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2-1편]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 것이 지혜다 | 전념후념(前念後念) | 힘을 뺀다.(40:32)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The power of Now '책의
25페이지 1장을 보겠습니다
자 1장의 제목은 < 마음은 내가 아니다. >
그러면,
이제 질문이 마음이 내가 아니면 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죠.
항상 구분할 때 지금 톨레식으로 이제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톨레의 용어를 따른다면 마음과 의식을 구분하는 거예요.
마음은 생각 감정, 생각 감정은 생겼다가 없어지죠.
그러니까 생멸, 생각 감정을 생멸한다.
그래서 현상이다.
현상이다 할 때,
그러면 현상 (現象 )의 한자가 코끼리상( 象 )자예요.
코끼리 상자( 象 )는 뭐냐면 중국의 한자에서 우리가
여러분,
중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코끼리를 잘 봤겠어요 잘 못 봤겠어요?
잘 못 봤겠죠.
코끼리는 인도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인도에 있다는 말은 들었어.
그리고 뭐 코가 길고 덩치가 크다 이런 말은 들었는데
실제 본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렇죠 ?
그런데 그래서 어떤 사물을 지칭할 때 익숙하게 보는 것,
인간이 익숙하게 보는 것은 소우( 牛 )자를 써요.
한자에 그래서 물건 (物件 )할 때 이게 소우( 牛 )자죠.
물건, 물건 할 때는 이게 사람인 (人)변에 소우 (牛 ) 자를 써가지고
물건할 때, 우리 일반적인 물건들은 우리가 이렇게 보잖아요 .
그러니까 실제로 보는 건 물건, 소 (牛 )를 쓰고
근데 우리가 잘 못 보는 거, 잘 못 보는 것은 코끼리를 썼어요.
코끼리상 (象) 자는 이미지란 뜻이에요. 요즘 말로 하면!
중국인들 참 현명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상은 무엇이냐?
현재 일어나는 이미지들이라는 거예요.
그 이미지는 실체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법이 무아다' 그러잖아요.
'제법이 무아다' 할 때 이때 '제법'할 때
'제'는 에브리(every)고 '법'은 씽(thing),
에브리싱이 무아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 말은 에브리싱(everything)이 현상이다, 이미지다.
현재 잠시 인연따라 나타난 이미지들이다.
그런 뜻이 있어요 이 말 자체에.
그러니까
그 인문학의 한 분야가 이런 어원학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원학에서 보면 참 재미있어요.
마음심( 心)자 하고 물수(水)자가 어원적으로 보면 같은거예요.
물수 (水) 자는 뭐냐하면
밖에는 음이고 양이고 음이 되어서 이게 물수가 되는 거예요.
가운데는 양이고 아래 위로는 음이 되어서
요게 세우면 요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쓰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살짝 살짝 이렇게 그래서 물수자고,
마음심자도 같은 요게 물수자를 변형시킨 거예요.
그러니까 작은 점 요거를 작은 점으로 표현하고
요거는 조금 길게 표현하면 돼.
그래서 아무튼
여러분 물수( 水 )자하고 마음심 (心 )자가 같다는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다시 한번 우리 항상 공부할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까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게 지혜예요.
동양의 지혜를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물처럼 다룬다.
공자도 물 앞에서 물이여 물이여! 하고 감탄했고,
노자도 상선약수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이 가장 착한 마음은 물 같은 마음이다.
근데 이때 물 같은 마음이 뭐냐면 물은 하나예요.
어제도 제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계곡에
잠시 오후에 산책을 했는데 물이 얼마나 맑은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비가 좀 왔잖아요.
이 서울에 가까운 데라도 물이 쫙 흐르는 곳에는
너무너무 물이 맑은 거예요.
그러니까 물이 맑을려면 우리 마음이 물 같아서
마음이 맑을려면 통해서 흘러야 돼요.
깨끗함의 기본 원칙이에요.
그러면 물이 만약에 한쪽으로 들어갔는데
막혀 가지고 막히면 고이고,
고이면 어떻게 되죠? 물이 썩지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물이 마음인데
마음이 흘러서 통하느냐? 고여서 썩느냐?
