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홍윤표의 시 세계 서정적 자아의 가치관과 자연관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삶의 궤적(軌跡)과 자아 인식 현대시의 기능은 자기의 정화(淨化-catharsis)라는 대명제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를 자주 대할 수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그의 저서 『시학』에서 말한대로 ‘비극은 어떤 행위를 모방한 것으로서 애련(哀憐)과 공포에 의하여 이것들의 정서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해서 자기 정화를 논한 바가 있어서 한 시인이 창출한 시적 이미지나 주제는 바로 그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에서 창조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의 정화는 그 시인이 체험한 삶의 궤적에서 추출한 인식이 바로 그 시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으로 정립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인들의 자존(自尊)과 일체감으로 긍정할 때 비로소 한 편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기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여기 홍윤표 시집『위대한 외출』을 일별하면서 정화의 개념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그가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주제를 탐색하려는 주요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삶과 상충(相衝)하거나 대칭하는 절박성이 그의 대사물관(對事物觀)에서 발현하는 정서의 정화라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홍윤표 시인은 이러한 모든 시적 대상물에서 접맥(接脈)시키는 이미지의 원류는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에서 수용한 인본주의적(humanism)인 순정적인 서정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그의 진실이 작품 전체를 휩싸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의 인격은 별이다 누구나 가진 재능도 별이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멸시하는 일 그건 모두 죄이다 모두 죽어가는 것 삶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오늘밤 지나면 모두 봄날이다 땅에서 싹이 트고 산에서 이름나고 지상에서 꽃이 피고 향기를 낸다 난 오늘도 별을 향해 길을 걸어야만 한다 우리가 살며 걸어가는 건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다 상생을 위해서 삶은 언제나 신명이 나고 어진자의 삶에 길이 하늘처럼 열리니 사람들이 가는 길은 모두 허사가 아니다 --「상생의 길」전문 우선 위의 작품에서 분사(噴射)하고자 하는 ‘상생의 길’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의 인격은 별’이라는 도입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긍정의 정의는 이와 같이 홍윤표 시인의 자아 인식의 단계라는 것을 유추하게 한다. 그가 결론으로 적시(摘示)하는 ‘우리가 살며 걸어가는 건 /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다’라거나 ‘어진자의 삶에 길이 하늘처럼 열리’는 것들이 그에게서는 ‘삶’의 지표나 목적으로 공감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상생(相生)’이라는 시적 명제를 통해서 ‘세상을 속삭이며 사는 모습이 인생이란다’거나 ‘밤길에 세상을 바로보고 잠들기 전에 / 달빛이 흐르는 길을 더듬어 보고 / 어수선한 세상도 바로 읽는다(이상「새들의 집에는 지붕이 없다」중에서)’는 확신과 같이 그는 ‘삶의 내부를 보여’주는 자신의 인식을 적나라(赤裸裸)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모두가 피 땀나는 아니 고달픈 생활에 허기를 채우는데 혼신을 다 했다는 것에 존경스러워 그 무엇 삶의 줄거리에서 그대를 찾기 위해 온 몸은 열꽃으로 가득 솟았나 당신 밖과 안에 내 영혼이 살아 있어 그 무엇을 찾으려는 신념이다 --「그 무엇을 찾다」중에서 외치는 바람의 메아리에 나를 태우는 생명의 아우성은 철길처럼 길다 망개나무 넝쿨이 암과 피부질환 고혈압에 좋다고 선전하지만 줄기찬 잎사귀에 사랑 실은 겨울밤은 달빛으로 떡잎으로 삶의 상흔을 치유한다 --「망개떡은 밤을 울린다」중에서 그렇다. 