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 답사입니다*
정기답사는 홀수 달 두번째 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처서도 지나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을 기다리는 요즘입니다.
이번 답사는고창 [ 高廠 ] 군으로 갑니다.
고창군에 대한 형국을 설명한 글이 있어 올려드립니다.
‘지대가 높고 헛간과 같은 형국’을 드러내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들판에 세워진 집을 노사옥(露舍屋)이라 한다. 그러므로 주거용의 집과 같이 정교한 것이 아니고, 창고같이 엉성한 것을 말한다.
중략
그리하여 조선조에 이행(李行)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시냇물은 푸른 뱀이 달리는 듯하고, 봉우리는 푸른 병풍을 비낀 듯하다’고.
또한 권진(權軫)은 ‘산과 물이 둘러 있는 한가운데에, 누각이 숲에 싸여 있네’라고 했다. 이것은 바로 봉우리로 에워싸인 산지 환경을 설명하는 글귀이다. 여기에다 모양성(牟陽城)으로 통용하는 고창읍성이 관아만을 감싸 안은 산성의 성격을 안고 있으므로, 방어 기능에서 곡물을 수납하는 창고와 다를 바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창 [高廠] - 지대가 높은 헛간 형국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
조남선 교수님의 올바른 풍수를 현장에서 들으시면 더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건강 관리 잘하시고 답사때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일시 및 장소 : 2023년 9월 10일 (일)
오전 8시 아주대 정문 출발
2. 답사지
1) 효감천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산 73번지)
1980년 3월 8일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473년(성종 4) 이 고장의 효자 오준(吳浚:1444-1494)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높던 오준은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욕창을 앓자 입으로 상처를 빨아내고, 변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입에 피를 넣어주고,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먹이는 등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간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정성을 다해 시묘(侍墓)를 하였는데 조석으로 제수(祭水)를 올리기 위해서 먼곳까지 가서 물을 길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효성에 하늘까지 감동하였는지 어느날 갑자기 벼락이 쳐 그의 움막 가까운 곳에 맑은 샘물이 솟게 하였다. 이에 고을 현감이 우물을 만들어 주니 사람들이 이를 효성천(孝誠泉)이라 불렀다.
당시 조정에서는 오준의 효행을 널리 알려 귀감으로 삼기 위해 그에게 통선랑군자감직장(通善郞軍資監直長)의 벼슬을 내렸다. 그가 죽은 후 당시 현감이 이곳을 효감천이라 명하고 1748년(영조 24)에는 효감천 뒤쪽에 사당을 지어 창효사(彰孝祠)라 하였다. 그후 창효사에서 매년 그의 후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우물(샘)로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국내에서 이곳 효감천과 ‘호국룡변어정(護國龍變魚井)’ 또는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라 불리는 경주의 분황사 석정(경북문화재자료) 두 곳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효감천 [孝感泉]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 두암초당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영모정 뒷산)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당.
두암초당(斗巖草堂)은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1530~1614]과 인천(仁川) 변성진(卞成振)[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곡식을 되는 말[斗]이나,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여 ‘두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호암 변성온과 아우 인천 변성진이 학문을 닦던 것을 기려 고을 사림들이 창건하였는데 훼손되어 5대손인 변동빈이 초당을 중건하였다. 현재 변성진의 후손인 변태섭이 관리하고 있다.
1815년 10월 영모정에 호암의 5대손 변동빈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나 오랜 세월에 유실되었다. 1954년 현 위치에 재건립하였다. 같은 시기에 영모당 재실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6.62㎡ 남짓한 공간에 지어진 조그마한 정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암초당 [斗巖草堂]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3) 호암 변성온 묘와 5세손 변동빈 묘 (두암초당 좌측 산속)
변성온(卞成溫)
1540년(중종 35)∼1614년(광해군 6).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여윤(汝潤), 호는 호암(壺巖).
문숙(文肅) 변계량(卞季良)의 7세손이며, 동생 변성진(卞成振)이 있다. 성품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처음에는 밀양(宻陽)에서 거주하였으나, 후에는 무장(茂長)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는데, 발걸음을 오히려 더 중후하게 하여 평상시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변화에 대처할 줄 모른다며 나무랐다. 그런데 변성온이 말하기를 “비가 내리는데 인가(人家)까지 가려면 멀었다. 새처럼 빠르게 날아도 결국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비를 피하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발걸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보다는 평상시 태도를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식자(識者)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는데, 뛰어난 문장과 더불어 성리학에 정심(精深)하였으며, 이학(理學)과 수학(數學)에 밝았다. 이황과 성혼 그리고 박순(朴淳)이 변성온의 학문을 칭찬하였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에는 변성온이 거처하던 호암초당(壺巖草堂)의 상량문(上梁文)과 변성온의 묘갈명(墓碣銘)이, 김인후의 『하서전집(河西全集)』에는 「변성온록(卞成溫錄)」이, 황윤석(黃胤錫)의 『이재유고(頤齋遺藁)』에는 「변성온전(卞成溫傳)」등이 실려 있다.
또 이황(李滉)의『퇴계집(退溪集)』에는 「호남변성온수재래방 유수일이거 증별오절(湖南卞成溫秀才來訪留數日而去贈別五絕)」이 실려 있는데, 퇴계(退溪)와도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4) 병바위와 전좌바위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호암마을에 있는 높이 35m의 바위와 그 일대 지역이다.
병바위는 1억 5천만 년 전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과 응회암이 오랜 시간동안 침식·풍화되면서 생성되었다. 바위의 모양은 보는 위치에 따라 호리병 모양, 사람머리 모양, 북두칠성 모양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지며, 병바위 주변으로 소반바위와 전좌바위(두락암)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잔치집에서 몹시 취한 신선이 쓰러지면서 소반을 걷어차자, 소반 위에 있던 술병이 굴러 떨어져 주진천에 거꾸로 꽂힌 것이 병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병바위의 독특한 형상과 두암초당, 소반바위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풍경은 그 자체로 심미적 가치를 지니며, 조선시대 다양한 문헌과 문학작품에 병바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역사적·인문학적 가치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2021년 12월 6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창 병바위 일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전좌 [ 殿坐•殿座 ]
임금이 친히 정사(政事)를 보거나 백관들의 조하(朝賀)를 받을 때 정전(政殿)의 옥좌(玉座)에 나와 앉는 일. 또는 그 자리.
[네이버 지식백과] 전좌 [殿坐•殿座]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5) 선운사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번지)
동백나무 숲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천 년 고찰
아름다운 동백 숲으로 유명한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 년 고찰이다. 우람한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호위하는 숲 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대웅전을 병풍처럼 감싸며 군락을 이룬 동백나무 숲을 볼 수 있는데 500년 수령에 높이 6m인 동백나무들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도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 등 19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선운사 주변은 잎이 지고 난 뒤 꽃이 피어 일명 ‘상사화’라 불리는 석산의 군락지로도 유명하며 계곡과 산비탈을 수놓는 가을 단풍도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선운사가 자리한 도솔산은 기암괴석이 많아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리는데, 선운사 창건 당시 89개의 암자에서 3,0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만이 남아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도솔암으로 가는 길에는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운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3. 회비 : 5만원 (당일 총무에게 지급)
4. 담당자 : 총무 김은희 (010-3228-6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