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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100% 사용법
이 홍사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거늘,
아우~ 상투적이고 식상하고,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 인용하니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이런 문장을 서두에 내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보다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해 인용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
그렇다. 자기를 스스로 알고 사용해야 이긴다. 자기 인생에 관하여 자기를 100% 사용하는 법. 나는 여기서 분명 ‘관하여’ 라고 표현하였다. 결코 ‘인생에 대하여’ 가 아니다. 분명 ‘관해서’다. 지금 자기 사용 설명서이거나 100% 자기를 사용하는 요령에 관해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피력하고자 한다. 제목을 자기 사용 설명서라고 명명하고 싶지만 얼마 전에 나온 책, 인천공항 출국장 서점에서 제목과 내용을 심심풀이로 뒤적여 본 ‘철수 사용 설명서’라는 책이 있어서 표절의 논란을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정하고 문장을 만들어 본다.
잠깐!
지금 미얀마는 우기라서 창밖에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한차례 스콜이 지나가는 모양. 열어둔 창으로 빗물이 튕겨 들어와서 창을 닫고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지만 내 문장에도, 글을 구상하는 상상력에도 빗물이 튀길 정도다. 뱅골만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좋아서 이곳에 숙소를 정했지만 뱅골만의 선선한 바람도 폭우로 인하여 잠시 주춤하고 있다.
있다. 라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번개가 어두운 하늘을 두 쪽으로 사정없이 갈라놓는다. 그리고 뒤따라 온 천둥소리가 얄팍하게 지은 열대지방의 건물 벽체가 부르르 흔들릴 정도로 지축을 흔들어 놓는다.
-아우 씨~ 죄 지은 놈은 여기 못 오겠네.
너무 놀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비명처럼 흘러나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이 정도의 번개와 천둥은 평생 처음 접한다.
날씨야 어떻든 나는 글을 써야 한다. 어디까지 말하다가 말았더라.........
그렇지. 자기를 자기 인생에 100% 사용하는 요령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말았지. 하긴 이런 제목으로 서두를 꺼내는 나도 사실은 나를 내 인생에 100% 반영시켜 활용하지 못한다. 22세기 밑자리를 깔고 있는 이 시대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재력이나 권력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존재다. 그렇다고 타의 존경을 받는 덕망이 있느냐? 그 질문에도 역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제 주제가 이 지경인데 무슨 자기 사용법을 피력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궁하다. 서두에 인용한, 너무 흔해서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고사성어를 살짝 꼬아보자.
자포자기(自暴自棄)면
백전백패(百戰百敗)라는 말에 대입해 궁한 입을 열자.
그렇다. 나도 한 때는 막강한 재력을 지닐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사람 모두가 나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고 콧방귀로 대답할 게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그런 기회가 세 번 정도 주어진다고 했으니까. 그런 기회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게다.
재력가가 될 수 있었던 내 첫 번째 기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기회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찾아왔다. 그 시절과 미나리꽝을 떠올리니 젠장, 또 어디선가 풍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싱싱한 미나리를 반찬으로 즐겨 자시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저학년들은 오전 수업뿐이지만 4학년이 되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도시락을 싸 가야한다. 오후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4학년 때의 담임, 그 총각선생님은 미나리를 즐겨 잡수시고 풍금을 잘 다루었다. 지금도 어디에서든 미나리꽝을 보면 그 선생님을 떠올리고 풍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느 날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 길이었다. 혼자서 동네 입구에 널리 펼쳐진 미나리꽝 사이로 난 자갈길을 걷고 있었다. 지겹기 그지없는 비포장 길에 흩어진 돌멩이를 공삼아 하나씩 차면 그 때마다 책가방에 든 빈 도시락이 반찬통과 부딪쳐 덜거덕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재미있어 돌멩이를 하나씩 차며 집으로 가는데 비닐봉지 하나가 내가 찬 돌멩이에 맞았다. 그 뿌연 비닐봉지를 또 공삼아 툭툭 차며 걷다보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비닐봉지가 이상한 게 아니라 안에 든 내용물이 이상했다. 이게 뭐지? 걸음을 멈추고 운동화발로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비닐봉지를 밟고 찢어지라고 흙바닥에 비벼보았다. 두 겹으로 싼 비닐봉지는 그렇게 내용물을 확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고사리 손으로 그 비닐의 매듭을 풀었다. 하나를 푸니 안에 또 비닐봉지 매듭이 있었다. 그것마저도 풀고 들여다보니 금빛이 나는 묵직한 목걸이가 세 개, 금비녀와 팔찌가 두 대씩 들어있었고 굵직한 가락지는 일곱 개나 되었다. 그게 금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엄청 귀한 거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쭈뼛쭈뼛 서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책가방을 벗어 빈 도시락을 꺼내 반찬통을 빼고 그 도시락에 비닐봉지를 통째로 넣었다. 도시락이 가득 차 뚜껑 닫기가 거북할 정도의 부피였다. 그리곤 가방을 메고 미나리꽝 사이로 난 길을 달려 집으로 갔다.