홍윤표 시인은 그의 삶의 궤적에서 생명수로 뽑아올린 이미지가 바로 ‘고달픈 생활에 / 허기를 채우는데 혼신을 다 했다는 것’이라는 진실과 만나게 되고 ‘삶의 줄거리’는 ‘당신 밖과 안에 내 영혼’이 생동하는 그의 ‘신념’이라는 정서의 중심축에서 자아의 인식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는 ‘나를 태우는 / 생명의 아우성’이 결론적으로 ‘삶의 상흔을 치유’하는 한 방법으로 형상화하는 데서 그가 탐색하려는 자아가 명징(明澄)하게 현현되고 있어서 ‘어머니가 빚은 음력 보름의 망개떡’의 전설이 그의 삶의 실체로 각인(刻印)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홍윤표 시인의 이와 같은 삶의 현장이나 사유의 범주(範疇)는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는데 특히 주목할 수 있는 그의 인식은 ‘댓가 없이 흔들어대는 금붕어 지느러미를 볼 때마다 나를 돌아본다 지구상에 삶의 무게를 거울삼아 맑게 살아가는 물고기 탁한 물을 거부한다 눈의 무게가 어디까지 인지 너도 나도 모르는 오늘의 삶 이제 좀 알 것 같다(「어항 앞에서」중에서)’는 인식의 감도(感度)가 더욱 확실해지는 상황과 시적 진실에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작품에서 삶과 융합(融合)하는 소재와 주제가 더욱 그의 인식의 심도(深度)를 차원 높게 확인시켜주는 시법(詩法)으로 우리들의 감응(感應)을 흡인(吸引)하고 있어서 그의 삶이 곧 시라는 궁극적인 진실과 합일(合一)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2. 농심(農心)과 시의 사회성 홍윤표 시인은 다시 인본주의적인 서정성에서 그의 시야(視野)를 더욱 확대해서 사회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그가 정서에 오래도록 침전(沈澱)되어 있는 농심에의 이미지를 재생하면서 현실적인 고뇌를 토로(吐露)하는 시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가 다년간 공직에 재임하면서 접하게 되는 사회적인 현실 특히 농촌의 실상들이 그의 시각적인 이미지로 부각하면서 그의 내면에 잠재(潛在)한 인간적 혹은 서정적 진실이 시의 사회성을 더욱 확고하게 존치(存置)시키는 큰 역할을 담당하면서 어떤 문제점을 간과하지 못하고 있다. 시의 사회성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은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 수가 없어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면서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현대시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직면하여 거기에서 주제를 탐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빈 몸으로 처마 밑에 매달려 졸던 못줄이 세월의 껍질을 벗고 물꼬 튼 논두렁에 기댄다 물줄기는 좁은 실개천 따라 긴 용수로까지 얼마나 시달려 왔을까 겨울엔 지친 기색이다 탁한 막걸리를 마시며 농가월령가 울려 퍼지는 한 나절 녹슨 경운기 트랙터 이앙기는 발가락 멈출 새가 없다 농가대열에 앞장서 노도怒濤를 외치는 어린 망아지 맥박따라 비단결 깔아 놓인 자운영 꽃들은 봄 문을 열고 행열이다 붉게 물든 자운영 꽃이 방실거린다 맨발벗은 육묘들이 좁은 논틀에서 차례를 기다리지만 봄내 기다린 못줄은 어디로 숨으랴, 쥐구멍이 없다 물꼬 튼 농력農歷의 깊이도 길고 깊어 개나리꽃 햇살에 그을린 가난한 못줄은 이제 그 분노와 열정은 침해할 수 없었다. --「가난한 못줄」전문 그는 이처럼 농촌의 실재(實在) 상황을 시적 정황으로 도입해서 현재의 농심을 진솔하게 현현함으로써 그가 탐구하면서 피력(披瀝)하려는 진실의 의도가 재현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그가 결론으로 제시한 ‘햇살에 그을린 가난한 못줄은 이제 / 그 분노와 열정은 침해할 수 없었다.’는 화자의 어조(語調)는 ‘탁한 막걸리를 마시며 / 농가월령가 울려 퍼지는 한 나절’에 전개되는 농촌 풍경에서 그가 체득(體得)한 이미지는 단순한 ‘분노’가 아닌 시의 사회적인 기능을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농력(農歷)의 깊이)’는 ‘철기시대 훌륭한 유물로 만들어진 / 딤채 때문에 / 김장철을 장담 못하는 인정들 / 풍요 속에 장애자 가 되었어 / 배추 값은 분료糞料 값이 되었어(「딤채 때문에」중에서)’라는 우리 농민들의 애환이 중심이 된 주제를 이해하게 한다. 