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한달걷기 6일차
모슬포에서 무릉외갓집까지 17킬로.
오늘은 해변을 벗어나 모슬봉과 곶자왈을 지나는 코스입니다. 제주올레에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 소개합니다. 11코스는 공동묘지를 지나거든요.
전에 여기 모슬포항에서 방어를 먹은 적 있어요. 제주올레 축제에 딸아이와 함께 왔다가 들렀었는데, 사장님이 당신 키만한 방어를 들어 보여 주시고는 부위별로 조금씩 주셨어요. 딸애가 겨울만 되면 그 때 먹은 방어가 가끔 생각난다고 얘기할 정도로 특별한 기억과 맛이었어요.
대정여고를 지나 모슬봉으로 오릅니다. 월라봉 처럼 봉으로 끝나는 곳은 예전에 봉화를 올렸던 곳이랍니다. 멀리 구름 모자 쓴 한라산과 코끼리 삼킨 보아뱀 산방산, 뾰족뾰족한 단산오름, 송악산 사이 형제섬이 보입니다.
왼쪽으로 너른 드르(들)가 편안히 누워 있습니다. 아, 나도 눕고 싶다. 이렇게 매일 걸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살아 있으니 또 앞으로 앞으로.
중간스탬프 찍고 내려오는 길. 올라올 때도 있더니 내려 갈 때도 묘지입니다. 공동묘지. 날이 흐리고 비오는 날 혹은 어스름 저녁이면 사내들도 등골이 오싹하다는. 오늘은 미세먼지가 좀 있어 뿌옇고, 한라산이 가릴 정도의 구름이 있었으나 그럭저럭 맑은 하늘에 햇살도 있고, 지나는 사람도 많아서 그런 느낌은 없었습니다.
묘소 주변과 봉분에까지 온통 고사리입니다. 여기 고사리는 감히 채집 대상이 아닌가 봅니다. 봄이면 고사리 뜯으러 육지에서 원정 오시는 어머니들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여기 묘소의 비석도 옆으로 혹은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서 있습니다. 보풍수 때문이라고 전에 배웠죠 ㅎ
바람개비 처럼 생긴 빙카. 우리나라 야생화는 아닙니다
춤바람난 보리를 곁에 두고 걷는 길
밭에 따라 이제 올라오는 것도 있고 청보리도 있고 누렇게 익어가는 것도 있고..다들 심은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그렇겠죠? 파란하늘 아래 푸릇한 보리가 한들한들...얘들은 평화롭습니다.
삼춘~ 소감수다(수고하십니다)~~수확을 앞둔 마늘밭은 한창 바쁩니다.
정난주 마리아 묘역을 지납니다. 길동무 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정마리아는 정약용의 조카입니다. 남편이 신유박해 때 죽고 그녀는 노비가 되어 아들과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풍랑이 심해 잠시 추자도에 정박했을 때 그녀는 아들을 추자도에 몰래 내리게 합니다. 노비의 삶을 사느니 어부의 삶이 차라리 나을 것이란 어머니의 판단이었겠죠. 제주에 사는 37년동안 그녀는 자신의 교양과 학식을 주변사람을 위해 썼고 인품도 훌륭했나봅니다.
그때는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하고, 아들과도 생이별한 기구하고 신산한 처지였을지라도 그런 훌륭한 업적과 제주도 1호 천주교 신자로 지금은 성역화한 묘역에 계십니다.
신평 무릉 곶자왈로 들어갑니다. 곶자왈이 되려면 두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답니다.
1. 화산폭발로 용암이 요철모양으로 굳은 곳
2. 그런 곳에 수풀이 우거져 숲을 이룰 것
숲이 다 곶자왈이 되는 것은 아니고 용암이 요철모양으로 깔려야 합니다. 길엔 흙이 얇게 깔려 있을 뿐 돌길입니다. 제주에 곶자왈은 네 군데 뿐이랍니다.
곶자왈은 보온보습 기능이 있어서 한겨울에도 온통 푸른 원시림을 유지할 수 있답니다. 숨골이 있어서 겨울엔 따뜻한 바람까지 불어준다니 신기합니다.
길 걷는 내내 정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제주에 산소를 공급하는 허파 역할을 한다지요.
띠밭을 제주에선 새왓이라 한답니다. 띠는 제주 초막의 지붕을 잇는 귀한 재료입니다. 보통 육지에서 볏짚으로 이엉을 얹는데 제주엔 논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초가지붕에 쓸 수 있는 게 띠 뿐이었을 겁니다. 통영에서도 논농사를 짓지 못하는 섬 지역이나 볏단을 구하지 못하면 띠로 지붕을 잇는다 들었습니다.
새는 띠, 왓은 밭이란 제주어입니다
실거리나무 꽃. 제주에서 처음 보는 꽃
곶자왈의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다보니 어느새 반대편으로 나왔습니다. 무릉2리. 골목에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이 모여 계십니다. 인사를 드리니 웃으며 받아주시네요. 돌담은 구멍이 뻥 뚫려 위태해 보입니다. 지나다 툭 건들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길동무 이쌤이 절대 무너지지 않으니 한 번 밀어 보라 합니다. 흔들바위가 흔들릴지언정 떨어지지 않듯, 이 돌담은 제주의 거센 바람을 통과시키며 그 자리를 지킵니다.
무릉외갓집이 오늘 종점입니다.
위에서부터 한라향, 이름도 생소한 블러드오렌지, 천혜향, 카라향. 이름이 다른 만큼 맛도 다 다릅니다. 이 외에 레몬향도 있습니다. 처음 맛보는 블러드오렌지는 핏빛이 감돌고, 레몬향은 시지 않은 상큼함이 인상적입니다.
무릉2리 주민들과 만들어 가는 사회적 기업 무릉 외갓집은 13년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건도 사고 신선한 감귤쥬스도 마시고 여기서 오늘 코스 끝!
끝내고 복귀하는데 박수소리가 들립니다. 오늘도 완주자가 있는 겁니다. 매일 한 두명의 완주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우와 꼬마입니다.
오늘 아침은 채소 버섯 죽
점심은 돈가스를 먹기로 하였으나 일정이 늦어져 재료소진이라 퇴짜 맞고 근처 김치찌개로. 시원하고 개운한.
저녁은 올레 펍 메뉴 중 가지덮밥을 골랐어요.
시어른들 세끼 밥상을 매일 차리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외식하자 하면 식사 걱정 없이 신났던 기억이 있네요. 우리 셰프도 한달식구들 식단 고민 안 해도 되는 날이 있어야겠죠. 덕분에 우리도 셰프님께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