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짓기 등 허드렛일 많은 농촌 농부 삶 토대 이루는 중요한 요소
필자는 현재 충남 홍성군의 청년농부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한 청년과 함께 일하고 있다. 교육생 신분의 이 청년은 필자와 함께 영농뿐 아니라 체험농장 운영과 연수를 함께하다보니 때에 따라 맡은 역할이 달라진다. 체험객 방문 때는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기도 하고, 농기계교육 때는 조교가 되기도 한다.
농사야 철에 맞게 그날그날 할 일을 해내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과 교육이다. 더욱이 우리 농장의 체험은 호미로 작물을 캐는 단순 체험이 아니라 교과과정과 연계되는 현장학습활동인지라 무엇 하나 소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유기농벼의 한살이 중 파종실습을 하려면 챙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모판·상토·물·비닐·볍씨·포장 준비에 더해 체험 준비의 절반은 농장 청결이기에 체험 하루 이틀 전날은 부산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집은 평소 그렇게 어질러놓지 않는 편임에도 체험날이 다가오면 마치 검열받기 전의 군인들처럼 긴장의 연속이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고 벌여놓은 것들을 제자리에 되돌리는 일 또한 녹록지 않다.
게다가 귀농·귀촌 후배들의 부름에 응할 때면 항상 교육생과 동행했다.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통에 다른 농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도 자주 마주쳤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집 짓는 현장에 들렀다가 꼭 거쳐야 할 공정을 건너뛰려 해서 그 길로 장비를 한짐 챙겨갔다. 그리곤 다른 이들도 불러 어두워질 때까지 일한 적도 있다.
그외에도 비닐하우스나 창고 짓기부터 고령의 어르신댁 마루 수리, 자질구레한 일손돕기까지 농촌의 일들을 지난 몇달간 압축해서 겪어야 했다. 아마 스스로도 이런 일들이 과연 연수의 범주에 속하는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다른 농가의 교육생 중 한명은 이따금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필자는 새내기 시절에 작물을 가꾸는 일 못지않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어렵사리 해결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야 그 시절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됐다. 십수년 전 1980㎡(6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직접 지을 때도 그랬다. 무선 드릴 하나만 있었어도 아내가 하루에도 몇번씩 수십m를 오가며 유선 드릴을 콘센트에 연결하는 수고를 덜었을 것이다. 또한 그로 말미암은 족저근막염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농촌에서 스무해를 지내면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된 점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쓸데없는 게 하나도 없고 나중에는 어떻게든 농부의 일과 삶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고속절단기 사용을 자주 하다보니 이것만으로도 다양한 재료의 절단과 홈파기·연마 등을 활용해 나만의 농기구 제작이 가능해졌다.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뚝딱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필요할 때마다 읍내로 사러 가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마치 예전에 농가에서 볏짚만 가지고도 신발과 도롱이 등 농사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뚝딱 만들던 예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 교육생들이 짧은 호흡으로 선도농가와 결합해 경험하는 일들을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가에서 경험하는 일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면 내 안에 고이는 게 없지 않겠는가. 물론 선도농가도 교육생의 특성을 파악해 일과를 단순 노동이 아닌 교육으로 바꿔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간 우리 농장을 거쳐간 후배들이 한사람도 농촌을 떠나지 않고 마을과 지역에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 흐뭇하고 대견하다. 게다가 주위에서 뭐든지 잘해낸다는 평가를 들으면 더욱 그러하다. 연수기간 내내 ‘할 일이 없으면 제자리에서라도 뛰어라’라는 게 필자의 주문이었는데 모두 얼마나 힘들었을까. 올해도 폭염을 비롯해 어려운 고비를 함께 이겨낸 후배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꼭 해주고 싶다.
“아름다운 것은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보인다.”
이환의<홍성귀농귀촌지원센터장·전국귀농운동본부 지역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