-엄마! 이게 금인지 아니지 좀 봐봐!
숨을 헐떡거리며 건넌방 재봉틀 앞에 돋보기를 끼고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어머니는 웬 호들갑이냐는 듯이 돋보기를 콧등에 걸치고 마루로 나오셨다.
-이게 금이야? 금 맞아?
가방을 열고 도시락을 꺼내고 그 안에 든 내용물을 주섬주섬 마룻바닥에 꺼내 놓았다.
가락지 하나를 쥐고 돋보기를 통해 찬찬히 살피던 엄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변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금이 확실하다는 걸 단박에 감 잡았다.
-금........ 금이 맞지?
-너 이거 어디서 났냐?
-주웠어. 미나리꽝 옆길에서........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팔찌를 쥐고 있는 어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빈 도시락이 금괴라도 되는 양 그 물건들을 다시 도시락에 담아서 방으로 들어가 재봉틀 앞에 앉았다. 앉은뱅이 재봉틀 앞에서 도시락은 어머니 무릎 밑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손도 댈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엄마! 금 맞지?
-금 아니니까,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엄마의 강한 부정이 긍정이라는 걸 알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엄마를 졸랐다. 그 금을 팔아서 미나리꽝을 사자고. 그 나이에 무슨 부동산에 대한 안목이 있었겠는가. 부동산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졸랐던 게 아니다. 단지 도시락 반찬으로 싱싱한 미나리를 싸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 같은 반 친구 중에서 집에 미나리꽝이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놈 반찬은 커다란 찬합에 싱싱한 미나리를 한가득 싸서 가지고 오는 게다. 점심시간이면 담임선생님이 꼭 그 아이의 책상으로 와서 마주앉아 미나리를 날된장에 찍어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부럽고 좋아보였다. 그 아이는 미나리로 인해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도 미나리꽝을 사면 큰 찬합에 싱싱한 미나리를 싸서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이 나와 함께 미나리를 된장에 찍어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미나리꽝을 사자고 어머니를 졸랐다.
-이 놈아 그걸로 미나리꽝을 사면 두 단지도 넘게 사겠다. 미나리꽝을 그렇게 사서 무얼 하려고?
결과부터 말하면 엄마는 미나리꽝을 사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졸랐는데도 불구하고. 미나리꽝을 고집하는 내 뜻을 알고 겨우 미나리 몇 단을 사서 도시락 반찬으로 서너 번 싸준 게 전부다. 그 금을 언제 팔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금을 판 돈 일부를 엉뚱하게도 고등학교에 다니던 작은 형이 챙겨서 석 달 가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금을 주운 내가 오히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각설하고,
그 때 그 금을 팔아 미나리꽝을 샀으면 동네 입구의 미나리꽝 두 단지는 살 수 있었을 게다. 도시가 팽창되고 그 미나리꽝이 도시구획의 노른자위인 상업지역으로 들어갔다. 지금 그 땅을 사려면 금 열가마니가 있어도 살 수 없을 지경이다. 그 시절을 회상하니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서 풍금을 치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고 풍금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며 미나리꽝이 눈앞에 펼쳐진다.
