 리프사가 협동하여 만든 템포식 워치의 원형이 발표되었고, 이어 템포식·소리굽쇠식의 전지손목시계가 미국·스위스·프랑스·일본 등지에서 제조되었다.
69년에는 일본이 세계 최초의 수정손목시계를 아날로그식으로 발매하였고, 72년에는 미국의 여러 회사가 디지털식 수정손목시계를 발표하였다. 일렉트로닉스의 급속한 진보에 따라 고밀도 집적회로를 넣어 정밀도와 기능이 뛰어나고, 작고 얇으며 값도 싸진 수정시계는 짧은 기간에 기계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디지털손목시계의 다기능화·저가격화의 진전은 시계의 성격을 소형정보기기로 바꾸어 수요구조를 변화 시켰다.
4. 국가별 생산형태 변천
기계시계가 14세기 북부 이탈리아에 출현한 뒤 시계 제조지역은 이탈리아에서 독일 남부·프랑스·네덜란드·영국·스위스로 옮겨갔으나, 고도의 기술과 숙련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후 미국·소련·일본 등이 추가된 정도로 생산국은 매우 적은 수에 한정되어 있었다.
1930년대에는 스위스(워치)·독일(클록)·미국(워치와 클록)의 3개국에서 세계 시계시장의 90% 이상을 생산했고, 또한 수정시계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70년에는 스위스·미국·프랑스·독일·소련·일본 등 6개국에서 90%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렉트로닉스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시계도 전자화라는 일대 변혁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혁신에 그치지 않고 산업구조를 바꾸었으며 생산국이 대폭적으로 바뀌었다.
주요 시계생산국들은 국제적 가격경쟁·수출마찰로 인하여 해외 현지생산체제로 바꾸고 있기 때문에 시계생산의 중심지는 유럽·미국에서 아시아지역으로 옮겨지고 있다.
생산형태는 크게 나누어 2가지 형이 있다. 하나는 큰 공장에서 부품부터 완성품까지를 일괄 생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각 부품을 사들여 가내공업형식으로 시계를 조립하는 조립공장방식이다.
미국·소련·일본 등 시계 생산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나라는 전자에 속하고, 스위스·독일·프랑스 등은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경비의 증대, 대량생산에 따른 가격저하, 마케팅, 그리고 최근 제품설계와 제조설비의 불가분적인 관계 등으로 후자에 속하는 유럽의 생산국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규모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스에서의 종교 박해로 제네바로 망명한 시계기술자들이 기술을 전하여 16세기 후반에 시계산업을 성립시켰다.
그 후 쥐라산맥의 농민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시계를 조립함으로써 가내공업으로 발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손목시계의 유행에 대응하여 1929년의 세계대공황 후 연방정부의 보호 아래 기업화를 단행함으로써 시계산업을 조직화하였다.
시계회의소(時計會議所) 산하에는 계제조자연맹(FH)·시계부품제조자조합연합회(UBAH)를 두었고, 31년에는 시계산업 최대의 콘체른, 스위스시계산업종합주식회사(ASUAG)를 설립, 시계의 주요 부품인 에보슈·템포·유사·탈진기의 제조회사를 각각 그룹화하여 통제했으며, 과잉생산방지, 외국 시계산업 발전방지책, 가격·임금의 통제, 정보수집 등을 단행하였다.
스위스는 많은 숙련근로자, 정밀도가 높은 시계용 공작기계에 의한 기술적 우월과 이 통제조직에 의해 그 후 약 40년 동안 세계 시계시장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일본·소련이 등장하여 시장점유율이 떨어졌고, 전통적인 기술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수정화(水晶化)에 뒤져 그때까지 스위스제품의 약 반을 차지하고 있던 핀레버(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워치)의 영역을 홍콩제 디지털워치에 빼앗겼으며 85년에는 기업수 600개사, 생산량 6000만 개(1974년 9600만 개)로서 모두 융성기의 2/3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공예적인 초고급품에서는 아직 앞서는 나라가 없다.
<홍콩>
1960년대에는 값이 싼 워치용 케이스·글자판·밴드를 생산하였고 몇 개의 회사가 주로 스위스에서 무브먼트나 부품세트를 수입해 완성품을 조립하였다.
70년대부터 국제분업화가 시작되어 일본·스위스의 기업들이 진출하였고, 디지털워치가 출현한 뒤에는 미국기업과 결속을 강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생산이 급증하였으며, 85년에는 2억 7400만 개를 수입하고 4억 개(그 가운데 70% 이상이 디지털)를 수출하는 세계 제일의 워치수출국으로 성장하였다.