이게 모든 지혜의 정수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언제 막히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언제 막히느냐? 마음을 뺏길 때 막혀요.
마음을 뺏긴다.
어떤 대상에 내 마음을 뺏기면 그 대상에 이제 막히는 거죠.
흘러서 통해야 될 거 아니예요.
그래서 내 마음이 어느 대상에 가서 자꾸 가서
그쪽으로 마음을 뺏기면
내 마음은 이제 종이 되는 거예요. 상대의
그걸 미혹(迷惑)이라 그러죠. 불교에서는
그러니까 미혹이라는 말이 마음을 뺏긴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어딘가에 가서 이 내 마음이 붙어 버리면 썩는 거에요.
그래서 육조스님이 깨달은 대목도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할 때
이 마음이 물처럼 통해서 흐르게 해라.
머물면 고여서 썩는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내 마음이 지금이라도 어디 가서 붙으면
혹은 뺏기면 내 마음이 썩고 썩으면 번뇌가 일어나요.
생각이 계속 일어나요. 그렇지요. 그쵸?
생각이 계속 일어나요.
자, 내 마음이 어디 가서 붙지 않으면
항상 내 마음은 흘러서 통하겠죠.
그런데 또 하나가 나, 내 의도와 상관없이
안에서 또 생각 감정이라고 하는 마음이 또 일어나지요.
그러면 걔들을 흘러서 통하게 해야 돼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을
흘러서 통하게 하는게 지혜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어떻게 하는가?
여러분 감정을 다 표현해 줍니까?
감추지 않나요? 감추고 억누르지 않나요? 그럼 고여서 썩어요.
억눌린 감정이 내면에 고여서 썩는 거를
심리학 용어로는 '내면아이'라고 불러서
그 억압된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끊임없이 칭얼거리는 거예요. 안에서~
생각 감정이 일어날 때 충분히 발현되어서
이게 표현되고 흘러서 지나가면 아무런 흔적 없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데
그거를 억압하면 막히고 썩는다.
어디서 썩느냐? 인간의 무의식에서~
의식의 표면에서는 환해서 잘 사는 것 같은데
그 아래에 억압된 무의식 층에는,
그 지하층에는 기생충이라고 부르는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는 그런 인격체들이 있다.
한 둘인가? 많다. 그래서 중생(衆生)이에요.
중생, 무리 중 (衆)자에 생명 생 (生)자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 안에는 여러 가지 인격체들이 같이 있다.
다중인격이라고 표현하는 그게 중생이란 말은
우리 안에 많은 감정들이
억압되어 있는 사람을 중생이라고 부른다. 이해되지요?
그러니까 계속 생각이 나고 썩으니까 냄새가 계속 풍기잖아요.
일단 번뇌망상이 계속 들끓는 거죠.
그게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악순환을~
그 윤회, 요게 이제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청소해야 되잖아요. 청소한다.
지금 청소하는 법 배우는 거예요.
자기 무의식 청소하는 거,
그래서 마음은 현상이다.
그리고 의식은 본질이다. 할때
이 본질을 지금 톨레는 마음은 내가 아니다.
생각 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 본질인 의식이다.
그래서 이걸 '참나'라고 지금 부르고 있어요.
참나, 나는 누구인가? 할 때 '나는 의식이다.'
그러면 여러분, 지금 이 책 시작하자마자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어느 우화에 거지가 평생 거지 노릇하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깔고 앉아 있는 통 그 안에 뭐 들었소? 라고 물어보니까
한 번도 거지가 열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매일 그 통에 깔고 앉아 가지고 동냥을 하는데
그래서 한번 보자고 해서 열어보니 금덩어리가 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어디 앉아 있어요? 금덩어리 ㅎㅎㅎㅎ
근데 여러분, 생각을 안 한다 이거예요.
실제로 자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가 뭐냐면 상자,
우리가 지금 누구나 다 앉아 있는 상자, 상자가 뭐냐, 공간이에요.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앉아 있어요?
공간에 앉아 있지 않나요?
근데 이 공간을 의식하느냐 이거에요, 인간이~
인간이 살면서 이 공간을 의식하느냐 이거예요.
