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물 김도현입니다.
지난해 말일 부로 서른두 해 반의 정든 직장을 뒤로하고 완전 퇴직을 하여 백수가 되었습니다.
누구는 화백(화려한 백수)이라고도 하더군요.
어쨌든 백수가 된 체 5년 동안이나 누워있는 병든 아내를 데리고 새 출발에 앞서 많은 부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도움으로 부담도 덜었고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사회복지업도 성공적인 출발을 했습니다.
경북 의성 안평 하령 땅에 폐교를 지원받아 문화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동네어르신들을 위해 목욕탕과 이발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의성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탕비실을 갖추어 식자재만 가져오면 누구나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바닥에 전기필름을 깔고 4계절 이용 가능한 잠자는 방과 대 연회장 시설을 갖추어 편히 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부대시설로 노래방이 있고 탁구장과 당구장이 있습니다.
운동장에 족구장을 마련하였고 원두막이 두 채 있습니다.
연꽃이 피고 분수가 올라오는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동물농장이 있어 직접 먹이를 주고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저의 하령문화학교의 모든 시설 사용은 무료입니다.
단 1박 시는 1시간, 2박 시는 두 시간을 저에게 할애해주셔야 합니다.
작업이나 시설에 대한 노력봉사가 아니라 저의 강의(인성교육)를 들으면 됩니다.
학교 한쪽에 아내와 평생 살 수 있는 2층 집을 지었습니다.
내 집이 아니고 우리 집이라 명하여 60평짜리 한옥을 지어 모든 방은 황토로 꾸미고 환자를 옮겼습니다.
이러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다섯 달을 거의 외부와 담을 쌓고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봄은 유별나게 눈도 많았고 비도 많았습니다.
그 눈과 빗길을 뚫고 대구에서 의성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150리 길을 오가며 학교를 뜯어고치고 집을 지었습니다.
우편함에는 각 문학단체의 원고청탁의 요청서신이 쌓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물리치고 묵묵히 문화학교 개관과 귀촌보금자리 신축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7월 24일 드디어 문화학교 개관과 아울러 새 보금자리 입주식을 겸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어 격려도 해주시고 축하도 해주셨습니다.
정말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생면부지 낯선 땅에서 이제 제2의 인생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팔도문인 여러분들께는 초청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비에도 초청장을 넣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그 동안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팔도문인회원 여러분!
저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한비작가협회도 아니고 팔도문학도 아닌 팔도문인의 회원으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의 소견이 다 옳다는 뜻은 아니나 저의 행보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회원님들이 많아 감히 이제 그 전면에 나섰습니다.
저는 우리 모임의 목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고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지난해 8월 22일, 저는 동대구역 회의실에서 있었던 한비문학회 상견례에 참석을 했다가 곧바로 춘천으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그간 정을 쌓아온 문우들이 모인다기에 집에는 병들어 손끝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춘천으로 달렸습니다.
늦은 밤까지 서로 얼싸안고, 어깨동무 하고, 술잔을 채우며 정을 나누었습니다.
한사모였습니다.
한비작가협회를 못 잊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즉 가칭 ‘한사모’라는 이름으로 만났습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한비문학이 아니라 한비작가협회와 관련된 사람의 모임이므로 문학보다는 문인들의 만남이었고 또 전신을 그리워하는 문인들의 재결속이었습니다.
그때 어땠습니까?
마땅히 책임져야할 김용길 한비작가협회 회장은 여전히 소식을 끊고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끼리 만나 어우러져 하루를 보냈고 이전 한비작가협회의 만남을 소중히 하고자 다짐을 하였습니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애경조사 등에 적극참여 등으로 우애를 돈독히 하자고 손가락 걸었습니다.
회원들의 문학단체 가입과 활동은 일체 함구하고 우리의 정만을 으뜸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회원 충원도 종용하지 말고 찾아오면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회원이 자신의 문학활동에 눈치를 보는 일이 생겼으며, 좌초된 배를 버리고 도망갔던 선장이 은근슬쩍 기어올랐습니다.
모지의 활동을 폄하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이 내포된 글이 슬쩍 올랐습니다.
일괄메일을 보내어 회원을 구걸(?)하는 일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또 근거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의 한비활동에 대해서도 달갑지 않은 눈초리란 말도 있었습니다.
이번 동인지 출판 건도 그렇습니다.
문인들이 만나서 하는 동인지 출판이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반문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여겼습니다.
저는 한비작가협회이기 때문에 팔도문학회에 비중을 둔 것이 아니라 팔도문인회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작가협회가 바로 문인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을 통해서 친목을 도모하며 경조사나 작품활동을 통해서 우애를 돈독히 하자는 쪽이었습니다.
모름지기 문학회란 이름을 가지면 거기에 걸 맞는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동인지 한 권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란 생각입니다.
또 한 권의 책이 엮어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회원 중에 전문지식을 가진 자가 있겠지만 그 짐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과연 우리 회원님들의 실력이 출중하여 교정 없이 초고를 그대로 실어도 되며, 편집도 쉽게 해내런지요
몇 사람의 충동적인 뜻에 따라서 나머지 회원들이 글을 싣고 돈을 낸다면 나아지는 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글 실을 곳이 없어서 동인지 하나 엮었다는 말밖에 뭐가 돌아오겠습니까?
또 글이 너무 남발되면 작가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경우 이제 월간문학 및 에세이문학 등 우리나라 굴지의 문학지로부터 원고료를 줄 테니 글을 보내달라는 청탁을 받고 있습니다.
