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 일두 정여창 묘역, 서원, 고택을 다녀왔습니다.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길일을 택하여 영남대 전통풍수지리학회에서는 경남 함양 일두 정여창 묘역등을
답산하였습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맑고 청명하여 가을 날씨답게 모두가 생기 넘치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09시에 반월당에서 5명이 탑승하고 09시반에 대곡에서 5명이 탑승하여 운전기사를 포함 11명이 참석하여
목적지인 함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차창넘으로 가로수들이 곱게 오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반기는데 들판에는 어느듯 가을 거지가 끝나고 검은 흙이
드러나 있고 간혹 무, 배추가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하늘은 구름하나 없는 파아란 종이 같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간식을 배부하고 회비를 거출했습니다.
당일 회비는 각자 일만원으로 9만원과 조명희 부군이 회비 3만원 입금, 외에 찬조로 운전기사(김홍록) 5만원,
주우복회원 5만원, 조명희 회원 1만원, 석계춘회원 일십만원(딸님이 경위 승진 시험에 합격, 승진 기념으로찬조했습니다.)
회장(이상길) 2십만원 을 각각 찬조하여 당일 입금 총액은 53만원이고 당일 지출은 차비 3십만원, 오찬 18만 2천원으로
잔고가 4만 8천원 입금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휴게소에서 10분 휴식하고 다시 목적지로 달렸습니다.
오전 10시 반에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산 10-9, 일두 정여창 묘역 인근 승안사지 3층 석탑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국도에서 묘역으로 들어오는 길이 좁아 운전기사분이 어려움이 있어도 잘 극복하고 도착했습니다
정여창 묘는 산 10-8로 승안사지에서 50~60미터거리라고만 되어잇고 안내판이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승안산은 산등성이 세갈레로 내려오는데 모두가 같은 거리에 묘역이 있어 혼선이 있어 중간 으로 내려오는 능선방향
그리고 좌측으로 내려오는 능선방향에도 확인하고, 마지막에 우측 능선(승안 사지 오른쪽)으로 올라가 일두 정여창 묘를
찾아 답산에 임했습니다.
묘지 주변 일대를 보수중에 있어 오르는 계단부터 어려움이 있어도 조심조심 올라 답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두 정여창 묘와 그 위에 부인 묘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완산 이씨 묘 등을 답산했습니다.
일두 묘는 간좌로 사각무덤으로 망두와 비석이 서 있고 도래솔이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혈장오악(혈장 사신사, 혈장 오성)의 미비된 곳을 찾아 보았다.
사각 무덤은 고려시대 장례문화로 조선시대에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상은 유혈이며 물형론으로 형국은 사두출립형이고 두마리의 뱀이 앞뒤차례로 내려오고 있는 길지이지만 뱀등처럼 볼이 좁고
전순이 약하고 안산이라기 보다 조산인 문필봉을 바라보고 있엇다.
용은 분명하나 여러가지 이유로(도래솔이 혈장에서 20미터 안에 있다던지, 전순이 약하던지 안산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봉에 잔디가 자라지 못하는데 이는 팔요풍이나 소골풍 으로 잔디가 죽는 것과는 달르고 명당은 땅속(맥근 층) 혈이 말해주는 것이다. 부인(정경부인)묘 역시 같은 간좌이다.
간좌는 변화와 개혁, 부활과 재기를 뜻하고 재물이 불어나는 방위이다.
아래 앞 사두출입형 길지자리에는 묘 바로뒤에 아름들이 소나무 두그루(혈자리임)가 웅장하고 근엄하게 서있고 5m 아래쯤에 '淑人
完山李氏之墓'는 사각무덤에 둘레석위(이마)에 무궁화를 각자한 표지석을 놓아두었다.
일반 묘에는 묘 앞아래에 두는 것이 보통인데 위(이마)에 놓는 것은 처음으로 봤는데 연구 과제이다.
사두자리는 소나무가 있는 자리인데 이마쪽으로 내려가 앉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후손들을 확인해 보는 지혜도 필요하겠다.
승안사지 3층 석탑은 고려시대 건축 양식이며 보물 294호로 지정되어 있었고 절터는 넓고 커서 당시의 번성기를 짐작케
한다. 옆(서쪽방향)에는 하동정씨 재실인 여재각(如在閣)이 고즈넉 하게 앉아 있었다.
묘역 일대 답산을 마치고 바로 남계서원으로 갔다.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의 위폐를 봉안한 곳이며 우리나라 백운동서원 다음 두번째로 세운 서원으로 유명하다.
일두 정여창은 동방5현의 한사람이다.(동방 5현 은 조광조,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양택은 팔괘 방위이므로 인(寅)좌는 '축간인' 으로 북 동쪽이다. 이 역시 재물방위였다.
전학 후묘이며 길지로 강학 공간이 잘 꾸며져 있었다.
짧은 시간에 답산을 마치고 바로 일두 종택이 있는 지곡면 개평마을로 갔다.
개평이란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지점을 뜻하는 끼일 개(介)자로 개평이다.
정여창 종택에 는 바깥마당이 특색이 있었다.
집구조는 '임자계' 로 입구자 형이고 남자출입문과 여자 출입문이 구별되어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소나무는 예술적이다.
솟을 대문을 지나 행랑채, 사랑채, 안사랑채, 중 문간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의 여러채의 건물들이서 있어
세심히 한바퀴를 돌고 나니 어리둥절하다.
길지에 짜임세있게 잘 배열되어 당시의 생활 풍습연구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답산을 모두 마치고 읍내 솔송식당으로 가서 갈비탕으로 주우복 회원이 찬조한 솔송주(법주)2병으로 밥반주로 점심을
해결했다. 솔송주가 부족하여 함양 막걸리를 주문해 먹어보니 일미였다. 식사 후 답산 결과를 보고 하고 오후 3시 20분에
대구로 출발 아침에 출발당시의 역순으로 댁곡, 반월당에 하차하여 오후 5시 반경에 해산했다.
오늘 안전하게 운전하고 찬조까지 해준 김 홍록기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다시한번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