-엄마 그 때 내 말을 듣고 미나리꽝을 샀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지!
명절이나 가끔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어 어머니를 뵈면 그렇게 농을 한다.
-그래 네 이름으로 그걸 샀으면 백만장자지. 허나 네 팔자가 그걸 용납하지 않으니 어쩌겠냐? 팔자대로 살아야지.
어머니도 대답이 궁해 아쉽다는 듯이 팔자타령으로 치부하신다.
재력가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는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 풍금소리처럼 흘러갔다.
미나리꽝을 사지도 않을 금을 괜히 주워가지고........
기억에 오롯이 잡히는 아쉬움을 이렇게 혼잣말로 되새기며 마음을 달래는 수밖엔 없다. 그 돈을 들고 가출한 작은 형은 학교에서 잘렸다. 정학이 아니라 퇴학을 당한 것이다. 그 땐 내가 괜히 금을 주워가지고 형이 학교에서 잘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퇴학을 당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던 작은 형은 엄마의 설득으로 금으로 만든 돈을 쥐고 서울의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다. 철이 들었는지,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지 검정고시를 가뿐하게 통과하고 서울 유명대학을 나와 지금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금을 주워서 곧 교장이 될 형의 팔자는 바뀌었지만 그 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전혀 없다. 양은으로 된 커다란 찬합을 사고 싱싱한 미나리를 반찬으로 몇 번 싸 간 게 전부다. 다 지나간 일인데 미나리꽝을 생각하니 또 귀에서 풍금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아쉬워하거나 욕심을 내는 일은 금물이다. 그건 마지막으로 지닌 인생 최고의 재물이라 할 수 있는 건강을 해치는 일이다.
건강을 해치면 모든 걸 다 잃는다.
이 역시 진부한 말이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이 말을 요즘은 부쩍 실감하고 나이에 걸맞게 나온 아랫배를 집어넣기 위해 짬만 나면 앞산을 오르내린다. 사무실에 앉았다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앞산을 오른다. 한 손엔 정수기에서 받은 물병과 한 손엔 스마트폰을 쥐고 빠른 걸음으로 앞산 정자까지 갔다가 오면 대충 사십 분 정도 걸린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사무실에 붙은 간이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갈아입고 그 트레이닝복을 화장실 옷걸이에 말린다. 하루에 두 차례 오를 때도 있고 세 차례 오를 때도 있다. 드레이닝복은 퇴근할 때 골프웨어 가방에 넣어서 집에 가서 세탁기에 집어넣고 다음날 다른 트레이닝복을 챙겨서 출근한다. 그건 한국에 있을 때의 운동법이고 이곳 미얀마에서는 짬이 나면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타고 양곤강 하류의 한적한 강변도로를 달리며 하체 근력을 키우고 있다. 내 숙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골재 선착장이 있는 곳까지 갔다가 오면 사십 분 정도 걸리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지금은 우기라 비가 잠깐 멎는 시간을 이용한다. 땀을 흘리고 와서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몸을 닦지 않고 알몸을 선풍기 앞에서 말리면 몸도 마음도 시원하다. 오늘도 오전에 한차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운동을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왜 갑자기 운동을 하게 되었는가?
이유인즉슨 고등학교 동기 중에서 연탄공장 아들 명수란 녀석 때문이다. 그 녀석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식이 뻗었기 때문이다. 재력으로 우쭐대던 그 자식은 이제 제 손으로는 돈 한 푼을 써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명수 녀석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학교 다닐 때야 연탄공장 아들이라 ‘탄쟁이’ 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등교하기 전에 새벽에 일어나 연탄 천이백 장을 혼자서 화물차에 싣고 손톱 밑에 연탄가루가 새카맣게 낀 손으로 학교에 오던 녀석이었다.
