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京明城墻
중국 ‘ 난징(南京) 명성곽(明城郭)’의 보존정책과 역사문화환경 조성
류호철
안양대학교 교수
투고일자 : 2013. 01. 02 |
심사일자 : 2013. 02. 04 |
게재확정일자 : 2013. 03. 04
국/문/초/록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계획하여 벽돌로 축조한 도성(都城)인 난징(南京) 명성곽(明城郭)은 전체 길이가 35.267km에 이르며, 6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2/3가 남아 있다. 1988년 난징 명성곽이 국가문화재(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된 이후 난징시는 본격적으로 성곽 보존계획을 수립·실행함으로써 역사도시로서의 가치를 회복해가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역사도시이면서 성곽도시인 난징이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성곽의 보호를 위한 원칙과 법적 기반을 마련해 온 과정에 주목하였다. 수립된 계획이 실행단계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문제점을 다양한 논의를 통해 극복하는 과정은 우리나라 성곽 보존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시사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논의 결과, 난징시는 도시경관과 생태환경을 연계하여 성곽유산이 역사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중장기 계획과 구역별 보호를 위한 단기적 세부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었다. 또한 유적 자체의 개별적 보호를 넘어 역사문화환경을 고려한, 점·선·면이 결합된 입체적인 보호체계로 문화유산의 보호와 개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난징은 역사문화환경 조성이라는 성과를 도출하였고, 역사도시이자 성곽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론
우리나라는 역사도시를 보존하기 위해《고도(古都)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2004년에 제정하여 2005 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률 제정은 1960년대 이 래의 문화유산 보호가 문화재 중심의 점적 형태였던 것 에서 1980년대 지역 중심의 면적(面的) 형태를 거쳐 입체적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과거 문화재 원형보존 위주의 정책기조는 오늘날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보존정책으로서 역사문화도시의 경관보존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중국 난징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도시의 문화 자원을 보존함과 함께 현대적 개발과의 조화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난징은 명대(明代)의 도시 풍경을 유지하여 고도(古都)로서 역사문화적 가치 를회복한것으로평가받고있다.그중심에는명나라주원장이 21년에 걸쳐 축조한‘난징 명성곽(南京明城墻)’ 이있다.
난징의 명성곽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변 화함에 따라 도시 방어와 영역 구분 기능을 상실하였고, 도시공간의재개발등여러가지요인에의해수차례철 거되고 훼손되었다. 그러나 1980년부터 난징시에서는 도시 중심부에서 과거의 역사적 경관을 형성하는 문화 자원으로서‘난징 명성곽’의 보존에 주목하게 된다. 또 한 명성곽의 보존기반이 점차 확립되어 가는 2001년부 터 난징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명성곽을 위시한 난징의 역사문화환경 조성은 그 자체가 도시개발의 장애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여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이연구가 난징시에서 명성곽의 보호를 위한 원칙과 법적 기반을 마련하여 역사문화환경을 조성해가는 과정에 주목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연구는 역사도시이면서 성곽도시인 난징이 역사 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핵심요소로 성곽의 보호를 위한원칙과법적기반을마련하는과정,그리고 그 실효성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191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난징시가 수립한 시기별 성곽 보호 계획의 수립 배경과 법률(제도)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또한 성곽 보존정책의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보존과 철 거에 관한 논쟁의 결과로 도출된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위한 난징시의 대안에 대해서도 두루 살펴보았다. 이는 수립된 계획이 실행단계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문제점 을 다양한 논의를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들여다봄으로 써 우리나라 성곽 보존정책의 시행에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이다.
난징시에서 추진한 성곽유산과 역사도시환경 조성에 관한이연구는서울을비롯해성곽을보유한우리나라여 러 지역에서 행해지는 성곽 보존계획 수립에 시사점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이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의 보존과 도시 개발의조화를위한고도보존정책등문화재행정에도실질적인 정보와 유용한 관점을 제공해 줄수 있을 것이다.
성곽 보존·철거 논쟁과 문화재 지정
1 . 도시건설과 난징 명성곽의 보존·철거 논쟁
난징 명성곽은 1366년에 대규모 건설이 시작되었고, 1386년까지 21년간에 걸쳐 완성된 도성(都城)이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난징을 도읍으로 삼고 기존 도시에 도성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성곽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시기의 난징 도성에는 13개의 성문과 2개의 수문 이 있었고, 외곽(外廓), 경성(京城), 황성(皇城), 궁성(宮城) 등 4개의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600여 년이 흐르는 사이 전쟁에 의한 파괴와 자연적인 풍화, 사람에 의한 훼손, 환경오염 등으로 성곽은 축조 당시 33. 676km 중에서 현재 경성 21.74km 만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 난징명성곽 ’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경성이다 .