디지털워치는 1972년 처음으로 미국에서 발매되어 국내에서 붐을 일으켰으나 큰 반도체 기업들의 잇따른 참가로 인하여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어, 저임금이며 노동력이 풍부한 홍콩에서 제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이 느는 반면, 미국의 제조업자는 이 홍콩의 염가에 대항하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철수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홍콩시계산업의 특징은 생산국으로부터 워치나 무브먼트를 수입하고 약간의 가공 또는 부가가치를 붙여(케이스 부착, 밴드 부착 등) 수출하거나 또는 조립만을 하였으며, 지역 내에서는 거의 부품을 생산하지 않았다.
연구·개발비가 필요하지 않는 조립회사로 일관했다는 점, 외장산업이 있었다는 점, 자유항의 이점을 충분히 살렸다는 점이 단기간 내에 홍콩을 세계 제일의 디지털워치 생산국으로 만든 원인일 것이다.
85년 현재 1272개사가 있다.
<일본>
1873년 이후 도쿄·나고야 등에서 괘종시계 제조가 시작되었다.
19세기 말에는 회중시계·탁상시계가, 1913년에는 손목시계가 제조되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호황으로 순조롭게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으나 전후 제조기술의 급속한 진보로 품질이 좋은 중급품을 대량생산하여 54년에는 전쟁 전의 최고 생산량인 511만 개(1937)를 넘었고, 60년대에는 제품뿐 아니라 기술을 수출하기에까지 이르렀으며, 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산 시계장치가 채용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어 국제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다졌다.
자동손목시계 영역에서는 65년 이후 세계생산량의 50∼60%를 차지하였고 해마다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는데 70년대에 수정식으로 전환되면서 크게 비약하였다. 클록은 79년에, 워치는 80년에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생산국이 되었다.
85년 현재 생산공장수는 61개(관련·하청공장을 합치면 300개 이상), 생산량은 2억 5800만 개이다.
<한국>
한국에서 현대적인 시계생산이 시작된 것은 1959년 기계시계의 조립 판매부터였다.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던 시계공업은 그 뒤 국산화율을 높여 77년 이후에는 전자시계생산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7개의 대형업체와 50여 개의 중소업체가 기계시계와 전자시계를 생산하고 있는데, 84년에는 생산량이 1000만 개를 초과하였고, 시계류 총수출이 1억 5000만 달러를 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는 국산시계도 고급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88년 현재 한국 시계공업협회에 140여 개의 업체가 가입하고있다.
88년에는 5000만 개 이상을 생산하였고 수출액은 2억 6000만 달러에 달하였다.
5. 연도별 시계 변천사
::: 1900 ~ 1920 :::
인류에게 손목시계가 정착되기까지는 한세기 가량이 걸렸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손목시계의 탄생을 1900년 경으로 보고있다. 18C 후반에 패션에 민감한 아주 소수의 여성들이 일반 여성들보다 유행에 앞서 간다는 표시로 Pocket Watch를 손목에 감고 다녔으나 그녀들의 이 괴벽은 곧 잊혀졌고 '손목위의 Pocket Watch'는 패션의 역사에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1900년경 Oscar Wilde와 그의 친구 시인, 화가 등 심미주의 운동가들은 이상스런 옷차림을 즐겨했다. 시계는 그들의 패션의 일부였다. 요란하게 생긴 가죽부착물 혹은 케이스의 쇠줄 이 달린 Pocket Watch를 손목에 감고 다녔다. 물론 그들의 행위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월감과 자부심에 차있었다.
이때의 손목에 감는 시계가 세상에 가져온 것이 패션도 일시적 유행도 아니었지만 1904년에 이것이 구체적으로 필요하게 된 사건이 생긴다. 시계제조업자인 Louis Cartier가 기구비행사 인 그의 친구 Santos를 위한 시계를 디자인 해주게 된다. 기구를 운행할 때 안전한 작동을 위해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시계가 필요했는데 Cartier 는 특별한 형태의 '편리한 시계 (손목에 차는 포켓 Watch가 아니고)' 를 개발해 친구의 손 목에 채웠는데, 결과는?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지금도 'TANK San tos'라는 Brand로 판매되고 있다. Santos가 손목시계의 영광스러운 첫번째 Customer였던 셈이다.
