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가지 (창세기 30장 35~43절) - 야곱의 버드나무 신풍나무
야곱은 자신의 신부 라헬과 레아를 얻기 위하여
14년 동안 쉬지 않고 외삼촌 라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10명의 아들을 얻은 후에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라헬을 통하여
예수님을 상징하는 요셉을 낳게 됩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요셉이 태어남으로
야곱은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 말씀은 약속의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가(예수님) 오심으로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는 교회가 본향으로(하나님 나라)
돌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에서 여호와께 서원한 대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외삼촌 라반을
다시 6년을 섬기게 됩니다.
6년의 기간은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기간으로
말씀 전도자를 세워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천하 만민을 구원하는 기간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교회의 시대를 말합니다.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이 어떻게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인지를
야곱의 이야기를 통하여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은 죄인임을 아는 것을 말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율법을 온전히 지켜
의롭다 여김을 받으려는 자와 세상 사람들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야곱이 점도 없고 아롱지지도 않은 양 떼를 어떻게
점이 있고 아롱진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품삯으로 받게 되는지
본문 35~36절부터 봅니다.
창30: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창30: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여기서 외삼촌 라반의 양 떼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말하며
얼룩무늬 있고 점 있고 아롱진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사흘 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했다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구별된 교회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렇게 구별된 모습을
출애굽기 10장 21~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출10:21 <아홉째 재앙 : 흑암이 땅에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출10: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출10: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빛이신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애굽) 사람들과 달리
빛이신 예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이 모습을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는데
본문 37~39절을 보면 ....
창30: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창30: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창30: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이 말씀을 읽으시면 야곱은
외삼촌의 양 떼를 빼앗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버드나무는 시냇가에 자라는 나무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인 복음의 말씀을 머금고 있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나무를 말하며
껍질을 벗겼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고
살구나무는 민수기 17장에서 고라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
아론이 가지고 있던 살구나무 지팡이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맺은 사건을 통하여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임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민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그리고 신풍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신풍나무는 하얗다라는 뜻을 가진
(라반)이라는 단어 유래된 (리브네)라는 히브리어로
포플러나무를(플라타너스 나무) 말하는 것으로
부분적으로는 몸통이 하얀색을 띤 나무인 것입니다.
나무 기둥의 색이 부분적으로 벗겨진 곳에는
하얀색을 띠고 있는 나무가 포플러나무의 특징으로
포플러나무의 몸통은 얼룩덜룩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또 하얗다라는 뜻을 가진 (라반)이라는 단어를
창세기 49장 12절에 (희리로다)라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11~12절의 말씀을 보면
신풍나무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창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창49: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여기서 나귀와 암나귀 새끼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인 교회를 상징하고
포도나무는 자신의 백성의 죄를 전가 받으셔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진노의 심판을 받으시며 많은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시는 많은 피로
십자가 밑에(포도나무에) 매여 있는 저와 여러분의(나귀) 죄를
정결케 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피를 흘리시며 죽으신 예수님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이가
우유로 말미암아 희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 자신의 백성에게 생명의 양식인
우유를(복음의 말씀) 먹이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많은 피로
자신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먹여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정결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복음의 말씀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풍나무는 창세기 49장 11~12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많은 고난과 고통을 받으셔서 피 범벅이 되어 죽으셨지만
영적으로 어린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인
젖을(우유,복음의 말씀)먹이시기 위하여
죽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신풍나무의 모습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냈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전가 받아 벌거벗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많은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는 모습으로
자신의 백성의 생명을 복음으로 살리려고
많은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8~39절에 보면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할 때 양이 새끼를 배는데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말씀 전도자가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인 십자가만 전할 때
그 말씀을 듣고 있는 교회가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는 뜻으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의 야곱의 모습은
말씀 전도자의 임무가 무엇인지 잘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성경(구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만 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또 이러한 야곱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는 곳이
애굽에 있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을 잡는 모습인 것입니다.
흠이 없는 양을 잡고 그 밤에 유월절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모습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모습의 모형인 것으로
말씀 전도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전하고
그 말씀을 먹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장자처럼 심판을 받지 않고 출애굽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7~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사도바울은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있었고
율법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던 사람인데
그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으로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며
그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것으로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인
복음의 말씀만 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야곱은 교회를 상징하는 양 떼가 먹는
물 구유 앞에 십자가를 상징하는 나뭇가지를 세웠을까?
그 이유를 이미 다 설명드렸는데
생명의 양식인 복음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예수님의 예비 신부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인
십자가만 전해야 믿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요한복음 19장 37절을 보는데 ....
요19: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많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이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로마 군병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직접 못 박고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진 자가
예수님이 주시는 의에 옷을 입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고난과 고통을 받으시며 죽으셔서
자신의 의에 옷으로 백성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어
의롭다 여겨 주어 구원해 주시는데
벌거벗은 몸이 되어 십자가에서 많은 피를 흘리시며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믿음에 이르게 되어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이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뜻인데
스가랴 12장 10~14절을 보면 ....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자신이 낳은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처럼
애통하고 통곡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 전도자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통곡하고 애통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는 것인데 ....
이는 성령님이 죄인임을 깨달아 믿게 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요시아 왕이 활에 맞아 죽자
온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이 슬퍼하고 통곡하는 것과 같이
슬퍼하고 통곡하게 된다고 11절은 말합니다.
슥12: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이 말씀을 잘 그리고 있는
역대하 35장 22~25절을 보면 ....
대하35: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대하35: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대하35: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대하35: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이 모습과 같이 애통하고 통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를 바라보고
애통하고 통곡하는 것은 각자라는 것입니다.
슥12: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슥12: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슥12: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동일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더라도
애통하고 통곡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각자 따로라는 것으로 구원은 각자임을 말합니다.
동일한 말씀을 듣더라도 성령이 임한 사람만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임을 깨달아 믿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한 것으로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 떼를 얻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창세기 31장 8~10절은 말합니다.
창31: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창31: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31: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이 말씀은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말씀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믿음에 이르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 전도자와 목회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야곱의 모습을 통하여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며
본문의 야곱의 모습은 예수님이 말씀 전도자를 통하여
어떻게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으로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헬을 통하여 요셉이 태어나고
야곱의 양 떼를 부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약속하신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복음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야곱의 모습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와 교회를 나올 때에
영적인 양식에 목말라하는 마음으로 오셔서
말씀 전도자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장남을 잃은 부모의 마음처럼
애통하고 통곡하는 마음을 선물로 받으셔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