거의 의식 안하고 살지요~
그러면 공간이, 여러분, 공간을 관찰해보면
공간이 그냥 그냥 nothing의 공간은 없어요.
이 소리가 어디서 나지요?
지금 제 목소리가 어디서 나고 있어요?
공간에서 나고 있지 않나요?
지금 이 바람이 어디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고 있어요?
공간에서 불어오고 있잖아요?
여러분 몸뚱이도 어디에 있어요? 공간에 있죠.
이 공간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현상이다.
이걸 코끼리 象자로 쓰는 이미지라고 쓰는 가장 주된 이유는
생겼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빨리 생겼다가 사라지는가?
여러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 소리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시간을 보세요~
찰나 아닙니까?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찰나 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알고 보면, 그래서 이런 고체로 보이는 것들도 알고 보면
입자가 지금 수없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요?
과학적으로 보면 이거 안이 텅빈 공간이라는 소리 아니에요?
공간이 지금 입자가 있는데 조금 더 여기보다는 밀도가 높아서 이렇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조금만 우리가 눈이 예리해지면
이 공간에 텅빈 공간은 nothing이 아니라
자, 이 텅빈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우리 의식이 이렇게 차 있죠~
여러분, 우리 의식이 어디 있나요?
우리 의식이, 자, 의식의 크기가 있나요?
자, 다시 처음부터, 지금 하여튼 새로 오신 분도 계시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어요. 앉아 있는 건 사실이죠.
이거 부정할 수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다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자, 그러면 이렇게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있는데,
첫 번째는 몸뚱이가 있죠. 맞아요?
몸이 있잖아요. 그렇죠, 이거 부정할 수가 없잖아요.
몸이 이렇게 있어요.
근데 재밌는 거는 내가 내 몸이 있는 곳에 몸만 있느냐는 문제에요.
자 지금 이 자리에 이런 몸이 있어요.
몸만 있어요. 한번 느껴보세요~
몸만 있느냐!
저같은 경우는 이렇게 또렷또렷하게 소리 듣는 거.
그러니까 이 몸뚱아리는 숨 떨어지면 귀 달리고 눈 달렸지만
숨 떨어지면 장작불에 들어가도 뜨거운 줄도 모르고 타버리고 몸은 물질이죠.
몸은 죽으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지요.
근데 이 몸뚱아리는 이렇게 있는데 있다는 걸 아는 것은
몸뚱아리가 지가 하는게 아니라 지금 이것이 안다 이거예요.
지금 몸이 있어 분명히,
그러면 몸이 있다고 아는 것은
몸 자체가 아니고 이거를 의식이라고 부른다 이거예요.
지금 까마귀인지 까치인지 소리가 계속
공부 재료를 제공해 주고 있네요.
그러니까 여러분, 의식이 몸 안에 어디 있어요?
아니면 지금 여기에 다 퍼져 있어요?
의식의 크기가, 크기가 있다? 없다?
의식이 크기가 있다? 없다? 없죠.
남자다? 여자다?
동그라미다? 네모다? 세모다?
뭐라고 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지금 이 공간이 의식이에요.
그러니까 의식 없는 공간은 없어요.
그건 존재할 수가 없어요.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지금 누구나 우리가 깨어 있는
이렇게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의식이 지금 같이 있죠.
육조 스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몸이 있는 곳에 같이 있는 부처님,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요.
몸이 있는 곳에 같이 있는 부처님,이 말 이해되세요?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부처님이 같이 있다.
근데 그 부처님이 뭐냐?
육조 스님은 그 부처님을 불성(佛性)이라고 불렀어요.
불성, 깨어 있는 본질.
본질 性자예요, 佛은 깨어 있는 뜻이고.
그러면 이 불성을, 깨어 있는 본질을
톨레는 뭐라고 부르느냐?
의식이라고 불렀어요.
영어로 하면 awareness가 깨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consciousness라는 말도 써요. 둘 다 써요.
그러니까 지금 의식이 본질이다.
왜냐? 여러분, 현상은 지금 변하죠.
나타난 이미지 같은 모든 것들은 다 변한다.
근데 그것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는
이 무대로서 배경으로서 공간으로서 있는
이 의식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거의 발견인 거예요.