시장은 늘 선거전이다 빌딩 숲이 서며 빈들거리며 유세장이 바쁘고 생선전도 비린내가 난다 오피스텔마다 선거사무실 임대가 나가고 장사가 안 된다고 줌마타령 멜로디를 높으니 서리콩이 비싸다 올해는 배추값이 더 금값이란다 --「선거열전」전문 홍윤표 시인의 농심에 대한 시적 열정은 ‘서리콩이 비싸다 / 올해는 배추값이 더 금값이란다’는 격한 어조는 바로 농촌 아니 농가의 여망이나 소망이 절망으로 변질돼가는 현실적 비평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현대사회에는 삶에 대한 모순이나 불합리가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농민들의 갈등이나 고뇌가 시인의 정서를 통해서 승화하거나 형상화하는 경우로 현현되고 있어서 그 주제가 우리 사회에 대해서 다루는 능동성(能動性)으로 시적 위의(威儀)를 말하거나 그 감응을 확대하는 시법이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홍윤표 시인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천성적인 서정적 자아를 통해서 소박한 생활시에서부터 사회의 비평적 작품 등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그의 시적 경향은 그가 추구하려는 인간적인 진실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예측(豫測)할 수 있는 사유의 원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밖에도 작품「복지겸 호령소리」에서 ‘세월에 닫힌 동문을 열고 남문을 열고 / 두견주 술 익는 마을마다 꽃피는 농가월령가 / 에헤라 더덩실 행복한 아침이 밝아온다’거나 작품「검은 슴새」에서 ‘농사도 짓고 독도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작품「가의도」에서도 ‘독신으로 사는 섬에 육쪽마늘 본산지’라는 등의 어조로 농심에 대한 서정성을 분사(噴射)하고 있다. 3. 자연 서정의 시간과 공간 홍윤표 시인에게서 다시 주시할 부분은 친자연적인 시적 형상화가 그의 주요한 정서의 진면목(眞面目)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자연 서정을 통해서 그가 정화하거나 도취(陶醉-narcissism)하려는 시적 본령(本領)이 여실(如實)하게 발현되는 점에서 그의 서정적 자아의 진원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의 원형은 김준오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독일의 극작가 쉴러(schiller)가 주장한 ‘자연으로서 존재’하든가 아니면 ‘상실한 자연을 추구’하든가의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전자는 ‘소박한 시인’이며 후자는 ‘감상적 시인’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잔잔히 흐르는 사랑이 있다 코스모스 꽃길 떠나는 가을이 있다 미움도 그리움도 지워버릴 수 없는 추억의 가을, 조용히 물드는 거리에 누워 결실로 차있던 자리를 비우고 있다 진솔한 자아 속에 피어난 애뜻한 사랑이여 화려한 단풍들이 산자락에 찬란하다 바람에 한 잎 두 잎 떨구며 노래하는 입술 살랑살랑 나의 초상은 말 할 수 없는 운명의 단풍길은 초라하고 낯설어도 화음이다 노을은 초라하게 떠나는 가을 속으로 짙어온다 짙은 숲속에 살다 떠나는 소쩍새 떠나는 가을 때문에 잡을 수 없어 애련하다 하늘까지 물드는 갈대숲은 가을이 남겨준 사랑과 함께 허공을 본다. --「떠나는 가을」전문 보라. 홍윤표 시인의 서정성은 이 작품에 일별할 수 있듯이 우선 시간성에서 이미지를 추출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는데 여기 ‘가을’은 계절적인 변화의 단면에서 적출(摘出)해낸 서정성은 그 이미지가 다양하게 분사하고 있지 않는가. 그는 이 시간성 즉 사계절에서 투영하는 이미지나 주제는 어디까지나 서정을 바탕으로 해서 그가 구현하려는 친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에서 주제를 타구하려는 시적 상황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는 ‘미움도 그리움도 지워버릴 수 없는 / 추억의 가을,’이라고 묘사함으로써 가을에 관한 이미지는 그가 우선 ‘떠나는 가을’로 ‘짙은 숲속에 살다 떠나는 소쩍새 / 떠나는 가을 때문에 잡을 수 없어 애련하다’거나 ‘하늘까지 물드는 갈대숲은 가을이 / 남겨준 사랑과 함께 허공을 본다.’는 그리움과 허무의식이 물씬 풍기는 서정성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그는 특히 가을에 대한 집념으로 많은 작품을 승화하고 있다. ‘가을은 달빛 내리는 소리가 아름답다 / 비었던 산하에 몸도 사색도 자유로 흔들거리며 / 재미있는 동화도 읽어준다(「물드는 가을 소리」중에서)’거나 ‘강 건너 온 가을밤에는 / 귀뚜라미와 여치가 밤을 지킨다 / 음향이 서로 다른 제 목소리에 밤을 지키고 / 계절을 찾은 제 목소리가 바쁘다(「에로스 가을」중에서)’는 등의 어조에서 그의 가을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는 특이하게 이 가을의 정취(情趣)에 관해서 집착하고 있는 경향을 살필 수가 있는데 ‘반가운 마중물따라 가을 늪에 빠진다는 것은 / 적막을 일깨는 소용돌이였을까 / 비린내 나는 갯뻘에서 바지락을 벗삼아 / 뻘밭을 갈며 사는 나는 / 삶의 존재를 심었다.