프로필에 팔도문학 소속이라 적었으면 과연 그게 되었을까요.
팔도문학이 문학단체로 등록이 되어있는지요.
쉽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좀더 숙고하면 쉽게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라 여깁니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저는 책상위에 “自勝他勝”이란 글귀를 써놓고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나를 이겨야 남을 이긴다’는 뜻이지요.
우리카페의 소개란을 잘 읽어보시면 나를 이기지 못하고 남을 이기려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회원 어느 누구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문인 모두를 좋아합니다.
문인들의 모임이 있어서 같이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못다 나눈 정을 나누고 우애를 돈독히 하는 그런 문인들의 모임이면 어디든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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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4일 문화학교개관 및 저의 귀촌보금자리 입주행사 후기입니다.
드디어 문화학교 개관과 아울러 집들이까지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24일)부터 어제 일요일까지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연 이틀 전국 각지에서 300명이 넘는 지인들이 와 주셔서 성대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모두 보낸 지금은 또 공허감이 엄습합니다.
그러나 이기리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몇 장의 행사장면을 골랐습니다.
저의 문화학교는 의성을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365일 무료 사용 공간입니다.
저의 집은『 내 집이 아닌 우리 집』입니다.
60평 집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지었습니다. 오시면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수은주가 연일 30도를 넘어가는 폭염 속에서 먼 길 마다않고 찾아주신 축하사절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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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시작 전 문화학교와 저의 귀촌 새 보금자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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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행사 안내 현수막(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 수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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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보금자리를 배경로 찍은 그림입니다. 뒷줄 왼쪽부터 조경숙 수필문예대 총무, 이정연 에세이대구 총무, 권영호 의성문협회장 겸 에세이대구 회원, 이용숙 수필문예회 총무, 박현기 막역지우 겸 10기 회장, 신미경 백조 겸 댓글의 달인, 박헬레나 1기 대 선배 겸 에세이대구 회장, 윤정혁 1기 대 선배 겸 에세이 대구 회원, 김정호 수필문예회 회장님께서 축하사절로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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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을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365일 무료쉼터 입니다.
모든 시설사용비는 일체 받지 않고 저가 직접 지원합니다. 아무 부담없이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령문화학교 개관 및 입택을 시작하는 테이프 절단입니다.
왼쪽부터 마을 이장, 의성군수를 대신해 오신 농업기술센테 과장, 마을 노인회장, 의성군의회 김재화 한나라당 의원, 저 김도현, 땅과 학교건물을 기증한 오세화 님, 오늘의 자리를 알선해 준 『의성을 찾는 사람들』카페지기 김원영 수필가, 의성군의회 정숙희 민주당 의원, 의성군의회 임미애 한나라당 의원이자리를 함께하여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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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절단 후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은 '돌아오는 농촌을 실현하는 다음카페『의성을 찾는 사람들』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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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과보고와 아울러 귀촌 및 귀농교육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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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도 흘리지 않고 열심히 듣고 있는 축하사절단의 모습니다.
문화학교를 만들고 집을 지으려고 4개월 동안 고생한 이야기와 5년 간 아내를 간병한 이야기, 의성으로 귀촌을 결심한 동기 등의 애틋한 사연에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셨고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795F034C64E5FA5B)
식사 및 술도 한 잔
2010년 8월 13일 푸른물 김도현 배상
첫댓글 축하 드림니다.
감사합니다.
김도현 작가님 반갑습니다. 작가님의 문화학교 완성과 보금자리 입주를 아울러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팔도 문학회 동인지 건에 대한 말씀은 요지가 무엇입니까?
그렇지요. 저도 반갑습니다. 나머지는 잡소리입니다. 마음에는 두지 마십시오.
하령 문화학교 설립을 축하드립니다
언제나 듬직한 회장님, 감사합니다.
아..멋지시고 인간승리십니다. 조만간 찿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화이팅입니다..지화자!~
온다간다 말 없이 달구벌을 훌쩍 떠나와서 지송허유~
김도현 작가님 문화학교 설립을 축하드립니다...많이요...ㅎㅎ 워낙 멀어서 가기는 힘들고 마음으로나마 문화학교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혹여 지나가는 길 있으면 들리시지요.
투병중인 가족의 간병기 <나도 이제 휠체어를 밀고 싶다>를 몇해 전 접하고, 가족의 아픔을 겪는 이들의 등불이자 희망이라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제 주변에도 중증 장애우가 많거든요. 퇴직 후 이렇게 훌륭한 보금자리를 마련, 제2의 간병을 하고 있는 모습에 또 한번 감명입니다. 거기다가 문화학교를 개설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까지 해내는 원대한 꿈에 박수를 보냅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사모님의 병환이 어느 날 기적처럼 낫기를 기도합니다. 일부 의견은 '보는 각도가 다른 시각차'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하시는 일에 큰 보람과 성과가 있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올 가을 이곳에서 우리 모두 뵙게되길 희망합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입주를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렵고 힘든 모든 일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시설이 완공되었으며 열정이 가득하니 일사천리가 아닌가 합니다. 문학의 깊이를 잘 알지 못하는 초보문인으로서, 도현님의 의견을 조심스레 접수합니다. 동인지 발간과 때를 맞춰서 얼굴들을 한번 뵙고, 정을 나눴으면 바람이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배울 것이 많은 분으로 존경합니다. 고생하신 보람있으신 것 같으니 느끼는 점도 많습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