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과 다윗 16 (삼상 30:1-30)
영적적용 : 열심론
요약
아말렉은 세상정욕의 상징이다.
아말렉이 언제나 피곤하거나 뒤쳐질 때 등장하듯 세속의 사슬은 신앙이 약하거나 방심할 때 찾아온다. 또 아말렉이 등장하여 성을 불사르고 재물을 탈취하고 가족을 잡아갔듯 세속은 심령을 폐허로 만들고 죄의 노예가 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을 이기려면 아말렉은 정죄된 족속이었듯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박고 신앙적인 열심을 가져야 한다.
설명
본문은 다윗의 군대가 아말렉에게서 가족들을 구출해 온 장면이다.
1. 아말렉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 아말렉은 세상정욕의 상징이다(약4:4, 요일2:16).
1) 출17:16 - 여호와의 영원한 원수
2) 신25:19 - 천하에서 도말하라
3) 창36:12 - 망령된 육의 사람 에서의 후손
2. 그럼, 아말렉은 언제 등장하는가?
1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 신앙적으로 방심 피곤 약할 때(신25:17-19)
3. 아말렉이 등장하면 어떻게 되는가?
3-4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 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 우리 안의 생명과 같이 귀한 것들이 죽거나 빼앗기거나 불탄다.
4. 아말렉을 이기는 길 1
8절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 정죄된 족속 즉 이미 십자가에 못박힘을 알자(갈6:14).
5. 아말렉을 이기는 길 2
9-10절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이지만 피곤하지 않아야 한다. 즉 신앙적 열심의 분량이 곧 세상을 이김과 비례한다.
강해
본문은 다윗의 군대가 블레셋 전쟁터에 나가 본거지인 시글락을 잠시 비운 사이에 아말렉의 침공을 받은 사건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시글락을 불태우고 물건을 약탈하고 다윗과 그의 군사들의 모든 가족들을 다 잡아갔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잠시 암담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가족들을 다시 구출해 온 장면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이 주는 영적비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1. 아말렉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출17:16을 보면 아말렉은 여호와의 영원한 원수라 했습니다. 또 신25:19에서는 아말렉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했습니다. 또 아말렉은 창36:12에 망령된 육의 사람 에서의 후손입니다. 또 아말렉을 멸하지 않으면 내가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또 그들의 거처는 남부광야와 시내광야였고, 그들은 거기서 유목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아말렉은 세상정욕의 상징입니다. 여기 정욕이란 세상을 사랑하는 욕망을 뜻합니다. 그 증거로 에서도 육신의 정욕으로 장자의 명분을 팔았고, 세상을 사랑함이 하나님의 원수요(약4:4, 요일2:16), 광야는 세속의 상징이요, 또 아말렉을 치지 않으면 버림을 받듯 바울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고전 9:27)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이란 세상정욕을 뜻합니다.
2. 그럼, 아말렉은 언제 등장합니까?
1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아말렉은 다윗이 시글락을 잠시 비운 사이에 등장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출전하는 것 때문에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그들이 침략했습니다. 방심하거나 피곤하거나 약할 때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신 25:17-19에도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온통 피곤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4절에 "울 기력이 없도록"이라든가, 10절에도 "피곤하여", 12절에도 밤낮 사흘을 먹지 못한 애굽 소년도 그렇고, 17절에 다윗이 아말렉을 칠 때도 그들이 가장 피곤할 때였습니다. 아말렉을 이야기 하면서 왜 이토록 피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모세도 아말렉과 싸울 때 두 손을 올렸기 때문에 그 손이 아주 피곤했습니다. 이 피곤함을 빼면 아말렉이 설명이 안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 피곤해지면 반드시 죄의 시험이 찾아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 피곤이란 용어는 단순히 지치다는 뜻이 아니라 열심을 잃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비슷한 용법이 갈 6:9이나 히 12:12에 나타납니다. 즉 신앙의 열심을 잃었을 때 세속의 시험은 나도 모르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속의 줄이 나를 얽어 매기 시작합니다. 그 줄은 처음에는 거미줄과 같이 가늘지만 점점점 강하게 동여 매서 나중에는 삼손을 결박하듯 완전히 세속으로 결박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알고보면 신앙의 안일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그랬듯 육신의 안일이 결코 상책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아말렉이 등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3-4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 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아말렉이 등장하면 생명과 같이 귀중한 것들이 다 잡혀갑니다. 이처럼 세속이 들어오면 우리 안의 생명과 같은 것들이 죽거나 빼앗기거나 불탑니다. 믿음이 죽습니다. 영성이 죽습니다. 은혜를 쏟습니다. 능력도 잃습니다. 아히노암이 우정이듯 사랑도 사라지고, 아비가일이 기쁨이듯 기쁨도 사라집니다. 그 결과 심령이 불탄 것처럼 죄로 인해 괴롭고 답답합니다.
