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유다서 17-23절
제 목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7]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교사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접근하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거짓교사들이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들이 가는 길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충성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과 의를 위한 충성이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심판은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은 자신들만 악한 사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비 진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여, 구원받을 영혼들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탄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끌고 가려는 계획을 세우자, 화인 맞은 심령이 되어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사탄을 도와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그리스도의 길인지, 말씀을 벗어난 세상 길인지 살피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은 맞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이 그렇게 쉬웠다면, 성자하나님께서 어둔 세상에 오셔서, 직접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에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여러분이,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본다면, 저 사람들은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어떻게 저토록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너는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만, 내가 보는 그들의 마음은 다르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이라는 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더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한 대가로, 열매를 거둬들이지만, 열매를 맺기까지, 그리고 열매를 사용하는 그 마음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거두었을 때, 큰 창고를 짓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던 두 사람들을 보시며, 이 사람은 데려가고, 저 사람은 버려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밭에서, 모두 같이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데려가시고, 어떤 사람은 버려두신 것입니다.
그 기준은 바로, 하나님을 영접한 심령과, 선한 양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볼 때는, 사람들 모두 숨을 쉬고, 먹고 마시므로 동일하게 보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령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이 두 명의 하인을 불러서 물을 긷는 일을 명령했습니다.
한 사람은, 주인의 명령이 너무 귀찮아서 어떻게든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작은 물동이를 들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천천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하인은 주인이 보든 안 보든 항아리를 채우기 위해서, 큰 물동이로 힘에 지나도록, 열심히 일한 것입니다.
해가 지자, 이들은 똑같이 일당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작은 물동이를 가진 하인이, 큰 물동이를 들고 열심히 일하는 하인을 보면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든, 쉬면서 하든 어차피 하루 일당을 받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큰 물동이로 일하던 하인은 핀잔을 들으면서도,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 것입니다.
어느 날, 주인은 두 사람을 불러서, 큰 물동이로 일하던 하인에게, 앞으로는 물을 긷는 일을 하지 말고, 다른 하인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높은 직책을 맡으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인정을 받는 순간, 그는 힘든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인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 동안 주인은 오고 가며, 하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살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게으름을 피우던 하인에게 진노하며, 너는 지금까지 나를 속이고 일당을 받았으니까, 속인 만큼 일을 더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삯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인을 속인 죄값을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성도들도, 두 하인처럼 동일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믿음에 따라서, 물 항아리의 수위가 다를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결과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성도들의 헌신을 지켜보고 계시지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끝이 났을 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기도의 항아리와 봉사와 헌신의 항아리를 살펴보시면서, 상급을 정하실 것입니다.
물이 가득 차 있는 항아리를 본다면, 하인들에게 너는 열심히 일을 했느냐고 묻지 않아도 주인은 모든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나누어주는 상급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똑같은 은사와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는데도, 성도들은 각자 하나님께 드리는 열매와 상급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힘에 지나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하늘의 상급은 물론 땅에서도 영적인 안식과 재물과 장수를 누리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하인은, 주인이 절대 모를 것이라고, 약게 행동을 했지만, 전체를 보는 주인은 하인들 하나하나의 행동을 살피지 않아도, 물 항아리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는 자와 본성대로 사는 자의 차이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차이이며, 천국과 지옥의 차이이고, 영과 육, 그리고 하나님과 사탄처럼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게으른 자리에 있거든 힘을 내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길이며, 그 결단을 해야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9-31절에 육체에 속한 사람들이 짓는 죄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 하는 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자, 배신하는자, 무정한자, 무자비한자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법으로 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은 자기들만 이런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에 나열 된 죄 중에 몇 가지나 해당됩니까?
그래도, 나는 죄가 많지 않다고 안심이 되십니까?
저도 본문을 읽는 중에, 나는 몇 가지나 해당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하나, 둘 하면서 열심히 세었고, 어떤 것은 사형에 해당될 정도로 교만하거나 악하지 않다면서, 조금은 후하게 용서하면서 숫자에 넣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많은 죄 중에, 제가 몇 가지에 해당하는지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들고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읽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들고, 불의, 추악, 탐욕 하면서 읽어가고 있는데, 불의라고 읽으면, 제 입에서 뱀 한마리가 튀어 나오는 환상을 보였고, 추악하면 또 한 마리가 입에서 나오는 환상이 보였습니다.
도저히 읽을 수 없었지만, 계속 읽으라고 하셔서 끝까지 읽고 나자, 제가 기도하고 있던 방안은 뱀들로 가득했습니다.