Santos의 명성에 힘입어 세상은 손목시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그로부터 시계제조업 자들은 시장에서 광란적인 경쟁을 시작한다. 그들은 잽싸게 포켓 Watch 재고를 개조하여 손목시계로 바꾸어 만들었다. 이 때부터 업자들은 다양한 결속, 연합을 시작했고 앞을 내다 볼 줄 아는 Designer들이 새로운 손목시계의 창조를 시작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포켓 Watch가 주류였으나 사람들은 곧 손목시계가 덜 거치적거리고 실용적이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손목시계의 역사에서 또 다른 드라마틱한 역할을 하게된다. 전쟁의 혹독함 은 험한 상황에서 견딜수 있는 시계를 요구했다. 작전개시 시간을 볼려고 호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포켓Watch는 분명히 사라져야 했고 손목 시계가 그 해답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시계제조업자들은 스스로 얼마나 놀랄만한 제품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타냈다. 그들의 상상력은 쿠션형태, 마차형태, 야광 시.분침, 큰 곡면의 경첩형 Case, 과장된 이국풍의 Arabia 숫자 인덱스 등을 개발해냈다. 손목시계는 필요성, 새로운 경향, 스타일로서, 형태와 디자인의 무한한 다양함으로 받아 들여졌다.
::: 1920 ~ 1930 :::
1920년도는 미래의 번영을 약속하며 각 회사가 그들의 미적, 기술적 재주를 그들의 상상 이 닿는데 까지 펼치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Designer들은 다양한 것들을 시계에 표현 시키고자 했다. Green과 Orange, Purple과 주홍색등 화려한 Color의 조화를 시도했고, 숙녀용 시계에 화려한 에나멜로 도장하여 장식하였다.
Case의 형태는 특별히 주도적인 양식이 없이 미래적인 경향을 나타내었다. Art Deco나 Bold 대칭패턴이 Bezel에 나타나 있고, 큰 곡면을 이룬 시계, Round Bezel, 8각형 시계 등 종이 위에나 그려질 법한 기하학적 디자인의 Case 가 많이 나타난다.
각 제조회사의 특징이었던 자기들만의 Trade mark를 자부심으로 드러내었다.
1920년대의 손목시계는 시계패션 역사의 고유한 부분을 분명히 차지하고 있다.
::: 1930 ~ 1940 :::
세계가 대공황에 처해있던 시기였는데 이시대의 시계는 패션의 최정점에,거의 절대적인 위치에 와 있었다. 경제적인 모든 문제가 있었음에 불구하고 패션은 여전히 여러 경향으로 존재해나갔다. 모든사람이 다 돈을 잃은것도 아니었고 소수의 돈있는 사람들은 부를 과시하고 싶었다. 손목시계는 비교적 보존력이 있고, 간편하고, 복장.의상과 어울리는 것이었으며 예술적인 것으로까지 인식되어 졌다.
20년대의 커다란 시계는 점차 사라져갔고 두가지 주요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바뀜했다. 첫째는 부드럽고 깨끗하게 경사지면 ,새로운 곡면 Movement 를 적용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Case, 두가지 색상의 Two-Tone Dial로 개성화된 시계로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는 손목에 착용하면 마치 온 몸에 두른것 같은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것은 과거의 시계와 완전히 달랐으며 복식의 한 형태로서 자리잡았다.
둘째는 Rolex의 'Railway' Case로 알려진 것과 같은 그라데이션의 변형된 형태의 시계의 출현이다. 이 시기의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은 Jaeger LeCoultre의 'Reverso'시계인데 이것은 Case 를 뒤집어 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앞면은 시간을 볼 수 있으며 뒤집어 놓으면 멋지고 화려한 무늬를 조각한 Back이 나타난다. 시간을 볼 필요가 없는 때에는 뒤집어 놓아 앞면의 Glass를 보호하고 또한 장식품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혁신적인 개발품이었다.
Rolex는 자동태엽갑기 기능의 Movwment를 적용시킨 'Roter'라는 시계를 개발해냈다. 미세한 움직임으로도 저절로 태엽이 감겨 시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한 획기적인 것으로써 바쁜사람들 (이 시기의 많은 실업자들은 바빠보이길 원했다.) 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수동태엽감기 시계의 퇴조를 불러왔다. 이후 다른 많은 시계회사들이 이 기능의 Movement를 모방하려했고 이기능은 기계식 시계의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과 더불어 30년대의 뛰어난 성과의 하나는 미키마우스의 탄생일 것이다. 월트디즈니의 미키, 구피, 도널드등이 최초를 저가 시계의 Dail에 그려지면서 만화 Character들이 영화화면에서 내려와 어린이들의 마음으로 손목위로 올라온 때이다.불황의 시기였음에도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1달러를 지불했으며 수백만 어린이들이 시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1930년대는 많은 새로운 디자인과 기계적 발명을 이루어낸 시기로써 시계의 발달사의 황금기였다. 시계는 더 이상'고전'이 아니었고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시기였다.