면이 읍으로 바뀌고 강변에 공단이 조성되고 시로 승격하여 도시가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면서 시민들은 기름난방과 LPG가스를 선호하다가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도시가스에 밀려 녀석이 따라지 대학을 졸업하고 운영하던 연탄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역을 끼고 있던 위치라 저탄장을 하던 땅에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우리 친구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 뿐이 아니다. 공장부지가 노른자위로 상업지역으로 바뀌면서 우리들 상상의 한계를 또 한 번 뒤집어 놓았다. ‘탄쟁이’는 외아들이라 누구와 나눌 것도 없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고스란히 녀석의 몫으로 굳었다. 상속세를 어떻게 내나 두고 보자고 말하던 친구들이, 금액을 말하기에는 가슴이 떨리고 현금으로 담으면 몇 자루나 되는지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의 상속세조차도 녀석에게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보상 받은 돈 일부를 상속세로 가뿐하게 내고 그 노른자위 땅에 상가를 지어 거의 사십 개 점포를 임대하고도 엄청 큰 땅이 나대지로 남아 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녀석이 직접 지은 상가의 점포에서 나오는 월세가 우리의 상상을 또 한 번 초월했다. 녀석은 상가 이 층에 작은 부동산 사무실을 내고 직원을 채용하여 상가 임대료를 걷어 들이며 장래성이 있는 부동산을 사 들이고 법원 경매로 나온 물건들을 싹쓸이 하는 큰 손이 되었다. 친구들도 워낙에 재력을 지닌 녀석이라 함부로 ‘탄쟁이’ 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녀석이 없는 데서만 ‘탄쟁이가 무슨 물건을 경매로 낙찰 받았더라.’ 하며 수군거리곤 했다. 그 녀석이 뻗었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친구들은 그저 체면치레로 병원에 들러보는 게 전부다. 애석해 하거나 진심으로 쾌유를 비는 친구들은 내 판단으로는 단 한 명도 없다. 최소한 고등학교 동기 중에는.
친구들에게 욕을 먹는 이유가 그 정도의 재력을 지녔으면 친구들을 위해서나 좋은 일에는 좀 쓸 법한데 우쭐대기만 하는 자린고비였기 때문이다. 자린고비가 아니라 따라지 대학 동아리 선후배에게는 후하게 쓴다는 풍문이 있어 고등학교 동기생들에게 더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일례로 고등학교 동기 중에 우체국 집배원으로 근무하는 정배란 녀석이 있다. 들어갈 때는 집배원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나이가 있으니 집배원 관리 자리에 앉아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설상가상 작은 딸이 백혈병이란 소식을 들었다. 딸이 그 모양으로 몇 년간 병원에 있었으니 살림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 계모임이 있어 그 계를 중심으로 십시일반 병원비를 성의껏 모금해서 도와주자는 얘기가 나와 모금을 시작한 모양이다. 동기회 총무 순식이가 미얀마로 출국하는 날 나를 찾아왔다.
아하! 미얀마에 대한 얘기가 늦었다.
나는 한국에서 중기임대업을 하며 해외사업에 눈을 돌려 미얀마에서 땅을 사서 연립주택을 짓고 있다. 한국의 중기임대업이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이리저리 눈을 굴려 미얀마 주택사업에 뛰어든 지 이 년이 되었다. 부지를 매입하고 허가를 내는데 거의 일 년이 걸렸다. 지금 기초 공사 중이니 아직까지 수입은 없고 투자 기간이라 한국에서 대출을 받아 미얀마에 갖다 부으며 한 달은 한국에 있고 한 달은 미얀마에서 생활하는 기러기다.
순식이가 사무실에 찾아온 건 지난해 가을 미얀마로 출국하는 날 오전이었다. 해외 출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순식이가 전화도 없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사업 얘기를 하다가 정배의 딱한 사정을 얘기하며 모금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도 동참하는 의미에서 성의껏 순식이의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약속하고 ‘탄쟁이’가 얼마를 냈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순식이의 대답이 모든 친구들이 ‘탄쟁이’가 얼마를 냈냐고 묻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기들은 정배의 딸, 병세가 호전되느냐 마느냐는 뒷전이고 ‘탄쟁이’ 녀석이 얼마를 쾌척하느냐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탄쟁이’ 녀석은 ‘그럼 그렇지!’로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만 원을 냈다는 것이다. 오만 원이면 담배 값이 오른다는데 딱 담배 열 갑 값이 된다.