그래서 톨레가 항상 그러잖아요.
나, 의식 그리고 마음은 현상.
일종의 여러분, 이 공간 자체가 호텔 같은 곳이고,
이 호텔의 현상들은 투숙객 같아요.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같은 방이라도 매일 밤 바뀌잖아요.
가끔 장기 투숙객도 있지만,
장기 투숙객도 가끔 있어요, 있기는.
그렇지만 거의 다 바뀌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호텔처럼 본질은 항상 이렇게 있고,
그리고 모든 인연은 손님처럼 왔다 간다.
요 두 개를 일단 구분할 줄 알아야 되는 거죠.
안목이라고 하는 거,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과 본질을 한 번은 구분할 줄 아는거.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상과 본질의 관계가 뭐냐?
현상과 본질의 관계가
지금 지금 본질은 이 텅 빈 의식공간이죠.
의식으로 꽉 차 있는 공간. 오케이.
여기가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명으로 꽉 차 있어서
인연 따라 이 생명이 온갖 지금 모습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요 그냥 살아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이
생명이 가만히 있지 않고
생명의 특징은 가만히 있지 않고
이 본질이 인연따라 현상으로 나타나는 거야.
그래서 하여튼 제일 좋은 비유가, 제일 좋은 비유가
한바닥 가득 차 있는 모든 파도는 물이다. 바닷물이다.
현상은 본질이 인연 따라서 일어났다가 인연 다하면 돌아가는 거,
그러니까 이게 법칙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일반인은 현상밖에 모르고 살아요.
그러다가 본질을 한번 발견해.
본질이 무엇인가?
이 거지가 평생 구걸하면서 깔고 앉아 있는 그 상자,
금으로 가득 찬 상자.
그럼 금으로 가득 찼다 이 말은 뭐예요?
이 텅 비어 있는 의식공간이 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 금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모든 것이 다 금이에요.
이것이 여기서 무한정하게 나온다.
그래서 요 텅 빈 공간이지만
이거를 무진장이라고 불러요.
장은 창고, 무진 끝이 없는 창고.
지금도 이렇게 나와요.
놀랍게도 지금도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법(法)이라고도 해요.
이때 법(法)은 생각, 감정들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이 순간에도 샘 솟고 있다.
이 순간에도 샘솟고 있다. 맞아요.
느껴요. 못 느껴요. 우리는 좀 신비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 정신이라고 하는 신비 속에서 살고 있다.
거지가 평생을 동냥하면서도 깔고 앉아 있는 상자가
이 신비로운 모든 것이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텅 빈채로 깨어있는 우리들의 의식, 정신,
정신이라는 spirit, 같은 말이거든요.
근데 그것이 있긴 있다 이거예요.
그죠?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아가는게 공부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자 그러면 자 지금 방금 우리의 몸하고 생각 감정이라고 하는 마음은
생겼다가 변화해서 사라져서 현상에 속한다.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몸만 있는게 아니고
이렇게 정신이, 깨어있는 정신이 지금 같이 있다.
요 말을 이제는 앞으로 수업시간마다 들으셔서 세뇌될 정도로,
이걸 자꾸 들으시는 거에요. 그러면 문득 문득 지금도 정신이 있네.
그러니까 지금 거지가 평생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볼 생각을 못하다가 저같은 사람이
"깔고 앉아 있는 거 한번 보세요"라고 하는 말을 제가 하는 거예요. 지금.
지금 상황 이해되시죠.
그래서 곧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가
이 공간을 앉아 있다, 이 공간이 막연하게 그냥 빈 공간인가,
아니면 내가 있는 공간을 항상 나의 정신이 같이 있다,
같이 있지 않나요, 요게 좀 정신을 동양에서는 신령스럽다고 표현했어요.
조금 신령스러운 거예요.
모든 공간 자체는 우리의 정신이 없을 때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죽은 공간 같은 건데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자리가 우리 몸이 나타나는 그 자리에는
의식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서 신령스러운 의식이 깨어 있어서
반짝반짝 생명이 그때부터,
의식은 빛이에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가 방광(放光) 하고 있어요.
방광해서 생동감 있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살아나고 있어요.