6절에 나타나 있는 대로 이 때가 바로 다윗에게 있어서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을 목숨 걸고 따르던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에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신경을 건들었고 또 시글락의 방비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 이유는 블레셋 비위를 맞추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내 몸의 비위 맞춰 좋자는 대로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벧전 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했습니다.
4. 아말렉을 이길 가망성은 있을까요?
8절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감사한 것은 이 아말렉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정죄된 족속이란 점입니다. 신 25:19절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했습니다. 복음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힌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갈 6:14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 전쟁이 이미 하나님께서 붙이신 전쟁이듯 성도들도 이미 이겼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죄를 이기는지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죄를 가지고 고민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그동안 수 없이 실패했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입니다.
21절 이하에서 보여주는 전리품 분배 문제를 통해서 보여주는 진리 역시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전쟁임을 보여줍니다. 즉 복음적으로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신 전쟁이란 점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기초 위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좀 더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5. 그래서 아말렉을 이기려면 피곤을 물리쳐야 합니다.
9-10절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육백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당시 브솔 시내는 건기라 물이 없던 때입니다. 그러나 그 강은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힘이 없는 자는 비탈에서 미끄러져서 건너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600명 중에 피곤한 자 200명은 그곳에 남고 400명만 아말렉을 치러 갑니다.
여기에 아말렉을 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피곤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또 11절을 보면 다윗의 군대가 가다가 들에서 피곤에 지쳐 정신을 잃은 애굽 소년 하나를 만납니다. 그 소년은 아말렉의 종으로 그가 병들자 내버림 받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먹지 못해 피곤하여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살아나야 아말렉의 행방을 아는데 그는 지금 피곤에 지쳐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소년에게 음식을 먹여 그의 피곤을 물리칩니다. 이렇게 아말렉과의 전쟁은 계속하여 피곤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그 결과 약대를 타고 도망친 400명의 소년 말고는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원리는 먼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이지만 그러나 그 복음을 믿는 그 믿음의 열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이미 승리자지만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승리의 확신에 서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하고 순종하
여 충만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 중에는 열심은 있는데 복음을 몰라서 스스로 이기려고 하거나, 아니면 복음은 아는데 열심이 없거나 그래서 시험에 빠집니다. 그래서 언제나 두 가지 방향에서 신앙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다윗은 약대를 탄 400명의 아말렉 소년들은 놓치고 맙니다. 약대는 사막의 배라고 할 만큼 전천후 운송수단이요 또 소년이니까 피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아직 다윗에게는 그들을 따라 잡을 만큼의 기동력과 피곤을 이긴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놓치고 맙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세상 정욕을 이기는 수준은 피곤을 이긴 그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피곤을 이겼느냐? 그 피곤과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상 4:42을 보면 500명의 시므온 지파에 의해서 진멸당합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예표입니다. 즉 성령의 역동적인 힘을 받으므로 세속의 아말렉은 힘을 잃고 만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의 열심은 생명처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에 설 뿐 아니라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십시다. 그래서 피곤을 물리치고 주님께 몸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온전히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