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그동안 갖가지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웃고 울기도 했던 시간을 빛바랜 추억 속에 묻어두고 가끔씩 꺼내보며 살아간다. 모두 말하길 나이가 들면 마냥 귀를 세우고 경청하면서 가능한 입을 다물고 침묵(沈黙)하며 지내라고 한다. 그만큼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섣불리 나섰다가 자칫 주제도 모르는 사람이란 비난을 받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대화의 단절은 가정과 사회에서 긴장과 불신의 벽만 쌓여간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갈수록 외부 접촉도 줄다보니 가정에서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이마저도 대개 부부가 겪은 소소한 사연을 두고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아주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미세한 변화에 귀 기울인다. 그나마 대부분은 주로 아이들의 가정사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인데 이런 재미마저 없다면 아주 삭막할 것이다.
세월이 하수상하니 어느 누구에게나 가족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어느 누구도 가정의 결함이 없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아무도 모르게 크고 작은 상처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애써 잊고 살아갈 뿐이다.
가끔은 누구를 만난다 할지라도 대화의 화제를 정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자녀 이야기는 금기시 된 주제이다. 세상 풍조가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까지 낳지 않으려하다 보니 자칫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조심스럽다. 가까운 친, 인척간에도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대화를 나누기 십상이다. 그러하니 주변의 친구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무슨 가족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겨우 사정이 비슷한 경우나마 조심스런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70년 대 초 무렵에 『별들의 고향』이란 소설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최인호」 작가가 한동안 ‘가족 이야기’를 연작으로 발표한 일이 있었다. 쉬운 소재면서도 자칫 자랑거리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 다루기가 어려운 글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가족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서로의 공동의 추억거리를 만들어가면서 사는 것이 가정의 평화임을 절감하였다.
아무래도 보통의 경우에 가족과 그 주변 이야기가 평소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의 교유관계, 당면한 과제, 취미와 활동 등에 관한 소소한 내용을 알게 되면서 공동의 추억거리가 만들어 진다. 마찬가지로 이웃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고 연민의 정으로 포용하는 마음도 서로가 관심 있게 나누는 따뜻한 대화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마치 껍데기만 남은 우렁이가 되었다. 가장 필요한 시절에 비좁은 집에서 살다가 겨우 마련한 도심의 아파트를 팔아 자식 몫으로 내놓고 도시의 변두리로 몰리고 있다. 아무래도 선대에 효도하고 후대를 위해 희생하는 샌드위치 세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가까운 친지들과도 왕래가 적으니 이웃사촌만도 못한 관계라고 자조(自嘲)하기도 한다. 오히려 종교생활과 이웃 간의 활발한 교유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 연이어 손자들이 여러 소식을 전해왔다. 우선 중학생이 된 큰 외손은 카운티의 수학 경시대회에 참석했다고 하였다. 작년에도 스펠링 비(SPELLING BEE)와 과학, 미술, 음악연주회, 보이스카웃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였다. 우리와는 다르게 자발적인 학습을 장려하는 교육의 시스템이 잠재력 개발에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교육은 우선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주안을 둔다.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를 중시한다. 동시에 서로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화합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가르친다. 우리처럼 기를 쓰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강자 제일주의가 결코 아니다.
곧 여름 방학이 시작하면 과거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이 영감을 얻었던 〈갈라파고스 제도〉로 가족여행을 한다고 한다. 작년에 〈옐로스톤〉에 동행하여 자연의 경이로움을 함께 했는데 역시 여행은 ‘살아있는 현장교육’인 셈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친손은 Speech Contest에 참석을 했다. 평소에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수 년 간을 배웠어도 매끄럽지 못한 자신의 영어 실력이 못내 아쉬웠는데 교육의 방법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과도한 경쟁에 내몰려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마음껏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창의력을 배양시키는 교육환경이 매우 부족하다. 학원이 학교를 대신하는 기형의 구조이니 어떤 교육철학이 있을 리 없다. 전반적인 교육제도의 변화가 없이는 국가 경쟁력에서 갈수록 하락할 것이라는 보도가 조기에 개선되어 미래에 밝은 희망을 주길 바란다.
동시에 직장에서 근무하는 아들의 근황이 잡지에 소개가 되어 관심 있게 읽어 보았다. 학생시절에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충실하도록 대화의 문을 열어두었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부모와 상의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이따금 쪽지 편지로 무안함을 피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진로의 결정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 각 가정을 꾸민 후에도 수시로 아이들 교육과 당면한 문제의 이야기를 해주니 서로 이해가 빠르다. 항상 문이 열린 대화의 순기능이다. 어쨌든 자라는 아이들이 잔잔한 기쁨을 주더니 이제는 손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그나마 살아가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 그 자체만으로 매사에 감사하고 고마워 할 일이다. 욕심이 있다면 보다 건강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창조주를 찬양하며 남은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갈 일이다. 물론 소망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진대 자주 지인과 어울리면서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시라도 ‘침묵이 금’이라는 속담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4.5.19.작성/6.5.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