사실 그런 것만 알아도 여러분이 만약에 댁으로 돌아가셔서
빈방에 들어가면서 불 켜기 전에는 죽은 느낌이거든요.
불 켜고 내가 딱 들어가면.. 과연 애니메이션이라는게 뭐냐면
anima가 이게 그리스어로 영혼이란 뜻이에요. anima 라고 해요.
그러니까 만화영화를 영어로는 애니메이션이라 하거든요
그러면 anima 가 영혼이 잖아요.
한 개 그림에 영혼이 anima 가 animation
tion을 붙으면 이제 이게 명사화 되어서 영혼이 불어넣어진 것이 되거든요.
그러면 같은 그림이 애니메이션이 되면 움직이잖아요.
그러면서 영혼이 불어넣어져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잖아요.
그거랑 같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의 몸은 그냥 그림 이미지 현상 이미지인데
anima 가 있어서 지금 이것이 움직여지면서 아연(뜻밖에),
활기를 띠고 살아있는 것처럼 이렇게 모든 것이 움직여진다
그러면 여러분의 여러분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
죽어있는 그림을 아연 생기있게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만드는 주체가 나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마어마한 사명을 띠지 않았나요?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다 죽었어, 다 죽었어.
실제로 그 선사들이 그래요, 선사들이,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전부 해골 무더기들이다.’
‘다 죽은 사람들이다.’
‘내가 나타나서 모두를 다 살려낸다.’
그런 말 하거든요, 선사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돌아보면 우리는 이 죽은 공간을
아연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람들.’
소중하지 않나요?
그런 걸 자기가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내가 가는 모든 곳에는 다 살려내는 힘이 나한테 있다.
실제로 이 공간도요,
우리가 싹 빠져나가고 불 끄고 다 해버리면
그냥 텅 비고 죽은 공간이다. 이거예요.
근데 한 사람이 딱 들어오면 여기가
그 사람의 의식으로 꽉 차버린다.
완전히 생명의 공간이 된다.
자, 그러면 여러분,
이 몸뚱이가 있는 곳마다 의식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지금 거지가 평생 깔고 앉아 있는 상자가
이 의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조금이라도 실감되지 않나요?
여러분, 지금 여기에 착안한다면,
자, 모든 현상이, 모든 현상이 무엇을 타고 일어나는가?
이게 지금 톨레의 메시지에요.
톨레의 메시지,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현상이 무엇을 타고 나타나는가?’
여러분, 무엇을 타고 나타나요?
무엇을 타고 나타나요? 이 모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무엇을 타고 나타나요?
의식이라는 공간에 나타날 때는
현재를 타고 나타난다. 시간을 타고 나타난다.
지금도 찰나의 현재지요? 오케이?
그럼, 이 찰나의 현재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자, 중요한 이야기네요.
찰나의 현재가 그냥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사물을 타고 나타난다.
현재만 나타나는 법은 없어요.
자, 그래서, 질문!
지난 시간 제가 잠깐 한 거 같은데 다시 질문!
지금 여러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죠?
맞아요? 그럼, 질문!
시간이 어디서 흘러요? 여기 보세요.
시간이 어디서 흐르냐면, 여러분, 시간이 어디서 흐르냐?
요게 물질이지요? 요게 변해가고 있지요?
요게 시간이에요.
소리가 ([음향] 딱! 딱! 딱!) 변해가고 있지요?
따로 시간이 있는 게 아니고,
색성향미촉법이 시간이에요.
현상이 시간이에요.
본질은 공간이에요.
다시, 현상은 그 자체가 시간이에요.
그리고 본질은 그 자체가 공간이에요.
그래서 공간 속에 시간이, 다시 말하면,
공간이 움직이는 게, 공간이 움직이는 게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이 출몰하는 게
시간이다, 이거에요. 현상이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참, 우리 선조들은
하필이면 ‘간(間)’ 자를 3개만 붙여놨다.
모든 단어 중에서 ‘간’ 자가 붙어 있는 단어 3개!
시간, 공간, 인간이다, 이거에요.
그리고 요걸 뭐라고 불렀느냐?
시간, 공간, 인간을 ‘삼재(三才)‘라고 불렀어요.