친구들은 ‘탄쟁이’ 녀석을 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시키든지 하다못해 동기회장이라도 감투를 주어야 필이 업 되어 주머니를 풀 거라고 쑥덕거리고 있던 참에 녀석이 뻗어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뻗은 자리가 남들 입에 오르내리기 좋게 고급 요정 VIP룸이었다. 어떤 친구는 아가씨 팬티 속에 손을 넣은 채 뻗었다는 말을 했고 어떤 이는 VIP룸에서 한탕 뛰다가 알몸으로 뻗었다고 했지만 진위는 분명치 않다. 다만 따라지 대학 동아리 후배들을 데리고 간 고급 요정에서 술을 마시다가 뇌출혈을 일으킨 건 분명하다. 그게 올 봄이었다. 녀석은 식물인간이 되어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리 보아도 예전의 몸으로 쾌유하기에는 이미 물 건너 간 녀석이다.
‘탄쟁이’ 뻗자 그 녀석을 이기는 게 건강한 정신과 육체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뱃살을 집어넣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운동이 몸에 배어서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할 지경이고 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의 당뇨기가 있던 몸이 당화혈색소 검사를 몇 번 해보아도 싹 사라졌고 허리가 이 인치나 줄었다. 팔과 허벅지에 근육이 생기며 허리는 줄어 바지가 풍덩해서 세탁소에서 고쳐 입어야 했다. 어쩌다가 자기 사용법에 대해 피력하고자 했던 얘기가 허리 치수 얘기까지 건너갔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탄쟁이’ 녀석은 생을 잘못 살았다.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그 정도의 재력이면 때깔 나게, 만인에게 베풀고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는데 안타깝다. 결과는 헛된 욕심에 치우쳐 자기 관리를 방만하게 한 탓이다.
녀석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거울이다.
그냥 거울이 아니라 사각 액자에 든 거울에 근조謹弔 라는 글씨가 무궁화에 새겨지고 검은 리본이 드리워진 거울이다. 지금 숨만 붙어 있는 녀석에게 그런 선물을 했다가는 녀석의 마누라가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겠지.
그렇게 근조 리본이 붙은 거울 나에게는 두 개나 있다. 보면 볼수록 참 잘 생각하고 만든 물건이다. 허망한 욕심을 버리는 데는 이보다 좋은 물건이 없다. 거울을 세워놓고 보고 있으면 자신의 영정사진을 볼 수 있게 된다. 세상에 자신의 영정사진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거의 매일 내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헛된 욕심도 사라지고 격한 분노도 가라앉는다. 그 거울이 처음에는 세 개가 있었다. 하나는 한국의 사무실 내 책상 큰 서랍에 있고 하나는 미얀마의 책상 서랍 안에 들어있고 또 하나는 집의 안방에 있는 화장대에 보기 좋게 하나를 만들어 두었는데 내 깊은 속뜻을 모르는 아내가 그걸 보고 기겁하고 리본을 떼어내고 액자를 부수고 거울마저 내다 버렸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집에는 그 물건을 두지 않고 사무실에서 가끔 그 거울을 본다.
그 거울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 살아있음이 고마움으로 다가 온다. 일이 잘 되지 않아 속을 태우다가도 그 거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어지간한 신경 안정제 보다는 효과가 빠르다.
잠깐!