::: 1940 ~ 1950 :::
2차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 시기에는 전쟁의 과학기술이 복잡한 시계의 기술에 반영되었던때였다. 전투폭격기 조종사나 군사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여러 역할을 해야 했다. 단순히 시간을 보기 위해서만 시계가 필요한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과학,수학,천문학기술등이 구현된 Chronograph, Moonphase 기능의 시계들이 개발되어 탄생했다. Chronograph는 군사적홀동을 할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경마나 비행기를 조종할 때 시간을 초단위까지 쪼개어 잴수 있는 시계가 필요하게 되었고, 천문에 관심과 취미를 가진사람들에게는 달의 정확한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Moonphase 기능의 시계가 필요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큰 변화는 Band에 있었는데, Band가 단지 기능적인 부분에서 시계디자인의 전체의 한 부분으로 바뀌어진 것이었다. Gold나 전쟁으로 인해 개발된 합금등이 시계소재로 이때부터 쓰였다. 기능적으로도 더욱 편리하고 책임감있게 개발되었다. 이 시기는 시계를 자랑으로 내어보이는 장식적인 것으로부터 생활에 핑요한 실용적인 것으로 변화한 시기이다.
::: 1950 ~ 1960 :::
스위스는 전쟁의 후유증으로부터 가장 빨리 벗어난 나라로서 뛰어난 예술적 솜씨와 기술로 시계를 제조해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다. 가장 성공적인 복잡한 기능의 시계제조 기술력을 갖춘 회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Perpetual Calender Moonphase 시계는 애호가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소장품이 되었다. 이 기능은 월별로 30, 31일,28일 까지 자동적으로 표시해 주었으며 2000년까지도 자동적으로 계속 날짜표시를 할 수 있는것도 있었다. 달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정확히 보여줄 수 있었다.
50년대 초기의 기본적인 디자인은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Moonphase시계나 Chronograph는 점점 더 혁신 적으로 나아갔다. Case는 원형과 사각의 형태가 주류였다. Diamond가 Dial이나 Case둘레에 많이 쓰였는데 겉치레라기 보다는 우아하게 꾸미는 정도로써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Chronograph는 여러가지 기능으로 특화 되었는데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를 측정하는 'chometer',천둥 번개와 같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재는 'telemeter' ,맥박을 재는 'pulsimeter',생산품의 수량을 세는 'Production', 조수의 흐름을 재는 'Tide',Compass Direction등이 있다.
::: 1960 ~ 1970 :::
Yankelovich는 1960년대 초 손목시계시장을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효익을 기준으로 세분화 하였는데, 시계를 구입할 때 저가격을 주로 추구하는 세분시장의 크기가 전체의 23%, 내구성 및 품질을 주로 추구하는 세분시장의 크기가 46%, 그리고 파티 등 중요한 경우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symbol)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세분시장의 크기가 31%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유명 시계회사들은 상징을 추구하는 세 번째 세분시장을 표적시장으로 하여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시계를 생산하여 보석상을 통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U. S. Time Company는 Timex를 기존의 보석상을 통하여 판매하기를 원하였으나 이 시계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지 못해 대부분의 보석상으로부터 거절 당하였다. 그리하여 drugstores, hardware stores, 심지어 담배 가판대 등을 통하여 대량유통전략과 아울러 대대적인 TV광고에 의하여 시계의 내구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판매상의 수와 가격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예상수요의 85%정도만 공급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전략은 크게 성공하여 Timex는 1960년대 말 미국시장의 60%, 세계시장의 20%를 점유하게 되었다.
::: 1970 ~ 1980 :::
70년대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Color TV의 보급과 영향은 시계사업의 대량유통의 길을 터주었다. 단순히 모습만 예쁜 시계의 대부분은 시장에서 밀려났고 시계디자인은 예술적 이라기 보다는 기능을 수용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Case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사각형,원형이 주를 이루었다.
