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파괴자들
20세기의 걸작? 라면
1인당 연간 소비량 80여 개, 연간 총 생산량 약 40억 개, 시장규모 1조 2천억 원. 오늘날 우리나라 가공식품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성적표다. 가공식품 업계의 판도를 바꾼 우리나라의 인스턴트 라면 산업은 이미 오래전에 라면 종주국인 일본을 크게 앞질렀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라면을 싫어한다는 말인가? 실제로 일본인이 먹는 인스턴트 라면의 양은 한국인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라멘’은 인스턴트 라면이 아닌 점을 주목하자. 라면의 가장 큰 문제는 여러 종류의 첨가물을 한꺼번에 섭취하는 데 있다. 인공조미료 향료, 색소, 유화제, 안정제, 산화방지제, 점조(粘稠)제 등을 한꺼번에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라면의 치명적인 약점은 인체의 당 대사 메커니즘과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식품을 섭취하면 체내 혈당치가 올라간다. 혈당치가 올라가는 까닭은 식품속의 탄수화물 성분 때문이다. 대체로 같은 소재의 식품은 당지수가 비슷하다. 그런데 같은 소재의 식품이라도 어떤 식품은 혈당치를 빨리 올리고 어떤 식품은 천천히 올린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공방법’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공방법에 따라 탄수화물의 입자크기와 입자 간격이 달라진다. 찔 때는 가공온도가 낮아 탄수화물의 입자 크기가 커지고 간격이 촘촘해지는 반면, 튀길 때는 온도가 높아 입자크기가 작아지고 간격이 성겨진다. 입자가 크고 간격이 촘촘한 탄수화물은 천천히 소화․흡수되나, 작고 성긴 탄수화물은 빨리 소화․흡수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찐 것은 당지수가 낮고, 튀긴 것은 당지수가 높아진다.
가공시간과 횟수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오랜 시간, 여러 차례 가공하면 탄수화물 입자가 더 작아지고 더 성겨진다. 당연히 당지수도 더 높아진다.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공정을 보자. 보통 면발 성형 후 먼저 100℃이상의 증숙 과정을 거치고 이것은 다시 150℃ 전후의 유탕처리 과정을 거친다. 이것을 소비자가 또 한 번 끓는 물에 삶아 섭취한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열처리된 탄수화물은 당연히 입자가 작아지고 성겨지며 소화․흡수가 빠르고 당지수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고온의 열처리 공정을 여러 차례 거치는 식품들, 즉 ‘스낵 제품’ 같은 유형의 식품을 ‘정크푸드’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양가는 없으면서, 적은 양으로도 혈당을 상승시키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제왕식품의 뒷모습
과자 단일품목 누적 판매액 1조원을 돌파한 초코파이를 들여다보자. 초코파이는 초콜릿, 파이, 머시멜로 크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제품의 약 3분의 1은 설탕과 정제물엿이다. 또한 겉을 둘러싼 초콜릿은 모조 초콜릿이다. 카카오열매의 핵심물질인 코코아버터는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고 코코아 버터를 짜내고 난 코코아 파우더만 소량 사용된다. 또한 화학처리를 한 유지가 사용된다. 포장지에 표기된 ‘정제가공유지’가 그것이다. 정제가공유는 수소첨가반응의 산물이다. 수소를 첨가시킨 경화유는 트랜스지방산이라는 유해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트랜스지방산은 파이에도 들어있다. 파이에는 엄청난 양의 쇼트닝이 사용된다. 여기에 팽창제를 첨가하여 스펀지 조직을 형성한다. 초코파이 가장 안쪽에 있는 머시멜로 크림은 90퍼센트 이상이 설탕과 정제물엿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3분의 1이 물로 되어있는데도 수 개월간 상하지 않는다. 바로 방부제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위대한 제품이 정제당류․트랜스지방산․첨가물이 범벅된 가공식품의 전형(典型)인 것이다.
양의 탈을 쓴 이리, 아이스크림
이제 더 이상 하절기 식품에 그치지 않는 아이스크림은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하는 ‘현대판 곶감’이다. 아이스크림 한 브랜드가 연평균 1억 개의 매출을 올리면서 지칠 줄 모르는 ‘흡인력’을 실감하게 한다. 아이스크림의 주원료는 당류와 지방, 그리고 물이다. 원료의 좋고 나쁨을 생각하기 전에 일단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물과 기름을 어떻게 섞을까. 해답은 바로 첨가물이다. 아이스크림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화제(계면활성제)가 사용된다. 이 첨가물에는 천연물질도 있지만 아이스크림의 경우 대부분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유화제는 발암물질을 비롯한 각종 유해성분을 체액에 잘 섞이도록 돕는다. 체액에 고루 섞인 유해물질들은 한결 쉽게 흡수되어 세포로 이동한다. 또한 정제당과 나쁜 지방을 동시에 섭취함으로써 ‘유해성의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간단히 말해, 당과 지방을 함께 섭취하면 ‘대사기능 악화’와 ‘콜레스테롤 상승’ 기작이 더욱 촉발된다. 아이스크림이 유제품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몸에 좋은 식품이라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지만 그것은 ’양의 탈을 쓴 이리‘에 비견되어 마땅하다.