(「붉은 노을에 가을이 탄다」중에서)’는 서정적 인식이 공존하고 있다. 젊음을 부르는 함성처럼 돌아온 봄의 남새밭에 우수의 비가 나리면 내 가슴엔 언제나 사랑의 강물 되어 넘쳐흐르는 봄빛이여 --「봄빛은 강물처럼 흐르고」중에서 그는 이처럼 고르게 사계절의 이미지를 창출(創出)하고 있는데 봄에서는 생명이 약동하는 ‘사랑의 강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소녀의 왕 눈처럼 올망 똘망한 꽃들 / 나는 봄보다 / 먼저 꽃에 다가가 정을 주겠다 / 사랑을 주겠다.(「봄보다 먼저 꽃에게」중에서)’라는 봄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침잠되어 있다. 나에겐 간절한 소망과 이름들, 행복한 이름들 임기 말기에 쏟아지는 야유와 투정들 그래도 잘 했다 칭찬해주는 너그러움 그 사랑이 미움을 너그러움으로 용서하리 죄 많아 거리를 활주하는 것도 아닌 소중한 사랑들 겨울에도 큰다. --「사랑엔 겨울이 없다」중에서 다시 그는 겨울에 관한 이미지도 배제할 수 없다. ‘소중한 사랑들 겨울에도 큰다.’는 결론적인 어조는 그가 평소에 내재(內在)된 신념의 한 부분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면서 그가 여망하던 일상적인 정서가 우리들의 관심을 흡인하고 있다. 작품「겨울 가로등」「위대한 외출」등에서 겨울 이미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시간성과 대칭이 되는 공간개념에서도 그의 서정성은 빛나고 있는데 작품「미소짓는 가야산」에서 ‘가야산이 넝큼 웃는다 / 서해 한 가운데 기운을 세운 산 / 가야산은 계룡산에 이어 명산이다’ 혹은 작품「꽃섬 거제도」에서 ‘거제섬을 꽃섬이라 부른 것은 섬 전부가 꽃으로 옷을 입고 살아서 꽃섬이라 부른다지요 사열한 가로수 상당수가 벚꽃이며 동백꽃이고 학동고개는 벚꽃터널을 이뤄 장관이지요’ 그리고 작품「이화원을 돌아보며」에서도 ‘화합과 상생의 정원이라는 곳 / 녹색산업 현장의 꽃이 피어 반겼다’는 등의 상황과 어조는 공간적인 서정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구름과 바람, 새, 두루미, 나무의 눈, 강물 등을 소재로 한 서정 작품을 많이 대할 수 있다는 것은 홍윤표 시인의 정서와 서유의 폭이 서정적 자아에서 발원한 순정적인 시학을 근원으로 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4. 식물성에서 창출하는 서정성 홍윤표 시인은 친자연 서정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 식물성이다. 그는 너무나 많은 주변의 식물에서 그가 관심있게 주시한 상황들과 이미 체득한 체험들이 숙성되어 있어서 그의 순박한 내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자연관은 우리 인간의 정서나 사회에 좋은 혜택을 주는 낙관적인 견해가 가능해 진다. 김준오 교수의 시론에 의하면 ‘비정적(非情的) 타자성(他者性)’이라는 논지로 자연의 인격화라는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논리는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부분인데 이렇게 자연을 인격화하는데는 동화(同化)와 투사(投射)라는 두 가지 원리가 작용하게 된다. 먼저 동화(assimilation)는 그 시인이 만유(萬有)의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것이고 투사(project)는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것 곧, 시인은 정체가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다른 존재를 채우는 시법을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자연관에서나 자연관찰에서 유념할 문제가 시인이 자연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서 내가 직접 자연 속에 들어가서 그 자연 사물이 될 것이냐, 아니면 객관적으로 멀리서 자연을 관망(觀望)하면서 지적인 사유를 투영할 것이냐 하는 상황에서 작품의 지향점이 별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숲에 스쳐오는 바람소리에 나는 또 하루가 큰다 앞뜰 뒤뜰에는 인류의 기운을 세우기 위해 지번마다 깃발을 달고 맑게 흐르는 산 숲의 말간 오수찌꺼기까지 그래도 우리네가 살려면 그걸 마셔야 사느니 영파산 숲에서 자라는 참나무와 소나무 비발디의 오후 노랫가락을 들으며 아니 불경소리를 마시며 산다 공방에서 홀로 수심을 풀며 안부를 묻는 일 식솔의 목소리를 듣는 일 모두가 넉넉한 충만을 채우기 위함일까 울리고 깨우고 채우고 싶어 