‘재(才)’는 '천재(天才)'할 때 ‘재‘ 자예요.
‘삼재,‘ 이건 뭐냐면, 가장 중요한 것 보물! 3가지 보물!
중국인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이 세계의 3가지 보물! 시간, 공간, 인간.
이때, 시간은 현상이고, 공간은 그 자체가 본질인데,
시간과 공간이 어디서 만나는가? 그게 인간이라고요.
이 인간의 지금 의식에서 시공간이
다 여기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인간의 의식에서.
인간의 본질은 의식이다.
그 의식에서 시간도 벌어지고 공간도 벌어진다.
지금 이 순간 새로 나오잖아요.
항상 이렇게 나오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난생 처음 아닌가요?
지금 이 시간이 난생 처음 아니에요?
난생 처음이자 우리 남은 여생의 가장 젊은 나이,
이게 선물이다 이거예요.
매 순간순간 난생 처음으로 우리가 맛보고 있는데,
이게 프레젠트다.
프레젠트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프레젠트가 현재이면서 동시에 선물이죠, 프레젠트란 말이.
그러면 지금 맞이하고 있는 이 현재가 나한테 선물로 주어지고 있다.
그럼 이 현재가 조금 전의 맥락에 가면,
이 현재가 나한테 주어지는데, 선물로 주어지는데,
이 현재라고 하는 것이 무엇으로 주어지고 있는가?
저한테는 지금 여러분이 현재예요.
저의 본질이라고 하는 의식 공간에 여러분이,
이 순간 현재가 여러분의 모습으로, 선물로 나타났어!
저한테는 여러분이 최고 선물인 거 아시겠어요?
여러분한테는 제가 지금 의식으로 나타났고, 서로 나타난 거야.
여러분의 본질인 텅빈 의식 공간에 인사동 선방이 지금 나타났고,
그 속에 있는 도반과 뭐 저도 포함해서 이렇게 같이 있는 거예요.
그게 선물로 주어지고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전부 선물이다, 이 순간에.
오늘 또 아침에는 새털구름이 촤~악 그죠.
이제 가을이 되어가니까 새털구름이 정말 제가 탁 보니까,
새털구름이 뭉쳐가지고 높게 흐르더라고요.
아! 봉황이 지나간 꼬리구나 그랬어요, 제가.
이 하늘에, 봉황이 시간 아니에요? 봉황이 본질 아니에요.
본질이 지나가면서 그 구름 꼬리로
저한테서 이렇게 나타나는게 모든 것이 선물이다 이거예요.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거잖아요.
이 순간 난생처음 보는 나한테 주어지는 선물.
그것이 여러분 매 순간순간 주어져요,
아니면 어느 한 특정한 순간에만 주어져요?
매 순간순간 새롭게 주어지는 난생 처음에,
지금 이 즐거운 우리 법회,
법회라는 말도 진리를 가지고 모였다 이말이잖아요.
진리 법(法) 자에다가 모일 회(會) 자잖아요.
그러면 우리 법회가 진리를 중심으로 이렇게 모인건데,
지금 이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난생처음 경험하는 시간으로 주어지는데
하필이면 도반하고 같이 법회를 하고 있네, 금상첨화 아닌가요?
그래서 육조스님의 용어만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전념(前念)과 후념(後念)에 대한 안목이
육조스님의 가르침에는 항상 나와요.
전념은 뭐냐하면 지난 한생각이 일어났는데 지나가는 것,
후념은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 것, 요게 후념의 뜻이에요.
육조스님이 말하는 전념 후념의 개념이.
근데 일반인은 전념이 일어나면
그 다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이해되세요?
근데 육조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전념에서 후념이 일어날 때 끊으라는 거예요.
그리되면 우리의 의식이 과거에 있지 말고
항상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라.
육조의 가르침도 현재를 살아라예요, 현재를 살아라.
전념에서 후념이 전념에 물들지 마라!
그걸 굉장히 강조하거든요.
그러면 실제로 내가 현재를 의식하면,
자, 여러분 현재 한번 의식해 볼까요?
지금도 현재지요? 지금도 현재지요? 지금도 현재지요?
그러면 보세요.
우리 의식을 현재에 두면 지금도 현재지요.