Dial의 Index는 상상적인 Roman, Arabic숫자는 많이 사라지고 단순한 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초박형의 시계도 한편으로 유행이었는 데 단순히 시간만 보여줄 수 있는 기능만 갖추었고 막대모양의 극히 실용적인 Hand가 적용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 전자기술의 손목시계산업으로의 유입이었다. 예를 들어 손목시계 시장에 새로이 등장한 반도체 회사 Texas Instruments회사는 매우 정확하고 저렴한 전자시계를 개발하여 Timex 와 동일한 방식으로 대량유통시켰으며, 그밖의 다른 회사들은 보다 스타일이멋지고 숫자가 읽기 쉬운 전자시계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Texas Instruments 또한 치열한 경쟁에 이겨내지 못하고 시계시장에서 철수 하였으며, 세계 손목시계시장은 Seiko, Citizen, Casio 같은 일본회사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일본의 시계회사들은 저렴한 시계뿐만 아니라 스타일이 멋지고 정확도가 높은 석영(quartz)시계를 개발하여 고급 예물 시장까지도 지배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세계의 손목시계시장을 지배하던 많은 스위스 회사들이 도산하는 현실로 나타났다.
Quartz의 혁명은 또 다른 시계Engineering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주었다. Quartz는 시간을 지키는 데 진보된 정확함을 의미하게 된다. 반면 구 세대의 Creative Artists와 시계 제조업자들 간의 Partnership은 종말을 고하게 되고 시계는 Engineer와 기계의 힘으로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 1980 이후 :::
1983년 Swatch는 색깔이 다양하고 가격이 높지 않은 플라스틱 시계를 출시하여 그 당시까지 다른 회사의 광고들이 시계의 정확성을 강조한데 비해 패션 악세사리인 점을 강조하여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적으로 포지셔닝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급 패션점과 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시키는 전략을 택하였다. 패션시계의 아이디어를 개발한 전략은 크게 성공하여 Swatch는 자사의 시장점유율 증가 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패션 의류와 어울리는 시계를 여러 개 소유하는 소비/사용 패턴의 변화를 가져와 전체 시계시장 규모를 확대 시켰다.
현대의 시계는 다음과 같이 크게 분류 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이 현대의 시계들에 만족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어느 사람들은 훌륭한 디자인과 귀금속을 사용한 시계를 원한다. 거의 수공으로 제조된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자기만의 귀중한 식단을 간직하게 해주거나 , 오히려 시간이 무의미하도록 가치있는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처럼 Masterpiece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 오늘날의 대부분의 시계 구매자들은 개별적인 개성을 담고 있는 Creative를 표현 할 수 있는 시계를 원한다.Quartz Movement와 Stainless Steel Case 와 Band, Sapphire Crystal (이 외에도 텅스텐이나 티타늄, Gold, 황동 등도 사용한다.)를 기본소재로 한 아주 다양한 디자인의 시계가 아주 다양한 유통을 통해 현대 시계의 주류로써 자리잡고 있다.
셋째는 정보 통신 과학의 발전이 Digital화 함에 따라 이를 응용한 시계들이 또한 축을 이루계 되었다.
비행, 등산, Scuba, 체육, 의료에 이르기 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전문가들에게 꼭 필요한 특수한 기능을 정확히 보여주고 정확히 계산해내는 Digital 시계가 개발되었고 이젠 전문가 뿐만 아니라 취미 활동가들에게도 필요하게 되었다.
6. 시계의 종류
1).수정 진동자(Quartz) 방식
① 아날로그식: 바늘(Hand)이 시자(Index)를 가르키는 방식으로, 윤형바퀴식, 음차식, 모타식등이 있다.
② 디지탈식 : 숫자가 시간을 나타내어 주는것으로, 액정식(LCD), 발광다이오드식 (LED) 등 있다.
2).기계(Mechanical)식
① 자동식(Automatics) : 무브먼트(Movement)에 태엽을 감을 수 있는 회전 추를 부착하여 손목에 착용시 움직임에 의하여 자동으로 태엽을 감아 주는 방식
② 수동식(Manual) : 용두(Crown)를 이용하여 수동으로 테엽을 감아 주는 방식
3) 복합형
기계식과 수정진동자 방식의 복합형으로 기계식의 회전추로 발전한후 밧데리에 충전한후 수정 진동자 방식으로 시간이 작동되는 복합 기능 (기계식의 시간 오차를 보완한 방법으로 최근 개발 되어 실용화 되고 있음)
4) 배터리가 필요없는 전자시계(키네틱 시계)
① 착용하고 있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손목 움직임에 따라 예민한 회전추가 반응, 회전한다.
② 회전추의 횐전운동은 정교한 윤열기구에 의하여 약 100배로 가속되어 키네틱 로타 (Automatic
Generator)에 전해진다.
③ 분당 최대 10만회 (F1 엔진보다 고속)에 이르는 키네틱 로타의 고속회전에 의해 전용 코일블럭에 전압
이 발생, 전류가 흐른다.