정전이었다. 다행이다. 정전된 시간이 거의 오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쓰던 글을 저장하고 창밖을 보며 담배를 한 대 피고 있으니 금세 전기가 들어왔다. 정전이 되면 글쓰기를 중단해야 한다. 내 노트북이 오래된 구닥다리라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정전이 되면 얼른 쓰던 글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쓰던 글이 날아간다. 이곳 미얀마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하루에 몇 차례씩 정전이 된다. 천 만이 사는 양곤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 벌써 일곱 번째의 정전이다. 벼락치고 스콜이 지나가는 우기라 정전이 더 심한 것 같다. 대형 쇼핑몰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동주택에는 자가 발전기를 구비하고 있어서 정전이 되면 바로 자가 발전기가 저절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서민주택에서는 기천만 원하는 발전기를 갖출 수가 없어 겨우 준비한 것이 충정용 손전등이다. 우리 숙소도 방마다 손전등을 갖추고 있다. 배터리가 들어가는 손전등이 아니라 정전이 잦은 만큼 손전등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전기가 들어올 때 충전을 시키는 시스템이며 스위치를 위로 올려서 세워놓고 뚜껑을 열면 스탠드가 되고 스위치를 아래로 내려서 접어서 들면 랜턴이 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필요도 없는 물건이다. 어떤 날은 장시간 정전이 된다. 밤새도록 에어컨도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방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자고 아침에 일어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오후쯤에 전기가 들어와 살펴보면 냉장고에서 물이 주르르 새어나오는 날도 있다. 그 만큼 전력사정이 열악한 나라다.
거울에 대해 얘기하다 말았지.
사무실 책상 서랍에 있는 거울도 아무 때나 마음대로 보지 못한다. 경리부장인 여동생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면 본다. 감정 조율이 안 된다고 아무 때나 보는 물건이 아니다. 꼭 동생이 자리를 비우고 나면 거울을 꺼낸다. 그 근조 리본이 달린 거울을 보다가 여동생한테 들킨 적이 있다.
-오빠 뭐 하시는 거예요?
꽥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영정 사진 속의 평온한 내가 화들짝 놀라 얼굴이 일그러진 적이 있다.
-이거 욕심이 사라지는 요술거울이야! 너도 한 번 봐봐!
-싫어요. 저 욕심이 없어요. 당장 그것 떼어 버리세요.
-여자들이란 물건은 역시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는 동물이다. 니네 새언니도 난리더라.
그 다음부턴 사무실에서 동생의 눈치를 봐 가면서 거울을 본다.
이 마음이 정화시키는 요술 거울에 관해 나만 알고 즐기기 아까워서 대학 동아리 후배인 하 박사에게 가르쳐준 적이 있다. 하 박사는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내 사무실 부근에 백 평이 좀 안 되는 땅을 사서 작업실을 갖추고 휴일이면 그 창고 같은 작업실에서 목각 작업을 하는 목공예 작가다. 가끔 심심하면 작업실에 놀러가서 자장면이나 탕수육을 시켜 고량주를 한잔씩 나누며 작품에 대해서 치열한 주관을 피력하며 서로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사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항상 톱밥냄새가 난다. 가끔은 자다가도 그 상큼한 톱밥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다. 특히나 향나무로 작업을 하는 중에 들르면 톱밥냄새에 취할 지경이다. 지난 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공일날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곧 있을 무슨 전시회에 초대작으로 내보낼 목탑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깎고 잘라서 끼운 게 아니라 통나무로 만들어 우리 키 높이가 되는 목탑은 정교한 형체를 완전히 드러내고 사포작업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른 보아도 전시실까지 옮기려면 장정 대여섯과 소형트럭 한 대는 달라붙어야 할 대작이다. 칠은 하지 않고 나무 무늬를 살려 그대로 내보낼 작품이라고 했다. 목탑에 나이테가 세로로 선명하게 선을 잇고 있어 질감이 좋아보였다. 사방에서 선명하게 그려져 올라온 나이테가 목탑 꼭대기에서 만나 그 부분이 밤톨만큼 색깔이 달라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무늬가 괜찮은데 이거 무슨 나무냐?
-플라타너스입니다. 이 정도 굵기의 통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뽀얀 먼지가 잔뜩 묻은 안경을 벗고 역시 뽀얀 머리를 두 손으로 대충 털며 대답했다.
-모자라도 좀 쓰고 하지? 나이테가 정말 멋지다.
-목늬라고 하죠. 잘 이용해야 작품이 살아요.
-그래? 목늬를 멋지게 이용했군.