저 뱀들이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통곡을 하면서 기도하자, 방바닥에서 그물이 올라오면서 뱀들을 모두 치워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는 그래도 이 죄는 짓지 않았으니까 괜찮고, 이 죄는 아주 조금 생각만 했으니까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을렀지만, 그래도 작은 물동이로 물을 날랐기 때문에, 항아리에 조금이라도 물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봉사를 했으니까 됐다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죄를 지은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죄를 다 지어야 사형인 것이 아니라, 그 중에 한 가지만 지어도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성령이 없는 자가 본능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로마서 1장에 기록 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는, 절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과 흥정하지 않기 때문에, 충성하는 모든 헌신이 정직한 믿음과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진리로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해도 막아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붙들어 주시며, 인간의 본성을 이기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충만함이 사라지면, 만나는 사람마다 단점만 보이게 될 것이고, 상대가 하는 말마다 귀에 거슬리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모든 것이 마음에 부딪히게 되어 표정이 굳어지고, 말도 곱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이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충만함이 없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어떤 말을 들어도, 또는 어떤 환경을 만나도 온유함을 잃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온유함을 잃고, 사람이나 환경이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 있거든,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기 바랍니다.
마음이 회복되지 못하면, 항상 자신을 상대방보다 우위에 두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함을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유다는 사도들이 한 모든 말들이, 그리스도의 권위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영적 권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미리 해준 말을 기억하라는 것은, 거짓교사들이 교회로 들어올 것이라고 사도들이 미리 알려 주었으니까, 성도들이 그들과 대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유다가 말한 것처럼,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었다면, 교회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거짓교사들의 실체를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다는 말씀을 위해서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초림예수님께서 오실 것과, 부활하실 것과, 그리고, 성령께서 오실 것과 심판과 재림 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미리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떨어졌으므로, 말씀을 듣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갈라질 것입니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자와, 듣고 믿는 자를 분명하게 가르셔서, 그들이 육신을 벗었을 때, 가는 곳이 다르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주물로 찍어서 나온 그릇들처럼 말과 행동과 생각이 똑같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항상 부정적이고, 세상과 자신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의심하면서 대적합니다.
그리고, 성령안에 있는 성도들의 선한 행동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어려움을 당할 때는 자신이 부족해서 하나님을 부끄럽게 해 드렸다는 생각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항상 긍정적이며, 상대를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더 폭 넓은 생각을 가지고 품어주는 아량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은, 어둠의 영을 받았느냐, 아니면,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차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의 책망을 받고 있는, 거짓교사들은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신앙과 율법을 무시하거나 멸시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건하지 않게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도 악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당을 지으며, 교회를 소란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혹은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고라처럼, 모세 정도는 상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을 앞세워 말씀의 본질을 흐리고, 목회자와 성도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교회를 넘어뜨리는 것보다는, 성도 한 사람이라도, 말씀을 의심하고,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고라가 모세보다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격과 겸손함과 다른 사람을 섬기지 못하는 그런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능력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주실 수 있기 때문에, 고라가 당을 짓고 총회를 흔드는 그것을 악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교회 일을 감당할 때, 처음에는 선한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진행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나기도 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상대보다 자신이 훨씬 능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그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고집을 피우거나, 전체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일을 진행함에 있어 과정이 중요합니다.
과정 중에, 혹시 한 심령이라도 상처를 받거나, 실족하지 않았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일을 조금 천천히 진행하더라도, 더 많은 성도들이 기쁨으로 동참할 수 있다면, 그렇게 일하는 성도를 더 높이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 심령을 살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서,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기도하면서 충성할 때, 자기의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이 없으면,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분란이 일어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사도들이 미리 가르쳐준 대로, 거짓교사들에게 속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2절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연약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거짓교사들이 유혹하면 진리를 의심합니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이 말씀이 진리일까?
내가 속한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 교회일까?
세상사람들처럼 약게 살지 않아도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은 올바로 살지도 못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많은 의심과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을 때 갖는 마음입니다.
이런 의심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말씀을 의심하고, 신앙이 흔들리는 형제를, 판단하기보다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안아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베풀다 보면, 상대가 그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받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받는 입장에서는, 저 분은 목사님이니까, 장로님이니까, 권사님이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나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 일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을 베푸는 성도들은 하나님 때문에,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받는 성도들은 그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은혜에 보답하고, 또 자신보다 신앙이 어린 성도를 품어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두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전체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베풀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받아도 되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을 우리가 받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충성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다면, 되돌려 주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질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감사와, 은혜를 갚는 것도 하지 못한다면, 더 큰 사랑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 변함없는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옥 불에 떨어질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적을 일으켜 보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먼저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으므로, 성도들도 거룩한 사랑을 보여주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0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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