④ 발전된 전류는 축전기에 충전된다.
⑤ 축전기로부터 안정화된 전기 에너지가 모터와 회로에 공급되어 쿼츠 손목시계가 작동한다
7. 시계 구조 및 용어
8. 한국의 고대시계
1) 흰 돌 해시계
서양식의 24시제가 도입된 후인 한말에 만들어진 흰돌 해시계이다.
영침(影針)을 꽂는 구멍을 중심으로 19개의 동심원을 그리고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계절을 측정할 수 있도록 24절기를 13칸에 배치했다.
각 절기의 동심원마다에는 이에 맞는 시간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외부에는 12시제에 따른 간지(千支)의 시간과 24시제에 따른 로마자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24시제의 각 시간은 5등분해 12분 단위를 칸으로 나누었다. 한쪽에 나침반을 장치해 정확한 방위를 잡아 시간을 젤 수 있게 만들었다.
영침이 없어져 그 재원을 밝히기가 힘들다
< 흰 돌 해시계 >
< 돌 해시계 >
2) 돌 해시계
해시계의 일종으로 윗부분의 눈사람형 모양의 두부와 직4면체의 기대로 되어 있다.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이 돌 해시계는 중앙에 영침(影針)을 세울 수 있도록 구멍이 파여져 있다.
시계 면에는 두 개의 원이 그려져 있는데 안쪽의 원에는 대각선이 그어져 있어 동·서 ·남 ·북의 네 방위시(方位時)를 표시하도록 되어 있으며, 방위시 외각에는 12지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이 24시간의 시각표시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3) 대리석제 앙부일구
대리석제 앙부일구는 해시계와 그 받침대의이단으로 되어 있다.
일구는 반구형이고 윗면의 둘레가 밖으로 넓혀져서 원을 이루며, 영침(影針)은 소실되어 없다. 받침대는 재떨이 모양으로 그 둘레가 16개의 꽃잎모양으로 되어 있다.
일구 내부는 영침 자리를 중심으로 북극고도를 반경으로 하는 원이 새겨졌고 그 밖으로 계절을 표시하는 13조(條)의 원호(圓孤)가 그려져 있으며, 그것이 닿는 원의 동쪽으로는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서쪽에는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가 새겨져 있다.
이 계절호(孤)와 직면으로 영침을 중심으로 한 14조의 시각선이 새겨졌는데 이 시각선은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시의 경계선이 되어 있다.
지평원 남쪽에는 방위를 잡기 위한 남(南)자가 새겨져 있다.
크기는 내경 153m, 외경 19.8m, 일구대 내경 20.4cm, 외경 25.1cm이다.
< 대리석제 앙부일구 >
< 선추 해시계 >
4) 선추 해시계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선비들이 갖고 다니는 부채 끝에 지남침을 매달아 나그네 길에서 나침반으로 사용했다.
대추나무에 아름답게 조각한 케이스는 하나의 공예품이다.
그 지남침 중심에 시표률 세울 수 있게 해서 그것으로 대략의 시각도 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긴 유물이다.
5) 혼천의
혼천의는 중국에서 한대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 관측 기구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혼'이란 원이나 공 같은 둥근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며, '의'란관측 기구를 가리킨다.
혼천의는 흔히 '혼의'라고만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혼상'이라 혼동되는 일도 많다.
혼의는 관측 기구이고, 혼상은 하늘의 운동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위한 장치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그 목적이 서로 다르다.
둥근 관측용 테가 얼기 설기 여럿 이어져 있는 혼천의에는 눈을 대고 목표물을 관측하는 망통이 달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체 운동을 보여 주기위한 혼상에는 망통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고도 할 수 있다. 2천년의 역사를 가진 혼천의가 우리나라에서 언제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세종 때에는 그것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일본에서는 그 보다 조금 뒤부터 혼천의가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몇 개의 '혼천의'가 유물로전해져 오기는 하지만, 대개 혼천의라기 보다는 '혼상'이라는 편이 정확하다.
< 혼천의 >
< 자격루 >
6) 자격루
조선조 자동시보 물시계의 원조
새 시계인 자격궁루(自聲宮扁)가 세종15년(1433년) 9월에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세종은 장영실이 만든 자격궁루가 원나라 순제의 것을 능가한다고 확신하고 장영실을 호군( 조선조 오위의 정4품 벼슬)으로 승진시키고 여러 달 시험 끝에 다음해(1434년) 7월 초하루를 기해 국가의 표준시계로 쓰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자동시보장치가 달려 있어 사람들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시각을 알려주는 정교한 시계였다.