그 작품에 관해서 한동안 얘기를 하다가 커피 타임을 가졌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톱밥 난로에 물을 끓여 차를 마셔야 제 맛이 나는 법인데 그날은 커피포터를 이용했다. 나는 블랙이고 하 박사는 설탕커피다. 자주 마셨음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탄다. 잔도 일반 찻잔이 아니라 그가 직접 구워 만든 머그잔이다. 커피를 마시며 그는 작업을 하고 있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자꾸 불안하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작업을 해야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그 말을 기화로 요술 거울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며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내가 요즘 그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고 지나가는 소리를 했다. 자기 100% 사용법이란 말도 거기서 나왔다. 커피를 마시며 내 말을 듣는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말로 그렇게 해서 나를 100% 사용해볼까요?
-어려울 거야 없지.
그날은 작업에 방해하기가 싫어 자장면과 고량주를 시키지 않고 커피만 마시고 나왔다. 하 박사는 바로 사포를 들고 하던작업을 계속하는 걸 보았다. 어지간히 바쁜 작품인가보다. 그 다음 일요일에 하 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형님! 별일 없으면 한잔 어때요?
그 전화를 받는 내 코에 진한 고량주 향이 묻어났다. 무료한 일요일에 그 보다 반가운 전화가 없다.
-작업실이냐? 지금 작업실로 갈게.
차로 가기에는 가깝고 걸어서 가기에는 멀고 자전거를 이용했다. 자전거에 올라앉으면 오 분 정도의 거리다. 그가 나를 부른 이유는 직접 만든 요술거울의 액자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나무를 다루는 솜씨로 멋진 원목 액자를 만들어 거울을 넣고 어디서 구했는지 근조리본을 붙여 놓았다. 사진관에서 주는 플라스틱 액자와는 격이 다른 작품으로 저절로 설 수 있는 스탠드까지 원목으로 만들어 세워두고 있었다.
-우와! 이건 완전히 작품이군. 극락왕생을 자주 하겠어.
-형님! 자기 100% 사용법이 이 액자 안에 들어 있어요. 정말 요술거울이에요. 세상의 모든 진리와 정법이 이 거울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날 탕수육을 시키고 고량주를 마시며 서로 번갈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저런 식으로 원목 액자를 하나 만들어 주라.
액자가 정말 탐이 나서 한 말이었다.
-형님 그것마저도 헛된 욕심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진정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고량주 잔을 들고 그 요술거울을 응시했다. 생각하니 그런 액자를 갖는 것도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생각하니 부질없는 짓이네 전번에 하던 작품은 마쳤냐?
-목탑 말인가요?
-응.
-어제 전시실로 실려 보냈어요. 보내고 나니 홀가분하네요.
그날은 술을 좀 많이 마셨다. 처음에 탕수육 작은 것과 고량주 세 병을 시켰는데 술이 모자라는 것 같아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 다시 자장면 하나와 고량주 두 병을 더 시켰다. 요술거울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마시니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취중에 보아도 잘 만든 액자였고 잘 생각한 거울이었다. 탐이 났지만 만들어 달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극락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고량주에 취했다.
하 박사가 다시 나를 찾은 건 일주일 후였다. 하 박사는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서 점심을 뭘 시켜먹을까 궁리하던 참이었다.
-형님! 자기 100% 사용할 수 있는 물건 하나를 더 만들었어요. 실험하러 오세요.
-응. 그래? 오 분만 기다려.
아마도 나를 주기 위해 요술거울의 액자를 하나 더 만든 모양이다. 액자보다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상대가 생겼다는 데 더 반가웠다. 곧 바로 자전거에 올라앉았다. 결과를 말하면 하 박사는 나를 주기 위해 액자를 만든 게 아니었다. 그런 소품이 아니라 한술 더 떠서 목관木棺이었다. 누런 빛깔의 원목 목관이 그의 작업실 책장 뒤에 장방형으로 놓여있었다. 그냥 송판에 못질한 게 아니라 두꺼운 판자로 각을 짜서 정교하게 맞추고 못질은 한군데도 하지 않은 완벽한 작품이었다. 꽤나 묵직한 뚜껑을 열어보니 빨간색 방석이 세 장 나란히 놓여있었다.