신해혁명 이후 난징이 중화민국의 수도가 되면서 도시건설은 명나라 도성의 윤곽에 의거하여 이루어졌다. 장쑤성(江蘇省)과 저장성(浙江省)연합군이 1911년 12월 2일 난징을 수복했을때,난징성곽은 명나라때 축조된 4중 성곽중에서 3개는 이미 파괴되고 경성성곽만이 비교적 원상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도시건설과 관련하여 난징에서는 명성곽의 처리를 놓고 시기별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난징시는 명성곽이 봉건사회의 유물이라는 시각에서 청나라 초기에 궁성과 황성을 재건축한 ‘만성(到城)’을 철거하여 여기서 나온 벽돌을 판매하였다.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거세게 일자 이를 의식하여‘난징순안사 (南京巡按使)’에서는 ‘성곽을 허물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고적을 보존한다’는 명령을 발표하여 이중적측면을 보이기도 했다.이처럼 중화민국초기난징명성곽은 봉건사회 낙후물의 상징으로 철거가 허가되는 한편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일각에서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강조하며 난징시 당국에 성을보호할것을 요구하는 등 상반된 주장이 공존했다.
한편 1920년대 성곽 철거와 보존에 관한 논쟁은 1910 년대와는 다른 관점에서 지속된다. 1927년 국민정부가 난징을재차수도로정한후난징명성곽은근대도시건설에따라충격을받게된다. 개발로인해 벽돌의 수요가 증가하자 여러 기관에서는 전쟁으로 파손이 심각한 일부옹성의 벽돌을 난징동부일대의도로보수에사용할 것을 국민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1928년 11월 15일 국민정부가 제6차 국무회의 결과를 근거로 난징 정부에 ‘신책문(神策門)에서 태평문(太平門)의 성곽을 철거’하도록 명하자 난징의 각 정부기관은 저마다 철거된 벽돌을 요구하였다. 국민정부가 난징을 수도로 정한 후, 난징 성내의 건축물만으로는 정부기관 입주에 한계가 있었 다. 이에 벽돌 수급 방법으로써 봉건제도의 산물이라 여긴 난징 명성곽의 벽돌을 취하려 했던 것이다.
난징 정부가 성곽을 허물어 벽돌을 채취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반대 여론이 분분했다. 요지는‘미술상, 역사상 관광명승으로 난징 성곽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징 성곽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처음으로 주장한 이와 같은 입장은 사회적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당시 난징고물관리위원회(南京古物管理委員會) 서비홍(徐悲鴻) 위원 등은‘태평문에서부터 신책문과 풍윤문 일대는 세계에서도 희귀한 아름다운 풍경이기 때문에 명승을 남겨둘 것을 희망한다’는 전보문을 북경정치분회에 보내기도 했다(楊國慶, 2002a, 앞의 글, p.19).
국민정부에서는‘국도설계평가회(國都設計評價會)’의 토론 결과에 의거하여 성곽 철거 중지 명령을 내렸다.
1929년 말 국민정부는 국도설계기술전문사무처 묵비(墨菲)가 주도하여 설계한《수도계획(首都計劃)》을 발표한다. 중 국 역 사 상 최 초 의 도 시 계 획 인 《 수 도 계 획 》은 성곽이 군사적 방위의 목적을 상실하자 이를 차량이 통과하는 도로로 구상하고, 도시를 싸고 있는 난징명성곽위에 2차로 환성도로를 만들어 관광노선으로 개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성곽 위에 환성도로가 갖춰지면 장래에 주민들이 차량으로 성곽 위에서 난징 명성곽 전체 풍경과 인 근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쯔진산(紫金山)과 양쯔강(揚子江) 산수도 감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계획은 다행히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난징 명성곽의 역사 문화적가치를인식하지못한또다른형태의성곽파괴 를 담고 있는《수도계획》은 난징 성곽의 활용적 측면에 대한 초기 발상으로서 나름대로의 의의를 지닌다.
이시기에이루어진난징명성곽철거와보존논쟁, 그리고 수도계획은 결과적으로‘난징 성곽은 역사고적으로서, 풍경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국민당 난징시 집행위원회에서는 그간 시민들이 허물어진 성벽돌을 무작위로 채취해가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리고 1933년 난징 정부는 몇몇 구간의 성곽 보수를 진행하였다.
한편 중일전쟁으로 난징 명성곽의 군사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성곽을 보수해야 한다는 주장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대립하였다. 1934년 난징 경비사령관에 의해〈난징 성곽 방위 건의안〉이 제출되었는데, 수도 난징의 안전을 위해 성곽을 보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 시국이 반영되어 각계의 인정을 받았다.
첫댓글 성벽 걷기 https://m.blog.naver.com/love26s/220228876856
1908년 금릉 https://www.yeeyi.com/news/details/947530/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pfvnMn8s2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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