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A/S가 삼성전자를 눌러야....
농기계 A/S제도가 확립된 사건
“농협 회장은 이런 일을 알고나 있나? 이렇게 어렵고 힘든 농촌 현실을 알기나 하나 말이다.”
농민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회장실로 연결되었다가 비서실에서 하나로봉사실로 돌려준 것이다.
“차근차근 말씀하십시오. 무슨 말씀이든지 끝까지 다 들어드립니다.”
경북 안동에 사는 농민이란다.
트랙터를 사서 쓴지 6년 되었는데, 엊그제 밭갈이 하려다가 고장이 났다고.
농기계 대리점에 수리를 맡겼다가 화가 났다는 것이다.
술한잔 거나하게 마신다음, 술기운을 빌어 농림부 장관실, 국무총리실, 국회 농수산상임위원장.... 이곳저곳 전화해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털어놓다가 농협회장에게까지 전화했단다.
“내 트랙터가 6년 됐다지만, 아직 깨끗하고 멀쩡해. 작은 고장이 났을 뿐이라고. 그런데 농기계대리점은 수리가 안되니 새기계를 사라는 거야. 이보시오, 트랙터 값이 4천만원이 넘어, 그런 기계를 6년만에 우예 바꾸나? 10년은 넘게 써야 맞지 않는가?”
“농기계대리점에서 왜 수리가 안된다고 합니까?”
“기계 부속이 없다는 거야. 6년이나 지난 기계가 부속이 있겠냐고 오히려 큰소리 치더구만, 그래서 그 부속 이름하고 규격을 적어주면 내가 서울가서 사 오겠다 했지. 그러자, 이번에는 농기계대리점이 흙파서 장사하는 데냐고 하데. 내가 6년전 기계살 때 박씨가 사장이었지. 지금은 그 밑에서 일하던 권가가 사장이야. 나도 같은 권가라 그 사정을 쪼매 알지. 여기저기서 빚얻어 대리점 인수했어..... 무척 어려워.”
“그 때문에 트랙터 수리를 못해준다고 합니까?”
“농기계는 모조리 박사장한테 사고, 수리는 모두 권가한테 맡기면 권가는 어찌 사느냐고..... 수리만 해갖고는 돈을 못 벌겠지. 기계를 팔아야 돈이 남을 테니까.... 듣고 보니 안됐어. 같은 권가 입장에서 싸울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기계를 살 수도 없고... 해서, 술한잔 마시고 여기저기 전화하다보니 농협회장한테까지 전화한 모양이네. 그만 끊어야겠네”
“잠깐만, 안동 어디 사는 누구시라고요?”
“권○○, 안동 일직면..... 아니, 됐네. 괜히 술 취해서 실수하네.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곧 일직농협에 전화해서 권선생의 트랙터 기종과 제조회사를 파악했다.
이어 트랙터 제조회사에 전화하여 A/S담당 최고책임자를 찾았더니 여러차례 전화를 돌린 끝에 소비자센터 담당이사와 연결이 되었다.
“농협 하나로봉사실 팀장입니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올라온 소비자고발 문제입니다.”
“농협에서 웬일로 소비자문제를 거론하십니까?”
“농협에서 농업인소비자보호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농기계 소비자고발은 이 건이 최초입니다.”
“그래서요?”
“먼저 귀 회사는 판매한지 6년된 트랙터에 대해 고장 수리를 요청하였음도 부품이 없다든가, 혹은 대리점 사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수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6년이나 된 트랙터라면 현지에 부품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대리점 사장이 바뀌면 아무래도 그 전 사장때 팔린 기계는 수리가 원활하지 못하지요.”
“법과 규정을 어기는 일입니다.”
“농협이라면서 그걸 말이라 합니까? 그런 것은 업계의 관행이예요. 또 우리 농기계업계의 현실이고요. 괜히 엉뚱한 말씀 마시고 농협 본연의 일이나 잘 하세요. 우리 업계를 만만히 보면 안됩니다.”
“지금 그 말씀을 문서로 만들어 주시오. 아니면 이 전화를 녹음할 테니 다시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얼굴이 안 보인다고 무례하게 막말을 하는군요. 농협이 언제부터 그리도 높아졌나요? 우리 쪽에도 농림부출신, 기획원출신 많습니다. 다칠 수도 있어요.”
“소비자보호법과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따르면 농기계의 부품보유기간은 7년, 그 기간 중에는 반드시 부품이 있어야 하고, 만약 부품이 없어 수리를 못하면 그 기계를 되사주어야 합니다. 대리점 사업자가 바뀌어도 A/S책임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 문제를 명확히 합시다.”
“법률은 그렇지요. 그러나, 그것은 이상이고, 정책의 목표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아요.”
“어제까지는 그랬지요. 오늘부터는 아닙니다. 농기계 A/S제대로 못하는 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합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지금의 농기계업체 중 A/S가 미흡한 업체를 모두 폐업시켜 절반으로 줄이고 지역별로 A/S책임제를 실시해야한다고 역설하고 계십니다. 지금 A/S를 제대로 못하는 업체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한번 끝을 봅시다.”
“잠깐만, 안동 일직이라고 하셨지요? 지금까지 한 말은 농담이고요. 확실히 수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소비자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아니, 구호가 아니라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곧바로 일직의 권선생께 전화, 머지않아 농기계회사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라 해 주었다.
권선생은 겉으로는 수고했다고 치하는 하지만, 전혀 믿지 않는 눈치, 당연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사실 믿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농기계회사에서 똑같은 기종의 트랙터를 가져오더니 권선생의 트랙터와 바꿔 가더란다.
“어르신, 우선 이 기계로 농사일을 하십시오. 선생님 기계는 저희가 정밀검사를 하고 수리를 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기계를 가져간 지 꼭 12일되던 날, 권선생의 기계가 되돌아왔다.
권선생은 함께 온 기술자를 태우고 트랙터의 시운전과 농작업을 모두 다 해 보았는데, 마치 새기계를 산 것처럼 기계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논둑을 펄쩍 뛰어넘을 만큼 힘이 넘치더란다.
그리고, 수리비가 무척 싼 것에 놀랐다고 한다.
수리팀은 앞으로 쓸 수리부속품 한보따리와 농기계 교재 한아름, 윤활유며 공구세트를 몽땅 내려놓더니 한줄로 정렬하여 고개를 깊이 숙여 보이고 떠났다고 한다.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정도의 서비스가 농기계 A/S기준인 것이다.
농기계라고 해서 A/S가 가전제품 회사보다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농기계를 구입할 때 우리 농업인은 농기계 값만 지불한 것이 아니라, 농기계 값에 더하여 A/S비용, 부품 확보와 보유비용, 금융비용까지 모두 지불했었다.
그런데 농기계업체는 사후봉사비용을 몽땅 업체수입으로 처리해 버리고, 농업인에게는 부품이 없다거나 오래되었다며 새기계 구입을 권유해 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안동 일직에서 문제가 생기고, 큰 논쟁이 벌어진 다음부터 우리나라 농기계 A/S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든 업체의 A/S수준이 대체로 만족스러울 만큼 올라섰다.
이는 농협회장님께서 농기계 A/S의 수준과 목표를 제시하고, 부실한 업체의 응징까지도 거론하였는데, 마침 농업인소비자보호사업을 통해 그 수준과 품질을 직접 감시 감독할 수 있었기에 우리의 목표달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농기계나 영농자재처럼 사업자를 상대로 하는 일은 정성과 설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수익을 보장해 주어도 모든 서비스가 원하는 만큼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응징할 수 있다는 힘과 의지, 열정을, 돈키호테같은 열정을 보여주어야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