-우와 이거 완전 작품인데?
-들어가서 누우면 푹신한 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저절로 정진이 돼요.
벌써 들어가 누워봤던 모양이었다. 그날 점심도 자장면에 고량주를 시켜서 먹었지만 늘 먹던 톱밥난로 옆의 석판으로 만든 책상 겸 식탁이 아니었다. 목관 위에 신문지를 깔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 마주 앉아 자장면을 먹고 고량주를 마셨다. 점심을 먹고 술판을 벌이는 내내 살아있음이 고마웠고 자장면의 맛과 술의 향을 음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숙연했다.
-야! 정말 작품이다. 하 박사가 만든 작품 중에는 가장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대작인데 어디 전시할 수도 없고 팔기도 뭣해 안타깝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 삶을 반추하는 거울로, 두고두고 써먹어야지요.
-이거 학교에 갖다놓고 말 안 듣고 싸가지 없는 애새끼들 삼십 분 씩 교대로 들어가서 반성하라고 해라. 반성문 열 장 쓰는 것 보다 효과가 있겠네.
-그렇긴 하지만 요새 학부모들 별나서....... 선생 자질을 운운하며 인터넷에 바로 올라갈걸요.
-그렇겠구나. 혼자 쓰기에는 아까운 물건인데.......
-형님이 자주 애용하세요.
-나는 싫어. 영정사진 만으로도 충분해.
-영정거울로는 자기를 100% 사용할 수가 없어요. 열반하시죠.
하 박사는 관에 들어가 100% 사용을 실험하기를 고집했다. 거울은 80%이고 들어가 누워보면 100% 욕심이 버려진다고 들어가 누워보라고 했다.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 기분은 고약하지만 들어가 눕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관위에 있는 중국집 음식 그릇들을 정리하고 관으로 들어가 누웠다.
-자 열반입니다.
하 박사가 밖에서 나직하지만 엄숙하게 말했다. 생각보다 방석이 푹신했다. 나무에서 나는 향이 괜찮다고 생각할 무렵 하 박사가 밖에서 관 뚜껑을 닫아주었다. 순식간에 암흑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죽었다고 생각하니 아무런 감흥이 없고 학창시절에 읽은 세계명작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그 소설의 줄거리가 어떻게 되더라? 그 소설의 주인공은 그렇게 살다가 죽었지. 그럼 나는 뭔가? 이렇게 범부로 살다가 죽는 건가? 좀 그럴 듯하게 살아봐야지!
욕심을 줄이고자 관 속에 누웠는데 다른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날 관 속에 삼십 분 정도 누워있었는데 세계 명작들의 줄거리를 되살리며 그 주인공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만 품다가 열반에서 깨어났다.
-아이쿠, 깜짝이야!
그날 관속에 누워 누구의 소설 줄거리를 생각했는가? 다시 떠올리고 있을 때,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열어둔 창문을 사정없이 때렸다.
고막이 얼얼할 정도다.
창 밖에는 또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스콜이 지나가고 이슬비가 내리더니 또 다시 장대비가 쏟아진다. 열대지방의 우기는 항상 이 모양이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그 관 속에 누우면 또 다른 감흥이 밀려오겠지. 관이 있으면 들어가 눕고 싶은 시간이다. 비가 처량하게 종일 내리는 이런 날에.
나는 노트북 옆에 놓인 거울을 본다.
영정사진 속의 내가 나를 보고 있다. 표정이 굳어 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담아본다. 영정사진 속의 내가 가식적인 웃음을 물고 있다.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본다. 영정사진 속의 내 얼굴이 수시로 바뀐다. 이 거울 속에 남은 생을 살아가는 좌표가 분명히 있다. 여러 가지 얼굴 표정을 바꾸며 그 좌표를 찾는데 등골에서 땀이 흐른다. 열대지방의 비오는 날 더 덥고 습하다. 입고 있던 반바지와 티셔츠를 벗고 욕실에 가서 물이라도 좀 뒤집어쓰고 와서 리본이 달린 액자거울을 보며 자기 100% 사용법에 관해 다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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