그렇지 않나요?
무서운 일이 벌어져요.
우리 의식을 지금도 현재잖아요?
이 현재를 느끼면 여기 생각이 없어져요.
이게 비밀 중에 비밀이에요.
이게 인간의 비밀이에요.
현재를 느끼면 생각이 없어져요.
여러분 뭐 때문에 괴로워요?
생각 때문에 괴롭잖아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현재를 느끼면, 희안한거에요.
지금 현재를 느끼보세요.
현재를 느끼면서 생각할 수가 있느냐? 없어요.
현재 느끼는 것과 생각은 공존할 수가 없어요.
현재를 못느끼면 생각 속으로 빨려들어가요.
생각 속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 사건사고 투성이 아닌가요?
생각 속에는.
근데 현재를 느끼면 생각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현재를 계속 느끼는 사람한테는 생각이 없다 이거에요.
무서운 일 아닌가요?
현재를 계속 느끼는 사람한테는 생각이 따라붙을 여지가 없다.
그러면 자,
지금도 현재가 흐르나요?
새로운 현재가 일어나고 있지요?
새로운 현재를 내가 지금 탄다.
새로운 현재를 탄다.
지금도 현재지요.
지금도 현재지요.
계속 현재를 탄다, 맞아요?
현재를 계속 타고 있으면
지금도 현재잖아요.
현재지요? 현재인데,
삼라만상이 같이 타고 있지요.
이 느낌 오실려나?
내가 현재를 지금 타면, 지금도 현재가 계속 새로 일어나고 있어요.
생각을 일으키면 과거로 그냥 밀려가버려 물살 따라 떠내려가는데..
떠내려가지말고,
새로운 물살을 계속 탄다. 이 자리에서.
현재의 자리에서 계속 현재를 탄다.
현재를 타면 생각 없지요.
무서운일이 또 뭐가 뭐냐하면,
현재를 타고 있으면 이 전체가 현재가 되버리는 거에요.
현재를 타는 사람들한테는...
지금 제가 계합하는 비밀을 알려 드리고 있어요.
깨달음은 계합이에요.
깨달음은 깨달음은 뭐냐하면 현상이 본질에 계합하는 거예요.
계합한다는 말은 하나가 되는거.
현상에 본질하고 하나되는 방법은 현재를 타면,
현재를 타면..
지금도 현재지요? 또 현재지요.
이 현재가 삼라만상이 우주 전체가 현재가 되고,,
현재를 타버리면, 현재밖에 없어져요.
현상이 본질하고 계합하는 방법,
현재를 타는거다 이거에요.
그러면 현재를 타면,
지금도 현재지요? 계속 현재지요?
현재를 타고 있으면 생각이 못붙고
생각이 못붙으면 분별되지 않아요.
개합의 가장 조건이 분별심이 떨어지는 거예요.
분별심이, 분리감이 떨어지는 거에요.
이건 정말 우리를 끈질기에 괴롭하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는 핵심은,
분리감이에요.
나 따로 세계 따로.
나따로 너 따로.
근데 놀랍게도 현재를 타며
현재를 타면 모든 것이 한덩어리 전체가 되는 겁니다.
아 이거를 잘 음미해보세요.
현재를 탄다는 말을,
잘 음미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도 실제로 타고 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놀라운 것은 힘 뺄수록 현재를 타게 되요.
여기서 뭘 하면 현재를 놓쳐요.
자, 유위법으로 들어가면 현재를 놓쳐요.
근데 무위법으로 들어오면 항상 현재를 타고 있어요.
거지가 항상 황금 상자를 깔고 앉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현재를 타고 있어요.
근데 이걸 발견을 못해.
왜 발견을 못하느냐? 거지 짓 하는 것(때문에).
거지 짓하는 한다는 건 뭐에요?
이 황금 덩어리 놓치고 가서 내 마음이 욕망을 일으켜 가지고
가서 붙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냥하느라 동냥하느라고 깔고 앉아 있는 현재를 놓친다,
이 말 이해되세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 제목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위법으로 살아야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겁니다.
어깨의 힘을 빼야 되.
어깨의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하면 자각이 오는 거에요.
현재를 내가 타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