3단의 물통으로 짜여진 자격루의 마지막 단계에서 잣대가 물을 따라 올라가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미리 장전해 둔 쇠알이 굴러 떨어지면서 종·징·북을 울려주게 장치된 자동 물시계였다.
7) 앙부일구
세종 16년(1434)에 처음으로 만들어져 종묘 앞 거리와 혜정교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공중 해시계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서 시신을그려 넣어 시간을 볼 수 있게 했었다.
반구형의 대접과 같은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마솥이 위를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해서 앙부일구 라는 이름이 붙었다.
앙부일구의 내면에는 시각선 이외에도 13줄의 위선이 그려져 있어 24절기를 나타낸다.
< 앙부일구 >
< 정남일구 >
8) 정남일구
정남일구는 세종이 1437년 4월 15일 앙부일구 등 일련의 천문기구와 합께 제작완성한 것이다.
이 해시계의 구성은 지평환, 사유환, 시각판, 가늠대, 수준기, 그리고 남 ·북 기둥과 추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평환과 가늠대의 구멍에 햇빛을 통과시켜 지남침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남의 방위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은 물론 2절기와 태양의 고도까지도 측정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높이 22.9cm, 길이 25.8cm이며 전체 재질은 구리이다. 사진의 것은 한국표준연구소가 1987년에 복원한 것이다.
9) 일성정시의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로 해서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만든 천문 관측기기이다.
세종 19년(1437)에 완성된 일련의 천문기기들 중의 하나인데, 「세종실록」의 자세한 설명은, 그것이 태양시와 항성시를 측정하는 주야 시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원을 365도1/4로 나눈 눈금을 새긴 청동고리와, 그 안에 1일을 12시 100각으로 나누어 새긴 눈금이 있는 100각 청동고리가 있고 이에 수직으로 북극을 향한 작은 고리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100각 고리는 적도에 평행하게 고정되어 있다.
그 직경은 2자(42cm 또는60cm)였다.
용과 구름 조각을 장식한 다리를 물홈을 파서 수평을 잡게 만든 받침대에 세워 측정을 정확하게 할 수 있게 했다.
일성정시의는 경복궁과 서운관에 설치되었는데, 휴대용으로도 제작되어 함경도와 평안도 감영에도 보냈다. 그것은 소정시의라 불렀다.
현재 불완전한 것이지만 성종 때(15세기 후반)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것이 2개가 남아있다
< 일성정시의 >
< 송이영의 혼천시계 >
10) 송이영의 혼천시계
16년(현종5)에서 1669년(현종 10)에 천문학 교수 송이영이 제작한 전시용 천문시계이다.
조선시대 문헌에 혼천의 라고 나타나고 때로는 선기옥형 이라고도 씌어있는 천문의기가 이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혼천시계라는 절충된 용어로 부르고있다.
시계장치가 붙어있는 것을 구별해서 확실하게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9. 국내시계업체 현황
구분 1960년대 1970년초 1980년초 1990년초 2001년 현재
업체수 22 33 83 151 414
10. 국내시계산업의 변천 현황
1)1960년대
국내시계산업의 태동기로써 수리보수 수준에서 탈피, 목공업, 부품공업이 태동되면서 기업적 성격을 띤 벽시계제조업체가 등장함.
2)1970년대
괘종시계, 탁상시계는 90% 이상을 국산화하였며 손목시계는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에서 탈피, 무브먼트 조립에 성공하고 아나로그 쿼츠시계 개발과 방수시계 개발에 성공하였다.
3)1980년대
사상 최대의 경기침체속에 전자대기업들이 시계산업에 참여하여 디지털과 아나로그식 손목시계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80년대 중반 부품 신소재개발, 기술향상, 품질고급화로 시계업계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80년대말 수입 자유화 물결을 타고 저가 저질 외제시계가 수입되면서 시장질서를 문란케 하였다.
4) 1990년대 이후
국내 최초로 95년도 티타늄 착색 및 코팅 성공하고 금속분말 사출성형 기술인 MIM공법이 개발되었으며, 일반유리대신에 고가의 사파이어글래스 가공기술이 개발되어 적용되기 시작 하였다.