‘가공’, 그 허울 좋은 너울, 육가공품
가공(加工:processing)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원료나 재료에 손을 더 대어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식품위생법에서는 사뭇 난해하게 설명되어 있다. 식품공전을 보면, ‘식품원료의 변형’ 혹은 ‘식품첨가물 사용’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결국 ‘식품을 가공한다’는 말은 첨가물을 사용하여 식품소재를 변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치즈에는 자연 치즈와 가공 치즈가 있다. 자연 치즈는 우유가 응유효소에 의해 응고된 것 자체를 말한다. 반면 인공치즈는 공정 과정에 유화제나 조미료, 향료, 색소 그리고 보존료를 넣은 것을 말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치즈는 대부분 가공 치즈이다.
얼마 전, 햄과 소시지에 사용되는 아질산나트륨이 발암물질이라고 보도된 적이 있다. 햄과 소시지는 물론이고 베이컨 등 육가공품에는 거의 빠짐없이 아질산나트륨이 사용된다. 이 첨가물은 육가공품을 만드는데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한다. 선홍색을 발산시켜 먹음직스럽게 하고, 맛을 부드럽게 하며, 미생물 번식을 억제한다. 아질산나트륨은 발암물질이기 이전에 독극물이다. 사람의 경우, 섭취량 1.18 ~2.5그램의 범위에서 사망할 수 있다. 청산가리의 치사량이 0.15그램인 점과 비교하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공유, 노란우유
가공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나나 우유로, 연간 판매 1,000억 원 고지를 점령했다. 이 가공유의 뚜껑을 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액상과당, 백설탕, 치자황색소, 바나나향이라는 표기가 눈에 띈다. 붕어빵에 붕어 없듯, 바나나 우유에도 바나나는 없다. 그렇다면 그 깊숙한 바나나 맛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향료가 그 해답이다. 향료는 수 백 가지의 화학물질로 이뤄지며 뇌 활동을 왜곡하는 물질, 호르몬 교란물질, 알레르기 유발물질들이 들어있다. 또한 치자황색소가 천연색소임에는 틀림없으나, 치자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치자황색소를 실험쥐에게 경구 투여한 경우, 설사 증상이 생기고 간장에서 출혈현상이 관측됐다는 보고가 있다.
가공유의 유해심각성은 초코우유, 커피우유, 딸기우유도 마찬가지다. 초코우유와 커피우유에는 실제로 코코아분말이나 커피분말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향으로만 맛을 내는 과일 맛 우유와는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침전 문제다. 초코우유에는 ‘카라기나이’라는 물질이 첨가되는데 이것은 우유의 점성을 높여줌으로써 고형분의 침전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발암물질로 분류되며 독성물질이라는 훈장이 붙어있다.
액체사탕, 청량음료
가공식품이 안고 있는 문제의 백미는 역시 청량음료에 있다. 예를 들어 콜라의 경우 액상과당, 탄산가스, 캐러멜 색소, 인산, 향료, 이 다섯 가지 원료로 만들어진다. 모두 분자교정의학자들의 사전에 블랙리스트로 올라가 있는 것들이다. 콜라가 비만의 주범이며, 골 조직을 해친다는 사실, 카페인 음료라는 사실 등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다. 콜라에 첨가된 인산 성분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행동독리학상의 물질이다. 캐러멜 색소 또한 천연색소로 분류되어 있지만, 제조과정에서 화학처리 공정이 수반되며 유전자에 손상을 가하는 물질이다.
콜라의 유해성이 두려워 사이다를 대신 선택하는 것은 호랑이를 피해 늑대 굴로 들어서는 격이다. 사이다 역시 유해성은 비슷하다. 그 외, 탄산음료도 아니고 과즙음료도 아닌 야릇한 음료가 등장하여 젊은이들에게 생수처럼 애음되는 것들이 있다. 이 음료의 표기에는 과즙 5%라는 표기가 크게 확대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음료에 첨가하는 과즙은 과일에서 착즙한 생 과즙이 아니다.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가열․농축한 과즙이 사용된다. 이 과정에 영양분이 거의 파괴되는 것이다.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드링크에는 청량음료보다 더 많은 정제당이 들어있다. 또한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으며 안식향산나트륨이라는 방부제가 들어있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가공식품들 속에 어떤 유해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설탕을 비롯한 정제당, 포화지방산과 같은 나쁜 지방, 첨가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폐해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세 종류의 혐오물질들이 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이 물질들이 인체 내에서 어떤 궤적을 그리며 건강을 침해하는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