하는 충만한 가슴들, 늘 속을 비우며 사는 거 무소유로 사는 일에 사랑을 건다 대숲을 울리는 바람소리에 귀를 연다. --「대숲을 울리는 바람소리」전문 우선 홍윤표 시인은 ‘대숲’이라는 자연 사물을 ‘바람 소리’라는 청각적인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투영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는데 여기에서 화자 ‘나’는 위에서 말한 투사의 인격체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것은 ‘나’라는 자신의 인격체가 대숲에서 바람소리를 들어면서 ‘불경소리를 마시며’ 살거나 ‘늘 속을 비우며 사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시적 정황은 홍윤표 시인이 자연을 접하는 정서의 중심에 그가 지향하려는 내적인 안온(安穩)과 ‘울리고 깨우고 채우고 싶어 하는’ 그의 기원의식도 포괄하고 있어서 서정적인 자아의 인식은 친자연의 한 부분에서 인생관을 탐미적(耽美的)으로 응시하고 있다. 우수수 바람 불어도 홀로 외줄기 인생을 걷는 바람둥이 꽃 너는 사랑을 파는 연주자였을까 오늘도 연보랏빛 창문을 열고 마음의 기둥에 기댄 너는 물안개처럼 안겨와 그리움을 심었다 아득히 먼 날 위해 아침의 꽃 나팔꽃을 심는다. --「나팔곷」중에서 홍윤표 시인은 이처럼 자연의 인격화에는 대체로 투사의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 ‘나팔꽃’에서도 그는 ‘나팔꽃=너’라는 등식으로 화자를 내세워서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심화(深化)시키고 있다. 그는 다시 ‘반가운 그 음성은 나의 인생이며 노래라고 / 비에게 바람에게 햇살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어서 이 ‘나팔꽃’으로 탐색하는 그의 인생관이 어쩌면 우리 공통의 정서가 아닐런지 하는 공감이 흐르고 있다. 그는 작품 「천사의 나팔꽃」에서 ‘너는 / 밤의 교향곡이라도 들려주렴 / 길을 가다 막히면 / 독성을 품고 내숭떤다니 / 네 앞에서 사랑한다 어히 말하랴 / 독을 품고 사는 몸이 되어 / 언제나 가슴 조인다 / 고개를 들라’라는 다른 어조의 ‘나팔꽃’을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서정성은 ‘민들레꽃’, ‘만리향’, ‘벚꽃’, ‘분꽃’, ‘아카시아’, ‘산수유’, ‘단풍’, ‘구절초’, ‘갈대밭’, ‘국화꽃’ 등 식물성에서 많이 취택하고 있어서 그가 여망하는 서정의 원류는 바로 이러한 식물적인 화훼류(花卉類)에서 식물들의 언어를 듣고자 하는 그의 순박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언제나 미당의 뜰에 핀 / 국화꽃을 보면 진하게 타오를 / 가을의 국기를 보듯 슬프고 진한 가슴안고 / 그 영혼의 눈물을 흘리리라(「국화꽃」중에서)’라는 어조에서와 같이 그의 순정적 이미지가 서정의 맑은 ‘영혼의 눈물’로 가득 차있다. 이제 홍윤표 시집『위대한 외출』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가 탐구하는 주제는 삶과 연결하는 자아 인식의 확인이며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농촌주변의 생활상을 통한 사회적인 고뇌와 갈등 등이 작품을 통해서 농심을 일깨우는 일과 서정성의 창출이다. 이러한 서정성은 친자연적이며 친자연의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구성하는 시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세월은 침묵으로 옷을 바꿔 입으면서 흐른다. 평소 소월시인의 『진달래꽃』시를 좋아했다. 시를 읽을 때 마다 느끼는 시적 이미지는 사랑과 이별을 아름답게 노래했다. 사랑과 이별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상대적으로 세월을 먹으며 산다.’는 언지와 같이 그의 내면에는 순수하고 순정적인 친자연의 이미지가 그의 작품에서 차원 높은 주제를 투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찍이 영국의 시인 셸리가 말했듯이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며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는 명언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 시인들은 어차피 인본주의의 범주를 떠나 작품을 완성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38년간의 공직을 정년퇴임하면서 그의 인간미를 창출한 작품들의 의미는 더욱 진솔하면서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융합을 이루는 그의 철학이 내포되어 있음을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