11. 3년간 해외시계박람회 참가실적 현황
단위:미화천
전시회명 1998 1999 2000
참가업체수 계약액 참가업체수 계약액 참가업체수 계약액
홍콩시계박람회 23
12,970
40
16,000
45
31,950
스위스바젤박람회 15
7,750
17
7,261
18
11,423
모스크바박람회
10
1,500
뉴욕시계박람회
13
1,316
포루투갈(박)
9
1,550
멕시코(박)
10
3,200
시장개척단 파견
-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모스크바
9
6,196
12. 년도별 시계 수출현황
단위:미화천불
70년 75년 80년 85년 90년 95년 2000추정
612 26,000 73,000 78,050 154,622 208,069 163,000
13. 국내시계시장 현황
단위:억원
96년 97년 98년 99년 2000추정 2001추정 2002추정
5,400 5,100 3,800 3,500 4,000 4,800 5,500
14. 국내 시계 소재별 현황
1) 소재별 특성 및 사용 비율
소재명 재 질 특 성 사용비율(%)
BsP BRASS(황동) 구리와 아연 합금으로 절삭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소량의 납을 첨가한 합금. 표면조도가 우수하고 열간가공이 우수하여 복잡한 성형제품 생산이 용이하나, 절삭가공성이 취약한 단점이 있슴. 특히, 땀등 환경에서 내식성이 취약하여 반드시 표면을 도금처리하여야 함. 43%
SUS 스텐레스 스틸 일반 강에 내식성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크롬,니켈을 첨가한 합금. 내식성 및 표면조도가 우수하여 성형제품 생산이 용이하나 절삭가공성이 취약한 단점이 있슴. 최근에 절삭가공성이 우수한 합금 개발로 시계 및 장신구에 널리 사용됨. 35%
지르코늄 지르코나 분말
소결품(Zr) 지르코나 분말을 소결압축하여 경도가 매우 높고, 고온에서도 변화가 없는 초경량 소재. 특히, 원소재는 은배색이나 필요시 채색을 다양히 구현할수 있고 표면 경도가 우수하여 스크러치 발생이 적음. 단일 소재보다는 케이스 베젤이나 밴드의 부분품으로 타 소재와 함께 많이 사용됨. 15%
텅스텐 합금 텅스텐과
탄소의 합금 텅스텐과 탄소의 소결 탄화합금으로 경도가 극히 높고, 초고온에서도 변화가 없는 초경질 소재. 색상은 강회색으로 전기적 방법에 의하여 표면 도금 처리가 가능한 반면 무거운 단점이 있어, 시계의 외장재료외 부품에 부분적 적용이 적절함. 5%
티타늄 탄소기호 Ti 스텐레스 스틸과 비슷한 은백색의 금속으로 가볍고 용융점이 높고, 조밀입방격자 구조인 특성에 비하여 가공성이 양호하여 시계부품에 많이 사용되나 절삭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슴. 특히, 타 금속에서 나타나는 금속성 알레르기 현상이적어 항 알레르기 제품으로 널리 사용됨. 2%
옥 NEPHRTE(연옥)
JADETE(경옥) 광물로써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 인체에 필요한 3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신체내의 신경계를 자극하여 산소의 활성화 작용을 돕는 등 인체에 유익한 광물임. 장신구용 귀금속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최근 성분및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건강상품으 주요 소재로 사용됨. 1%미만
에폭시 EPOXY 수지 수지의 일종으로 재질에 비하여 성형이 용이하고 강도가 우수함. 표면 광택이 우수하고 색상을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슴. 1%미만
2) 소재별 사용 현황
단위:톤
구 분 1980 1990 2000 2005
Ceramics 11 144 720 1008
Tungsten 42 289 440 572
Titanium 21 33 140 168
Brass 418 521 501 474
Stainless steel 762 838 991 1189
15. 시계제작 공정도
16.국내시계산업의 향후 방향
최근 제품 시장에서 여러 가지 기능과 품목을 하나로 묶어 놓은 이른바 '퓨전 상품' 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기능2~3개의 복합은 물론 이고 최고 다섯 가지의 기능을 한대 모아 놓았다는 게 퓨전제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앞으로 시계의 경우는 계산기능,항법장치(GPS), MP3,카메라는 물론 핸드폰 기능에 화상 통화 기능과 더 나아가서는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휴대용 팜PC 기능도 탑제가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또한, 시계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기술개발 못지않게 브랜드가치의 중요성이 점차적으로 확산되어 장기적인 마켓팅전략을 수립하여 브랜드육성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국내시계업계는 산학협동 및 시계전공학과의 개설로 디자인, 마켓팅,경영,기술 등 시계전반에 걸친 인재를 양성하고 시계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아시아의 시계밸리로 육성하여 동남아시아의 시계산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계획이며, 시계산업단지 조성과 맞추어 업계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통하여 국내시계업계는 중.고가 이상의 제품만을 생산하는 구조로 변화하여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제고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